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 연대기 2 (양장) - 번영과 절정 비잔티움 연대기
존 J.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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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역사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역사, 특히 여러 영웅이 각축을 벌이는 전쟁사는 읽는이로 하여금 재미와 흥미를 선물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재미와 흥미를 원한다면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을 읽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 책을 읽는 이유는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명제 아래 역사를 통해 오늘날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비잔티움 연대기>는 현재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2권의 소제목은 [번영과 절정]이다. 즉, 여기서는 수많은 뛰어난 황제가 등장하여 비잔티움 제국은 절정기를 맞이하게 된다. 예컨데 테오필루스, 바실리우스 1세, 현제 레오 6세, 니케포루스 2세 포카스, 요한네스 치미스케스, 바실리우스 2세 불가록토누스, 이사키우스 콤네누스 등은 비잔티움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위대한 황제들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비잔티움 제국의 위기는 닥쳐오는데 이는 역시 크게 3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제국 안정에 가장 큰 걸림돌은 뭐니 뭐니 해도 권력 불안이었다.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느 제국보다도 황제의 암살, 온갖 궁중 음모와 쿠테타가 가장 많았던 제국이 바로 비잔티움 제국이었다.(p.645)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황실 핏줄이 끊겼던 적이 많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황제가 능력만 되면 수많은 여자를 거느릴 수 있었던 동양과 달리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된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세번째 재혼부터는 큰 죄가 되었기 때문에 현제 레오 6세도 후사를 얻기 위해 4번이나 결혼하면서 부득이하게 교회와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뒤를 이은 황제 역시 정통성이란 면에서는 약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쿠테타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이어서 동양과 서양의 종교와 사상 차이라고 생각된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유교의 충(忠)을 강조하여 황권 강화에 이용했던 반면에 서양의 그리스도교는 황제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사상이 부족했는 듯 싶다. 물론 그리스 정교에서는 황제는 12사도와 동급으로 인정 받았지만 적극적으로 백성들의 충성을 요구하는 그 무엇이 부족한 것 같았다.

 

 이어서 종교 갈등 문제이다. 여기서 드디어 성상 파괴 문제는 일단락 되지만 이제는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가 완전히 분열되게 되어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이 단일한 통일 제국을 이루려는 꿈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이 로마의 교황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사이의 끗발 싸움은 계속되어 왔었다. 교회법에 따르면 교황이 총대주교보다 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잔티움 제국 황제의 비호를 받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끗발 역시 로마 교황과 견줄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비록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서로를 존중하던 중에 편협하고 완고했던 훔베르트 추기경이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를 파문시키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 역사는 아주 가관이다. 교황이 유부녀와 바람이 나고 교황권을 함부로 남용하며 위선자들로 가득찬 교회는 말 그대로 악의 소굴이었다. 아마 카톨릭이든 기독교든지 지우고 싶은 역사일 것이다. 특히 면세권을 가지는 큰 수도원이 난립하여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력을 약화시켰는바 이는 오늘날 세금을 면제받는 종교인들 역시 반성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이렇게 말하면 분명 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세금 뗀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펄쩍 뛸 목사님들이 분명 계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른바 '힘쎈 자'들 문제였다. 그 당시에도 광대한 토지를 가진 대지주가 많았는데 이로써 평소에는 세금을 내고 전시에는 군인이 되는 자영농이 점점 줄게 되었다. 특히 그들은 황제가 후사가 없이 죽자 꼭두각시 하기 좋은 콘스탄티누스 10세 두카스를 황제로 옹립하여 자영농을 보호했던 법률을 전부 폐기시키고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는 당시 대지주이자 명문가인 두카스 일족의 안도로니쿠스 두카스는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일부러 황제가 전사했다는 소문을 퍼뜨려 로마누스 4세가 셀주크투르크 술탄에게 포로가 되게 하였다. 사실 이 전투는 절대 질 전투가 아니었다. 역사가들 마다 견해가 나뉘지만 로마누스 4세는 최소 6만에서 최대 60만명을 이끌고 있었고 셀주크투르크는 1만 5천 명이 전부였다. 그런데 오직 로마누스 4세가 '힘쎈 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지 않을 군사 귀족 출신 이라는 것 때문에 황제를 배반하였고 그 결과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참패하여 광대한 곡창 지대이자 인구 밀집 지역인 아나톨리아와 아르메니아를 셀주크투르크에게 뺏기게 되어 결국 비잔티움 제국은 내리막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비잔티움 제국의 '힘쎈 자'는 오늘날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보수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오히려 군대에 가지 않고 원정 출산하고 재산을 해외에 빼돌리는 상황이 비잔티움 제국과 비슷하지 않는가? 이제 마지막 3권을 통해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을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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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연대기 1 (양장) - 창건과 혼란 비잔티움 연대기
존 J.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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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양장본 Set에 대한 이야기는 별도의 서평을 통해 살펴 본 바 여기서는 제 1권에 대해서만 살펴볼까 한다. 1권에서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제국 황제에 오르는 것부터 470년 뒤 샤를마뉴(알고보니 이름이 샤를이고 마뉴는 존칭으로 붙이는 말이라고 한다.) 대제가 800년에 서로마 제국 황제가 되는 것까지의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 이 책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크게 기독교 분열 문제와 황제 등극 문제 그리고 이민족 침입에 대한 방어 문제이다.
 

