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핵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조셉 콘라드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는 말로라는 한 인물의 경험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와 함께 배를 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잘 아는 이야기꾼이고, 그리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게 된다.

 

이야기 속의 '나'는 말로 자신이다. 그리고 그의 경험 속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은 바로 '커츠'이다. 그는 어쩌면 말로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프리카에 가고자 한 말로의 의도는 순수하게 미지의 곳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고, 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끄 또아리를 튼 뱀같은 강의 모습에 매혹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그 강을 돌아다는 배의 선장 자리를 따낼 수 있었는데, 그렇게 그는 희망에 부풀어 아프리카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반면 커츠는 매우 실질적인 목적을 가지고 그 곳으로 들어 간 인물이다. 그는 그 곳에서 미지의 어떤 것을 찾으려 했던 것이 아니다.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매우 명백하다. 바로 상아인 것이다. 상아, 그리고 주재소는 그의 것이었다. 누군가 듣는다면 비웃음을 흘릴 정도로 그는 아프리카의 모든 혜택이 바로 자신의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아마도 커츠가 행사했던 그 영향력은 그의 목소리때문이라기보다 그의 그 절대적 믿음때문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의 절대적 믿음이 그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 믿음을 감히 아니라 말할 수 없었을테니.

 

말로는 원주민들에게뿐 아니라 그곳의 백인들에게조차 절대적 존재였던 그, '커츠'를 데리고 나오는 임무를 맡는다. 그가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병과 싸우면서 환자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회복을 기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가 아프리카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다 하더라도 콩고는 그에게 준엄했다.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원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순진하고 순박한 원주민들이 사람을 죽일 수 없을 것 같은 활과 화살을 쏘게 만들었던 그의 약탈은 그 주변 주재소의 양을 합친것보다 더 많은 양의 상아를 수확했다는 그 결과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가혹했을 것이다.

 

