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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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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많았던 〈N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그때는 분명, 모두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나를 희생해도 좋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 (p.65)
 
 
사랑에도 신호는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랑을 하게 되는 순간, 사랑에 빠지는 그 모든 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더러는 사랑을 병에도 비유하던데, 그렇다면 사랑에도 징후가 있는 걸까. 징후가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랑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한때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주었다면, 또 사랑해주었다면 그것을 그때 알아차릴 수 있었기를. 그런다고 해서 없던 애인이 생기거나, 지금 있는 애인과 헤어지게 되는 것도 아니면서 가끔은 그런 것들을 상상하고 바랄 때가 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었던 사실을 내가 조금 더 알 수 있었더라면. 저 사람의 마음을 내가 알았더라면. ‘사랑’이란 감정에 좀 더 확실한 징후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 마음을 놓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랬다면, 우리는 그토록 많은 것들을 스쳐가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맺어지지 않는 사랑은 언제나 아쉽다. 그것이 나의 경험이건, 또 다른 사람의 일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서도 우리는 엇갈리는 사랑에 아쉬움을 느낀다. 어떻게 보아도 사랑인데 맺어지지 않는 연인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나도 한 번은 그런 경험이 있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를 짝사랑해본 적도 있었고, 그 사람과 행복한 때를 꿈꿔보기도 했고, 그러다 마음을 접겠노라 다짐하지만 쉽게 잊혀지지 않는 사랑에 있는대로 끙끙대며 아파했을 그런 날들. 그때라면 누구라도 마음으로 기원하게 된다. 저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건 다 해줄 텐데, 저 하늘의 별도 따줄 수 있을 텐데. 저 사람이 나의 사랑을 받아주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그때는 있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바치고 싶었던 그때. 
여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N들이 있다. N을 위하여, N에게 바치는 그 모든 것들. 이것은 N의 사랑이다. N의 인생이다. N이다.
 
 
“…공유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게 상대의 죄를 절반 짊어지는 거야. 아무도, 그러니까 상대도 모르게 죄를 떠안고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 (p.154)


 
'N을 위하여'는 그 제목에 걸맞게 수많은 N들의 이야기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이름 속엔 모두 공통적으로 N이 들어간다. 스기시타 노조미, 안도 노조미, 니시자키 마사토, 나루세 신지. 또 노구치 다카히로, 노구치 나오코. 게다가 들장미 하우스의 주인인 노하라 할아버지까지. 이 N들은 저마다 서로와 조금씩 관련이 있으며, 크고 작게 서로를 향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들장미 하우스의 주민인 스기시타 노조미, 안도 노조미, 니시자키 마사토와 노하라 할아버지. 스기시타의 동창인 나루세, 안도의 직장 상사인 노구치, 그의 부인인 나오코. 
 
N은 N을 사랑한다. 허나 이 모든 관계는 일방적이다. 소설의 첫 시작이 일방적인 ‘진술’의 형식이듯, 그들의 관계 역시 그렇다. 이토록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어떤 N은 죽었고, 어떤 N은 죽였으며, 어떤 N은 묵인하고, 또 어떤 N은 거짓말을 하며 모른 척을 한다. 그리고 소설 속에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N을 위한’ 것들이다. N을 위해 그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혹은 그 죄를 대신 뒤집어 쓰지만 끝까지 누구도 말은 하지 않는다. N이 N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사실은.
 

행위와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한 쌍인 것일까.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대해 뒤늦게 이유를 늘어놓아 봐야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동기다, 경위다, 이유다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p.247)


 

