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톨스토이에 열광하나 [05/02/02]
 
[왜 톨스토이에 열광하나]전쟁의 상처 어루만진 글…읽을수록 빠져들어

막스 베버의 유명한 연설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말미에는 혼란스러운 당대의 사회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변으로 톨스토이의 도덕적 삶이 제시되고 있다. 부연 설명 없이도 톨스토이의 도덕적 숭고함에 대한 당시의 청중들 사이의 암묵적인 수긍과 이해가 가능하였다는 것은 서구의 지성인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톨스토이의 일생과 사상이 각인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톨스토이 사상의 핵심이 되었던 종교적 박애주의와 평화주의, 더 나아가 아나키스트적 사상의 편린들은 무엇보다 톨스토이의 삶 그 자체에 의해서 평가되어질 수 있다. 더욱이 유럽을 양분하여 상호 반목과 자기 파괴적인 증오의 감정만을 팽배하게 만들었던 세계대전의 광폭함이 남긴 너무나 깊은 상처에 신음하던 대중들에게, ‘사랑은 죽음을 없애고 죽음을 헛된 환영으로 만든다.

사랑은 무의미한 인생을 의미 있는 그 무엇으로 탈바꿈 시키고, 불행을 행복으로 만든다’는 톨스토이의 경구는 마치 복음서와도 같은 깊은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령 다른 동시대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유도 모른 채 살육의 전장으로 내몰린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참혹한 진지 속에서 톨스토이의 사상과 철학만이 유일한 위안이라는 점을 자신의 종군 일기에 여러 차례 적고 있다.

전통적인 서구의 문화세계는 그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조의 불가피성에 너무나도 깊이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논쟁적 태도 이외의 방법으로 이들 구조에 마주 서서 대항할 능력을 가질 수가 없었다. 반면에 19세기의 러시아 문학은, 그것의 이념 및 형식의 근간이었던, 유기적이고 자연적인 원초적 상태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때문에 톨스토이의 사상에서와 같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창조적 논쟁이 가능할 수 있었다.

물론 루소의 사유체계에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지만, 톨스토이의 문학에서 삶이란 자연과 공동체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자연의 커다란 리듬에 깊이 적응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일체의 사소하고, 해체적이고 경직된 것, 즉 자연적인 것이 아닌 모든 구조를 배제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전파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사상은 베버적인 의미에서 ‘탈마법화’ 되어 버린 서구의 산업화 과정이 잉태한 여러 사회적 갈등과 사상적 혼란을 무마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인텔리적인 구원에의 열망’이라는 테제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러시아 문학과 톨스토이에 대한 열광적인 숭배의 흔적으로는 무엇보다 헝가리 태생의 미학자 루카치의 초기 저작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이라 톨스토이의 새로운 복음서 해석들은 20세기 초반의 신학자들에게 많은 교감을 제공하였다.

톨스토이의 종교적 이념들은 프리드리히 리텔마이어(1872∼1938)와 같은 보수적인 종교지도자들에게 뿐 아니라, 구스타프 란다우어(1870∼1919)와 같은 진보적인 유태계 지식인들에게도 각인되어 실천적인 반향을 낳았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정언적인 외침은 모더니즘적 사유 체계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신이 떠나 버린, 예측불허의’ 삭막한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지식인들의 탄식의 소리를 자아내게 하였던 것이기에 새로운 구원의 불빛을 저 멀리 동방의 톨스토이에게서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궁핍한 시대를 살아가야만 하였던 서구의 지식인들에게 톨스토이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정전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짜르 치하의 제정 러시아의 열악한 정치적 상황 하에서도 국가와 종교적인 막강한 권력에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고 몸소 실천하는 삶을 마다하지 않은 톨스토이야 말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항시 주변부만을 맴돌아야 하는 지식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실존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살아있는 본보기였다.


(김영룡 문학평론가)=파이낸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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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2-0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톨스토이가 두 명이란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찬타 2005-02-03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난 아직도 모르고 있는뎅...ㅠ.ㅠ.
 

문예지 편집위원 세대교체 바람 [05/02/02]
 
'문학의 촉수'에 젊은 피가 돈다
문단 변화 맞춰 60년대생 평론가 전면에
최신작 비평 등 시대 감각 따라잡기 노력

여러 문예 계간지들이 편집위원 진용을 젊게 개편, 새 봄을 준비하고 있다.

문예지 편집위원은, 한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당대 문학의 촉수이다. 가장 먼저 문학의 변화를 감지하고 가장 앞서 그 경향을 인지하며, 때로는 그 변화와 경향의 방향을 ‘유도’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편집위원이 젊어졌다는 것은 한국 문학의 감성이 경향적으로 젊어졌다는 의미이며, 젊은 감성에 대한 문학(혹은 문단)의 요구가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이다.

