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담컨대 하루키의 책 중 가지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하루키라는 이름이 보이면 중고서점에서 과거 조악한 해적판일지라도 손이 가버리는 몹쓸 습관을 가진 탓이다. 그만큼 좋아한다. 하루키를 좋아하고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책을 샀다. 하지만 그뿐이다. 귀엽고 재미있고 예쁘고,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은 여전히 개성 넘치고 하루키의 텍스트와 영혼의 파트너십을 자랑하지만 그뿐이다. 그뿐이지만 하루키의 팬이라면 소장하고 싶을 것이다. 하루키가 안자이 미즈마루와 함께 작업한 고양이 그림책이다. 팬에겐 소중한 콜렉션이다. 그렇다. 딱 그뿐이다.
나는 그의 시와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을 몇 명 알고 있다. 그의 시는 한 문장을 골라내기가 매우 어렵다. 행과 행 사이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의 시는 한 덩어리로 읽을 때에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치 잘 짜여진 만화나 영화 한 편의 스토리 콘티와도 비슷하다. 심상은 이야기보다는 이미지로 흐르고 화자는 소통대신 자기 고백에 집중한다. 그의 글이 히키코모리적 세계라는 책의 해설은 아마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흑백의 칸에 갇혀있는, 수척하고 외로운 청년을 나는 보았다. 한때는 메텔 같은 여인과 사랑하길 꿈꿨을 듯한 , 그런 여자는 세상에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소년을 나는 보았다. 그의 시는 정말로 내가 아는 많은 20대들을 닮았다. 그래서 나는 참 슬펐다.
나는 어떤 책을 사도 별로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 세상에 건져낼 것이 없는 책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만 반쯤 그 책 자체가 아니라 다른 선택에 의해 등 떠밀려 구입하게 되면 가끔, 가끔 후회하기도 한다. 이 노트 세트가 그랬다. 단언컨대 나는 노트를 주는 게 아니었다면 이 세트를 결코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번쯤 참고할만한 필기법이지만 새롭고 독창적인 필기법은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 선생님 정도는 오답노트를 이렇게 적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이미 알던 필기법에 다빈치노트라는 이름을 붙인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도 별을 두 개 주는 것은 노트 자체는 퍽 잘 쓰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 단권, 또는 책 단권만 판매하지 않는 상술에도 나는 기분이 불쾌하다. 책은 신선도가 떨어지고, 노트는 괜찮지만 세트 가격을 생각하면 돈이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