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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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클레어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이미 익숙하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 데미안은 이보다 더 유명하다. 그는 주인공 싱클레어의 성장에 함께하는 인물이다.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인 듯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의 상상속의 인물인 듯도 하다. 혹은 그 자신의 어떤 부분이 형상화 된 것 같기도 하다. 

소년 싱클레어는 무용담을 통해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으려다 프란츠 크로머라는 인물로 부터 협박을 당하게 된다. 거짓으로 했다고 했던 도둑질을 실제로 한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협박에 굴복한 싱클레어는 하루하루 죽을만큼 괴로워하면서 보내게 된다. 크로머는 그에게서 돈을 받아내고자 하고, 싱클레어는 진짜 도둑질을 하게 되기에 이른다. 이 어려운 상황에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데미안이다. 그는 독심술을 하는 것처럼 싱클레어의 내면을 잘 읽어낸다. 그리고 곧 크로머는 데미안에 의해 떨어져 나가게 된다. 데미안이 그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나와있지 않으나 이후 싱클레어에게 크로머는 어떤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 

크로머는 낮은 차원의 인물이다. 그는 싱클레어의 육체와 정신을 피로하게 한 것은 사실이나 그의 영향력은 싱클레어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싱클레어가 지적했듯이 데미안도 크로머와 비슷하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데미안의 영향력은 바로 정신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새로운 정신을 심어주었다. 기존의 틀을 부수도록 만드는 생각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단순히 반복되는 일탈의 정도가 아니라 그의 삶 내내 지속될 새로운 사고의 탄생. 그것이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미친 영향력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싱클레어는 꾸준히 성장한다. 카인의 표적. 그래서 사람 속에서도 여전히 고독한 그 표적을 달고서. 전쟁 속에서 데미안은 그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한다. 이제 그. 데미안은 싱클레어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와 보낸 마지막 이후가 더 아팠다는 사실은 성인이 된 싱클레어의 삶이 가슴아프게 고단했다는 말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모든 성인들이 그러하듯이. 알을 깨고 나온 새가 날아가는 곳은 창공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날개를 접고 땅에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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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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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동화가 아니라 희곡이라는 원 형태로 읽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들의 사랑이 죽음으로서 완성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비극에 속하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비록 희곡에서 죽었을지라도, 독자들에게 영원히 청춘의 정열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죽음까지도 불사했던 진실한 연인으로 기억될테니 그저 비극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는 설명이 아니었을까. 

이 젊은 연인들은 사랑에 빠지는 시간이 지극히 짧았던 반면, 사랑에 빠진 깊이는 매우 깊었다.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그의 발도 손도 아닌, 그의 일부라 할 수 없는 몬터규라는 이름을 버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건 다른 어떤 말로도 같은 향기가 난다는 그녀의 말은 그들의 처지를 고려하면 처절하게도 아름다운 표현이다. 그들의 만남은 순수하게 그와 그녀의 만남이었으며, 그 이후에 로미오가 만나는 그녀의 친척들이 인간대 인간이 아닌 가문대 가문으로 만나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지속해 온 것과는 지극히 대비되는 만남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만남에 가문이 속해있었던 두 젊은이는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사랑을 절대로 놓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줄리엣이 로미오에 대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던 반면, 로미오는 줄리엣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노련하게 다루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의 비극은 손도 발도 아닌 그 가문이라는 이름의 힘때문이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는 데에는 누구보다 빨랐지만 그것을 지켜내는 데는 아직 미숙했던 젊은 연인 로미오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줄리엣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의 칼을 무디게 하지 못했고, 그의 친구의 죽음을 초연하게 견뎌내기도 힘들었으며, 그녀의 죽음 앞에서 냉정을 찾을 시간을 갖지도 않았다. 그는 행동하는 연인이었고, 그의 행동의 대부분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그의 아내로서 남편이 가는 그 행동의 길을 따라가야했다. 

어떤 연인들보다 무모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서로에게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짧았기 때문에 강렬했고, 또 강렬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감수했던 두 사람이 죽음 이후에는 하나로 기억된다는 것이 이 이야기를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새겨 놓게 만든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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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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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오셀로를 읽어서 그런지 읽는 내내 두 작품을 비교하게 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적의 가문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이겨내지 못했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서로 일치했다. 둘은 서로를 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들의 죽음은 아름답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오셀로에서의 사랑은 인종의 차이도, 부모의 반대도 다 넘어섰지만 정신적인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를 의심했다. 그녀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단 한번만이라도 자기의 기수를 향해 보였더라면, 그가 간계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을지도 모르는데. 전장에서 적들과의 싸움에는 노련했던 그가 단 한 사람의 혀에는 그토록 순진하게 무너지는 것은 아마 이야고가 교활한 탓이라기 보다는 데스데모나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어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그녀가 다른 이에게도 자신에게와 같은 애정을 가질 수도 있으리라는 사실 앞에 뜨겁게 분노했을테니.

