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을 보고 나름 낭만적인 이야기들을 기대했었다. 아니 낭만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기. 낭만적인 시기가 아니던가.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이 시기를 내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생각해보면, 그래. 낭만적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으로 쓰인 '라일락 피면'은 어두웠던 시절의 성장기를 담담하게 담고 있다. 남몰래 짝사랑했던 여학생. 곱고 고운 마음을 가졌던 그 여학생이 무장한 군인들의 총칼에 스러지고, 그래서 달려나간 소심한 남학생의 이야기. 그리고 그들을 추억하는 가족들. 나의 청소년기와는 전혀 다른 시기의 그 이야기들에 나는 숙연해 질수밖에 없었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삶이 그랬듯, 그들의 삶이 그랬듯.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내게 주어지기는 하지만 그 선택지는 내 마음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선택지는 하나일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고르고 싶은 선택지가 하나도 없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성장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인생이 성장한다는 것은, 주어진 기회를 하나씩 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결국은 기회가 하나밖에 남지않는 순간.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 기회를 버린다고. 그런 생각은 조금 나를 우울하게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보다 더 확실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그렇게 나를 위로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시대가 있었다고.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그 시대를 보내왔다고 말해줄 수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꼴찌들이 떴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0
양호문 지음 / 비룡소 / 200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망쳐야 산다.





재웅이는 친구들을 내려다보았다. 어두컴컴한 방 안, 형체만 흐릿하게 잡힐 뿐 누가 누군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기억대로라면 기준이, 성민이, 호철이 순일 텐데......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얼른 깨워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페이지 :  8쪽  





긴박감으로 시작했다. 네명의 아이들은 탈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더 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들의 외침을 들으면, 아이들이 끌려온 이 곳이 끔찍서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밤 공기를 뚫고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와 신음 소리 아이들은 어디로 끌려 온 것일까?

점점 아이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춘천 공고에 다니는 기계과 아이들이다. 공고에 다닌다면 당연히 따 두었어야 할 자격증 하나도 따 놓지 못한. 빈둥빈둥 어딘가에 실습나가지도 못한 채로 졸업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말을 시작할 때마다 ’그리고’를 덧붙이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천마건설에 실습을 나가게 된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추동리에서 아이들은 기계와는 전혀 상관없는 철탑 기초공사에 투입된다. 기껏 찾아온 곳이 막노동판이라니. 

사회는 무서운 곳. 





시끼들아, 계약을 위반하면 급료는커녕 배상금을 물어야 돼! 너희들 원주 사무실에서 계약서에 사인 했댔지?
 
페이지 : 56쪽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무시무시한 양대리의 손에 이끌려 막노동판으로 돌아간다. 원주 사무실에서 좋은 인상의 김과장이 내미는 계약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형식적인 절차라고 했지만 그건 사회를 모르는 아이들을 옭아맬 구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기에 항의할 아무런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래서 배움은 중요한 것이라는 교훈이 나오려나? ^^) 이렇게 무지가 원인이든 경솔함이 원인이든간에 아이들은 거의 한달여를 추동리에서 일하는 동안 일에 적응되기도 하고 시골음식에도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추동리에 적응해가고 있을 즈음에 더덕도둑 사건이 발생한다. 아이들은 그저 기분전환삼아 노래방에 다니러 양대리의 차를 몰래 타고 나갔다 돌아오다가 더덕도둑으로 보이는 차가 마을에서 달려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쫓아간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생각해보면 엄청난 일탈이다. 무면허에 미성년자. 게다가 음주를 한 상태다. 작은 차에 7명이 탔으니 인원초과는 물론이고. 몰래 타고 왔으니 도난차량이다. 이런 상태로 도둑을 쫓는다고 했으니 도둑으로 몰리지 않은 것도 이상하지만 아이들은 억울할 뿐이다. 





덥수룩한 머리카락, 야윈 목덜미, 구부정한 허리, 깡마른 다리......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해서 자꾸 횡설수설하는 모양새가 직업도 없이 그냥 막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몇 년 후의 자신의 모습 같기도 했다.
 
