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탑을 켜고 제일 먼저 방문한 사이트는 선거관리위원회. 

21대 대통령 선거> 투개표 > 개표단위별 개표결과를 봤다.
득표수가 숫자로만 나와있어서 백분율은 계산기 두드리면서 계산했다.
내가 사는 동네의 이재명 김문수 득표율 보다 서울 서초와 서울 강남의 득표율 차이가 훨씬 더 컷다.

왜 사람들은 대구 경북 부산 경남만 욕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더 욕을 듣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 곳은 서울 서초, 서울 강남 아닌지?
그 두 동네를 욕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살고 싶은 동네, 내 인생의 목표, 내 부러움의 대상'이라서 인가?

부자 엘리트 기득권이 자신이 부와 권력을 위해서 투표하는 건 이성적인 것이고
지방(시골)의 60, 70대의 노인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비난받아야 할 짓인 걸까?

TK 지역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같은 논리로 서울 강남구, 서울 서초구도 버려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난 그런 뉴스(그런 댓글, 그런 소리, 그런 유튜브)를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서울 강남과 서울 서초의 선거인 수와 TK지역의 선거인 수의 차이는 엄청나다.
계산을 해보니 부울경(6,576,059) 대구경북(4,262692)을 합하면 10,838,751이고 서울서초와 서울강남은 앞의 숫자의 십만 자리 숫자보다 적은 818,585이다. 하지만 천만명이 넘는 TKPK지역 사람들의 부+권력보다 80만 명의 서초 강남 사람들의 부+권력이 더 클 것이다! 

대선 개표 결과 발표 후에 내 주변에 보이는 20대 남자를 보면 어후 이준석 찍은 놈, 내 주변의 60, 70대를 보면 어휴...김문수... 하는 생각만 많이 드는 나날들이다. 그래서 오늘 굳이 선거관리위원회 사이트에 방문해서 내가 사는 동네의 개표결과를 확인해 본 것이다. 적어도 이 동네 사람들이 서초, 강남에 사는 인간들보다 낫다는 것 확인했고 조금의 위로를 받았다.

요즘 뒤늦게 소설<파친코>을 읽고 있기에 서울 서초, 서울 강남의 개표 결과를 보면서 '저래서 110년 전에 나라를 뺏긴 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이미 알면서도) 곱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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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네일 컬러를 정성껏 바르면서 뉴스하이킥에 이재명 후보가 나온 방송을 들었다.

네일 컬러는 이니스프리 월정리(파랑).

알람을 아침 5시로 맞춰두고 잤다.

혹시나 일찍 일어나지면 출근 전 투표, 일찍 일어나지 못하면로 내일로 미루리 하면서 잤는데

4시 40분에 눈이 떠졌다!!

이 미친 각성 어쩔 거냐.


출근해서 회사주차장에 주차하고 회사에서 가까운 사전투표소로 걸어갔다.

기표소에서 투표 도장을 찍는데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지금은 회사.

출근을 너무 일찍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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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남자가 없는 또 한 여자는 책을 읽으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다.


그녀는 붙임성 있는 것도 아니고 새침하지도 않게 책과 워크맨으로 고집스럽게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자궁 병동 / 도리스 레싱>


며칠 전에 갑자기 생각나서 민음사 문학전집 칸에 가서 <런던 스케치>를 꺼내어 이 부분을 읽었다. 막 취업을 했던 20대 중반 시절 내 것이라고는 내 몸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책과 워크맨으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많이 얻었다. 어서 빨리 10년 차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왜냐하면 10년 정도 돈을 벌었다면 '책과 워크맨'이 아닌 인감도장과 집문서, 땅문서, 차량등록증 같은 실제적인 것들이 나의 영역 속에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이가 어리다고, 경력이 없다고 해서 일일이 간섭당할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틴 결과는 무엇인가!

