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1 - 미천왕, 도망자 을불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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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아 펼쳐들게 된 책이다. 삼국지와 이 책의 공통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삼국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것도 공통점이겠지만, 패자의 역사라는 점이 공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삼국지를 읽고 유비. 관우. 장비를 떠올린다면. 아마 그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들은 실패했으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삼국지를 읽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인상깊게 남아있다. 그렇다면 고구려 역시 마찬가지이다. 삼국을 통일한 것은 신라였으나, 후손들은 마음 한켠에 고구려를 품고 산다. 고구려가 통일을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먼 후손이 되는 우리들만의 마음은 아니다. 삼국이 통일 된 후 후삼국을 거쳐 고구려를 재건하고 싶다는 가까운 후손들의 열망은 결국 고려가 성립되도록 했으니 말이다.  

고구려 1권에서 3권까지는 고구려왕 미천왕의 이야기이다. 이전에 미천왕에 대해 내가 알았던 사실은 고구려의 왕이라는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에 앞서 기틀을 다졌다는 정도로 미천왕을 언급하고 지나갔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이름이나마 어렴풋이 국사시간에 들었던 것 같다. 그랬던 고구려의 왕이 이번 소설을 통해서 멋지게 부활했다. 초기의 기반을 흐트러트리고 고구려를 위험에 빠지게 했던 선대왕을 몰아낸 영웅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이다. 역사는 이 소설을 통해 다시 그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광개토대왕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왕으로서의 능력과 위엄, 국가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 그가 미천왕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잃은 을불은 큰아버지를 피해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권력이라는 것은 매우 잔인한 데가 있는지라, 어린 그가 홀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지상과제가 된 것이다. 일반적 영웅이 갖는 어린시절의 고난을 그 역시 겪는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기까지 겪은 모든 일들은 그를 왕답게 성장시켰다. 아직 국가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어린 패기로 가득찼던 을불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점점 크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끝내는 고구려의 왕으로서 우뚝 서서 낙랑을 축출하는 위업을 달성한다. 백성들의 삶을 몸소 체험한 그가 백성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복지를 최 우선으로 생각하며 희생을 감수하는 장면은 삼국지의 유비가 그랬던 것보다 더 감동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역사속 인물의 이야기이지만 왕이었던 한 인간의 성장스토리로도 읽힌다.

 고구려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늘 승자의 역사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패자의 위엄을 접하게 될 것이다. 한 때 우리의 역사 속에 숨쉬고 있었던,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내면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던 그 기개를 다시 되살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고구려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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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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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또 체호프 같은 러시아의 문호들의 작품을 만나다보면 그들을 배출 해 낸 러시아의 바탕이 무척이나 부러워진다. 어떻게 그들은 이렇게 세계적인 작가들을 품 안에 품고 키워낼 수 있었을까. 대학시절 들었던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햄릿을 '즐긴다'고.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즐기는 수준에 이르러있는 그 초등학생들에게 교수님은 큰 감명을 받으신 듯 했다. 나 역시 그런 바탕에서 이렇게 거물 작가들이 탄생하는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와 그녀의 만남. 혹은 스침. 

이 단편선에 등장하는 남녀의 만남은 참으로 다양하다. <공포>에서 실린은 그의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삶을 공포스럽게 여긴다. 끊임없이 구애를 계속해야하는 그의 고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아내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보고서도 그저 떨며 나갈 뿐 화를 표현하지 않는다. 친구가 떠난 후에도 그는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만났으나 늘 평행선일 뿐인 남녀의 결혼은 <공포>가 아닐런지. 
<베짱이>에 나오는 올가는 두 남자와 만나게 된다. 하나는 그의 순수하고도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남편 드이모프이고, 하나는 화가 랴보프스키이다. 그녀는 드이모프와 결혼하면서 그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에게 충실한 아내가 되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의 천성은 예술을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기에 파티와, 예술가, 화려한 의상에 신경쓰느라 남편은 언제나 뒷전이 되고 만다. 그러다 만난 랴보프스키는 얼마나 대단한지! 그에게 푹 빠진 그녀는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그에게 온통 마음을 쏟다 남편이 죽음에 임박한 때에야 진정 남편이 훌륭한 인물이었음을 깨닫는다. 올가의 만남은 어느쪽도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한쪽은 평가절하되었고, 한쪽은 지나치게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드이모프와의 사이가 좋던 시절에 그는 다음처럼 말했었다. 그녀가 그의 말에서  교훈을 얻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 친구들은 자연과학도 의학도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그들을 비난하지는 않잖아. 모두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어. 나는 풍경화나 오페라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런 생각은 해. 만약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면 다른 똑똑한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 거금을 지불하지.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니까. 나는 이해를 못해. 하지만 이해를 못한다고 해서 거부한다는 건 아니잖아.
 
