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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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은 심리학 용어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 싶다. 자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왕의 이름이다. 아버지에게 경쟁의식을 갖고 어머니를 차지하려고 하는 어린 시절의 한때를 이런 용어로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이야기는 그가 이러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라기보다는 그저 운명앞에 강하지 못했던. 운명을 피하려다 결국 운명에 덜미를 잡힌 한 가련한 인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의 아버지 역시 아들에게서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했던 일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되고 아들인 오이디푸스 역시 자신을 길러준 양 아버지가 친 아버지인 줄 알고 그를 피해 떠나가는 길에 진짜 아버지를 죽이게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과연 신탁이 이들에게 한 짓은 무엇인가. 차라리 이러한 운명을 몰랐더라면 그랬다면 피해갈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들이 신탁을 무시하고 함께 살았더라면 또 그 상황에서의 비극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운명앞에 모두 무력할 뿐이라면 우리가 하는 노력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이 극이 비극인 이유는 운명에 맞설 수는 없다는. 인간의 의지가 사실은 별 것이 아니라는 서글픈 인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어머니와 결혼한 오라버니의 딸. 극중 오이디푸스는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누이이자 딸로 부른다. 그의 아들들은 왕좌를 차지하다 서로를 죽이고, 나라는 크레온의 차지가 된다. 외삼촌뻘인 크레온은 나라를 지키려다가 죽은 에테오클레스는 장례를 치르되, 폴리네이케스의 장례는 금지한다. 그의 시체를 짐승들이 뜯어먹도록 두라는 것이 그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자신의 오라버니를 그렇게 둘 수 없었기에 명령을 어기고 장례를 치르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고 만다.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은 무서운 것이었다. 안티고네를 살리지 않으면 크레온에게 재앙이 닥칠것이라했지만 크레온은 자신의 명령을 번복하기를 망설이다 결국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안티고네의 약혼자였던 아들 하이몬이 죽고, 그를 잃은 슬픔에 아내 에우뤼디케가 죽은 것이다. 죽은 자를 향한 보복은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는데, 때로 사람들은 헛된 고집에 모든 것을 걸기도 하는가보다.

 

아이아스는 오뒷세우스에게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빼앗긴 일로 마음을 다쳤다. 그는 영웅이었으나 그의 마지막은 우스꽝스러웠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영웅으로서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그의 비극은 비단 무구를 빼앗긴 데 대해 보복할 마음을 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기의 능력에 대한 오만함. 신의 도움을 우습게 알았던 그 오만함 때문이었다. 아테네는 그의 눈을 가리웠고, 그는 보복을 실현하는 줄 알고 가축들을 죽이며 즐거워했다. 그는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쓸쓸히 죽음의 길을 찾아갔다. 그들이 죽이려했던 인물들의 근처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트라키스 여인들은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아내이야기이다. 헤라클레스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그의 마음을 돌리려고 죽어가는 넷소스에게서 얻은 옷을 그에게 입히고, 결국은 의도치 않게 남편을 죽이게 된 이야기.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이 옷을 주고 난 다음 이 옷이 남편에게 해가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넷소스의 독이 매우 맹렬한 것이며, 그가 죽어가면서 옳은 일을 해주지 않았으리라는 점도 짐작하면서 만에 하나 가능할 그 가능성에 기대어 남편에게 옷을 보낸 것이다. 에게는 어쩌면 두 가능성 모두 마찬가지였을지 모른다. 자신에게 돌아온다면 좋겠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죽으리라. 그렇다면 자신도 남편의 조강지처로서 그를 다른 여인과 나눠갖기 전에 죽으리라고 하는 결심이. 그녀에게 있었을테니까. 헤라클레스의 힘을 압도하는 여인의 잔인한 질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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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5
A. J. 크로닌 지음, 이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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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구석의 작은 마을 블라넬리에 앤드루 맨슨이라는 의사가 에드워드 페이지의 조수로 부임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수료한 후 학자금을 갚기 위해 조수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젊은 나이의 사회초년병이 그렇듯 그 역시 열정을 품고 마을에 입성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실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을 안고. 그러나 시골의 의사들이 의료 지식에 무지하다는 사실과, 한때 능력있었지만 질병앞에 나약해진 페이지 의사, 또 그를 돌본답시고 자기의 권익 추구에 앞선 페이지부인등을 만나면서 현실에 울분을 통하기도 하고 안타까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필립 데니라는 의사를 만나게 되고, 거칠고 퉁명스럽지만 능력있는 그의 조언과 임상경험을 통해 한층 성장하게 된다. 그는 이제 지식만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직관을 동원하고 모든 사실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창궐한 장티푸스의 억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한 후 그는 인기 의사가 되지만 그를 시기한 페이지부인에 맞서고, 결국 스스로 사퇴해버린다.

