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이스트 - The Solo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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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먼저 봤다면, 극장에서 봤다면 더 감동적이었으려나?

책에 나온 그 디테일한 감정과 사연들이 너무 많이 생략된 탓인지 영 몰입이 안 되서...

책 속, 그러니까 실제 스티브 로페즈는 그를 많이 배려하는 아내와 고등학생 아들과 늦둥이 딸을 둔 가장,

영화 속 스티브 로페즈는 대학생 아들을 두고 이혼한 돌싱.

나다니엘 혹은 미스터 에이어스에게 몰입하고 그와 친구가 될 이유는 영화 속 스티브 로페즈가 더 많이 갖고 있는지 몰라도

가족과 집까지 모두 갖추고도 나다니엘 혹은 미스터 에이어스와 친구가 되려는 스티브 로페즈가 공감은 더 많이 된다는 것.

아마도 실제 그가 느낀 디테일한 감정선이 그대로 살아있어서인가 보다.

기술 발달과 함께 약화되는 매체력, 상업논리를 앞세우는 경영진, 일을 통해 능력 혹은 재능에 대한 고찰하는 것 등.

모든 게 생략됐다. 영화에서는.

재능과 압박감 사이에서 생각에 갖혀버린, 혹은 생각을 놓아버린 나다니엘에 대한 놀라움과 안타까움은

그냥 넘치는 재능과 광기 정도로만 나타나고.

어쨌거나 감동적인 이야기. 하지만 text based라면 영화는 책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걸 다시금 확인시킨 이야기.

연극이라면 좀 달랐으려나?

 

그런데 그렇게 계속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게 정신분열증 증상 중 하나라면...

내겐 참 오랫동안 그런 목소리가 따라다녔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특히 밤에. 책 볼 때.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을 때처럼.

끊임없이 이름을 부르고 때론 뭐라 속삭이기도 하고.

몇년 전부터 안 들리는 목소리, 그렇다면 나 이제 정상인 거? 다 나은 거? ㅋㅋ

 

> 책 속
 

나는 나다니엘에게 그가 자신에 대한 칼럼을 별로 읽고 싶어 하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라고 그가 대꾸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칼럼들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럼 왜 그 칼럼을 읽는 건 싫어하죠?

"거울에 비친 세상을 보는 것보다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게 훨씬 더 흥미로우니까 그렇죠."

그가 대답했다.    pp. 34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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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 파 - Evangelion 2.0: You Can (Not) Advanc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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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시리즈도 전부 다 극장에서 보고 싶다.

아- 잘 빠진 에바의 그 유려한 움직임이라니..

 

에바가 숨은 능력까지 발휘하는 건 (파일럿의) 희생과 고통을 담보로 하지만

에바가 각성하는 건 사랑, 소통을 통해서다.

신의 경지에 더 가까워지고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에바, 그 비결은 오픈마인드, 서로가 서로에게 준 긍정적인 변화.

그러니까 사랑과 소통 덕분이다.

어른들은 이해 못하고 닫아둔 마음으로는 한참을 거리도 깊이도 가늠하기도 어려운 일이

잔뜩 상처받고 외롭고 아픈 아이들에게는 마음을 여는 순간 가능해진다.

그래서 에바 파일럿은 아이들인가보다.

14세, 아이도 어른도 아닌 나이.

몸으로는 지구를 구할 임무를 짊어지고 마음으로는 잔뜩 상처받고 외로워 자꾸만 껍질을 만드는 아이들.

아이들은 자란다.

그들이 껍질을 깨고 나왔다.

그러느라 피를 철철 흘린다. 에바와 함께, 주방에서 각자.

아프겠지만... 그 아이들이 신인류라면 인류보완계획은 무용지물 아닌가?

기분 나쁜 더미 따위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서드 임팩트'가 시작되거나 말거나.

 

이야기는 <에반게리온 Q>로 이어진단다. 언제 개봉하려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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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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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를 탐하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베로니카 때문이었다.
헬레나를 기다리던 씨티문고(지금은 리브로)에서 도발적인 제목에 비해 그냥 그랬던 남보라색 표지가 자꾸 눈에 들어와서
그냥 서서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사서 들고 나와야했다.
죽기로 결심했던 베로니카가 전하는 생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찬란하던지,
'광기'라는 것, 진짜 미친 게 세상인지 정신병원 속 그들인지 그런 고민들이 진정 맘에 들었다. 탐났다.
사실 그 전에 내게 소설이란, 문장이었다.
서사? 멋진 서사도 많지만, <아리랑>이나 <태백산맥>같은 장편대하소설이 아니라면 내게 소설은 서사보다 문장이었다.
이야기보다 정서였고, 이미지였다.
그런데 <베로니카...>를 읽은 후 바꼈다. 나도 이런 서사, 이런 찬란한 이야기, 이런 영적인 이야기 감히 쓰고 싶어졌다.
할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든, 산티아고를 걷든, 내가 그럴 수 있게만 해준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누군가는 '자살'이라서 싫어한 이야기가 내게는 가장 찬란한 생의 이야기였다.
딱히 이유도 없이, 거창한 좌절도 없이 자살하려는 이야기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단정짓는 어떤 이들 속에서도
내가 이 이야기를 코엘료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건 말건 추천하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야기라서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겪었던 지인들의 자살 혹은 뜬금없는 죽음 덕분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죽음에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자살에 이유를 붙이는 건 살아있는 자들의 해석일 뿐.
죽기로 결심한 후, 실행한 후, 실패에 그친 후, 죽으려했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수용됐으나 결국 자살미수 후유증으로 일주일 후 죽는(다고 알고 있는) 베로니카가 보여준 일주일은 정말 빛났고 아름다웠다. 그 사랑은 감히 다가갈 엄두도 못낼만큼 고결해보였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이 영화.  

