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4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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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이 주인공 엘리사가 자신의 주어진 운명대로 명문가의 딸이 되어 곱게 자라나는 성장기를 그렸다면, 2권은 그녀가 첫사랑 호아킨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더나 겪게되는 고난과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시작해 그녀 자신을 새롭게 성장시키는 제 2차 성장기를 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녀에게 주어진 운명은 어느 쪽이었을까. 그녀가 모험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반드시 겪게 되었을 편안하지만 자유가 없는 세계 발파라이소의 저택이었을까. 아니면 중국인 타오 치엔과 함께 하게 되는 캘리포니아의 공간 그녀의 손을 투박하게 만들었지만 결국 그녀에게 자유를 선사한 그곳이었을까. 

소녀가 사랑을 하게되면 여인이 된다. 엘리사도 사랑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인생을 이해하는 여인이 되었다. 첫사랑 호아킨을 찾아 먼 나라 캘리포니아까지 왔지만 그를 만나겠다는 목적은 사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사랑을 찾아 이루겠다는 독립적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독립적인 삶을 살기 시작할 수 있었고. 힘들고 괴로웠지만 남장을 시작하고 남자행세를 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주도한다는 자유로운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또 그랬기 때문에 당시 여인들의 숙명과도 같은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되었다. 몸을 팔아서 살아야하는 괴로움 말이다. 그녀가 그 결과로 여자들의 숙명을 지고 죽어가는 소녀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일에 동참하는 결말은 상징적이다. 

칠레의 역사는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지만 흥미로웠다. 또한 이 소설을 통해 캘리포니아 개척시대. 즉 황금러시라고 부르는 그 시대를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때로 소설은 그 어느 역사서보다 역사를 면밀하게 드러내준다. 혼란의 시기를 틈타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기회의 땅이었던 그곳. 그리고 절망과 좌절의 땅이기도 했던 그곳. 우리의 삶은 이렇게 흼아과 절망의 줄타기속에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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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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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셸 투르니에를 처음 알게된 것은 그의 2002년작 외면일기를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그가 대단히 유명한 작가라는 사실도 그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찾아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여유가 나질 않았기 때문에 이제서야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그의 첫번째 작품이자 그를 단번에 훌륭한 작가의 대열에 올려놓은 이 책. 방드르디를 말이다. 

방드르디는 프라이데이. 그러니까 금요일이다. 로빈슨 크루소가 그의 외로운 무인도생활을 함께보낸 흑인. 실제로 이 작품에서 그는 흑인보다 어쩌면 더 못한 혼혈인이다. 아무도 찾아온 적이 없는 그곳에 어떻게 혼혈이 생겼을까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아무튼 방드르디는 이 작품에서 로빈슨 크루소 못지않은 중요한 역할을 하게된다. 그는 로빈슨 크루소에게 그가 무인도 스페란차에 만들고자 했던 소영국의 모습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며 문명에 대한 고찰. 또 인간에 대한 고찰을 보다 심화시켜준다. 그러나 그 자신은 화이트버드호가 스페란차에 도착해 잠깐동안 문명에 노출되었을 때 문명의 세계로 떠나버리고 만다. 스페란차에서 동물과 함께 자유로운 생활에 익숙해져서 충분히 만족하고 살았을법한 그가 문명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그 역시 로빈슨 크루소에 의해 변화를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 혹은 선택. 

처음부터 로빈슨 크루소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그가 중갑판에 들어가 있었던 것은 그의 신중한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버지니아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도 그의 선택은 아니었다. 그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는 영국인으로서 품위를 지키는 생활. 문명 속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늙어가는 생활을 선택했을 것이다. 운명은 그를 야만으로 보냈고. 그는 28년간을 야만속에서 문명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하다, 또 그 문명을 파괴하고 야만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겪어야했다. 그의 운명이었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운명이어야 할텐데 방드르디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가 운명적으로 스페란차에서 살아냈고, 그래서 방드르디를 우연찮게 구해주기도 했지만 사실 방드르디의 운명은 이변이 없는 한 스페란차에서의 야만적 생활이었을 것이다. 반면에 마지막에 스페란차에 남게되는 죄디는 문명에서 살게 운명지어진 소년이었다. 그 역시 로빈슨이 없었다면 절대로 스페란차에 남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로빈슨을 만났고 그리고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로 인한 선택을 했다. 한 사람은 떠나고 한 사람은 남는. 

