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를 즐겨보는 사람들은 포털 네이*에 연재되는 최훈 카툰을 보고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다. 한때 박재동 화백이 한겨레신문에 1컷 짜리 만화 시사만평을 싣기 시작했을 때, 신문 받자마자 들춰보던 느낌과 비슷하달까? 그런 독자의 즐거움 만큼 작가가 빠작빠작 말라갈 것이란 걸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거의 일주일 내내 진행되는 경기를 하루하루 만평을 그려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이겠는가?

촌철살인을 자랑하는 그가 오늘 꼼수를 부렸다. 팀과 경기내용에 대한 만평이 아니라 본인 말대로 뜬금없는 얘기를 쏟았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전문자료의 부족, 전문가의 부족을 말하는 것인데 전적으로 공감하며 이것이 우리의 수준이라 생각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별반 틀리지 않다. 조직적인 기억과 문화의 전승체계. 당분간 내겐 화두가 될 듯 하다.

[프로야구 카툰] 뜬금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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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선물 - 커피향보다 더 진한 사람의 향기를 담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히말라야 커피로드 제작진 지음 / 김영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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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Fair Trade)이라는 것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 복잡한 유통경로를 줄여, 주로 제3국의 생산자들이 제품생산에 대해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며, 소비자들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공정한 방식을 통해 무역을 촉진한다. 사실 소비자는 브랜드와 제품과 가격을 보고 구매하지 제품 생산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더더욱. 

군함과 대포를 앞세운 제국주의 시대는 아니지만, 자본을 앞세운 다국적 기업들의 제3국 민중들의 노동력 착취과 노동인권 유린과 같은 불합리한 전지구적 사회문제는 방식만 달리할 뿐 시대가 변했어도 그 근본적 모순은 온전하다. 공정무역은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인간적인 노력들일 것이다. 이 책은 히말라야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산골마을 '말레' 동네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들이 만든 커피가 그들에게 희망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무역의 사례에 대한 리포트이다.

난 거의 매일 커피를 몇 잔씩 마시면서, 히말라야 산골의 네팔산 커피가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그리고 커피가 새빨간 열매에서 그린빈으로 또 블랙빈으로, 이렇게 복잡한 과정들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커피나무도 처음 봤고, 커피 열매도 처음으로 봤다. 나만 그런가? 안타깝게도 이 책의 주인공들인 히말라야 '말레' 마을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사람들은 커피가 무엇에 쓰는 열매인 줄 몰랐다니 우습고 서글퍼졌다.

그 산골주민들에게 커피란 그저 잘 키워 열매로 팔면 돈이 되는 것이었고, 그 덕에 자식들 공부할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떤 수고도 감내할 수 있는 희망의 나무요 희망의 열매였을 뿐이었다. 그 순박한 자연의 모습과 어울린 웃음과 표정을 지닌 그들은 너무 가난했고,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인도, 두바이 등지로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이주노동을 갈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커피는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마을 사람 모두의 희망이었다.

그런 그들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애지중지 기르기 시작한 좌충우돌 커피재배기인 '히말라야의 선물'은 그 고충 속에서 마을의 한 식구, 한 식구들의 사연을 풀어 놓는다. 커피재배를 위해 기계 하나 갖추지 못한 이들이 유기농법으로 길러낸 커피는 공정무역을 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커피'로부터 커피묘목을 지원받아 협동조합을 통해 오직 유기농으로만, 그리고 재배환경에 인위적인 변형 없이 오직 인간의 손으로만 재배한 일등급 커피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히말라야 커피 로드'를 보여준다. 경쟁과 효율로 각박해진 자본주의 세상에서 소비자가 생산자의 삶을 고민하고 생산자가 소비자의 삶을 이해할 때 세상은 사람냄새 나는 좀 더 맛들어진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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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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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지형은 '과잉우경화', '과잉보수화'되어 있지만, 시민들은 간헐적으로 파열구를 낸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한국의 정치지형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중략) 한국의 정치적 상부구조는 승자독식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대의제가 대중의 의사, 이익, 욕망을 온전하게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시민들이 '직접행동'에 호소하는 것입니다.-49쪽

한 사회에서 부와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 기업 아닙니까? 엄밀하게 얘기하면 자본과 노동이겠죠. (중략) 그런데 창출된 부와 가치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 얼마만큼 어떤 절차에 따라 분배할 것인가는 정치가 결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바뀌면 그에 따라 경제구조가 바뀔 수 있는 거죠. (중략) 문제는 정치를 책임지는 주체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 구체적인 세밀한 계획이 있는가입니다.-54쪽

