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와 생각하기: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 고병권
조건반사 토끼 /  민주주의, 그 영원한 의식화위하여

리영희와 책 읽기: 책 읽기와 청년, 그리고 자유 - 천정환
리영희라는 필독서 / 리영희의 책 읽기 

리영희와 전쟁: 전쟁의 세기 - 김동춘
전쟁이라는 최고의 현실 / 정치로서의 전쟁  


리영희와 종교: 무신론적인, 그러나 유신론적인 - 이찬수 
한국 기독교인은 고대 유대교인  

리영희와 영어 공부: 영어라는 우상 - 오길영
500단어의 유창한 영어 실력 / 영어 몰입 교육의 백일몽 /  리영희의 영어 공부 /   

리영희와 기자: 진짜 기자의 멸종 - 안수찬
진실 보도 경쟁이 사라지다 /

리영희 인터뷰: 가혹하게 정직하고, 칼날처럼 순결하게 - 김현진
고옥[?] 의 일인자 / 물을 건넌 개, 물에 빠진 개 /  리영희 수난곡, 리영희 스타일,  

 

비정상적 세계 속의 정상인: 리영희 선생님을 추도하면서

만감: 일기장 2010/12/09 19:09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30164


... 리영희 선생님은 이미 생사에 거의 완전히 초탈하신 분이셨습니다. 

 <금강경>을 늘 봉독하시고 生도 死도 결국 물거픔이자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을 몸에 배신 리영희 선생님으로서는, 이 사바세계를 떠나시고 또 나은 세계를 향하시는 것은 그렇게 두렵고 힘든 "歷程"은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

사실, 제가 제 자신에게 바라는 바 중의 하나는, 리영희 선생님 만큼은 입으로뿐만 아니라 마음으로까지도 불교적 생사관을 익혀 生에 대한 욕망도 死에 대한 두려움이 섞인 궁금증도 벗어던진다것입니다.  ... 


 리영희 선생님의 <歷程>이라는 자서전적 에세이 모음은 사실 한반도 현대사의 진실을 알고픈 사람에게 꼭 필독서가 돼야 할 것입니다.  

... 온갖 개인적, 집단적 환상들을 버리고, "진리, 오로지 진리, 진리만"을 추구하셨던 "깨인 정신"의 소유자이신 리영희 선생님께서 그가 본 현대사의 진리를 이 책에 아낌없이 담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는 때로는 아주 무섭고, 때로는 우리로서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망각하고 싶은 진리.  

예를 들어서 1941년에 일본인 학교 교장이 조선인에게 대미선전 포고의 천황 칙어읽어주는 장면 (33면)을 한 번 더 깊이 읽어보세요. 나이 든 조선인들이야 "전쟁"이라는 단어의 섬뜩함에 억눌려 침울한 표정이었지만, "만세"를 불렀던 젊은이들, 그리고 중국 대륙을 석권해 아시아에 그 패권을 굳힐 것 같은 "무적 황군"에 대한 자신을 포함한 다른 소년들의 흠모적 환상 등을, 리영희 선생님께서 잔인하리만큼 정확하게 지적하십니다.  

제국의 전쟁을 열렬히 환영하는, 영혼을 빼앗긴 식민지인...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고 지워버리고 싶은 무서운 기억이지만, 이 기억을 반성하지 않고 지워버리면 이 역사가 또 너무나 쉽게 반복될 수 있다는 게 또 하나의 무서운 진리입니다.  

지금 미제국과 반쪽짜리 준(準)제국 일본에 보조를 맞추어 반북 히스테리를 부추기는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을 보십시오. "무적 미군"이 "이북 빨갱이 집단"을 쉽게 박멸하고 중국을 그 위엄으로 굴복시킬 것이라고 순진히 믿는 그들은, "전쟁을 불사한다"는 반북 강경 노선이 결국 동북아 전체를 다시 한 번 폐허로 만들 수 있는 커다란 패권 충돌에 불을 지필 수도 있다는 점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미 鬼畜 박멸을 위한 聖戰" 조칙 반포에 만세를 불렀던 얼간이들과는 도대체 뭐가 다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대한민국의 보수계를 석권하고 있는 또 하나의 - 약간 덜 독한 - 집단정신병은 소위 "건국 열풍"입니다. 노동자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경제성장"으로 우쭐해지고 자존심쯤이나 세워보겠다는 남한의 "오야붕"들은, 혁명적/반제국주의적 과거를 내세우는 이북과의 "이념경쟁" 차원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약간 다듬어 미화해버려는 셈이죠. 일제 때에 총독부에 붙어 조선 노동자의 고혈을 짜냈던 것도 다 "문명과 나라 발전을 위한" 것으로 둔갑되지만,  

특히 "자유진영의 선두자인 미국을 위해서라면 제3세계대전을 일으켜 한국을 다 희생시켜도 된다"고 다짐하곤 했던 그 놀라운 충성심의 소유자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내세우는 게 중점 중의 하나입니다.  