주 5일의 출퇴근이 완벽히 몸에 배어버린 연휴가 오히려 더 불편한 출퇴근중독자(?)가 되어버린 것. 더 정확히는 집을 제외한 또 다른 곳에 내 영역을 두고 싶어서 인 것 같다. 회사에 돈을 벌러 간다기보다 '내 영역'을 지키러 가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 자신이 어리석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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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어요." 그가 말을 계속 했다. "아버지도요. 자기 자신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까지도 파멸의 길로 몰아놓고 있어요. 여기에는 얼마 전에 파이시 신부님이 표현하신 대로 '카라마조프적인 대지의 힘'---대지의 광폭하고 다음어지지 않은 힘이 도사리고 있어요... 이 힘 위에서 하느님의 정기조차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그건 나도 모르겠군요. 내가 알고 있는 건 나 자신도 카라마조프라는 것뿐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 / 도스토예프스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권을 펼쳐보니 고모에게 물려받은 책처럼 누렇게 바래있다. 아주 오래전 구입했을 당시에 1권의 시작 부분 약 50쪽 정도만 읽고 정중히 책장에 다시 꽂아 넣은 채로 이사할 때만 책장에서 꺼내고 이사한 집에서 다시 꽂아두고를 반복했을 뿐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더 이상 읽은 적은 없었던 러시아 막장 가족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그렇게 십 수년이 흐른 지금, 5월! 국가가 정한 가정의 달에 나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기 위해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이런 것이 바로 고전!! 인가 싶다. 


현재 나에겐 가족이 없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일촌과 이촌이 출력되어 나오지만 그 인간들 전부를 내쫓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인연을 끊어내고 싶었던 자들은 나의 생모와 생부, 즉 일촌 두 명인데 껴묻거리로 이촌과 이촌의 자녀들까지 다 쓸려나갔다. 나의 선의와 베풂을 기본 옵션이라고 생각하는 몰염치한 인간들을 파면해버리고 나서 놀란 것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어떤 점이 가장 좋냐면 그 누구도 내 시간에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 즉, 그들의 연락이 없다는 것이 좋다. 저녁에 씻고 침대에 기대어서 하릴없이 이미 읽은 책의 좋아하는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음미하고 있을 때 걸려오는 영상통화가 사실은 싫었다. 난 이미 방전상태인데 내일 사용할 체력을 땡겨쓰면서 나를 기억도 못할 조카에게 과장된 하이톤과 과잉 미소로 혼자 말하는 게 싫었다(조카는 아직 말을 할 줄 모르니까). 또는 특별히 나에게 보내는 것이 아닌 전달하기 기능을 이용해 보낸 십 여장의 사진에 답장을 하는 것도 귀찮았다. 이런 부정적인 마음의 이면에는 내가 조카에게 뭘 해줘도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이촌에 대한 불만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더 정확히는 '왜 이 집구석 인간들은 부모나 자식이나 한결같이 나에게 무임승차하는 걸까?'라는 생각!


이촌들과 나는 나이 차이가 좀 나고 그래서 그들이 학생일 때 나는 직장을 다녔기에 이촌들에게 사소하게 많은 것을 해주었다. 그리고 생부생모도 그 당시에는 현금 수입이 적었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은 내가 전부 사주었다. 세월이 흘러 이촌들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했다. 이촌 중 한 명은 부자 배우자와 결혼해서 돈 걱정 집 걱정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도심의 대형 평수 신축 아파트에 입주했기 때문 인지, 원래도 좀 그랬지만 더 집요하게 사람의 등급을 아파트 평수와 가격으로 매기는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잘 돌아가는 건 아니라서 그 배우자 놈은 인색한 사람이고 이촌은 육아휴직 중이라 수중이 돈이 충분한 거 같지 않아, 내가 이것저것 조카에게 선물을 해주었는데 단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현타가 왔다. '왜 나는 나보다 더 더 더 부자인 사람에게 선물을 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서 제대로 된 고맙다는 말조차 못 듣는가?' 하는 의문이 쌓여만 갔다. 이 점에 대해서 이촌에게 톡을 했고 읽씹 당했다. 그걸로 끝, 사요나라. 


그래서 나는 '아 이촌도 나에게 쌓인 불만이 많았구나. 그래서 이걸 계기로 관계를 끊고 싶은 거구나.'라고 해석했다.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다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고맙다고 말하지 않은 거 미안하다고 답장했겠지. 각자 상대에게 불만이 많고 더 이상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도 않다면 그건 그거대로 평화적인 끝냄 인 셈이지.라고 생각을 정리하고 늘 하던 대로 별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기부 상자에 넣고 택배 보내듯이 이촌도 치워버렸다. 별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던 이유를 이 일기를 쓰면서 깨달았는데, 나는 이촌에게서 그 어떤 정서적 만족감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건 이촌의 잘못이 아니라 아마도 내가 타인에게서 정서적 만족감을 얻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어서 그런 것.


