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임 스티커 - 제14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9
황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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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스티커 #황보나

#도서협찬

민구는 이상하다. 진짜 이상하다.

그러니까, 민구의 말을 요약하자면 식물에다가 누군가의 이름을 써서 붙여 주고 무언가를 빌면, 그게 이루어진다는 거였다. _9p.

_

"나 말해도 돼?"

(중략)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입술을 힘주어 앙 다물었다. 빨간 테두리의 작은 네모 공백에 나를 낳아 준 엄마의 이름을 썼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의 이름도. 손이 떨려서 파들파들 흔들리는 글자가 되고 말았다. (중략)

빈 네임 스티커에 두 개의 이름을 쓴 후로, 나는 내 안의 어떤 부분을 도려내서 팔면 안 되는 곳에다가 팔아넘긴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래서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목소리도 그랬다. _61~63p.

이름을 써 화분에 붙이고 뭔가를 빌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며 고백하는 민구, 은서는 그런 민구의 말이 믿기지 않지만 민구가 이름을 붙여 넣은 아이들을 지켜보니 민구의 능력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첫 만남부터 좋은 인상을 받았던 민구의 삼촌, 그리고 자신을 좋아한다고 고백해온 민구. 하지만 은서는 민구가 아닌 다른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은서에게 관심이 없는듯하다. 엄마의 남다른 직업으로 할머니와 사는 민구, 부모님의 이혼으로 재혼가정에서 겉도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은서의 이야기는 내면의 결핍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가 나와 다른 이들과 어울려가며 성장하고 결국 스스로를 구원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다.

소설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도 남았던 소설. 민구의 능력이 사라지지 않았던 거였으면 좋겠고, 은서와의 이후 이야기, 명구 삼촌의 이야기도 조금 더 있었으면, 은서와 루비 엄마와 루비가 조금 더 성장해서의 이야기도 기대하고 싶어지는 이야기는 다양한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나는 줄곧 민구가 진짜 이상한 애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민구의 외할머니에다가 외삼촌까지 만나고 나자 민구가 생각만큼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 민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뭐 어쩌다가 좀 더 민구에 대해 알게 되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뻗쳤다. _22~23p.

"너 지금 나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나는 너에게 이상한 애가 아니라 특별한 애가 되고 싶어." _60p.

"어떤 가족 관계는 거리 두기도 필요한 것 같아. 엄마랑 나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멀지 않다고 생각해." 불쑥불쑥 어른처럼 말하는 민구는, 민구네 엄마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_149p.

마음에 힘이 있다는 것은 어딘가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섬뜩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안 좋게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도 그 마음을 일단 접어 두게 되었다. _161p.

#문학동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청소년소설 #소설추천 #추천소설 #book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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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과 모리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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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모리 (Memento mori)!'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이성적인 누나 '메멘'과 감성적인 동생 '모리'가 나누는

삶에 관한 유쾌하고도 천진난만한 세 가지 이야기

하나뿐인 소중한 접시를 깨고 미안해하는 동생 모리에게

'괜찮아! 어떤 것이든 언젠가는 깨지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는거야.' 라고 말하는 누나 메멘은 단순하게 이 대답에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깨졌다'라는 순간에 멈추지 않고 삶으로 확장해서 이야기하는 과정이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같지만, 이건 어른들이 읽어야 할 책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 메멘과 모리와 작은접시

■ 메멘과 모리와 지저분한 눈사람

■ 메멘과 모리와 시시한 영화

삶에 관한 유쾌하고도 천진난만한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메멘과 모리>, 사실 책은 10분도 안 되는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여백에 생각을 더하며 읽고 읽다 보면 왜 요시타케 신스케의 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책장 어디든 눈에 띄는 곳에 한 두 권은 꽂아두고 책장이 넘어가지 않을 때 아무 책이고 꺼내보곤 하는 작가의 책은 삶의 어느 순간에 멈춰있지 않고 삶으로 확장해 생각하고 나아가기를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동글동글하고 쨍한 그림체가 너무도 취향.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에 대한 답은 매일 달라도 돼.

남을 위해서여도, 나를 위해서여도,

우직하게 나아가도,

이랬다저랬다 해도 괜찮아.

#메멘과모리 #요시타케신스케 글,그림 #권남희 옮김 #김영사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그림책 #그림책추천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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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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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도서협찬

#마이셰발 #페르발뢰

그는 피곤해 보였다. 햇볕에 그은 피부는 어둑한 불빛 아래에서 누르스름해 보였다. 얼굴은 야윈 편이었고 이마가 넓고 턱이 각졌다. 짧고 곧은 코 아래의 입술은 얇고 길었으며 입가 양쪽에 깊게 주름이 팼다. 웃을 때면 건강하고 흰 치아가 드러났다. 고른 이마 선 위로 검은 머리카락을 똑바로 빗어 넘겼고 흰머리는 아직 나지 않았다. 연푸른색 눈동자는 맑고 차분했다. 마른 체격에 키는 딱히 큰 편이 아니었고, 어깨는 구부정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를 잘 생겼다고 평할 여자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지극히 평범한 남자로 볼 것이다. _39p.

