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몸 - 여성의 몸 수치의 역사 한길 히스토리아 6
한스 페터 뒤르 지음, 박계수 옮김 / 한길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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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리어왕」4막 4장 126행에서 이렇게 썼다. (텍스트가 옆에 없는 관계로 약간의 오차가 있다만) <그들은 켄타우로스의 후예 / 허리 위로는 신의 창조물이지만 / 허리 아래로는 악마의 소유물 / 그곳은 지옥이며 유황이 지글지글 끓는 구렁텅이다 / 더럽다, 더러워, 펫, 펫!> 여성의 성기에 대해 혐오을 표한 예술가는 셰익스피어 뿐만 아니다. 라블레도 그러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여성의 쾌락 자체를 혐오했다. 살바드로 달리는 여성의 성기에 깊은 혐오감을 갖고 있어서 성관계를 기피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남색을 했다나. 표지는 에곤 실레의 그림인데, 그의 스승인 클림트도 외음부에 대한 외설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단다. 그림 제목이 기억나진 않지만, 나체의 임산부가 횡으로 서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이다. 임산부의 나체를 아름답게 묘사한 화가는 클림트가 처음이었단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저자가 긍정을 표하는 예술가는 클림트 뿐인 듯하다.

이 책은 여성의 음부에 가해진 수치, 수치의 역사에 대한 엄청난 자료를 토대로 씌어졌다. 주석이 무려 200페이지나 된다. 삽화도 엄청나다. 책읽는 재미보다 삽화보는 재미가 더욱 솔솔하다. 여성의 성기를 <지옥의 심연>처럼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나, 중세의 풍자 삽화, 남자 조산원과 의사에 대한 풍자 삽화 등은 보는 재미를 자극한다. 얇지 않는 이 책을 순식간에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외음부의 수치심에 대한 연구 대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타히티섬은 물론이고 오지의 원시족들까지 파고들어서 부족함이 없다. 외부부의 수치심에 대한 역사 연구는 고대에서부터 현대를 아우른다. 일본의 경우는 외음부를 숭상했다며 저자는 친근감을 내비치기도. 일본에 대한 일화 하나. 1900년대 초반, 어느 목욕탕에 불이 나서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릴 때 외음부가 남들에게 보여질까봐 안 뛰어내리고 그냥 타 죽었단다. 그후로 한 페미니스트는 기모노 속에도 팬티를 입으라고 주창하고 다녔다지만 기모노 속에 속옷을 안 입는 전통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유럽에서도 조선시대처럼 임산부들에게 진찰하는 의사의 문제가 골치였던 모양이다. 남자 산부인과 의사와 남자 조산원들은 수치의 역사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임산부를 진찰할 때 의사가 앉는 자세며, 손가락을 집어 넣는 자세며, 그런 것들의 디테일한 발전과정 등등이 아주 상세히, 자료와 함께 기록되어 있다. 남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늘 수치심 자극의 요소였고 문제였으면서도 유럽에서는 여의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남자들의 권위 문제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후에 손가락으로 임산부를 진찰하는 것은 해롭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계속 손가락으로 진찰하는 의사 나부랭이들이 있었다 한다. 임산부를 진료할 때 각종 진료자세란 것도 있었는데, 그중 암소 자세란 것도 있었다. 섹스할 때의 후배위가 그것이다. 환자에게 그런 자세를 강요하고 의사가 진료를 했단다.