빛이 가까이 있었음에도 커츠는 어두운 속에 혼자 있다고 여기고 무서워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에게 암흑은 콩고였고, 콩고에게 암흑은 커츠 그 자신이었다. 과연 어느 쪽이 더 어두웠을까. 인간이  한 대륙을 어둠속에 빠뜨렸던 역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 현장에 다녀왔던 말로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가 동정심이 많은 인물인 것이 아닌데도 아프리카의 그 흑인들을 바라보기를 꺼렸던 것처럼 우리에게 동정심이 넘쳐 흐르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이 저지른 그 땅에 대한 모욕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질 만큼의 안타까움은 생겨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49호 품목의 경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7
토머스 핀천 지음, 김성곤 옮김 / 민음사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작품이 그렇게 유명하고, 또 이 작품에 나오는 트리스테로가 그렇게 유행했던 명칭이었다는 것을 몰랐었다.작품을 읽으면서 도입부에서는 추리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가, 또 중반부에 들어서면 언어유희를 즐기는 작가의 작품이었던 걸까 생각했다가, 연극과 문학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한 작품일까 생각했다가 하는 등 다양한 생각들을 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작품의 주인공 에디파는 전 애인이었던 피어스 인버라리티의 유산관리인으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에디파는 그의 유산을 관리하기 위해 그의 변호사 메츠거를 만나고 메츠거와 함께 인버라리티의 유산들을 정리하기 위해 그가 투자하는 등 관련을 맺었던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그와 관계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와중에 에디파는 트리스테로라는 지하우편제도에 대해 알게되는데, 그것이 피어스의 우주항공사 요요다인의 내부우편제도라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녀는 인버라리티가가 자신이 사들인 '검은 뼈'의 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연극 "전령의 비극"을 관람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연극에는 검은옷을 입은 암살단이 트리스테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이름이 지하우편제도의 이름과 같은 이유를 확인하려고 연극 연출자 랜돌프 드리블레트를 찾아간 에디파는 그에게서 이 연극은 원전에 의한 것이기보다 그 스스로 만들어낸 각색에 의존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게된다. 트리스테로라는 이름은 그 전에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것이었는데, 그녀가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 피어스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마치 어디에나 존재했던 것인양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에디파는 이 모든 것들이 계획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메츠거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 변호사가 어린 시절에 배우생활을 하면서 출연했던 영화가 우연하게도 그들이 만난 그 시점에 티비에서 방영되는 것이, 그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광고들이 모두 인버라리티가 소유한 기업의 광고라는 것이 의심스러울정도로 묘했던 것이다. 마치 그녀가 이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이 도시를 모두 피어스가 가졌던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유산 관리자가 그녀라면, 그녀 역시 이 도시의 소유주처럼 생각하고 움직여야 되는 것이 아닐까. 그녀의 이러한 의심은 이후에 조금 줄어들기는 하지만 독자는 여전히 이 질문을 붙들고 있게 된다. 그녀가 만나는 그 이후의 사건들 모두 정밀하게 계획되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의심하는 트리스테로는 어디에나 나타난다. 우연인 것처럼 그와 관련한 연극이, 그와 관련한 사람이, 하다못해 그녀의 남편 무초까지도 그 우편 제돌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반항과 혁명은 어디있는가. 모두가 반항에 동참한다면, 정식이고 정식이 아닌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더 많은 사람이 지하우편제도를 이용한다면 그것이 여전히 지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를 이렇게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도록 만든 것은 피어스일까. 그의 계획인 것일까. 그렇다면 그녀의 주변에서 그녀와 관련있는 인물들을 점점 사라지게 만드는 계획은 누구의 것일까. 그것은 피어스의 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닐텐데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유산 관리인일지 모른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다는 인버라리티라는 말에는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 그것이 다 유산이라면 우리 역시 유산 관리인이다. 세상은 우리가 그 유산을 관리하기를 바라고, 또 그러기 위해서 누군가와 함께 서기보다 혼자 서 있기를 원한다. 세상에 대해 알기를 원하고 그것을 탐구하고 연구하기를 바라며 변화하기를 요구한다. 에디파가 마지막에 서게 된 경매장에 이제 우리가 서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유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그리고 이 유산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어떤 가치에 사들일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사의 회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에서 나사는 두 번 언급된다. 첫번째는 더글러스의 본격적인 이야기기 시작되기 전에 크리스마스 전날밤 들을 만한 무서운 이야기에서 아이의 존재가 공포를 더욱 조이는 나사가 된다면, 아이 둘이라면 그 나사가 두번 돌려지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일 거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또 하나의 나사는 22장 에서 마일스와 둘이 남기로 결심하고 그를 식사시간에 만나기 전에 그녀가 마음을 다잡으며 소박한 인간 덕목의 나사를 다시 한 번 죄기로 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녀는 이렇게 나사가 조여진 채로 마일스와 마지막 대면을 하게 된다.

 

