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주권 - 헤르만 셰어의 21세기 에너지 생존전략
헤르만 셰어 지음, 배진아 옮김 / 고즈윈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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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에너지가 대체에너지라는 저자의 주장은 항간에 유포된 핵에너지의 위험성이나 석유 에너지의 고갈, 환경 파괴 등등의 이유 때문에 일부에서 특히 환경 생태론자들에 의하여 호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태양에너지가 과연 대체 에너지가 될 수 있는가 ?  태양에너지의 존재는 우리가 일상에서 때로는 뜨겁게 느끼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 에너지를  산업 사회의 수요에 따라 공급할 수 있을 정도의 고밀도로 압축, 저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가정의 목욕탕물을 끓인다거나 난방을 한다거나 따위의 에너지는 태양에서 얻을 수 있겠으나  산업사회에서 더구나 지구촌 절대 다수의 빈곤 지역에서 시급한 산업화에  필요한 에너지로 변화시킬수는 없다.  이것은 풍력이라든가 조력 등등의 이른바 재생가능한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태양에너지의 이같은 치명적 한계를 모르는 것일까? 

핵에너지의 위험성은 흔히 체르노빌이나 드리마일 사건을 통하여 익히 알려져 있으나 이 두 사건이  모든 핵 발전소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착각이다. 특히 드리마일 사건은 핵에너지 사용을 원치 않는 세력에 의한 인위적 사건임을 말해주는 정황적 근거가 많이 있다. 석유 자원 고갈에 대해서 말한다면 이것은 이미 1973년 1차 석유위기 때 떠오른 문제다. 그런데 그 때의 석유위기란 유럽과 일본 등등의 석유 부존국가의 경쟁력을 꺾으려고  영미 석유메이저들이 주축이 되어 빌더버그 회의에서 담합, 조작한 인위적 위기였다. 원자력과 석유 자원에 얽힌 이 두가지 사실을 저자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원전 반대 이유중에 하나로 방사능페기물의 위험성이 거론되는데 지금 핵 에너지 의존도가 제일 높은 나라는 프랑스다. (약 80 %) 그럼 프랑스가 세계에서 방사능 오염도가 제일 높은 위험한 나라일까? 방사능 오염이 무서워 프랑스에 못간다는 환경운동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핵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이미 50년 전에 제시되었다. 원자핵의 내부 구성을, 외부에서 중성자를 투입하여 변화시킴으로써 핵폐기물의 방사능 방출 정도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상태에서의 우라늄 광석과 비슷한 정도로 변형 (Transmutation)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오래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유럽 몇 나라에서 뒤늦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1996년 유럽연합의 프로젝트로 채택되어 현재 10개 연구소에서 참여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계획으로는 2015년에 이 기술을 실용화하게 된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다. ( 기술적인 문제는 아래 자료를 참고;

M. Steinberg, G. Wotzak, B. Manowitz: Neutron Burning of Long-Lived Fission Products for Waste Disposal, Brookhaven National Laboratory, BNL-8558 Upton, NY USA 1958.

H. Lengeler: Nuclear Waste Transmutation using High-Intensity Proton Linear Accelerators, Report CERN AT/93 DI Genf 1993.

G. Russel et al.: Introduction to Spallation Target Requirements, Proceedings of the Intern. Conference on Accelerator Driven Transmutation Technologies and Applications, Las Vegas, July 1994.)
 
