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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한 것이라고 길산은 생각했다. 첫날 매를 맞고 들어와 주위의 참상을 대하고는 차라리 빨리 죽기만을 바랐었는데, 배부르게 먹고 건강을 회복하니 한 열흘 남짓 남아 있는 제 목숨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었다. 해질 무렵 서쪽 하늘에 번진 저녁놀의 남은 빛이 차차 꺼져갈 적에, 길산은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사는 일과 죽는 일에 관해 생각했다.

아침 밥때가 되어 옥전거리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은 제각기 음식을 장만하여 옥내로 들어왔다. 그러나 좌옥에 와서 보니 밥을 제대로 먹는 죄수는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일반 죄인들 중에서도 시름시름 앓다가 굶어죽는 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밥때가 되면 가족이 있거나 밥붙이를 대고 있는 자들끼리 옹기종기 창살을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사고무친이거나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자들은 뒷전에 밀려난 채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동료 죄수들이 동정하여 밥덩이를 덜어주기도 하고 남긴 것을 얻어먹기도 했으나, 워낙에 수가 많고 보니 모두들 밥때에만은 서로 마주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옥바라지할 식구도 없고 힘도 없는 자들은 뒷전의 어둠 속에 구겨박혀서 아무도 몰래 죽어갔다. 바깥에서도 굶고 있는 판이니 갇힌 자를 돌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길산이 옥에서 한 달 이상 지내는 동안 문득 설움받는 백성의 삶을 스스로 깨우치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받은 온갖 수모는 자신이 오직 천출 광대이기 때문이려니 하여 세상의 귀천과 빈부를 숙명처럼 여기던 그였다. 그러나 이제 옥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숱한 사연을 보고 듣는 가운데, 일찍이 박대근과 초대면하여 그가 포부를 말할 적에 느끼지 못했던 점이 이제 와서 환히 보이는 듯하였다. 지금까지 자기가 무턱대고 관원에게 느끼던 적개심이나 양반 호족들에게 가졌던 원한은 얼마나 우직하고 무모하였던가를 알았다.

이제부터는 더욱 지혜롭게, 더욱 강하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불행히 옥에서 참수당해 귀신이 된다면 모르되, 꼭 살아 나가게만 된다면 그는 세상을 알고 지혜를 갖추어 진실로 강한 사나이가 되리라는 결심을 하였다. 주먹과 칼날을 휘둘러 싸움에 능함을 자랑하는 것은, 마치 곰이나 범이 이빨과 발톱을 내세우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었다. 힘은 지혜로움만 못하니 맹수가 함정에 빠지는 격이요, 지혜는 또한 덕에 미치지 못하니 여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여럿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마음이 올발라야 하고, 따라서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장길산, 황석영, 제2권 결의 형제 중

 

조카들에게 줄려고 산 장길산. 정확히 얘기하면 청소년을 위한 장길산. 글자도 큼직큼직, 삽화도 잔뜩잔뜩...나도 이런 책이 좋아지니 늙었나보다. 길산이 다친 박대근을 구하고 포졸들에게 잡혀 참수를 기다리면서 옥중에서 생각하는 글이다. 숙명론적 인생을 넘어서 개척가능한 인생으로 넘어서는 한 고비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길산은 생각하게 된다. 극한 상황에서의 말그대로 "인생역전"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이 (대체로) 계급사회에서 주류를 이룬 철학이었듯이...오늘날 많은 이들이 전철에 몸을 던지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시대를 바라보면서 몸을 던지기 직전에 그들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급화된 이 사회를 욕했을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뉴스를 보면서 나약한 인간들이었다고 치부해 버리기엔...우리에겐 너무 카드빚이 많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삶과 죽음이 아니라, 어떻게 살것인가임을 모를리가 없을텐데 말이다. 길산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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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정기구독하는 잡지에서 젊은 시절부터 유서를 쓰자는 제안을 본 적이 있다. 삶은 항상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로 삼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는 제안이었는데, 개인적으로도 많은 동감을 하게 되었다. 언젠가 조용히 스러져야 할 삶이기에 어쩌면 발딛고 사는 오늘 하루하루가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아래 글은 우리가 잘 아는 가수 김창완씨가 쓴 유서인데...읽고나서 올해 최고의 글이라고 내가 칭찬해마지않았던 글이었다. 마음이 눅눅할때면 항상 찾게 되는 글이라...나의 잡기장의 첫머리에 남기고 싶다.

 

사랑하고 기뻐하라!

유년에서 노년까지 세대별로 전하고 싶은 말

김창완/ 가수

 

열살이 안 된 어린이들아!

이제 나무 이름과 새 이름, 풀·꽃 이름 그리고 엄마, 아빠의 이름을 외울 나이의 어린이들은 이 세상을 이렇게 봐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너희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병아리’, ‘개나리’, ‘빵빵’, ‘엄마’, ‘아야’, ‘피자’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알아야 한다. 만약에 네가 네살이라면 내 자전거보다도 어리고 그때 산 자전거 신발보다도 늦게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네가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너도 이름을 얻기 전부터 이 세상에 있었던 것처럼 이름을 얻기 전의 나무와 이름을 얻기 전의 하늘, 이름을 얻기 전의 어둠과 밝음을 보아야 한다. 달팽이가 부르는 노래는 제목이 없다. 되도록 그런 노래를 불러라.

이제 스무살이 안 된 청소년들.