유령의 존재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 소설은 두가지 방향으로 읽히게 된다. 매우 핸섬하지만 독특한 성격의 주인인 남자로부터 한 가정의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젊고 노련한 가정교사의 횡포로 읽히느냐, 아니면 낯선 곳에서 모든 책임을 떠 안게 된 젊은 가정교사가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모든 용기와 힘을 쥐어짜는 희생으로 읽히느냐이다. 마치 나사를 조이느냐 푸느냐를 놓고 조이는 경우와 푸는 경우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처럼 독자들은 이 두가지 방향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두 경우 모두 제법 그럴듯한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초반에는 가정교사의 서술에 신뢰를 갖지만 그녀가 점점 정신력을 잃어가고 냉정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녀의 말이 옳다는 몇가지 증거를 대면하면서도 그녀의 서술에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그녀 때문에 플로라는 병에 걸려 환자인 상태로 삼촌을 향해 떠나갔고. 마일스는. 아마도(소설 전체가 모호하게 서술되었기 때문에 이 서술도 명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가 이 두 남매를 지켜냈느냐를 고려해 본다면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을 소유하려는 욕구는 유령이라고 불리는 퀸트와 제셀양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아이들을 '내 아이들'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마일스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다고 외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녀가 킨트와 제셀양의 모습을 본 적이 없음에도 유령이 된 그들의 모습을 명확하게 묘사했다는 증거는 그 앞에서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아이들의 깜찍하지만 순진하고 어찌보면 공포스러울 정도로 태연한 행동들도 가정교사의 서술을 모두 제하고 나면 그녀가 보여준 소유욕에 대한 반항심일 수 있으리라는 독자들에게 밝혀지지 않은 그 아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삼촌의 성격상 그들이 삼촌에게 위험을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촌을 블라이로 불러들이려는 생각이 가정교사보다 아이들에게 보다 절박하게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끝장까지 읽고나서도 여전히 나사를 어느 쪽으로 조여야 하는 것인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더글러스가 앞서 밝혔던 것처럼 가정교사의 광기로 보든, 아이들과 유령의 섬짓한 결탁으로 보든 이 서사가 공포스럽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유리 동물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8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고 테네시 윌리엄스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에 푹 빠진 터라 이번 작품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은 아니지만 그 독특함이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등장하는 블랑시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며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녀 내부의 순수성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처럼. 그래서 그녀의 비극이 더 비극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마거리트와 브릭은 부부이다. 마거리트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어느 남자든지 그녀를 보면 그녀의 매력에 빠져서 그녀를 원하게 될 정도이다. 그러나 어쩐지 남편 브릭은 그녀를 차갑게 대한다. 멍한 그의 시선은 그녀가 아니라 늘 그녀 너머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도입부에서 이렇게 외면받으며 외로움에 떠는 마거리트.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냉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어떤 면이 그를 술독에 빠져서 가정사를 외면하도록 만들었을까.

 

폴리트 할아버지의 예순 다섯번째 생일잔치가 시작되려는 시점이지만 어쩐지 가족의 모습은 평안하지 않다.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거짓말을 믿고 할아버지는 건장하다며 즐거워한다. 축복이 가득한 생일잔치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할머니의 순진한 바람은 이 공간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환상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남편으로부터 평생 냉대를 받으면서도 늘 그를 사랑해왔다고 하는 그녀의 고백은 할아버지에게 전혀 울림이 되지 못한다. 남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남편의 정신과 일치하지 못하는 아내로서 그녀는 또 한마리의 양철지붕 위 고양이였는지도 모른다.

 

메이와 구퍼 부부는 아이를 다섯이나 갖고 있다. 이들 부부는 환상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들이다. 지나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냉혹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아버지 폴리트의 2만 8000에이커가 술주정뱅이 동생 브릭에게 돌아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후반부에서 구퍼는 어머니가 현실을 알고 받는 충격에 아랑곳 않고 아버지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초안을 만들어 그들 앞에 제시하기까지 한다. 다복한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인 애정이나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둘째 아들 브릭에게 폴리트는 메이와 마거리트 두 며느리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들이라고 표현한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있기 쉽지 않지만 결코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 두 여인들. 마거리트는 가난했던 남부의 생활을 겪었고, 다시 그 가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며 술주정뱅이 남편을 건사하며 힘들게 살아야했던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마거리트가 남편 브릭의 애정을 그토록 원하는 이유도, 아버님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메이 역시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그 아이들로 하여금 할아버지의 애정을 얻어낼 수 있도록 갖가지 재롱을 부리게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어쩌면 마거리트보다 그녀가 훨씬 더 치열하게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아이 다섯에 또 하나의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니까.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라도 아버님의 땅이 필요했을테니까.