독일에서는1998년 녹색당이 연립정부에 들어온 후 원자력 발전소의 추가 건설을 중지했다. 그런데 독일 교수 (D. Schwarz)가 일 년 후에 반핵 운동가들에게 원자력발전을 중지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하면 10만 마르크 (5만 달러) 를 상금으로 준다는 공고를 했는데도  아무도 응모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독일 정부에서도 원전 추가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 여론은 물론 유럽 전체를 보더라도 원전 반대 정책은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기술 진보나 더 나아가 핵 융합 발전과 같은 첨단 기술의 실용화를 통해서 에너지 자급이나 환경 보호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고 핵 에너지 아닌 다른 대안이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이것은 한 나라의 국민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독일 교수(Schulten) 가 개발한 세계 최고 기술을 실용화한<고온발전소> (HTR : Hochtemperarturreaktor)를 예로 들면 이것은  도심 한복판이나 주거지에 세워도 안전한 원전으로 알려져  독일 함(Hamm) 에 세워지고 있던 중 녹색운동가들과 독일 원전산업 내부의 경영자들이 <사보타지>해서 폐기 처분되었다. 이 기술을 이용한 발전소는 2000년 12월, 독일이 아닌 중국에서 문을 열었다. 똑같은 사례로 <자기 부상 열차>가 있다. 독일에서 제일 먼저 개발한 자기 부상 열차가 정작 독일에서는 녹색당이 반대해서 실용화되지 못하고 중국 상해시와 공항 사이 30 Km 구간에 수출되었다. 

 독일에서 원자력이나 자기부상열차같은 첨단 기술이 방해받아 온 이유는 이런 기술을 <환경 파괴 주범>으로 매도하는 녹색당의 선전에 대중들이 무비판적으로 수긍하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이차 세계 전쟁이 끝나고 독일을 점령한 미 군정이 독일의 산업화를 가로막는 문화 교육정정책을 폈고,  한때 미국 정보부에서 활동한 <프랑크푸르트 학파> 사람들, 예를 들면 마르쿠제, 아도르노가 미군정 정책을 넘겨 받아   <탈산업화>논리를  <녹색이론>으로 포장하여 <68 세대>라 불리우는 <신좌파>에 유포했기에 고착된 것이다.   독일에서는 지금까지 '헤르만 셰어'처럼 녹색당은 물론 사민당까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에너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했다.  독일에서의 이런 특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은 독일을 에너지, 환경 정책의 선진국으로 추켜올리는데,  에너지 전략을 놓고 우리가 유럽에서 배울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프랑스이지 독일이 아니다.   '헤르만 셰어'가 말하는  <에너지 주권론>은  <국민경제 파괴론>이다.  2002년 '타임'지가  '녹색 세기를 만든 영웅'으로 그를 선정했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하지 않겠는가?

 

 
2007/01/02 16:27 57
<21세기를 여는 한국의 과학자> 제12편...
"화석연료 대체할 무한 청정에너지 개발“ 핵융합연구센터 정우호 박사 (서울=연합뉴스) 이소일 기자 = 태양이 에너지를 발산하는 원리를 이용했다고 해서 일명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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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6-05-26 0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렇게 볼수도 있군요..^^ 원전의 안전성이 만약 님이 말하는대로 안전하다면 그것을 가로막는 세력은 무엇일까요? 대형석유회사들? 이 친구들이 그동안 해온 짓들을 생각해보면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그런데 님이 이야기하신 프랑크푸르트학파사람들이 미정보부에서 활동한 스파이?라는 주장은 좀 믿기 힘들군요. 물론 그들의 좌파적 사상이 환경운동과 연결되어있다곤 하더라도 그것을 그들이 미국의 스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 것은 좀 비약인것 같습니다. 음모론계열에서는 사회주의나 맑스주의사상자체가 음모의 결과다라고 보는 건 아는데..이런 주장은 결과적으로 음모론의 한계를 드러내주는것이라고 보이거든요. 물론 사회주의계열 내부에 몇몇 스파이?들이 있을수는 있지만 대부분은 자생적 사회주의자이거나 좌파활동가들인 경우가 많거든요.

혹시 아도르노나 마르쿠제가 미정보부의 스파이라는 결정적 단서라도 가지고 계신가요?