늙은이는 지난 세월을 운명이라 말하고. 결국 그에 순응하며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젊은이는 선택하고 살기를 원하고 때로 실수라 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을 과감하게 실행한다. 그리고 언젠가 미래에 그들은 늙어지면 다시 그들의 선택은 운명이었다고 누군가가 그렇게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버렸다고 말할런지 모른다. 우리의 삶은 운명인걸까. 선택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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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쪼가리 자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1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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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랄바의 메다르도 자작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 투르크인의 대포에 맞아 두동강이 나고 만다. 그의 파편들은 부상자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선택된 반쪽은 나머지 파편들과 재조직되어 오른쪽만 온전한 반쪽짜리 자작이 되었다. 이 반쪽 자작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불완전함을 비웃으며 완전한 악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반면 자신이 다스리는 마을에는 공포와 불안을 조성한다. 그에게 자비나 이해는 없다. 어떤 이유든 그에게는 사형의 죄목이 되었으며, 주변에 있는 동물이나 식물들은 모두 그와 같은 반쪽으로 만들고 나서야 길을 지나갔다. 

현실 또는 환상. 

십자군 전쟁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참여한 어리숙한 자작 메다르도의 모습은 매우 사실적이다. 전쟁에서 희생당한 병사들의 참상과 당시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귀족들의 처지는 십자군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은 전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자작이 반쪽이 되면서 점차 환상속으로 들어간다. 반쪽인 자작이 파멜라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한낮 양치기에 불과했던 이 소녀는 동물들이나 식물들을 반쪽으로 만들거나 죽이는 자작의 행동을 근거로 그의 의도를 파악해 내기도 하고 동물들과 대화를 나누어 위기에서 빠져나오기도 한다. 자작이 돌아오고 난 후의 이야기는 초반에 보였던 현실성에 비하면 매우 환상적이고 모호하다. 

어느쪽이 완전한가.

악한 반쪽이 지배하던 당시 마을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지만 서술자인 '나'에게는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도 많았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선한 반쪽이 나타나자 모두들 그에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도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절대적 선은 반대편에 선 절대적 악만큼이나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가 선한 의도로 한 행동들 때문에 수비대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가) 선과 악을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불완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완전한 악이나 완전한 선 역시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이들을 겪어낸 다음에 결합한 자작이 좀 더 나은 정치를 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해지지는 않았던 것 역시 우리 인간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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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5
황석영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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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꿈은 황석영의 작품 돼지꿈 외에도 몰개월의 새, 철길, 종노, 밀살, 야근, 탑, 삼포 가는 길, 객지 의 총 9편을 담고 있는 작품집이다. 소설은 작가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또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때로 작가의 시각은 시대를 대표하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 또 다른 시대의 담론을 읽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황석영은 독자의 입장에서 기다려지는 작가. 읽고 싶어지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니까. 

작품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힘에 부친다. 그러나 작가는 그들의 힘에 부친 생활을 이야기하는 데에 내용을 할애하기보다는 그들이 그 생활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활력을 얻어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때로는 그 활력이 더욱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돼지꿈’에서 주인공  강씨는 넝마주이다. 그는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보면 금방 그의 하루 수입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오늘따라 넉넉하게 잡은 수입과, 그에 얹어 생긴 개 한마리는  그의 얼굴의 주름을 펴 준다.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그는 딸 미순이의 빚을 갚아 볼 생각도 한다. 여유가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빠듯한 계산. 아들의 손가락이 잘린 댓가로 생긴 돈임에도 딸의 혼사와 빚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강씨 부인의 모습. 그들의 돼지꿈은 딱 거기까지다. 그래서 무척이나 서글픈 횡재일 뿐인 것이다. 

