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 Still Walk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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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그러니까 사람 사는 건 어디서나 다 똑같은 거다.

획기적이지도 격정적이지도 않고,

그저 사소한 미련과 설움이 만든 소심한 복수와 표리부동

 

겉으로는 가장 가깝다는 사람들인 가족들끼리

솔직하게 마음 터놓고 다가가기가 얼마나 힘든 지,

있는 그대로 서로를 기억하고 이해한다는 건 또 얼마나 신화에 가까운 일인지,

굳이 들춰봐도 뭐 마음 훈훈하거나 따뜻하지도 않고

사실 살면서 그게 그렇게 궁금하거나 큰 문제인 것도 아니고

다만 어쩌다 알게 되면 마음 한 켠이 잠깐 아릿한 것.

 

축구장 가자고, 또 오겠다고 약속해도 그냥 무심히 넘어가고

자주 오길 바라는 모친의 노골적인 표현에도

외려 어미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간소하게 다녀올 뿐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고 또는 사람이 떠나고 나면

무시했거나 대수롭잖게 여겼던 어떤 행동, 어떤 말이

자신도 모르게 고스란히 체화돼 있는 것.

그게 바로 가족의 힘, 아니 무게일 거다.

 

무엇보다 엄마와 딸.

잠깐 다녀갈 가족을 위해 상을 차리고 또 차리고

쉬지 않고 음식을 하는 어미와

어미와 소통해야 할 내밀한 속마음은 접어둔 채 명랑하고 가벼운 딸의 언어들.

멋쩍음을 무관심으로 가장한 아비 앞에서

늘 자식을 현실보다 몇 배는 더 훌륭한 사람을 만들어버리는 어미 앞에서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 애써 훌륭하고 잘 사는 이로 포장하는 아들의 행동.

그 모두가 바로 나, 내 가족의 앞뒷면.

완두콩을 까고 옥수수를 튀기고 이런저런 음식을 만드는 어미의 손길을 그리 클로즈업한 건

세상 모든 어미는 곧 '밥'이라는 걸...

영화를 보던 날 엄마가 싸고 아빠가 부쳤다는 택배상자처럼.
 

걸어도 걸어도

그저 같은 풍경뿐일테지만 그게 바로 든든함일테지.

<아무도 모른다>만큼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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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읽었어요. 동감입니다.

 
프리다 칼로 - 휴먼 다큐멘터리 3
헤이든 헤레라 지음, 김정아 옮김 / 민음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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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리다 칼로,

그녀는 정말 대단하다.

그림만 보아도 익히 짐작할 수 있지만,

솔직히 책을 읽기전 언론과 인터넷에 도는 그녀의 자료들을 읽고 보고 생각한 것은 '꽤나 위악적이로군!'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위악적인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솔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녀의 삶에서 위악적인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적어도 자신의 그림에 만큼은 솔직했던 것 같다.

나를 그릴 수 밖에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끔찍한 사고,

책을 읽는이조차 악몽을 꿀 만큼 끔찍한 사고가 아니었어도 그녀가 존재할까?

똑똑한 멕시코 여성쯤으로 존재했을 수는 있겠다.

 

그러고 보면 신은 참으로 가혹하다.

프리다 역시 가혹하다.

일생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는 죽음을 부정하지도, 절대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느껴지는 그대로..

 

그녀가 너무나 이해된다.

개구리 왕자 디에고에 대한 거둘 수 없는 사랑과 집착,

(그런 사람이 있다. 외모도 못났고 성격도 그다지.. 객관적인 조건으로는 절대 근사하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끌리고 마음 한구석에 늘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이를 알아보는 여자들은

조금씩 슬프고 불쌍하다 -_-)

디에고의 아기를 갖고 싶으나 가질 수 없는 절망감,

누구보다 탁월한 미적감각과 재치를 갖고 있음에도 자신의 몸은 형편없이 일그러진 것을, 더욱 더 망가져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현실,

아마도 그녀의 냉소와 위악은 이런 현실을 벗어나려는 나름의 방법이었을게다.

