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시대의 사랑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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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느라 제법 긴 시간이 걸린 작품이었다. 두 권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난 번 작품인 백년의 고독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사람은 과연 서사가 강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거리가 많다는 것. 작가로서 이것보다 더 한 장점이 있을까.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콜레라가 창궐했던. 그 시대의 사랑을 말하려는 것 뿐 아니라 콜레라 같은 사랑을 하던 시대의 이야기를 말하려 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젊은 시절 사랑하는 페르미나 다사와의 연애가 좌절되었을때 마치 콜레라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상사병과 콜레라는 같은 증세다. 라는 사실. 그렇다면 콜레라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랑도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겠구나. 라는 단순한 생각. 그리고 그 단순한 생각이 그대로 실현된 듯한 인간 플로렌티노.
 
페르미나 다사와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했다. 누군가는 페르미나가 사랑없는 결혼에 희생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결혼이 생활이었기 때문에 연인과 다른 양상을 띤 것일 뿐이다. 시작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우르비노 박사가 죽을때에 했던 진정한 사랑의 고백은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죽음의 순간에 아내에게 진실된 사랑을 고백하고 죽을 남편은 이제 우리 시대에 드물지 않던가. 물론 페르미나는 자신만의 세계를 꾸리고 살 수 있었던 처녀시절의 자유를 되찾고 그 때의 자부심과 고집스런 주장까지 되찾는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플로렌티노와 함께 죽을때까지 바다위를 떠다니게 될 것이다. 그녀는 남편이 아닌 '그'와 죽음을 함께 할 것이다.
 
사랑이 아니었을지라도 한 여인과 평생을 함께했던 우르비노 박사. 사랑이었지만 평생토록 다른 여인들을 찾아다녀야 했던 플로렌티노. 사랑이 아닌 이와 평생을 살면서 잊었던 과거의 사랑을 죽음에 가까워서야 다시 만나게 된 페르미나. 이들의 평생은 콜레라에 걸린 사람들처럼 죽음에 이르게하는 병으로 지속되었던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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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렐의 발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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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가지 사건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여기에 등장한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필명이 바로 이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의 이름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아마 책에 대해 해설한 부분을 읽어보는 편이기 때문에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이름들은 아무래도 너무 낯설어서 외우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단순한 줄거리지만 사정이 꽤 복잡해서 한 가지 이야기로 읽기가 어려운 글이었다. 어떤 잘못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무언가 죄를 짓고 쫓기고 있는 인물인 '나'는 빌링스라는 섬에 숨게된다. 이곳은 누군가가 박물관과 수영장, 예배당들을 지어놓은 상태에서 무슨 이유론지 버려진 무인도이다. 무인도라는 것을 확인하고 섬에서 살게 된 그는 여러 사람들이 몇 년 전 유행하는 옷을 입고 섬에서 매일매일 춤을 추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한다. 숨어사는 인물 치고는 대담하게도 그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만큼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그들 중 한 여인인 포스틴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지만 모두는 그를 볼 수 없는 듯이 행동하거나 무시한다. 이 묘한 일들의 원인은 바로 이들이 환상이라는 데 있다. 

처음부분에서는 사실 이들이 환상인지, 아니면 여기에서 혼자 살아있다고 믿는 서술자 '나'가 환상인지 명확하지 않다. 즉 서로가 서로를 귀신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의심은 마지막까지 유효하다. 왜냐하면 '나'에 의한 서술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가 환상일 가능성이 배제된 것일 뿐. 진실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모렐의 기계를 '나'가 발견했다는 부분을 고려한다면 다른 이들이 환영일 가능성이 높을 수 있겠지만.

'나'가 자신이 사기성이 짙은 사람이라고 발언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 전부 그의 꾸밈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나'는 자기가 작가라고 말하고 있고, 모렐이라는 인물은 테니스선수라고 말하고 있다. 거대한 발명품의 제작자가 고작 테니스선수라니. 이 직업의 묘한 불균형은 독자가 그의 이야기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장치이다.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말하고자하는 영원성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들 모두가 서술된 대로 일주일의 삶을 기록해놓고, 그 삶이 영원히 반복되도록 만들어놓은 뒤 죽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이들의 환상이 반복되는 것이 과연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켜보는 이가 그들을 전혀 모르는 제 3자라고 할지라도. 아니라면 이 제 3자조차 이들의 삶에 동화되기 위해 자신의 환영을 기록해 두었으니 이렇게 삶이 영원히 유지되고 덧붙여진다고 판단해야 하는 것일까.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망이 확장되는. 정말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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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잡아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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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십사세. 아이를 둘 뒀지만 아내와의 이혼하기위해 집을 나온 남자. 직장에서 한때 한 구역을 담당하는 인물이었지만 부사장 자리를 약속받았다가 이것이 불가능하게되자 관두고 나와 이제는 글로리아나 호텔에서 도박으로 잃은 대부분의 돈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700달러를 주식에 쏟아부은.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실패한 인생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남자. 윌헬름의 하루를 그린 이야기다. 