가족이라는 인간관계가 나에게 아무런 정서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내 건강이 망가지지 않았을 텐데. 실제로 그 자들을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난 후에 건강검사 결과가 좋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JTBC 사건반장에 나올 법한 이상한 짓을 나에게 했다는 건 아니다. 나라는 인간 개인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일 뿐. 내가 가족 혹은 가족제도에서 그 어떤 정서적 만족을 얻지 못하는 성향인 것,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정서적으로 풍족한 인간인 것. 그걸 반 평생을 가족이라는 것들과 엮여서 살고 난 후 깨달았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


오늘 같은 토요일에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카톡도 전화도 없는!!) 주중에 있었던 일을 곱씹으면서 일기를 쓸 때 나는 더 없는 충만감을 느낀다. 내가 듣고 싶은 음악(지금은 임윤찬의 베토벤 5번 황제를 듣고 있다)을 마음껏 들으면서. 혹은 무음 상태로 있고 싶으면 무음 상태로 있으면서. 물리적으로 혼자 있을 때의 가장 강력한 특권은 공간을 무음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이 내 시력에 맞지 않은 안경, 내 발 크기에 맞지 않았던 신발이었던 것. 어쩌면 그랬기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 


가족 없이 혼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심지어는 정서적으로 더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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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피어오른 마음은 아직도 꺼지지 않아서 룸투어 홈투어 영상들을 보면서 멍 때리는 요즘이다. 십 년전 나는 체리색 몰딩에 대한 항의로 모던&화이트&그레이&에센셜 오일 한 방을 처럼 블랙을 포인트로 힘주는 유행하는 인테리어를 하고 싶었고, 했다. 모던 & 북유럽 화이트 스타일에 대한 반작용인지 뭔지 요즘은 레트로&앤티크 스타일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감수성이 1도 없던 시절, 철저한 인간중심시대에 제작된 피아노의 찐 원목의 짙은 갈색은 보면 볼수록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중고로 팔려고 했을 때 아는 지인이 그 시절에 만들어진 피아노의 건반과 원목은 정말 좋은 거라고, 요즘은 그런 건 (자연훼손에 대한 여러 규제 때문에) 제작조차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집에 공간이 있다면 소장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어차피 집에 공간은 많으니까 하면서 뒀는데 팔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집에 산지도 얼추 십 년이 되어간다. 그래서일까, 변화를 좀 주고 싶다는 마음이 일렁일렁일렁이고 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순 없으니 커튼 같은 소품이나 가구 정도로 약간의 변주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 그중 가장 큰 야망은 화단 공사이다. 마당의 콘크리트를 뜯어내어 화단을 두 배로 확장하고 화단 둘레에 나무 휀스를 두르고 상추, 고추, 호박을 심고. 야생 장미도 심고 싶다. 여름에 피는 야생장미를 좋아한다. 영화 <백만엔걸 시즈코>에서 복숭아를 따던 아오이 유우룩을 하고 화단에서 풀도 뽑고 돌도 줍고 상추도 캐고 하는 상상만 해본다. 


일렁이는 내 마음을 피아노 다음으로 오래된 이 집의 가구가 눈치를 챈 걸까, 나흘 전 책장에 슬라이딩으로 설치되어 있던 거울이 낙하했다. 거울을 반대쪽으로 미는 찰나 거울이 책장과 분리되어 떨어졌다. 떨어지던 순간에는 내 발등으로 떨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발등은 피했다. 발등에 떨어졌다면 거울 무게로 인한 골절과 거울 유리 파편으로 인한 자상으로 인해 쉽지 않은 치료 과정이 필요했을 터였다. 내 발등 대신 파손 된 것은 거울이 낙하하면서 1차로 떨어진 책장 옆에 있던 파쇄기 뚜껑에 구멍이 생겼고(ㅜㅜ), 2차로 마루 3곳이 움푹 파였다. 마루 블록의 여분이 20여 장쯤 있는데, 내가 셀프로 할 수 있을지는 의문. 깊이 파인 마루의 홈을 보면서, 거울의 모서리가 마루대신 내 발등을 찍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내 몸 다치는 건 보단 마루와 파쇄기가 조금 부서지는 게 훨씬 낫지. 


