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이 드높은 강당 앞쪽에 말끔하게 잘생긴 젊은이가 서 있다. 김태원 씨다.
<젊은 구글러가 세상에 던지는 열정력>의 저자.
오늘의 강의 주제는 "상상력" 이다.

사실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를 직접 뵙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 신청한 강의였다.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얼굴에, 언제나 무언가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그분을 실제로 한번 뵙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 변호사님의 강연은 2부 순서였고, 먼저 구글에서 일한다는 똘똘하게 생긴 젊은분의 강연이 시작되었다. 


화면 가득 벌거벗은 갓난아이의 사진이 펼쳐진다.

보통의 강연이라면 강의 주제, 주의를 전환시키기 위한 문제제기, 그것도 아니면 일단 주저리 주저리 자기 프로필을 열거해놓고 시작하기 마련이다. 가족 사진이나 특별한 자격증, 거래하는 유명 회사 로고를 보여주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거시기를 귀엽게 가린 아기 사진 달랑 하나라니.

누굴까? 자기 사진일까?  (우후훗~ 여자분들, 난리났다.)
남자애일까, 여자애일까? 무슨 상황일까? 언제적일까?


여인의 알몸과 함께 본능적으로 인간의 주의를 확 끌어당긴다는 아기 사진. 돈과 함께 지갑에 넣어 길거리에 던져두었을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갑 주인을 찾아주게 만든다는 마력의 그 사진. 무의식적인 호감도를 상승시킨다는 벌거벗은 아기 사진 한 장이 강연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프리젠테이션의 맨 첫번째 페이지에 능청스럽게 떠 있다.

사람들이 으하하 웃으며 사진의 주인공이 강사가 아닐까 궁금해하고 있을 동안, 청중의 허를 찌르는 멘트 한 마디.

"저는 이번 강연에서, 잘 보이려 하기 보다는 이렇게 솔직하고자 합니다."

와우, 이 사람, 정말 '전문적인 강사'로구나! 하는 생각이 팍 스쳐 지나갔다. 초반부터 보통 솜씨가 아니다. 시작할 때 무선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 찍~찍~ 노이즈가 신경을 거슬렸지만, 이내 마이크를 끄고 육성으로 강연을 이끌고 나가면서도 무리가 없었다.

큰 이미지, 단어 하나, 아니면 숫자 하나를 화면에 툭 던져놓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UI = User Interface"
"2010 - 2008 > 2"
"Technology < Culture"
이런 식이다.
더하기 빼기나 부등호와 같은 수식을 써서 키워드를 표기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딘가 유튜브에서 본 스티브 잡스 스타일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만큼 흡입력이 있고 흥미진진한 강의였다.

이날 강연에서 그는 <기발한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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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과연, 창의력/상상력이란...? (Creativity is...?)

- 창의력은 지능이 아니라 "태도"
  : 지능(교육/책으로 향상 가능하다는 관점)
 vs. 태도(경험/세월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관점)

- 다양한 관점, 다양한 UI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창의력
  : 자신이 생각해본 오늘 강연의 제목 =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법"
  ☜ 창의력, 상상력이라는 토핑을 뿌려주기


강연 내내 수 많은 이미지와 알쏭달쏭한 숫자들이 눈 앞을 지나갔다. 꿈 보다 해몽이라던가? 저게 도대체 무얼 설명하기 위한 걸까 호기심을 가지며 따라가는 동안, 젊은 구글러는 뻥 뚫린 프리젠테이션의 빈 여백들을 때론 짠하고 때론 기발한 설명들로 메워나갔다. 강연 중간중간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며, 어릴적 시골에서 자란 에피소드들도 끼워넣으면서 인간적인 공감대도 잘 형성해 나갔다.

어느새 1시간을 훌쩍 넘겨 흥미진진한 강연의 마무리. 자신을 '생선남'이라고 칭한다. '생각을 선물하는 남자' 라나? (꺄아~ 여성들 한번 더 쓰러지신다.) 어느새 화면에는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 이미지가 떠 있다. 강연 내용이 '창의력/상상력'이었지만, 그 강연의 형식과 프리젠테이션 자체가 주제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듯한 한편의 멋진 '쇼'였다.  (짝짝짝~~!)  

 



 

2부는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상상이야기>를 내건 박원순 변호사님의 순서.

