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그때 그시절엔] 정은숙 대표 '이청준의 소설들'  [04/10/17]
 
“젊은날의 속앎이 풀어준 작은 숨구멍”

1970년대 후반 나는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한마디로 무지하게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 당시 평균적인 고등학생이 그랬듯이 학교와 집을 쳇바퀴처럼 오가며 막연하게나마 뭔가를 쓰기는 써야 하리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폭압적인 입시전쟁 속에서 그런 꿈이 가능할지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학입시를 몇 달 앞둔 어느 날부턴가 나는 필시 입시가 주는 중압감과 그 반동 때문이었겠지만 두 사람의 우리 소설가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그 두 작가란 바로 이청준과 김승옥이었다. 비교적 조숙하다는 평을 듣는 나였음에도 그들의 소설은 이해는커녕 겨우 독해만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스럽게 수험생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에 나는 자꾸만 몰입해갔다. 그 바람에 학교 성적은 급전직하, 급기야 집에서 불호령이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나는 낯선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유난히 내가 다른 지방에서 온 유학생보다 더 부대낀다고 느꼈다. 연일 데모가 계속되는 학원, 뽀얀 먼지 사이로 날아오르는 돌멩이와 잡혀가는 학우들…. 오랜 권위주의 정권에 길들여져 자라온 나와 친구들은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도, 그렇다고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 때 이청준의 문학을 다시 발견하게 됐다. 일몰 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일몰 후에는 기숙사에서 나와 친구들은 ‘당신들의 천국’과 ‘소문의 벽’, ‘예언자’, ‘이어도’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특히 언어와 폭압적 지배의 문제를 그 특유의 알레고리 기법으로 그려낸 ‘언어사회학서설’ 연작은 우리 같은 회색분자들에게는 큰 인기였다. 이청준의 문학은 어쩌면 무력하고, 또 많은 부분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빠진 우리들의 심성에 한 가닥 위안과 숨구멍이 되어준 것이 아니었을까. 그로 인해 촉발된 정치학도의 문학적 관심은 루카치와 잉게보르크 바하만, T S 엘리엇을 거쳐 김현의 문학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제멋대로’의 유영(游泳)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내 시선은 이청준의 ‘눈길’에 와서 머물렀다.

그 후 선생을 직접 만나고, 그의 전집과 산문집을 만드는 자리에 서게 된 것도 70, 80년대 정치적 상황과 그 응전으로서의 소설읽기, 개인적으로 그 내밀한 속앓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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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레터] 동네 서점들이 참여하는 독서축제 [2004.10.16]

만해 한용운은 ‘독서삼매경’이란 글에서 가을에 책 읽는 맛을 이렇게 설파했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것은 무슨 습관이나 제도로서가 아니라 자연과 인사가 독서에 적의(適宜)하게 되는 까닭이다. 자연으로는 긴 여름의 괴로운 더위를 지나 밝은 기운과 서늘한 바람이 비롯하는 때요, 인사로는 자연의 그것을 따라서 모든 일이 번거로운 여름 동안에 땀을 흘려가며 헐떡이던 정신과 육체가 적이 가쁘고 피곤한 것을 거두고, 조금 편안하고 새로운 지경으로 돌아서게 되는 까닭이다.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낮보다도 밤을 이름이니 추야장(秋夜長)이라면 자연히 독서와 회인(懷人)을 연상하게 되는 것이다.”(표정훈의 책 ‘탐서주의자의 책’에서 재인용)

그러나 요즘 출판계에서 가을은 불황의 골이 깊어지는 계절로 통합니다. 신선한 바람과 드높은 하늘, 세상을 물들이는 단풍을 따라 사람들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판에 책 판매부수가 여름 휴가철에 비해 격감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가을을 맞아 독서 축제(15~17일)를 벌였습니다. 2000개의 시립 도서관과 100여개의 학교 도서관, 500여 개의 서점들이 참여한 독서 축제의 백미는 가을 밤의 책 읽기였습니다. 매년 열리는 이 축제에서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서점들의 밤’이란 행사에 참가한 200개의 서점들은 15일 밤 책 낭독회를 가졌습니다. 유명 저자들이 참가했고, 독자들과 토론회도 가졌습니다. 짙어가는 가을 밤에 책을 통한 만남의 광장을 대도시의 소형 서점들이 연출한 겁니다. 파리에는 대형 서점 못지 않게 각 동네 서점들이 출판 문화의 요충지로서 큰 역할을 합니다. 서점 주인들이 스스로 골라 짧은 추천사를 단 책들이 진열대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독서 축제에 소형 서점이 전국적 규모로 동시에 참여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소형 서점들은 대형 서점에 눌리고 인터넷 서점의 할인 판매에 밀려 점차 소멸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처럼 동네 서점이 참여하는 가을밤의 독서 축제를 꿈꿀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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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훔쳐보기  [04/10/15]
 
