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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평점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고 테네시 윌리엄스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에 푹 빠진 터라 이번 작품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은 아니지만 그 독특함이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등장하는 블랑시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며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녀 내부의 순수성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처럼. 그래서 그녀의 비극이 더 비극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마거리트와 브릭은 부부이다. 마거리트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어느 남자든지 그녀를 보면 그녀의 매력에 빠져서 그녀를 원하게 될 정도이다. 그러나 어쩐지 남편 브릭은 그녀를 차갑게 대한다. 멍한 그의 시선은 그녀가 아니라 늘 그녀 너머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도입부에서 이렇게 외면받으며 외로움에 떠는 마거리트.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냉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어떤 면이 그를 술독에 빠져서 가정사를 외면하도록 만들었을까.
폴리트 할아버지의 예순 다섯번째 생일잔치가 시작되려는 시점이지만 어쩐지 가족의 모습은 평안하지 않다.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거짓말을 믿고 할아버지는 건장하다며 즐거워한다. 축복이 가득한 생일잔치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할머니의 순진한 바람은 이 공간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환상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남편으로부터 평생 냉대를 받으면서도 늘 그를 사랑해왔다고 하는 그녀의 고백은 할아버지에게 전혀 울림이 되지 못한다. 남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남편의 정신과 일치하지 못하는 아내로서 그녀는 또 한마리의 양철지붕 위 고양이였는지도 모른다.
메이와 구퍼 부부는 아이를 다섯이나 갖고 있다. 이들 부부는 환상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들이다. 지나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냉혹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아버지 폴리트의 2만 8000에이커가 술주정뱅이 동생 브릭에게 돌아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후반부에서 구퍼는 어머니가 현실을 알고 받는 충격에 아랑곳 않고 아버지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초안을 만들어 그들 앞에 제시하기까지 한다. 다복한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인 애정이나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둘째 아들 브릭에게 폴리트는 메이와 마거리트 두 며느리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들이라고 표현한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있기 쉽지 않지만 결코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 두 여인들. 마거리트는 가난했던 남부의 생활을 겪었고, 다시 그 가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며 술주정뱅이 남편을 건사하며 힘들게 살아야했던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마거리트가 남편 브릭의 애정을 그토록 원하는 이유도, 아버님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메이 역시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그 아이들로 하여금 할아버지의 애정을 얻어낼 수 있도록 갖가지 재롱을 부리게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어쩌면 마거리트보다 그녀가 훨씬 더 치열하게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아이 다섯에 또 하나의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니까.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라도 아버님의 땅이 필요했을테니까.
폴리트와 브릭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허위에 대한 혐오 때문에 술을 마셔야 했던 브릭 역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은 마거리트의 폭로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외면 때문이었다. 친구의 외침을 못 들은 척 했던 허위.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가. 그녀가 진실을 밝히려 했기 때문에 그녀를 증오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아버지 폴리트에 의해서 보다 확실하게 그에게 인식된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반발적으로 아버지에게 그가 부딪쳐야 할 진실 - 죽음 - 을 밝혀버리고 말았지만. 그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보다 자기 스스로의 허위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자 그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회상극의 형식이기 때문에 인물의 행동이나 배경이 모호하고 꿈같은 것이 특징이다. 읽으면서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지만(연극이니까) 이미 과거의 일임을 알게 해 주는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어 실제로 상연되는 것을 본다면 어떨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딸을 자기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어머니 어맨다의 집념과 창고에서 늙어지지는 않겠다는 톰의 의지와, 그 모든 것에 초연하지만 사랑앞에 약해졌던 여인 로라의 모습은 잠깐의 흔들림에도 깨져 버리는 유리로 된 가정같았다. 특별하게 아름다웠던 로라는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톰처럼 자신의 삶을 개척하지 못했던 로라는 그렇게 유리 유니콘처럼 깨어져 버렸을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고 테네시 윌리엄스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에 푹 빠진 터라 이번 작품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은 아니지만 그 독특함이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등장하는 블랑시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며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녀 내부의 순수성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처럼. 그래서 그녀의 비극이 더 비극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마거리트와 브릭은 부부이다. 마거리트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어느 남자든지 그녀를 보면 그녀의 매력에 빠져서 그녀를 원하게 될 정도이다. 그러나 어쩐지 남편 브릭은 그녀를 차갑게 대한다. 멍한 그의 시선은 그녀가 아니라 늘 그녀 너머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도입부에서 이렇게 외면받으며 외로움에 떠는 마거리트.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냉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어떤 면이 그를 술독에 빠져서 가정사를 외면하도록 만들었을까.
폴리트 할아버지의 예순 다섯번째 생일잔치가 시작되려는 시점이지만 어쩐지 가족의 모습은 평안하지 않다.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거짓말을 믿고 할아버지는 건장하다며 즐거워한다. 축복이 가득한 생일잔치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할머니의 순진한 바람은 이 공간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환상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남편으로부터 평생 냉대를 받으면서도 늘 그를 사랑해왔다고 하는 그녀의 고백은 할아버지에게 전혀 울림이 되지 못한다. 남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남편의 정신과 일치하지 못하는 아내로서 그녀는 또 한마리의 양철지붕 위 고양이였는지도 모른다.
메이와 구퍼 부부는 아이를 다섯이나 갖고 있다. 이들 부부는 환상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들이다. 지나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냉혹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아버지 폴리트의 2만 8000에이커가 술주정뱅이 동생 브릭에게 돌아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후반부에서 구퍼는 어머니가 현실을 알고 받는 충격에 아랑곳 않고 아버지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초안을 만들어 그들 앞에 제시하기까지 한다. 다복한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인 애정이나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둘째 아들 브릭에게 폴리트는 메이와 마거리트 두 며느리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들이라고 표현한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있기 쉽지 않지만 결코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 두 여인들. 마거리트는 가난했던 남부의 생활을 겪었고, 다시 그 가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며 술주정뱅이 남편을 건사하며 힘들게 살아야했던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마거리트가 남편 브릭의 애정을 그토록 원하는 이유도, 아버님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메이 역시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그 아이들로 하여금 할아버지의 애정을 얻어낼 수 있도록 갖가지 재롱을 부리게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어쩌면 마거리트보다 그녀가 훨씬 더 치열하게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아이 다섯에 또 하나의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니까.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라도 아버님의 땅이 필요했을테니까.
폴리트와 브릭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허위에 대한 혐오 때문에 술을 마셔야 했던 브릭 역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은 마거리트의 폭로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외면 때문이었다. 친구의 외침을 못 들은 척 했던 허위.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가. 그녀가 진실을 밝히려 했기 때문에 그녀를 증오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아버지 폴리트에 의해서 보다 확실하게 그에게 인식된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반발적으로 아버지에게 그가 부딪쳐야 할 진실 - 죽음 - 을 밝혀버리고 말았지만. 그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보다 자기 스스로의 허위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자 그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회상극의 형식이기 때문에 인물의 행동이나 배경이 모호하고 꿈같은 것이 특징이다. 읽으면서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지만(연극이니까) 이미 과거의 일임을 알게 해 주는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어 실제로 상연되는 것을 본다면 어떨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딸을 자기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어머니 어맨다의 집념과 창고에서 늙어지지는 않겠다는 톰의 의지와, 그 모든 것에 초연하지만 사랑앞에 약해졌던 여인 로라의 모습은 잠깐의 흔들림에도 깨져 버리는 유리로 된 가정같았다. 특별하게 아름다웠던 로라는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톰처럼 자신의 삶을 개척하지 못했던 로라는 그렇게 유리 유니콘처럼 깨어져 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