_

걱정은 두 가지뿐이었다. 살인자가 자신보다 석 달 앞서 부정 출발을 했다는 점과 자신이 이제부터 어느 방향으로 뛰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불안한 전망과 올바른지 장담할 수 없는 추리를 갖고 있을 뿐이지만, 경찰관 다운 그의 두뇌는 벌써 향후 마흔여덟 시간 동안 어떤 순서로 정례적인 수사를 진행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중략) 진정한 수사가 시작되는 순간. 그간은 흡사 칠흑 같은 어둠에 휘감긴 채 늪을 빠져나가려 버둥대는 신세였다면, 이제는 처음으로 발밑에 단단한 땅을 디딘 기분이었다. 다음 단계도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다. _103p.

북유럽 미스터리의 원점이자 경찰 소설의 모범이라 물려온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7년에 걸쳐 10권의 시리즈로 완성된 소설이라고 한다. 최근 세련된 표지로 출간된 '마르틴 베크'시리즈의 첫 번째 <로재나>는 스웨덴의 유명한 관관 명소에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며 시작된다. 지독한 성폭행과 교살로 살해된 여성, 그러나 여성의 신원을 밝혀줄 만한 단서나 사건의 흔적이 없어 수사는 자칫 미궁으로 빠지는 듯했다. 나라를 넘나드는 수사자료 확인과 검증, 그렇게 좁혀든 수사망에 걸려든 인물이 너무 뜻밖이었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의 행동이 평범하고 전혀 범인 같지 않아 보여서 의심의 의심을 하게 되고 마지막 장을 향해 달리는 페이지를 덮을 수 없게 하고,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고 촘촘하게 좁혀가는 수사망을 함께 추리해 보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스톡홀름에서 파견된 수사 전문가 마르틴 베크, 그는 경찰관으로서의 삶과 개인의 삶 사이를 고뇌하는 인물로 현실 경찰이라면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현실적인 경찰 수사물로 그려지고 있다. 범인을 검거하는 과정이 1960년대라는 시기를 생각하면 조금 놀랍다고 느껴진달까?

최근 읽는 추리, 범죄소설들이 잔인하고 잔혹한 묘사들이 많이 불편했다면 아날로그 듯한, 형사와 함께 추리하는듯한 지적 유희를 느껴볼 수 있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랜만에 읽는 맛을 알게 해준 마르틴 베크 시리즈 <로재나> 다음에 읽게 될 시리즈가 더욱 기대되는 책이다.

딸이 태어나고 일 년이 지나자 그가 사랑에 빠졌던 밝고 발랄한 아가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결혼 생활은 지루하다고 해야 할 일상으로 안착했다. _38p.

마르틴 베크는 몸을 곧추세웠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 더 불운하고 좀 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 _88p.

#마르틴베크 #마르틴베크시리즈 #엘릭시르 #문학동네 #김명남 옮김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추천 #도서추천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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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허블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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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a>는 내 계정 이름이다.

29년 전부터 나는 열반에 들어갔다. 성장기에 미처 자라지 못한 근육으로 인해 심폐기능도 정상치의 산소 포화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동네 중학교 2학년 2반 교실 창가에서 몽롱하니 의식을 잃었을 때부터 줄곧.

길바닥을 내 발로 걷지 못한지도 이제 곧 30년째가 된다. _17p.

_

돈이 있고 건강이 없으면 매우 정결한 인생이 됩니다.

(중략) 정결한 인생을 자학하는 대신 쏟아낸, 얼핏 떠오른 희망 사항이 마음에 들어서 고정 트윗으로 쓰고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_50~51p.

중증 척추 장애인으로 하루 종일 침대와 책상을 오가며 살아가는 샤카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막대한 유산이 있음에도 성인 소설과 광고 기사들을 써서 돈을 벌어 전액 기부하는 삶을 살아간다. 동시에 트위터에 익명 계정으로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등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하는데, 어느 날 남성 간병인이 샤카의 익명 계정을 언급하며 경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고 돈과 욕망에 솔직해진 이들은 계약을 맺게 된다. 살기 위해 파괴되어가는 몸이지만, 욕망하는 나 샤카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온몸으로 부딪히며 혼란스럽고 아프지만 이상하게 매력적인 이야기다.

강렬한 책표지와 부제에 이끌려 구입해두고 2024년이 되어 읽었던 <헌치백>, hunchback 은 곱사등이, 척추장애인이라는 뜻인데 실제 이 책을 집필한 작가도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의 중증 장애인으로 인공호흡기와 전동휠체어등에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으며, 태블릿으로 집필을 했다고 한다. 삐딱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쩌면 직접 경험하고 생각해왔던 일이기에 생생하게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이야기는 쉽게 읽히지만 장애가 있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지만,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만큼 가독성 있게 읽히며 문장 또한 간결하면서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짚어가고 있다.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 중증 장애를 가진 작가는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꼭 해보고 싶다는 주인공의 고백 앞에 서성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중증 장애인'을 일상에서 마주치기란 쉽지 않은데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많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색하지 않고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께가 3,4센티미터나 되는 책을 양손으로 잡고 집중해야 하는 독서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 등뼈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일이다. 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 있어야 한다'라는 다섯 가지의 건강성을 요구하는 독서 문화의 마치스모를 증오한다.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_27~38p.