작가의 말처럼, 이 글은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 이야기이며 동시에 N들의 사소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사랑을 대전제로 말하고는 있으나, 그 속에는 N들이 이 세계를 대하는 모든 방식들이 담겨 있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스기시타는 누구보다 자립심이 강하지만 높은 곳으로 올려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장기를 배우는 것으로 자신의 의존적인 부분을 드러낸다. 그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안도는 스스로 그녀를 ‘높은 곳으로’ 올려줄 수 있는 입장임에도 자신의 롤모델이었던 노구치를 경멸하고, 스기시타의 우울했던 십대 시절에 유일한 희망이 되었던 나루세는 남들 다 부러워하는 명문대를 다니면서도 면접에 족족 실패하며 인생의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니시자키는 ‘스스로’ 글을 쓰기 위해 부자들의 높다란 상아탑에서 ‘들장미 하우스’로 내려왔고, 모든 걸 다 가지고도 ‘뭔가를 가지고 싶어하는’ 스기시타에게 질투를 느끼던 나오코는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는 남편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고급 맨션에서 성공적인 삶과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노구치는 부하에게 장기를 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거기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보장되어 있는데도 들장미 하우스를 오래도록 지키며 떠나지 않는 노하라 할아버지까지. 
 
 
성공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5퍼센트의 재능과 95퍼센트의 노력, 갈고닦은 능력을 무기로 어떤 상황에서도 정면 돌파한다. 능력이 부족한 주위의 인간들은 모두 자신을 성공으로 이끄는 발판이며,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만이 그 발판을 자유롭게 조종하면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런 인간이 되고 싶었다. (p.146)
 

 
N들이 이 세계를 대하는 태도는 답답하다 못해 미련스럽기까지 하다. 대체 왜, 무슨 이유에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그보다 더 나은 대안들이 많았는데도 N들은 고집스럽게 그 자리를 지켜낸다. 
나루세, 또 안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기시타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구원이었던 나루세에게 가지 않았던 것처럼, 자신을 ‘높은 곳으로 올려줄’ 안도의 손도 잡지 않았던 스기시타는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올곧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 모습은 나오코의 태도와도 상당히 유사하다. 자신에게 ‘위안’이 되었던 니시자키의 손을 결코 잡아주지 않고 끝내 위험한 결말에 이르고야 말았던 나오코. 스기시타는 나오코의 모습에서 평생에 걸쳐 벗어나고 싶어했던 자신의 ‘엄마’를 수시로 떠올린다. 그러나 N으로서 N을 사랑하는 스기시타는 놀랍도록 나오코와 또 자신의 엄마와 유사하다. 집에서 도망쳤지만 결국 자신이 쓴 소설 속 ‘새’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니시자키도. 
 
 
문학의 세계가 필요 없는 게 아니다. 가공의 세계에 빠져들 만큼 마음이 한가롭지 않을 뿐이다. 책을 읽어 본들 배는 불러지지 않는다. 눈앞에 책 더미가 쌓여 있다 한들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냉장고 안에 먹을거리가 충분했으면 좋겠다.
(p.216)

 
 
그리하여 자신의 N을 위해, N은 선택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N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을 위해 선택한 것 뿐이다. 모든 N들은 모든 N에 의해 행위한다. 때문에 N은 N이며, 너는 나이고, 나는 당신이다. 내가 사는 이 세계가 나이고, 내가 이 세계이기라도 한 것처럼. 
 
 
 
마이너스끼리 서로의 상처를 핥아 주면 플러스가 된다는 것은 마이너스 인간만이 알 수 있다. (p.282)
 

 
이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N의 이야기이며, 그것은 또한 인생이기도 하다. 온전히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이 가능하기는 할까. N에게는 N이 있고, 그것은 우리의 인생과도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인간이란 타인 없이 살아갈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타인을 갈망한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 내가 사랑해줄 사람.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혹은 의지하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혹은 증오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우리는 모두 N이다. 살아가며 반드시 누군가가 필요한 우리는 N이며, 우리는 N을 위해 살아간다. 때문에 이 글은 인생이 된다. 우리에겐 이미 N이 있기에. 우리 또한 누군가의 N이므로.
 
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어떻게든 살아는 간다.
나를 위하여, 당신을 위하여, N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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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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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토록 불편한 식사, <디너>










불행은 늘 함께할 누군가를 찾는다. 불행은 결코 침묵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있을 때의 그 기분 나쁜 침묵을. (p.13)




사랑은 옳다. 적어도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배워왔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 ‘아낌없는 애정’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 누가 부정적인 평가를 할까. 우리는 살아가며, 사랑한다. 가족에 대한 사랑, 연인에 대한 사랑, 또 그 외에 내 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먼 나라의 아이들에게도 우리는 이따금 사랑을 느끼고 연민을 가진다. 

