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직지 1~2 세트 - 전2권 - 아모르 마네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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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에서 귀가 잘리고 심하게 훼손된 채로 발견된 전형우 교수. 사회부 기자 김기연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경찰과 달리 독자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백운화상초록불직지심체요절을 줄여서 부르는 직지는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으로 알려지고 있다. 라틴어 교수였던 그가 죽기 전 서원대학교 김정진 교수와 연락이 오갔다는 걸 포착하고 그들이 교황의 편지를 해독하기 위해 전형우 교수에게 의뢰했지만 그들의 의도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아 반감을 샀을지도 모를 인물이 더 늘어나게 된다. 프랑스, 독일을 오가며 전형우 교수의 죽음 뒤엔 거대한 조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고... 살인사건임에도 형사의 등장보다 기연 기자가 끌고 가는 이야기가 직지와 구텐베르크, 조선에서 멀리 유럽까지 건너가게 되었던 역사적 배경의 상상까지 생생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누려는 자 vs 독점하려는 자

일일이 필사를 하던 시대에서,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 널리 보급하게 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작된 금속활자 제작은 2권의 김기연 기자의 소설 같은 형식의 구성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역사적 사실인지 소설인지를 오가는 글을 읽으며 점점 빠져들게 되고... 특정 권력을 가진 이들만 읽고 쓸 수 있었던 문자, 그 글자가 무엇이길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글자가 보급화되는데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을까? 두려워했을까? 그들은 평민들이 자신들의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문자를 익힘으로써 자신들의 입지와 가지고 있는 것이 줄어드는 게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도 시대를 뛰어넘어 생을 걸고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오늘의 역사가 있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국은 금속활자 발명과 디지털 기술로 인류에게 큰 선물을 줬다."

_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모음만 바꾸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한글은 세계의 언어학자들도 손꼽는 최고의 언어이다. 문자를 만들고 널리 보급하기 위해 금속활자를 만들어서 보급했지만 유럽에 전파된 정확한 경로를 알 수 없어 아쉽긴 하다. 직지와 한글, 구텐베르크로 이어지는 미스터리 추적 대작, 시간가는줄 모르고 빠져 읽게 될 것이다. 금속활자에서 한글, 반도체로 이어지는 지식의 흐름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096p. _직지1

"구텐베르크와 직지의 금속활자는 주조 방식이 다릅니다. 구텐베르크는 단단한 재질의 금속막대에 글자를 도드라지게 새긴 후 이를 연한 재질의 금속에 대고 두들겨 글자 모양을 각인했습니다. 그런 다음 쇳물을 부어 활자를 만들었는데, 직지는 이와 달리 나무로 글자를 만들어 모래 속에 넣어 공간을 형성하고 거기에 쇳물을 부어 굳힙니다. 또한 직지가 보존을 위해 만들어졌다면, 구텐베르크의 활자는 돈벌이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어느 나라의 활자가 우수한지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 놓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145p. _직지1

기연은 피셔 교수가 전 교수와 직지 문제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데다 무엇보다 프랑스 사람인 그가 익숙하게 '직지'를 발음하는 것에 내심 놀랐다. 그리고 전 교수의 괴이한 피살 사건을 둘러싼 모든 의문점이 다시금 직지라는 한 점으로 모아지는 것을 느끼며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다.

215p. _직지1

"상상력만은 아닌 근거 있는 추정이에요. 얼마 전 김 교수 님도 전 교수가 교황청의 편지를 해독하려 외국의 누군가와 접촉하다 역린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데 동의하셨잖아요. 교황청의 편지이니 그 누군가를 교황청 사람으로, 그 역린을 교황청의 어떤 비밀이라 보면 되는 거죠."

088p. _직지2

"행복이 무엇인가? 본능을 잘 채우는 게 행복 아닌가? 식욕과 물욕과 성욕과 출세욕 같은 걸 잘 채우면 그게 행복이야. 벌레나 짐승의 삶이라면 행복한 삶이 최고의 목표겠지. 하지만 인간에게는 행복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야. 인간은 때때로 행복보단 불행을 택하기도 해. 그게 더 의미가 있다면."

237p. _직지2

"사건이란 상대가 있는 게임이오. 완전히 이기는 게 물론 좋지만 지금처럼 강한 상대와는 거래를 하는 게 낫소."

