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또 미루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었던 위내시경 검사를 드디어 했다. 위가 딱히 불편하지도 않은데 위 속으로 내시경을 집어넣는 게 싫었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검사를 하라는 거야! 또 다른 이유는 수면내시경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내 또래의 그 누구보다 CT, MRI를 많이 찍어서(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찍을 ct를 다 찍고, 조영제도 다 맞았을지도 ㅜ 라고 생각하면 피눈물이 난다. 그럴 때마다 HBO 드라마 <체르노빌>에서 엄청난 피폭을 당했지만 정상 아기를 출산하고 70세 넘도록 살았던 실제 인물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얻는다.) 방사능과 조영제를 건강기능식품 또는 비타민 수액처럼 몸속으로 집어넣고 사는 내가 고작 수면내시경 진정제 약물과 부작용(가끔 보는 수면내시경 받고 사망했다는 뉴스)이 두려워서 내시경을 미루는 것이 어딘가 부조리해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현시대의 과잉의료가 싫고, 최대한 피하고 싶기에, 병원에 가서 뭔가를 검사하는 거 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내 입장에서는 질병에 대한 확인사살 같은 거라서... 꺼려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위내시경 검사에서 위염 진단을 받긴 했지만, 의사가 따로 약처방을 해준 것도 아니고 내가 불편한 걸 느끼지도 못해서 시력저하 같은 거로 가벼이 여기며 지냈다. 위? 나는 더 심각한 곳에 질병이 있어서 위 따위 돌볼 여유가 없기도 했다.
수면이냐 비수면이냐도 고민이어서(비수면 위내시경은 해본 적 없었다) 주변에 물어보니 희한하게도 다들 비수면 위내시경을 받고 있었다. "그거 뭐, 우엑 서너 번 하면 끝난다."는 게 공통의 후기였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수면할지도 모르니까 자가용 대신 버스 타고, 이 병원은 처음 가는 병원인데 지인이 항상 여기서 비수면 내시경 한다고 해서 추천받음), 병원에서 접수를 기다리면서도 수면이냐 비수면이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간호사는 당연하다는 듯 "일반으로 할 거죠?" 그래서 나는 "수면 안 해도 할 만해요?"라고 물으니 간호사는 "3분만 참으면 돼요. 금방 끝나요."라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위내시경 관련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서 요즘 내시경은 선이 가늘어서 비수면하기 쉽다는 걸 읽고 휴대폰 충전선 굵기 정도를 예상했는데 내 눈에 보인 내시경 선은 과거의 TV유선 케이블 선만큼이나 굵어 보였다. 하지만 비수면 위내시경 검사에서 공포 그것이 전부였다. 실제 내가 체험한 비수면 위내시경은 목구멍이 꽉 차는 느낌과 세 번의 트림(이것이 그 우엑 서너 번인 듯)과 약간의 눈물이 전부였다. 간호사는 검사 시간을 3분 정도라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1분 정도. 십이지장 입구까지 내시경이 들어갔는데도 뱃속에서 별 느낌이 없었다.
내가 이렇게 둔감한 인간이었다니!!!
잠시 뒤 진료실에 가서 나의 위 내부 사진을 봤다. 경악하고야 말았다. 의사는 "이 정도면 아팠을 텐데." 라고 말하면서 약 먹으면 낫는다고 2주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내 위산이 피가 날 정도로 위 점막을 손상시켰는데도 통증을 못 느꼈다니... 이러니 내가 타인의 고통을 어찌 예상하겠는가 말이다. 내 고통도 제대로 못 느끼는데...
내가 이렇게 둔감한 인간이었다니!!!!!!!
내 위가 왜 이렇냐고 물으니 의사는 "스트레스, 수면부족, 맵고 짠 음식이 원인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난 셋 다 해당 안 되는데... 더 나아가 기름진 음식, 과식, 야식도 안 하는데.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 2년 전 검사에서 공복혈당과 간수치가 지나갔듯이. 그 언젠가에는 빈혈이, 또 다른 언젠가에는 HDL이 그렇게 지나갔다. 중요한 것은 회복력! 내 위도 회복하겠지... 지나가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한 위가 버틸 때까지 살다가 죽는 거지, 별 수가 있나. 어차피 죽으려고 태어난 건데.
위내시경 결과는 맘에 들지 않지만(약 먹으면 낫는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보기로) 미루고 미루던 위내시경을 해서 홀가분하고 비수면 위내시경 검사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기분이 더없이 좋은 날이다.
ps. 어제부터 지금까지도 유튜브 명의들의 위염 관련 영상을 숨 쉬듯 듣고 있다. 손빨래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양배추를 채 썰면서, 집 정리는 하면서,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듣고 있다. 조물주가 있다면 인간의 몸을 왜 이리 복잡하고 나약하게 만들었는지 물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