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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속의 또다른 세상, 말하는 동물들, 신화 속의 생물들 -- 즐거운 상상력으로 재미난 이야기,
훌륭한 영화가 될 뻔 했으나, 지난 여름부터 기대했는데... 오오, 실망이다. 

착한쪽=우리편
나쁜쪽=적

에 따라붙는 알레고리와 상징의 차용이 진부하다기보단,
다양하고 다중적인 캐릭터들을 어이없게도 단순하게 말아먹었다.  

유니콘, 사자, 피닉스, 켄타우루스는 우리 편 = 착하고 정의롭고 멋짐 
미노타우루스, 그 외 각종 못생긴 놈들은 다 나쁜 편.

유니콘만 해도, 사람을 태우지 않는다.  지고지순해서 전쟁의 어느 쪽에도 낄 수 없다.   
지혜로운 켄타우루스는 미래를 내다보며 신비한 예언을 하고 머리 조아려 사정하면 조금은 도와주겠지만,
군대를 조직해 명령을 따른다거나 누구를 대신해 죽음을 자처할 수 있거나
의로운 일이라 해도 발벗고 나설 캐릭터가 아니다.



악의 세력이 쇠한 나니아에는 그럼 심심하게도 북극곰, 늑대, 미노타우루스 등등은 안 사는 것인가.

나: 북극곰은 왜 나쁜 편이야?
친구: 겨울이잖아.  근데, 나니아는 겨울 풍경이 더 예쁘더라.



사자 --
죄없고 높은 사자가 배신자를 대신해 죽었다.
정말 부활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두 명의 여인이 그 시신을 지키고…



에드먼드--
밉긴 하지만, 그 아이의 배신도 이해되지 않았다.  대체 쟤는 왜 계속 저러는 거지? 생각하며 보았다.
아무리 과자의 유혹에 이끌렸다지만, 어린 동생이 어른인 척 하는 맏형한테 갖는 반감 치고는,
왕좌에의 욕심도 별로 있어 보이지도 않더만,
제 가족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다른 생명도 중한 줄 아는 애던데, 
톰누스네 집이 망가진 걸 보았을 때나, 적어도 마녀가 버럭버럭 소리 지를 때쯤부터는
이미 분위기를 파악하고 형제 자매들을 위험에 빠뜨릴 만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저것 실망이라도, 나니아의 겨울 풍경 만으로도 볼 만한 영화. 
그리고 이 멋진 카리스마 넘치는 마녀는 정말 신난다.    



 

궁금한 점: 전에 다른 영화에서도 그랬는데, 2차 대전 중에 영국의 부모들은 왜 아이들만 시골로 피난시키는 거지? 왜 부모는 폭격이 내리는 런던에 남아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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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1-02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다, 부모들은 왜 아이들만 피신시킬까. -_-
이번 주에 볼 건데 별로 기대는 안하고 있다. 우웅.
왕의 남자,나 보지그래. 재밌더만.
 

도서전 마지막날은 30m를 움직이는 데 10분은 걸리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책을 제대로 볼 수 있기나 한 건지.  작가님 사인회와 몇가지 마무리할 일들로 전시장에 갔다가, 반가웠어, 수고했어, 안녕, 안녕, 다음에 또 봐요, 우린 이만 간다, 인사하는 데만 또 한참.

점심을 먹고 트램을 타고 마인강 건너 미술관 거리, 슈테델 뮤지엄에 갔다.  8유로짜리 티켓을 끊으면 입장권에 미술관 카페에서 커피 한잔 케익 한조각이 포함된다 (입장권만은 5유로).  1층 다 둘러보고 나면 출출한데, 다리도 쉴 겸, 딱 좋다.



뮤지엄 입구. 날이 흐렸다.  아래 사진은 뮤지엄 웹사이트에서 퍼옴. 
오호, 맑은 날 강 건너에선 이렇게 보이는구나.



슈테델 뮤지엄에는 14-16세기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종교화가 많다 (크고, 무섭고, 어떤 것들은 잔혹하다).  17-18세기 네덜란드 작품 컬렉션이 훌륭하다.  19세기 프랑스 인상파는 기대에 못 미치게 얼마 되지 않았다.  램브란트, 꾸르베, 모네, 뒤러, 르누아르 등등 거장의 이름에 혹했으나 작가마다 한두점 정도? 