지금껏 해오신 일 때문일까? 큰 바위 얼굴 같은 '큰 인물'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막상 뵙고 보니 뭔가 좀 그게 아닌거다. 쉬는 시간 화장실 앞에서 얼떨결에 대면했던 '머리 벗겨진 아담한 체구의 시골풍 중년 아저씨'가 바로 그분이었던 것. TV에서 멀찍이 뵙던 것과는 다른 체구, 다른 목소리였다.

허스키하고 힘있는 저음, 서울 말씨지만 투박하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온 깊이가 새겨진 얼굴. 밭에서 막 캐낸 흙 묻은 돌감자 같은 느낌이었다. 앞서 너무나 매끈하고 세련된 젊은 강사의 강연을 들었던지라, 그 투박함과 두서없음이 더욱 두드러졌다.

"온 국민이 지지하는 운동을 왜 합니까? 지지하지 않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운동'이잖아요. 그래서 운동은 늘 '마이너리티 운동'입니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힘'이 있었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남 먼저 묵묵히 걸어온 자만이 가지게 되는 조용하고 무서운 힘. 27살에 검사가 되어 지역 유지들에게 '영감' 소리를 들었단다. 그러나 사회의 부조리를 접하곤 이건 아니다 싶어 1년 만에 그 자리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억울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런데 남의 고민을 돈 주고 사오는 그 직업도 만만치 않더란다. 그 때 머리가 반이나 벗겨지셨다고 했다.


이야기는 이곳을 쿡, 저곳을 쿡 찌르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사회혁신 전문가 학교, 모금 전문가 학교 얘기를 잠깐 꺼냈다가 뜬금없이 네덜란드 국립공원에 있는 나무 사진으로 넘어가서 '선진국은 감수성에서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희망제작소 쪽에서 준비해온 제법 괜찮은 프리젠테이션이 있었지만, 기기 조작에 서투르고 자신의 그런 서투름에도 전혀 당황하거나 개의치 않으셨다. 심지어 강연도중 PC가 재부팅 되는 사태가 발생해도 끄덕없다. 이래뵈도 Twitter도 할 줄 안다면서 오히려 여유롭다. 뭐랄까, 막 밀어붙이는 '좌충우돌 박 부장' 같은 이미지?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마구 진행시켜서 아랫사람들이 뒷감당 하느라 쩔쩔매게 할 것 같은 그런 윗사람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엥? 온화하고 점잖고 음지에서 조용히 사회개혁을 하는 그런 분이 아닌거잖아? 아이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막연한 '이미지'가 강연시작 10분 만에 보기 좋게 나가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늘 고생한다며 껄껄 웃으시더니 어디쯤 왔는지 모를 이야기를 다시 이어 나가신다.

제한된 시간 내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는지, 여기저기 휙휙 옮겨가며 진행이 되었기 때문에 아래에 인상깊었던 몇 가지만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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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 분은 "꿈"을 이야기하셨던 거다.

앞의 강의가 무언가 참신한 시각을 보여주었다면, 뒤의 강의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였다. 내 꿈은 어디에 있지? 사는 목적이 뭘까? 무엇을 버려야 무엇을 얻을까? 등등...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상상력'이란, 펜대 굴리며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새로운 발상' 이나 '말랑말랑한 몽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 한계를 설정해놓지 않는 열린 생각, 미래를 내다보는 Vision, 남이 안하는 것을 과감히 할 수 있는 용기와 열정,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보듬어 안을 줄 아는 감수성과 꿈... 이런 개념들이 상호 융합되어 자신과 내 주변부터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보다 광범위한 행동력을 가진 개념이었다.

변호사이고 유명인이니 논리정연하게 말씀을 잘 하실 것이라는 기대는 5분도 안되어 휑~ 날려 버리셨지만, 꿈과 희망이 있다면 무엇을 바꿔나갈 수 있는지를 이 분은 자기 인생을 통해 몸소 보여주고 계셨던 거다.


그제서야 미리 나눠준 <희망제작소> 안내 팜플릿에 시선이 옮겨졌다.

"I hope, therefo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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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리며, 이처럼 유익한 '상상력'이 사람들 가슴에 꽃을 피워 더 나은 삶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다.

<박원순 + 김태원 '상상력' 강연회>
◆ 일시 : 2010.11.3(수) 19~21시
◆ 장소 : 강남 교보문고 23층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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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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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8 2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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