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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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아옌데는 이미 운명의 딸을 통해서 한 번 만나본 적이 있는 작가다. 여성의 자주성이 필요함을 드러내고자 했던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꾸려 나가는 여성인 클라라가 등장한다. 클라라는 많은 자식을 거느린 여인 니베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적부터 주변의 물건을 움직이거나 앞날의 일을 예언하는 등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매우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가 떄로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혹은 사회현실에 반하는 일을 했을 때에도 늘 보호해 주었다. 안전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그녀는 자기의 예지력 때문에 큰언니 로사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집안 사람중 한명이 실수로 죽을 거라는 예언이 그녀의 큰언니 로사에게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죽음의 충격과 함께 클라라는 실어증에 걸린다. 

실어증에 걸린 클라라가 말을 하게 된 것은 자기의 결혼을 예언하기 위해서였는데, 그녀의 남편감은 큰언니 로사의 남자친구였던 에스테반 트루에바이다. 그는 이야기 속에 화자로 등장하기도 하고 다시 등장인물로 돌아가기도 하는 등 이 작품에서 큰 역할을 맡은 인물이다. 그는 로사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그녀의 죽음에 절망했다. 그리고 그녀를 잃었다는 상실감을 클라라로 인해 채워갈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땅 트레스 마리아스 농장을 열심히 가꾸는 부지런한 농장주였지만. 권위주의적인 인물이었고, 무식하고 게으른 농장의 일꾼들을 부리는 데에 익숙했으며 화가 나면 잘 다스리지 못했다. 그의 그러한 성격이 평생 그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고, 클라라마저도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들었지만 그는 그 모든 이유가 자기에게 있기 보다는 남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트레스 마리아스에서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이용했던 여자 판차 가르시아는 그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에게는 아버지의 이름 에스테반을 쓸 수 있었다. 이러한 특권은 이후에도 그가 많은 다른 여자들에게서 아이들을 얻었더라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판차에게는 나름 자존감의 원천이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손자이자 할아버지처럼 성공을 향한 욕망을 지닌 손자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그녀의 이러한 자존감과 그에서 비롯된 상상력이 그의 욕망을 더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아마 2권에는 그의 이러한 욕망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되지 않을까 상상하고 있다. 2권에서 펼쳐질 그 다음 세대들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1권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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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9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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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를 중심으로 한 1권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2권에서는 클라라의 손녀인 알바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된다. 알바는 클라라의 딸, 블랑카의 딸이다. 블랑카는 아버지가 그토록 반대했던 남자, 페드로 테르세르 가르시아와 사랑에 빠졌고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알바였다. 페드로 테르세르는 에스테반으로부터 죽을뻔한 위기를 겪어야 했고, 블랑카는 장 드 사티니라고 하는 백작에게 팔려가듯 시집을 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알바는 의붓아버지인 장 드 사티니의 집이 아닌 모퉁이 집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웠던 이모할머니 로사의 머릿결을 닮은 그녀는 외할아버지인 에스테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외할아버지와 사상적으로는 일치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충분히 사랑스러웠고, 그녀 안에 있는 사랑을 외할아버지에게 아낌없이 쏟을 줄 아는 천진함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권에서는 그저 배경으로 작용했던 정치적인 흐름이 2권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면서 에스테반의 정치적 이력과 그를 위협하거나 그에게 동조하는 정치적 세력들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를 지지하는 정치가들이 있었지만 그의 가족들과 관련된 이들은 안타깝게도 그와 반대편에 서 있었다. 딸이 사랑했던 페드로 테르세르는 저항 가수의 이름을 가졌고, 사랑하는 손녀딸 알바의 연인 미겔은 혁명을 부르짖었다. 아들인 하이메는 그 때문에 결국 죽음을 당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지만 사상이 불일치했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어도 행보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페드로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버린 에스테반을 위험에서 구출했고, 반대로 에스테반은 딸의 애원에 못이겨 페드로의 망명을 도와주게 된다. 정치라는 것이나 사상이라는 것이 과연 가족의 사랑보다 더 대단한 것일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들의 모습에서 알아볼 수 있다. 

마치 우리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았다. 과거 쿠데타라는 이름으로 상식이 무시되던 시절의 이야기를. 어떤 이들은 자유로워질 것을 희망했고, 어떤 이들은 정의로워질 것을 기대했지만 결국 모두 피의 댓가를 치러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 가족을 잃고 미쳐버리거나 미칠 것만 같았던 시절을 지날 때의 이야기를. 그 와중에 어떤 이들은 희망을 이야기했고, 또 살아가야하는 당위성에 부합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억척스러워져만 갔던 그들의 모습들을 다시 펼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강한 영혼을 지녔던 여인들의 역사를, 또 자기의 신념대로 살아갔던 한 남자의 평생을 읽어볼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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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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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라는 한 범죄자가 쓴 일기를 편집해서 출판한 것처럼 꾸며져 있는 글이다. 한 감옥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 파스쿠알 두아르테.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이 이처럼 범죄자가 된 경위를 변명하듯 때로는 참회하듯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폭력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갓 출산한 아내를 때릴 정도로 포악한 인물이었다. 어머니 역시 그에게 사랑을 주는 인자한 인물은 아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했다. 아마도 그가 어릴적부터 보고 배운 것은 힘의 논리였을 것이다. 그가 입버릇처럼 사내다운 사내를 내뱉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다. 그에게 있어 사내다운 사내란 자신을 모욕한 이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의미였으니까. 그러한 삶의 방식은 자신의 동생을 임신하게 한 남자를 살해하는 데서부터 모친살해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백작을 살해함으로써 그는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가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한편 인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참회의 기술인 것처럼 하면서 당시 시대의 모순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법은 그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사회는. 운명은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 그는 자신의 잘못이 일부분 있다고 하면서도 끈질기게 자기의 삶에 끼어들었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을 죽인 자신을 별 가책 없이 금세 풀어준 사회에게, 가난했기 때문에 나라를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버텨내기에 터무니없이 약했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누구라도 그런 운명에서는 자기처럼 약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아 보인다. 