르누아르, 점심 먹은 후에, 1879. 
담뱃불을 붙이는 남자의 게슴츠레 뜨다 만 눈이 압권이다.

인상파 화가들은 다 싸이코 같다.  가까이서 보면 겹겹이 떡진 물감인데, 햇빛 찬란한 풍경, 붉은 빛이 언뜻언뜻 비쳐나는 연꽃, 하늘거리는 옷자락을 어떻게 담아내는 것일까.  맨정신일 리가 없다.


Hans Thoma, Die Oed (무슨 뜻이냐), 1883

신기하여라, 여러 작품 이런 풍경화인데, 마법사가 그림 틀 속에 인물과 풍경을 가둔 것처럼, 살아 있는 풍경 실제의 순간을 정지시켜 그림 속에 꼭 잡아 놓은 듯, 바라보면 꼭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림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마술에 걸려 그림 속에 갇힌 사연을 듣고 그 사람을 구출해 현실로 돌아오거나, 그 사람은 탈출하고 나는 갇히거나 -- 알고보니 그 사람도 원래 갇혔던 사람이 아니라 나중에 빨려들어 온건데 그렇게 당해서 그동안 갇혀 있었다 --, 더 바람직한 것은 그림 속의 세상이 좋아 나도 그냥 거기 살기로 한다).

   Hans Thoma, Auf Der Waldwiese, 1876

 


Lionello Balestrieri, Beethoven

이 그림, 마음에 들었다. 제목은 베토벤이라지만 아무도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방안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절망에 빠져 있거나 피곤에 쩔어 멍하니 있다.
베토벤과 피아노를 제외한 방의 뒤편은 이미 반쯤 어둠의 세계인양 형체들이 불분명하고 그로테스크하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더 뚜렷하다.  오른쪽 구석, 발갛게 타오르는 난로의 빛이 새어 나오는 모양도 인상적이다.  제일 뒤쪽에 허연 대머리 아저씨는 방에 들어오고 있는 사람인지 유령인지 정체를 모르겠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열심히 듣는 것은 아니지만, 무념인 채로 음악이 몸 속으로 그냥 흘러들어오게들, 아주 잘 듣고 있는 것인지도...  그 음악은 또 방안의 인상을 담아내는, 쓸쓸하고 무심한 듯 하면서 가슴 아린 선율일 것 같다.


Lucas van Valckenborch, View of Antwerp with the Frozen Schelde, 1590

16-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는 스케일은 크지만 소박하고 사람이 사는 풍경이고 사실적이면서도 유머가 있다.  풍속화라 해야 할까... 브뤼겔의 그림들도 그렇고...  소재로서의 풍경은 칙칙할 것 같으나, 계절이 또 공간이 본래 가진 칙칙함도 그대로 사실적인데, 색감은 종교화나 동화의 삽화처럼 따뜻하고 몽롱하다.  

(아래 브뤼겔의 작품들은 슈테델 뮤지엄에 있지 않다) 


Pieter Bruegel, The Hunters in the Snow, 1565;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Pieter Bruegel, The Harvesters, 1565;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Pieter Bruegel, Peasant wedding c. 1568;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마음에 들었던, 꾸르베의 겨울 풍경.

  

베르메르를 만나다:

들어오는 길에 뮤지엄샵에서 본 엽서들중에 이 그림만은 어쩐지 꼭 봐야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에 어떤 작품이 좋다더라, 꼭 이걸 봐야겠다 하는 것도 없었고, 뭐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일단 1층을 휘적휘적 다니며 이것저것 다 들여다보니, 뮤지엄도 꽤 크고 작품도 많다, 그러니까 다리도 눈도 아프다.  그냥 갈까도 싶었는데, 2층에서 계속 그 그림이 나를 가만 부르는 것 같다.  


