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없는 불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5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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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 소설이다. 소망 없는 불행은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아이이야기는 그의 딸과 함께했던 생활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전적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감정선보다 훨씬 건조하다. 자기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작가의 의도된 절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망 없는 불행에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은 가난한 시절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같다. 자주적인 생활을 꿈꾸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어릴적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재능을 마음껏 펼쳐볼 수는 없었던. 아이를 여러번 낙태할만큼 모질기도 했지만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날 수는 없었던. 남편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한편 업신여기기도 하지만 자신이 없는 남편의 생활에 안쓰러움을 갖는. 나중에 그녀가 자기의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삶을 포기하는 데에 이르렀기는 했지만 살아오는 동안 어머니로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붙잡고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이야기는 조금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쓰였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소망 없는 불행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채 전개되었는데, 남자 또는 그로 지시되던 아이의 아버지가 어느 순간 '나'라고 표현되었다가 또 다음에는 다시 '그'로 지시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한 문단 내에서도 '나'와 '그'가 번갈아 쓰여 서술자와 인물간의 거리가 가까워졌다가 또 멀어졌다가 한다. 이런 서술의 낯설음 때문인지 단순하게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되는 일상의 변화와 어려움. 생활의 기쁨등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아이는 아이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라는 것.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통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형식의 독특함. 서술의 신선함을 느껴보기에 좋은 소설이다. 새로운 소설을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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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3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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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들으면서 늘 궁금해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 전에 그의 소망없는 불행을 먼저 읽게 되었고, 그 작품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바로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을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라는 것을 그 때에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 언어보다 스토리에 집중하는 나에게는 어려운 작가일 수밖에  형식이나 사실보다 '언어'라니. ㅡㅡ;

 

소망 없는 불행이 그의 자전적인 삶을 객관적으로 그려낸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었다면 이 작품은 그의 소설에 대한 생각을 알게 해 주는 작품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블로흐는 유명한 골키퍼였으나 건축 공사장에서 조립공으로 일하다 해고된다. 그러나 이 '해고'는 매우 석연찮은 점이 많다. 이는 '언어'로 통보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흘끗 올려다보는 시선을 블로흐가 '해고'로 해석한 것 뿐이다. '해고'는 '몸짓'으로 통보되었으나 '언어'로 통보된 것 만큼이나 그에게는 확실한 것이었다. 그가 이를 해고로 이해했음에도 말리지 않은 현장감독의 모습으로 보아 적어도 그의 해고를 막을만한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마치 골키퍼였던 시절에 공이 라인 위로 들어가는 것을 우두커니 지켜봐야 했던 때와 같은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가 일터로부터 밀려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동안 아무도 그에게 집중하지 않는다. 골키퍼가 주목받는 순간은 골이 들어가기 직전. 뿐이다. 골이 들어간 이후에도 게임이 재개되면 골키퍼는 다시 소외된다. 세상 속에서의 그의 모습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가 매표원을 죽이고 떠난 국경선 근처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 주변의 사물들이 흐리게 느껴지는 것처럼. 아이의 모습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의 존재도 세상이 잘 돌아가는 순간에는 흐릿해져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살인이 밝혀지는 순간에 망연자실하게 골이 들어가는 순간에 골키퍼 그의 존재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그리고 다시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는 곧 잊혀질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삶은 우리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일이 우리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런지. 일에서 밀려 나온 이후에 생긴 불안감이 우리 나머지 생활을 지배하는 것 역시 우리 삶의 모습은 아닐런지. 그래서 누구나 이러한 골키퍼의 불안을 갖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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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5
앙드레 브르통 지음, 오생근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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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의 대표작이라고 말하면 읽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나역시 그랬으니까 자동기술법이라고 하는 서술 방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당혹감은 이후에 접하게 된 모든 작품들에서도 그닥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글을 읽는 사람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채 서술되는 글쓴이의 생각을 따라가는 것은 어지간한 집중력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어떤 문장이나 단락은 다시 읽고 또 다시 읽어도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자는 그 정도의 작품은 아니다. 글의 서술자인 '나'는 서두에서 자신에 대해 탐구하며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드에 대해서, 또 자신이 감상한 영화의 장면에 대해서,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는 상상력의 소산들에 대해서 서술한다. '나'의 인물이 어떠한 사람인지 이해될 때쯤 나자가 등장한다. 나자는 그가 서두에 말했던 어느 숲속에 벌거벗은 채 있었던 여인일 수도 있고, 그와 대화가 가능한 여인일 수도 있고, 그가 빠져서 지내게 되는 '엘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존재하는 여인일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여인일 수도 있다. 불과 물이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모순된 존재다. 어제는 완전히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다음 날은 정돈된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물질에 매우 초연한 인물인 것 같지만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떠밀려다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와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약속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 나타나고, 미래를 점치는 예언자의 모습을 하다가 정신병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양 극단을 모두 지닌 존재. 그렇기 때문에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푹 빠져서 헤어나오고싶지 않기도 한 여인의 모습을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때로 사람들은 한 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게 된다. 익숙한 것에 익숙해지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그대로 덮어두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삶에 익숙해질때 즈음에 그가 만났던 여인 '나자'를 한번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어느 누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모습의 그녀를. 또 그녀에게서 발견되는 '나'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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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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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잘 나갔던 적이 없었던 남자. 윌리. 그는 아들들에게만큼은 영웅이었다. 수퍼맨같은 아빠. 원하는 것은 이루어주는 아빠의 모습. 비프와 해피에게 그런 존재였던 아버지가 무너져간다. 극 초반에서 보이는 윌리의 미묘함과 그를 보살피는 린다의 불안함은 바로 그의 허풍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자살을 시도하면서도 자신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아직도 자기가 잘 나가고 있다고. 현재 그렇지 않더라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잣니의 왕년을 떠벌이는 그에게서 초라한 우리네 소시민들의 뒷모습을 본다.

