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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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에 나란히 앉아있는 두 남녀... 책의 제목이 독특해서 눈길을 더 끌었던 책 인것 같다.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나는 좁은 뒷자리에 네 명이 끼어 앉아야 할 일이 많았었다.  어릴때야 작은 몸집들이라 어찌 끼어 타고 다녔지만 키가 크고, 몸도 조금씩 불어나면서 슬슬 짜증들이 나기 시작했다.  장난삼아 "넷 중에 한명은 트렁크에 타고 가는게 어때?" 하고 이야기 하곤 했지만 정작 트렁크에 타 볼 기회는 그 누구도 갖지 못했다.  트렁크는 차에 필요한 물품들이나 짐을 싣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가끔 정리가 잘 되어있는 차의 트렁크를 볼때면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다'라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이 소설의 소재이기도 한 '트렁커'는  멀쩡한 집을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을 말한다.  그럼 멀쩡한 그들은 왜 집을 두고 트렁크에서 잠을 자는 트렁커 생활을 하고 있는걸까?

 

 

나는 지금처럼 내 멋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며 단순하고 경쾌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p215  그녀...온두

 

 

"쉽게 말하면, 기우는 반대쪽에 힘을 실어줘야 해요.  안 그러면 무너지죠.  사람이나 물건이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이 있어요.  그 끌림이 사랑일 때도 있고, 증오나 분노일 때도 있죠.  무너질 것들은 서둘러 무너져라, 그것이 내 생각입니다.  다른 밸런시스트들과는 생각이 다르죠.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p234  그....름

 

 

유능한 유모차 판매원인 그녀 온두,  밸런시스트인 그 이름...그들이 트렁커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건 어린 시절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피해 숨어들어가 자신을 보호 하고자 했던 아늑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그 공간이 우연히 자동차의 트렁크가 되었을 뿐 아마 어느 공간이라도 그들에게 위안이 되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면 그곳이 그들의 '트렁크'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심한 정신적 충격과 그 이후 어린 시절 잠깐 지냈던 곳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던 온두가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던 공간이 트렁크였다.  그렇게 트렁커 생활을 하던 그녀에게 어느날 공터의 주인이라며 나타난 이웃 트렁커 '름'  그도 아버지의 잔인한 폭력을 피해 트렁커가 되었다.  어쩌면 어렸던 그, 그녀에게 '트렁크'란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장소이며 삶을 연장하기 위해 잠시 편하게 쉴 수 있는 은신처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그가 우연히 한 공간에서 만나게 되면서 게임을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조금씩 꺼내 이야기하며 숨은 기억들의 퍼즐 맞추기를 시작한다.  트렁커가 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며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한 과정들이 어쩌면 그냥 잊혀져도 좋았을 과거일지도 모르겠지만 과거의 아픔이 현실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어떤 해결책이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퍼즐을 맞추어가며 아픔, 외로움, 추억, 고통, 다정함, 자랑스러움등을 고백하면서 그들이 저도 모르게 트렁크가 아닌 온두의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을 맞았을 때 이젠 과거의 아픔을 어느정도 이겨냈다는 해피엔딩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고은규 작가의 이야기를 읽어 나가며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때로는 너무 어두운 이야기에 안타까워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그녀와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던 건 그들의 아픔이 짙고 어두웠던 만큼 극복하는 것도 기다렸기 때문이 아닐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트렁크'를 갖고 있을 것이다.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소 그리고 도피와 은폐의 장소.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상처주고, 상처받고, 상처를 극복하는 일의 연속인지 모른다.  세상에는 온두와 름과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네고 싶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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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2 세계문학의 숲 2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안인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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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재미 위주로 읽다 보니 고전이나 현대문학과는 살짝 거리를 두고 있는 편이었다.  어찌 기회가 닿아 읽게 된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은 몇 년만에 마주하는 고전인지 미루고 미루다가 손에 들게 되었다.  책 뒷 표지에 쓰여진 화려한 수식어가 오히려 약간 기대감을 갖게 했던 걸까?  1권의 1/3을 읽어 나가며 "이건 뭘까?" 하며 묵묵히 읽어 나갔던 것 같다.  가끔 화면밖에서 설명하는 듯한 지문에 조금 당황 스럽기도 했고 또 읽어지지 않아 책장을 덮었다가 읽기를 반복하며 읽었던 것 같다.  