 

 2부는 블라넬리의 초등학교에서 만나게 된 여교사 크리스틴과 함께 결혼하여 에버럴로 탄광의 의사연합의 의사가 되면서 시작된다. 좀 더 넓은 사회로, 그리고 좀 더 높은 지위를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시골의사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블라넬리에서보다 더 큰 위험도 만나게 된다. 신참 의사에 대한 불신과, 구조적인 불합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특유의 성실함과 꾸준함. 게다가 친절하고 상냥한 아내 크리스틴의 도움으로 그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되고, 덧붙여 왕립의사협회의 인증까지 받게 된다. 폐질환의 권위자가 되려는 꿈을 착실히 진행했고, 그 결과 뉴욕 광산 위원회의 의무관으로 발탁되면서 2부는 끝난다.

 

현실에 맞선 이상. 인간의 삶이란 현실과 이상. 이 두가지의 대립과 갈등, 또 결합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실이 이상보다 강할때도 있고, 이상이 현실보다 강할 때도 있다. 아마 앤드루의 시작은 분명 이상이 현실보다 강한. 그 시기일 것이다. 그는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다. 그러나 그는 강인하고 불도저같은 인물은 아니다. 이야기 속에서 말했듯이 그는 싸움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는 불합리를 참을 수 없었고, 자신의 신념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뿐. 나약하고, 자신감 없는 한 인간에 불과하다. 사람들 앞에서면 떨려서 할 말을 제대로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인 인물. 질투때문에 자신의 판단이 흐려졌는지 냉정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먼저 말해버리는 성미를 가진 인물일 뿐이다. 누구보다 열정적이지만 한편 누구보다 평범한 그의 2권에서의 행보는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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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6
A. J. 크로닌 지음, 이은정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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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성공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 지금껏 신조로 삼았던 길과 얼마나 다른 길로 가고 있는지는 잊어 버렸다. " p.84

 

1권에서 앤드루의 신념과 그가 어려운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했었는지 감동적으로 읽었었다면 2권에서의 그에게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 그렇게 타락해가고, 자기의 신념을 버리고, 과거 자기가 분노했던 대상의 모습을 닮아가게 된다. 그 길에서 빠져 나오는 경우도 있고 그 길에 멈춰 서서 자신이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와 버렸노라고 체념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앤드루의 경우에는 다행히도 전자의 경우이기는 했지만 그가 너무나도 빠르게 자신의 신념으로부터 멀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는 하다.

 

앤드루는 열혈청년이었다. 그는 부패는 싫어했지만 능력에 대해서는 매우 신뢰했다. 아마도 런던에서 의사들의 성공을 보면서 개업의의 성공을 능력과 연관짓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까지도 모두 그들의 능력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했는지 모른다. 그가 프랜시스 로런스 부인과 데이트를 즐기면서 그녀의 여유있음과 사람들을 부리는 태도에서 능력을 느끼고 찬탄해 마지않았던 것도 그 연장선상이리라. 물론 이미 그 즈음에 그에게서는 기존의 도덕적 가치관이 많이 사라져버린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던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자기처럼 성실하고 정직했던 세탁소 주인 비들러 부부에게 불행이 닥쳤기 때문이었다. 견실하게 살아왔던. 희망을 품고 세탁소를 개혁상사라고 부르던 부부. 남편인 해리 비들러의 낭종을 제거하려던 앤드루는 그가 늘 했던 것처럼 동료의사 아이보리에게 수술을 부탁했고, 아이보리는 무모하고도 어리석은 시술을 해 사고로 해리 비들러를 죽이고 만다. 그가 제거해야했던 낭종이 출혈성 낭종인줄도 판별하지 못하는 엉터리 의사라는 것을 알아챈 앤드루는 오열하는 해리의 아내에게 수술이 끝난 후 수술을 이기지 못해 죽었다고 말하는 아이보리의 가증스러움에 분노를 참지 못한다. 수술실의 상황을 모르는 가족에게, 게다가 의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는 소시민들에게 이런 거짓말은 얼마나 자연스럽게 먹혀들어가는가.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일을 증오했던 그가 그렇게 돈을 벌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었다.

 

앤드루가 돌아왔지만 비들러를 죽게 한 책임은 그에게 돌아왔다. 그가 울부짖었던 것처럼 신은 잊지 않았다. 그가 살 수 있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그리고 신은 그의 아내 크리스틴을 데려갔다. 그와 아내가 충분히 행복하던 그 때에. 행복에 가득 차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던 그 때에. 그녀를 잃은 앤드루는 데니의 도움으로 점차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만 애버럴로에서 만난 친구 콘 볼런드의 딸 메리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아닌 스틸먼의 요양소에서 수술을 한 것 때문에 의사 자격을 박탈할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다시한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이러한 증언은 1,2권 전반에 계속 등장하는 그의 연설의 마지막 결론과도 같다. 그는 모든 시스템을 체험해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 적응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열혈청년이었던 그 때의 희망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내 대신 친구 데니와 호프가 있어 줄 것이다. 신념을 함께하는 친구가 있는 한 그가 제 길을 잃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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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9
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송상기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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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때에는 주의해야 한다. 독자에게 주인공처럼 느낄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주인공의 모습에서 독자가 멀어져 버리거나 그와 같은 감정을 유지하지 못하면 긴박함은 떨어지고 이야기는 모호해져 버린다. 내가 그인것처럼 서술자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읽으면 이 이야기의 공간과 숨막힐 듯 아름다운 아우라의 모습, 또 늙은 콘수엘로 부인의 주름진 얼굴표정이 눈 앞에 그려지게 될 것이다. 이인칭 소설의 강점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주인공과의 동일시 이야기 속에 내가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현실감.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다루는 데도 마치 현실에 있는 일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너라고 지시하고 있는 소설의 시점 때문인 것이다.