Johannes Vermeer, The Geographer, c. 1668

그림을 보는 순간 (크지도 않다 53 x 46,6 cm), 어라, 가슴이 아프다.  저 남자 아는 사람 같다.  에, 전생에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던 거냐... 
유약한 듯도 하고 생각이 깊고 단호할 것 같기도 하고.   지도를 펼치고 한참 해야 할 일에 몰두하고 있었던 듯 한데,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무엇이 그를 일하던 자세 그대로, 다른 곳을 바라보게 만들었을까.  그의 시선은 캔버스 너머 벽을 향하고 있지만, 정신은 다른 데 가 있다.  다른 생각이 든 그 순간이 그대로 멈추어 있다.
게다가 이 정적인 분위기, 얼굴과 지도에 반사되는 저 햇빛, 어쩌자고 저런 찰나를 담아낸 것일까, 으아아.... 이렇게 몰두해 있으면서도 넋나간 그림이라니, 그리고 바라보는 나도, 넋이 나갈 것 같다. 

                                  Johannes Vermeer, 물주전자를 든 젊은 여인, c. 1662

처음엔 이 그림 때문에었다.  뉴욕 매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본 이 그림.   엽서를 보면서 언뜻, 그림 속의 남자와 이 여인이 서로 아는 사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히 끌리지는 않았지만, 선명한 듯하면서 뿌연 색감과 부드럽고 흐릿한 것 같으면서 분명한 선이 인상에 남았던 이 그림.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가슴을 울리지 않았던 거다.  작가가 누군지 이름도 제대로 기억 못했으니.  아닌 게 아니라 집에 와서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둘이 어쨌거나 친구는 친구다.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찾아보고 그에 관한 글들도 읽고 (썩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전에 서점에서 보고 읽을까 말까 망설였던 책-- 아, 이 그림도 베르메르구나, 주문했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모델이 화가는 아닐 텐데, 소설을 읽으며 난 자꾸 베르메르의 모습을 지오그래퍼의 그 남자로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베르메르의 묘한 분위기, 소녀들의 속을 전혀 읽을 수 없는 눈빛은  이렇게 깜찍한 광고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2003년 1월 뉴욕. 42번가의 대형 광고판.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약칭인 MET, <소녀의 초상>이 깊은 눈, 옅은 미소로
HAVE WE "MET"?
이라고 묻고 있다.  어찌 아니 만나러 갈 수 있는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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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12-1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어째서 못 봤을까. 항상 한발 늦는군. ㅎㅎ

 이 책 다음주에 다른 그림책들이랑 같이 주문할거다. 가지고 있지 않으면, 나중에 빌려주지.

 

 

 

쿠르베의 풍경화, 나도 좋은데.


merced 2005-12-15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아요. 먼저 재밌게 읽고 빌려줘여. 내가 하도 띄엄띄엄 쓰니까 그렇지... 머.
 

어쩌다 이 훌륭한 영화를 극장에서 놓쳐서 컴퓨터 앞에 쪼그리고 앉아 보게 되었다. 집에서 보게 된 것의 좋은 점은, 보다보니 와인이 마시고 싶어졌는데, 음,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는 것.

이 영화가 나온 후 와인 판매량이 10%가 늘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선지 미국에서만이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 와인의 특징이라면, 와인 종이 곧 단일 품종의 포도여서, 와이너리마다 기후가 다른 해마다의 포도맛의 차이를 맛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햇빛 찬란한 기후, 영양 풍부한 신대륙의 토양은 맛있는 포도를 길러낸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 호주의 와인은 싸고 맛있고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와인의 대중화를 주도했다.

미국 와인은 캘리포니아에서 거의, 오레건에서 조금, 그러니까 서부 해안 인근에서 주로 생산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40분쯤 북쪽으로,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주요 생산지이며 와인농장들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다. 차로 한시간을 달려도 양옆으로 계속 포도밭이다.

두 곳 다 한번씩밖에 안 가보았지만, 괜히 소노마 카운티 더 마음이 간다. 굳이 비교하자면 나파 밸리는 어쩐지 포도밭과 와인만 있는 대량생산공장 같고, 소노마 카운티는 뭐랄까, 좀 더 농원 같고, 사람이 사는 것 같고 그렇다. 소노마 카운티의 와이너리들에는 포도밭 체험, 도자기 만들기, 요리 경연 같은 이벤트들도 다양하고 워낙에 관광지로 잘 개발해서 스파가 많다. 그러니까 와이너리 돌아다니며 시음하다가 마사지 좀 받다가 해변에 가서 또 노닥거리다가, 라벤더 향도 좋고 (와인 컨츄리엔 라벤더가 지천으로 자란다)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웰빙도 겸하여 잘 놀고 잘 마시고 잘 쉴 수 있는 곳이다.
(와이너리들의 크기로 보나, 브랜드로 보나, 소노마 카운티의 와이너리들이 나파 밸리보다 소규모라거나 할 수는 없다. 그냥 두 지역에 대한 내 멋대로의 인상이다)