검경의 사용에 대한 쇼킹한 사건 하나. 18세기 무렵의 프랑스에서는 매춘이 의심되는 여자를 경찰들이 검경으로ㅡ게다가 정기적으로ㅡ검문을 할 수 있었다 한다. 어느 부인이 열여섯 난 딸과 함께 귀가 중이었는데, 불쑥 나타난 경찰관이 경찰서로 끌고 가서 검문을 하려니, 부인은 옷을 벗지 않고 버텼다. 그래서 수감되었다. 부인은 너무나 원통해서 강물에 투신했다. 임신여부를 확인한다는 검경을 경찰관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쇼킹하다. 현대에 들어서도 남자 산부인과 의사의 문제는 여전하다. 그들은 환자를 두고 전문적인 용어를 지껄이며 권위적으로 행동하고 환자의 수치심을 고려해서 부러 기계적이고 거칠게 진료를 하는 경우도 있단다. (나는 남자이고 게다가 이 부분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으므로 잘 모른다. 그저 이 책을 읽었을 따름이므로 요즘의 산부인과가 어떤 지는 전혀 모름) 저자가 생각하는 해결법과 내가 생각하는 해결법도 같다. 산부인과 의사는 여자가 하면 되는 거다! 남자가 왜 산부인과 의사를 하는 거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서문과 부록이 주로 엘리아스에 대한 공격으로 이루어져 있고, 본문에서도 틈틈이 엘리아스를 공격한다. 저자는 엘리아스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를 가진 듯싶다. 정도를 지나치고, 감정적이어서, 저자가 방대한 자료로 써낸 이 책의 독서를 저해한다. 게다가 중구난방이라는 감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나 방대한 자료 탓일까?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문제 제시는 있는데, 그것으로 결정적인 결론이나 요지를 발견하거나 도출하기가 어렵다. 외음부에 대한 수치심에 대한 묘사가 엄청나지만, 그래서 어쩌라구? 에 대해서는 빈약하다. 이 책은 나체와 수치의 역사, 은밀한 몸, 음란과 폭력 ㅡ 연작이고, 2부에 해당하기 때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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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0-09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참, 궁금하네요, 왜 엘리아스를 공격하지요?

쎈연필 2004-10-09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이라는 책에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하고, 엘리아스의 제자들이 저자의 <나체와 수치의 역사>라는 책을 비판한 이유도 있는 듯합니다. 더 궁금하시면 책을 읽어보세요~^^
 
거대한 고독 - 토리노 하늘 아래의 두 고아 니체와 파베세
프레데릭 파작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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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것은 평전도 그림책도 만화책도 아닌 규정짓기 애매한, 규정을 거부하는 책이다. 번역자의 말대로 잉크 대신 커피 진액에 찍어 그렸는지 글과 그림이 쓰고 그 뒷맛이 우울하다. 너무나 아폴론적인, 환하고 명랑하며 분주한 세계, 그림자와 괴괴함과 느림과 우울이 결핍된ㅡ결핍된 것처럼 가장된ㅡ시대에 선사하는 더 없이 디오니소스적인 멜랑콜리.

이 책은 이태리 북부 도시 토리노다. 악마의 유적들이 남아 있는 토리노, 에서 정신을 놓은 니체다. 모두를 용서하고 모두에게 용서를 구한다, 면서 자살한 파베세다. 키리코이며 고흐이며 폴록이며 프레데릭 파작이다. 예술이 문화상품이 된 시대에, 이 책은 온통 예술가에 대해 고민한다. 니체를 소환하고 파베세를 읊는 당신에게, 응, 응, 제대로 인식하지는 못해도 나도 느껴, 우울하다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종교보다도 햇빛 속을 걸어가는 한 남자의 그림자 속에 훨씬 더 많은 수수께끼가 있다. 수수께끼의 남자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스스로를 찾으러 다녔다. 토리노에 당도했다. 이들은 토리노에서 한결같이 희열했다. 니체는 그곳에서 늙은 말의 목을 껴안고 울다 쓰러졌다. (이전까지 내가 읽은 니체에 관한 책은, 모두 여기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쓰러진 그 후의 이야기를 그 어느 책보다 상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깨어나서 즉흥곡을 연주했다. 멜로디를 잃은 자신의 괴성과 함께, 끝을 모르고 연주했다. 탈진해서 의자에 파묻힌 그의 손에는 최후의 저작 「니체 대 바그너」가 들려 있었다. 니체의 어머니는 그를 정신병원에 넣었고, 니체는 수다스럽다는 이유로 진정제를 과다하게 맞고, 격리되고, 미친놈이 되고, 후세에는 그런 광기의 나날이 묻혀진다. 니체는 질투심 많은 여동생에 의해 괴롭힘 당하고, 니체가 죽어서는 그의 유고를 여동생이 왜곡하고, 나치즘의 선동에 이용당했다. 오해는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풀렸다.