사랑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이따금 그 옳고도 바람직한, 누구에게나 당연한 자연스러운 감정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사랑에 눈이 멀었을 때, 사랑은 ‘독’이 된다.

독성을 띤 사랑은 더 이상 바람직하게 권장되어야 할 인류보편적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때때로 잔인하며 폭력적이다. 전혀 관계없는 이의 목숨을 ‘충동적으로’ 앗아갈 정도로.



불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은 ㅡ 자연의 폭력이든 인간의 폭력이든 상관없이 ㅡ 도저히 참을수 없을 것이다.



글은 주인공인 파울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어디에서나 봤음직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 그것이 파울의 표면적인 모습이다. 전직 학교 선생님,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하나 있고 세 사람이 꾸려가는 가정은 겉으로 보아서는 문제가 없다. 다음 수상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는 세르게의 동생이며, 형님에게 다소 껄끄러움을 가지고는 있으나 형님 부부와 함께 프랑스로 바캉스를 다녀오고 여유가 있을 때면 고급레스토랑에서 사적인 식사를 즐기기도 한다. 굳이 네덜란드가 아니어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가장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위해 아들의 핸드폰을 뒤져가며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 아버지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다. 


파울도, 또 형님 부부도, 또 아내도, 아들도 겉으로 보아서는 어떤 문제도 없다. 음식이 가격의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나 정치가인 형님의 겉치레에는 모자람이 없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울은 형님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한다. 이 또한 전형적인 풍경이다. 아내와 함께 형님 부부를 기다리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가져온 지배인은 불필요할 정도의 설명을 덧붙이며 요리를 소개한다. 애피타이저, 메인요리, 디저트가 차례대로 나오며 독특하게도 책의 각 챕터 역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애피타이저, 메인요리, 디저트, 소화제, 팁. 지난 바캉스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섞어가며, 작품은 식사의 흐름을 따라 진행된다. 겉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는 광경이다. 그러나 이 디너,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 잘 차려진 음식도, 지배인의 설명도, 형님의 태도나 형수님의 눈물 번진 얼굴도, 또 아내의 태도도 모두 어딘지 모르게 2프로씩 부족하다.


불편함을 느낀 순간, 음식은 식도에 탁 걸려든다. 먹은 것들이 죄다 얹힌 기분. 아무리 물을 마시고 소화제를 먹어도 깨끗이 밀려들어가지 않는 찜찜함, 그 불편함. 말 그대로 소화불량.


<디너>는 그런 글이다. 식도를 다 넘어가지지도 못한 채 탁 걸려버린 음식물, 위장을 내내 불편하게 만드는 소화불량 같은 그런 글. 그 불편함을 느낀 순간, 즐거웠던 식사 자리는 부조리의 장으로 변모한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때문에 제대로 씹어 삼킬 수 없는 껄끄러운 <디너>처럼.




정말로 우리가 잊어버려야 할 것은 바로 그 비밀이었다. 

둘이서만 알고 있는 비밀. 망각은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가 큰 법이다. (p.179)




우스개소리지만, 먹을 땐 개도 건드리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식사 자리에서는 잔소리도 삼가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먹는다’는 행위는 중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때로 불편한 자리들을 만나게 된다. 친척 어른들, 애인의 부모님, 혹은 회사 사장님이나 전공 교수님과 함께 하는 자리는 언제나 불편하다. 그런 식사는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아무리 비싼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눈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고 식사가 끝나면 필연처럼 체증이 찾아온다. 