263p. _직지2

직지와 한글에 담긴 인류의 위대한 지성, '나보다 약한 사람과의 동행'이라는 정신을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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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는 단련된다
이채훈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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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계 최고의 타율을 자랑하는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채훈의 <크리에이티브는 단련된다>는 그를 알지 못했지만 익히 보아왔던 광고가 그의 아이디어에서 유래되었다니 뭔가 신기했다. 광고 디렉터가 아니라도 일상 속에서 순간 스쳐가는'문장' ,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매일 똑같이 보아오던 것인데, '이렇게 하면 어떨까?', '왜 이래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들은 순간 본인도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메모해두지 않으면 흘러가는 생각에 그치고 말 것이다.

"빵 터지는 아이디어는 속 터지는 단련에서 나온다."

신문, sns, 뿜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읽고 생각한 바를 그냥 지나가게 두지 않고 메모하고 생각을 더해 본인의 아이디어로 만드는 게 일상이 된 저자의 일상은 일을 단순히 일로 보는 게 아니라 즐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더해 짬짬이 쌓아온 생각과 메모들은 업무에도 반영되어 일상 속에 단련된 창의적인 생각들은 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듯 보이기도 했다.

흔히 창의적인 일을 한다고 하면 없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질 못하는 습관, 생각을 세 줄로 요약해 써보는 연습, 전혀 다른 것을 묶어서 스토리를 만들어보기 등 특별한 꾸준함이 그를 크리에이티브 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읽는 동안 꽤 흥미진진했다. 생각의 단련이란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 일상에서 조금만 더 생각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꽤 재미있는 생각들로 일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019p.

나 역시 질문하는 힘이 부족한 터라 의식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하다가 일명 '질문 노트'라는 것을 만들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가리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막 적어두는 노트다. 의미 있는 물음도 있지만 대체로 엉뚱한 질문들이 노트를 채운다.

051p.

매일의 일상에 그리고 사회 이슈에 광고 팁이 될 만한 공감 가는 소재들이 널려 있다. 그 속에서 찾아낸 인사이트로 만든 광고를 본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런 소리가 들리면 게임 끝이다.

'어, 이거 완전 내 얘기네!'

072p.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느냐 못 잡느냐도 결국 한 끗 차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빙의 되어 메소드 연기를 펼쳐보자.

119p.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멋진 풍경과 멋진 물건, 멋진 아이디어를 놓치며 살고 있진 않은가? 놀라움은 꽁꽁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떡하니 널려 있다.

129p.

책도 좋고, 사람도 좋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 관점을 바꾸기가 어렵다면 다른 사람의 눈이라도 훔쳐보자. 그렇게 또 다른 내가 되다 보면 생각지 못한 발상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62p.

생각을 하는 것과 생각을 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어설픈 연필 자국이 뚜렷한 기억을 이긴다. 생각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을 손을 움직여 기억을 잡아채는 손맛이다. 손맛이 생각의 상차림을 바꿔놓는다. 나는 머리보다 손을 더 믿는다. 머리만 굴리지 말고 펜을 굴려보자.

260p.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들을 의심해보자. 길들여진 생각을 늘 경계하자. 익숙함으로부터의 탈출을 망설이지 말자.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발적 의지다. 익숙한 일상에 무모한 시도를 더하지 않으면 익숙함 자체가 위험한 무모함이 될 수 있다. 크리에이터에게 가장 위험한 적은 바로 익숙함에 길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288p.

크리에이티브는 멀리 있지 않다. 크루아상처럼 일상에 손 뻗으면 닿는 곳에 놓여 있다. 매일 쓰는 표현 하나에 호기심만 가져도 생각을 확장하는 훈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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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 무거운 당신에게 쉼표 하나가 필요할 때
이창현 지음 / 다연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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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괜찮니?' 묻는듯한 글을 꽤 읽었던 2019년, 여름이 끝나고 가을의 문턱에서 읽은 첫 에세이의 제목은 <발걸음이 무거운 당신에게 쉼표 하나가 필요할 때> 제목을 적다가도 가? 이? 이 단어 사이에 이 글자가 들어갔던가?를 날카롭게 체크하다가도 책표지의 시크한 고양이를 보고 제목이 아무렴 어때,라고 생각해버리기도 했다. 우리는 왜, 마음의 안부를 묻는 글을 부쩍 자주 만나게 되고 읽게 되는 걸까? 그만큼 지금의 삶을, 시대를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 한편, '아,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기 시작했던 글이다.