쿠자누스 2006-05-2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과 자원, 이념을 장악한 과두주의(Oligarchy) 세력의 첫째 생존전략은 대중의 우민화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다수 대중의 이익이 되는 신기술 개발, 과학 문명에도 적대적이겠지요. 사회주의, 맑스주의가 음모의 산물인가는 역사적으로 검토해보아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개인이 스스로 자생적 사회주의자 또는 맑스주의자로 인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마르쿠제는 1941년부터 U.S. Office of War Information (OWI), 1943년부터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OSS), 1945년부터 1951년까지 미 국무성 산하 Central European Bureau에서 일했지요. (http://en.wikipedia.org/) 아도르노는 1937년에 New Yorker Radio Research Project 연구원으로 대중 문화를 인위적으로 구성하는 대중의식 조작/통제 작업에 참여했는데 ‘물주’는 록펠러 재단입니다. 이들이 미 군정의 독일 정책을 이어받았다고 리뷰에 썼는데 사실은 이들이 미군정 정책을 만들었다고 보아야 겠습니다.

쿠자누스 2006-05-2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흔히 '사회비판이론'의 대가들이 모인 곳으로 알려져 있고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널려 있지요. 그러나 그들의 역할은, 나치즘의 배후인 유럽- 미국의 금융자본에 대한 추적을 가로막는 대신 이른바 '권위적 성격론'을 내세워 독일민족에 나치즘의 책임을 묻고 '독일 민족의 탈나치화'를 내걸면서 사실은 독일의 과학, 문화, 철학적 유산을 뿌리뽑는 것이었지요. <포스트 모더니즘>과 쌍벽을 겨루는 현대판 궤변론(소피스트)의 대가들이라고나 할까요...

yoonta 2006-05-26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말씀중..맑스주의가 음모의 산물이냐..하나의 개인이 자생적 사회주의자냐는 다른 문제이다라는 건 동의합니다. 맑스주의가 음모의 산물이냐를 알려면 맑스와 엥겔스에 대해서 좀더 조사해보아야겠죠. 그림자정부에서는 그들도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경천동지할 일일겁니다. 님이 만약 이것 하나만이라도 어떤 확실한 물증을 확보해 발표하신다면..정말 큰 사건이 될겁니다. 911의 음모를 밝히는 것 이상으로요..저는 아직까지는 그것을(맑스나 맑스주의가 프리메이슨의 작품이라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911음모론은 충분히 그럴수있다손 치더라도요..맑스주의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은 단순히 어떤 의도적 조작?으로 꾸며낼수있을 만큼 간단한게 아닙니다. 그만큼 철학적 이론적 기반이 충실한 토대위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설혹 맑스가 프리메이슨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제기한 논의의 의의는 여전히 검토해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론도 마찬가지에요. 비판이론도 만만히 볼만한 주제들이 결코 아니죠. 포스트모더니즘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님이 지젝에 대한 평을 쓰신 글을 봤는데 지젝은 또 포스트모더니즘 즉 리오타르나 보드리야르식의 포스트주의와는 또 달라요. 그의 이론적 기반은 헤겔과 라캉을 근간으로하고있기 때문이죠.

근데 님이 소개하신 권위적 성격론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요? 처음 듣는 듯하네요..^^ 그리고 독일민족이 나치즘에 책임이 있는건 사실아닌가요? 나치즘이 바로 그들 민족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니까요..그것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독일내부에서 있어야만 하는 것이고..또 그것을 이용해 독일의 과학 문화 철학적 유산을 뿌리뽑는것은 다른문제이긴 합니다만...

전 비판이론이 독일의 과학,문화 ,철학적 유산을 뿌리뽑는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유산을 물려받은 이론이라고 보는게 정확한거 같거든요. 전후 독일에서 비판이론의 정치적 이론적 작업이 없다면..무엇이 남아있겠습니까..아도르노의 저작들이나 하버마스의 저작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문화적, 학문적 유산도 별로없다고 보는게 자연스러운거 같은데...^^

그것은 그렇고..마르쿠제나 아도르노가 님이 위에서 말씀하시는 기관에서 정말로 일했다면 그것도 쇼킹한 일임에는 분명하네요..