계간 ‘문학 판’은 최근 문학평론가 손정수(37ㆍ계명대)씨를 편집위원으로 영입, 기존의 김혜림(37) 씨와 함께 30대 평론가 두 사람을 진두에 내세웠다. 계간 ‘문예중앙’도 이번 봄호부터 편집위원 진용을 문학평론가 김형중(38) 권혁웅(39) 심진경(38)씨로 꾸렸고, 시 전문지 ‘시인세계’도 박철화(41ㆍ중앙대)씨를 영입했다.

2003년 봄 창간사에서 “젊은 잡지를 지향한다”고 밝히며 출범한 계간 ‘문학수첩’도 원년 편집위원인 김종회(51ㆍ경희대) 장경렬(53ㆍ서울대) 교수 대신 권성우(43ㆍ숙명여대) 방민호(42ㆍ서울대) 유성호(42ㆍ교원대) 씨로 새 진용을 꾸렸다. 이에 앞서 문학과지성사의 계간 ‘문학과 사회’도 성민엽 권오룡 홍정선 씨에 이어 지난 해 말 정과리씨가 2선으로 물러남으로써, 명실공히 3세대 편집위원 체제로 봄호를 내게 됐다.

계간지들의 젊은 피 수혈은, 당연히 문단 자체의 변화에 보조를 맞춘 것이다. ‘문학 판’ 편집위원 김진수씨는 “창작의 주체와 내용이 젊어진 만큼, 젊은 감성구조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편집진도 젊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학의 변화와 관련, 문학평론가 김동식씨는 “해방 이전의 식민성ㆍ근대성 문학과 해방 이후 전쟁과 분단, 민주화와 산업화를 키워드로 한 문학은, 불가피하게 한국적 특수성(국내적 한계)과 사회ㆍ역사적 고통(어두움과 무거움)에 얽매여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게 사실”이라며 “최근 뚜렷한 경향으로 나타나는 ‘즐거움으로서의 문학’은 25년 전 김현 김윤식씨가 극복할 것을 주창한 ‘지방문학’과 ‘고통의 문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으로 이해된다”고 부연했다.

이같은 변화에 따른 문예지들의 변신 모색은 편집에도 반영돼, 가령 창비 문학동네 등이 봄호부터 최근호에 발표된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평론하는 ‘계간 평(評)’을 싣기로 한 것도 그 예 가운데 하나다.

손정수씨는 “변화의 징후가 있다는 것과 그 변화를 눈 여겨볼 가치가 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이라며 “한동안 하지 않던 계간 평을 잇달아 재개한 것은 작금의 변화를 가치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점검ㆍ분석할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과 사회’ 편집위원이기도 한 김동식 씨는 “3세대가 만드는 ‘문학과 사회’는 1ㆍ2세대의 유산을 토대로 문학이 과학기술 등 새로운 사회 코드와 접촉하는 면적을 넓혀가는 방향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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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며] 투철한 작가주의 산물

지상으로 올라온 만화

나이 서른을 넘긴 독자분들 가운데는 아마 만화방에 얽힌 추억 한두가지 안가지고 계신 분은 없을 겁니다. 텔레비전이 귀했던 때에는 만화 몇 권을 보는 대가로 축구중계를 볼 수 있는 곳이었고, 변변한 놀이시설이 없던 때라 학교가 파한 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세상물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어린 시절, 만화방은 만화를 통해 바깥세상를 체험하게 하는 터전의 역할도 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때때로 만화방은 선생님들이 학생들 단속을 위해 몰래 급습을 하는 '불량한 공간' 구실도 했습니다. 또래에 비해 조숙한 동네 형들이 구석에서 개비 담배를 돌려 피웠고 불량식품을 맛 볼 수 있는 곳이었던 까닭입니다.

이런 이유로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만화방에 가는 것을 꺼려했고 덩달아 만화는 좋지 않은 책이라는 딱지가 붙은 적도 있습니다. 이런 지적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어서 옛날 만화 중에는 미처 거르지 못한 '상스러운' 표현도 자주 나왔습니다.

저는 지금도 만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집에서 뒹굴거나 생리현상을 해결하러 갈 때는 꼭 만화책을 찾습니다. 요즘은 허영만씨의 '식객(食客)'이라는 단행본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첨에는 단순한 만화려니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옵니다. 내용의 치밀함 때문입니다. 만화가 아니라 숫제 음식 관련 전문서적이라 부를 만합니다.

