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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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가들은 많다.

시대가 혼란할수록 많아지고

또, 시대의 흐름을 따라 부침도 심하다.

 

우리 시대의 사상은 무엇이었을까.

 

비전향장기수들의 이야기를 하거나 들을 때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 일에 관여된 인생의 기간도 별로 없고,

관련된 인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심도 없다.

내가 살아가는 일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공무원의 딸로 자라난 어린시절을 가졌기 때문에 특히나 더 그랬다.

운동권. 이라는 말도 거의 무색할  때 즈음에 대학을 다녔다.

오히려 명색만 있고 명분은 없는 운동권에 비판을 가하는 대학생이었다. 나는.

 

인간연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수록 이해가 되고 마음을 쓰게 되는 책이었다.

그것이 사상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글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이 성숙해 간다는 것은 나이를 의미함이 아니다.

윤혁이라는 인물의 정치적 성숙은 그야말로 그의 나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이해. 사람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기 인생을 빛내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죽음 앞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전향이 자기 의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어했던 박동건과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으나 전향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이어나가는 윤혁이라는 두 인물을

마치 도식화하듯이 드러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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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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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봐야지 라고 쭈욱 생각했던 작품이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당근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일본 소설은 내 취향이 정말 아니다. 싫다거나 재미없다거나 그런 것 보다는 그야말로 읽는 '취향'의 문제다.

 

아무튼

이 소설은 원래 단편으로 쓰고자 했던 <반딧불이>가 장편화 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를만큼 장편으로 이어지는 부분이 매끄럽게 처리되어있다. 바느질 잘 하는 퀼터의 작품을 보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 ㅎㅎ

가와무라 미나토씨는 이 소설의 제목 노르웨이의 숲에서 숲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인물들의 삼각관계에 대해 고찰했는데, 매우 흥미로운 해석이었다. 1:1의 단독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삼각관계를 소재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걸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 작품을 이어가는 삼각 관계는 매우 다양하다. 처음에는 기즈키-와타나베-나오코 에서 시작하여 나오코-와타나베-미도리 , 나가사와-와타나베-하쓰미, 나오코-와타나베-레이코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을 둘러 싼 관계는 둘 만 대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셋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여러가지 관계는 차치하고 작품의 두드러진 삼각관계만 보자면, 나오코-와타나베-미도리 라고 할 수 있는데, 나오코는 기즈키와, 미도리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남성과 연애를 한 경력이 있다. 나오코는 심약하고 죽음을 껴안고 살아간다. 반면에 미도리는 주변을 돌보며 삶을 상상한다. 그래서 나오코는 죽음의 느낌을 미도리는 삶의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와타나베는 '죽음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기즈키의 죽음을 경험한 후 부터 생긴 것이지만 그 때문에 그는 삶을 살면서도 죽음에 가까이 있음을 상기하고 있다. 죽음을 늘 상기하는 사람에게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개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도리의 응석을 늘 받아주는 입장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오코에게만 온 마음이 가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우리가 청년일 때에 경험하는 그것. 삶에 대한 허무함. 노곤함. 그것이 모두 응집되어있는 그녀. 나오코가 그의 열병의 대상인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결국 와타나베는 미도리를 선택한다. 그리고 곧 나오코는 죽는다. 삶을 긍정하고 생동감있는 삶에 마음을 둘 때 죽음은 함께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언젠가 곧 죽는다고 하더라도 삶은 늘 긍정적인 것이며 그것과 함께 살아가고자 할 때에는 염두에 두지 않게 되는 것처럼.

 

예기치 않은 기회를 맞아 장장 4시간에 걸쳐 탐독하게 된 상실의 시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더 쓰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나중에 또 써 봐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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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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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집이다. 제목으로 사용된 깊이에의 강요는 한 평론가가 격려하라고 한 말 "재능은 있으나 깊이가 없다"는 말에 자극받은 유능한 여화가가 파멸하고 결국 자살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평론가는 그녀의 후기작에서 깊이에의 강요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깊이를 강요한 것은 평론가인가 그녀 자신인가. 그녀를 파괴한 것은 평론가의 생각없는 한 마디인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그녀인가.

 

태도만 초 고수급의 사나이가 진짜 고수인 체스의 달인과 맞붙는다. 사람들은 사나이의 초보적인 수들을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고 진짜 고수 장조차도 엄청난 적을 만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사나이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상태로 체스를 끝내버린다. 장은 이기기는 했지만 심리적으로 그에게 졌다고 생각한다. 초보와 초고수. 그 엄청난 차이를 인지하는 우리의 시각. 진실을 진실이 아닌 것으로 믿으려는 편견.

