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주 목요일 오후 밀라노에 도착했다.
이틀  전부터 사진기가 고장나버렸기 때문에 여기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모은 거다.
밀라노는 역에서부터 두오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갤러리까지, 어쩌면 그렇게 높고 큰지, 예전에는 거인들이 살았나 싶다.





밀라노 중앙역



밀라노의 중심 두오모 광장과 고딕 양식의 절정이라는 두오모. 
나는 이 성당이 싫다.  들어가자 마자 그 천장의 높이에 질렸고, 옥상에 올라가서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돌을 깎아 만든 수백개의 뾰족뾰족한 탑과 조상들이 끔찍하다.  그 큰 건물의 구석구석 빈틈없이 화려하여 질식할 것 같다.  500년동안 이걸 만들었다니 더더욱 미친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묻고 싶다. "하나님, 이 곳이 편하십니까."
... 그래도 스테인드 글래스는 아름답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당 위에 올라가서 보면...

성당 측면.  안쪽에서 보면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





식당, 쇼핑할 곳이 많은 유리천장의 아케이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
보이는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맥도널드. 그래도 때로는 반가운... 눈치 안보고 써도 되는 화장실. 



두오모쪽에서 들어와 갤러리를 나와서 마주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제자들.
건너편으로는 라 스칼라 극장이 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 가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볼까 했는데, 예약을 해야 한다 해서 전화해보았더니, 앞으로 한달이 지나도록 꽉 차 있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빈치에서 태어나 (그러니까 이름이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이다) 피렌체에서 공부하고, 밀라노의 영주 루도비코 일 모로의 후원으로 17년동안 밀라노에서 살았다. (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점령으로 일모로가 몰락할 때까지) 이 기간동안 다빈치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며 그동안 축적된 재능을 발휘하였다.
여기와서 들은 이야기 : 사실 일모로는 피렌체의 메디치家처럼 덕망있고 세련된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을 높이고 싶어했고, 그래서 다빈치를 "초빙"했다는...

Museo Poldi-Pezzoli
폴디페촐리家에서 대대로 수집한 15~19세기의 회화, 시계, 보석, 태피스트리를 폴디페촐리가 저택을 개조하여 전시하고 있다.  옛날 사람이 살던 집과 가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정보에 태어나고 죽은 연대 외에도 태어난 도시, 죽은 도시를 함께 쓰는 것이 흥미롭다.  여럿 보다보니, 지역마다 성향이 다름을 조금은 알겠다.  베니치아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죽었다 하면 이 작가의 색감과 구도, 취향이 왜 이렇게 형성되는지  대략 알 듯도 하다.    

    Lorenzo Bartolini (Prato 1777 - Florence 1850), Trust in God

  Sandro Botticelli (Florence 1445 - 1510), The Dead Christ Mourned

 
Piero del Pollaiolo (Florence 1443 - Rome 1496), Portrait of a Woman


Francesco Hayez (Venice 1791 - Milan 1882), Self-Portrait in a group of Friends

Pinacoteca di Brera



이튿날 2시 반 비행기를 앞두고 아침 일찍 브레라 회화관에 갔다.
건물 앞과 중정에서 가방메고 수다떨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 많아서 미술관에 사람이 많으려나 했더니
오래된 커다란 건물에 1층은 도서관이고 2층으로 올라가면 Pinacoteca di Brera이다. 


Giovanni Bellini, 피에타, c1465

성모가 예수의 주검을 무릎위에 두지 않은, 독특한 포즈의 피에타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는 가느다란 금테 후광을 두르기는 했지만 핏기 없는 푸릇한 시체이다 (예수의 시신을 주검으로 그린 피에타를 전엔 못보았다).  고단하게 그러나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얼굴.  더 이상 피흐르지 않지만 아직도 붉은 못자국이 선명한 아들의 시신을 옆에서 안은 어머니의 얼굴은 젊고 아름다운 성녀가 아니다.  밤새 가슴이 타들어갔을, 아직도 미어질, 자식의 처절한 죽음을 지켜본 성모는 눈자위가 까맣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잡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툭 쓰러질 주검을, 마찬가지로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어머니가 안스럽게 끌어안고 있다.  처절하고 가슴 아픈 피에타, 눈물이 난다.   


Caravaggio, Supper at Emmaus, 1606

부활한 그리스도. 엠마오로 가는길에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처음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가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예수님인줄 알았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 바보들...)  아래 램브란트의 같은 제목의 그림을 보면, 그게 성스러운 순간임을 알겠다. 
그런데 이 까라밧지오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엠마오네 집에서의 저녁식사인가?" 라고 생각했고, 식탁위의 저 부실한 음식과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물들을 보라, 엠마오네는 되게 못사는구나, 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사내, 후광도 없는데 예수님인 줄은 그나마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퀭한 얼굴에 목에도 주름이 선명한 노파, 1606년의 그림이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인물을 그리고 삶의 고단함을 드러내는가. 예수의 인상도, 그림 전체의 색감과 비현실적인 명암도 마음에 든다.