당신의 일상에 한 박자 쉼표를!

힘들다, 바쁘다 하지만 정작 쉬어가야 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질질 끄고 다니다 지레 지치곤 한다.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며 위로를 받고 싶고, 지금도 잘 하고 있어...라는 위안을 받고 싶은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 이런 생각은 나도 했었는데?' 하는 페이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한편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데 힘들면 힘이 든 만큼, 아프면 아픈 만큼, 쉬어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면 쉬어가기도 하는 삶을 살기 위한 응원을 해주는 글이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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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고 우리가 하는 말
한유석 지음 / 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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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진 못하지만 술자리를 정말 좋아한다. 사회 초년생일 때도 모임, 회식자리를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멀쩡한 정신으로 취한 이들을 챙기곤 했다. 매일 마시면 주량이 는다고들 이야기하길래, 문득 생각날 때면 최선을 다해 마셔보기도 했다. 하지만..... 알코올분해 성분이 전혀 없는 체질인 건지...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턴 그 조차도 시도하지 않았고 이번 생은 술을 마시진 못하지만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술에 대한 로망, 미련이 많아서인지 술에 관련한 책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술을 즐기는 이들의 글은 왠지 더 풍성하게 느껴지니까... 광고 크리에이터 한유석의 술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나온 시절의 사람과, 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했던 술, 그리고 이야기들은 때론 그들에게 하는 고백이 아니었을까? 때론 울컥하기도 하면서 그 자리에,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은근 부럽기도 했다. 한두 잔,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슬프거나 힘들 때도 찾게 되는 술. 종류도 다양하고 음식, 분위기, 자리에 따라 선택을 달리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닌 술의 다양했던 이야기는 책장을 넘기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들이 떠올랐고 취하는 듯한 기분에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었다. '술'만이 아닌 곁에 머물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였다.

021p.

사람, 책, 음악 등 무언가를 만나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되는 일이 있다. 내게는 기네스가 그랬다. 상쾌함으로 맥주를 마셨는데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암흑 같은 블랙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드러운 크림을 앞세우고 온 그날,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 나를 평생 행복하게 하는 몇 가지 중의 하나가 되겠구나. 나는 맥주의 전혀 다른 세상을 보았고, 그래서 기네스는 그날부터 맥주가 아니라 고유명사. 기네스였다.

049p.

서른을 넘게 되면 자신의 삶이 지겨워지게 된다. 취미생활, 또는 일상의 일탈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약발이 안 먹히게 되는 순간이 종종 온다.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싶어. 무거워, 무거워"를 온종일 되뇌게 되는 날이 생긴다. ... (중략)... 술과 여행은 지평선을 닮아가는 일상에 지지 않는 힘이 되었고, 지치지 않고 오래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비밀이자 비법이다.

116~117p.

인생의 단 한순간이고, 단 한 지점이다. 일상을 살며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어도 밤이 오면 떠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떠돌 수밖에 없어 어른이 된다. 떠나온 그 순간. 그곳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어 노래가 된다. 때로는 돌아갈 수 없어 쩔쩔매고, 돌아갈 수 없어 목이 멘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어 새로운 길이 된다.

우리는 떠나왔기에. 그립기에 자꾸 말을 건넨다. 지칠 때, 부끄러울 때, 상처를 받았을 때, 아니면 기쁠 때, 스스로를 칭찬할 때 누구에게 말을 건네는지 유심히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떠나온 그 순간의 내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 곁을 지키고 있다.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의 말 상대가 되고, 늘 안아준다. 다독여준다. 품이 되어준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세상의 위로와 용서가 아니라 떠나온 나의 위로와 용서이다.

139p.

자신의 깊이를 가진 술을 만나게 되면 부끄러워진다. 몇천 원하는 술마저도 자신의 세계가 있는데, 사람으로 자신의 세계를 고민하지 않는 부끄러움으로 조급해진다.

289p.

악마가 사람을 찾아다니기에 바쁠 때 대신 보내는 것이 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이 인간사에 수많은 해악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제대로 만드는 술에는 자연이 또 다른 차원의 형태로 사람의 즐거움과 위로가 되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다. 그러하기에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 나에게 오기까지의 그 시간에 대한 예의로 술병과 눈인사는 나누어야 한다. 처음 만나는 술은 어떤 맛과 향.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지 한동안 입에 머금어주어야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는 시간, 시간은 사라지고, 몸으로 그 시간을 지나듯 좋아하는 술과는 그렇게 몸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취기로 제대로 술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순간 멈추는 절제도 필요하다.