소노마 카운티 알렉산더 밸리, 겨울 풍경



여러 와이너리 이정표

그 다음으로 유명한 와인 컨츄리가 사이드웨이의 배경인 중부 캘리포니아이다. 산타바바라와 솔뱅에서부터 북쪽으로 산 루이스 오비스포 즈음까지 해안의 약간 안쪽을 따라 펼쳐진 포도밭 언덕들과 파란 하늘의 경치가 일품이다. 와이너리를 들르지 않더라도 오른쪽에 포도밭 언덕과 바위산, 왼편으로 푸르고 아름다운 태평양 해안을 엇갈려 보게 되므로 기분이 좋아지는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면 공짜로 또는 5달러 정도를 내고 그 와이너리의 최근 5-7종의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5달러를 내는 곳은 대부분 잔값이라고 한다. 다 먹고 잔을 갖고 오면 된다)



4월의 산타바바라, 와이너리에서 바라본 풍경

와인이란 섬세하여 빛도 보고, 액체의 질감도 보고, 그냥 냄새를 맡아보았다가 잔을 돌려 냄새를 맡아보고 혀를 굴리며 맛을 보고, 그래야 한다고 한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재미난 법이지만 법도에 좀 어긋난다고 해서 즐거움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감각에 닿는 것 아닌가? 좋은 것은 좋은 줄 알게 마련. 설교하듯 가르치듯 와인을 따라주는, 또 잔의 모양과 와인의 온도 먹는 순서 등등을 안 지키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아는 와인웨이터는 딱 질색이다. 그런 잔소리를 듣다가 제일 중요한 입맛과 기분이 상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말이다.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어느 와이너리에 들렀다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빠져나오는 장면이 있다. 마일즈처럼 뭘 좀 알아도, 기분이 잡치면 병나발을 불 수도 있고 아끼던 고급 와인을 햄버거 가게에서 콜라잔에 따라먹을 까닭도 있는 것이다. )

들은 말로 와인에 관한 영화라길래 잔뜩 기대를 하고 보아서 그랬는지, 막상 영화는 그저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지극히 일상적인, 리얼리스틱한 사람들이다.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동양여성을 만난다면 꼭 스테파니 같을 것이고 (입양되어 자랐고 18살이 되자마자 집을 뛰쳐나왔고, 흑인 또는 백인 남성 사이에서 나은 혼혈아가 있고, 이혼했거나 미혼이고, 활달하고 긍정적인 성격) , 로스엔젤레스 인근에 많이 사는 아르미니언 이민자들은 가업을 일구고 (틀림없이 보석 가공업이다) 저택 같은 집을 소유할 만큼 한자리 잡고도 사업 물려줄 아들이 없을 땐 별볼일 없는 영화배우인 잭 같은 백인 남성과 기꺼이 딸을 결혼시키기도 한다. 음악과 함께 찬란한 포도밭, 잠깐 스쳐가는 풍경이었지만, 포도를 따고 나르는 사람들은 모두 히스패닉이고, "좋아하는 와인에 묻혀 푹 쉬겠노라"는 우아한 휴가 계획을 가진 남자는 아직도 어머니의 쌈짓돈을 슬쩍 하고 분위기는 지독히도 못 맞추며, 그놈의 휴가 계획은 자꾸 어긋나고, 또 따지고 보면 뜻한 바에서 크게 벗어난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영화의 배경은 산타바바라 카운티 와인 컨츄리이고 주인공들은 이래저래 와인과 관련이 많다.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 또는 직업에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삶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듯, 결함 많은 인물들의 사는 이야기, 삶에 대한 태도가 와인에 녹아들고 와인잔에 비쳐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교훈은 "남자들이란 하여간…"이다.)
그러니까 다시, 이 영화가 와인 소비량의 증진에 기여한 까닭을 생각해 보건데, 비싼 와인 창고를 들여다 보거나 수백 달러짜리 빈티지 와인들을 선보이며 와인의 신비하고 오묘함을 강론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 맛의 섬세함이란 다양한 가치관과 일상을 담아낼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어서이지 않을까. 지독하게 리얼리스틱한 사람들의 사고 뭉치 여행을 따라가다 보니 아름다운 포도밭 사이로, 대단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별한 진심이 저렇게 열올리며 묻어나는 이런 저런 와인 맛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왜 피노를 그렇게 좋아하세요?" (대단히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하면서 물었다)
"글쎄요. 기르기 어려운 포도죠. 껍질도 얇고 온도 변화에도 민감하고 일찍 익고… 아무데서나 자라지 않죠. 항상 돌봐주고 관심을 가져야 해요. 사실은 감춰진 조그만 구석에서만 자랄 수 있어요. 정말로 인내심과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기를 수 있죠. 피노의 잠재력을 이해하려고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피노의 진정한 맛을 끌어낼 수 있어요. 그리고 나면 그 맛은, 가장 빛나는, 소름끼치는, 미묘한…"