Rembrandt, Supper at Emmaus, 1648, 파리 루브르 뮤지엄.


Francesco Hayez, The Kiss, 1859

장면, 순간, 색감 -- 보는이를 확 사로잡는 그림.  저기 위에 친구들을 배경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한 작가의 작품이다.  Hayez는 바로 여기 브레라 미술학교에서 가르치고 교장도 지냈으며, 이탈리아에서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을 대표하는 작가라 한다.


Giovanni Luteri, St. Sebastian, 1490-91

이 그림을 보고 한참을 키득거렸다. 이건 뭐냐... 섹시 세바스띠아노?
중세로부터 세바스찬 성자의 순교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무수하지만 (중세의 종교화를 가만 들여다보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인물의 표정이 웃긴 것도 많다.  기둥에 묶여 돌과 화살을 맞으며 순교하는 성 세바스찬이 :(  이런 단순한 입모양만 그리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잔혹하게도 얼굴에 꽂힌 화살과 상처를 정밀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포즈는 처음 본다. 거의 패러디 수준이다.

아무거나 하나 비교해 보자 :


Hans Holbein, Martyrdom of St Sebastian (1524). Pinakothek, Munich, Germany.

브레라 미술관에도 전체적으로 성서, 성자를 소재로 한 (특히 베네치아에서 여럿 본 산 마르코의 이야기, 유해 이전과 관련된) 커~~다란 그림들이 많다. 15~18세기의 롬바르디아파와 베네치아파 작품들이라 한다.


Marco d'Oggiono (1475-c1530), The Archangels Triumphing Over Lucifer

      Giovanni Bellini, Predica di San Marco in Alessandria d'Egitto


Andrea Mantegna (1431-1506), Cristo Morto
원근법과 시선이 독특하다.


Raffaello, 성모마리아의 결혼


스포르체스코 성 Castello Sforzesco

밀라노 시내의 웬만한 건물들도 베네치아나 볼로냐보다 높고 화려하다.  보고 있는 건물들 중에는 전후에 지어진 것들도 많다 한다.  어쨌거나, 화려한 장식에 살짝 질린 나는 이 상대적으로 투박하지만 견고하고 군더더기없고 짜임새와 균형감이 돋보이는 벽돌로 지은 성이 반갑다. (물론 스케일 면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유치원생들부터 고등학생까지 무리지어, 뮤지엄 견학을 온 듯, 성의 4면마다 있는 입구로 종알종알 들어온다.  사진은 성 안쪽. 1466년에 완성되었고 회화, 악기, 고고학유물 등을 전시하는 여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오래된 건물들, 역사적 유물을 의미있게 잘 살려 쓰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이젠 정말로 공항 갈 시간이 되어 버려 이 성에 있는 전시를 하나도 못보고 온 것은 마음 상한다.

스포르체스코 성을 나서면 탁 트이고 한가로운 셈피오네 공원이 있다. 멀리 보이는 건 평화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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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120개 자잘한 섬들이 177개 운하와 400개의 다리로 연결된 도시이다.  5세기에 서고트족, 훈족, 롬바르디아족의 침입을 피해 이탈리아 북쪽 여러 도시의 주민들이 이주해 와 앞서 살고 있던 토착 어민과 함께 아드리아 해 점토층에 수백만개의 떡갈나무 말뚝을 박아 기층을 만들고 인공의 섬을 만들었다.

수면아래 숲을 이루고, 그 위에 도시를 만든다는 기상천외의 발상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베네치아가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처럼 오만한 제왕들의 권력 의지가 아닌, 몇천 유배된 사람들이 생사를 걸고 비상상한 상상력으로 일군 대역사(大役事)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외롭다.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 권삼윤 | 푸른숲 | 94쪽


이탈리아에 간다 하니,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제일 가고 싶었다. 사실 상상이 잘 안 되었다. 정말로 도시 대부분의 길이 물이고 배를 타고 다닌다고?  뱃길 옆으로 기단과 아래쪽은 물에 잠긴 건물들에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산다고? ... 정말이더라.





대운하를 오가는 수상버스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거리



대운하에 면한 식당



Vaporetto 라 불리는 수상버스와 버스 정류장.  안내양 또는 안내군이 있어서 정차 (정박)할 때마다 폴에 밧줄을 걸고, "무슨 역입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문을 열어 사람들을 내보내고 들인다.

택시



베니스의 환상 곤돌라.  곤돌라를 타기 가장 좋은 때는 해저물녁 "곤돌라 세레나테" 칸초네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이른 오전 곤돌라 사공이 곤돌라를 청소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며 어슬렁거리는 곤돌라 운전사들.  흰바탕에 까만색 가로줄무늬가 유니폼인 듯.  곤돌라 사공은 "노래 실력"을 포함한 특별한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혼자 벌쭘해서 안 탔는데, 바포레토로로는 대운하만 따라 갈 수 있지만 <탄식의 다리>를 포함해 곤돌라를 타고 천천히 작은 물길을 다니며 골목 풍경을 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골목길 풍경.  작은 배 한 척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들도 있는데,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널어 두기도 한다.



