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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살인의 해석은 세 가지의 이야기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을 둘러 싼 학자적 질투와 시기, 의견 대립이 한 축이고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래섬 영거가 끊임없이 사건 장면들 속에서 떠올리는 햄릿의 'to be or not to be'에 관한 해석, 실제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그 범인을 추적하는 리틀모어 형사의 추리이다.
프로이트의 이야기는 허구를 가미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사실에 근거했다. 프로이트는 융을 후계자로 생각했으나 융은 결국 프로이트를 배신했다. 융이 후에 프로이트의 의견을 반대하고 새로운 이론을 세운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 소설에서는 흥미롭게도 그러한 관계가 되기 이전의 프로이트의 제자로 있을 당시의 융의 모습과 프로이트를 지지하는 다른 제자들(브릴, 페렌치)의 견제, 또 정신분석학에 대한 세간의 비난과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성 도착적 해석이 소설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이들의 미묘한 관계와 서서히 드러나는 융의 배신 과정은 살인사건의 추적만큼이나 흥미롭다.
살인사건은 처음부터 일어난다. 리버포드양은 살해된 채 발견되고 그리고 그 시체는 노련한 검시관인 휴겔에게 맡겨진다. 이 검시관은 검시를 할 뿐 아니라 수사의 전권을 요구하고 그를 도와 줄 형사로 추천한 것이 리틀모어 형사이다. 풋내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형사는 살인사건을 추적해 가는데, 몸으로 뛰면서 하는 그의 추리 과정이 사뭇 인상적이었다. 결말에 형사가 범인을 찾아내는 것은 조금 비약적이기는 했지만, 사실 추리라고 하는 것은 꾸준하고 지루한 증거 수집과정을 거쳐 순식간에 범인이 밝혀지는 것이니까 아주 터무니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증거가 가리키는 것들이 명백하지 않은가!(csi를 보라.)
영거 박사의 햄릿의 명언에 관한 해석은 어찌 보면 엉뚱한 것 같지만 이 두 축을 연결하는 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끊임없는 사색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이것이 사느냐 죽느냐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있지 않음’을 행위와 동일시하고 있는 전체 대사를 볼 때 죽는 것을 행위 하는 것과 연관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행위는 삶의 일부분이고 있음은 행동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있지 않음’은 ‘그렇게 보이는 것(to seem)'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햄릿의 미친척은 그러니까 ’보이는 것‘의 하나이다. 즉, ’to be or not to be'의 의미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대로 있을 것이냐 아니면 그렇게 보일 것이냐’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복수를 위해서는 행동해야하고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가장으로써 해야하는 것이다. 모든 행위는 연기(all acton is acting) 모든 실행은 연극(all performance is perfomance) '짜다‘는 계획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내통하다 라는 뜻도 있고, ’꾸민다‘에는 모양이 잘 나게 만든다는 뜻도 있지만 거짓으로 둘러댄다는 뜻도 있다는 것을 노라 액튼에게 이야기한다.
영거 박사의 햄릿에 대한 해석은 살인 사건의 핵심을 지적해 낸 말이다 다름없다. (그는 이것을 인식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노라 액튼은 리버포드양으로 가장했다. 그 계획에는 클라라와의 내통이 있었다. 클라라는 또한 휴겔과 내통하는 중이었다. 즉 계획에는 내통이 있고 리버포드양의 옷가지로 보였는 그 ’꾸미기‘의상은 노라를 리버포드로 보이게 하는 거짓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해석은 프로이트의 이론에도 적용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들이 아닌 아버지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젊은 아들이 자신의 아내를 빼앗고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 (실제로 어머니들은 남편보다 자식에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즉 아들이나 딸이 그러려는 마음을 먹든 안 먹든 상관없이 부모에게 생기는 두려움이 가장으로 자녀들에게 콤플렉스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가 신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들을 자신의 손에서 길렀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이야기의 핵심은 햄릿의 해석에 있는지도 모른다. 학부 때에 문학을 전공했던 작가가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전체 이야기를 꾸미지 않았을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살인사건이라는 추리적 요소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연결된 짜임새 있는 구성이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