슬라이딩 거울이 설치된 책장은 일룸 알투스 제품 중 1개로 나는 이것을 책상과 다른 책장들과 함께 2010년에 구매해서 여전히 소중하게 잘 쓰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져본 좋은 책상 세트였다. 아마도 평생 사용하지 싶다. 그런데 나름 책장 도어 역할을 했던 거울이 떨어져서 금이 간 것이다. 화장대가 없던 시절, 나의 화장대가 되어 주었던 소중한 책장이었다. 일룸에 AS 신청하면 거울교체 정도는 해 줄 거 같은데, 어쩌면 거울 교체 비용이 이 책장 전체 당근 가격보다 비쌀 것도 같다. 너무 구형이라 당근에 매물이 없을 거 같지만. 일단 거울은 다락에 올려두고, 거울 뒤에 지저분하게 숨어 있던 잡동사니들을 다 꺼냈다. 신발 상자에 넣어둬도 될법한 깃털처럼 가벼운 잡동사니들이 대백과사전도 거뜬히 수납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책장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잡동사니들(여분의 휴대폰 케이스, 휴대폰 액정필름, 각종 크기의 파우치들 등등)은 다 꺼내서 버리기 아까워서 가지고 있던 각종 명품상자(디올, 미우미우 그리고 우영미 모자 상자(이건 뚜껑 마감에 자석까지 있음!) 등등)들 속에 넣었다. 잡동사니가 비워진 책장 한 칸에는 민음사 세계문학 중 얇은 책들을, 또 한 칸에는 시집들, 또 한 칸에는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를 넣었다. 이렇게 시작된 책장 정리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연휴 내내 정리하지 싶다. 보존 서가(다락)로 보내야 할 책 혹은 작가들이 또 발견되는 중. 현재 보존 서가에 있는 작가는 움베르토 에코와 무라카미 하루키(아련...)


(ps. 내가 얼마나 한심한 수납을 하고 있었냐면, 알라딘 굿즈로 구입한 연약한 플라스틱 본투리드 3단 트롤리에는 책을 꽉꽉 채워 넣어서 책 무게로 인해 트롤리가 앞으로 쏠려 있었고, 책 100여 권은 수납해도 될 정도로 튼튼한 책장에는 가볍디 가벼운 잡동사니들과 여분의 문구류를 수납하고 있었던 것. 현재는 책장에 있던 잡동사니는 트롤리와 예쁜 상자들에, 책장에는 트롤리에 있던 책들을 옮겨 넣었다! 이 책장의 하부도 문이 있는데 이곳에는 오픈형 책장의 하부에 있던 지저분한 서류와 파일들을 넣어 두었다. 서류 중에는 이 집을 지을 때 여러 번 수정해서 받았던 집 설계도 꾸러미, 각종 파일에는 몇 년 치의 나의 병원 영수증이 ㅜㅜ)