페이지 :  41-42쪽  

<베로치카>에서의 남녀는 그야말로 스친다. 통계 때문에 시골 마을에 머물렀던 주인공은 마을을 떠나던 날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던 마을 자치회 의장의 딸 베로치카에게서 사랑 고백을 듣게 되지만 어떤 답도 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사랑고백을 듣자마자 그는 그토록 멋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던 그녀가 순식간에 빛을 잃은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여인의 고백이 이렇게 단순하고 소박하게 거부당할 수 있다니. 그에게는 그토록 찬란했던 마을이 그녀에게는 그가 있어야만 찬란해지는 것이었다. 

독특한 발상, 인간 내면의 고찰.
반면에 그의 독특한 발상이 명료하고 깔끔한 구성으로 표현된 작품들도 있었다. 
<관리의 죽음>은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집착하던 인물이 그로 인해 죽는 과정을, <드라마>에서는 엉터리 희곡을 읽는 여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던 주인공의 분노를, <내기>에서는 호기에 일어난 15년간의 감금과 그간 벌어지는 인간 내면의 변화를, 아름다운 여인 두 명을 예로 들어 아름다움의 기준을 새롭게 그려낸 <미녀>, 결혼을 오매불망 꿈꾸던 여인이 꿈에서 남편의 죽음을 경험하는 <거울>, 중병에 걸렸다 살아나 누이동생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맛보는 인물을 그린 <티푸스> 그리고 살아있을 때보다 죽음이 가까웠을 때 더 행복감을 느꼈던 <주교> 등. 스토리도 그렇지만 세세한 인물 묘사와 대사, 장면의 전환등 그야말로 깔끔한 단편구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독특한 상황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느끼는지 어찌보면 뻔뻔하기도 하고, 어찌보면 정신이 나간것 같은 인물의 내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낱낱이 해부되어 있다. 

단편선을 읽으면 작가의 특징을 찾아내거나, 각 단편들에 들어있는 공통된 부분들을 찾아내는 데에서 묘미를 느껴볼 수 있다. 그의 수많은 단편들을 찾아 오늘 그만의 독특한 인물탐색에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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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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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이 병이었던 그.

베르테르는 정이 많은 인물이었다. 그는 주변의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에 자신의 감성을 불어넣었다. 가난한 한 가정의 아이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인정을 베풀었으며 주인마님을 사랑하는 하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여러 동생들에게 빵을 나누어주며 마치 어머니처럼 챙겨주던 로테의 모습에 반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로테에 대해서 그가 가진 열정도 열정이지만, 이웃의 아픔을 마치 자기의 아픔처럼 느끼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세상은 이런 젊은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다수가 아니라 소수

소설 속에서 베르테르는 자신의 생각을 계속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늘 소수편에 속하게 된다. 그는 세상이 모두 인정하는 권위나 권력을 배척했으며, 교회가 부정하다고 말하는 자살을 긍정했다. 주인을 사랑한 하인의 경우에도 그가 살인을 저지르자 모두가 살인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하인의 마음 그대로 변론하다 곤경에 처하기까지 한다. 제도권에 머무를 수 없었던 젊은이 자기의 생각이 너무 뚜렷하고 그것을 열정적으로 외치려했던 젊은이. 그래서 그토록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나보다.

사랑을 위해 죽다.