그림과 글을 오가는 작가는, 니체와 파베세를 오가며, 고흐의 빈 의자가 뉴욕경매장과 어째서 관계가 있어야 하냐고, 니체가 히틀러의 총구와 어째서 관계가 있어야 하냐고, 밀밭의 까마귀를 누가 쫓았냐고, 폴록의 그림과 니체의 언어에는 본질적인 공통점이 있다고, 키리코의 우울과 이제껏 거론했던 모두의 우울은 일맥한다고, 토리노에서, 예술가들의 인생을 빌어 수줍게 말한다. 정신으로나 창자로나 굶주렸던 예술가들에게 보내는 그의 우울한 헌사가 못 견디게 아프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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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09-14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호기심을 유발하는군요.

2004-09-14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가테라 2권 세트
후루야 미노루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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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이 만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키득키득키득…… 어찌나 웃었던지. '시가테라'의 뜻이 뭘까 궁금해서 견디기 짜증날 지경이다.

이 만화 너무 리얼하다. 탁월한 심리 묘사! 소심쟁이의 내면과 행동을 이토록 잘 그려낼 수가! 이런 상황을 즐겨 사용하는 만화들은 흔히 감질나는 스토리 전개를 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은 구성이 탄탄하고, 무엇보다 장점은, 밝다!

학교라는 울타리 내에서의 억압과 착취, 즉슨 괴롭힘이라든지 왕따. 괴롭히는 놈들은 대체로 자기들의 폭력행위에 무개념하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도 대체로 자신의 괴로움을 적극 표출하지 못한다. 쌍방간에 소통은 일방적이고, 당하는 쪽이 3자에게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나의 어린 시절, 주변을 떠올려 보아도 그렇다. 왜 그럴까. 나는 궁금하다. 이 만화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을 괴롭히는 놈에게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게다가 놈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맛이 워낙 간 놈, 피해야 할 놈' 등등 그쪽으로 인정해줘버린다(이런 질서정연한 착취구조의 성립이라니!). 그리고 이런 상황묘사는, 너무나 리얼해서, 특히 남자라면,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누구나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주인공에게 드디어 봄날이 도래하는데, 환상적인 여자애와 사귀게 된 그것. 그맘때의 남자애들이 어련히 가졌을만한 판타지를 양질껏 충족해 주는 그런 여자와의 로맨스가 이 만화의 (학교폭력과 함께) 한축을 이룬다. 어둠과 밝음. 폭력과 성적인 문제.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주인공에게서 폭력문제는 직접적 생활과 잇닿아 있다. 이성적인 문제는 (아직은) 주변부다. 육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걸 내게 대입시켜 보면, 돈과 문학이다). 주인공이 이성적인 문제에 점차 빠져들수록, (생활과 잇닿아 있는) 폭력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되고, 그러다 보니 일이 잘 풀려(?) 괴롭힘을 면하게 된다. 그래서 이성적인 문제가 점점 더 생활에 가까워진다. 정신적인 관계에서 육질적인, 감각(실체)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 

