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됨을 비관하는 나를 본 동생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말하는 기독교 신자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곰곰히 되씹어 본다, 그 말을. 

하루하루 인간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누적될 수록 인간의 열악함에 대한 증거도 누적되는 게 사실이다. 나의 모든 결론은 '그러니까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로 귀결된다. 


왜 조물주는 육식동물을 만들었을까?

갓 태어난 송아지의 몸에 뭍은 태반을 어미소가 혀로 닦아낸다. 송아지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네 다리로 선다. 그 송아지는 아주 귀엽운 어미소의 소중한 새끼지만 1년 정도 사육된 후 도축당해 소고기로 포장되어 마트의 진열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어미소는 매년 한 마리의 새끼를 낳지만 한 번도 교미를 해 본 적이 없다. (인간들이 늘 섹스섹스 부르짖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리고 구제역이 돌면 산채로 매장당하기도 한다.(covid-19에 대처하는 인간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나는 이제 소를 가축으로 만들어 식량자원으로 사용하는 인간을 탓하진 않는다. 대신 육식동물을 만들어낸 조물주의 소시오패스스러운 작태를 한탄한다. 헛소리를 좀 더 보태자면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가 조물주의 모습이 아닐까 의심도 해본다. 육식동물을 만든 이유가 도대체 뭘까???? 내가 조물주라면 육식동물은 결코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애니<주토피아>를 보면 "일부 육식동물에게는 savage한 본성이 남아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인간들을 볼 때마다 너의 savage가 드러나는 바닥은 어디쯤이니? 라고 무언으로 묻는다. 그 바닥의 얕음에 언제나 가소로움을 느끼면서 '아, 역시 태어나지 말았어야했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번 주말에도 사회적 거리유지는 무시하고 나들이를 나간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 멍청이들이랑 같이 살아가야 하다니,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라고 또 생각한다.


당신의 바닥, 당신의 savage. 


대자연을 누비면서 사냥을 하고 싶은 야만의 본능과 covid-19시절의 나들이와의 연관성을 나 혼자 곰곰히 또 생각해 본다. 


이 글의 브금은 주토피아 주제곡 <try everything>이 적당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자신의 이기심에 충실한 새비지 육식동물에게 적당한 곡.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라. 너 같은 인간들이 꼭 번식에 성공하니까. 난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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