우리들의 자학처럼...

 

프리다도 이해되고 디에고도 이해되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이해되지만,

그리고 동시대 인물이라면 분명히 동경하겠지만 너무 힘들고 아파 친구가 되고 싶지는 않은 사람.

그녀는 강하다.

누구보다 강한 여성이다.

 

내 욕망의 이율배반 프리다 칼로 

2004년 2월 신수동 비버리힐즈에서 읽고 2005년 9월 테이트모던에서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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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 찰지고 맛있는 사람들 이야기 1
박형진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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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농사꾼 박형진,

그의 욕망의 상향선은

빚 안지고 농사 지으며

지나가는 길손에게 막걸리나 대접하며

이 나라 산천을 자기 발로 밟아 여행하는 것이란다.

 

초등학교 겨우 졸업, 중학 1년을 다니다 만

촌무지랭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와 이력만을 보았을 때는 그저

농민운동하면서 시쓰는 이인가보다 싶었는데,

그의 산문을 읽다가 두어번 인용된 싯귀를 보니

그는 삶이 시인 사람인 것 같다.

 

농사만 지어도 힘든데,

바닷일만 해도 힘들텐데

그 두가지를 병행해야하는 모항에서

(허긴 우리나라 어느 어촌이 안 그러랴.

자원 빈약한 나라에서 태어난 설움이겠지.)

그가 만난 사람들 하나하나 성격에 옹이지지

않은 곳 없는듯 한데, 날이 서지는 않았다.

따뜻하다. 진짜진짜 따뜻하다.

맺힌 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여유있게 살고 있구나.

 

읽을수록 내 자신이 초라해졌다.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을 한다고,

여기저기 큰소리치며 아둥바둥 살아왔는가.

지금 또 무에 그리 대단하게 산다고 피곤하고 우울하고 날카로워지는가.

나는 정말 글을 쓰고 싶어하기는 하는가?

나는 정말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의 글은 참 솔직하다.

자기 아들이 똥싸는 사진도 책에 박아넣고

술만 마시면 오줌을 싸는 흰머리가 희끗할 형 얘기부터

농사의 7할은 막걸리집에서 짓는다는 자신의 얘기까지

참으로 솔직하다. 꾸밈이 없다.

그가 거짓이 없다고 말하는 땅처럼 그의 글도 솔직하다.

그런데 그간 내가 써온 몇 안되는 소설(그나마 학교다닐 때 쓴)은 모두 꾸며쓰고 거짓말한 것이었다.

 

정말로 내가 글을 쓰고 싶다면

생활과 일과 공부에 대한 눈높이를 대폭 낮추고

생활비와 부모님께 선물할 정도의 돈만 벌면서

잠뱅이나 입고 살겠다는 박형진처럼 청빈하게

그렇지만 읽고 쓰는 것에는 정말로 정직하게, 치열하게 살아야겠지.

아~

욕심많고 변덕스런 나로써는 정말 어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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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난타한 남자 문화CEO_송승환
송승환 지음 / 북키앙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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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마케팅의 시대를 준비하라'

 

부제 참 멋지다.

난타를 지금 위치까지 이끌어낸 그도 멋지다.

그런데 책은... 안 멋지다.

쉽게 읽히기는 하나...

그가 문화마케팅에 대한 선구자적 사고를 가졌다는 것과

갖은 고생을 해도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 외에

그다지...

 
2005. 5.
 

책 속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주어진 일을 마지못해 해나가며 틈만 나면 '뭐 좀 재미있는 거 없나' 하며 기웃거리는 사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무난히 해내는 사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신나게 살아가는 사람.