일렁이는 마음으로 본 홈투어 영상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을 소개해 본다. 그것은 채널명 문나잇의 5평 원룸 옥탑 / 인생 첫 자취방 영상이다. 에릭 로메르 영화라도 된 듯 나는 이 영상에 홀리고 말았다. 홀린 데에는 집주인의 인테리어 솜씨와 영상 제작 실력도 큰 몫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의 첫 자취방을 떠올리 게 하는 작은 현관과 작은 싱크대 때문이었다. 여자 운동화 세 켤레 정도를 나란히 놓으면 꽉 찰 거 같은 초미니 현관과 완벽하게 잊고 있었던 상판이 스텐으로 되어 있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높이만큼 낮은 가스레인지용 싱크대를 보는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련함... 지금 나는 현관 한쪽에는 가로 1미터 정도 되는 벤치를 두고 벤치에 앉아서 거대한 택배 상자도 해체할 수 있을 정도의 너른 현관을 두고 있다. 현관이 좁은 집들에 살면서 내 집을 가지게 되면 현관만은 기필코 넓게 하리라하는 야망을 품고 있었던 탓. 실제로 집의 평수에 비해서 현관이 넓음. 그릇 건조대를 올려놓고 남은 A4용지 보다 작아보이는 공간에 도마를 올려두고 요리를 하는 그녀와 10배 정도는 더 넓고 좋은 주방에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고 지내는 내가 비교되었다. 각종 요리 재료로 꽉 찬 그녀의 냉장고와 양배추, 방울토마토, 삶은 렌틸콩, 삶은 계란 정도만 들어 있는 텅 빈 나의 냉장고가 비교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세련되고 비싼 인테리어의 넓고 좋은 집보다는 좀 낡은 구식의 오래된 좁은 집에서 저렴하지만 나름의 멋이 있는 것들로 장식한 집의 룸투어가 더 재미있고 좋았다. 위에 언급한 5평 원룸 옥탑 같은 집이 한강뷰의 60평대 아파트 보다 만 배는 재미있었다. 또 같은 5평 원룸이라도 오피스텔은 재미가 없었다. 가장 재미없는 룸투어는 신축 아파트 신혼부부의 집이었다. 재미없는 이유는 너무 뻔해서. 신축 아파트는 대체로 재미가 없었고 구형 주택이나 빌라가 재미있었다. 넓은 평수의 4인 가족이 사는 집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도시탐구라는 채널의 부암동 68평 빌라였다. 구식이라고 남들이 다 뜯어버리는 것을 그대로 두고 재치 있게 살려두고 활용하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5평 원룸(채널명 문나잇)도 마찬가지인데 모두가 혐오하는 체리 몰딩을 기적처럼 살려서 예뻐 보이게 한다. 내 평생에 체리몰딩이 예쁘다고 느꼈던 건 제주도 해비치 호텔이 유일했다. 그때 알았다, 체리 몰딩은 대형 평수의 고급 주택의 고급 진짜 체리목 가구(mdf에 체리색 시트를 붙인 게 아닌)에서 빛이 난다는 걸. 이 견고했던 생각을 깨 준 게 유튜버 문나잇이었다. 체리색 시트를 바른 몰딩도 꾸미기에 따라 예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상하게도(또!!) 최신 인덕션레인지에서 브랜드 제품의 유행하는 냄비로 요리하는 장면보다는 낡은 가스레인지에 재래시장의 그릇 가게에 팔 법한(다이소 말고 천냥 마트) 먹색의 작은 편수 냄비로 하는 자취생 요리 영상이 그렇게나 재미있다. 예를 들면 5평에 살던 문나잇 요리씬들. 하지만 문나잇도 점점 구독자가 늘고 광고 협찬도 생겨서 요리 도구들이 세련되어짐에 따라 재미는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도 그런 일상 브이로그 유튜버가 있었다. 인기가 늘어날수록 초창기의 소박함이 없어져서 영 안 보게 되다가 요즘 다시 생각나서 초창기 영상 몇 개를 봤다. 지금의 화려함보다는 초창기의 소박함이 백 배 정도 잼났다.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발전하는 게 동기부여가 될 것이고 지금의 화려함이 좋을 테지. 나 역시 그러할 테니. 나보고 지금보다 작은 집, 작은 차 등 모든 걸 다운그레이트 하라고 하면 할까? 


나는 내가 더 많은 부를 누릴 능력이 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더 소박한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좋은 집의 좋은 인테리어로 채워진 집에서 아파트 광고 속 인물처럼 사는 사람보다는 작고 오래된 집에서 정갈하고 개성 있게 사는 사람을 봤을 때 경의와 감탄을 하게 된다. 승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내가 졌네.'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소박함을 즐기는 자들이 종종 있다. 그것은 마치 권여선의 소설 <레몬>에서의 주인공 한만우 남매의  1인 두 개의 계란 후라이처럼. 한 개는 맛소금, 한 개는 케첩으로 먹는 근사할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반찬이 유명 셰프의 예술 작품 같은 요리와 소스들보다 더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처럼.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이 작은 캠핑카의 공간을 늘리기 위해 매트리스 아래에 서랍을 두고, 남편의 목재 낚시 상자를 벽에 달아서 뚜껑을 열어 작은 초미니 테이블로 사용하는 것을 볼 때, 나는 굉장한 부러움과 경의를 느끼곤 한다.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다. 오늘 아침에도 봤다. 요즘 제일 자주 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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