허씨는 '대령숙수(待令熟手-조선시대 왕궁에서 왕실인사의 음식을 담당한 남자 요리사)'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수많은 관련자들을 만나면서 자료를 얻고, 생태탕 소재를 찾아 고깃배를 직접 타는 수고로움도 감내합니다. 숯불갈비의 정확한 고증을 위해 작업실에서 직접 불을 피우는 바람에 화재가 난 줄 알고 이웃 사무실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도 겪습니다. 자연히 만화의 내용은 풍부해지고 읽는 사람의 지식욕을 알차게 채워줍니다.

이원복씨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는 또 어떻습니까. 예외없이 저자의 박식함과 철저한 분석이 돋보입니다. 우리나라 만화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겁니다. 1981년부터 시작된 이 만화는 1987년 단행본 초판이 나온후 현재까지 국내에서만 100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합니다.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등에 수출되고 있으며 미국 진출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먼나라 이웃나라'는 최근 열두번째 책인 '미국 3-대통령 편'을 끝으로 20여년간에 걸친 긴 여정을 마감했습니다.

이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애지중지 키워온 아이들을 결혼시켜 보내는 마음"이라는 말로 시원섭섭한 감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다작을 할 수 없었던 이유로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만화를 그리려고 일일이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다보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던 점을 들었습니다.

이들 작가에게서 철두철미한 프로의 냄새가 풍기지 않는지요. 저는 감히 우리 만화의 희망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허씨나 이씨 같은 만화가들이 우리나라에는 적지 않습니다. 이제 만화에게 일방적으로 불량도서라는 '주홍글씨'를 붙이는 일은 삼가는게 옳은 일인 듯합니다.


(국제신문 염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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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열과의 대화  [05/02/01]
 
대구 중앙도서관 독서회원 문학기행

눈이 뿌린 지난 25일, 대구중앙도서관 독서회 회원들은 참으로 흥취 있는 문학기행을 떠났다. 며칠 전 많은 눈이 내려 산야가 순백색으로 뒤덮인 경북 영양 일원. 회원들은 시인 오일도, 조지훈의 생가?거쳐 소설가 이문열씨의 자택에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초등학생부터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었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대한 관심과 질문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이씨는 가장 쉬운 언어와 표현으로 이들의 질문에 답했다. 독서와 글쓰기의 기본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간추려 소개한다.

▲글을 잘 쓰려면

구양수의 삼다(三多)를 흔히 이야기한다. 중요하지만 혼자서 하기엔 쉽지 않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가운데 쓰기(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고 원칙이 섰을 때 가능한 일이다. 생각을 한다는 것(商量)은 하나의 주제와 관념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명상과 사색을 가리키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대단한 정신적 수양이다. 보통 생각을 하게 되면 5분도 안 돼 망상이나 잡념이 된다. 준비하고 단련돼야 하는 기술이다.

가장 쉽게 이를 겸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읽는 것이다. 작가의 생각을 소극적`피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독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작가와 대화하며 읽어야 한다. 작가가 제시한 문제를 작가와 함께 생각(商量)하고, 말의 짜임새나 구성을 유심히 살피며 읽으면 쓰는(作) 연습도 된다. 독서는 일방적인 지식습득과정이 아니라 활용하기에 따라 생각과 짓기 연습이 아울러 되는 것이다.

▲정독과 다독의 장·단점은

요즘 컴퓨터와 인터넷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정독과 다독의 개념도 새롭게 정리돼야 할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지식의 위치를 기억하는 데 힘을 쏟았다. 예컨대 논어를 읽기 전에 한글로 번역된 책을 먼저 읽는다. 원문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려면 일 년도 더 걸리겠지만 번역서는 3일이면 충분히 읽는다. 두세 번 읽고, 다른 종류의 책도 구해 읽으면 논어가 무엇에 관한 책이고 어디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이것도 문화 생산의 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식의 위치를 컴퓨터나 인터넷이 다 알려주므로 이런 식의 읽기는 필요성이 떨어졌다. 지식과 정보를 단순히 찾고 연결하는 게 아니라 이를 조직하고 구성하고 창조하는 것이 문화 생산인 듯하다. 따라서 책은 자기가 참으로 읽고 싶고, 깊이 이해하고 싶은 것을 힘써 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다. 다시 말해 다독의 의미보다 정독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구분은

단순히 얘기하자면 내용을 인용했을 때 자기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고, 남들이 인정하면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온 지 오래 됐는데 계속 발간된다면 이 역시 좋은 책의 범주에 포함된다.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는 책을 고를 때 참고 사항은 되겠지만 꼭 읽어야 할 책은 아닐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내 청소년기는 책과 친해지는 과정이었다. 재미와 감동, 감수성에 호소하는 책을 많이 읽었다. 헤르만 헤세나 앙드레 지드 등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 점차 철학이나 관념 쪽으로 읽기가 올라갔다. 유명한 책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너무 어렵고 딱딱한 책을 읽으려고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작품 가운데 아끼는 것은