 

장인인 뮈사르가 인류의 종말에 대해 유언한다. 그는 정원을 파내려가던 중 발견한 돌조개가 넓은 범위로 퍼져있음을 확인하고는 세계의 표피 속에는 돌조개들이 자라나 자연을 침식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조차 돌조개처럼 굳어져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남기며 그는 자신이 그 거대한 비밀에 접근했기 때문에 일찍 죽는다고 한다. 인간이 굳어가고 있는가. 그것은 사실인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뮈사르의 선언이 아닐까.

 

문학작품을 읽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한참 뒤에도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반응을 보이는 문학가. 그 책의 내용을 이해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그것이 아무런 것도 남기지 못했을때. 우리는 그 책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단편들은 조금은 어렵다. 스토리가 매우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능성. 모든 해석을 고려하게 만든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계속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은 희화화된 것일까, 아니면 진실된 인물일까. 우리는 주인공에 대해 가질 태도를 설정하는 데도 한참을 고민하게 된다. 주인공의 성격을로 보아 이 비판은 타당한 것일까. 각도를 달리하면 이런 말은 이렇게도 이해되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의도는 오히려 주인공과 반대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 해석했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해석이 밀려 올라오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어쩐지 단편이라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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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의 새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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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도둑과 40마리의 염소>, <궁전의 새>가 들어있다. 전자는 신문에 연재했던 것이고 후자는 인터넷에 연재했던 것이니까 연재물 모음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주인공은 원두라는 아이로 마을 제일가는 부자의 손자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들, 대개 성장기에 반항하는 이유로 드는 뭐 그런것들 때문에 도둑질을 하는 이야기, 그리고 바보같던 친구가 성공하게 되는 이야기로 간단히 줄거리를 정리할 수 있겠다.

 

그의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이 술술 읽히기에는 부담이 없다. 그의 소설에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그는 더이상 깊이 파고들어가거나 그를 통한 문제제기를 던지려고 하지 않는다. 혹은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마치 물가에 가까이 다가가서 발끝만을 물에 넣어보고 돌아오는 것 같달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의 깊이를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가 말했듯 자신의 책 판매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그 약간의 부재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 읽을 거리 이상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뭔가. 물론 어떤 책들은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모든 책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읽을 거리인 책들도 있고, 그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tv에 교양도 있고 오락도 있는 것처럼. 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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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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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발터 뫼르스는 1957년 독일 묀헨글라드바흐에서 출생하여 만화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고 1985년 최초의 책을 출간하여 독일 함부르크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 <엔젤과 그레테>는 허구의 대륙 차모니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루모와 어둠속의 경이로움> - '루모와 어둠속의 기적'으로 출간됐다.- 역시 차모니아 배경이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두 책 모두 한국어판이 나오기 전이라 전작을 먼저 읽고 읽을 수 없어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는 작가이다. 작가는 미텐메츠를  주인공이자 원 저자로 묘사하고 있다. 자신은 차모니아어를 번역하여 썼을 뿐이라는 말이다. 작가들은 떄로 이런식의 트릭을 쓴다. 박지원도 그랬고. 과거에는 자신이 쓰지 않았다는 방어기제로 활용했지만 이번 책에서는 주인공의 존재를 좀 더 사실화 하고 싶어서라고 생각된다. 살아있는 공룡작가가 썼다. ㅋㅎㅎㅎ 이런 사실을 상상하면서 공룡이 쓴 소설로 읽어봐도 은근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동화를 좋아하니까. ^^

 

미텐메츠는 차모니아 대륙에서도 린트부름 요새에 사는 공룡이다. 이 요새에 사는 공룡들은 모두 시인들이다. 그들은 늘 시를 생각하고 모두에게는 한 명의 대부시인이 있어 글을 배운다. 공룡의 몸집만큼이나 많은 언어들이 그들 사이에 존재한다. 미텐메츠는 그 대부시인의 유언에 따라 책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책과 관련된 온갖 기이한 모험을 하게 된다. 오래된 책들은 생명을 얻어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도 하고 어떤 책들은 귀한 몸이 되어 책 사냥꾼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작가가 책들을 만들기보다 책들 스스로가 지배하는 나라같은. 그 도시의 모습은 한편으로는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매우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 여행을 통해 미텐메츠는 '오름'을 얻게 된다.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 '오름'은 일종의 '영감'같은 것인데, 얻으면 무조건 대박나는 작품을 쓰게 해 주는 '영감'이다. 작가들에게 '소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이야기'거리'를 찾기 위해서 혹은 이야기 거리를 '진행'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오름'을 얻고자하는 소설속 인물들에 공감할 것 같다. 물론 대로 우스꽝스러워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새로운 대륙.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모험이기에 상상하며 읽기는 그닥 쉽지 않지만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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