 

2권분량 8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주인공인 프란츠 비버코프가 새로운 삶을 얻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1928년 베를린을 시간적, 공간적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는 분량이 많으면서도 글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아 맥이 끊기는 듯 한 기분이랄까?  화자의 존재가 분명하지 않고 이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넘어 다니며 책장의 앞뒤를 넘겨보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주변의 상황이나 주인공의 상황과 관계없는 설명들이 너무 늘어지고 있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끔 글을 읽다 보면 이야기의 화자가 나와서 화면을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 부분들이 있곤 했다.  처음엔 당황 스러웠지만 이것도 작가의 필체인가 싶어 읽어 내려갔는데 나중에 뒤에 프로필을 보니 저자가 영화광이어서 여러 인용들을 동원하여 전체 배경을 보여주는 '몽타주 기법'이란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짜깁기, 누비이불 기법으로 불리는 것으로 영화의 도입부나 회상 장면, 또는 낯선 장소로 들어갈 때 흔히 사용되는 기술이라고 한다.  이렇게 읽고 보니 흔하게 자주 접하고 보던 기법인데 글로 읽으려니 평면적인 소설의 글을 입체적인 영상으로 만들어서 구성하고 배치하며 읽어야한다는 게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비버코프라는 한 남자가 새로운 삶을 얻기까지의 대하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  긴 대장정의 마지막에서야 착하게 살려면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사람도 가려서 사귀어야하고 다른 사람들의 형편도 살필 줄 아는 배려와 눈길을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게 된다.   한 남자의 인생이 이렇게 힘들게만 흘러야 하는지, 결국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비버코프가 진리를 깨닫긴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아 찜찜한 기분이 남아있기에... 

 

시공사에서 [세계문학의 숲] 대장정의 첫번째 시작을 알린 책이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이라 다음에 등장할 책들이 이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는 한편 새로운 작가,문체를 접하게 된다는 설레임도 가지게 되었다.  세계문학의 숲 100권의 대장정 시작인걸까?  다음에 만날 작품들도 손꼽아 기다려볼 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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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노트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지식여행자 11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석중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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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네하라 마리 여사를 알게 된 건 2010년 와우북 페스티벌을 전후해서 였던것 같다.  비가 와서 원활한 행사 진행도 어려웠었지만 그 빗속을 뚫고 문을 연 부스를 비집고 들어가 뒤적거렸던 책이 '발명 마니아'라는 책이었다.  작가의 이름도 독특했지만 몇 장 넘겨보았던 책의 내용이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이후 그녀의 책들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었는데 독특한 이름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이력 때문이었을까?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하게 남아서 그녀의 책을 읽어보고자 시작한 책이 '교양노트' 였다.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코드 라는 소재를 읽으며 좀 고리타분한 책이 아닐까?  일단 작가의 이력이 독특하다 1950년생인 그녀는 1960~1964년에 프라하의 소비에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러시아어 동시통역사, 작가이기도 했다.  ‘요네하라 마리’가 [요미우리 신문] 일요판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이 책은 딱딱한 교양 책이 아니라 위트와 교훈을 동시에 담고 있는 유쾌한 도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녀가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던 시기는 동서양의 문화교류가 지금같지 않아 문화적인 이해나 통역사로서의 활동도 쉽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왕성한 호기심을 가진 소녀가 연상 된다. 종교, 철학, 사회, 고전, 동화등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그녀의 시선을 거쳐 새로이 탄생하는 듯 했다.  신문에 연재했던 글인 만큼 글은 짧고 읽기 한편씩 읽어내려가며 그녀의 매력에 폭~ 빠져들고 있었다.  이야기의 소재가 가볍지 않음에도 그녀의 글로 읽으니 쉽고 재미있다.  이런게 글쓰기의 능력일까?  막힘 없는 그녀의 글에서 얼마나 많은 글을 읽고 쓰기를 반복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뭐~ 이젠 글 쓰기에 대한 욕심보다는 좋은 글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더 추구하는 편이긴 하지만 가끔 마리여사처럼 글쓰기도 잘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트인 분을 볼 때면 부러움과 질투가 함께 일기도 한다.  '교양노트' 교양도서라기 보다 재미있는 일상의 글을 모아 놓은 글처럼 쉽게 꺼내서 조금씩 읽어볼 수 있는 글이 되어줄 것 같아서 손 잘 닿는 가까운 곳에 두고 한 두편씩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낮별은 밤별보다도 밝고 아름다운데,

태양의 빛에 가려져

영원히 하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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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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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인문서적 코너에서 오랜기간 1위를 하고 있던 도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왠지 딱딱할 것 같은 내용, 그리고 관심 가지고 있지 않던 분야라 피하고 있던 책 중 한권이었다.  기회가 닿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어? 생각보다 어렵지만은 않다.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이마누엘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 텔레스등 많은 고대 철학자들의 사상을 현대 사회의 문제들과 결합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정의, 도덕 정규교육 12년, 그리고 대학교육, 평생교육시설까지 합친다면 우린 꽤 오랜기간을 학교에서 도덕,윤리,정의와 관련된 공부들을 해왔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배웠던 이론들을 실생활과 매칭이 되던가?  분명 교과서 대로 라면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은 수정되어야하거나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이론은 이렇지만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야하는게 현실인 것일까?  이론과 현실의 공존이 쉽지않다는걸 살아가며 체험해가는것 같다.