[Book World 窓]일기장 훔쳐보기

대학 시절 친구 자취방 책꽂이에서 우연히 시집 한 권을 꺼내 펼쳐보다 코끝이 찡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집의 여백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시에 대한 소감과 함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적혀 있더군요. 친구가 군에 있을 때 밤마다 연인을 생각하면서 끄적거린 흔적이었습니다. 외로운 곳에 갇혀 있는 상황 때문에 그만큼 절절했을지는 모르되, 그 친구의 낙서들이 시인의 시보다 더 감동적인 대목도 많았습니다.

책 정리를 하다가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발견하고 감회에 젖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겁니다. 얼마 전에는 오랫동안 버려둔 책상자를 정리하다가 어느 책의 속지에서 그 책을 결혼식 전날 구입했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한참 정신없이 바쁘고 경황이 없을 법한 날이었을 터인데 웬일로 서점에 들렀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슬며시 미소를 짓기도 했지요. 아마 새로운 생활에 대한 들뜬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기 위해 서점을 찾았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오래된 책을 펼치면 누렇게 변색된 속지에 군데군데 밑줄을 그어놓은 흔적들도 보입니다. 그 책을 읽을 당시에는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문장들이었겠지만, 지금 와서 보면 왜 이런 정도에 밑줄을 그었을까 의아해질 때도 있습니다.

이사갈 때 책이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다 싸들고 가자니 무거울 뿐 아니라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버려지지 않고 살아남은 책들은 그래도 무언가 자신에게 소중한 기억을 남겼거나 언젠가 다시 펼쳐보고 싶은 자신만의 ‘베스트셀러’일 가능성이 높지요. 따지고 보면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들은 자신의 지적 혹은 정서적 편력을 보여주는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지난 14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헌책방이 문을 열었다지요? 그곳에 가서 다른 이들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재미를 맛보는 건 어떨까요.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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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사 “나만 살면 그만” 중소출판사는 ‘고통 2배’  [04/10/15]

“지금처럼 계속되면 일부러 고의 부도내는 도매상이 나올 지경입니다. 도대체 출판시장은 자본주의 시장과 기업 운영의 기본적인 ‘룰’조차 없습니까.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최종부도난 아동서 전문 도매상 ‘어린이책’의 피해자인 한 중소출판사 ㄱ아무개 사장은 울화통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부도 도매상의 채권 지불능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부터 해야하는데 정작 채권단에서는 실사작업을 할 생각은 않고 “정리해봤자 ‘빈깡통’일 것이 뻔하니 공급했던 책이나 되찾아오자”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도업체가 받을 돈을 얼마고 줄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실사부터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 손해를 봐도 행여 손해가 나더라도 앞으로 생길 부도사태에 대비해 자료도 남기고 선례를 남겨야 합니다.” 연쇄부도의 위기속에 빠진 출판 유통에 ‘위기관리 대책’이 없다. 상식적인 부도처리 원칙과 합의가 없이 주먹구구식 또는 관습적 대응으로 오히려 출판 유통의 체질과 출판사들의 재정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실정이다. 특히 연이은 도매상 부도 처리과정에서 일부 ‘힘있는’ 출판사들과 ‘내 책만 건지면 그만’이라는 식의 일부 출판사들이 채권단 차원의 공동대응 대신 독자행동을 취하는 바람에 제대로 채권을 회수못하고, 이과정에서 중소출판사들만 더욱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따라서 장기 불황과 부도 여파로 도매상들이 계속 부도날 가능성이 큰만큼 이번 기회에 부도업체 처리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범출판계 차원의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책값 미리받은 일부 출판사