십대, 그 아름다운 시기에, 획일화 된 울타리에 묶여야 하고, 도처에 도사리는 폭력에 시달려야 하고,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다니, 나의 십대를 돌이켜 보아도 끔찍하다. 이 만화는 그런 문제를 아주 세밀하게 잘 묘사한다. 우리의 초상화다. 따지고 보면 슬프지 아니한가. 이 만화의 주인공처럼, 대배기량 바이크를 타고 거침없이 먼 곳으로 내달리고 싶었던 그 시절. 오토바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VF를 타고 다녀서 그 쾌감을 안다(커브를 돌 때, 한쪽 귀에서는 땅의 진동소리가 들리고, 다른쪽 귀에서는 바람의 속살거림이 들리는 그 기분). 비록 사고가 한번 나서 쇄골뼈가 두동강나고 귀가 찢어지고 기절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거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싶다(다시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시절은 내 멋대로였다. 중학교 시절이 삭막했구만). 늘 탈주하고 싶었던, 그런 공간 그리고 시간이었다. 만화에서 두카티, 아프릴리아 등의 이태리 바이크 메이커나 일제 바이크 메이커가 간간이 나와서 나의 고삐리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나도 한 때 그런 꿈을 키웠었다. 오토바이크라는 잡지를 사 보며. 나는 야마하의 바이크들과 매끈한 여성미의 아프릴리아에 자주 매료되었던 것 같다. 특히나 아프릴리아 250cc는 판타지 그 자체였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아프릴리아를 얻을 뻔하지만 결국 판타지는 깨진다. 으으, 현실의 파괴력이여.

이 만화의 등장인물들도 인정하듯, 주인공과 그 애인과의 연애는 거의 판타지다. 그래서 이 만화의 진행이 두렵다. 무서운 현실의 파괴력이 마수를 뻗칠 것 같아서. 내게서 만화란 십대의 추억과 잇닿아서, 만화를 본다는 것은 감상적인 행위이다. 때문에, 이 만화가 얽히는 쪽으로 진행된다면 나는 마음이 아플 듯싶다. 이럴 땐 얽힘과 풀림이라는 문예학을 만들어 낸 아리스토텔레스가 미워진다. 하긴, 얽힘과 풀림은 비극에 해당하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나는 이 만화를 보는 내내 웃었으니, 이 만화는 희극에 가까울 것이다(믿고 싶다). 부디 이 만화의 주인공이 하는 연애가 지금처럼 알콩달콩만 하기를 바란다. 제발 얽히지 말고. (드디어 내가 순진무구한 독자로 돌아간 것 같아 진심으로 기쁘다!)

이렇게 좋은, 재밌는 만화를 선물해 주신, 알라딘의 물장구치는금붕어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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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1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haire 2004-09-1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나중탁구부는 포기하고 아무래도 시가테라(두 권짜리 맞죠?)를 택해야 할까 봐요... 장바구니로 =3=3

superfrog 2004-09-11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조만간 얽히고 망가지고 좌절할 거 같은데요.. 조마조마 뭔가 일이 터질 듯한 분위기죠? 후루야 미노루가 저렇게 행복하게 둘 리가 없겠죠..;;; 다른 작품을 보시려면 두더지와 그린힐도 재밌어요.. 그린힐은 님 표현을 빌자면 밝고 두더지는 좀 많이 어둡죠..ㅎㅎ

2004-09-11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쎈연필 2004-09-1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말님 이 만화 잼써요. 음, 근데 자녀들에게 읽히기 전에 님께서 먼저 읽어보셔요~^^
카이레님 저는 이나중탁구부를 싫어하는 편이라서요. 그 만화 본 지 거의 10년쯤 지난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만화였는 듯... (지금 다시 보게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시가테라는 강추입니다!
금붕어님 헉! 망가지고 좌절...ㅠ.ㅠ;; 그럼 안 되는뎅...ㅠ.ㅠ

로드무비 2004-09-1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최근 읽은 것들 중 최고!
리뷰 써야지 해놓고 깜빡했어요.
저는 책 읽은 즉시 리뷰 안 쓰면 못 써요.
감흥에 겨워 쓰는 리뷰라야 하거든요.
그래봤자 별로지만...^^;;;
 
장 비고 콜렉션 [알라딘 특가]
장 비고 감독, 장 다스떼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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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고의 아버지는 당대의 유명한 무정부주의자였다. 이름을 '똥처먹어'라고 개명할 정도로 파격적인 사람이었다. 감옥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병약한 비고는 열두 살, 반역자의 아들로 낙인찍힌 유년을 보냈다. 조숙한 아이는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품행제로』에서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문제아들과 함께 행실 점수 빵점의 십대를 보냈다.