 

작가인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말미에 딸려있는 글에서 자신의 주인공 펠리페 몬테로를 가짜 주인공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진짜 주인공은 그가 동일시하게 되는 요렌테 장군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너라고 불리는 우리들 모두를 말하는 것일까. 아무튼 그 주인공 펠리페는 역사학도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조건과 매우 일치하는 조건을 가진 역사학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콘수엘로 부인의 집으로 찾아들어간다. 4000페소라는 거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기회지만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아우라에 이끌려 그 집에서만 작업을 해야 한다는 부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그 곳에서 콘수엘로 부인의 남편이었던 요렌테 장군의 비망록을 편집하고 마무리 하여 출판하는 일을 맡게 된다.

 

존재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불명확한 장소. 콘수엘로 부인은 가끔 식사시간에 자리를 비우고, 때로는 신체의 일부분만 희미하게 보인다. 아우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인이라는 사람이 있지만 그 역시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펠리페 역시 자신의 신체를 자기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면도를 하면서 자신이라도 스스로를 통제해야 한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가능한 사람은 그런 결심을 할 필요도 없다. 그는 아우라가 늙은 콘수엘로 부인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빼내고자 하지만 점차로 아우라와 콘수엘로 부인은 동일시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요렌테 장군의 모습과 동일시 된 자신을 발견한다.

 

아우라는 콘수엘로 부인의 욕망이다. 그녀가 끝까지 지키고 싶어한 그녀의 젊음. 이 둘의 존재가 같은 것이라는 점은 이들 둘의 행동에서 드러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하고, 때로는 다른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하기까지 일치하는 그들의 행동. 젊음과 늙음의 차이가 있을 뿐 그 둘은 행동 뿐 아니라 심정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그녀 둘을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단지 그녀가 환영인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요렌테 장군을 따라가는 펠리페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요렌테 장군의 비망록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그가 아우라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는 장군의 역사적 기록보다 개인적 기록. 즉 콘수엘로 부인에 대한 기록에 집착한다. 그리고 아우라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요렌테 장군이 콘수엘로 부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늙더라도, 죽더라도 사랑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진 속에서 요렌테 장군이 아닌 자신을 발견한다. 이제 비망록을 마무리하는 일은 그의 몫이다. 비망록의 뒷 부분은 그에 의해 채워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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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과 다른 사람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4
세스 노터봄 지음, 지명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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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인 소녀를 찾아 곳곳을 헤맸지만 그녀를 놓쳐 버린 나, 그녀를 찾아 헤매지 않았지만 대신 나를 만나고 맞이해 준 그들.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었고, 나는 유유자적한 삶을 살며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이 사유하기를 갈망했다." p.130

 

태어나면서부터 너무 늙어버린 남자. 필립.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었던 소년. 그리고 청년. 미리 나이들었다고 말하지만 그 순진함이 때로는 덜 자란 어른같기도 한 인물이다. 필립의 이야기는 그의 삼촌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삼촌은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람이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필립의 물음에 자기 자신과 결혼했다고 말한다. 아니 처음에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이 되어버린 추억과 결혼해 살고 있다고. 벽에 걸린 그림들을 실제 사람처럼 대하는 데다, 한 때 잠깐 스친 인연일 뿐이었던 인도네시아 소년과의 추억을 곱게 간직하고 살아가는 삼촌. 필립은 자연스럽게 그의 추억을 이해하고 또 자연스럽게 그가 이끄는대로 벽에 있는 인물들과 인사한다. 그는 의문을 가지기는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의 받아들임의 자세. 그것이 모두가 그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 원동력은 아닐까.

 

필립은 길 위에 있다. 그는 삼촌을 떠나 여행을 하는 중이었고, 여행중에 만나게 된 중국인 소녀를 찾아 계속 방랑생활을 하게 된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와 얼굴을 맞댄 시간은 1분도 채 안된다. 그녀는 그 자체가 찾으려는 대상이기도 하고, 또 그녀를 찾아가는 길 자체가 그녀이기도 하다.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가 발길 닿는 대로 가더라도 찾을 확률은 반반이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 때문에 찾을 확률이 50%나 생기는 아이러니.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은 기록되지만, 정작 찾아다니는 중국인 소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 아이러니.

 

필립과 함께 떠나는 길은 이야기의 길이다.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그가 찾는 소녀와의 이야기들과 그 자신의 이야기들을 만나게 된다. 정지해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정지해 있지 않은 필립은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자기의 이야기를 만든다.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렇게 정지해 있지 않은 방랑자인지도 모른다. 이야기들의 사이를 끊임없이 배회하는. 그리고 정말 만나고 싶어하는 그 하나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애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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