 

실례로 얼마전 이마트에서 피자를 시판해서 성공한 후, 롯데마트 에서는 6개월간 준비해왔던 치킨 판매를 시작하고 치킨장사를 하는 영세상인들과 마찰을 빚어 결국 출시 일주일만에 판매를 중지하기로 했다고 한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국내산 냉장닭 900g을 소비자가 5000원에 먹을 수 있다면 소비자에겐 좋은 일이지만 롯데마트가 아닌 외부에서 장사를 하는 영업주들에겐 큰 타격일 것이다.  물론  일 300마리 한정 판매를 하고 마트에가야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질좋은 치킨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소비자에겐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회,경제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기존에 배달해 먹던 치킨들은 통상 15000~18000원 사이의 가격대였다.  그런데 이마트에선 어떻게 5,000원이라는 가격에 치킨 한마리를 판매할 수 있었던걸까?  물론 배달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치킨만 제공하기에 가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으나. 가격차이가 3배이상 나는건 좀 심각하다고 본다.   소비자들이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소식에 장시간 줄을 서고, 예약까지 하면서 기다렸던 건 단순히 홍보나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마트 통큰 치킨이 문을 닫았지만, 만약 ’통큰’치킨이 대형업체가 아닌 중소기업체라도 이런 반응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만약 대형업체가 아닌 중소기업체에서 저가 치킨브랜드가 출시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가격차이가 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마케팅, CF에서 찾아보는게 가장 빠를듯하다.  치킨 브랜드도 많아지다 보니 브랜드마다 유명한 아이돌 그룹들을 캐스팅하려하고 그러다보니 그들에게 지급해야하는 홍보비용까지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것이다.  뭐..어찌보면 그렇게 홍보를 해야 그런 치킨이 있다는것도 알게되고 찾아서 먹는것일테니 경제구조상 어쩔수 없는 구조인것 같기도 하지만 롯데마트 ’통큰’치킨의 판매로 치킨업계가 술렁이고 있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소비자들이 당연하게 지불해왔던 금액에 대해서 어느정도 납득이 갈만한 해결책을 제시해줘야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이마트 피자도 롯데마트 통큰 치킨도 먹어보지 못했기에 그 제품이 어떻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주변 지인들의 의견을 들어보았을땐 상당히 메리트있고 괜찮다는 의견들도 많았다.  통큰피자는 출시와 함께 문을 닫는것으로 끝이났지만 이마트 피자의 존폐여부까지 걸고 넘어지는건 좀 아닌듯하다.  물론 그 안에는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많은 것들이 얽혀있겠지만, 이것도 끝냈으니 저것도 끝내라 하는건 어거지 아닐까?  소비자도 원하는걸 선택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전반적으로 조용하지 않은 연말을 보내고 있는것 같다.  국회 예산안, 북의 도발, 먹거리 등등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나오는 뉴스들에 귀를 닫고 눈을 감고 피하고자 했는데 눈에 띄는 뉴스들은 어쩔수 없는것 같다.  어떤게 맞고 틀리다 하는건 결국 그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금방 읽어진 책이었지만 몇번 더 읽어봐야 저자의 강의 내용을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책을 읽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진건 느끼게 된다.   결국 도덕,정의도 우리가 더 행복해 지고자 바르게 살고자 관심가지게 되는 분야가 아닐까?  이에 하버드대가 의학과 과학으로 증명해낸 인간관계의 비밀 [행복은 전염된다]를 읽으며 행복에 대해서 조금더 심오한 탐구를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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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책 - 휴가없이 떠나는 어느 완벽한 세계일주에 관하여
박준 지음 / 엘도라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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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여행은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산책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며 '여행자'로서만이 아니라 삶을 가꾸는 '창조자'로 살아보는 일이다. 사실이건 몽상이건 이런 여행을 통해 세계와 좀더 가까워진다면, 다른 삶을 보면서 내가 되고 싶은 존재에 접근해간다면, 세상에 이만한 여행은 없다. /p9

 

 

책을 읽기 전엔 저자가 읽었던 책들을 소개하는 책일거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저자가 여행을 다녔던 장소들과 그가 읽은 책과 함께 한 여행이야기.  '여행'이라는 단어에도 설레임을 감추지 못하는 나 이기에 박준님의 신간 제목을 보고는 들썩일 수 밖에 없었다.  짙은 녹색 양장본 페이지에 그려진 안락의자는 없는 안락의자를 만들어서라도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책읽기를 시작하고 싶을 정도였다. 

