"일반독자 위해 쉽게 써야" [05/01/16]
'2005 동인문학상' 새해 첫 독회
“이제 특수한 독자들이 아닌 일반 독자들을 찾아가는 작품이 나와야 합니다.”
2005 동인문학상 새해 첫 독회에서 7인 심사위원회(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는 ‘올해의 소설문학’을 전망하고, 보통 독자들을 배려하는 소설쓰기를 주문했다. “현실이 열악하니까 더 열심히들 쓰는 것 같은”(이문열) 분위기는 분명하지만, “내용이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김화영)는 것이다.
“일제 때도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통화(通話)는 많아지는데 통화의 위기는 증폭됩니다. 메시지가 기호화되면서 아는 사람만 알게 되는 것이지요. 좋다는 작품일수록 통화량은 줄어들고 저 혼자 수직으로 솟아버리는 현상이 벌어집니다.”(이청준)
“연말에 여러 외국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놀라운 점은 외국 책은 읽기 쉬운데 우리 책은 너무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외국 책은 앞뒤 문장이 명쾌하게 연결된 경우가 많은데 우리 책은 왜 이렇게 썼을까를 줄곧 생각해야 했습니다.”(김화영)
“90년대 이후 사건의 절실성이 사라지자 세상을 폭넓게 조망하는 잡념이 끼어들었습니다. 이 잡념이 지식으로 바뀌었고, 한 분야를 끈질지게 탐구하는 대신 단편화되어 넓게 퍼지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정과리)
“지식이라기보다 정보로 봐야 옳겠죠.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흔히 보듯이 전체를 바라보는 눈은 없고 대신 파편화된 상태로 그 자리에서 소비되는 정보들입니다.”(유종호)
“그전에는 할 얘기가 많은 사람이 소설을 썼는데, 지금은 할 얘기가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고 합니다.(웃음) 우리 소설들은 단편 위주로 발전하다 보니 밀도가 강해졌고, 그 때문에 장편도 웬만해선 싱거우니까 장치를 많이 해서 불필요하게 어려워졌습니다.”(김화영)
“잘못된 문예이론 탓도 있습니다. 함의가 많은 애매함을 높이 치는 것, 두 번 설명하거나 다시 되돌아가서 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을 높이 치는 건 잘못됐습니다.”(이문열)
“세상에 대한 파노라마적 인식을 바탕으로 폭넓고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짜이느냐가 한국 소설의 발전 요건입니다.”(정과리)
“또 어떤 작가와 평론가들은 소설 문장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배제하는 것을 또 다른 미학으로 내세우는데, 그러나 우리 문학은 부사와 형용사 덕분에 상당한 겹을 형성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이청준)
“우리 문학은 형용사를 잘 써야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가 드러나는 측면이 있습니다. 코멘트 없는 삶을 계속 보여주는 장편을 끝까지 읽는 것도 독자로서 고단한 일입니다.”(유종호)
심사위원들은 소설 전반에 관한 토론을 마친 뒤 조경란 소설집 ‘국자 이야기’(문학동네)를 곧바로 올해 첫 후보작으로 올렸다.
“집중력, 관찰력이 뛰어났고, 그 상황을 넘어서는 힘, 다른 곳을 바라보는 듯한 선(線)들이 나중에 원(圓)으로 완성되는 힘이 좋았다”(유종호·이청준), “절반 이상을 가족 이야기로 밀고 가면서도 수많은 가족 구성원들과 관계된 내적 외적 인접성을 직조하는 솜씨가 아름다웠다”(김화영)는 평을 들었다.
심사위원들은 다음 독회에서 천명관 장편 ‘고래’(문학동네), 함정임 장편 ‘춘하추동’(민음사), 조하형 장편 ‘키메라의 아침’(열림원), 이인화 장편 ‘하비로’(해냄), 이신조 장편 ‘가장 도시 백서’(열림원) 다섯 작품을 계속 검토하기로 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