‘내책 찾으면 그만’ 횡포에 중소·인문사는 자금회수 더 막막
“도매상 고의부도 낼 정도”울화통

출판계 공동대응 절실 현재 출판유통 관행상 도매상들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일반 서점에 넘긴 뒤 한참 있다가 대금을 받아 출판사에 지급하지만 일부 힘있는 대형출판사나 베스트셀러 출판사들에게는 서점으로부터 돈을 받기도 전에 미리 대금을 지급해주고 있다. 그런데 부도가 날 경우 도매상이 이들 선지급한 출판사들로부터 돌려 받을 채권은 포기하고 공급받았던 책만 다시 가져오는 식이 되면 대형 출판사들은 미리 받은 돈은 돈대로 챙기고 다시 돌려받는 셈이니 오히려 이익을 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부도가 나면 ‘적당히 넘어가자’는 식으로 부도처리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달 한 지방 도매상 부도 사태 때에도 부도 업체 대표가 자신이 받을 채권을 확실히 받아 거래 출판사들에게 지급가능한만큼 지급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일부 출판사들이 독자적으로 책을 회수해버려 결국 다른 출판사들도 책을 회수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한 소형출판사 대표는 “이런 식의 처리가 관행이 될 경우 결국 도매상들이 합리적인 경영을 할 필요가 없어지니 최악의 경우 고의부도 사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베스트셀러 출판사들은 먼저 돈받으니 손해볼 일이 없고 결국 인문출판사 등만이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가 심화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결국 이런 난맥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판계 공동 차원의 협의와 대책 마련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출판계의 중론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출판 주요 단체들 특히 지난 98년 도매상 연쇄도산 사태로 만들어진 한국출판인회의가 앞장 서 해결책을 마련해야만 한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한 소장은 “낡은 사고 틀에 안주하며 주먹구구식 경영으로 일관해온 유통업계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많은 책임은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수수방관만 해온 우리 출판계에도 있기 때문에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출판계가 나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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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기자의 출판 25시 [04/10/15]
 
'2005국제도서전' 주빈국 선정됐음에도 후임 조직위원장 인선 놓고 허송세월

문광부-출판계 지혜모다 행사준비를

지난 10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이 5일간의 일정을 소화하고 폐막됐다. 2005년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관계자 등 한국에서만 550여명의 출판 관계자들이 이 기간에 독일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출판인들은 2008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된 것에 고무되기도 하고, 한국 책과 문화에 관심을 둔 외국 출판인들의 계약 상담을 받으면서 기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내년 도서전의 주빈국이어서 한국 국가홍보관을 찾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예년에 비해 잦아 뿌듯했다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독일에서 한국 출판의 미래를 논하던 출판인들은 지금 주빈국 조직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될 것인지에 대해 깊은 우려감을 나타냈다. 당장 조직위 고위 관계자는 “내년에 준비할 게 많은데, 행사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않아 막막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조직위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해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주빈국인 아랍연합의 행사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무게를 더한다.

조직위는 지난 9월 중순 위원장이었던 이강숙 전 예술종합학교 교장이 사퇴한 이후 후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부위원장 중 최연장자인 박맹호 민음사 대표가 위원장 대행을 맡고 있지만, 이달 말쯤까지만 직무를 대행할 것이라고 못박아 놓은 실정이다. 박 대행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를 기정사실화해 후임자 물색은 시급한 현안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조직위는 이렇다 할 조직위 재구성 일정표를 내놓지 않고 있다.

마치 지난해 10월 조직위가 구성될 때처럼 ‘출판계 인사’ 추천이냐 ‘외부 인사’ 영입이냐는 논란을 재연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대한출판문화협회 등 출판계는 명예위원장은 명망가급의 외부인사가 맡더라도, 조직위원장은 출판인들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관련 부처인 문화관광부에 꾸준히 제기했다. 그러나 결국 이 전 위원장이 사무적인 실권이 있는 조직위원장직을 요구해 출판계의 요구는 거부됐다.

그러나 동일한 논란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조직위원장 선출이 밥그릇 싸움도 아닐 터인데 문광부와 출협, 기존 조직위가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이달 초 ‘책의 날’ 행사에서는 주무장관인 정동채 장관이 “도서전에 대한 출판계의 준비가 미흡하다”고 질타까지 했다. 또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를 명예위원장으로 영입하려던 계획도 연기된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빈국 행사를 둘러본 조직위 관계자들이 출판계 인사가 위원장직을 맡아 내년 도서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김재원 문광부 출판신문과장은 “정부 차원에서는 출판계가 위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고려할 것”이라고 이전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도서전이 분명 출판계 행사이니만큼 조직위가 예산 타령만 할 게 아니라, 출판계에 역할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문가들은 1년도 안 남은 주빈국 행사 준비를 위해서는 정부와 출판계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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