 

내게 여행마저 허락하지 않았던 일상에서 책읽기는 참 편안한 일상 회피 수단이었던것 같다. 꼭 무슨 목적이 있어 떠난다기 보다 일상을 피하고 싶을때 떠나기를 반복해왔던 지라 그런 습관을 여행으로 해소 할 수 없을때 가까이 있었던 책은 안전한 탈출구가 되어주었던것 같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나 내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고 컨트롤 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여행이 어디있을까?   책을 가까이 하면서 부터 생긴 습관 중 하나는 외출, 여행할 때도 그곳에서 읽을 책부터 챙기게 되는 거였다.  가서 읽지 못하더라도 없는 것 보다는 약간의 무게를 감당하고서라도 일단 챙겨 들고 나서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낯선도시에 도착했을 때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은 '여행의 기술'이 되기도 한다. 단지 기분을 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여행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카페가 낯섦을 덜 수 있는 완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며 유리창 너머 거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잠시 후 주변의 모습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무리 낯선 곳이라도 카페에 앉아 거리와 카페 안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면, 그곳에 익숙해지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p48

 

 

여행은 아름답다.  여행은 두렵다.  여행은 설렌다.......청춘은 아름답다.  청춘은 두렵다.  청춘은 설렌다.....헤어지고 다시 만나지 못해도 괜찮다.  어차피 구하고 싶은 걸 구할 수 없는 게 청춘이다.  방황을 아름답다고 용인하는 대가다.  청춘을 소유할 순 없다.  그래서 아름답다.  마치 흘러간 여행처럼..../p146

 

 

꼭 짐을 꾸려 떠남이 여행만은 아닐 것이다.  떠날 수 있는 상황이나 여건보다 떠날 수 없는 현실이 더 많기에 '여행'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게 아닐까?  막연한 동경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하기보다 내가 직접 실행으로 옮겨보는게 백 번 듣고 읽어 보는것 보다 나을 때가 있다.  가끔 주변에서 여행을 동경만 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넌지시 조언을 하곤 한다.  "일단 한 번 떠나봐. 떠나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게 여행이야." 생각에만 머물고 떠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출간되어있는 여행안내서가 아니라도 넘쳐 나는 인터넷 정보로 여행지나 여행에 대한 정보는 얼마든지 모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남들과 같은 일정, 같은 스타일의 여행이 재미없어 지기 시작한 것이다.  꼭 짜여진 일정대로가 아니라 하루쯤 여행지에서 느긋하게 현지의 일상속을 거닐어 보는 것도 여행이라는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여행했던 도시들을 떠올리고 찾아보게 된다.  여행지 명소를 한 군데라도 더 보고, 사진을 더 찍어오는게 다는 아닌 것 같다.  하루를 머물더라도 마음으로 그곳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여행의 의미가 되어주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다음 여행지를 마음속으로 순위를 매기며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던 책.  이 책을 읽으며 여행에 대한 갈증을 조금 잠 재울 수 있을거란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던 것 같다.

 

 

김화영 교수의 글처럼 '떠난다, 문을 연다, 깨어 일어난다'는 청춘의 본령이다. 여행을 하며 보낸 하루하루의 시간은 내게도, 스무 살 청춘에게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여행을 마친 다음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면, 청춘과는 다른 인생의 단계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청춘은 이미 한참 지나버린 후다.  그러니 청춘의 시절에는 원하는 대로 여행을 즐겨라.  원하는 모든 것을 시도하라.  때로는 가이드북의 정형보다는 방종이 더 유익하다.  청춘에겐 더욱 그렇다. /p337

 

  

세상은 한권의 책으로 말한다면 난 살아가며 몇 페이지나 읽어볼 수 있을지 조금더 열심히 바쁘게 살아보고 싶어졌다.  아직 내가 모르는 넓은 세상이 궁금하지 않은가?  책 이라는 간접경험을 통해서 무한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것 또한 '여행'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던 중 책과 지난여행의 기억속으로 떠나는 몽상가의 여행을 시작한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집필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도 그가 많은 곳을 떠나 보고 느끼며 체험한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경험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무한상상과 떠남을 독려하는 듯한 그의 글을 읽으며 많은 분들이 조금 더 큰 세상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책의 집필을 마치고 조금 먼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저자.  그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쯤일까?  

 

 

461,918km를 날아 29개의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집을 떠날 필요는 없었다.

안락의자와 8,894page의 책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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