오호, 나는 피노라면 오레건 피노느와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멜로처럼 달지 않고 까베르네나 시라처럼 무겁지 않고, 담담하면서도 맑고 섬세한... 원래 맛이 그런 줄로만 알아서 나중에 캘리포니아 피노 맛을 보고는 "피노 치곤 너무 달고 자극적이야" 하고 말았는데, 이런 매력이 있다면 소노마와 산타바바라의 피노도 그 차이들을 비교해 보며 마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번에는 마야처럼, 이 피노가 자라는 캘리포니아의 햇빛은 어땠을까, 2001년의 산타바바라에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오레건의 피노는 비도 많이 맞았겠지... 생각하면서.

화면은 좀 뿌옇다. 그게, 카메라를 그렇게 잡은 것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와인 컨츄리의 햇빛이 그렇다. 영화의 첫장면부터, 아, 저 햇살, 하면서 아득해지고 말았다. 



어느 독일어 웹사이트에서 그새, 피노느와 홍보용으로 이 영화를 써먹고 있다.
(이미지를 찾기 귀찮았는데, 한데 잘 모아두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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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11-28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이란 하여간..."에 동감. ㅋㅋ

하이드 2005-11-2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기없던 종목인 피노누아의 판매량이 20% 증가 했다는 기사 본 기억이 나네요. 사실 저도, 저 영화 보고, 안 찾던 피노누아 품종 찾아서 영화 생각하며 마셨던 기억이 나네요. '특별한 날 마실 와인'이기 보다는 결국 그 와인을 따는 날이 '특별한 날' 임을 깨닫게 되었어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ㅜㅜ 마지막에 편의점에서 스티로폼 컵에 따라 마신건 너무 눈물났어요. 흑.
 

어느 미국인이 그랬다. 미국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뉴욕시, 캘리포니아주, 그리고 나머지 진짜 미국. --아하!

뉴욕은 그러니까, 미국적이라기보다는 세계 속에 따로 떼어놓고 싱가포르처럼 한 나라라도 해도 좋을 만큼, 뉴욕적이라 해야 할까 그런 독특함이 있다. (뉴욕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캘리포니아는 <심슨 가족>과 더불어, 가장 미국적이면서 또한 가장 미국적이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가장 미국적인

미국은 이민으로 만들어진 나라이다. 다인종 국가로서 인종차별 폐지-평등한 인권을 표면에 내세우지만 여전히 백인 중심적이고 glass ceiling (여성과 유색인종이 승진 또는 권력의 사다리에서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백인 사회에 잘 어울린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머리 위로 텅 부딪히는 최고강도 유리천장)은 절대로 깨지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더라도 유색 인종은 비제도적인 (그래서 더욱 견디기 힘든) 억압과 무시를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백인들만 또는 흑인들만 모여 사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이처럼 "섬세한" 인종 차별이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는 이민자에 대한 태도와는 또 다르다. 신비함, 신기함, 손님에 대한 예의 등으로 적의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는 20세기 후반 미국 이민사, 그리고 새로운 이민이 만들어내는 미국 문화의 변화에 첨단에 있다. 20세기 초까지의 꾸준한,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의 독일계 유태인을 위주로 한 대량 유럽 이민의 관문이 동부의 항구 도시들이라면 (특히 뉴욕), 지난 반세기 급격하게 늘어난 아시아계와 남아메리카계 이민의 관문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멕시코-미국 국경)이다. 캘리포니아는 이민으로 이루어진 다인종 국가로서의 미국의 특징을 집약하면서 인종 차별 또는 인종간 대립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미국적이지 않은