 일단 기독교 분열에 대해 살펴볼까 한다. 비잔티움 제국 황제는 언제나 이단 문제로 골머리를 썩여 왔다. 초창기에는 아리우스파 이단 문제가 있었으며 이어서 단성론과 양성론 사이의 문제가 있었다. 먼저 아리우스파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인 아리우스의 견해를 따르는 종파로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느님처럼 영원하고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하느님이 특정한 시기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서 창조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무리 완전한 인간이라 해도 '아들'은 '아버지'에게 언제나 복종해야 하므로 그리스도의 본성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삼위일체(Trinity)를 재확인하여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으나 이후 계속되는 이단 문제는 제국의 분열을 가져왔다. 사실 상식적으로 보면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삼위일체론은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 그래서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정죄된 이후에도 게르만족에게 널리 퍼졌으며 특히 이슬람교 형성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평가한다.(참고로 여호와의 증인도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이어서 단성론과 양성론 문제인데 단성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만을 강조하는 견해이고 양성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뿐만 아니라 인성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결국 단성론이 이단으로 선고받았으나 이는 이단 정죄를 위한 공의회 참석 인원이 양성론자 위주였고 특히 그들을 매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로서 제국의 힘이 분열되자 헤라클리우스 황제는 단의론(그리스도는 두 개의 본성을 가지지만 단일한 의지를 가진다는 내용)를 펼쳐 그들의 대립을 조정하려고 하였으나 단의론은 양자로부터 모두 공격을 받았다.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파와 단성론자를 정죄함으로써 종교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기던 찰나에 이제는 성상 파괴 문제가 다시 붉어졌다. 십계명에 의하면 우상 숭배를 하면 안되는 것 이었는바 레온 3세 황제는 성상을 파괴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대해 서로마 교황이 이를 비난하면서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분열이 초래되었고 제국은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다. 사실 십계명을 잘 살펴보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당시 만연되어 있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뜻이었지 성상도 만들지 말라고 보기는 힘들다. 어찌되었건 시도 때도 없이 종교 문제는 황제의 커다란 골치거리 였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결속을 방해하였다. 이를 보면 우리 나라는 종교 문제로 현재 큰 갈등을 겪지 않는다는 점이 축복으로 보인다. 종교 문제는 신념과 연관되어 나라를 분열케 하고 이는 곧 국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2MB는 너무 대놓고 기독교 편향 정책을 펴는 바 멀지 않은 미래에 종교 갈등이 심화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우리도 종교 문제로 피를 보아야 할까? 그리고 그렇게 되면 2MB는 역사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이어서 황제 등극 문제이다. 비잔티움 제국을 보면 언제나 황제 등극 과정이 암살, 쿠테타 등으로 얼룩져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황실 핏줄이 잘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경우 일처다부제를 통해 형제끼리 싸움이 있었을지언정 황실 핏줄이 완전히 끊겨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자가 황제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국교였던 로마 제국의 경우 일처일부제였고 그 결과 황실 핏줄이 끊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게다가 동아시아와 달리 황실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황족으로 여겨 왕위 계승권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황족 여자의 경우 언제나 황제 위를 노리는 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래서 황제가 죽으면 언제나 피냄새가 진동하게 되었다.