 


영화도 아름다웠다. 음악도 더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영화보단 역시 책이다.
-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면 좌절을 하죠.
- 우리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래요.
행복'에 관한, '정상'에 관한 우리들의 어리석은 굳은 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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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임브레이스 - Broken Embrac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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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이 영화가 참 재미났다.

기자시사와 일반시사를 함께 한 작은 시사실에서

큭큭대다 깔깔대며 웃는 건 우리 둘뿐이었다.

 

줄거리?

요약하자면 뭐 치정극이지.

줄거리만 보자면 치정극 아침드라마?

그렇지만 뭐, 어디 위험하고 자극적이기로 우리나라 막장드라마 따라가겠어?

 

거장은 달리 거장이 아니다.

이미지. 죽인다.

그냥 컷 바이 컷으로 인화해 모조리 벽에 걸어두고 싶을만큼 화면, 예술적이다.

근데 그게 다가 아니다.

이미지로 평가받던 영화감독이 실명을 하고,

그는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로 살아가고,

한 남자는 정부가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것을 두 눈 부릅뜨고 바라보고,

다른 한 남자는 자신과 애인이 키스했던 것을 볼 수 없어 손으로 더듬기만 하고,

그 사이에는 한 여인이 있었고,

그녀는 지긋지긋한 남자를 떠나 사랑하는 남자에게 갈 수 있는 기회를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만 버티자며 자꾸 미루고,

그렇게 버티다 그녀가 망가져 결국 남녀가 떠났을 때 영화는 제대로 망가지고,

훗날 소리에 의지해 최고의 컷을 골라 영화를 다시 만들었을 때 남자는

꼭 상영해야 한다는 매니저와 그녀의(그리고 그의)아들의 조언에

"중요한 건 완성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겠어.

즐겁고도 짜릿했던 두 시간이었다.

<그녀에게>도 좋았지만... 더더욱...

<나쁜 교육>과 <귀향>을 꼭 다시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같은 스페인 영화라 그런가? <너의 한마디>가 자꾸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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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바 - Genov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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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영화제에서 시간이 안 맞아 못 보고는 내심 개봉하길 기대했는데

소문도 없이(어쩜 내 귀가 먼 것인지도) 상영하고 있었다. 것두 가까운 극장에서.

 

콜린 퍼스는 뭘 해도 멋지지만,

아빠로서도 멋졌다. 그의 딸들로 예쁜 아이들이 캐스팅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 막내 딸은

(사실 인과관계만 보자면 맞다. 그 사고는 꼬마가 운전하는 엄마의 눈을 가린 탓에 일어난 것이므로)

밤마다 악몽을 꾸고 오줌을 지린다.

마침 제노바대학 강의를 제안받은 아빠는 그곳에서 잠시 머물자고 결정하고

제노바로 옮겨서도 가족들은 뭐 여전히 그대로다.

아빠는 애들에 메여있고 데이트조차 눈치보이고, 꼬마는 여전히 악몽 꾸고 오줌싸고

큰 딸은 그런 가족 분위기가 답답하고 자신의 아픔은 드러내지도 못하고.

그래도 환경이 바뀌면서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엄마에게 받던 피아노 수업을 제노바에서 다른 이에게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서로에게서 벗어나 서로의 시간을 갖던 때

꼬마가 사라진다.

서로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했던 아빠와 큰 딸은 미친듯이 꼬마를 찾아헤메고

짠 듯 복잡한 도로 한복판에서 꼬마를 발견했을 때, 놀랐던 감정을 담아 격하게 포옹하는 순간.

바로 그 때다. 상처가 치유되는 순간.

가족 상실로 인한 아픔은 가족의 사랑으로 치유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옳지만 고루하고 답답할 수 있는 이야기를 부담스럽지 않게, 지나치게 옳게 전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냥 담담하게 보여줘서.

 

상처, 지독한 고통을 넘어서기 위해 늘 상처에 직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그냥 시간을 보내기만 해도, 그냥 덤덤하게 일상을 살아내기만 해도 나을 수 있다.

지독히 이데올로기적이긴 하지만 가족의 사랑이 있다면

그리고 나는 그 가족 이데올로기의 '수혜자'니까.

굳이 가족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사랑 혹은 사랑의 기억 또는 공유만 있다면.

 

짧고 따뜻하고 좋다.

제노바를 환상적으로 보여주지 않아서, 이야기처럼 풍경도 그냥 담담해서

더 제노바에 가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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