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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5월
절판


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겁 많은 여행자는 모르는 고독보다 아는 고독을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인점이라는 것이 세상에 번창하는 것이다.-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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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부탁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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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운동선수는 범인에게 반성을 촉구한다.”

오쿠다 히데오, <야구를 부탁해> 中



+)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한다. 오쿠다 히데오 최고의 매력은 역시 한 번 펼치면 책을 닫지 못하게 하는, 무섭도록 몰입하게 만드는 그 스피디한 전개와 군더더기가 없는 문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매력의 정수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듯 싶다. 네 편의 소설을 읽었고, 에세이집은 이번이 두 번째지만 조금도 실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기껏 돈주고 산 책을 한 호흡에 후르륵 읽어버려서 화가 날 지경. 어쨌거나 오쿠다 히데오는 읽을 때마다 날 숱하게 감탄하게 한다. 다 읽고 난 후에야 '어 다 읽었네' 싶은 그 전개 방식, 깨알 같은 유머와 읽고 난 후 진득하게 따라붙는 여운과 단지 가볍지만은 않은 시선까지. 적재적소에 찔러넣는 위트는 또 얼마나 달인의 솜씨인지. 그 매력의 정수가 아마 에세이집들이 아닐런지. 세상에, 이렇게까지 자기자랑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에세이를 쓰는 작가라니. 

정신없이 낄낄낄 웃고 나니 '아 오쿠다 히데오였구나' 하고 이제사 뒤늦게 감이 온다. 다 읽으니 왠지 개운하고 후련한 밤. 다 읽으면 항상 시원하게 져버린 기분이 든다. 오쿠다 히데오의 글은.






* 원글은 2011년 8월 23일, 달찬블로그 (http://dalchan.tistory.com/171)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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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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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너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요일이 찾아올 거야.

네 소원이 이뤄지는 일요일도 분명히 찾아올 거야.

그러니 너는 돌아가. 너의 삶 속으로."


- 김연수 <원더보이> 中







나름 손을 꼽아 기다리던 김연수의 신간이 드디어 나왔단다.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당장에 장바구니에 넣고 구입을 했다. 이번 글은 어떨까 싶어 받기가 무섭게 첫 장을 열었다.

오늘 저녁의 일이다. 그리고 난 참 난감해졌다. 눈물이 도저히 멈추질 않아서.



사실 난 김연수 작가의 글에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다. <달로 간 코미디언>을 제외하고 늘 김연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난 도도하고 시크하게 굴었다. 습작생에게 김연수의 문장은 늘 명문이고, 어떻게든 본받고 싶은 구석을 찾아내 배움을 강탈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눈을 열고 읽어댔던 모양이다.


<원더보이>는 그런 글이 아니다. 첫장부터 도무지 도도하게 굴 수가 없어서 나는 정말 난감했다. 실실 웃으며 빠져 들었고, 여러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들에 웃기도 하고 비통하기도 하고 짠해지기도 하고. 한참 읽던 차에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정말 난감하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은 전혀 슬프지 않다. 억지로 감동을 쥐어 짜는 것도 아니고 클리셰에 가까운, 때문에 누구라도 울 수밖에 없다는 소위 '최루탄급'도 아니다. 사실 재미있다. 정말 즐거운 글이다. 즐겁고 재미있고 우스워야 하는데, 웃기지가 않다. 재미있지만 우습지는 않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꼼꼼히 보면, 이 소설엔 참 기이한 풍경들이 많이 나온다. 겉으론 태연히 희극을 진열하면서 뒤돌아 곰곰히 생각해보면 전혀 우습지가 않다. 아니, 슬프다. <원더보이>를 생방송 무대 위에 올리고 청와대로 들여보내야 하는 인공적인 연출이 우습다가도 그들이 울고 있는 모습에 나도 운다. 원더보이에게서 시작된 눈물은 사람들을 울리고, 책을 읽는 나에게까지도 전이 되는 모양이다. 


난 80년대를 잘 모른다. 그 시대를 살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의 얼굴이나 호돌이 정도다. 숱한 책이나 매체 속에 놓여 있는 그 시대는 늘 내게 인공적이었다. 잘 짜여진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사람들은 그린듯이 웃고, 그린듯이 환호한다. <원더보이> 속에 담겨 있는 그 시절은 좀 더 인공적이다. 모두가 웃고 모두가 밝고 건강하다. 감동이 생산되고 웃음을 창작하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글은 개운하다. 내게도 그렇지만, 아마 이 글 속의 인물들이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 웃으라며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줘서 웃는 대신 사람들은 운다. 웃음이 상처를 잊게 할지 몰라도 낫게 하는 것은 결국 눈물이다. 누군가는 눈물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마음을 낫기 위해서라고 그랬었던가. 그래서 운다. 덕분에 나도 운다. 그리고 지금은 후련하다. 덕분에.





개인적인 이유에서, 내게 <원더보이>는 꼭 필요한 소설이었다. 재미있고 즐겁고 유쾌하지만 이 글은 내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한다. 아직 울 수 있다는 것. 그래도 맘껏 울 수 있고 아파할 수 있다는 것. 언젠가는 눈물도 사치가 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모두가 괜찮고 모두가 잘 살고 있다며, 다 잘 해결 될 거라면서 덮어놓고 웃기만 하는 세상이 오게 되면 우린 정말로 눈물을 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이 글이 참 고맙다. 아직 울 수 있어서 기쁘다. 맘껏 울어서 원더보이에게 고맙고, 글에 고맙고, 마음을 찔러준 문장들에 고마우며 이것들을 모두 잘 빚어내준 김연수 작가에게 가장 고맙다.


이유 없이 울 수 있는 소설이 존재한다는 것, 웃으면서도 울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김연수는 정말로 좋은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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