 

 또한 마지막 문제는 이민족 문제였다. 초창기 문화면이나 군사력면에서 근처에 대적할 상대가 없었던 로마 시절에 비해 비잔티움 제국은 근처에 제국에 위협이 될 만한 적국이 많았다. 동쪽에는 아르메니아를 호시탐탐 노리던 이슬람 세력이 있었으며 카타니아 지방에는 '신의 징벌'이라고 불리던 훈족 아틸라 등 이제 군사적으로도 비잔티움 제국은 이를 압도하지 못하였다. 비록 유스티아누스 대제 시절에 벨리사리우스라는 명장의 힘으로 이탈리아를 다시 수복하였으나 이미 비잔티움 제국은 그리스어를 사용한데 비해 이탈리아는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하는 등 이미 문화적으로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하여 결국 이탈리아 지방은 유스티아누스 사후 다시 이민족에게 빼앗기게 된다.

 

 이를 보면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로마/그리스 시절의 모든 영광을 잊어 버리고 악덕만 남은 나라라고 혹평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비잔티움 제국은 종교 문제, 황제 등극 과정에서 얼룩진 피, 끊임없는 이민족의 침입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는 바 비잔티움 제국은 이런 혼란 속에서도 그리스/로마 문화를 계승하여 이를 보전하였고 동쪽에 있는 이슬람 제국으로부터 유럽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제 2권을 통해 비잔티움 제국의 전성기와 몰락을 이어서 계속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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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 연대기 세트 (반양장) - 전3권 비잔티움 연대기
존 J. 노리치 지음, 남경태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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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고를 때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현혹되면 돈만 날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나 역시 최초에 이 책을 서점에서 보았을때 예쁜 양장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이 이 책을 향하게 되었다. 게다가 세계사에 있어서 비잔티움 제국, 우리 나라에서는 관용적으로 비잔틴 제국이라 표기하는 동로마제국 역사는 거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출판사도 잘 알려진 출판사도 아니었는데다가 책을 보면서 '빈 수레가 요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마음 속 한 편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옮긴이가 남경태라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보게 되었다.(이 서평은 각 단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세트 전체에 대한 것이다.)

 

 일단 이 책 이전에 이른바 '패러다임'을 잡고 있던 책인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먼저 번역과 편집 부분만 서로 비교해 보자. 이 책 번역에 대해서는 많은 견해가 있는데 '처음 완역한 것으로는 괜찮은 편이나 영어 직역투 번역은 아쉽다.'는 태도가 일반적인 것 같다. 이에 비해 이 책에서 번역 문제를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는바 이는 결정적으로 옮긴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번역자는 단순히 영어에만 능통한 전문번역가인데 비해 <비잔티움 연대기>의 번역자인 남경태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많은 책을 출판하고 번역을 꾸준히 해온 나름 전문가라고 할 수 있어 번역의 질에서는 좀 더 나은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편집을 살펴보면 <비잔티움 연대기>의 각 권 앞에 지도와 연표, 그리고 주요 인물과 주요 사건을 실어 놓은 점은 높게 평가하고 싶다. 가끔 너무 많은 인물과 지역명이 나올 때 마다 맨 앞의 지도와 연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비록 옮긴이의 주석은 각 장 아래에 있는데 비해 원 글쓴이의 주석은 전통적인 편집 방식에 따라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바 주석 나올 때마다 맨 뒤를 살펴보는 일은 굉장히 불편하였다. 읽는이를 좀 더 배려해서 각 장 밑에 주석을 위치시키는 것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이에 비해 <로마제국 쇠망사>는 양 옆에 주석을 배치하여 읽는 데 불편이 없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이 역시 부득이하게 <로마제국 쇠망사>와 비교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1776년에 영국에서 <로마제국 쇠망사>가 먼저 출판되어 로마 역사에 대한 기본 자료로 이른바 '패러다임'을 잡고 있다가 J.J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가 1988년에 그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바탕으로 출판된 책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에서는 반대로 <비잔티움 연대기>가 먼저 완역되어 2007년에 소개된 후 2008년에 <로마제국 쇠망사> 역시 1년 후 완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기존에 <로마제국 쇠망사>가 이미 국내에 소개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완역본이 아니라 편집본이었다.)