그래서, <디너>에선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주말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각자의 아이들이 ‘사건’을 일으켰고, 그들은 그 사건의 수습에 대해 대책을 나눠보기 위해 테이블에 앉았다. 허나 누구도 대놓고 그 ‘사건’을 말하지 않는다. 대세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장에 대해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대처해야하는 세르게부터 그의 부인, 또 파울 자신과 현명한 아내마저도 이 부분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이 없다. 아이들이 저지른 사건의 크기가 상당한데도, 그들은 지배인의 불필요한 설명을 들으며 음식을 소개 받고 애피타이저와 메인 코스를 고르고 있을 뿐이다. 말을 할 때마다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리는 지배인의 습관이 거슬리는 파울은 기실 그것이 신경쓰이는 것이 아닐 테다. 걱정되는 것은 아들인 미헬의 문제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아이들을 꾸짖지 않는다. 파울에게도 비밀에 부친 채 아내는 사건을 숨기기에 바쁘고, 이는 형수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숨기고, 가리며, 상대의 아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내 아이의 죄를 덜기에 바쁘다. 모두가 알지만 말하지 않는 아이의 ‘비밀’을 있는 힘껏 숨기고 감춘다. 그리고 그 비밀이 핀치에 몰렸을 때, 그들은 끝내 ‘선택’을 한다. 내 아이를 위한, 아니, 내 아이만을 위한.



본래 사랑이란 내리 사랑이라 했던가. 부모가 자식을 미쁘게 여기며 보듬는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그 사랑에 눈이 멀 때 우리는 불편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된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에 대한 기사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 이때,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가해자인 아이보다도 그 아이 부모의 태도다. 우리 아이는 그런 애가 아니라든가, 그쪽에서 잘못을 했다라든가, 혹은 우리 아이는 무조건 착하다는 식의 발언들. 물론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당신의 자식이 치기 어린 실수들을 저지를 때마다 세상을 향해 기꺼이 머리를 굽혀주지 않으셨던가. 그것은 존경 받아 마땅한 고귀하고도 고결한 마음이다. 


그러나 자식을 위한다는 말로 그 모든 과오를 덮기 시작할 때, 혹은 그 모든 책임을 미루기 시작할 때, 그리하여 내 ‘자식만’ 생각하며 그 외의 어떤 것들은 아무래도 좋게 되어버릴 때, 애정은 눈이 멀고 이윽고 ‘독’이 된다. 잠깐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ATM 기기 안에 웅크려 잠들었다 어린 십대들의 발길질에 목숨을 잃은 이름 없는 노숙자를 죽인, 그 치명적인 독처럼.







+ 너무너무 늦어버려서 염치없는 리뷰입니다.. 여느 때보다 치열한 여름을 보내는 중인지라 리뷰 한 번 쓰는 것도 여의치가 않네요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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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워진 날씨에, 휴가 때문에 업무는 더 정신이 없고

때문에 다 읽은 책 리뷰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으른 달찬입니다 ㅜ_ㅜ

그래도 무더위를 한풀 꺾어주는 시원한 신간들이 쏟아지는 이 계절,

비타민 같은 좋은 소설들을 추천해봅니다 :)

 

 

2012년 8월,

여름날 소설 신간 비타민 둘

 

 

 

 

 

 

 백영옥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누구나 살아가며 한 번은 만나고, 한 번은 겪고, 또 한 번은 상처 받게 되는 공통의 화제가 있다면 그건 대체 뭘까요? 아마도 연애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누구나 한 번은 사랑하고, 누구나 한 번은 사랑에 상처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때문일까요. 연애는 우리와 가장 가깝고도 흔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쉽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백영옥은 누구에게나 쉽지만 또 누구에게나 어려운 연애 이야기를 굉장히 잘 쓰는 작가입니다. 데뷔작부터 '연애'라는 화두를 언제나 안고 갔던 그녀가 이번에 새로운 장편 소설을 출간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연애. 그것도 '실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작인 <아주 보통의 연애>를 만났을 때, 나는 설렘을 느꼈습니다. 지금보다 어렸던 날들에 만났던 서툰 사랑들이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그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실연'입니다. 이번엔 또 어떤 연애가 이 속에 담겨 있을까요. 이 책을 보면 또 어떤 사랑에 빠지게 될까요. 또 한 번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하며, 나는 이 특별한 모임을 기다립니다. 이번 달 가장 기대되는 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입니다.