 

폴리트와 브릭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허위에 대한 혐오 때문에 술을 마셔야 했던 브릭 역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은 마거리트의 폭로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외면 때문이었다. 친구의 외침을 못 들은 척 했던 허위.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가. 그녀가 진실을 밝히려 했기 때문에 그녀를 증오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아버지 폴리트에 의해서 보다 확실하게 그에게 인식된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반발적으로 아버지에게 그가 부딪쳐야 할 진실 - 죽음 - 을 밝혀버리고 말았지만. 그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보다 자기 스스로의 허위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자 그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회상극의 형식이기 때문에 인물의 행동이나 배경이 모호하고 꿈같은 것이 특징이다. 읽으면서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지만(연극이니까) 이미 과거의 일임을 알게 해 주는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어 실제로 상연되는 것을 본다면 어떨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딸을 자기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어머니 어맨다의 집념과 창고에서 늙어지지는 않겠다는 톰의 의지와, 그 모든 것에 초연하지만 사랑앞에 약해졌던 여인 로라의 모습은 잠깐의 흔들림에도 깨져 버리는 유리로 된 가정같았다. 특별하게 아름다웠던 로라는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톰처럼 자신의 삶을 개척하지 못했던 로라는 그렇게 유리 유니콘처럼 깨어져 버렸을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고 테네시 윌리엄스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에 푹 빠진 터라 이번 작품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변에 있을 것 같은 인물은 아니지만 그 독특함이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등장하는 블랑시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며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녀 내부의 순수성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처럼. 그래서 그녀의 비극이 더 비극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마거리트와 브릭은 부부이다. 마거리트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어느 남자든지 그녀를 보면 그녀의 매력에 빠져서 그녀를 원하게 될 정도이다. 그러나 어쩐지 남편 브릭은 그녀를 차갑게 대한다. 멍한 그의 시선은 그녀가 아니라 늘 그녀 너머의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도입부에서 이렇게 외면받으며 외로움에 떠는 마거리트.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그녀가 남편으로부터 냉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어떤 면이 그를 술독에 빠져서 가정사를 외면하도록 만들었을까.

 

폴리트 할아버지의 예순 다섯번째 생일잔치가 시작되려는 시점이지만 어쩐지 가족의 모습은 평안하지 않다. 할아버지가 암에 걸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거짓말을 믿고 할아버지는 건장하다며 즐거워한다. 축복이 가득한 생일잔치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할머니의 순진한 바람은 이 공간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환상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 남편으로부터 평생 냉대를 받으면서도 늘 그를 사랑해왔다고 하는 그녀의 고백은 할아버지에게 전혀 울림이 되지 못한다. 남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남편의 정신과 일치하지 못하는 아내로서 그녀는 또 한마리의 양철지붕 위 고양이였는지도 모른다.

 

메이와 구퍼 부부는 아이를 다섯이나 갖고 있다. 이들 부부는 환상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물들이다. 지나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냉혹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아버지 폴리트의 2만 8000에이커가 술주정뱅이 동생 브릭에게 돌아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후반부에서 구퍼는 어머니가 현실을 알고 받는 충격에 아랑곳 않고 아버지의 재산을 관리할 수 있도록 초안을 만들어 그들 앞에 제시하기까지 한다. 다복한 가정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인간적인 애정이나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둘째 아들 브릭에게 폴리트는 메이와 마거리트 두 며느리를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들이라고 표현한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 있기 쉽지 않지만 결코 그곳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 두 여인들. 마거리트는 가난했던 남부의 생활을 겪었고, 다시 그 가난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며 술주정뱅이 남편을 건사하며 힘들게 살아야했던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마거리트가 남편 브릭의 애정을 그토록 원하는 이유도, 아버님에게 존경을 표현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하는 이유도 다 거기에 있다. 메이 역시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그 아이들로 하여금 할아버지의 애정을 얻어낼 수 있도록 갖가지 재롱을 부리게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어쩌면 마거리트보다 그녀가 훨씬 더 치열하게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아이 다섯에 또 하나의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니까.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라도 아버님의 땅이 필요했을테니까.