그에게 오늘이 과연 잡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날일까. 그의 아버지 애들러박사는 그와는 달리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젊을 때 의사로서 이름을 날렸고 나이들어서까지도 그의 명성과 그에 대한 존경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글로리아나 호텔에서 유명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아들을 그대로 받아들일만한 포용력이 없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윌헬름은 아버지에게 위로와 따뜻한 격려를 바랐으나 그의 아버지에게는 그런 미덕은 애초에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윌헬름의 몫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 애들러는 그에게 이미 많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그 결혼에 실패했다. 헤어지지 말라는 말을 어기고 헤어졌다. 대학을 다닐 때에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중퇴해버렸으며, 이제는 직장까지 나와버렸다. 아내에게 돌아가라는 충고도. 탬킨박사같은 위험한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경고도 아들은 무시했다. 아버지가 위로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반항심이었을까.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인물이었어도 아버지는 그랬을까. 

탬킨박사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심리학자로 그려지고 있지만 진정한 그의 모습은 심리학자라기보다는 소설가에 가깝다. 그의 이야기를 윌헬름은 '지어낸 이야기'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윌헬름은 그가 진심을 갖고 있지도 않고 또한 위험하기도 하며 어쩌면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계속 끌려간다. 그가 지어낸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면은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그가 자신의 삶을 위험에서 건져냈던 것처럼 윌헬름의 지금을 건져낼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어한다. 잃는 도박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돈을 거는 행위와 한편으로는 동일한 심리처럼 보인다. 탬킨이 아버지가 해줄 수 있었던 위로와 격려.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랬을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가 가지고 도망가버린. 윌헬름의 마지막 재산 700달러는 사기맞은 것이 아니라 비싼 수업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탬킨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가져갔을 것이다. 사기꾼들은 적어도 자기 생각에 합당한 사기의 이유를 하나쯤 가지고 있는 법이니까. 

마흔넷. 이제 인생을 새롭게 배우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 그러나 그는 자기의 마지막 재산을 잃어버린 그 순간에 전과 달라졌음은 분명하다. 그가 잡았어야 할 수많은 오늘들. 그 오늘을 미처 살아내지 못한 죽은 이의 앞에서 흘린 눈물은 그 오늘에 바쳐진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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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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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안티 해피엔드를 외치며 이 작품을 쓴 듯 하다는 해설이 있다. 어째서 원하는 결말에 그토록 쉽게 이를 수 있느냐는 말이 그렇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추리 소설에서 해피엔드가 있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해피엔드에 반격을 한다는 사실이 그닥 새롭지 않다. 누군가를 죽였는데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사 범죄자를 죽였다고 할지라도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괴로움 때문에라도 행복할 수 없는 법이니까. 오히려 나는 제목을 보고 이 소설은 범죄가 담겨있는 소설이라는 말을 재미있게 만들어 낸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제목을 어찌 해석하든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결국 불행해진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불행하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인물도 있으니 (그저 삶의 한 방식으로 생각해 버리는 약간은 섬뜩한 인물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러한 결말에 이르면 독자들이 헉! 하고야마는 반전도 자리하고 있다. 조금 특별하기는 하지만 주변에 충분히 일어났을법한, 혹은 뉴스 속에서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사건들이 이야기로 다뤄지면서 이면의 진실을 대하게 될 때의 충격같은 것이랄까.

 

짤막한 이야기들의 나열로 되어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흐름이 끊길 위험은 없다. 대신에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이야기가 계속 읽고싶어지는 중독성 같은 것이 있다. 해피엔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알고 읽는데서 오는 은근한 스릴도 있다. (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인 장면이 나오게 되는 거지? 라거나, 주인공이 정상적인 서술을 하는데도 정상인이 아닐것만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 같은) 이러한 소소한 재미들에 빠져 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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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겨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1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나송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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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은 비랄보와 내연의 관계이자 원치 않는 남자 말콤과 함께 사는 여인 루크레시아가 꿈꾸는 미래의 공간이다. 그녀가 말콤과 그의 동료 투생모통에게 쫓기면서도 그 곳으로 가고자 할 때 비랄보에게 그 곳은 미지의 어떤 곳이었을 게다. 그래서 그는 '리스본'이라는 그리고 그녀가 찾아다니던 '버마'라는 공간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고. 때로 우리는 직접 경험한 것 보다는 경험하지 못해본 것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가 있다. 인간의 감수성이라는 것은 현실에 발딛고 있지 않을 때 보다 발휘되는 것일까. 

그러나 리스본은 그녀에게 미지의 곳이 아니었다. 그녀가 꿈꾸는 미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어떤 '곳'이었다. 그녀는 비랄보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왜 그곳에 가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왜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인지도. 그러나 진실을 알기 전에도 그리고 후에도 비랄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의 안전이었다. 그와 만난 이후로 (아니 아마 그 전에도) 그녀는 한 순간도 안전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들의 사랑에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그 '안전하지 않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사랑만큼 매력적인 것은 없지 않은가. 모두가 안된다고 하는데도 끌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믿어버리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안전하지 않은 모든 사랑이 다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포장되는 것이겠지만. 

한 여인을 사랑하고 기다리고 그 여인때문에 쫓겨다니고 위험에 빠지고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래서 결국 이름마저 바꾸고 살아야했던 남자 비랄보. 그의 이야기는 한편의 아름다운 연인의 곡 같기도 하고, 위험스러운 위기의 곡 같기도 하고, 그리고 결국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운명의 곡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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