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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사도의 편지 2 - 뫼비우스 서재
미셸 브누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과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소설의 밑거름이 되는 '기독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는 읽기가 꽤 힘든 책이다. 최근 이런 유의 종교 관련 팩션(Faction) 장르라면 '[장미의 이름], [다빈치 코드]를 잇는 대작'이라는 홍보문구가 거의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혹시나'하고 봤지만 '역시나'그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작품성(장미의 이름)에서도, 흥미·오락성(다빈치 코드)에서도 앞서 언급한 두 작품에는 많이 모자라다.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작가의 이력인데, 저자 소개에 따르면 '미셸 브누아'는 20년간 사제의 길을 걷다가 작가가 된, 은둔하는 수도사이며 프랑스 소설가이자 신학 전문가라고 한다. 독자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할 소재로 가상의 이야기를 쓸 때는 그 분야를 제대로 알고 쓰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로 작용하는데, 이런 소설에서 작가의 이력이 이러하다면 신빙성 내지는 이야기의 현실성에 무게를 실어줄 만한 도구가 되기에 충분하다. 또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이거 혹시 실화를 바탕으로 쓴 거 아냐?'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면도 다수 있으므로, 그 점에서 이미 별 한개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별 점수가 별로 높지 않은 것은 다분히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는데, 그 이유를 조금 열거해보자면, 우선 이 책은 '기독교 역사에 대한 이해'를 다수 필요로 하는데, 그것이 非기독교인의 일반적인 상식보다는 조금 더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할 경우 작품에 대한 흥미도가 감소해버려 몰입하기 힘들어진다. 내 경우, 非기독교인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것이, 중학교 때까지는 성당에 꽤 열심히 다녔었고, 교리도 꽤 열심히 들었는데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혀진 내용이 많아, 책을 읽으면서 사실과 가상의 경계를 나누는데 꽤 힘들었다. 그러니 타종교인이나 무교인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냥 사실이니 가상이니 그런거 의식하지 말고 그냥 읽으면 어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이 책은 (신약)성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어떤지 아느냐, 모르느냐는 소설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죽하면 내가 이 소설 읽다가 너무 짜증이 나서(그러니까 한마디로 소설의 바탕이 되는 걸 제대로 모르는 것에 대한 짜증), 책 읽다 말고 신약성서 꺼내 읽었을까.-_-;
두번째 이유로, 이야기의 구성이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이었다. 시각적인 영상으로 보여주는 거라면 꽤 좋을 법한 구성인데, 텍스트로는 아무래도 좀 산만하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보여주는 구성인데, 그 교차 시점이 짧아, 좀 읽을만 하면 과거 이야기로 넘어가고, 또 좀 읽을만 하면 현재 이야기로 넘어오니, 스릴 있는 구성이긴 하지만 안 그래도 바탕 이해가 부족해서 애를 먹고 있는 내게는 너무나 힘든 구성이었다. 또한 각 구성에다 곁가지를 쳐나가며 계속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그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열거되니, 머릿속에서 인물 상관·관계도 그리기가 영 복잡해서 원.
세번째 이유로, 진행이 조금 쳐지는 감이 있다. 급류타기 하는 줄 알고 배를 탔는데, 사실은 그 배가 잔잔한 강에서 뱃놀이 하는 배였다. 주변 풍경을 즐기다가 가끔 빨리 노를 저어 무료함을 달래는 그런 뱃놀이. 나는 아찔함을 느끼고 싶은데, 이건 너무 느긋하다.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지만 제목이며 책 소개 및 홍보 문구를 보고 박진감 있는 추리소설을 기대했던 내게는 약간의 배신감도 든다. 안타깝다.
참 이상한 게, 평소 같으면 '아, 짜증나. 안 읽어! 나중에 읽어야지.-_-'하고 내던져 버리고 다른 책을 읽었을텐데, 이 소설은 시일이 좀(이 아니라) 많이 걸리긴 했지만 완독했다.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니, 아마도 소설 초반에 벌어진 살인사건으로 인해 시작되는 주인공의 '진실 찾기 대모험'의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신약성서까지 꺼내 읽었는데 끝까지 안 읽으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겠고, 이 책을 받은 경위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겠다. 무엇보다 이쪽 방면으로 내가 좀 무지해서 그렇지, 소설의 내용 자체는 사뭇 흥미롭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예수의 제자는 12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13번째 사도가 있었다니. 게다가 서구 사회에서 13은 불길한 숫자가 아니던가. (본문에 이 숫자와 관련한 이야기도 나온다.) 다 차치하고, 사실은 그 13번째 사도가 남긴 편지에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하는 궁금증, 이것만으로도 흥미는 꽤 유발할 수 있는 책인 것이다. 앞서 소설의 아쉬운 점을 먼저 열거해서 그렇지, 읽고나서 그 읽은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얼마전 포탈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예수의 무덤'이 1위로 올랐던 적이 있다. 예루살렘 외곽에서 예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동굴무덤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그 발견과정을 담은 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방영한다는 뉴스 때문이었는데, 이 소설에도 그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래서 잠시 던져두었던 이 책에 다시 흥미가 생겨서 나머지를 후다닥 읽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무덤의 존재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법한 것이다.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이 통째로 부정당했을 때의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다. 충격과 공포, 그리고 혼돈이다. 물론 지금껏 그래왔듯이 단순한 논란으로 끝날 공산이 큰 그 사건에 대해 좀 더 상상력을 불어 넣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소설에서는 예수의 신성 논란에서 더 나아가 베드로와 유다에 대한 새로운 해석,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관계 및 코란의 탄생 배경, 바티칸의 음모까지 방대한 내용을 차분하게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 책 제목이기도 한, 소설 속에서 최후의 만찬 시 예수의 가장 가까이에 앉은 제자, 가장 사랑 받은 제자, 예수가 죽을 당시의 장면을 목격한 유일한 제자, 끝내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정치적 희생양으로 역사속에 은폐된 것으로 묘사되는 13번째 사도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기독교에 관해 다분히 음모론적인 경향을 띄긴 하지만 소설적 재미를 즐긴다면 읽을만한 소설이다. 단, 추리소설이 아니라 종교소설로서 무게를 두고 읽어야 할 듯 싶다. 그리고 종교의 문제를 떠나서, '진실이란 심해의 바닥에 깔린 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역설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깊이 생각해 볼만하다. 아아, 어려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