잘못 인쇄된 설계도밖에 참조할 수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그 친구들처럼 될 수 있을까. 그 친구들 정도의 수준이면 된다. 아기가 생기고, 지우고, 헤어지고, 다시 합체하고, 생기고, 낳고, 헤어지고, 다시 합체하고, 낳고·····그런 인생의 흉내만이라도 좋다. 나는 그 친구들의 등 뒤를 따라가고 싶었다. 낳는 건 못하더라도 지우는 것이나마 따라가고 싶었다. _39p.

간병인이 옆에서 책장을 넘겨주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종이책의 불편함을 그녀는 열심히 호소했다. '종이 냄새가',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왼손에서 점점 줄어드는 남은 페이지의 긴장감이'라고 문화적 향기 넘치는 표현을 줄줄 내비치기만 하면 되는 비장애인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 _46p.

살아갈수록 내 몸은 비뚤어지고 파괴되어간다. 죽음을 향해 파괴되어 가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 그런 점이 비장애인이 걸리는 위중한 불치병과는 결정적으로 다르고, 다소의 시간 차가 있을 뿐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파괴되어 가는 비장애인의 노화와도 다르다. _61p.

나와 비슷한 근 질환으로 자리보전 중인 옆방 여성은 침대 위 이동식 변기에 볼일을 보면 주방 근처에서 대기 중인 간병인에게 손뼉으로 신호를 보내 뒤처리를 부탁한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리며 말할 것이다.

"나라면 절대 못 견뎌. 나라면 죽음을 선택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다. 옆방의 그녀처럼 살아가는 것, 그것에야말로 인간의 존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_94p.

#헌치백 #이치가와사오 #허블 #소설 #추천소설 #Hunchback #book #아쿠타가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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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 고명재 산문집
고명재 지음 / 난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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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뭘까요. 시가 뭘까요. 죽음은 뭘까요. 이런 질문들은 '여름이 왜 오는지' 묻거나 '겨울 전나무가 왜 아름다운지'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기에는 답이 없고 반복만 있어요. 그러나 이 반복은 집요해서 아름다워요. 묻고 또 묻고 되묻고 묻고 다시 또 묻고 그렇게 묻다 보니 거대한 능과 총이 서겠죠. 저는 지금 다시 되묻습니다. 사랑이 뭘까요. 시가 뭘까요. 당신은 뭐예요. 내 안에 왜 이리 밝은 것들이 가득한가요. _55~56p.

겨울에 읽으려 아껴두었던 고명재 시인의 산문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를 새해가 시작하고 한 달 여간 조금씩 아껴 읽었다. 깊어가는 새벽, 일하는 중간, 자다 깨 멍하게 있던 시간... 몇 페이지씩 읽다가 다시 잠들기도 하고 일상으로 금방 돌아가기도 했던 시간들에 스며들었던 문장들. 왜 '사랑'이라고 했는지 글을 읽으며 마음이 먼저 알게 된 것만 같았던 시간들. 어쩌면 언제고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날 다시 꺼내어 읽어야지.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아직 난 잘 모르겠다. 다만 이때의 주어가 '우리'라는 것은 마음에 든다. _35p.

병간 病看

사랑한다는 말 한 번 하지 않고서 사각사각 사과 깎는 소리를 듣는다. 사락사락 눈이 또 내릴 때까지 지속하리라. 마음만 쥐고 용감하리라. 그러다 가끔 바늘에 찔린 듯 눈이 아파서 그렇게 병간은 병을 보는 일이기도 하지만 솔잎 같은 한 사람의 끝을 눈에 담는 일. _109p.

오랫동안 다도를 배운 친구가 말했다. 차를 우릴 땐 끓였던 물을 식혀서 써야 해. 사람도 시도 두 번째 읽을 때 진실이 열린다.

_110p.

이 수건은 하도 오래 썼더니 물방울이 제대로 닦이지 않네. 한 여름 아빠가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털면서 중얼거렸다. 참 신기하지 않니, 살에 섬유가 닳는다는 게. 오래 쓰면 수건도 지친다는 게. _148p.

여자는 안개를 내 손에 건네주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이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 중에서 네가 가장 많은 수의 꽃송이를 받길 바랐어. 한번은 이런 걸 나도 너에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서 이렇게 안개꽃만 한가득 담아." 눈앞이 안개 낀 듯 뿌예졌고 나는 꽃송이와 꽃송이 속에 파묻혀버렸다. _157p.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 잠든 엄마를 옆에서 꼭 끌어안을 때 그 부피, 그 형상, 엄마의 골격. 그 순간 나는 출렁이는 물의 마음이 되어 엄마를 위해 쏴쏴 나를 버릴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부피와 질량 너머에 있다. _173p.

사랑이 뭘까. 그건 존재가 위태로울 때

등대처럼 제자리에서 기다리는 것.

#너무보고플땐눈이온다 #고명재 #난다 #에세이 #에세이추천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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