 

 어찌되었든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해 비잔티움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간직한 모든 미덕에 대한 배신으로 보았고 이는 로마 제국의 도덕적 타락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J.J 노리치는 비잔티움 제국은 서진하는 이슬람 문화를 막아주는 서유럽의 방파제 역할을 하였고 학문의 빛이 꺼질 때 콘스탄티노플의 학자들이 그리스 고전을 잘 보전한 덕택에 실전(失傳)되지 않고 서유럽에 전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점은 간단하게 제목에서 부터 알 수 있다.

 

 에드워드 기번의 책 제목은 로마제국 '쇠망사'이다. 즉, 로마제국이 어떻게 망해가는지 중심을 두고 서술한 책이고 비잔티움 제국은 단지 로마제국이 멸망하는 과정에 있는 국가라고 보는 것인데 비해 J.J 노리치의 책 제목은 '비잔티움 연대기'이다. 즉, 로마와 다른 그리스 문화를 바탕으로 한 전혀 다른 제국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사라고 볼 수 있는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비잔티움 연대기>를 읽어 나가면 시간의 흐름과 무관심 속에 숨겨져 있던 비잔티움 제국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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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명쾌한 철학 간단 명쾌한 시리즈
고우다 레츠 지음, 이수경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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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이 무엇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이 책을 읽은 분들 중에도 그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이 직접 도움이 되는 예는 하나도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일에 갑자기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리의 삶에 신선한 기쁨과 감동을 준다. 지금까지 알던 세계와 내 생각이 바뀌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반대로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빛을 잃는다. 이처럼 철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철학의 효용-(p.414~415) 
 
