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쉬프랭, <열정의 편집>,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4
p.67
부엌을 거쳐 옹알거리는 어린 딸아이를 지나 원고로 가득 찬 책상으로 걸어가서는 일을 시작했다.
p.159
서점 매대 위에 놓인 책의 신세를 우유에서 요구르트가 되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요구르트가 되기 전에 팔리든지, 아니면 반품되어야 하는 것이 우유의 운명이다. 우리는 모든 책의 표지마다 유효기간 도장을 찍어주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농담했다. 유효기간을 찍는 일은 이제 서점이 대신 해주고 있다. 점점 더 빠르게 반품하면서 말이다.
p.177
(북 클럽의 과거모습을 그린)... 우리는 양치기였습니다. 독자라는 양떼를 좋은 책이 있는 들판으로 몰고 가지요. 양치기는 천국에서 보상을 받습니다. 속세에서 부득이하게 금전적으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말입니다.
p.207
인터넷의 보급은 지금까지 논의한 이 모든 과정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온라인 홍보에 필요한 막대한 광고비를 댈 수 없는, 즉 적은 부수를 발행하는 저자나 출판사에게도 인터넷이 동등하게 유효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현재 e-비즈니스 회사들은 막대한 광고비를 쓰고 있다. 한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출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돈은 작은 출판사의 한 해 예산보다 더 많은 금액이다. 인터넷은 분명 첨단기술의 진보가 이루어낸 기적이지만 오늘날의 이익우선주의 체제를 깨부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p.232-233
금전을 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지배한다는데 누구나 동의한다. 이에 대항하는 힘이라고 여겨졌던 가치관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 재산이나 노동은 물론, 결국 우리 자신까지도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입찰자에게 팔리고 다시 되팔리는 상품이 됐다... 미디어가 다국적 산업화가 되고 있는 이 때, 그 영향력은 가히 가공할 만하다.
출판에서 일어난 변화는 다른 자유직업에서 일어난 변화에 비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출판의 변화는 비교할 수 없는 결정적 의미가 있다. 책은 전통적으로 하나의 매개체로서 구실했다. 어떤 의견이 중요하다는 데 저자와 편집자 두 사람이 합의하고, 비교적 적은 자금으로 이것을 대중에게 전하고 확산한다. 책은 여타 미디어와 성격이 다르다. 잡지와 다르게 광고주의 의향에 좌우되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영화와 다르게 대량의 시청자를 얻어야 할 필요도 없다. 책은 사상을 일으키기 위해, 현상유지에 도전하기 위해, 주류를 거슬러 오를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독자들이 받아들이리라는 희망이 함께한다. 이같이 책과 책이 담은 사상-‘사상의 자유시장’으로 알려져 왔던-에 대한 위협은 위험한 변화다. 직업출판인에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게 그렇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부분, 즉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뉴 프레스와 작은 독립계 출판사들은 여기에 도전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달성한 것보다 더욱 큰 노력이 요구된다. 사상의 선택지가 한정된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폭넓고 다양한 논의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앞으로 미국과 해외에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요컨대, 우리의 삶에서 책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녀왔는지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