『품행빵점』은 기숙사 생활을 하는 중학생들의 이야기다. 벌써 담배를 피우고 선생에게 욕을 해대고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아이들. 이런 악동 영화가 또 있을까. 애들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는 교장은 난쟁이다. 가만보니 어린애가 수염을 쓰고 분장을 했다. 이런 역설적인 희화라니. 맨날 교사들한테 혼나기만 하는 애들이지만 젊은 교사인 위게는 아이들에게 묘기도 보여주고 채플린 흉내도 내고, 산책을 가서는 여자 꽁무니만 쫓는다. 교장에게 혼나긴 해도 마냥 즐겁다. 교사 하나가 아주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아이의 손을 만지는 등 의심스런(?) 행동을 하는데, 너무나 예쁘장하게 생긴 아니는 교사에게, "꺼져 병신아"라고. 교장이 찾아와서 징계를 주겠다니, 예쁜아이는 "지랄떨지마"라고. 우옷, 30년대에 이런 파격이라니. 나는 좀 놀랐다. 학교 축제 때 교장 뿐아니라, 시장, 군인 등 사회적 권위의 온상들이 모여 지루한 연설을 하는데, 아이들은 지붕에 올라서 식기를 던지고 책을 던지는 등 봉기(?)를 일으킨다. 정말이지 사랑스런 귀여운 것들이 아닐 수 없다. 한글자막 번역도 재밌다. '열나' '짱나' '쓰발' 등등. 기숙사에서 베개 싸움을 하는 장면은 영화사의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이라고들 한다. 베갯잎이 모조리 폭발(?)해서 온 방 안에 하얀 눈처럼 나부끼는 슬로우 장면.

아탈랑트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이란다. 『라탈랑트』는 너무나 귀여운 사랑이야기다. 라탈랑트호의 선장(품행제로의 위게 선생)은 예쁜 시골처녀와 결혼을 한다. 피로연도 없이 바로 승선해서 일을 한다. 일등항해사는 쥘영감, 심부름하는 소년도 함께다.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하는가 싶더니, 호기심 많은 신부가 쥘영감의 방에 가서, 영감이 떠돌아 다니며 모은 여러 잡동사니들을 보며 즐거워하자, 젊은 선장은 쥘의 방을 마구 부숴버린다. 이렇게 설명하면 폭력적이다. 왜냐면 너무나 재밌는 장면이니까. 사실 쥘영감은 고약한 괴짜다. 행동거지도 더티하다. 침 뱉는 품새도 역하고, 거지같은 꼴을 해서는, 안주인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와서는 은근슬쩍 수작을 한다. 처음엔 "내숭 떨지 말라구"처럼 직접적인 수작을 걸더니, 잘 안 되자, 직접 만든 누더기 지휘자 인형으로 복화술을, 귀엽고 끔찍한(?) 아르골을 돌려서 눈길을 끌고, 아코디언을 켜면서 어리숙한 척, 그러나 능숙한 솜씨로 옛시절 바다사나이의 낭만적인 가락을 뽑아낸다. 어린 새댁은 노인이 선물한 빗으로 영감의 지저분한 머리를 손질해 주고, 영감은 능글맞게 "이런 부드러움엔 익숙하지 않단 말야, 헤헤헤…" 그 순간에 선장이 찾아와서 난동을……. 그런다고 쉽게 삐치는 쥘영감이 아니다. 선장 내외가 키스를 하자, 심술이 나서 레슬링을 하자고 시범을 보여주며 훼방을 좋기도 하고, 술을 잔뜩 먹고 와서는 사랑의 밤을 보내려는 부부의 방 앞에서 나팔을 불어대며 난리다.

