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
나사니엘 호손 지음, 천승걸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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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자>로 잘 알려진 작가 나사니엘 호손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단편은 사건이 단일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장편보다 속도감이 있는 데다가 글의 의도 역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머리를 식히면서 읽기에 좋다. 나사니엘 호손 정도의 필력이 더해지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책장이 그야말로 휙휙 넘어가게 해준달까. ^^


장난같은 삶. 또는 처벌같은 삶

<웨이크필드>에 등장한 웨이크필드씨는 어느날 아내에게는 여행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와 옆 거리에 머물면서 아내에게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자신이 없는 동안 아내는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서 그랬다고 하기에 20년은 긴 세월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는 단지 하루하루 미뤄왔을 뿐 20년을 기약한적도 결심한적도 없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것이 삶이다. 한편 <메리 마운트의 오월제 기둥>에 등장하는 두 젊은 남녀는 결혼과 동시에 향락의 도시 메리 마운트를 떠나 청교도식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오월의 왕과 왕비였던 순간이 끝나고 다시는 그토록 화려한 순간을 맞이하지 못하게 될 이 두 남녀의 삶은 그들에게 충분한 처벌이 되지 않겠는가. <로저 맬빈의 매장>의 주인공 로이벤의 삶 역시 처벌에 가깝다. 자신을 아버지처럼 돌봐주었더 로저 맬빈을 죽음 근처에 버려두고 왔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의 딸과 결혼하면서 그를 제대로 매장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은데 대한 죄책감으로 그는 평생을 어둡게 살게된다. 그리고 결국 로저 맬빈의 매장은 그의 아들의 시체와 그 위에 엎드러진 아내의 눈물로 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삶의 비참한 결과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인간본성에는 죄가 있다.

<목사의 검은 베일>에서 후퍼 목사는 어느날부터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독자들이 기이하게 여길만큼 이 검은 베일은 단순한 두장의 천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것은 목사의 종교적인 능력을 높이고 인간적인 능력은 없애버렸다. 사랑하거나 위로받는 대상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용서받는 대상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후퍼 목사는 죽어가면서 말한다. 그대들! 그대들의 얼굴에도 검은 베일이 씌워져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이 메세지는 <젊은 굿맨 브라운>과 <이선 브랜드>에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브라운은 열심한 신도들이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을 이단의 의식에서 만난다.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호하게 구성되어있지만 어느쪽이든 브라운은 죄에 대한 고뇌로 일생을 어둡게 살게 된다. 이선브랜드 역시 용서받지못할 죄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돌아온다. 그것이 비단 그의 안에만 있던가. 그것은 우리 개개인 안에 그 심장 안에 있다.

아름다움. 그 허무함.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는 미와 허무함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잘 보여준다. 오웬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노력을 쏟아부어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그리고 더 아름다운 나비를 만들어 낸다. 고도의 섬세하고도 섬세한 그 작업은 그의 예민한 감각뿐 아니라 그의 정신의 정수까지도 쏟아부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작품은 그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단지 놀라운 '장난감'에 불과했다. 한순간 힘을 쏟아부어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의 작품보다 실용적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사실에 대해 억울해하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애니의 아들이 손쉽게 나비를 부숴뜨렸을 때 보이는 태도는 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그리고 진정한 예술에 대해서 초탈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예술가는 어쩌면 허무함을 견뎌나아가야 하는 작업일지 모른다. 이같은 아름다움과 허무함은 <야망이 큰 손님>과, <라파치니의 딸>에게서도 나타난다. 더없이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에 손님으로 찾아온 야망 가득한 젊은이는, 이 소박한 가정 모두에게 각각 자신만의 야망을 꺼내놓도록 독려한다. 그러나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한순간의 산사태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인간이 스스로 상상하는 미래의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가. 라파치니의 딸 역시 그 아버지의 과학적 지식과 야망을 모두 쏟아부은 치명적이나 아름다운 '독'이었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게 된 구아스콘티까지 독으로 만들어 버리는 중독성까지 있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은 해독제에 의한 허무한 죽음이었다. <반점>에서도 아내를 완벽하게 아름답게 만들고자했던 남편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아름다움은 영원할 수 없다는 숙명. 그것이 그토록 허무한 종말에 이르도록 하는 어쩔 수 없는 약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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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4
알랭 로브그리예 지음, 박이문·박희원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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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이 공간. 그러니까 전부 다 합쳐도 80제곱미터를 넘지 못할, 이 공간에서 소설을 하나 만들어 내라고 한다면 어떨까. 다른 어떤 곳도 등장하지 않는. 그런 소설을 만들어 내라고 한다면. 아마도 머릿속에 일어나는 상상들을 구성해보거나, 집에 들어오는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어 내거나 그럴듯한 사건을 찾기 위해 이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공간

