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먼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7
에벌린 워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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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비버의 집에서 시작한다. 비버는 한때 광고회사에서 일했지만 현재는 백수상태다. 어딘가에서 그를 찾아주지 않을까 전화기 앞에서 늘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파티에 자주 초대받는 편이지만 환영받는 인물은 아니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이 자기 할 몫을 제대로 하고 사는 인물이 아니라면 환대받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비버가 집을 떠나 초대받은 시골 라스트의 헤턴 시골 집에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한다. 헤턴의 고딕 양식의 커다란 저택을 소유한 라스트 부부는 부유하지만 저택의 유지를 위해 많은 돈이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검소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주인 토니는 헤턴의 삶에 만족하고 살지만 그의 매력적인 아내 브렌다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에게 길들여진 시골남자 토니보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에게 길들여질 리도 없는 런던의 남자 비버쪽이 훨씬 더 끌렸다. 사교계에서는 이들 커플에게 누구나 의아한 마음을 품었다. 대체 매력적인 브렌다가 얼뜨기같은 비버에게 반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런던의 삶에의 동경.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책임감있고 세련된 여인이 아니라 마음 속에는 철부지같은 동경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그녀 자신도 모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한편 시골에 사는 토니는 브렌다가 런던에서의 삶을 가꾸는 동안 그녀의 바람따위는 전혀 알지도 못한 채로 그리움만 더한 삶을 살게 된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브렌다의 외도를 알고 있는 시점에 이르러서도 그는 순진하기만 하다. 이혼을 위해 있지도 않았던 외도 사실을 만들어 낼 만큼 그녀를 배려했던 그였지만 그녀측에서 헤턴의 집을 팔아야만 마련할 수 있는 많은 금액의 위자료를 요구하자 단호하게 대처한다. 브렌다에게 헤턴의 집도, 그녀가 요구하는 액수의 위자료도 주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헤턴 집에 대한 그의 애정은 그녀에 대한 애정을 뛰어넘는 것이었을까. 브렌다는 그의 단호한 태도에 실망하고 서운해하지만 애초에 그녀가 헤턴 집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이유에는 집에 대한 남편의 집착의 작용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던 집이었지만 토니는 헤턴에서 그의 최후를 보내지 못한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떠났던 여행에서 자신이 꿈꾸던 고딕양식같은 도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탐험에서 그는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성인이 되어서는 헤턴을 떠나지 않았던 그의 비석에 탐험가라는 명칭이 새겨지는 아이러니는 그의 성실했지만 편협했던 삶에 대한 연민과 함께 실소를 머금게 만든다.

 

한줌의 먼지의 또다른 결말 역시 날카로운 풍자가 돋보인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들의 모습은 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녀 역시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비버도 그렇다. 그는 이제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의 역할로 돌아온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 그렇지 않은가. 값을 치르고 교훈을 얻는 경우보다는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다시 되돌아오게 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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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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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의 사회주의 비판이라는 이유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소설이다. 풍자와 우화가 조화롭게 이루어져 오웰의 정신세계 뿐 아니라 사회비판의 관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한 보편성을 담고 있어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사회를 이해하는데 유효한 소설이다. 물론 그래서 스테디셀러의 자리에 굳건히 있는 것이겠지만.

 

이상적이기만 한 이론인 사회주의가 스탈린의 독재에 의해 어떻게 퇴색되고 망가지는지를 보여주며 지도부의 교체에 머무는 개혁은 진정한 변혁이 아님을, 그를 막기 위해 일반 시민 모두가 의식있고 깨어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이 깨어있어야 함은 사회주의에서 뿐일까. 민주주의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어찌보면 사회주의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력의 속성의 문제, 권력이 어떻게 이상을 찌그러뜨리는지 그리고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그 속성을 냉정하게 이해해야하는 것이 더 우선이 아닐까.

 

암튼 우화지만 쉽게 읽어서는 안되는 책. 이라고 말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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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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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설가의 욕망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은 두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하나는 '나'가 페테르부르크로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 토스토예프스키의 아내 안나의 글을 읽고, 페테르부르크의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았던 공간들을 짚어가는 등의 여정. 하나는 드레스덴을 떠나 바덴바덴으로 이동한 도스토예프스키 부부가 가난과 도박에 시달렸던 시간들의 이야기와 그의 죽음까지의 삶이다. 100년의 시간차를 갖는 이 두 이야기가 절묘하게 이어지고. 생각의 서술이 사실의 서술로, 장면의 묘사가 대화의 진행으로 이어지는 이 서술구조는 복잡한데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거칠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치프킨의 오랜 노력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토록 술술 읽힘에도 절대 간단하지 않은 소설을 쓸 수 있었던 인물이 단 한 편의 소설만을 남겼다는 것은 안타깝고도 안타까운 일이다.