쿠자누스 2019-11-06 02:31   좋아요 0 | URL
아도르노/ 프랑크푸르트 학파 비판 글입니다
https://wanjeong.net/『계몽의-변증법』의-개몽夢-프랑크푸르트-학파와/?fbclid=IwAR3_43qCfStaH6fsrLrACuUlggE3kFvPZOYzj_UPgS7i0mutmaDF7iqEc3Q

쿠자누스 2006-05-2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쿠제, 아도르노가 이런 저런 곳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는 제가 ‘주장’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료로 남아 있는 것이지요. 그걸 우리가 모르고 있다면 뻔히 사료가 있는데 “왜 모르고 있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해보아야 겠지요.마치 박정희가 황군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교과서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요? '권위적 성격론’이란 독일민족은 권위에 복종하는 성격을 갖고 있고 이것이 나치즘을 수용하는 토양이 되었다는 이론이지요. ‘나치즘은 독일 민족의 죄악이다, 그러니 민족성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독일 민족개조 작업에도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 그런 걸까요 ? 흔히 알려진 대로 나치스가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것이 사실인가 하는 문제는 둘째치고, 나치스의 존재 자체가 독일 민족의 책임이라면 같은 논리로 영국, 미국이 저지른 전쟁과 인종 학살은 앵글로 색슨 민족의 책임이라고 해야겠지요. 인류사의 비극의 원인이 그 어떤 민족성에 있다고 한다면 독일 민족 개조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이제 ‘앵글로 색슨 민족 개조’를 아직껏 해결 못한 21세기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겁니다. 나치스의 범죄는 워낙 악랄해서 그 어떤 범죄와도 비교할 수 없다는 이론도 있지만 이런 이론 꺼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치스를 권력에 세워 폭리를 거둔 국제 금융가의 음모에는 침묵한다는 것이지요.

쿠자누스 2006-05-28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저는 한통속으로 묶어 봅니다. 그들 내부에 어떤 분파가 있는지 모르지만 거기에 무슨 대단한 이론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참고:지적 사기.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현대판 소피스트이기 때문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주한 플라톤을 니체, 하이데거, 한나 아렌트, 아도르노 등등의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하는지 한번 검토해보세요. 그들의 작업은 플라톤에 뿌리를 둔 유럽 고전 문화, 르네상스 문화를 파괴하는 것이었지요. 때문에 전후 독일에서 그들이 남긴 저작은 분리수거의 대상이지 그 어떤 현대적 고전의 반열에 올릴 게 못되고 전후 독일의 문제는 바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헤게모니에 눌려 고전(클래식)문화의 맥이 끊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쿠자누스 2006-05-28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경우, 21세기 초미의 분석 과제인 9/11에 대하여 쓴 걸 읽어보면 그의 세계 인식 수준이 뻔하게 드러나는데 사실 촘스키의 경우도 그렇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이런 사람들이 감히 그런 발언을 공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겁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뻔한 걸 갖고 자기 정체를 드러내는 책을 써야만 하는 그 이유 말이지요.하버마스가 그의 정체를 누구나 알기 쉽게 보여준 것은 1999년, 나토의 유고 침략을 '인도주의적 개입'이라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았을 때지요. <포스트 모던>이건 <비판이론>이건 다 좋은데 인류의 생존을 좌우하는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그저 입을 닫고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쿠자누스 2006-05-28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스, 엥겔스는 충분히 프리메이슨일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인류사에 비범한 인물들은 괴테, 모차르트 등등 대게 프리메이슨입니다. 문제는 공화파냐 과두파냐 하는 것이지요. 맑스의 김나지움 작문을 읽어보면 그가 공화파 사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과두파의 본거지, 대영제국에 살면서 그들의 이념 조작 공작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당대의 과두파 프리메이슨의 세계 관리 전략에 대해서 맑스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림자 정부>에선 무어라고 하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숨겨진 역사를 파헤치지 않고는 답을 찾을 수 없겠지요.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 - 9.11과 그에 관련된 날짜에 관한 다섯 가지 논문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종주 옮김 / 인간사랑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지젝의  9/11 분석에는  '아랍음모론'이 불변의 사실로 깔려 있다. 인류사에 되풀이 되고 있는 테러 공작의 실체에 대해서 그가 일자무식이거나 그 실체를 감히 왜곡할 '용기'가 있음을 공개한 책이다. 믿어서는 안될 기만에 기초한, 쓰여져서는 안될 책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겠다.