302p.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무릎걸음 같고, 기도 같아서 멋진 일이다. 사는 일도 경계를 넘는 시기가 온다. 삶의 후반기에 온 나는 멀지 않은 언젠가, 삶의 전반기를 꼭 안아줄 생각이다.

379p.

술은 인생을 거스르는 마법이다. 술로 지금의 내가 이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만나고 위로한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으로 거슬러가, 그 시절에 쓰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문밖의 나를 문안으로 들인다. 서러워 울었던 눈물 자국을 닦아주고, 서성이다 지쳐버린 발을 씻어준다. 마음의 중심이 커지면 제대로 길을 가는 것이고, 중심이 작아지면 틀린 길을 가는 것이라 일러준다. 지는 일에 축 처진 뒷모습에 "지면 또 어때"라고 토닥인다. 이전의 고단한 내가 웃어준다. 지금의 내가 웃어준다. 말간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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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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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작가의 2015~2018년까지의 단편 모음집은 '시절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문장을 읽어가다 멈추기를 몇 번, 다시 돌아가 읽어도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헤아려지지 않기도 하다가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글이었다.

이전에 읽었던 소설의 느낌이 너무 좋아서 였을까? 개인적으론 살짝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글이기도...

9월 시작, 계절의 변화와 함께 찾아온 하늘과 구름의 변화도 반가워서 책을 읽다가도 수시로 멍하니 밖을 보게 된다. '그래, 예쁜 계절이 돌아왔구나.' 내가 좋아하는 계절은 대부분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좋다!' 말하고 느끼기도 무섭게 다른 계절로 성큼, 들어서 버리곤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지 않았던가?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붙드는 일,

삶에서 우리가 마음이 상해가며 할 일은

오직 그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13p.

선배는 좋다 나쁘다 괜찮다 싫다를 넘어 그냥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할 것 같은 사람이었고, 누군가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십 대 시절의 감각과는 다른 것이었다.

33p.

관계의 끝이란 그렇게 당사자 사이의 어떤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당사자들과 제삼자 사이에도 오는 것이었다. _ #체스의모든것

54p.

마지막에 읽은 건 <유리 동물원>이라는 작품의 독백이었다. 은수가 "내가 대륙 제화회사에 반한 줄 아세요? 아침마다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와 '일어나서 기운 내자!' '일어나서 기운 내!' 하고 소리칠 때면 난 혼잣말로, '죽은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한다고요. 그래도 난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하는 거예요! 한 달에 육십오 달러를 벌기 위해 하고 싶은 것, 모든 꿈을 포기하고 말예요!'라고 읽었을 때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가 그렇게 침묵을 지키다가 각자 가방을 들고 반대 방향의 전철을 탔다. 우리는 정말 내일 출근을 해야 했으니까._ #사장은모자를쓰고온다

78p.

기는 나의 그런 감상적인 성격이 문제라고 했다. 인생이란 열기구와 같아서 감상을 얼마나 재빨리 버리느냐에 따라 안정된 기류를 탈 수 있다고 아무것도 잃으려 하지 않으면 뭘 얻겠어, 하고 충고했다. _ #오직한사람의차지

148~149p.

송은 희극배우가 확실히 나쁘다고 생각했다. 왜 나쁘냐면 지운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뭔가 옛일을 완전히 매듭짓고 끝내고 다음의 날들로 옮겨온 흔적이 없었다. 그의 날들은 그냥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서 과거의 나쁨이 오늘의 나쁨으로 이어지고 그 나쁨이 계속되고 계속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든지 어차피 나빠질 운명인 것이다. 선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실패가 선태고디는 것이다. _ #문상

220p.

누군가가 남긴 유산으로 하는 결혼이란 지독한 블랙코미디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리 나쁘지 않은 순간들을 맞으면서 지내고 있었다. 어떤 불행이 올 것인가 살피지도 않았고 아무 나쁜 일이 없으리라 낙관하지도 않았다. 다만 생이라는 것이 우리를 위한 최소한의 자비 같은 것을 남겨놓아 비정하게 말하자면 숙부가 죽고 우리가 다시 만나 결혼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여겼다. _ #모리와무라

#오직한사람의차지

#김금희

#문학동네

#한국소설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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