페이지 : 204쪽  




재웅이는 철창 안에서 만난 청년의 모습을 관찰하며 자신의 미래의 모습이 될까 두려움에 휩싸인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이대로 그냥 어른이 된다면 바로 저 청년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재웅이는 이 불안감을 시작으로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자신을 정정당당하게 인정하고 점차 할 일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철창에서 빼내기 위해 자기대신 머리를 조아리던 가족에게 문자도 보내고. 친구들과 좋아하던 은향이에게 우리가 꼴찌인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자신있게 클럽을 만들자는 제안도 한다. 마을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직거래 사이트를 만들자는 노력도 기울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





거짓과 술수에 익숙한 어른들을 원망하면서 그저 사실이라고, 믿어 달라고 애원하는 수밖에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페이지 : 304쪽  




철탑 공사 때문에 마을이 홍수에 견디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논과 밭이 훼손되자 추동리와 천마건설은 서로 대립하게 된다. 마을 할아버지들을 앞세워 추동리가 입구를 봉쇄하고 건설업체를 들이지 않자 천마측에서는 조폭을 동원하여 할아버지들을 치기까지 한다. 그런 상황을 모두 보고 카메라까지 들이댔음에도 불구하고 사장앞에서 뻔뻔하게 오리발을 내미는 김 과장과 전무를 보며 아이들은 거짓과 술수에 익숙한 어른들의 모습도 보게 된다.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철창 구석에 앉아있던 총각이 될 것인가, 비록 자신들을 감시하는 역할이기는 했지만 자기 일에 충실하며 진실을 밝히는 용기를 보인 양대리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권모술수의 달인 김과장 같은 인물이 될 것인가. 아니면 아는 것 많고 실천하기도 하지만 딱히 자신의 할 일은 하지 못하는 육법대사가 될 것인가. 

꼴찌들만이 가지는 힘이 있다. 억눌려 본 사람이 느끼는 울분이 있다.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밑거름이 되고, 적절하지 못하면 철창신세가 될 뿐이다. 아이들은 막노동판에서 배웠을 것이다. 자신들의 억눌렸던 마음을 풀 열쇠도, 또 올바른 어른이 된다면 자신의 미래의 모습도. 삭막한 사회에 조금 일찍 내던져져졌지만 시들어 죽지 않고 씩씩하게 뿌리내린 아이들이 대견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병국 주방장 보름달문고 38
정연철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번 이벤트 때 선물 받은 책인데, 지금까지 읽기 목록에서 밀리는 바람에 한쪽에서 계속 읽어달라고 외치고 있었던 이녀석. 제목과 그림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에 꼭 읽어보고 싶었던 이녀석. 이녀석을 어젲밤에 펼쳐보았다. 그림도 재미있었지만 글도 꽤 재미있었다. 제목만 보고는 장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단편 모음이었다. 이 단편들은 모두 청소년들의 성장의 단면을 그리고 있었다. 

주방장이 되고 싶은 병국이. 엄마에게 자신의 꿈을 인정받지 못한 채 오늘도 고군분투 노력중이다. 눈물겨운 노력끝에 남아있는 거라고는 태워먹은 그릇과, 연기폴폴 주방. 그리고 엄마한테 맞아 생긴 상처뿐이지만, 절대로 꿈을 포기할 수 없다고 외치는 병국이의 마음을 들으면 어쩔 수 없는 웃음과 함께 호텔 주방장이 된 병국이의 모습을 뿌듯이 상상해 보게 된다. 

외계인친구1호는 왕따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외모의 특이성에 따라 붙은 별명인 외계인 설정 때문인지 공상과학같기도 했다.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아예 외계인으로 정의해버리는 편협함. 외계인이 스스로 친구를 찾아냈으니, 이제 서로 친구가 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독립만세는 철부지 모녀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네 집에 얹혀 살게 되었으면서도 자신들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두 모녀를 보면서 아마 누구나 혀를 끌끌 차게 되지 않을까. 독립 만세는 이 두 모녀가 외치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가 집 안에서 외치고 있는 것 같은데. ^^;;

쑥대밭에서는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느껴진다. 우리 어린시절에 한번쯤 있었을 법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불퉁거렸던 어느 날이 떠오르는 알싸한 이야기다. 껌은 풋풋한 초딩시절의 줄다리기 같은 사랑을 그리고 있다. 선생님에 대한 동경과,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만 왠지 밀어내고 싶은 친구와의 이야기. 이것도 역시 누구나 한번쯤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런지. ^^ 쿵쿵을 읽으면서는 박완서의 '소음공해'가 떠올랐다. 아파트에서 자주 일어나는 소음문제이지만, 서로 만나지 않고 해결하려고 들기 때문에 더더욱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해 보았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성장소설이라는 느낌이다. 줄거리도 복잡하지 않고, 주인공의 성격도 명확하다. 그래서 조금 심심한 감은 있지만, 지금 중학생이라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살인의 해석은 세 가지의 이야기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이트와 그의 제자들을 둘러 싼 학자적 질투와 시기, 의견 대립이 한 축이고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래섬 영거가 끊임없이 사건 장면들 속에서 떠올리는 햄릿의 'to be or not to be'에 관한 해석, 실제로 일어난 살인 사건과 그 범인을 추적하는 리틀모어 형사의 추리이다.