 

윌리의 허풍은 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아들들에게 똑같은 기대를 품고 살아왔다. 특히 큰 아들 비프는 학교를 다닐 때 선수로서 활약했고, 그 모습은 아버지에게 큰 자랑거리였다. 그에게는 우등생 버나드의 충고보다 비프의 허울 좋은 허풍이 더 듣기 좋은 것이었다. 현실에의 외면. 진실로부터의 도피. 윌리의 비극적인 죽음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그 개인의 허물로 비춰지기보다는 시대의 아픔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가 현실을 직시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대책은 없기 때문이다. 꿈은 있으되 그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삶에 충실했지만 아무에게도 자랑할 무엇이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이상으로 도피해버린 것이다.

 

특히나 아버지를 전부로 알았던 비프의 변심은 윌리에게 가슴아픈 일이었다. 수학에서 낙제를 받을 위기에 처한 비프가 윌리를 찾아갔을 때 윌리는 어머니인 린다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 스타킹을 꿰매서 신는 어머니와 달리 그 여자는 윌리로부터 새 스타킹을 선물받았고. 비프는 그 이후로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윌리는 이 사건 역시 그의 기억에서 지운것처럼. 아니 아예 잊은 것처럼 행동한다. 아내의 스타킹 꿰매는 모습을 발작적으로 싫어하면서. 이쯤되면 그가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하지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강하게 살아야 했기 때문에 진실로부터 도망치면서 삶을 꾸려왔을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가장. 그 이름은 모든 약함을 강함으로 가장해야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걸까. 아내를 배신한 행위는 잘못이지만 그는 그것을 포장할줄도, 변명할줄도, 하다못해 인식할줄도 몰랐다. 그래서 여전히 굳건히 가정을 지키는 린다보다 (배신당한건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죽음 언저리를 돌고 있는 윌리가 훨씬 더 불쌍했다.

 

비프의 도둑질을 윌리는 방치했다. 그는 아버지가 기대한 것처럼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고, 그의 도벽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직장에 다닐때마다 도벽으로 인해 쫓겨났었고 그 때문에 감옥에까지 다녀왔음을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비프는 그래도 윌리보다는 더 용기있어보인다. 그런 현실 인식이 비프가 윌리를 돌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반면 현실을 외면하는 아버지의 기질을 닮은 동생 해피는 가족들과 부딪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그는 꿈을 살았던 아버지처럼 꿈에서 살고 있다. 죽음 언저리의 아버지곁에 있었으면서 전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이리라.