(경제모델에 대한) 체계적 설계가 아직 없죠. 그러니까 삼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은 하는데, 나오는 대안을 보면 형법, 세법, 공정거래법 등 '법적 규제' 수준에 머무는 거죠. 경제권력의 오남용에 대한 법적 규제를 OECD 수준으로 강력하고 엄격하게 정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우리나라가 어떤 경제모델로 가야 하는지 정해야 하고, 그 속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해야 하죠. 그런데 아직은 그 대안적 경제모델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삼성 개혁에 대한 논의도 진척이 안 되는 겁니다.-60쪽

김상곤 경기교육감은 진보적 교수였지만 직업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어느 정치인 못지않게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전선'을 만들어냈습니다. (중략) 지금까지 진보개혁 진영은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말만 했지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정책을 이슈화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또한 이론적, 정책적 차원에서 복지국가를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대중적인 공감을 일으키지 못했고요. 그런데 무상급식 논쟁은 신자유주의 반대, 복지국가 건설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중이 바로 알아듣게 만들어주었습니다.-67쪽

과거에는 '제로'였는데 지금은 나름의 권력과 명성을 갖게 되니까 사고방식도 행동방식도 달라진 것이죠. 386세대 운동권 출신도 국회에 많이 들어갔지만, 선수가 쌓이고 당 고위간부가 되다 보니까 자기가 갖고 있는 지분과 세력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투사'가 '영주'로 변모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영주는 왕에게 받은 봉토가 있고, 자신에게 속한 농노가 있고, 일정한 조건 아래 중앙의 왕과 교섭할 수도 있잖아요. 왕과 맞서기보다는 그냥 영주로 사는 것이 안전하고 행복하죠. 왜 오래전부터 혁신하라는 주문은 많았는데 혁신하지 않을까요? 그들이 언제부터인가 영주처럼 사고하고, 영주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의심하자면, 왕이 되기를 포기한 거죠.-68쪽

저는 386세대의 이중성을 지적하는 데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정치에서는 진보, 생활에서는 보수(혹은 무대책)'라는 이중성 말입니다. (중략) 정치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들이 자녀 교육 문제로 가게되면 별다른 대책이 없습니다. (중략) 학원 가라, 외고 가라, 토플 공부해라, 졸업하면 삼성 가라 등의 말을 하게 되는 거죠. 이러한 이중성이 386세대의 근본 모순이었다고 봐요. 386세대가 정치 영역에서 집단적 노력을 통하여 진보를 이루었듯이, 다른 생활영역에서도 집단적으로 고민해서 진보적 대안을 만들고 그것을 정파와 관계없이 연대하여 제도적 대안으로 만들어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73쪽

사실 386세대의 모순은 진보개혁 진형 전체의 모순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진보개혁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건 지식인이건 간에 진보적 상상력을 키우는 것을 자제하면서 스스로 희망의 불씨를 꺼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중략) 언제부턴가 진보개혁 진영의 상상력은 쪼그라들었고, 실천마저 과감해지지 못한 것입니다. (중략) 정치적 민주화가 되면서 이 '투사'들이 각 영역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점점 '관리자 모드'로 바뀐 거죠. 자신도 이 체제 아래에서 자리를 잡게 되고, 국회의원이나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친구나 지인이 생기면서 몸도 마음도 둔해진 겁니다. 진보는 열정을 가지고 미답의 장, 미완의 장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바로 후퇴하거든요.-74쪽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핵심 중의 하나가 '사회임금'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임금이라고 하면, 직장에서 일하고 받는 '시장임금'만을 생각합니다. (중략) 직업을 못 구하거나 구조조정 등으로 직장을 잃게 되면, 시장임금은 없어지고 사회임금도 거의 없으니 암담한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국가가 제도를 통해서 사회임금을 높여주면 시장임금이 낮아져도 삶이 팍팍해지지 않습니다. 유럽에서는 국민의 약 70~80퍼센트가 큰 부담 없이 평생 임대 주택에 살 수 있어요.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은 희귀한 일이고, 대학등록금도 매우 낮아서 교육비 부담이 적죠. 무상의료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중병이 들었다고 해서 집안이 의료비로 거덜 나는 일은 없어요. 이들 나라의 시민은 시장임금 외에 사회임금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모든 것을 개인이 시장임금을 벌어 해결해야 하니 죽을 노릇이죠.-101쪽