아! 그 주체할 수 없는 성을 어떻게 할까? 그래. 너희들은 죄인이다. 너희들은 지금 욕망에 대하여 배우고 있다. 그 청춘의 불로 태우지 못할 것이 없다. 용광로 같은 심장은 무쇠라도 녹인다.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너는 더 격리될 것이다. 너에게 세상은 미세한 균열도 허용되지 않는 격납고다. 하나 그 속에서 너의 불꽃이 꺼져서는 안 된다. 오! 귀한 세상의 빛, 청춘의 불꽃이여! 그 광휘에 눈이 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들은 나르시스다. 고요한 물가나 거울을 멀리하라. 당신을 유혹하는 것은 당신 자신들이다. 스물몇, 당신들은 이제 사물에 이름을 붙일 만큼 지혜롭다. 그리고 당신들은 남들로부터 ‘님’이나 ‘씨’라는 호칭으로 불릴 것이다. 아직 서른이 안 된 당신들은 이율배반의 극치다. 모든 규율을 어기며 모든 규율 안에 산다. 당신들은 개울의 소용돌이다. 돌 틈에서 기회를 엿보다 특이점이 생기면 과감히 몸을 던진다. 유혹이 당신들의 외부에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당신들은 언제나 탈옥을 꿈꾸는 수인이다. 아! 아이러니여. 당신들의 위장술은 어쩌면 가장 교묘한 신의 화장술인지도 모른다.

서른 즈음 당신들은 세상에 아주 익숙하다.

이제 후각으로 날씨를 안다. 눈오는 냄새, 비오는 냄새, 기다림과 이별과 사랑의 냄새를 안다. 모든 인연의 중심에서 균사같이 인연이 또 피어난다. 아이가 입학할 때 당신은 느낄 것이다. 당신이 부모와 너무 닮았다는 것과 아이가 당신을 따라 살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인 또는 답답함. 세상에 익숙해지지만 못 가본 세상은 오히려 더 넓어진다. 킬리만자로는 더 멀어지고 파푸아뉴기니는 이제 자신의 지도에서 지워버린다. 수첩에는 필요없는 전화번호가 쌓여간다. 단 세개의 전화번호만 남기고 모두 지워라.

마흔 대 여섯에게 말한다.

당신들은 가장 교활하다. 대부분의 우화에서의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다. 당신들은 처음으로 허물을 벗고 싶다고 생각한다. 몇몇은 허물을 벗고 우화하기도 한다. 그들의 우화는 나비의 그것처럼 화려하고 장엄하지 않다. 그들의 우화는 고작 이혼이다. 그들이 갑자기 캐주얼을 입고 싶어하는 것은 아직 변태의 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쉰은 유치원생이다.

이들은 다시 정장을 하고 주말을 기다린다. 그들은 모든 것을 새로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새로운 것은 없다. 당신이 처음 입은 양복이 체크무늬 양복이었다면 체크무늬 양복을, 처음 입은 한복이 감잎 물들인 색이면 그 빛의 한복을 다시 입으리라. 그들은 인생을 새로 쓰고 싶어한다. 하지만 종이는 바랬고 잉크의 색은 묽다.

예순, 비로소 차 맛을 즐긴다.

일흔살의 당신은 전화 벨소리만 듣고도 누구의 전화인지 안다.

여든살의 당신은 체온이 34.5도라고 느낀다. 가끔 가랑잎을 주우며 그게 더 따뜻하다고 느낀다. 이제 당신은 보이는 것보다 만져지는 것을 더 믿는다. 그래서 손주의 살을 만지길 좋아한다. 그들은 질색을 하지만….

당신이 지금 어디에 있든 사랑하라. 그리고 기뻐하라. 삶은 고달프지만 아직 더 먹을 나이가 있다. 그때까지 기다려라. 비록 임종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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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찾은 지리산.

힘겨운 몸을 끌고 능선을 타던 중,  철계단에 낙서한 화이트 글씨를 보았습니다. "사는게 죄(罪)지요". 순간 허탈한 웃음이 나더군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제가 보기엔 강산은 그 모양 그대로인데...사람만 변했더군요.

산너머 산..산너머 산..산너머 산..지리산입니다.


 

 

 

 

 

 

 

 


 

 

눈보라 몰아치는 저 산하에.떨리는 비명소리는 누구의 원한이랴.죽음의 저산.
내 사랑아....
피끓는 정열을 묻고.못다 부른 참세상은.누구의 원한이랴.침묵의 저 산.지리산.
푸르른 저 능선 저 깊은 골에.찢겨진 세월의 자욱.무엇을 주저하랴.부활의 저산
솟구치는 대지의 거친 숨소리.눈부신 조국의 하늘.무엇을 주저하랴.투쟁의 저 산.
지리산.다가오는 저 산.지리산 지리산.반란의 고향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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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떠오르는 해는 어제의 결실이라고 합니다. 풍족하게 떠오르는 해처럼 하루를 충만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복된 길이 아닐까 합니다. 하루하루를 복되게...

새해아침 남애항 (제 친구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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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동강 레프팅...(2000년 11월)

운좋게 우리 조는 미리 어라연에 도착하는 바람에 이 장면을 잡을 수 있었다. 가을강물이라 레프팅의 맛은 떨어졌지만, 얼마나 맑고 깨끗했던지 그 투명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물고기(어) 비늘(라) 같은 연못(연)의 이름이 렌즈를 들여다보던 나를 흥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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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 2004-03-0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너무 멋져요~ @.@
저 사진에 보면 물 속이 다 보이는게 맞는거죠?
제 눈이 의심스러워서 다시 보고 다시 보고 했어요..^^
꼭 유리 위에 보트가 있는 것 같아요. 우와~~

dalpan 2004-03-0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솨합니다. 멋지게 봐 주셔서. 담에 가실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가 보세요. 여름날은 물이 많아서 사진보다는 덜 할테고, 가을날에 가면 맑고 투명한 것이 정말 좋으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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