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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도서관
김이경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옛 고서적 같은 제본을 한 <살아있는 도서관>. 책표지의 디자인도 만족스러웠지만 이 책은 책의 펼침이 좋아 앉아서도 누워서도 편하게 들고 읽었던 책이었다. 책이 구겨지거나 더럽혀지는 게 싫어 책도 쫙 펴지 않고 살짝 들고 읽는 편이라 마음껏 책 사이를 펼쳐가며 도서관의 이야기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모래의 책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도서관과 관련한 짧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단편보단 긴 호흡의 소설을 선호했지만 책, 도서관,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 글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며 책장 넘기는 손길과 글을 읽는 눈이 바빠지기도 했던 책이었다.
깊은 혼몽에서 그를 깨운 건 눈부신 황금빛이었다. 에스파냐 정복자의 사나운 손길을 피한 단 한 권의 책, 황금으로 쓰고 황금으로 장식하고 황금으로 장정한 마야의 황금 책이 머리맡에 놓인 순간 모리스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책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애무의 대상이며,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지는 것임을. /p40
사람이 책이다. 책을 만든건 사람이지만 그 책을 파괴하고 악하게 만든것도 사람이다. 무지한 사람들보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지식인들의 책에 대한 핍박이나 수집중독은 가히 놀라울 정도여서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던 책이었다. 다양한 시대,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12편의 단편들을 읽는 동안 책을 읽는 호흡이 끊김이 없이 꼭꼭 씹어 읽으려 했던 글이기도 했다. 필사로 옮겨적고 싶은 단편도 몇 편 있어서 갈무리 해두기도 했다.
1880년 영궁의 인쇄업자이며 서지학자인 윌리엄 블레이즈는 <책의 적>이라는 유명한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물, 불, 벌레처럼 책에 해를 끼치는 비인간적 요인들과 함께, 책을 훼손하는 제책사, 서적 수집광, 하인과 아이들을 책의 적으로 고발했습니다. 그가 지적했듯이, 책을 파괴하는 적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물, 불, 먼지, 심지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좀조차 책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책은 그만큼 연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블레이지는 여러 적들을 열거한 뒤 진짜 책의 적은 인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책이 가진 힘이 자신을 무너뜨릴까 두려워한 나머지 책을 해치고 없애려 했습니다. /p170
책을 읽는다는 건 자랑할 일도,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책임은 반드시 느껴야 하는 일이죠. 이런 생각 때문인지 요즘은 전처럼 책을 많이 읽지는 않습니다. /p181
책이란 꼭 글로 남겨지는 것만이 책이냐는 페이지를 읽으면서 옛날 이야기나 입으로 전해져 오는 구전, 또는 오디오북들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단편을 읽는 동안 책, 도서관,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즐거웠다면 소설 속 책 이야기 는 앞의 단편들에 대한 부가 설명을 하는 부분이다. 종이와 책의 역사, 때론 실질적인 역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냈고, 실존 인물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영감을 얻어 쓰이기도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완벽히 무심한 상태에서 서가를 둘러보았다. 책 한 권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책이든 한 권을 골라 저쪽 햇빛이 비끼는 창가 책상에서 책을 읽는 몇 사람처럼 책을 펼치고 앉아 있고 싶었다. 그들은 실제로 책정을 넘기면서 책을 읽는지, 펼쳐놓은 책장을 햇빛에 말리면서 졸기만 하는지 누구도 모른다. 그녀는 그들처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 없이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러려면 한 권의 책이 필요했다. /p199
책들이 있었고 읽고도 싶었으나 읽을 책이 없었다. 그녀가 마음 둘 한 권의 책이 없었다. /p203
가끔 나만의 도서관을 가지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이사를 하면서 대대적인 정리를 하기도 했고 10년 가까이 소장하고 있으면서 읽지 못한 책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 말고는 대부분 책을 읽거나 책에 관련한 글을 찾아 읽었다. 때론 책장 앞에서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을 빼들었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말기도 했다. 책 읽기에 대한 슬럼프가 올 때, 시대를 넘나들며 기발하고, 어처구니 없으며, 때론 참혹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치밀하고 다채로운 구성, 다양한 문체로 읽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도서관>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살아있는 도서관> 관심 가져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책을 읽고 쓰고 만들면서 꽤 오랜 세월을 보냈다. 회의가 든 날도 많았다. 세상은 고사하고 사람의 작은 잘못도 바로잡지 못하는데 책이 무슨 쓸모가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책을 권하고 다독을 상찬하는 세상이지만 나는 책에 대한 불온한 상상을 쓰고 싶었다. 모두 좋다고 하면 괜히 어깃장을 놓고 싶은 타고난 심술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은 건 없다는 몸에 밴 비관 탓이기도 하다. 나아가 책이란 본래 불온하고 위태로운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매일 도서관에 가고 지친 눈에 찜질을 해가며 책을 읽지만, 내가 정말 읽고 싶은 것은 당신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당신의 등 뒤에서 책만 보고 있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고맙다. /p261~262 작가의 말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