등장인물들이 움직이는 공간은 테라스, 사무실, 침실 등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의 공간이다. 그와 그의 아내 A...가 사는 집. 프랑스 식민지의 어느 바나나 농장을 경영하는 그는 아내와 함께 더위와 벌레를 참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 유일한 손님은 프랑크라고 하는 사내다. 그는 아내가 있지만 그의 아내 크리스티안은 아이때문이거나, 더운 날씨에 적응하기 힘든 그녀의 건강때문에 함께 오는 일은 거의 없다. 프랑크는 그들의 공간 안으로 들어올 때에만 의미가 있다. 떠나고 난 후에 그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는 전혀 밝혀지지 않는다. 그는 그에게 보다는 그의 아내 A...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만으로 존재하는 그

그는 시선만 존재한다. 그와 프랑크 그리고 A...가 함께하는 저녁식사시간이지만 자리가 세개라고 언급하지 않는다면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사소한 손짓, 입술의 움직임. 프랑크와 나누는 사소한 대화내용에 고정되어있다. 그 시선은 무엇을 밝히려는 것도 아니고, 찾으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볼 뿐이다. 그에게는 이미 결론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새 시선만 존재하게 되었는지도. 그는 확인할뿐이다. 아내와 프랑크의 관계를. 그의 시선을 떠나 유일하게 상상해야만 하는 그들의 동행을.

변하지 않지만 변하는 일상

그의 관찰은 반복된다. 그러나 그는 전혀 반복되지 않는 일처럼 새롭게 쓴다. 오늘도 그녀는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프랑크와 아내는 매번 같은 시간에 시내를 향하고, 번번이 늦거나 다음 날 도착하며, 그때마다 자동차 고장을 이유로 대지만 그는 그것을 믿는다. 때론는 온갖 변명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다양한 이유가 그들에게 존재했으리라고 생각하는 듯. 그러나 프랑크의 말이 늘 짜여진 각본같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점점 그는 스스로를 속일 수 없게 될 것이다. 확인하는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진실을 말해줄테니까. 

보이지만 느껴지지 않는

세사람의 관계, 그들이 앉는 자리, 그들의 소소한 행적까지 모두 볼 수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다. 제목이 아니라면 남편이 질투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그는 아내를 구속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집에 남겨진 프랑크의 흔적을 지우거나 아내가 받거나, 쓴 편지지를 펼쳐 글자를 살피는 정도에서 편집증적인 그의 성격을 추측해볼 수는 있다. 아내가 프랑크에게 대하는 태도도 남편에게 보이는 모습밖에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이 얼마나 깊은지, 그들의 성격이 어떠할지까지는 찾아내기 어렵다.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기보다는 자세한 묘사의 끝을 기대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을 때에 가장 필요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카메라기법이라고 하는 소설기법의 가장 극단을 본 듯 하다. 이렇게 한 권의 소설이 창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다만 독자에게 약간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소설이라는 점은 참고해야할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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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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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미래소설로 쓰인 작품을 그보다 더 먼 미래에서 읽는 느낌은... 뭐랄까. 내가 그 과거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을 미리 겪어내는 것 같기도 했다. 이미 동물농장에서 전체주의에 대해 경고한 바 있는 오웰은 이 작품에서는 더욱 구체적이고 치밀하게 이 위협의 끔찍함을 표현하고 있다.

 

과거를 지키는 방법은 죽음.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영사’(영국 사회주의)의 외부당원으로서 내부당원보다는 못하지만 노동자보다는 약간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노동자는 인간취급도 못 받는 반면에 그는 적어도 인간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는 당을 위해서 이미 보도된 것이나 보도될 것들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다. 작성한다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날조하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모두 현재에 맞게 수정할 것. 하나의 원칙이 있다는 그것이다. 현재 전쟁국과는 과거도 미래도 전쟁이며, 현재 누리는 풍요는 과거보다 많고 미래보다는 적을 것이다. 국가는 서서히 발전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든, 실제로 어떻게 변화하고 있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윈스턴이 개별적인 일기를 기록하는 일이 치명적인 범법행위가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개별적인 일기는 날조될 수 없다. 그의 개인사의 변화는 점차 국가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밝혀낼 것이다. 그리고 일기를 쓰면서 그는 점차 자신이 충성하고 있는 당에 대해서 지금의 국가에 대해서 회의하기 시작할 것이다. 일기란 본래 기록뿐 아니라 반성의 목적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죽음의 길로 한발자국 나아가기 시작한다.