 

이야고가 오셀로에게, 또 카시오에게 품었던 분노는 매우 현실적인 분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했다. 오셀로와 카시오 모두 인품면에서는 훌륭하다는 것을 꿰뚫어 알고 있었다. 카시오의 옆에서 초라해 지는 자신을, 오셀로의 아래에서 그의 기수 노릇이나 해야하는 자신을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오셀로가, 또, 카시오가 자신의 아내와 부정을 저질렀으리라고 추측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분노는 자기의 능력에 맞는 역할을 하고 살지 못한다는 억울함에 있다. 전장을 여러 번 겪은 자신같은 사람보다 그저 책상물림하던 샌님을 위에 앉혀놓는다는 것이 못내 억울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충성을 다 하겠다고 맹세했고, 그 맹세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했다.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의 목적을 지나쳐 나가기까지 한다. 범죄의 속성때문이다. 그가 로데리고와 카시오의 싸움을 부추기면서 누가 살더라도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 이야고는 이미 자신이 개입해 운명을 바꾸어버린 이들 모두가 사라지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을 정도로 깊이 죄악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가 결국 아내 아멜리아에 의해 폭로당하고 별 소득될 것도 없이 그녀를 죽이는 장면에 이르면 이야고 스스로에게 이 범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 역시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헤집어 놓은 비극의 주인공일 뿐이다.

 

남편을 오로지 섬기기 위해 아버지를 배신했던 여인 데스데모나. 그 배신에 발목이 잡혀 순결하지만 순결하게 죽을 수는 없었던 여인. 모든 것을 버리고도 버림받은 여인. 이 비극은 그녀의 이름앞에 바쳐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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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7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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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이야기가 생각난다. 버려진 딸이 결국 그 부모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위험을 불사하는 이야기. 지극 정성으로 길렀던 여섯 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데도 눈하나 깜짝 않는다.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그들은 자신에게 위험한 일을 하길 거부한다. 망연자실한 부모의 앞에 나타난 버려진 딸 바리데기. 남녀의 사랑과 달리 부모를 섬기는 사랑은 말보다 행동으로 표현된다. 

코딜리아는 리어왕의 '즐거움'이었다. 노년의 리어왕은 그녀와 함께하는 휴식을 꿈꿨을 것이다. 평소에 보여주었던 코딜리아의 사랑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국가를 나눠주기 직전 마치 의식을 치르듯 세 딸들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말하라고 한다. 두 언니들이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했던 반면 코딜리아는 '없습니다'라고 한다. 덧붙인 말에서도 그녀는 자신은 부모를 섬기는 그 원칙에서 덜도 아닌 사랑을 하며 자신의 남편은 자기의 의무를 반을 져야하고, 남편보다 아버지를 더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내용은 진실이라기보다는 '진리'에 가깝다. 딸로서 남편과 부모를 섬기고 사랑하는 데에 필요한 '진리'. 딸이 부모를 떠나 남편과 한 가정을 이루어서 살면서 남편보다 아버지에게 집착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데다(두 언니처럼) 사실이라고 한다면 옳지 않은 일이다. 그녀가 말했듯이 그럴 거라면 남편을 갖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부모 역시 이 이상을 요구할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딸을 시집보내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이치가 그러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당연한 이치를 말하는 그녀가 리어왕은 불쾌하다. 모든 이들에게 원하는 답을 들어오던 그에게 사랑하는 막내딸이 원치 않는 대답을 해버렸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원하는 대답을 해 줄것이라고 여겼던 딸이.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코딜리아를 추방한 리어는 얼마 안 있어 두 딸들에게 무시를 받고 괴로움에 미치광이가 되고, 아버지에게 불손했던 딸들은 남편에게 역시 불손하여 교활한 남자 에드먼드에게 마음을 빼앗긴 채 서로를 죽이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아버지를 구해내려 했던 코딜리아 역시 에드먼드의 명령에 따라 억울한 죽음을 맞는다. 한 왕가가 이렇듯 쉽게 무너져 버릴 수 있을까 싶을만큼 이들의 죽음은 단순하고 안타깝다. 왕의 권력을 지닌 채 오랜 세월 나라를 다스렸던 그가 자기 딸들의 진심 하나를 몰랐다는 게, 그들의 품에서 안락하게 노년을 보내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이룰 수는 없었던 운명이었다는 게 왕권의 추락보다 더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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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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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쿠빌라이 칸에게 이방인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여행했던 도시들을 소개하고 보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매 첫장에서는 쿠빌라이칸과 마르코 폴로의 대화가 제시되고, 이후 몇 개의 도시가 도시와 기억, 도시와 욕망 등의 이름을 달고 소개된다. 1부의 도시는 그래도 현실 소에 존재하는 것 같은 도시들이지만 2,3부로 넘어갈 수록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면 절대로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도시들이 등장한다. 도시의 외형뿐 아니라 도시의 사람들의 소리들이, 또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독특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연결되고, 이 도시 이야기에는 마르코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투영되어 도시 이야기 자체가 마르코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쿠빌라이의 반응은 마치 소설이 받아들여지는 과정과도 같다. 처음에는 사실이라고 믿었고, 조금 지나서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의심한다. 그리고 더 지나서는 사실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믿기로 결심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실이 아닌 이야기라도 이야기가 존재하는 한 진실일 수 있다고 하는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마르코 폴로만이 아니라 쿠빌라이 칸도 참여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가 상상하는 도시를 이야기하고 마르코 폴로는 그 도시들이 존재하는 지 확인시켜준다. 때로는 그 존재를 부정하기도 긍정하기도 하면서. 

여행을 계속하면 길에서 많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이 여행하는 것은 여행하는 그 장소. 공간인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여행을 지속하는 동안의 시간. 그것인 것일까. 시간이 그것이라면 어느 제국의 정원에서 끊임없이 공간을 떠올리는 것으로 여행이 완성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또 하나의 여행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지만 읽는 동안 새로운 공간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많은 도시들을 머릿속에서 생겨나게 만들고 또 고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혹은 만들어냈을 지 모르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할 수도 있는 도시들을 함께 여행해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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