사회임금이 잘 갖추어져 있으니 굳이 정규직이 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노동자가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간과해선 안 될 것이 있어요. 그런 나라에서는 사회임금이 높다는 점 외에도 비정규직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관철된다는 점이에요. 한국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양과 질의 노동을 해도 임금이 반 토막 나거든요.-113쪽

현 시점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의 예를 참조해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면 좋겠어요. 발렌베리는 6대째 약 150년 동안 세습경영을 하면서 일렉트로룩스, 에릭슨, ABB, 사브, 스카니아 등 세계적 기업을 여럿 거느리고 있고, 총 시가총액이 스웨덴 주식시장의 40퍼센트를 넘습니다. (중략) 그런데 발렌베리는 불법경영이나 불법상속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뿐 아니라 경영에 참가시킵니다. 스웨덴에서 대기업과 집권 사회민주당, 노동조합이 이렇게 '빅딜'을 한 겁니다. 세습경영 인정과 노동자의 경영 참가를 동시에 인정한 것이죠.-121쪽

정치와 정책은 바로 욕망을 가지고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을 전제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도덕주의적으로 정치와 정책을 바라보고 접근하면 실패하기 마련이죠. 현재 정치학의 시작을 마키아벨리에서 찾는 이유도 그가 최초로 윤리와 정치를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진보개혁 진영 내부에 '이익의 정치'나 '욕망의 정치'를 '가치의 정치'와 대립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위험합니다. (중략) 그리고 욕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 평등, 연대 등의 진보적 가치에 따라 욕망의 내용과 방향을 재설정해야 합니다. 법과 제도를 통하여 욕망이 자기 파괴적으로, 그리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135쪽

거듭 말씀드리지만 북한 인권 문제에는 남쪽의 수고보수 진영이 아니라 진보개혁 진영이 나서야 의미도 있고 효과도 있습니다. 사실 좌파적 사상과 실천을 '이적'으로 몰아 처벌하는 남쪽의 국가보안법이나, 김일성, 김정일 사진을 깔고 앉는 행위조차도 처벌하는 북한 형법 모두 분단이 낳은 비이성의 산물 아닙니까?-194쪽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권력혐오증에서 벗어나자는 것입니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은 사람"이라고 갈파한 바 있어요. 정치권력은 다름 아니라 악마적 힘입니다. 이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죠. 이 힘을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르죠. 그러나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능력이 정치인에게는 필요한 겁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능한 것을 넘어, 그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잘 다루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죠. 진보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권력 행사를 혐오하는 경향을 버려야 하며, 권력을 유능하게 행사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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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1-03-01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판님 굉장히 오랫만이네요. ^^

dalpan 2011-03-02 15:1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그동안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걸까요?? 거참..^^
 
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구판절판


1)폭넓은 독서 2)열린 자세의 토론 3)직접 견문 4)성찰

내게 '폭넓은 독서'란 이런 의미다.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들 중 책을 남긴 사람의 생각을 내가 '주체'적으로 참조하는 것". 책은 항상 닫힌 채 서가에 꽂혀 있다. 그 책들을 내가 펼쳐 읽는 것이다. 내게 '열린 자세의 토론'이란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을 열린 자세로 참조하려고 '주체'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또 '직접 견문'이란 "오감을 가진 주체로서 다양한 경험과 여행 등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직접 보고 겪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성찰'이란 "폭넓은 독서와, 열린 토론, 그리고 직접 견문을 통해 만나는 뭇 생각들이 소우주와 같은 나의 의식세계 안에서 서로 다투고 비벼지고 종합되고 정리되는 과정"을 뜻한다.-23쪽

자주 사용하는 익숙한 단어에서 번득이는 지혜를 발견할 때가 있다. '학습(學習)'이라는 단어가 그 중 하나다. '배우고 익힘'이라는 뜻을 모르는 이야 없겠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습(習), 즉 '익힘'이다. '배움' 없이 인권의식이나 연대의식을 형성하기 어렵지만 배움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 해도 몸에 익히지 않으면 공염불에 머물기 쉽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하려면 익히고 또 익혀야 하는 것이다.
가령 한국의 일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노동자의식은 '의식적인 노동자의식'일 경우가 많다. '단결', '투쟁'이 적힌 조끼를 입고 <임을 위한 행진곡>, <철의 노동자>를 함께 부를 때나 노동자의식을 확인한다. 이와 같은 소수의 노동자들조차 일상을 지배하는 의식은 소시민의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익힘, 즉 '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일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가 그래서다. (중략)
하지만, '지적 인종주의'를 내면화하여 경쟁과 차별을 부추기는 교육환경에서 우리 학생들은 좋은 가치에 관해서는 어쩌다 '배울(學)' 뿐이고 일상 속에서는 그 반대를 '익힌다(習).' 우리 학생들은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의식, 연대의식을 어쩌다 '배우지만' 일상에서는 남을 누르고 혼자 이기는 것을 '익힌다.' (중략) 이렇게 우리 학생들은 일상에서 억압과 차별, 인권 침해를 겪으며 몸에 익히기 때문에 나중에 남을 억압, 차별하고 인권을 침해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한다.-28쪽