 

같은 사고, 다른 권력

 

그에게 일기를 사도록 충동한 것은 그 자신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석연찮은 우연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노동자의 거리에서 채링턴씨의 가게로 들어섰고, 거기에서 일기장을 구입하였으며, 더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줄리아를 알게 되고 나서는 그 가게의 이층에 세를 얻어 고정적인 밀회의 장소로 이용한다. ‘성’은 당의 통제대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밀회만으로도 충분히 법과 질서를 담당하는 ‘애정부’에 잡혀갈만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미 죽음을 각오했음에도 최후의 한마디를 하기 전까지는 자유로웠다. 윈스턴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오브라이언에게 찾아가 그간 비밀스럽게 존재한다고 알려진 형제단의 단원이 되기로 하고 나서야 그는 밀회장소에서 줄리아와 함께 애정부로 끌려간다. 모든 것이 오브라이언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윈스턴이 오브라이언을 믿었던 것은 그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그 신념은 옳았다. 하지만 윈스턴과 오브라이언의 가장 큰 차이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었다. 오브라이언은 권력자의 편이었고, 윈스턴은 무지한 대중이어야했다.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생각을 이용해 권력을 지속시켜야했고, 윈스턴은 노동자의 힘을 믿고 체재의 불합리함에 항거하며 전복을 꿈꿨다. 당연히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했고, 그것은 윈스턴이되는 것이 당연했다. 마지막까지 진리를 수호하려던 그의 패배는 그래서 더 처참하다. 그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계에서 자신과 어머니, 줄리아뿐 아니라 오브라이언이 함께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더욱 비참해 보인다.

 

희망은 없는가.

 

윈스턴뿐 아니라 그의 동료들 모두 애정부에 잡혀가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된다. 그의 친구 사임은 당에 충성하며 신어사전 제작에 모든 힘을 쏟았지만 너무 지적이었기 때문에 잡혀가 증발되었다. 그리고 무식하기만 했던 파슨스역시 사상죄로 잡혀온다. 그가 잠결에 빅브라더를 타도하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아무 생각 없는 노동자계급 이외에는 살아남을 당원이 없다. 이들 모두를 죽이거나, 아니면 점차 파슨스처럼 무식한데도 불구하고 무의식중에 배반하는 이들이 늘어나 흔들리거나 할 것이다. 세포하나가 파괴되어도 삶은 지속되는 것처럼 권력구조가 지속된다면 이들도 역시 죽음 이후에도 끊임없이 생성될 것이다. 전복의 기회는 언젠가 생길 것이다.

 

오웰은 자신의 지병인 폐결핵이 그렇게 악화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이 이렇게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삶에 대해 절망하며 괴로워하던 작가 자신의 삶이 투영되었기 때문인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보였던 괴로움중의 유머나 희망같은 것이 전혀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다. 착잡한 미래. 우리 과거가 지배받지 않으려면 이 미래에 희망을 부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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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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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무거움

테레자는 어느날 토마시에게 강물에 떠내려온 아이처럼 그렇게 떠내려온다. 생애의 무거운 것들을 떨쳐버리고자 했던 그에게는 꽤나 무거운 짐이었을 테레자이지만 그녀를 그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서술자는 '은유'야 말로 사랑을 시작하게 만드는 위험요소이며, 토마시가 테레자를 강물에 떠내려온 아이라고 은유하는 그 순간에 그는 사랑하기 시작했고, 인생의 무거운짐을 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테레자의 무거움은 그녀의 어린시절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무거운 '짐'이었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삶이 가볍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육체를 학대했다. 테레자의 어머니는 테레자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짊어졌다. 그리고 테레자 역시 때로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어머니를 짊어지고 싶어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가벼움은 무거움보다 더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바란다. 토마시가 좀 더 약해지기를. 그래서 그녀의 전 존재로 그를 보듬을 수 있기를.

다시 참을 수 없는 무거움

토마시가 무거움을 떨쳐버리는 방식은 아주 명확하다. 거절이다. 그는 최초의 결혼을 배반했다. 자녀도 그리고 그 자녀 덕분에 그는 부모와도 결별했다. 가정은 그에게 무척이나 무거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외과의사로서의 삶, 그리고 가벼운 여자들과의 섹스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에 만족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한 발언을 기사화한 데 대해 투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의 발언을 누군가가 이용하도록 방치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가벼움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외과의사의 삶마저도 간단하게 포기해버린다. 아들과의 회복 가능한 때에도 그는 아주 잠깐 망설이지만 거절하는 데 성공한다. 그에게 무거운 것은 테레자하나로 족했다. 그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어한 무거움은 역사였다. 체코의 역사, 정치. 그 속에 끼어있는 자신이 무기력하다는 사실. 그 무거움을 견뎌내기 위해서라도 그에게는 가벼운 삶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테레자는 토마시의 바람기를 견딜 수 없어한다. 그녀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토마시의 다른 여자들처럼 가벼워지는 것이다. 물론 이점에 있어서 그녀는 이미 성공한 셈이다. 그녀와 다른 여자들은 토마시에게 전적으로 다른 존재니까.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녀가 원하는 만큼 무거워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토마시를 두려워하면서도 사랑한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우연의 연속으로 일어났는지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배신의 배신. 그리고 배신