 

프로이트의 이야기는 허구를 가미하기는 했으나 대부분 사실에 근거했다. 프로이트는 융을 후계자로 생각했으나 융은 결국 프로이트를 배신했다. 융이 후에 프로이트의 의견을 반대하고 새로운 이론을 세운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 소설에서는 흥미롭게도 그러한 관계가 되기 이전의 프로이트의 제자로 있을 당시의 융의 모습과 프로이트를 지지하는 다른 제자들(브릴, 페렌치)의 견제, 또 정신분석학에 대한 세간의 비난과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성 도착적 해석이 소설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이들의 미묘한 관계와 서서히 드러나는 융의 배신 과정은 살인사건의 추적만큼이나 흥미롭다.

 

살인사건은 처음부터 일어난다. 리버포드양은 살해된 채 발견되고 그리고 그 시체는 노련한 검시관인 휴겔에게 맡겨진다. 이 검시관은 검시를 할 뿐 아니라 수사의 전권을 요구하고 그를 도와 줄 형사로 추천한 것이 리틀모어 형사이다. 풋내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형사는 살인사건을 추적해 가는데, 몸으로 뛰면서 하는 그의 추리 과정이 사뭇 인상적이었다. 결말에 형사가 범인을 찾아내는 것은 조금 비약적이기는 했지만, 사실 추리라고 하는 것은 꾸준하고 지루한 증거 수집과정을 거쳐 순식간에 범인이 밝혀지는 것이니까 아주 터무니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증거가 가리키는 것들이 명백하지 않은가!(csi를 보라.)

 

영거 박사의 햄릿의 명언에 관한 해석은 어찌 보면 엉뚱한 것 같지만 이 두 축을 연결하는 고리 같은 역할을 한다. 그는 끊임없는 사색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이것이 사느냐 죽느냐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있지 않음’을 행위와 동일시하고 있는 전체 대사를 볼 때 죽는 것을 행위 하는 것과 연관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행위는 삶의 일부분이고 있음은 행동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있지 않음’은 ‘그렇게 보이는 것(to seem)'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햄릿의 미친척은 그러니까 ’보이는 것‘의 하나이다. 즉, ’to be or not to be'의 의미는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대로 있을 것이냐 아니면 그렇게 보일 것이냐’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복수를 위해서는 행동해야하고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가장으로써 해야하는 것이다. 모든 행위는 연기(all acton is acting) 모든 실행은 연극(all performance is perfomance) '짜다‘는 계획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내통하다 라는 뜻도 있고, ’꾸민다‘에는 모양이 잘 나게 만든다는 뜻도 있지만 거짓으로 둘러댄다는 뜻도 있다는 것을 노라 액튼에게 이야기한다.

 

영거 박사의 햄릿에 대한 해석은 살인 사건의 핵심을 지적해 낸 말이다 다름없다. (그는 이것을 인식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노라 액튼은 리버포드양으로 가장했다. 그 계획에는 클라라와의 내통이 있었다. 클라라는 또한 휴겔과 내통하는 중이었다. 즉 계획에는 내통이 있고 리버포드양의 옷가지로 보였는 그 ’꾸미기‘의상은 노라를 리버포드로 보이게 하는 거짓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 해석은 프로이트의 이론에도 적용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오이디푸스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들이 아닌 아버지에게 해당되는 것이었다. 젊은 아들이 자신의 아내를 빼앗고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움. (실제로 어머니들은 남편보다 자식에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즉 아들이나 딸이 그러려는 마음을 먹든 안 먹든 상관없이 부모에게 생기는 두려움이 가장으로 자녀들에게 콤플렉스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가 신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들을 자신의 손에서 길렀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이야기의 핵심은 햄릿의 해석에 있는지도 모른다. 학부 때에 문학을 전공했던 작가가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전체 이야기를 꾸미지 않았을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살인사건이라는 추리적 요소가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연결된 짜임새 있는 구성이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라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사의 나이프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의 소년법을 다루고 있는 추리소설이다.

 

다루고 있는 문제가 확실한 만큼 추리소설답지 않게 주제 또한 확실하다. 소설 그대로의 언어로 하자면 '갱생이란 무엇인가'이다.