이처럼 인문사회과학은 생각과 논리를 요구하는, 정답이 없는 학문인데도 서열화된 대학은 초중고 교육을 대학입시 교육에 종속시킴과 동시에 학생들을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도록 요구했다. 인문사회과학을 생각과 논리가 없고 정답이 있는 '반(反)학문'으로 왜곡시킨 배경이다. 학생들에게 생각과 논리를 물어서는 일등부터 꼴등까지 정확하게 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 사물과 현상에 관해 묻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과 논리를 갖도록 요구하는 대신 객관적 사실에 관해 암기하도록 요구할 뿐이다. 생각과 논리의 학문을 암기과목으로 바꾼 것이다. 우리 학생들은 가령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자신의 생각과 그 생각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펼치도록 요구받지 않는다. 대신에 이런 따위의 질문만 받는다.
다음 나라들 중에서 실질적으로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는?
1) 미국 2) 중국 3) 일본 4) 러시아 5) 한국-34쪽

학벌체제가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입시지옥은 경쟁에서 낙오하거나 패배한 구성원들에게 사회적 차별을 받아들이도록 작용한다. 학벌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은 그 보상으로 특권의식을 갖는 한편, 패배한 자들은 신분귀족화한 사회 상층에 대한 견제의식을 갖지 못한다. 과거 신분제에선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한국의 사회상층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이긴 자와 패배한 자 모두 학벌 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누리는 지위, 명예, 권력과 부를 당연한 보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교육비 지출은 투자로 인식된다. 경쟁 승리자들이 누리는 특권을 투자에 대한 당연한 보상으로 여긴다. 엘리트들에게서 사회환원 의식이나 사회적 책임의식을 찾기 어려운 대신 특권의식과 집단이기주의로 무장한 패거리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48쪽

오늘의 대학에서는 80~90년대와 달리, 소수에게나마 탈의식의 계기를 주었던 선배와 동아리를 만나기 어렵다.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사회비판적 안목을 갖춘 진보적 의식의 형성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중략) 진보적 의식이 '성숙'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게 아니라 기존에 형성되었던 의식의 '반전'을 통해 형성되면서 갖게 된 한계다. 지배세력이 주입한 의식 중 일부만 벗어냈을 뿐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해 진보적 의식과 감수성을 형성하지 못했음에도 이미 '태양의 진리'를 획득한 양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이따금 노동운동가들 중에서 성 소수자 문제나 양성 평등 문제에 관해 수구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보의식의 성숙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의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부정의 과정을 단 한 번 거친 것으로 만족하는 '진보하지 않는 진보의식'이라는 형용모순에 빠진 것이다. (중략) 남한의 지배세력에 의한 반북의식화가 지극히 낮은 수준에서 관철되듯이 반전을 통한 북한에 대한 시각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반북의식에서 종북의식으로 급반전시키는 경우를 보게 된다.-80쪽

또 지배세력에 의한 의식화와 그 반전의 관계는 대중과 진보의식 사이의 소통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운 진보의식은 자칫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 '혁명'이나 '해방'을 쉽게 말하기도 한다. 올챙이 시절을 쉽게 잊는 개구리처럼 선배나 책을 '잘못' 만나는 특별한 계기를 갖기 전까지의 자기 모습을 잊은 탓일까. (중략) 세상은 모슨 덩어리라 그 모순을 한꺼번에 극복할 수 있는 '태양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해주는 권력은 애당초 불가능하며, 만약 가능하다면 그 권력은 무척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중과 유리된 진보의식은 사회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하겠다는 조급증으로 권력집착증을 낳기도 한다. 대중의 구체적 삶에 밀착하여 어렵고 느리더라도 대중과 소통하면서 스스로 진보하는 진보의식이 요구된다.-82쪽