 지젝은 1999년 나토가 그들을 향해 단 한방의 총알도 사용하지 않은 유고 연방을 78일 동안 불바다로 만들 때도, 이것은 국가 주권보다 고차원의, 신으로보터 받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말했다. 유고슬라비아 정부를 악마로 묘사한 서방의 여론 선전에 넘어가,  나토의 유고 침략이 세계 정부 수립을 위한,  국제법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평한  독일 '비판 철학의 대가' 유르겐  하버마스와 쌍벽을 이룬다 하겠다.  

 이 책은 <포스트 모던>의 '교주'들이  <현대판 궤변론자>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물증이다.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라는 아리송한 제목도 별로지만 별 하나 부치는 것도 정말 아깝다.    

ps

http://blog.aladin.co.kr/mramor/1989148#C1421831

쿠자누스 2008-03-18 19:40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실재계 사막으로의 환대 - 9.11과 그에 관련된 날짜에 관한 다섯 가지 논문>>(2003년 인간사랑) 이라는 번역본이 빠졌네요. 이건 아리송한 제목도 맘에 안들지만 9/11이 '아랍의 음모'라고 말하니까 정말 한심한 책이지요. 국제정치 현실에 일자무식이거나 세상이 다 아는 걸 감히 왜곡할 '용기'가 있다는 건데 1999년 나토가 유고 연방을 78일 동안 불바다로 만들 때는 “국가 주권보다 고차원의, 신으로보터 받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말했지요. 그게 “세계정부 수립을 위한, 국제법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말한 '비판 철학의 대가' 유르겐 하버마스에 비교하면 지젝도 '막상막하'라는 걸 BBC가 2004년에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네요
http://video.google.com/videoplay?docid=2081592330319789254&hl=de





로쟈 2008-03-18 19:27  

동영상에 지젝이 나온다는 말씀인가요?



쿠자누스 2008-03-18 19:41  

로자// 지젝의 테제가 엉터리라는 걸 보여주는 동영상이지요



로쟈 2008-03-18 21:55  
<실재의 사막>을 읽은 지 오래됐지만 인용하신 대목은 기억하기 어렵군요. 쪽수를 적시해주시길. 국역본으로만 읽으셨다면 오독의 여지가 있습니다...


