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표는 오래된 유산이다. 그 정확한 모형은 아마도 수도원에서 유래되었을 터인데, 그 형태는 급속히 확산되었다. 수도원에서 사용되어 온 세 가지 주요한 방식-시간 구분을 확립하고 일정한 업무를 강요하며, 반복 주기를 규정하는 일-은 아주 일찍부터 학교, 작업장, 병원에서 재현되었다. (중략) 우선 정교하게 다듬어서 15분, 분, 초의 단위로 계산하기 시작한다.(중략) 즉, 끊임없는 통제, 감시자에 의한 압력, 작업을 방해하거나 산만하게 하는 모든 요소의 제거가 그렇다. 시간을 완전히 유익하게 구성하는 일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미셸 푸코 / 감시와 처벌>
남동생이 광복절 연휴에 조카를 보러 오라고 해서 KTX로 천리길을 다녀왔다. 남동생 부부는 육아에 재능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거대했다! 상위 1% 사이즈 아기라고 했다. 아기의 루틴은 이랬다. 7시 30분쯤 일어난다. 분유를 먹는다. 논다. 분리불안 단계라서 혼자 잘 놀더라도 옆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 깬 지 3시간 전후로 오전낮잠 1시간 내외로 잔다. 일어나면 이유식을 먹는다. 양치질을 한다. 또 논다. 분유를 먹는다. 낮잠에서 깬 지 3시간 후쯤 오후 낮잠을 1시간 정도 잔다. 깨어나면 이유식과 디저트를 먹는다. 또 논다. 7시 전후로 목욕을 한다. 마지막 식사로 분유를 먹는다. 양치를 한다. 20시가 지나면 잔다. 아기는 아기방에서 혼자 스스로 잠든다. 아기방에는 캠이 설치되어 있고, 부모들은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으로 아기의 자는 모습을 확인한다. 아기의 하루는 5끼의 식사, 2번의 낮잠, 1번의 긴 밤 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루틴은 99.9% 지켜졌다. 외출 시에도 지켜졌다! 그 어떤 방탕도 나태도 없는 완벽히 갓생 하는 아기의 하루였다.
아기의 일과에는 그 어떤 불쾌도 불결도 없는듯 했다. 집안의 온도와 습도는 늘 자동으로 조절되었다. 발달 단계에 맞는 국민 장난감(feat. 당근)들이 가득한 거실의 놀이 공간. 기어 다니는 아기의 안전을 위한 아기매트와 울타리. 똥오줌을 한가득 싸더라도 뽀송한 기적의 기저귀. 적외선 온도계로 측정해서 먹이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홈메이드 친환경 유기농 이유식. 마찬가지로 수전에 설치된 온도계로 조절한 체온에 가까운 온도로 채워지는 아기 욕조의 물. 마지막으로 국민 아기침대 일룸 쿠시노까지!
완벽한 양육을 받는 최초의 인류, 다른 인류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불쾌와 불결이 99% 제거된 상황에서의 아기의 일과란 어째 좀 SF블랙코미디 같았다. 아기는 먹기 싫은 분유를 먹어야 할 때 외에는 거의 울지 않았다. 하루의 70%는 웃었고, 그 웃음의 절반쯤은 아무 이유도 없이 웃는 것이었다.
어쩌면 푸코는 인간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크라임에 쩔어 있는 나에게 인간의 디폴트는 범죄요, 처벌이 곧 구원이다..라는 생각... 감시가 안전이요, 처벌이 정의인 5G 시대에 푸코가 살았다면 어떤 책을 썼을지 매우 궁금해진다. 내 조카의 일과를 양육이 아님 사육이라고 했을지도 모르지. 내가 요즘의 반려동물을 보고 저건 동물사랑이 아니라 동물학대다라고 하는 것처럼.
240819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