이 사회의 욕망의 색인 회색은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다. 그렇지만 때에 따라 희기도 하고 검기도 하다. (중략) 자율성은 자신의 삶에 청백의 도도함을 뿌리내리기 위한 자기 통제다. 자율성이 없고 자기성찰을 하지 않는 회색인들은 올곧음을 배격하며 정직성 앞에서 비겁하다. 주위에 올곧음과 정직성의 청백이 있을 때 자신의 회식이 검정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직장에서나 군대에서나 학교사회에서나 청백한 사람을 따돌린다. 그리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나", "좋은 게 좋은 거야"라고 말한다. '회색인들의 회색의 사회"에서 흰색이 조직과 사회를 위해 죽어야 하는 이유다. 흰색은, 검정은 물론 회색까지도 검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회의 각 부문에서 회색은 힘을 합쳐 공동의 적인 흰색을 축출한다.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악화는 부문을 뛰어넘어 강력하게 유착한다.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라는 말로 포장된, 흰색에 대한 이 사회의 부정적인 반응은 내부고발자나 촌지 거부 교사들에 대한 따돌림처럼 고발에 대한 정서적 반감의 표현이라기보다 자신이 검정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회색의 사회에 내재한 방어본능의 반영이다.-112쪽

마름의 속성은 '자발적 복종'에 있다. 16세기에 열여덟 젊은 나이에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쓴 에티엔느 드 라 보에티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우리를 은밀히 노예로 만드는 유혹이다. 이에 비하면, 폭력으로 통치하는 방법은 그다지 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에 관하여 "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으니 그것은 곧 자유이다. 우리가 만약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곳곳에 악이 창궐하며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도 어떠한 맛과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자발적 복종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며 자유만이 유일하게 선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오늘 한국사회의 각 부문에서 출세한 인물들은 자유인이 아니라 지배 권력과 맘몬의 신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충실한 마름들이다. 그래야 출세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세 자유인들은 대개 볼온하지만 한국사회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해 불온하지 않고는 자유인이 될 수 없다. 지배권력과 맘몬의 신을 모시는 신료들은 자신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자유인을 억압하며 가학성을 드러내기도 한다.-124쪽

조세를 늘려야 한다는 요구에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가진 자들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세금을 낼 게 별로 없는 저소득층이 증세를 주장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가진 자든 그렇지 않은 자든 모두 조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왜 그럴까?
먼저 정부의 예산 낭비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인식을 들 수 있다. (중략) 둘째는 조세 형평성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점이다. (중략)
그런데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점들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세금을 낸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는 점이다. 나에게 돌아오는 게 없으니 단 한푼이들 더 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중략) 내가 얼마를 내든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어차피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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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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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참에 담양 당숙모 돌아가셨을 적에 당숙이 눈물바람을 헙디다. 당숙모가 당숙한테 돌아가시기 전에 다짐을 받었다 합디다. 절대로 비싼 수의 마련하지 말라고. 혼인할 때 입었던 한복 잘 다려서 챙겨놓았응게 그거 입혀 보내달라고 했답디다. 딸애 시집도 못 보내고 먼저 가는 것도 미안헌데 자기 위해 돈 쓰지 말라고. 당숙이 나한티 기대 그 말을 하면서 어찌나 울어쌓는지 내 옷이 흠뻑 젖었어라오. 여태 고생만 시켰다고. 인자 좀 살 만헌디 죽어번졌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죽었는디도 좋은 옷 한벌 못해주게 다짐받고 갔다고. 나는 안 그럴라요. 나는 좋은 옷 입고 갈라요. 한번 볼라요?-162쪽

당신은 나보다 먼저 가시요이. 그러는 것이 좋겄어. 이 시상에 온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따로 없다고 합디다마는 우리는 온 순서대로 갑시다이. 나보다 세살 많으니 삼년 먼저 가시요이. 억울하면 사흘 먼저 가시든가. 나는 기냥 어찌어찌 이 집서 살다가 영 혼자는 못살겠시믄 큰 애 집에 들어가 마늘이라도 까주고 방이라도 닦아줌서 살겄지마는 당신은 어쩔 것이오? 평생을 넘의 손에 살아서 당신이 헐 줄 아는 게 뭐 있소이? 안 봐도 뻔하요이. 말수도 없는 늙은이가 방 차지하고 냄새 풍기고 있으믄 누가 좋아하겄나. 우리는 인자 자식들한테 아무 쓸모 없는 짐덩이요이. 늙은이가 있는 집은 현관문 바깥서부터 알아본답디다. 냄새가 난다 안허요. 그리두 여자는 어찌어찌 지 몸 챙기며 살더마는 남자는 혼자 남으믄 영 추레해져서는 안되겠습디다. 더 살고 싶어도 나보다 오래 살지는 마요. 내가 잘 묻어주고 그러고 뒤따라갈 테니까는...거기까지는 내가 할 것이니께는.-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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