어느 날 댄스장이 있는 카페에 찾아간 부부. 거기서 젊은 장사치가 부부에게 다가와 재주를 부린다. 신랑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신부는 너무나 좋아한다. 장사치가 신부를 데리고 가서 춤을 춘다. 엉덩이를 어찌나 방정맞게 흔들어대는지. 열 받은 신랑은 장사치를 밀치고 신부를 데리고 배에 간다. 다음 날 장사치가 배 근처에서 북치고 피리 불며 신부를 유혹하고, 신부에게 파리로 가자, 파리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헛바람을 잔뜩 불어넣는다. 마침 신랑이 와서 쫓아보내지만 신부는 그날 밤 기차를 타고 파리로 떠난다. 쥘영감은 기다리자고 하지만 열 받은 신랑은 떠나버린다. 파리에서 날치기 당하고, 변태 같은 신사차림의 남자에게 수작을 당하고 군중들 틈에서 두려움만 느끼던 신부는 다시 돌아가 보지만 배는 떠났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도 전에 당신을 봤어요. 내가 보이지 않을 때는 물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떠 보세요. 신부의 이 말을 상기하며 선장은 물에도 뛰어들고, 쥘영감의 오물(?)이 잔뜩 넘치는 양동이에 얼굴을 처박기도 한다. 침대에서 신부를 생각하며 자위하긴 신부도 마찬가지. 쯧쯧쯧. 그러나 귀여운 것들. 선장은 거의 폐인이 되고, 쥘영감이 신부를 찾아 나선다. 신부는 음악다방(?)에서 "시간을 더 허락해 주세요 / 오랜 시간 항해하는 청년들은 / 태양을 닮아가요"라는, 영화의 초반부에 쥘영감과 꼬마가 부른 노래를 듣는다. 그 노래가 나오는 곳을 찾아 간 쥘영감이 신부를 라탈랑트로 데려오고, 선장과 신부는 아무 말도 필요 없이 만나자 마자 껴 안고 키스하고 뒹군다.

라탈랑트의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내가 사랑하는 장면들은, 쥘영감의 방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다. 별의 별 볼거리가 즐비하다. 사람의 손도 있다. 친구의 손인데 기억하기 위해서라나. 선장이 찾아 왔을 때 쥘이 하는 변명은, 내 젊은 시절 사진을 보여줬어, 인데, 쥘이 다급했던 모양이다. 젊은 여자의 나체 사진이었던 것. 다른 장면은, 쥘이 에피소드인데, 폐인 상태인 선장과 쥘이 체스를 둔다. 선장은 멍한 상태에서도 쥘에게 체스메이트를 먹이는데, 쥘은 꼬마와 짜고 고양이를 던져서 판을 엎어버린다. 또한 쥘의 에피소드. 쥘이 고물 축음기를 고치다가 지쳐서 음반을 손가락으로 긁어본다. 그러자 아코디언 음악이 나온다! 손을 멈추자 음악도 멈춘다. 손을 움직이니 음악이, 손을 멈추니 음악이, 반복. 갑자기 쥘이 고개를 돌리자 꼬마가 아코디언을 들고 씨익 웃는다. 허풍선이 장사치의 재주도 재밌다. 마술 부리는 틈틈이 "까꿍!" 거리는 통에 신부 뿐아니라 나도 넋이 나갈 뻔했다.

장 비고는 라탈랑트의 개봉을 몇 달 앞 두고 요절했다. 스물아홉이었다. 50년 동안 20분이 넘게 삭제된 필름으로 상영되다가 지난 90년에 지금의 필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다. 마돈나의 우상이었던 전설적인 배우 디타 팔로의 매력, 당시 마흔 살도 되지 않았지만 육십 먹은 노인의 연기를 익살맞게 펼친 미셀 시몽의 에드립, 너무나 아름다운 영상을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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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 지음 / 길찾기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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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성을 현실에 끌어들이는 기법을 오롯이 글로 쓴다면 극단의 결과가 나온다. 성공하면 백년을 고독하게 보낼 필요가 없는데, 대부분 실패한다. 그래서 감히 현실 소재를 뛰어넘는 것을 끌어들여와 글쓰기를 할 엄두를 못 낸다. 그런 점(환상을 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지의 즉물성이 확실한 만화는, 매력 만땅(왠지 만땅이라는 어휘를 쓰고 싶다)의 예술이다. 이 만화집에 실린 모든 단편이 고르게 재밌고 울림이 있다. 현실과 환상의 병치를 작가는 아주 능숙하게 구사한다. 너무 능숙해서, 갈고 닦은 게 아니라 타고난 재능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작가의 처녀작이 작품집의 맨 뒤에 자리한다. 아닌 게 아니라 터치가 투박한 것이 아마추어 냄새를 팍팍 풍긴다. 나는 그 냄새나는(?) 처녀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기존 질서에 대한 재해석, 해체, 그리고 감추며 드러내기! 감추며 드러내기는 미메시스+낯설게하기이다. 훌륭한 기본기와 플롯은 작가의 덕목일진저. 그 덕목을 갖춘 작가가, 그것도 신인이, 패기 넘치게, 기존의 꽉 막힌 체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진선미를 보았나. 이렇듯 우리가 알지만 낯선 소재… 가 작품집 전체를 관통한다.