 

삶은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이어진다. 윌리의 죽음이후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시작과 끝에 마치 예언처럼 기술되었던 대사가 책을 덮은 후에도 마음을 울린다.

 

윌리 : 생각해봐. 집을 사려고 평생 일했어. 마침내 내 집이 생겼는데 그 속에 사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거요. p.14

린다 : 여보. 오늘 주택 할부금을 다 갚았어요. 오늘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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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0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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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고전중의 고전이다. 어린 시절에는 옛 이야기를 읽듯이 읽었고, 또 학창 시절에는 판소리로, 또 소설로 공부하면서 읽어 보았을 것이다. 춘향전은 판소리계 소설이 그렇듯 이본이 많은 편이고, 또 이후 다양한 작품으로 개작되어 등장할만큼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좋은 텍스트이다. 최근에는 춘향전에서 영감을 얻어 전혀 다른 작품으로 탄생한 영화 방자전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사실 춘향전을 읽어보았다고 하더라도 작품 속에서 춘향이가 어떻게 다르게 드러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열녀춘향수절가 완판본과 춘향전 경판본을 함께 실어놓은 민음사의 춘향전은 의미있는 책읽기가 될 수 있다.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는 판소리로 불려졌다는 특성 때문에 말하기 좋은 문체로 쓰여있을 뿐 아니라 시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별춘향전 계열이 거듭 개작되면서 완성되었기 때문인지 내용도 매우 복잡하고 길다. 묘사도 자세하다. 춘향이의 탄생부터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수절가가 오히려 춘향전보다 더 '전'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두 작품에서 다른 점은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이다. 수절가에서 몽룡은 아버지에게는 춘향이에 대한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혼만 난 채로 춘향이에게 이별을 고한다. 처음에 같은 이유로 월매가 둘의 사이를 반대했을 때는 제법 어른스러웠던 몽룡이 떠날때의 모습을 보면 철부지 소년이 따로 없다. '어른들이 하면 안된대'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춘향이의 태도도 역시 다르다. 수절가의 춘향이는 애원하고 매달리고 실신한다. 하지만 춘향전에서의 춘향이는 제법 어른스럽다. 반대로 춘향이에서 몽룡이는 부모를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수절가의 춘향이와 몽룡이가 더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걱정하던 그 일이 마침내 벌어졌는데 태연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기생의 딸이지만 도도하게 살아왔던 춘향이가 우려했던 대로 버림받은 신세가 될 판인데, 부모님이 혼내서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남자를 믿고 기다리는 일이 쉽지 않을 뿐더러, 온다는 약속 또한 뭐라고 믿는단 말인가. 게다가 아버지 따라 내려온 철부지 도령이 기생 하나 홀리다가 다시 한양가버리는 일은 조선시대 비일비재한 일이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춘향이는 절개를 지켰다. 좀 비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춘향이는 매를 맞아가면서도 하나 둘에 맞추어 구구절절 자신의 의견을 내비친다. 춘향이가 사또의 수청을 들지 않은 표면적인 이유는 이몽룡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춘향이가 사또의 수청을 드는 순간. 그녀는 기생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기생으로 평생을 살 것이냐, 한 남자의 아내된 도리를 지키다 열녀로 죽을 것이냐. 춘향의 삶의 기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로지 사랑때문에 죽음을 선택했지만, 춘향의 죽음은 오로지 사랑때문만이 아니라 자기의 미래와 명예가 달린 문제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때문에 아파하는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나타난다. 놀라운 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춘향과 몽룡이의 사랑이 훨씬 더 현실감이 넘친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지는 방식이나 사랑한 이후에 나오는 행동들이 더 과감한 쪽은 로미오쪽보다는 춘향이 쪽이 더하다. 애정 표현에 과감했던 것은 서양보다는 우리쪽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춘향전의 춘향이는 좀 더 점잖다. 간단히 기술된 부분이 많아서이기는 할 테지만. 아무래도 나는 수절가에서의 춘향이 쪽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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