영어에 미친 세상에 이승만의 "퍼펙트 잉글리시"에 흘려서, 실제 노동자들을 기계로 부려 "성장"을 이룬 박정희보다 오히려 그 "프린스톤대 박사"를 자꾸 앞에 내세우는 것인가요? 다카키 마사오의 "촌스러운" 일어에 비해 "닥터 리"의 "액센트리스 잉글리시" (accentless English)는 아무래도 "오렌지" 세상에 더 맞는 부분은 있겠지요.  

하여간, 본인이 제대로 읽을 줄 몰랐던 불어와 나전어 문헌들을 다 "인용"해도 조선을 한 마디도 언급하지도 않았던 "학위 논문" (제가 프린스톤대에 가서 그 논문을 찾아 복사했는데, 그 작성, 통과 경위는 아주 아주 궁금하기도 합니다...  

차후 연구과제 중의 하나죠)으로 "박사님"이 된 "건국의 아버지", "민족의 태양", "예수와 석가보다 더 겸손하신 분" (다 실제로 그 때에 사용했던 호칭들임)께서 워싱턴에 가서 남한에서 꽃핀 "다원적인 제페르슨 식 민주주의"를 선전했을 때에 "닥터"가 될 만한 돈이 없는 중생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 궁금하시면 <歷程>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초기의 대한민국을 몸으로 겪으신 리영희 선생님께서 책에서도, 구두로 그 회상들을 공유하셨을 때에도 늘 지적하셨던 것은 바로 "무한한 국가 폭력"이었습니다. 반대자를 학살해 그 가족을 연좌제로 옭매어 평생 괴롭히고, 약한 자를 군에 징집해 무의미한 동족상잔의 총알받이로 이용하고,  

미제국의 원조든 국가 자금이든 다 도둑질 대상으로 만들어 지배층의 개인적 치부의 자원으로 삼게 하는 것은 폭력 정치와 "도둑 정치" (cleptocracy)의 전형인 초기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아픈 대목 중의 하나라면, 1950-51년 "국민방위군" 이야기입니다. 인민군에 밀렸을 때의 "국군"은 후퇴할 때에 지나가는 지역마다 장정들을 모조리 다 징집 (사실상, 국가적으로 납치)해버렸는데, "방위군"으로 강제평성된 그 장정들에게 지급될 식량 등이 그 잘난 "지도층"에 의해서 다 훔쳐진 바람에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가까운 징집 피해자들이 굶어죽고 만 것입니다.  

차라리 강도를 더 방불케 하는 "국군" 장교에 건넬 몸값이라도 있는 집에서 장정은 살고, 없는 집에서 납치형 징집을 당해 고통스럽게 아사 당하고 만 것이죠. <歷程>에서 징집이라는 이름의 국가적 폭력이 얼마나 약자들을 골라 괴롭혔는가에 대한 자세한 진술들은 대단히 많습니다.  

예컨대 생존률이 미미한 그 잔혹하기 끝이 없는 향로봉 탈환 작전에 투입된 신입병 약 백 명에게 "중학교 이상 나온 사람 있느냐"고 물어보신 리영희 선생님은, 손 든 사람 3명 만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218면). 교육을 살만한 집안에서는 그 장정들을 돈으로 빼주고, 그렇지 못한 집에서는 힘없이 국가의 폭력을 당해 남편, 아들들을 사지로 내보내야 했던 것이죠.  

전선에서 군 물자를 횡령, 전용하거나 "빽"을 서서 후방으로 옮겨져 용케 잘 살아남은 장교들은 나중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지도층", 또는 부유층이 되고, 국가 폭력을 회피하거나 저항을 하지 못한 그 유일한 죄 (?)로 사지로 끌려간 가난뱅이들의 백골을 지금도 다 찾아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리영희 선생님께서 너무나 잘 아셨던, 그리나 세상이 자꾸 망각하려 하는 우리 "건국사"의 진실입니다.
 
리영희 선생님의 육신은 사멸됐지만, 늘 실사구시로 진실, 진리, 참된 것을 구하려는 그 "위대한 정상인"의 깨인 정신 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 정신은 우리와 함께 있기에, 어쩌면 우리가 노력을 해서 진실, 생명을 위한 투쟁으로 리영희 선생님께서 겪으셨던 그 무서운 전쟁들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선생님께서 유촉하시고 가신 가장 중요한 사항인 것 같습니다.
 