   
 흔히 철학에 대해서 드는 생각은 '너무 어렵다.' '실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철학책 읽을 시간에 영어 한 단어라도 더 외우겠다.'라는 생각들이다. 물론 철학은 어렵고 실생활과 관련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우리가 던지는 고민들, 예컨대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고민들은 이오니아 시절부터 철학자들이 고민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철학은 언젠가는 반드시 접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철학을 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서양 철학의 경우 비교적 번역이 잘 되어 있고 철학자들이 쓴 책들이 설명하듯이 되어 있어 그대로 글쓴이의 흐름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나 대륙 합리론이나 대륙 관념론은 이해하기 매우 어렵고 다양한 철학 사조가 존재하여 접근하기 어렵다. 이에 비해 동양 철학은 글 자체 보다는 주석이 중요한데 사람마다 해석이 다양하여 누구의 주석을 따라가야 좋을지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철학과의 만남에 있어서 도움이 되어줄 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효용이 나타난다. 이 책은 만물의 근원 탐구에서 '선한 삶'의 탐구로 발전한 고대 그리스 철학, 기독교의 탄생부터 근대 개막까지 이어진 중세 철학, 철학의 주제가 신에서 인간으로 바뀐 근대 철학, 실존주의, 기호학, 구조주의 등이 나타난 현대 철학, 그리고 세상의 고통을 제거하고 깨달음을 여는 인도 철학, 이슬람 철학, 중국 철학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명 당 4쪽을 넘지 않는 분량으로 간략히 그들의 철학을 소개해주고 있고 특히 철학자 한 명마다 그들의 사상을 집약한 삽화를 통해 쉽게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또한 많은 철학사 책들에서는 빠져있는 현대 철학(예컨대 생명윤리, 페미니즘, 인티그럴 사상)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점은 이 책의 뛰어난 점이라고 하겠다. 다만, 상대적으로 동양 철학에 대한 비중이 너무 작고 마치 윤리책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점은 아쉽다. 일단 이 책을 먼저 읽어 철학에 대한 개념을 잡은 후에 안광복 선생이 쓴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러셀이 쓴 <서양 철학사>, 풍우란의 <중국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의 <세계 철학사>를 읽어 나간다면 어렵다고 여겨지는 철학에 접근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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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
톰 홀랜드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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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페르시아(Persia)하면 단순히 유럽을 침공하던 중에 그리스 연합군에 의해 마라톤 전투에서 완패하고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는 나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 페르시아는 아래와 B.C 500년 경 아래와 같은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였다. 그저 단순히 역사에 패배자로 남고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대상에 그칠 나라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 자세히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서술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구입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서는 우리는 영화 [300]을 통해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아래 그림이 페르시아 전쟁에 대해 도움이 될만한 그림이다. 즉, 초강대국 페르시아는 약 20~50만의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를 공격하였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의 중장보병의 방진의 힘에 의해 경장갑을 입고 있던 페르시아 육군이 괴멸하고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해군을 추격하다 살라미스 만에서 괴멸됨으로써 그리스 정복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술적으로 보면 중장보병의 힘이 드러난 마라톤 전투는 그 의미가 크며 페르시아가 보여준 정보력에 대해서는 감탄은 자아나게 한다.


 
 이렇게 글쓴이는 실감나게 페르시아 전쟁을 책을 통해 재현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과거 B.C300~500년 무렵의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거의 헤로도토스에 의지하여야 하며 존재하는 사료 역시 서로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이성적으로 수많은 사료를 서로 비교 분석하여 그 당시의 역사를 비교적 있는 그대로 이 책에 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담되는 책 분량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혀 나가는 역사 소설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서술 방법 역시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읽는 내내 글쓴이의 서구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은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완전히 도식화된 선(그리스)과 악(페르시아)의 싸움 공식에 함몰되어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상대적 약자인 그리스가, 전제정치를 하고 있으며 초강대국인 페르시아에 그들의 놀라운 용기와 지략으로 승리하여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너무도 일방적인 서술에 그치고 있다. 사료 분석에 있어서는 굉장히 공정하고 많은 노력을 한 글쓴이가 어째서 이런 서술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사실상 국내에 페르시아에 대한 책이 없는 상황에서 페르시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글쓴이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읽기를 바라는 바이다.


 
 

 이렇게 글쓴이는 실감나게 페르시아 전쟁을 책을 통해 재현하는데 성공하였으나 과거 B.C300~500년 무렵의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거의 헤로도토스에 의지하여야 하며 존재하는 사료 역시 서로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당시의 역사를 제대로 재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글쓴이는 이성적으로 수많은 사료를 서로 비교 분석하여 그 당시의 역사를 비교적 있는 그대로 이 책에 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부담되는 책 분량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혀 나가는 역사 소설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서술 방법 역시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읽는 내내 글쓴이의 서구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은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완전히 도식화된 선(그리스)과 악(페르시아)의 싸움 공식에 함몰되어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상대적 약자인 그리스가, 전제정치를 하고 있으며 초강대국인 페르시아에 그들의 놀라운 용기와 지략으로 승리하여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너무도 일방적인 서술에 그치고 있다. 사료 분석에 있어서는 굉장히 공정하고 많은 노력을 한 글쓴이가 어째서 이런 서술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사실상 국내에 페르시아에 대한 책이 없는 상황에서 페르시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글쓴이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읽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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