 

  좡쉬칭 <북경에서 도둑으로 살아가기>

 

가끔, 하고 싶은 말을 돌려 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며 우리는 많은 말들을 감추고, 한 바퀴를 빙 돌린 말들로 겨우 속내를 꺼내놓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해서는 안 될 말도 많은 세상. 삶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점점 더 하고 싶은 말들을 참으며 살아갑니다.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빙 돌리면 은유가 되고, 소설가가 하고 싶은 말을 빙 돌리면 풍자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 하고 싶었던 말들을 또 한 바퀴 빙 돌려준 소설가가 있습니다.

좡쉬칭이라는 소설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신간 목록에서 나를 붙들었던 것은 유독 눈에 들어왔던 독특한 이 제목이었습니다. 북경에서 도둑으로 살아간다? 북경에서 도둑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인생일까? 그런 단순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어 결국 보관함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이 작품, 역시나 부조리한 사회에 던지는 불편한 블랙 유머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북경에서 도둑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 도둑은 도둑이지만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도둑. 더 한 도둑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진짜' 도둑의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이번 달, 또 한 번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해봅니다.

 

 

 

 

 

 

 

+

날은 덥고, 업무는 많고, 좀처럼 의욕은 나지 않는 요즘입니다.

변명처럼 리뷰를 미뤄놓고 페이퍼 역시 마지막 날에나 올리고 있는 이 게으름에 괜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으로 신청한 것이 아닐 텐데, 분명 열심히 즐기고 싶어 한 신간평가단일 텐데 역할에 충실하지 못한 것만 같아 죄송한 마음 뿐이네요 ㅠ ㅠ 얼른 바쁜 날들이 지나가고 밀린 리뷰도, 또 남은 리뷰도 열심을 다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무더위 속에 건강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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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비가 이렇게 반가웠던 때가 또 있을까요?

이상기후 등으로 104년만에 닥친 가뭄에 촉촉히 단비가 내립니다.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계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참 밝습니다.

이 비가 메마른 땅 곳곳을 흠뻑 적셔주길 바라면서 이번 달 추천 신간 페이퍼를 열어봅니다.


하늘에서 남자들이...아니라 

좋은 책들이 단비처럼 쏟아지는 여름, 7월입니다:)

오늘은 알차게, 꼼꼼하게 한 권만 준비해보았습니다.









2012년 7월,

여름날 소설 신간 비타민 하나




# 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몰라도,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은 몰라도 그의 작품인 <검은고양이>나 <붉은 죽음의 가면>, <어셔가의 몰락>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드물 겁니다. 텍스트 원전을 보지 않았어도 '이러이러한 내용이었다' 하면 대부분은 아! 그 사람! 하고 알아차리죠. 스티븐 킹은 읽지 못했어도 에드거 앨런 포를 읽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제대로 된 텍스트가 아니어도 짧은 만화로, 괴담집으로, 심지어 인터넷에 '무서운 이야기' 올라가는 코너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던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저만해도 검은 고양이를 어린이를 위한 공포 만화로 처음 봤던 기억이 나니까요. 


이토록 잘 알려진 에드거 앨런 포가 지난 2009년, 탄생 2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국의 추리소설 작가 20인이 모여 포에게 바치는 소설집을 출간했습니다. 포의 텍스트에 영감을 얻은 작가들이 그가 준 영감들을 토대로 쓴 작품들을 엮어만든 헌정소설집이죠. 


세상은 에드거 엘런 포를 추리소설의 창시자라고 일컫습니다. (관련글 / 네이버캐스트 링크) 그가 던지던 독특한 소재, 또 포만의 독특한 텔링 방식은 흐름을 짚어가며 독자들에게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를 불어 일으켰고, 이처럼 기묘한 사건들이 미스테리하게 흘러가며 독자에게 다음 내용을 '추리'하게 하는 포의 소설을 두고 사람들은 '추리소설'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때문인지 포의 텍스트가 던지는 독특한 이미지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소설은 당연하고 영화, 연극, 음악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포의 텍스트를 활용한 작품들이 등장했죠.