리바이어던을 우리말로 직역하면 용가리가 되겠고 일어 중역하면 고질라쯤 되겠다. 그것은 대체로 생명체로 상징되어 왔다. 권력자들은 대부분 인간들이니. 이 작가는 그 괴물을 기계로 환치시켰다. 맹목적인 선함의 강요는 단선적인 이데올로기가 된다. 선이 선으로서 기능하는 건 악이라는 관념과의 비교 때문이다. 그래서 선/악은 절대적일 수 없다. 절대적일 수 없는 게 절대적(모두가 착하게 살았답니다)이 된다는 것은 곧, 다른 관념을 억압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일 게다. 이 작품의 리바이어던이 눈달린 컴퓨터라는 것은, 정보(눈)와 이성(컴퓨터)을 통제한다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에 따르면, 옛날의 대중은 나쁜 놈이 누군지를 인식했다. 처리할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권력자들은 직접적 억압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중은 누구를 향해 돌을 던져야 할지를 모른다. 문화 산업이란 것으로 대중들의 생활 양태를 조작한다. 그러니까, 무비판적인 대중의 양산, 그것이 현대의 권력자들이 문화 산업을 키운 주목적이다(문화 산업의 최강대국이 단연 미국이고, 그것을 무지막지하게 수출하는 까닭이 이거다). 어쩌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는데, 그런 점(얘기를 길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점)에서 리바이어던은 잘 다듬어서 서사화 해도 괜찮을 듯한 우화이다.   

선택도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이다. 근래에 읽은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남자고교, 군대, (남성들만 득시글대는) 노가다판을 거친 청년(마초의 탄생!). 청년도 나름대로 애저린 서사를 지니고 있을 게다. 가난한 고학생이며 불안한 가정에서 자랐다든지… 헌데 작가는 그런 너저분한 사연을 생략한다. 환경이 좆이건 지랄이건, 사람은 살면서 수차례의 탈태(?) 기회를 부딪친다. 그런데 자기가 가진 (물질적인 게 아닌 정신적인) 것이 비루하다고 느끼면서도 자기가 가진 것을 고집하는 인간이 대다수다.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서, 청년은 친구를 친다. 마지막 장면에서 곤충학자의 시선을 느꼈다. 아무쪼록 그런 관찰력과 과감함을 더욱 업그래이드 하시길.

앞에 실린 세 작품은, 재미로 치면 월등했지만, 마무리와 구성이 엉성하게 느껴졌다. 보고 난 후 이런 의문이 남는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사건을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독자를 잡고 이끌어가는 능력도 있다. 헌데 왜 그런 식으로 끝내지? 엮은 매듭을 감당 못하는 듯했다. 하늘로 날려버리거나, 바다로 보내버리거나, 죽여버리거나, 변신시키거나, 회개하는 것 ㅡ 가장 불필요한 마무리 서사다. 나는 사실 둘리의 마지막 장면을 봐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젊은 만화가 중에, 이런 방면에 공력을 쏟는 작가가 있다는 건 기대되는 일이다. 기대는 곧 미래. 미래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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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6-19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몽상자표 리뷰넌 역쉬 데끼리여~

메시지 2004-06-1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방(왠지 이말이 어울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