그러나 20세기 후반 서부의 아시아계와 남아메리카계 이민은 동부의 유럽 이민과는 성격이 다르다. 유럽계 이민들이 백인 중심의 사회에 일조하고 비교적 쉽게 융화될 수 있었고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이미 어느 정도 정착한 반면, 또 흑인들이 백인과 유색인종 모두를 배제하며 (노예 해방 이후로도 끝없이 인종차별에 맞서야 했고 여전히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박탈을 대물림하기에 반작용으로 생성된 "역차별" 태도이기도 하겠지만) 자기들만의 어투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어쨌거나 미국의 "당당한 구성원"이라는 입지를 차지한 한편, 이민의 역사가 짧은 아시아와 남미의 이민의 문화는 그야말로 마이너리티이며 독특하다.

캘리포니아는 다국적, 다문화적이다. 캘리포니아의 인종 비율은 다른 주와 다르고, 상이한 소수 문화들간 부대낌이 가장 첨예한 곳인가 하면, 미국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가장 존중받고 "다름"이 어색하지 않고 열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주민이 가져온 본국의 다양한 전통, 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이민자들만의 문화 (이민자 그룹마다의 미국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이 다르므로 이것도 천차만별이다), 이민 1세대와는 또 다른 2세들의 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캘리포니아에는 공존한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melting pot 이라는 널리 받아들여졌는데, 한물 갔다. 여러 문화들이 만나 이도저도아닌 어떤 것으로 섞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색깔들이 공존하며 새롭고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낸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반가운 인식의 변화는 민간 영역에서 국제 교류가 큰 폭으로 확장된 지난 20년간의 세계적인 경향이기도 하겠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일상적으로, 현실적으로 여러 문화의 생명력과 접점을 경험하게 된다.

미국의 초기 이민이 다들 그렇듯이, 시민권을 갖지 못한 캘리포니아의 많은 이민 1세대들은 백인들이 꺼리는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뉴욕의 택시 운전사들은 엑센트가 제각각인 여러 유색인종 이민이며 미국 남서부 식당설거지, 청소, 공장,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영어를 아예 못하는 히스패닉이다) 아메리칸 드림 실현과 정착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근래의 아시아계 이민들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가진 것 없이 몸만 달랑 왔던 초기 이민자들과는 달리, 부유한 한국계와 중국계 투자(또는 투기) 이민들은 미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미국의 부동산 경기나 산업관례 등을 빠르게 변화시키며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미국적인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이러한 특징은 이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영어와 스페인어 공용화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먼저 시행되었지만 이제는 미국 전역에서 일반화되었다. 아시아계와 히스패닉의 비율이 미국 전역에서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아시안과 히스패닉에 대한 미국 전역의 인식도 전처럼 마냥 타자가 아니다.  

반면, 캘리포니아에서는 다양한 문화들에 열려 있는 태도 이면에 서둘러 정착하고자 하는 욕망에 얼른 돈 벌고 자리잡아 "나와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지극히 미국적인 개인주의와 천박한 상업주의가 이민자들 스스로에 의해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를 테면 "성공한" 이들이 다른 소수민족과 덜 가진 이들을 나서서 차별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단순한 역차별--그러니까 제 민족과 다른 소수를 감싸고 백인들을 차별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이해하기가 쉽겠지만).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정도 충돌과 변형을 경험한 문화들이 이제는 "미국의 일부"로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 비교적 유연하게 수용되며 파급되는 반면에, 캘리포니아에서는 "미국적인" 인종차별과 불평등이 재생산, 복제되고 있다.