로테가 그를 사랑했을까. 마지막에 가서야 그녀는 그가 자신의 옆에서 사라진다면 큰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절감했지만,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삶의 일부분이 사라져도 인생은 계속되니까. 그리고 남편과 이미 견고하게 쌓아올린 그녀의 가정은 그렇게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테와 알베르트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으로부터 이어진 질긴 끈으로 연결된 사이가 아닌가. 베르테르가 그들의 사이에 끼어드는 일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로테가 베르테르에게 권총을 보냈던 것은. 로테의 이기심으로 보아야할까. 아니면 또 다른 자기. 자기의 마음을 동일하게 품고 있는 다른 '나'를 죽이고자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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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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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나'는 소설의 줄거리로 보아 '애디'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후에는 과연 '애디'만 죽어 누워있을 때의 이야기일까. 이후 누구라도 죽어 누워 있을 때의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소설 속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서술의 시점이 매 장마다 바뀌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서 서술하느냐, 그리고 이 인물이 현재 어떤 입장에 처해있으며 어떤 인물인가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사건의 퍼즐을 잘 맞춰갈 수 있다. 

죽은 '어머니'와 살아있는 '자식들'의 40마일

죽은 '애디'는 4남 1녀를 둔 어머니이다. 그녀는 죽기 전에 남편 '앤스'에게 자신이 죽으면 고향 제퍼슨에 묻어달라고 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무려 40마일이나 떨어진 곳이다. 이 이야기는 그래서 시작된다. 제법 거대한 가족이 '시체'와 함께 40마일의 여정에 오르는 것이다. 무척이나 간단한 줄거리처럼 보이는가? 하지만 '죽음'이 한 인물의 전 생애를 모두 포함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절대로 간단한 스토리가 될 수 없다. 그녀의 생애 전부가 함께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제각각이다. 남편 앤스는 그녀가 죽자 그동안 미뤄왔던 의치를 끼우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안심인지 위로인지 모를 생각을 떠올린다. 캐시는 어머니의 관을 만드는 데에 모든 정신과 노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이 관인지 어머니인지 모를 정도로. 둘째 달과 셋째 주얼은 3달러를 벌기 위해 일을 나가느라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을 달은 멀리서도 느낌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주얼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에게 등을 돌린 채 말을 어머니처럼 사랑하고 아낀다. 그리고 딸 듀이 델은 어머니의 죽음보다도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 때문에 모든 정신이 그곳에 가 있다. 막내 바더만은 자신이 잡아 온 물고기와 어머니를 동일시하며 어머니는 물고기이고 그래서 어머니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이라는 현실부정에 빠진다. 그녀의 부재. 아니 그녀의 존재. 

40마일이라는 거리도 문제였지만 비가 와 강물이 불어나고 다리까지 떠내려가면서 그들의 여정은 주변의 시선으로 이야기하자면 그야말로 '미친' 짓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모든 일에 게으르고 무딘 앤스는 그것 하나가 자신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약속 인 양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결행한다. 그의 무능력함은 불어난 강물을 여울목으로 건너다가 노새를 잃고, 이때문에 다리가 불편한 캐시의 다리가 다시 부러지고, 잠깐 묵었던 집 헛간에 불이 나서 말과 소들, 아내의 관까지 모두 불에 타버릴 뻔 하고, 그 때문에 달이 잭슨에 갖히는 신세가 될 때까지도 한결같다. 자녀들 모두가 아버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아처럼 보이는 것은 그의 이런 무능력함과 무심함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일부를 남기고 간 그녀 '애디'

결국 아이들은 어머니의 죽음과 이후 여정을 따라가며 어머니와 같은 운명을 일부 자신의 몸에 지니게 된다. 캐시는 다친 다리를 회복시키지 못하고 절게 될 것이고, 주얼은 등에 화상을 입은 데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말을 잃게 되었다. 달은 잭슨의 철창에 갖히게 되었고, 딸 듀이 델은 몸 안에 다른 사람의 씨를 품은 채 어머니와 같은 운명을 걸어야 할 지 모른다. 그리고 막내 바더만 혼자 현실을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크리스마스 기차의 꿈을 품고 있다. 

매질이 끝나면, 내 살 위에 그 아픔이 느껴졌다. 회초리로 후려칠 때마다 흐르는 피는 다름 아닌 나의 피였다. 회초리를 들 때마다 나는 너의 비밀스럽고 이기적인 삶 속에 하나의 존재가 되어, 너의 피에 내 흔적이 영원히 남을 것이다.
 
페이지 : 196쪽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그 때 나는 잊혀진다.