몰개월의 새에 등장하는 미자나 철길에서 압송당하던 병사는 자신의 처지를 억울해하고 저항하기도 하지만 더이상 벗어나지 못한다. 미자는 계속 군대 옆에서 전장으로 떠나는 군인들을 마음에 품으며 삶의 의지를 얻는 생활을 계속 할 것이고, 병사는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결국 자신을 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할 뿐이다. 반면에 이들보다 더 나이 든 종노의 동이노인은 젊은 아들의 격한 외침을 듣고 동요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처지를 그저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받아들이는 정도가 넓어짐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야근과 객지는 모두 노동쟁의를 소재로 하고 있다. 결말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노동자와 기업가들의 대립이 어떻게 발생되며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압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노동문제를 다룬 작품들은 물론 많지만 그의 작품에서 노동쟁의는 노동자와 기업가의 대립축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불완전한 단결력. 그러나 이를 단결시켜 쟁의까지 진행시키고자하는 노력. 그 와중에 노동자들을 이간시키고 포기시키려는 보이지않는 분자들까지를 복잡하지 않게 보다 간결하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노동쟁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의에 울부짖는 영웅이기보다 고뇌하고 두려워하며 때로는 불안해하는 인간의모습을하고 있다. 객지의 동혁과 대위. 야근의 직장은 그래서 진정 그 시대에 살아 움직였던 인물인 듯 싶었다.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우리 시대의 역사의 면면을 훑어낸 느낌이 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과.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던 이들의 모습. 전쟁에서의 군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인간애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처절한 삶까지.  작가가 날카롭게 지적하여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은 물론 역사의 부분이지만 또 역사를 통해 보여진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을 파고들고 생각을 키우는 힘이 있었다. 그의 작품이 나올때마다 회자되고 읽히는 이유는 그의 소설이 갖는 이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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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풍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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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이 잔혹하다면. 어떨까. 

폴란드의 풍차의 주인이 된 조제프씨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인물의 과거 행적이나 본래의 직업은 서술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설명을 듣고 있는 독자들만큼이나 서술자인 '나'역시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독자들은 '나'가 아무리 설명을 열심히 해도 무언가 부족하게 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만큼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야 할 것들이 많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조제프에 대해서 '나'는 교양있지만 교활하고 부드러움과 자애로움을 가장하고 있지만 강인하고 잔인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고 평한다. 이것은 코스트가의 자손이며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비극적 운명의 잔해인 쥴리와 조제프가 결혼을 함과 동시에 그들이 죽을때까지 함께 하게 된 '나'의 판단이기 때문에 신뢰할 만 하다. 그러나 조제프를 이해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무엇보다 이 비극적 운명을 가진 여인을 피하지 않고 마주 선 용기있는 사람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녀를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게다가 버려진 영지. 폴란드의 풍차를 누가 보아도 훌륭하다고 여길만큼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인물이 아닌가. 작가는 코스트가의 잔혹한 운명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의연하게 삶을 영위하고 결국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기까지 한. 이 조제프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에게 운명이 가혹하더라도 우리는 한 가닥 희망을 걸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쥴리가 자기의 삶에서 꽤 오랜 기간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코스트가의 잇단 운명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악했던 것처럼. 우리는 사실 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앞에 선 사람들에 대해 동정하기보다는 두려워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운명이 공동체의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렇기 때문에 간단하게 개인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한정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 다른 이의 괴로움에 대해 책임을 함께 하지 않으려는 이기심이 사실은 코스트가에게는 더 큰 재앙이 아니었을까. 선량했던 쥴리가 미치도록 만든것은 그녀의 운명이 아니었다. 그녀의 오빠 장 역시 바르게 자라날 가능성이 있는 젊은이였다. 자크에게는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끔찍한 운명 앞에 가져다 놓았다. 조제프가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도록 만든 것은 운명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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