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버린 사랑 문학과지성 시인선 482
이이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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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좋았느냐 묻는다면 읽는내내 빼곡하게 붙은 북마크용 포스트잇과 수없이 연필을 들고 그었던 밑줄들로 설명할 수 있을 듯 하다. 매우 '힙'했다. 무리 없는 시어들이 낯설어지는 순간의 재미를 충분히 느꼈다. 좋은 시였고, 좋은 시집이었고, 좋은 시인이었다. 그래서 시인에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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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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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은 도처에 있다. 無라는 말이 붙는 색이면서 동시에 모든 빛이 합쳐지면 백색이 된다는 것이 나는 늘 재미있다. 


한강의 문장은 늘 섬세하고 예민하다. 한강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흰 색을 떠올렸는데, 그 <흰>것을 얘기하는 책을 냈단다. 당장 주문하고 받아본 책은 우선 들고 다니기에 부담이 없다. 내지가 다소 두꺼운 감이 없지 않아 편히 술술 넘길 페이지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한 글자 한 글자를 꼼꼼히 만져가며 읽을 수 있다는 기분이 든다. 한강의 문장은 매만질 때 특히 그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눈으로 읽기보다 손으로 쓰며 만져봐야 그 말들이 가진 질감과 묻혀있던 함의들이 촉각으로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한강의 책을 읽을 때면 늘 글을 '만진다'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은 사실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하얀 것들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 하얀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창작인 것 같기도 하고, 작가 본인의 자전적 고백을 담은 에세이인 것 같기도 하면서 동시에 시 같기도 하다. 도통 모르겠다. 한강의 글은 늘 시인지 소설인지 수필인지, 약간 아리송해지는 그 지점에서 '한강다움'이 생기는 듯 하다. 한강이라서 소설집이었다. 한강다운 소설이었다.


짧고, 편하고, 그래서 금세 읽었다. 책장을 덮고 한참동안 <흰>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더러워지기 쉬운 색, 그만큼 청결히 세탁하기 쉬운 색, 우리 눈이 식별하는 태양의 진짜 색, 도처에 있는 색, 성스러운 색. 우리는 하얀 강보에 싸여 세상에 태어나 하얀 수의에 싸여 땅에 눕는다. 

하얀 것들은 삶이다. 누런 때가 빠질 때까지 한 번 푹 삶아보고 싶은 삶이 그렇게 참 <흰>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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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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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사족이지만 하루키의 저서 중 보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학생 시절부터 용돈을 쪼개가며 한권 두권 사모았던 절반의 콜렉션은 나처럼 하루키를 좋아하며 하루키의 문장으로 나를 위로해주었던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면서 완전해졌다. 노르웨이의 숲이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혹은 해변의 카프카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은 이제 솔직히 잊어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이 보이면 별 고민과 망설임도 없이 우선은 사고 본다. 일종의 타성인 것 같지만 그래도 실망한 적은 딱히 없다. 아, 그래서 대가는 대가구나, 라는 생각을 나는 이번에도 했다.

+
사실 그의 소설은 취향을 많이 탄다. 나와 나의 반려는 모두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작품의 취향이 극명하게 갈린다. 다 사서 읽기는 하지만 괜찮았다, 나쁘진 않았다 선에서 그치는 소설도 많다. (예로 나는 아직 여자없는 남자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다 읽지 못했다.) 하지만 에세이에 한해서는 이견이 없다. 어떤 때엔 소설보다 하루키의 에세이가 더 좋아보이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내 안에 쑤셔 넣기가 벅찰 때, 사는 게 정신이 없어서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 읽기가 힘겨울 때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
하루키는 소설만큼 좋은 에세이를 쓴다. 소설과 에세이를 다 잘 쓰기는 퍽 어려운 일이다. 소설에 대한 기대로 에세이를 사서 펼쳐봤다가 자신의 필력과 감성 과잉에 젖어 글이 난잡해지는 경우를 나는 더러 봤었다. (대체적으로 소설가가 쓰는 에세이의 절반 이상이 그렇다. 물론 나는 그런 에세이도 싫어하진 않는다. 좋아하지도 않을 뿐이지.) 하루키는 꾸밈이 별로 없다. 유려한 문장을 뽐낸다거나, 혹은 자신의 경험을 과장되게 치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는 늘 사소하다. 낯선 이국의 경험을 탐미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에세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스케일이 좀 째째해보일 수도 있겠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여행지 TOP 10> 같은 타이틀이 하루키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어느 곳에 있건 그는 조깅을 하고, 렌트카를 타고 여행지를 돌면서 보았던 풍경보다도 렌트카를 빌리던 당시의 사소한 에피소드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화려한 경험보다는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식당 주인과의 추억, 여행지 곳곳을 어슬렁거리는 개나 고양이 (말과 양도 있었다)에 대한 이야기에 하루키는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문장은 담담하고, 때문에 꼭 옆집 아저씨가 여름 밤에 우리집 평상에 앉아 뻘쭘함을 이기고자 괜히 부채를 펄럭이며 늘어놓는 사설처럼 수다스럽다. 그래도 정신이 사납지는 않다. 하기야,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에세이니 오죽하겠는가.