추신: 이 글 역시 일본의 <한겨레 사랑방>에서 고맙게도 일역돼 게재됐습니다:
http://blog.livedoor.jp/hangyoreh/archives/1329493.html <한겨레 사랑방>의 일역 봉사를 통해 한-일 민중 연대를 위해 노력하시는 여러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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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두들겨 패라,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이번에 나온 것은 1907~1925년에 쓴 에세이 23편을 담은 <무덤>(홍석표 옮김)과   

1918~1924년에 쓴 잡문 41편을 묶은 <열풍>(이보경) 두 문집을 엮은 제1권,  

 

소설집 <외침>(공상철)과  

 1924~1925년에 쓴 소설 11편을 수록한 <방황>(서광덕)을 합친 제2권,   

 

그리고 1933년 1~5월에 쓴 잡문 43편을 모은 <거짓자유서>(이보경),  

1933년 6~11월에 쓴 잡문 64편을 모은 <풍월이야기>(이보경), 

 1934년 1~11월의 잡문 61편을 담은 <꽃테문학>(花邊文學, 유세종 옮김)을 합친 제7권이다.  

 

원제 魯迅小說全集 | 을유세계문학전집 12
루쉰 소설 전집
루쉰 (지은이) | 김시준 (옮긴이) | 을유문화사 | 2008-10-20
 

국내도서] 루쉰, 시를 쓰다 - 루쉰시전집  
루쉰 (지은이), 김영문 (옮긴이) | 역락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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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담론을 해부하는 책이 세 권이나 나왔다. 

필자들의 작업이 연평도 사건으로 이어질런지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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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가 갖추어야 할 교양의 내용이나 그 필요성에 대해 두 대담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간의 어두운 면에 관한 정보가 현대 교양 교육에는 결정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이 사회에는 사람을 협박하거니 속이는 테크닉이 무척 많다. 그것은 해마다 발달해서 경계감을 갖고 자기 방어를 하지 않으면 간단히 먹히게 된다. 허위란 무엇인가, 궤변이란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p.190)  

 "대학 교양 과정에는 암흑 사회론, 악의 현상학 코스를 만들어야 한다. 악덕 정치가, 악덕 기업의 거짓을 간파하는 법, 미디어에 속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도 현대 교양의 필수품이다" (p.191)  

멋진 말이다. 교양은 '없어도 그만인 장식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라는 명제에 완전 공감한다. 그러나 두 대담자야말로 '악덕 정치가와 악덕 기업가 그리고 미디어의 허위와 궤변'에 속고  있지 않은가? 

예를 들어 21세기 최대의 화두인 '반 테러 전쟁'은  미국과 이슬람의 두 극단 세력의 대결 구도로 간단히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9/11이라는 '이슬람 테러'로 인하여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게 아니라 그 전쟁에 미국과 나토를 밀어넣으려고 9/11이라는 특대형 이벤트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그들은 아직도 모르는가?  

다치바나는 <홀로코스트>를 현대사의 수많은 참극 중의 하나로 '상대화'하고 있는데 '9/11 방정식'을 적용해본다면 <홀로코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우려고 <홀로코스트>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가설을 갖고 <홀로코스트>의 실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홀로코스트>의 본고장 유럽에서는 감옥으로 보내고 있다.  

국제연합의 협작과 유대 마피아의 폭력으로 세워진 이상한 나라 <이스라엘>은 '국가 수립' 이후 중동을 분쟁지역으로 만들어 영토 확장에 몰두해왔고 국제핵확산금지조약(NPT)가입을 거부하는 세계 유수의  핵무장국이 되었으며 9/11 이후  '이란에 대한 핵공격'을 줄곧 공언하고 있다. 그것은 핵전쟁으로 시작되는 세계전쟁을 뜻한다. 이스라엘이 요구하는 '이란 제재'에  요즘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과 한국까지 합세하고 있는 것은 9/11 이후 지속되고 있는 21세기 최고의 '악의 현상학'이라 하겠는데 두 대담자는 이 중차대한 '현상'에 정면으로 파고드는 '지의 정원'을 제시하기는 커녕 언급도 피하고 있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그들의 극히 피상적인 인식은  사상사에 대해서도 되풀이되고 있다.예를 들어 다치바나는 '고전은 읽을 필요 없다'는 과격한 주장을 펼치면서 서양 고전의 원류라 할 플라톤 사상에 아무런 근거 제시도 없이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플라톤을 폄훼하고 배척하는 풍조는 사상적 암흑기가 도래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악의 현상학'이라 하겠는데 다치바나는 어떤 이유로 이 한심한 유행에 물든 것일까?   

그가 중시하는 '이 세계의 정체성에 대한 지식', 그러한 지식의 '전체상'과 '계통', '해독제가 되는 진정한 교양'.... 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이 책에서 얻었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묻고 싶다.  그가 인용한 마르크스의 말을 빌어 말하면, 그가 겉으로 대표하는 것과 실제로 대표하는 것 사이에는 합리적 연관이 없다.  이것은 인류의 '지의 정원'을 탐색하는 여정에서 그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에, 그리하여 악의 뿌리가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되었기에 불가피한 일이다.  

다치바나와 대담을 한 사람은 일본의 전직 외교관인데 출판사가 소개한 바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우기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함량미달의 대화까지 변역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독자를 모독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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