그는 비참하게 죽었다. 평정심을 찾은 듯 보였지만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 살고 싶다고 부르짖었다. 그토록 가치없었을지라도 그래도 살아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의 죽음이 씁쓸한 것은 그가 참회한 인간이었기 보다는 그가 사는 것처럼 살아본 적이 없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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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에서의 대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5
엘리오 비토리니 지음, 김운찬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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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현실. 환상과도 같은. 현실의 현실적 과거. 또는 다시 돌아온 현실. 시칠리아에서의 대화는 삼일간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나눈 대화들의 기록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그 대화의 대상이 매우 모호하다. 집을 떠나온 지 15년. 그 동안 한번도 찾아가 보지 않았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그는 소박하고 가난하고 안타까운 시칠리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그가 외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동경하기도 하고,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그가 갖고 있는 시칠리아 사람들에 대한 태도는 연민이다. 아버지가 떠났기 때문에 혼자 남겨진 어머니를 안타까워하며 여행을 떠난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듯이. 

어머니가 있는 고향집으로 도착한 다음의 이야기는 초반부에서 기차 안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보다 더 모호하다. 어머니는 진짜 현실에 있는 15년 후의 어머니같기도 하고, 때로는 마치 15년 전의 어머니 같기도 하다. 모자는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머니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병자들에게 주사를 놓아주는 일을 함께 하기도 하며 칼갈이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 대화하기도 한다. 어머니와 추억하는 과거, 그리고 현재. 칼갈이와 함께 나눈 대화는 모두 모욕당한 인류. 모욕당한 세상의 모습을 비춰준다. 월급을 타면 딱 열흘만 부유했던 어린시절과, 음식이 부족해서 병이 나 있는 남자,여자들과, 해이한 도덕적 관념들과, 쉽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목숨들. 이것들 모두 주인공이 초반에 말했던 무언가에 대한 분노의 원천일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어쩌면 모든 것이 환상은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지만 짧은 이야기 도막의 나열은 이 책을 한번 잡고 끝까지 읽게 해 주는 힘이 되었다. 다음의 대화가 어떻게 이어질지, 또 어머니와 아버지. 이 가족들의 과거 모습을 다시 머릿속에 재구성하면서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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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
허균 지음, 김탁환 엮음,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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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은 고전중의 고전이다.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어려움을 제거하고 결국은 율도국이라는 이상국을 건설하는 그의 모습은 이후 나오는 모든 영웅들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보았던 만화영화속의 주인공들처럼 정의의 편에 서서 약한 자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영웅. 현대에도 이런 인물이 매력적일진대, 과거에는 오죽했을까 싶다.

 

민음사판의 홍길동전에는 완판본과 경판본. 이렇게 두 판본이 실려있다. 뒷 부분에는 영인본이 과거의 형태 그대로 실려 있어서 옛 한글의 형태를 만나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수묵채색이 되어 있는 그림들과 함께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때 수묵화를 그리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그렸던 나무와 산들을 떠올리면서 그림도 함께 감상해보았다.

 

홍길동전은 개인의 창작물이긴 하지만 현재처럼 인쇄된 채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필사의 형태로 전달되었었기 때문에 약간의 변형이 일어나기도 했을 것이다. 최근까지도 홍길동전은 연극으로, 뮤지컬로, 만화영화로,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기 때문에 원전과 다른 다양한 홍길동의 인물됨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홍길동이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사회의 부조리함에 울분을 토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향을 향해가는 그의 모습은 큰 변화가 없을테지만.

 

홍길동은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으나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회에 편승하여 승리할 수 없었다. 물론 그가 실제 양반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의 성품이 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어울렸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도술의 존재이다. 물론 고전소설이고, 비현실적인 내용이 들어간다고 해서 옳지 않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도술이 아니고서는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신이한 힘이 아니고서는 홍길동은 자신에 반하는 사회의 모든 장애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적질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가난과, 도술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라는 생각은 홍길동을 응원하는 한편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일 것이라는 안타까움도 강하게 드는 것이다.

 

허균은 시대를 앞선 인물이었다. 그가 양반제도의 철폐까지 생각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는 능력있는 인물을 재야에서 썩게 만드는 사회제도는 결국 뿌리부터 흔들리고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의 능력과 관계없이 단지 신분만으로 얻은 자위라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어리석고도 위험할 뿐이라는 사실은 단지 조선시대뿐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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