쿠자누스 2008-03-20 04:42  


로자// <실재의 사막>에서 지젝이 9/11을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지요. 코소보에 대해서 인용한 부분은 그 책이 아니고 어딘가에서 메모를 한 것 같은데 지금 검색을 다시 해보니 거의 비슷한 구절을 하벨이 말했고 -> DIE ZEIT 26/1999 [http://www.zeit.de/1999/26/199926.zizekii._.xml] 지젝은 하벨의 이 발언이 <나토의 레토릭>에 불과하다고 말했네요. “나토가 저지하겠다고 한 코소보의 비극은 나토의 폭격을 통해서 비로소 만들어졌다“는 건 반전주의자들의 주장인데 지젝은 이것도 근거가 없다고 했으니 코소보 폭격을 반대한 것도 아니군요. 유고 분쟁의 책임은 <침략적 민족주의자 밀로세비치와 그의 노선을 지지한 세르비아계 다수 대중>에게 있다고 했으니 나토가 개입한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고 다만 나토가 알바니아계 주민을 정치적인 주체가 아니라 무기력한 희생자로만 보이게 하는 <이데올로기적 조작>을 통해서 코소보를 <보호국>으로 만드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코소보가 올해 <독립 선언>을 했으니 지젝이 불평할 일도 없게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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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9-11
노암 촘스키 지음, 박행웅.이종삼 옮김 / 김영사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번역본이 출간된 시기로 보아 원전이 나온 것은 2001년 9/11 직후인 듯 싶다.  저자로 하여금 9/11은 아랍의 저항이라는 이른바 '아랍 음모론' 을  서둘러 퍼뜨리게 만든 무슨 사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 미국의 대외 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예리한 분석을 하면서도 그 패권 외교를 가능케 하는 권력의 내부 작업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그의  행태는 이번에 처음 드러난 게 아니다. 그는 J.F. 케네디 암살에 대해서도 이것이 권력형 공작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정신나간 음모론자로 매도한 바 있다. <촘스키 9-11>은  그의 지적, 도덕적 정체성에 대하여 다시 의문을 제기하게끔 만든다는 점에서 길이 남을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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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13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성공하는 아이에게는 미래형 커리큘럼이 있다
이지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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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의 저자를 어느 기자가 '이단아'라고 소개했다. <해리포터>를 버리고 플라톤을 읽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이 이 사회에서는 '이단'이라는 말이다.  <해리 포터>에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가 미처  돌아가는 분위기, 이건 영미 자본의 마케팅 전략이 아니고서는 좀체 생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다빈치 코드>,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그리고 언젠가 유행했던 <코스모스>( 칼 사강) 라는 책도 마찬가지다.  이런 책의 공통점은 우주의 법칙을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과학적 사고력을 무디게 하고 마술과 주술,  환각의 이른바 <뉴애이지(New Age)>의 세계관을 주입하는 데 있다. 대중의 비판적 사고력을 거부하는 사회일수록 이런 류의 책들이 기승를 부리고 어중이 떠중이 업자들, 얼치기 지식인들이 장단을 맞춘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인 소피스트 궤변가들 그리고  플라톤 철학을  파괴하라는 밀명을 받고 아카데미에 기어들어온  (페르시아 제국의 간첩)  아리스토텔레스의  떨거지들이 이천 년이 지나서도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다. 잊혀진 플라톤의 저작을 이슬람 학자들로부터 전수받아  르네상스의 초석을  세운 단테를 만난 듯 하다. 저자의 고전 목록에 플라톤 학파와 그 적들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저서들이 뒤섞여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플라톤의 사유 방법을  어린이들에게 체험케 하는 교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적같은 일이다. 희망이 있다는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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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 20세기 유럽, 야만의 기록
피터 마쓰 지음, 최정숙 옮김 / 미래의창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보스니아 전쟁의 원인을 그곳에 사는 세르비아계의 만행에 돌리는 것은 보스니아 사태에 대한 공식버전이겠는데 이것은 서방의 대중 매체를 통해 유포된 것일 뿐 보스니아 분쟁의 진실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미군이 그 무슨 대량 살상무기를 찾으려고 이라크를 점령한 게 아니듯 그 무슨 전쟁범죄를 뿌리 뽑으러 보스니아에 간게 아니다. 미국 영화 wag the dog (http://www.newline.com/sites/wagthedog/Cast/index.html)은 보스니아 사태에 접근하는 전혀 다른 시각을 담고 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비록 꾸며낸 이야기지만 "그들이 뭉치면 모든 걸 믿게 만든다" 는 말은 보스니아 사태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매스콤을 통해서 우리들의 인식을 굴절시키고 의식을 마비시키는 '그들'을 모르고는 보스니아 에서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로 이어지는 전쟁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또 하나, <전쟁 광고대행사 >(2002) 라는 책이 있다. 보스니아 분쟁을 조작한 '그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무릇 전쟁이란 그 어떤 인간 내면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그 전쟁으로 이익을 취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유희에 놀아나는 순진한 대중들이 있기에 일어나는 것임을 유념케 하는 기록이다. 펜타곤의 엄호를 받는 기자들과 서구 통신사들이 토해내는 전황보도에 오염된 사람들에겐 좋은 해독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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