+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거의 모두 빠짐없이 읽었다. 첫 문단과 같은 이유에서다. 여행을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하기엔 제약이 많았던 십대 시절부터 나는 하루키의 에세이를 통해 여행하는 방법을 배웠다. 숙소를 잡고, 자주 걷고, 자주 말을 걸고, 자주 발견하고, 자주 사소해지고, 무리하지 않고. 그러다 우연히 좋은 식당을 발견해 맛있는 식사를 하는 일. 먹는 것과 듣는 일에 하루키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여행은 그래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전체적인 평을 객관적으로 얘기하자면 사실 새롭지는 않다. 내가 하루키를 그만큼 오래 본 탓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정직하게 별은 세 개만 줬다) 하루키가 여태 써왔던 여행 에세이와 딱히 다르지도 않고, 몇몇 지역은 어쩐지 예전에 이런 글을 읽어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스와 보스턴 여행이 특히 그렇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왜냐면 하루키는 이미 이전에 이 지역에서의 일상을 에세이로 썼기 때문에.) 그래도 하루키의 에세이이기 때문에 부담은 없고, 언제나 그래왔듯 중박은 친다. 다 읽으면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낯선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진다. 이 에세이는 딱 그 정도다.

+
라오스에는 절과 승려와 개가 있다. 하지만 내가 만약 라오스를 찾아간다면 나는 또 하루키가 보았던 것들과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그걸 알게 하는 책이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인생이 있는 것처럼 각자의 여행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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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세계 문학과지성 시인선 481
백은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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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아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시집을 고르는 데에 크게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취하고 싶은 감정이 있는가, 또는 꼭꼭 씹어 읽고 싶은 문장이 있는가다. 백은선의 가능세계는 후자였다. 제목에 반쯤 홀려 구매했고 이윽고 펼친 시집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단어들은 아슬아슬 줄을 타고, 나는 남의 SNS 속에 비공개로 숨어있던 글을 훔쳐보는 심정으로 시어를 꼭꼭 씹는다. 감정보단 말에 취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에 흠뻑 읽고 싶은 시집이다. 좋았다. 왜 좋았냐고 묻는다면 구체적인 이유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선 한 번은 주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이 단어들을 더듬었으니 두 번 세 번 더 읽게 된 후에 이 시에 구체적인 감정을 붙여주고 싶다. 읽을만한 좋은 시였다. 신인의 불편한 패기보다 자기 내면에 집중하는 안정적인 문장들이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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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미움받을 용기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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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심리학책이나 자기계발서적이 인기가 높다고 하면 난 으레 이런 책일 것이라 오해를 한다. 넌 잘못 됐다고 다그치는 책이거나 혹은 너는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 일단 힘부터 내라고 부추기는 무책임한 책이거나. 이 책은 옳다, 그르다를 말하지 않는다. 너의 모든 잘못은 과거 혹은 너의 부모나 세상에 있다고 무조건 떠넘기던 프로이트식 조언에 지쳐 있는 사람이라면 읽을만 하다. 내가 뭔가 안 풀리고 있는데 힘만 내라고 말해주는 자기 계발서에 지쳤다면, 역시 읽을만 하다.
서두에서 김정운 교수가 했던 말처럼 전부 동의하기는 어렵다. 이 책의 주요 화자인 철학자 역시 너는 옳다, 그르다를 말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아들러의 이론에 근거한 책이기 때문에 아들러의 입을 빌려 '너는 이렇다'고 말해주는 것이 전부다. 받아들이는 건 모두 개인의 문제다. 선택도 나의 몫으로 남겨주는 자기계발서적은 흔하지 않다. 독자는 이 책을 따를 필요가 전혀 없다. 열풍만큼 주변에 열성적으로, 이 책 한 번 읽어보라고 말할 책임을 난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읽어볼만 하다. 이런 부분도 있을 수 있다는, 세상의 많은 고민을 내려놓는 방법 한 가지를 가르쳐주는 책이다.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나는 세상이 아니라 나를 용서하게 됐다. 그리고 시원해졌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당신이 만약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기분을 분명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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