대답하기 고약한 질문이다. 아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작가로서 욕심을 부린다면 가장 마지막에 쓴 작품이어야 할 것이다. 문학적 발전이 지속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써 놓고 만족한 작품을 들라면 초기에는 ‘황제를 위하여’, 중기에는 ‘시인’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 쓴 것으로는 ‘아가’를 권하고 싶다. 50대의 나이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다. 이런저런 시비에 휘말렸지만 한 사회학자가 논문으로 쓴 걸 보고 감동받았다. 비평가들보다 더 열심히 읽은 것 같았다.

▲인터넷 소설의 성행에 대한 평가는

처음 인터넷 소설을 접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전통적인 소설 문법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파괴돼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어떤 문화든 초창기에는 혼란스럽지만 세월이 가면서 안정된다.

서구에서 금속활자가 발명됐을 때 처음 찍은 것이 성경이었다. 모두들 가치 있고 성스러운 책이 값싼 종이에 찍혀 싸게 배포되니 큰일 났다고 떠들어댔다. 성경이 이렇게 마구 찍힐 정도니 음서나 잡서들이 판을 칠 거라는 이유였다. 실제로 초기에는 그런 경향도 있었지만 50년도 안 돼 중요한 문서들이 금속활자에 의해 배포됐다.

인터넷 소설도 점차 정화 과정을 거쳐 2, 3년 혹은 10년 내로는 문법적 소설처럼 진지한 사고와 정신들이 인정받을 것이다. 이를 얼마나 앞당기느냐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대구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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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협회장 선거 갈등 치유 계기될까 [05/01/31]
 
이달 24일 선거… 현 회장·개혁요구 후보 2파전
獨도서전 등 국제 행사·출판계 통합 2중의 과제

갈등과 반목으로 끼리끼리 등돌린 출판계가 화해의 봄날을 맞을 수 있을까.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 등 잇따른 대형 국제행사와 출판계 통합의 중차대한 과제를 짊어질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제45회 회장 선거가 이정일(55) 현 회장(일진사 대표)과 박맹호(71) 민음사 회장, 임홍조(65) 한국출판연구소 이사장(영재교육사 대표)의 대결로 치러진다. 출협은 31일 회장 후보 등록을 마감한 결과, 후보 3인이 등록했다고 밝혔다.

1947년 창립해 현재 900여 출판사를 회원사로 거느리며 국내 출판계를 대표하는 출협의 이번 회장 선거는 특별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불황 등으로 출판환경이 워낙 나빠진 데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2007년 유네스코 '서울 책의 수도' 행사, 2008년 국제출판협회(IPA) 총회 등 굵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있어 어느 때보다 출협의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에서 최근 단행본 출판을 대표하는 출판인들이 연대 서명해 '2005 한국출판인선언'을 냈기 때문이다.

'출협이 출판인의 위상을 옹호하고 지식정보시대를 선도할 정책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가'라고 문제제기하며 출협 개혁을 강도 높게 요구한 이들은 이정일 회장이 출마 결심을 굳히자 국내 대표적 단행본 출판사의 하나인 민음사 박맹호 회장을 후보로 추대했다. 선언에 참여한 한 출판사 대표는 "상황이 바뀐 게 없이 선언문만 내고 끝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갈등은 외환위기 때 책 도매상과 출판사들이 줄부도를 맞는 상황에서 출협의 대응에 문제를 느낀 단행본 출판사들이 98년 말 한국출판인회의를 창립하면서 표면화했다. 한국 출판계의 맏형이던 출협의 위상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출협의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선언문이 나오고, 이번 선거에서 그 요구가 정당한지 검증 받자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책 안 보는 사람이 늘어 출판계는 이제 다 망했다"고 만날 우는 소리면서 '자중지란'하고 있으니 그 모양 참 딱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자리 다툼" 정도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국 출판계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인 것은 분명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 출판인은 "출판계의 통합은 당위고, 출협의 변신과 개혁은 대세"라고 말했다.

2월 24일 선거로 승패를 가리더라도 출협의 앞날이 밝기만 한 건 아니다. 더 깊어진 출판인들끼리 감정의 골을 메워야 하는데다, 눈앞에 닥친 국제행사 준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누가 되더라도 길게는 한국출판산업 부흥을 이끌어낼 방도를 시급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무거운 짐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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