(사실 내가 가장 바라는 나는 두번째 유형, 무난히 자기자리 지키며 안분지족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어리석은 사람이 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라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앞뒤 재보지도 않고 무작정 일을 벌이기만 할 뿐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양 극단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굳이 둘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라면 나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몸은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여기에 두면서도 정작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은 현실의 안락을 포기할 수 없어 항상 불만만 품은 채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자신의 꿈을 무력하게 바라볼 뿐이다. 꿈을 포기한 삶은 슬프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달려가 한번 부딪혀 봐야 미련이라도 남지 않을 것 아닌가. 거대한 벽에 부딪혀 울지라도 온몸으로 그 충격을 느껴봐야 진정 살아있는 삶이다.

(할수만 있다면 그냥 무난하게 살고 싶다.. 문제는 내가 충동적이라는 것 -_-)

뭔가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하는 마음만 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몸과 마음이 다 피곤하다. 하지만 조금 힘든 여건에서라도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이면 비록 몸은 고달플지라도 마음은 편해진다. 몸과 마음이 다 고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느 한 쪽이라도 편한게 낫지 않겠는가.

(사실 요즘 몸 되게 편하다. 근데 마음 종종 안절부절 못한다. 다달이 날아오는 공과금과 카드값 때문에 우울하고, 부질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심란하다. 그래서 두통이 심하다.)

나는 지금까지 마주친 인생의 갈림길들에서 길의 먹고 험함보다는 여행의 즐거움을 생각했다. 첫발을 떼어놓기가 겁나고 두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일단 들어서고 나면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가 참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적과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보편 타당한 그 무엇, 그것이 이 명제의 진정한 의미를 뒷받침해야 한다. 보편 타당한 엔터테인먼트의 요소가 뒷받침된 상태에서 한국적인 특수성이 가미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세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

 

확실한 '주특기'를 하나쯤 가진 사람이라면 당장의 실패에 좌절할 필요가 없다. 당장 월급 한 푼 더 받는 것보다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든든한 밑천이 된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진짜 두려운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갉아먹려 급기야는 실패할 기회조차 상실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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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委華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사고 본다. (장편만^^)


 

중국3세대 작가 어쩌구 하는 것은 다 접고
(우리나라 작가들 연보나 한국문학사도 제대로 모르는구만 --)
원래는 치과의사였는데 병원 근처에 있던 문화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부러워 글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가가 되었다는 프로필에 무척이나 기가 죽었었다.
프로필이 작가에 대한 관심에 영향을 준 것은 성석제 이후 처음.
성석제는 그 후 재밌었던 프로필만큼 소설은 재미나지 않아
관심이 식었는데 위화의 소설은 여전히 재미난 것을 보니 진짜 작가지 싶다.

 

대부분의 리뷰에서 그를 그로테스크하다고 한다.
그럴만도 한 것이 그의 소설(일단 장편만)치고  피범벅 아닌 것이 없다.
피범벅 흙범벅 지리리도 못나고 궁상맞은 주인공들.
보거나 들은 것은 언제나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지기 마련이라 잔인한 것을 못보는 편인데,
그런대도 '피의 거북스럼'으로 점철된 그의 소설은 좋기만 하다.

 
<허삼관 매혈기>
 이 표지가 아닌데... 다시 나왔나부다... 

흐린 오후였는데,
깔깔대다 훌쩍이다 인상도 잠시 쓰면서
허삼관 매혈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대학입학후 책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탓에
숙제할 때 빼고는 책을 단숨에 읽은 적이 없었는데 허삼관은 오후 내내 소파에 앉았다 엎드렸다하면서 한자리에서 다 읽었다.
새삼 아빠에게 고마웠고,
중국 현대사에 놀랐고,
책 속에 낭자한 피에 한동안 주변이 끈적거렸다.
 