 

치프킨의 욕망은 소설에 있었다. 그가 도스토예프스키를 그토록 사랑한 이유도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치프킨의 욕망은 그토록 많은 소설과 그토록 많은 인물을 만들어 낸 도스토예프스키였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욕망은 자신이 자신을 의지대로 지배하고자하는 그 욕망이었다. 그가 자신을 억눌렀던 사람들에게 취하는 방어적인 태도나, 그들의 권력을 전복시키고 그 위에 서는 상상을 하는 것은 그러한 그의 욕망을 드러내준다. 미술관에서 직원이 저지하기 전에 의자 위에서 스스로 내려오는 일이. 도박판에서 끝없이 판돈을 걸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자제하는 것이 그래서 그에게는 중요했다. 때로는 거칠었지만 가족의 구속으로부터 그는 자유롭게 떠나오지 못했다. 도박에 빠지고 빚에 허덕였지만 그래도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의 매력뿐 아니라 사랑을 버리지 않은 그의 낭만주의적 성향에도 있을 것이다. 아내의 옷가지며 패물까지 저당잡히고도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아내와 바라보고 싶다고 천진하게 기대했던 그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예술은 비극에서 나온다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슬프지만 한편 작품의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기쁨도 느낀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불운했던 치프킨의 소설이 아름다운 이유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그들의 그 슬픔들 때문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이 책을 들고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를 돌아다녀보고 싶다. 치프킨은 도스토예프스키를 따라다녔지만 우리는 이제 치프킨과 도스토예프스키 모두를 따라 다녀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책을 이어받아 세번째 서술자가 되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우리의 욕망 역시 이 두 소설가의 욕망과 일치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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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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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구조의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는 세가지 텍스트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한 축은 몰리나와 발렌틴의 감옥 생활이고, 또 한 축은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한 축은 몰리나의 동성애성향에 대한 각주로 이는 대중들에게 생소한 동성애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몰리나의 행동에 대한 독자들의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세가지의 축은 각각 다른 두 이야기의 서사를 받쳐주고 있어 마치 잘 짜여진 구조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작품 '개미'에서 개미와 사람간의 이야기, 개미와 개미간의 이야기, 백과사전 이야기 세 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이 삼각 구조에 대한 설명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푸익의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를 '듣는' 즐거움

 

몰리나는 발렌틴에게서 정보를 빼내야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몰리나쪽이다. 그는 발렌틴에게 자신이 본 영화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그와 함께 감옥에서의 고독함을, 고통을, 더디가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자 노력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영화를 '볼'수는 없다는 점이다. 감옥이라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자유는 '대화'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몰리나가 '본' 것의 '재해석'일 수밖에는 없다. 몰리나는 영화를 들려주면서 그 나름의 해석을 하고, 발렌틴은 그 영화를 들으면서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한다. 영화를 매개로 한 이들의 대화는 단지 영화의 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본 사고의 충돌로 이어진다. 자신의 행복에 충실하고자 하는 몰리나와 사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발렌틴.

 

그들의 사랑. 그들의 최후.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들의 기저에는 모두 사랑이 깔려 있다.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몰리나와 발렌틴으로 환치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생각은 발렌틴의 몰리나의 최후에 대해 언급한 표현에 의해 거의 확실시 된다. 몰리나는 초반부터 발렌틴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으며 단지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라고는 볼 수 없을만큼 그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한다. 발렌틴은 몰리나에게 자신을 낯춰생각하지도 말고 남에게 무시당하지도 말라고 말하지만, 몰리나는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택한다. 감옥을 향해 오랫동안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서 몰리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짧지만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발렌틴의 최후는 영화속에서 그가 가장 맘에 들어 했던 장면처럼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아름다운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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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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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지하에 들어갈 때 가끔 섬뜩하게도 죽음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지. 아니 섬뜩하게 죽음까지 아니더라도 지하에 있으면서 지상에서의 시간을 잊어버리고 지내본 적이 있는지. 어떤 경우든 사람들에게 지하란,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벗어난 어떤 공간이다. 집을 산다면 지하를 피하고 지상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은 사람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곳으로서는 지하가 여러 방면으로 마땅치 않은 곳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지하에서 20년 동안 살아온 남자가 있다. 이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남자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어느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왜소한 몸집에 얼굴도 잘 생겼다고 할 수 없는데,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남을 보는 데에 열중해 있다. 자기의 행동이 얼마나 불안정해 보이는지 그는 알까. 자기 안의 자아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중이다. 그리고 때로 남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문득 냉소를 지어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직접 눈을 마주 대하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안의 의식은 과하고, 자기 밖의 자존감은 초라한. 자의식 과잉의 인간이다.

 

진눈깨비.

 

진눈깨비와 함께 그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던 과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수기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 소설이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상에서도 그의 자의식은 지나치리만큼 과하다. 그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부분을 모두 제외하고 그의 움직임을 주시해보면 그는 그야말로 꼴불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민폐덩어리. 불쌍한 패배자. 그가 증오해 마지않지만 실제로는 그를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주는 주변 사람들이 대견할 뿐이다. 그런데 그는 말한다. 자신은 단지 모두가 끝까지 갈 수 없었던 데까지 자기를 밀고갔을 뿐이라고. 그런가. 과연 그러한가. 우리들 어쩌면 그처럼 초라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때로 조그마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해버리고 마는 인간들인 것일까. 그가 지하에서 써 내려가는 이 이야기가 그저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이유는 진지한 이 물음에 있다. 우리들 때로는 이렇게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오롯이 감정적인 민폐를 끼치던 적이. 과연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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