 

폴리트와 브릭은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허위에 대한 혐오 때문에 술을 마셔야 했던 브릭 역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은 마거리트의 폭로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외면 때문이었다. 친구의 외침을 못 들은 척 했던 허위.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가. 그녀가 진실을 밝히려 했기 때문에 그녀를 증오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아버지 폴리트에 의해서 보다 확실하게 그에게 인식된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반발적으로 아버지에게 그가 부딪쳐야 할 진실 - 죽음 - 을 밝혀버리고 말았지만. 그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서 보다 자기 스스로의 허위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작품이자 그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희곡이다. 회상극의 형식이기 때문에 인물의 행동이나 배경이 모호하고 꿈같은 것이 특징이다. 읽으면서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지만(연극이니까) 이미 과거의 일임을 알게 해 주는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어 실제로 상연되는 것을 본다면 어떨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딸을 자기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어머니 어맨다의 집념과 창고에서 늙어지지는 않겠다는 톰의 의지와, 그 모든 것에 초연하지만 사랑앞에 약해졌던 여인 로라의 모습은 잠깐의 흔들림에도 깨져 버리는 유리로 된 가정같았다. 특별하게 아름다웠던 로라는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톰처럼 자신의 삶을 개척하지 못했던 로라는 그렇게 유리 유니콘처럼 깨어져 버렸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호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2
외젠 다비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밀 르쿠브뢰르와 그의 아내 루이즈는 메르시에씨를 기다리는 중이다. 메르시에씨는 부동산중개인이다. 그들은 메르시에씨를 통해 이 호텔을 인수할 계획이다. 말이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여인숙같은 곳이다. 살림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숙박시설이기도 한 공간. 루이즈는 좁은 복도나 지저분한 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곳의 전망만큼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이 곳에서 새로운 꿈을 키워갈 것이다.

 

북호텔은 외젠 다비 자신의 부모님이 경영했던 호텔의 이름과 같은 이름이다. 작품 마지막에 있는 작가 연보를 보고 알게 되었다. 아마 그래서 소설 속에 이 부부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 것으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이 아들은 소설 속에서는 전혀 비중이 없는 인물인데 말이다. 루이즈는 이 북호텔을 깔끔하게 꾸려나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그녀는 전 주인의 게으름 때문에 더럽게 방치되어 있던 방들을 치우고 에밀 역시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 이 부부의 성실함 덕분에 북호텔은 점차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북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파리의 중심 인물들이 아니다. 철공장 직공이나 기계공들, 수많은 남자친구를 거느린 젊은 처녀들과, 그저 파리를 동경해서 올라온 시골처녀, 나이가 많아 양로원에 들어가기 직전의 노인들과, 오입쟁이, 도박꾼, 마차꾼과 결핵환자 등이다. 이들의 이력에서 비롯된 소소하지만 때로 충격적인 일상이 담담하게 카메라로 비추는 것처럼 그려진다. 감정적인 표현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모든 일들을 아우르는 시선은 따뜻함이다. 이 따뜻함을 갖고 있는 인물은 북호텔의 안주인 루이즈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아이를 갖고 나서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처녀 르네를 돌봐주는가 하면, 아마도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는 듯한 라드베츠에게 병원에 가도록 유도하고 그 병원으로 기꺼이 찾아가 위문을 하기도 하고 드보르제 영감이 양로원에서 가끔 외출을 나와 들르는 날에는 그의 손에 10프랑을 쥐어주기도 하는 등 마치 우리 이웃집에 살고 있는 정 많은 아줌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늑막염에 걸려 아픈 상황에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 엄마들을 닮기도 했다. 그녀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북호텔에서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버림받고, 누군가는 몸을 상할지라도 그들 모두 위안을 얻고 있었던 공간이었다고 북호텔을 추억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북호텔은 사라진다. 루이즈는 몇 년간 자신이 공들였던 건물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그곳에는 모던피혁의 뼈대철근이 세워진다. 이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그 시간은 저 철근들처럼 냉혹한 것일까. 루이즈가 손으로 가꾸었던 공간처럼 따뜻했던 공간은. 이제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