사비나는 가벼운 여인이다. 그녀는 가볍기를 소망한다. 토마시의 가장 편안하고도 친구같은 여자인 그녀는 테레자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녀에게 질투는 필요없는 물건이다. 그녀의 애인 프란츠를 그녀는 배신했다. 그가 그의 아내를 버리기로 작정한 바로 그 때에. 그리고 곧 자신의 조국을 배신한다. 체코의 역사가 그녀에게 요구하는 모든것들을 떠나버린다. 그녀가 체코인이기에 생겨나는 모든 시선역시 배신한다. 그녀는 가볍게 떠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녀가 참을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가벼움일지도 모른다. 자신의존재가 어떤 것으로 정의되는 것 자체를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녀 존재가 결코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녀의 작품 속에 늘존재하는 '이해할 수 있는 거짓과 이해할 수 없는 진실'사이의 틈. 거기에 그녀를 살짝 놓아두어야 할 것이다. 

1부에서 7부까지 나뉘어있는데다 각 부는 짤막한 장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두껍지만 빨리 읽히는 책이었다. 이 가볍고도 무거운 사람들의 정신과 육체를 드나드느라 머리를 쓰면서도 책장이 넘어가는 즐거움에 매료되었다. 한편으로는 네 사람의 사랑이야기같지만 그 속에서 그들의 고통과 역사의 아픔을 나눌 수 있었다. 공산주의체제 하의 선동적인 구호 아래서 자기의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토마시와 테레자의 모습에서 전체주의적 사고에 휩쓸려가지 않으려는사비나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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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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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완고하고 감성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은 서로의 이상이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에 있음을 확인하고 서로 함께 이상을 추구하고자 노력한다. 둘은 자신들의 벌이에는 조금 버겁기는 하지만 그들의 현재가 아니라 그들의 미래에 존재할 가족 구성원들을 수용하기에 알맞은 커다란 저택을 구입한다. 그리고 넷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들의 이상은 실현되는 듯 보였다.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친척들은 모두 그들의 집으로 모였다. 크리스마스 때에도 부활절 때에도. 방학이 되면 으레 그들의 집이 모든 가족의 화목한 공간이 되어 대가족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섯째 아이가 예기치 않게 들어서면서 시작되었다. 해리엇은 자신의 뱃속에 있는 존재가 무척이나 힘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 아이는 한시도 해리엇을 쉬게 놔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전에 없이 약과 병원을 찾았고, 한달이나 일찍 다섯째 아이 ‘벤’이 출생했다.

 

‘벤’의 존재는 그들 가족 모두에게 두려움. 공포 그 자체였다. 데이비드는 ‘벤’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다른 존재라고 말한다. 해리엇 역시 그는 자신들과는 다른 외계의 생명체처럼 느낀다. 그녀를 더더욱 괴롭혔던 것은 ‘벤’을 낳은 것에 대해, 요양원에 보내진 ‘벤’을 다시 데려온 것에 대해 모두가 던지는 무언의 비난이었다. 왜 모든 책임을 그녀가 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벤’이 이상한 생명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브래트 박사와 길리 박사가 이미 말했듯이. 또 ‘벤’의 학교 선생님들이 말했듯이 그 아이는 정상의 범주에 있었고 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기존의 아이들과는 다른 ‘벤’을 돌볼 정신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애초부터 스스로의 가정을 책임질 능력이 부족했다. 처음에는 집을 빚졌고, 나중에는 아이들을 빚졌다. 그들의 행복역시 그들만 있을 때에 존재했다기 보다는 그들의 집에 모든 친척들이 도착했을 때에서야 풍부하다고 느꼈다. 나는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과연 자신들만의 가정을 가지기나 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그런 것들이 있었던가. 물론 그들은 노력했다. 하지만 계획하지 않았다. 무계획의 책임은 데이비드의 아버지 제임스의 돈이나 해리엇의 어머니 도리스의 희생으로 채워졌다. 그러한 대가족은 의미가 없어보였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벤’은 ‘불쌍한 벤’이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꿈꾸는 대가족은 과연 이상만큼이나 아름다운 형태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 이면에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지속될 수 없는 형태인 것일까. 또 모두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던 벤은 요양시설에 옮겨졌다가 돌아온다. 결국 그는 범죄자의길로 들어섰다. 과연 해리엇이 그를 데려온 것은 옳은 일이었을까. 아니면 가족들의 의견처럼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을까. 

간단한 줄거리처럼 보이는데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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