1년쯤 지나서 아빠에게 이 책을 빌려줬는데,
허삼관을 만난 후에야 아빠는 자신의 독서취향을 찾았다며 기뻐하셨다.
(딸래미가 문창과에 입학한 이후 베스트셀러를 한권씩 사던 아빠는 전경린이나 은희경이니 하던 당시 베스트셀러에 물려 당신 딸도 그런 이야기꾼이 되고싶어 하는겐가 한동안 의아해하셨다. 그래도 아빠는 꾸준히 책을 사셨고 내가 읽는 책을 빌려다 보셨다. 책읽는 지점장이라고나 할까 ㅋㅋ)
아마도 아빠는 삼관의 父情에 깊이 공감했던 듯 하다.
매일 오후 통화할때마다
'삼관이가 오늘도 또 피를 팔았어. 그래도 그 자식 안쓰러지대. 그게 바로 농사꾼 뚝심이고 아버지의 힘이야'
'일락이가 삼관이 아들이 아니래매? 삼관이 그 자식 고민될꺼야? 그래서 일락이랑 삼관이는 어떻게 되니? 아냐아냐.. 말하지마! 그럼 내가 책 읽는게 재미가 없잖아.'
사무실에서 틈틈히 몇주간 허삼관을 읽는동안 아빠는 힘이 나고 신이 난 듯 했다.
<홍어>(김주영)를 읽지 않는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아빠는 '당신이 삼관이를 알아?' 한마디로 물리쳤다^^


<살아간다는 것>
내가 갖고 있는 '살아간다는 것' 표지와는 다른 것 같은데,
이 책 역시 아빠가 갖고 있어서 확인불가!
생리통이 심해 선배의 생일파티에 가지 못했던 날 밤 읽다잠들 요량으로 들었다가 역시나 단숨에 다 읽었다.
삼관이 피를 팔아 연명했다면 복귀의 아들은 선생에게 피를 주다(수혈) 피가 모자라 죽게 된다. 역시나 흥건한 피..
장예모 감독의 '인생'의 원작이라는데,
두 사람 모두 거장이라서 그런지 소설과 영화가 사뭇 맛이 다르다.
원작만한 영화가 참 드문데 <인생>은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풍미를 풍긴다.
문화혁명 이후 중국인민의 삶을 직접 눈으로 보는 재미도 있고
(중국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탓에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
좋긴 한데, 미스캐스팅이다.
구질구질하고 못난, 그래서 정이가는 위화 소설의 여주인공으로 공리를 캐스팅하다니...
그래도 머 어쩔수 없지... 장예모-공리  >>   한때는 공식이었는걸!

 
<가랑비 속의 외침>
'가랑비 속의 외침'이 첫번째 장편이라는데
가장 최근에 번역된 탓에 가장 최근에 읽었다.
(우리나라에는 허삼관부터 소개된 듯..)
확실히 허삼관보다는 피가 덜 나오나
역시나 검붉은 피에서 자유로울수는 없다.
인간의 역사는 곧 피의 역사인가?

후레자식 손광재의 아들인 나는 5살때 팔려갔다가 아마도 열살때쯤? 양아버지 왕립강이 죽으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존재 자체가 어둠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 불이 나 집이 홀라당 다 타버리고 아버지 손광재는 불운의 원인을 그로 지목한다. 허긴.. 손광재는 나에게 '닭이 알을 낳듯 니어미가 너를 쑥 낳아버렸다'며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 게다가 그는 보름이나 출타해있던 손광재가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들에서 일을 하던 아내를 불러 미처 집까지 가지도 못하고 남의 집 평상에서 닭에게 발을 쪼여가며 욕정을 해소한 결과로 생겨난다.

주인공이 조근조근 회상하는 옛날얘기를 듣다보면, 기차길 따라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는 박하사탕의 설경구 생각도 나고, 메멘토 감독은 이처럼 간단한 과거회상을 괜히 꼬아서 어렵게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집안에서 철저히 따돌림당하는 존재, 수음의 부끄러운 기억 등등 음습하고 음습하다.
절대 소나기나 태풍은 될 수 없는,
확실히 '가랑비 속의 외침'일 수 밖에 없다.
한 개인의 역사.. 소소하고 눅눅한 역사..

 

질펀한 피범벅이어도 끝내 위화가 좋은 것은 섣부른 희망을 주지 않아서인가?
어쨌든 위화는 내가 동경하는, 되고 싶은 스타일의 작가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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