어린 날 만화판<검은 고양이>를 사촌오빠에게 빌려 읽었을 때부터 포는 저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겁니다. 미스테리에 흥미를 느꼈고, 팀 버튼의 그로테스크하고 컬트적인 이미지에 매료되며 팬을 자처하며, 또 한참 비주얼록을 들었던 시절에도 그 모든 흥미의 원천은 포에게 있었습니다. 포의 텍스트를 읽으며 사춘기를 보냈고, 포의 텍스트를 닥치는대로 사모으며 대학시절을 보냈으며, 이젠 포의 텍스트에 영감을 얻은 다른 여러 작품들로 그 감성을 수집합니다.

때문에 저는 참 이 책이 기대 됩니다. 아마도 저와, 혹은 저보다도 훨씬 더 포의 감성에 푹 빠진 사람들이고 그 때문에 이 길을 걷겠다 다짐한 사람들일 테니까요. 이 책을 쓴 20인의 추리소설가들에게 에드거 앨런 포는 그저 '추리소설의 아버지'라는 딱딱한 상징이 아닐 겁니다. 그들에게 꿈꾸게 했고, 때문에 자신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걸어오게 해준, 그야말로 '인생'을 선물한 사람일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묘한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토대로 한 동명의 영화 <더 레이븐>의 개봉날이 오늘입니다.

영화에서는 또 이 이야기를, 포의 텍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게 될까요? 

올 여름에는 귀곡성 울리는 빤한 공포보다 인간의 내면을 쥐고 흔드는 포의 텍스트에 푹 빠져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일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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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언어 - 탐나는 것들의 비밀 우리는 왜 어떻게 매혹되는가?
데얀 수딕 지음, 정지인 옮김 / 홍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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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란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용과 반작용을 주고 받는 복잡한 안무의 한 부분이다.


- p.81





우리는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의 언어들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언어들이 산재해있나. 당장 내 눈 앞만 쳐다보아도 숱한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 지금 지켜보는 이 모니터 화면과 키보드, 누군가의 책상에서 잠시 내 자리로 피난을 온 육중한 스피커, 토너를 갈아줄 때가 된 레이저 프린터, 패션지 부록으로 딸려왔던 탁상달력과 거기에 남겨둔 수많은 약속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나'를 말해준다. 내가 앉은 의자, 내가 걷는 길, 길가에 놓인 가로수와 전등, 매일 나를 실어나르는 버스와 단골 커피숍의 로고가 찍힌 종이컵, 책마다 꽂혀있는 북마크와 책상에 덕지덕지 붙은 색색의 포스트잇, 몇 번 쓰지도 않고 쌓이기만 하는 까만 볼펜들과 몽당 연필, 군데군데 녹이 슨 커터 칼까지.

그것들은 나의 물건이며, 나를 말하며, 또한 '나'이기도 하다. 내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나를 말한다. 그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언어'를 통해.


우리는 정말로 많은 언어 속을 살아가고 있다. 아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우리가 보고 있는 그 모두가 언어다. 호리호리한 늘씬한 병을 보면 우린 코카콜라를 떠올리고, 붉은 색과 노란 뿔의 조합을 보면 맥도날드를 떠올리며, 색색의 네모가 기하학적으로 맞물린 형태를 보면 몬드리안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가 살며 만나는 그 모든 사물이 우리에겐 언어이고, 그 언어들은 각각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그 '언어'에 대한 이야기다. 디자인 비평서를 점잖게 표방하고 있으나 이 책엔 정작 디자인이 없다. 디자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디자인이 말해온 것들, 디자인이 만들어온 것들이 이 책이 말하는 전부다. 그건 디자인의 세계가 아니다. 디자인과 함께 만들어진, 지금 이 세계, 당신과 나의 세계다. 


디자인은 세계다. 고로, 이 책 역시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곳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사물의 세계다.





디자인이라는 언어도 여느 다른 언어들만큼 급속하게 진화하고 변화한다. 

그것은 미묘하고 지혜롭게도, 서투르고 진부하게도 다루어질 수 있다.


어쨌든 그것은 인간이 만든 세상을 이해하는 열쇠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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