그나저나, 캘리포니아에 대한 지리적인 이야기

원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잘 살고 있던 곳을 18세기부터 스페인이 선교사와 병사들을 이끌고 와서 식민지로 만들었다. 1822년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공화국이 독립하면서 멕시코령이 되었는데,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미국 영토가 되었다. 대부분의 지명이 스페인어이고, 카톨릭 성자 이름이 많다. 뺏어서 잘 개발해서 잘 쓰고 있다. 애리조나에서 끌어다 쓰는 물로 야채, 과일, 유제품, 소고기 생산 미국 1위. 닭고기 칠면조는 미국 2-3위. GNP의 45%는 항공, 우주, 전자 등 첨단산업이 차지한다. 공업은 미전역의 10%. 시멘트 1위, 광업 2위, 석유 4위. 캘리포니아 주만 따로 떼어놓아도 경제적 생산력이 세계 10위 안에 든다.

1920년대에 미국 8위였던 인구수가 쑥쑥 자라 1970년대 이후 줄곧 미국 1위. 미국에서 남아메리칸, 아시안 인구가 가장 많은 주.

북반은 대체로 서안해양성, 남반은 포도가 잘 자라는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 여름이 길고 건조하며 겨울에 비가 내린다. 눈 펑펑 내리는 고산지대가 있는가 하면 사막도 있다. 서부 해안선을 따라 불안정한 지반으로 때때로 화산도 폭발하고 자주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난다. 다양한 기후와 변화가 많은 지형, 태평양 해안 등으로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이 많아 관광객, 휴양객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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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11-01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런 거 쓴 줄 몰랐군.
재밌는데, 계속해야지? 일단 추천.
 

샌디에고는 전에도, 컨퍼런스로 왔다가 컨퍼런스만 하고 아무것도 못보고 갔다. 당시 학생으로서, 참관 자격으로 왔던 나는 별 쓸데 없는 회의도 꼬박 앉아서 듣느라 호텔 밖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LA에 살면서 샌디에고에 놀러 올 때도 이상하게 씨월드랑은 인연이 안 닿아서 가보질 못했다.

훕! 이번 출장의 목적은 씨월드다 (아니지, 일해야지). 이번에도 일은 죽도록 많아서 피곤하고, 게다가 아프기까지 해서 못 갈 뻔했다. 다행히 마지막날 일요일, 모두의 염원으로 드디어!!!  

     

  

샌디에고 씨월드의 마스코트 범고래 샤무. 어찌나 귀여운지.... 두번이나 보았다. 하지만 아침에는 씽씽하던 샤무도 해저물녁 공연에는 기력이 좀 떨어져 보였다. 앞쪽에 앉으면 흠뻑 젖을 수도 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에 나오는, "안녕, 지구는 곧 사라져, 잘 있어"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바로 그 돌고래들.

    

가장 하고 싶었던 게 이거였다. 돌고래 만지기. 언 고기를 사서 먹이를 준다(비린내가 손에 오래 남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돌고래들도 성격과 취향이 제각각이다. 어떤 넘은 까륵까륵 애교 만점. 먹이를 주면 꼬리를 흔들고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해서 오래 가만히 있는가 하면, 어떤 넘은 "내가 여기 갇혀서 먹고 살자고 이짓을 하기는 하는데 말야, 귀찮으니까 웬만하면 만지지는 말고, 얼른 먹이나 줘" 하면서 훽 뿌리치고 가버리기도 한다.

샤무와 돌고래 쇼에서 청중 가운데 아이 하나를 불러서 범고래와 돌고래를 만져보게 하고는 느낌이 어떠냐고 묻는데, 두 아이 다 "핫도그 같아요" 라고 대답했다.  동행한 작가님과 나의 합의: 고무와 진흙의 중간 정도?

   

동물들이 워낙 재미있다보니 cirque de la mer 는 흥이 떨어진다. 저녁을 먹고는 탈것도 하나 타 보았다. 오자마자 일행과 함께 아크로뱃 쇼를 보면서 먹는 "여름밤 스페셜" 부페를 예약했는데 (알고 보니 샤무랑 저녁먹기, 샤무랑 아침먹기도 있었다)  추웠다는 걸 빼고는 맛도 가격도 괜찮은 편.  

펭귄은 시차 때문에 (남극이 해없는 때여서 그런가?) 오후 1시가 지나면 만날 수 없다. 이넘의 자식들, 여기 온지가 언젠데 (나도 이러고 다니는데)... 쩝.

그리고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미리 예약해서 "돌고래와 헤엄치며 놀기"도 해 볼 생각이다. (한달간의 예약이 꽉차있고, 주로 꼬마들이 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 부담스럽긴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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