그녀가 남편에게 자신을 제퍼슨에 묻어달라고 말했던 처음은 그녀가 달을 낳은 후였다. 그녀는 그에게 보복하기로 결심했고, 그러나 그것을 숨기기로 했다. 그녀가 달을 낳고 제퍼슨에 돌아가는 것은 자신이 죽은 다음일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처녀'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결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때에는 코웃음쳤던 남편 앤스가 그녀를 그토록 처절하게 처녀적 있던 공간으로 돌려놓은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딸이 어떤 어려움에 처했는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10달러인지 아랑곳 않고 빌려간 다음 의치를 해 넣고 새 번드런 부인을 맞이한다. '애디'는 그 순간 '번드런 부인'이었던 시절 전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진짜'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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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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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려고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물이다. 한 사람의 캐릭터를 떠올려보자. 단 세장의 사진으로 설명될 수 있는. 그러나 다는 설명할 수 없는.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한 한 인물을 만들어보자. 그의 내면을, 그의 생각을, 그의 사랑을 모두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소설을 써 보자. 생각했던 그 이야기가 실현되는가.

단 세 장의 사진으로 설명된 인물. 이 인물의 수기처럼 쓰여진 소설을 접하고는 깜짝 놀랐었다. 어떻게 이렇게 복잡하고 불가해한 인물을 생성해 낼 수 있을까.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인물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말 할 수 있는거지? 이런 놀라움속에 소설의 마지막장을 넘기고 난 후 해설을 보고서야 그가 바로 이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주 자전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이 소설은 그의 일생을 변호해주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어야 한다는 생각

어떻게 살든 사람은 한 번 죽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가보다는 어떻게 죽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떤 죽음이 가장 아름다운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다자이 오사무(쓰시마 슈지)는 그의 단편 <직소>에서 유다가 말한 것처럼 " 꽃은 시들기 전까지가 꽃인 것이다. 아름다울 때에 잘라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계속된 그의 자살시도에서 끊임없이 여인과의 동반자살을 꾀한것은 아름다운 죽음을 향한 갈망이라고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을 두려워 한 남자

인간실격이라는 단어는 주인공 요조가 모르핀에 중독되어 정신병원에 들어간 다음 깨달은 말이다. 자신은 미치지 않았지만,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순간 스스로가 미쳤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그는 세상에서 뒷걸음질 쳐 왔다. 뛰어난 재능을 숨기고, 어설픈 농담이나 익살로 자신을 감추면서 살아온 그에게 미쳤다는 선언이 왜 그토록 뼈아픈 것이었을까. 그것은 자신의 본질에 대해 몰라주는 세상에 대한 마지막 억울함이었을까. 그러나 그는 또 한편 자신이 두려워한 세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저는 점차 세상을 조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곳이 그렇게 무서운 곳은 아니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여태까지 저의 공포란, 봄바람에는 백일해를 일으키는 세균이 몇십만 마리, 이발소에는 대머리로 만드는 병균이 몇십만 마리 <중략> 그러나 동시에 그 존재를 완전시 묵살해 버리기만 하면 그것은 저와 전혀 상관없는, 금방 사라져버리는 '과학의 유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페이지 : 98쪽  

그가 두려워하던 세상의 실체는 그저 유령일 뿐이었다. 그는 천만명이 밥알 한 알 남기면 쌀 몇 섬이 사라지는지, 휴지 한장을 절약하면 어람의 펄프가 절약되는지를 생각하며 쌀과 휴지에 연연했던 것이다. 세상에 대한 그의 두려움은 그야말로 "애처러울 정도로 우스운" 것이었다. 아마도 오사무는 공산주의에 투신하여 자신의 출신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을 이런 방식으로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 자신이 부유하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는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일단 어느정도는 사실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직접적 연관이 없다면 그저 묵살해버리는 것으로 유령이 되어 눈에 보이지 않고, 때문에 두려움이나 괴로움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닌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다.

그래서 떠오르는 말이 이것이다. 작은 균에도 쉽게 상처입는 사람은 무균실에서 사는 수밖에는 없다.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영혼은 너무도 쉽게 상처입었다. 어떤 타인과도 어떤 조직과도 깊은 연관을 맺기 힘들어했던 요조가 파멸해가는 모습은 그래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27의 나이에 마치 할아버지처럼 늙어버린 남자. 그에 대해 세상은 정신병원에 가야 마땅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를 아는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
 
페이지 :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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