 

일본의 소년법은 그야말로 일본사회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만14세 이하의 청소년 범죄의 경우,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 하더라도 법의 보호하에 안전시설이나 보호감호 등으로 무마되는 법. 흔히 말하는 빨간 줄도 생기지 않는다. 기록이 없으니 언제든 새출발 할 수 있다. 이 법의 이론적 기초는 청소년들의 가소성이다. 이들은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이 소설에서 특히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처벌의 가벼움이라기보다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얼굴은 커녕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둘을 전혀 만나게 해 주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로서는 가해자에게 사죄의 말도 들을 수 없다는 점이다. 즉, '용서'의 주인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는 것이다. 사회적 시각에서 범죄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 죽은 사람은 살아돌아오지 않는다. 당연히 사회 입장에서는 살아있는 사람-가해자-이 더 중요해진다. 이들의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는 것이 보다 시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소년법은 '가해자를 위한 법'이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13세 소년들에게 어이없이 아내를 잃은 히야마라는 인물이다. 그는 5개월밖에 안 된 딸 앞에서 아내가 칼에 찔려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소년들에게는 아무런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매스컴이 난입하여 그의 마음을 헤집는 동안 소년들은 법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더더군다나 그들에게 사과의 말도 들을 수 없다는 것. 하다못해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 등 소년법의 불평등함 앞에 분노하게 된다. 지금은 5살이 된 딸과 살아가고 있는 그 앞에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나타나 범죄를 일으켰던 소년들 중 하나가 살해되었음을 알리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범죄를 저질렀으나 보호시설에서 갱생하고자 노력하고 바르게 살아가고자 했던 가즈야가 첫 번째 피해자로 히야마의 가게 근처에서 살해되자 히야마는 용의자로 의심받는다. 그가 매스컴에서 ‘법이 심판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그 소년들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가즈야가 죽은 원인을 알고 싶어 야기와 마루야마를 찾아다니며 그들이 진정한 갱생을 했는지,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캐묻고 다닌다. 그러던 중 마루야마가 전철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전철역에 히야마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 한번 그는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야기가 히야마에게 연락해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으니 만나자고 한 그날에 히야마의 딸 마나미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야기를 만나지 못하게 되고, 공교롭게 그 날 야기는 히야마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죽음을 당한다. 가까스로 용의선상에서 제외된 히야마에게 비디오가 배달되는데, 그 비디오에는 세 명의 중학생이 한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하는 영상이 담겨 있었다. 이 비디오를 찍은 사람이 자신들을 협박해 아내 쇼코를 죽이라고 했다는 말을 마루야마로부터 듣게 된 히야마는 쇼코의 과거에 단서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자신이 잘 모르는 아내의 중학생 시절을 탐문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쇼코가 중학생이던 시절 고등학교 교사였던 중년 남성을 죽인 일이 있고 그 때문에 소년원에 갔다가 나왔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교사의 딸 아유미가 마루야마와 함께 비디오를 찍은 후 아이들을 협박해 쇼코를 죽이려는 계획을 짰다는 것과 자신에게 범죄가 씌워지도록 일부러 아유미가 자신의 가게에 들어온 것 또한 알게된다. 마루야마 준은 나머지 두 명에게 조종당하는 착한 학생처럼 보였지만 실은 그가 이 모든 일을 조종한 것이다. 죽을 병에 걸린 아유미에게 쇼코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며 악의적인 메일을 보낸 것은 아이자와, 즉 쇼코의 변호사였으며 마루야마의 변호를 맡은 인물로 그는 쇼코가 어린 시절에 쇼코의 친구를 죽인 소년범이었다. 그는 쇼코의 증언으로 잡혀 실로 사회적 갱생은 잘 한 인물이나 피해자에게 사죄를 하러 가라고 설득하는 쇼코의 말에 단호히 거절한다. 피해자를 만나는 일은 갱생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자 쇼코는 자신의 죽인 남성의 딸 아유미의 병원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이자와를 협박하여 500엔을 뜯어내었고, 아이자와는 쇼코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아유미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마지막에 히야마의 입으로 말하는 작가의 생각은 명백하다. 가해자가 진정으로 갱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가해자의 인생에 묻은 얼룩을 지우는 방법은 바로 ‘피해자’의 용서라는 것이다. 피해자를 전혀 만나지 않고 가해자는 마치 인생에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사회에 더 이상 해약을 끼치지 않는 바른 인물로 복귀하면 된다는 소년법 하에서는 아무리 반성하고 뉘우치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을 씻을 수 없어 힘들게 살아가는 쇼코나 가즈야, 미즈키 같은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으며, 또 가해자가 제대로 갱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단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의를 느끼는 또 하나의 범죄자들 - 아유미 같은 -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갱생했으나 진정한 의미로는 갱생하지 못한 오히려 소년법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아이자와 같은 문제적 인물까지 등장시키면서 작가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를 전혀 무시하는 소년법 하에서 진정한 갱생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