대운하가 끝날 무렵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찍음.  운하의 폭이 확 넓어졌다. 운하가 끝나면서는 확 트이며 아드리아해를 만난다. 저 돔은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어딜 가도 느끼는 거지만 광장의 주인은 비둘기이다.  산마르코 광장 곳곳에는 1유로에 비둘기 먹이를 파는 노상들이 있고, 이렇게 사람이 친한 척 하면 어깨에도 내려앉곤 한다.  난 닭둘기가 싫어...  여기는 운하가 끝난 바포레토 정류장부터 산마르코 광장에 이르는 길에 있는, 두깔레 궁전 앞 산마르코 소광장.



산마르코 광장, 종루.

아침에 호텔에서 창문으로 모피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더러 있길래, "뭐, 3월 말에 저렇게 추울까" 했는데, 덴장, 대운하를 지나는 동안 얼어죽는 줄 알았다. 역시 바닷바람은 춥다.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뭐든 따뜻한 곳에서 뜨거운 마실 것으로 몸을 녹여야 했다.



여기는 카페 플로리안. 1720년에 만들어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루소, 괴테, 스탕달, 바이런, 쇼펜하우어, 바이런, 모네, 하이네, 릴케, 토마스 만....  많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단골로 드나든 카페란다.  겨울이면 홍수로 광장과 성당이 물에 잠기는데, 배를 타고 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어느 카페에서건 서빙을 하는 가르송들이 인상적이다.  플로리안에서 내가 찍은 사진은 젊은 가르송인데, 할아버지 가르송들도 많고 그분들이 참 멋있다. 손님들도 많고 쉼없이 차를 나르면서도 광장 앞쪽에서 모여 수다를 떤다. 그러면서 어느 테이블에서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으면 놓지지 않고 다가간다. 빠뜨리거나 늦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서두르지 않는, 카페 안팎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처럼, 바람처럼, 유려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의 얼굴에 평생 지은 미소가 배어있다.  젊은 가르송들이 아무리 친철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유려한 경륜이 존경스럽다.   



오후에 광장에 다시 오니 카페 플로리안의 야외에서는 공연이 한창이다.



종루에서 내려다본 산 마르코 광장.



광장에 면한 산 마르코 성당. 9세기 이집트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가져와 안치하기 위해 세웠다. 화재로 다시 세우고 여러번 복원 공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어쩔 것인가.  뮤지엄 다 돌아보고 오후 4시에 왔더니 여행서에 5시까지라고 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4시면 문을 닫는다고.  그래서 내부는 못보고 이렇게 광장 쪽에서 바깥을 본 게 다다.







성당 위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 말.  13세기 베네치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왔고 B.C. 4-2 대의 작품으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한때는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갔다가 되돌려 받았다.  약탈의 역사만 반복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산마르코 성당의 쿠폴라



리알토 다리. 원래는 목조였는데 16세기에 석조로 바뀌었다.  인근에 식당도 많고 쇼핑할 것도 많다. 옛날부터 베네치아 상거래의 중심지. 추워서 목도리라도 하나 사야지 하고 지상의 유리공예상점, 옷가게가 구비구비 늘어선 골목 골목을 따라 걸었다.

점심을 먹고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갔다.  조르조네, 조반니 벨리니,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네치아 화풍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르네상스 이후 16-18세기의 베네치아 화풍은 구도보다는 풍부한 색채와 명암의 아름다움, 감각적 관능미를 추구했다는데, 비교가 될 만한 그림들을 찬찬이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미술관의 고색창연함과 전시된 그림들의 내 키의 2-6배를 넘는 길이와 폭의 스케일에 비해 감동의 폭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듯 하다.  하지만 도시를 돌아다녀본 소감만으로도, 이곳에 살면 색채에 대한 감성과 관능미를 다른 곳보다 앞서 자연스럽게 체득했으리라는 데는 동감.  

티치아노의 미완성작 <피에타>.  그런데 어디가 미완성이라는 거지?



조르조네 <폭풍> c 1505



Gentile Bellini, The Recovery of the Relic of the True Cross at the Bridge of S. Lorenzo. 1496-1500
이렇게 옛날의 베네치아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500년이 지나도 똑같이 생긴 도시...   



아름다운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팔각형의 성당 벽면을 따라 걸린 그림마다 작은 성소이다. 바닥의 문양도 아름답다.



성당에 갈 때마다 그런 것 같다.  벽화나 다른 조각상들보다 이 촛불 앞의 예수나 마리아는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때로는 조악하기조차 하다.  촛불 한 개값은 80센트~1유로.  서낭당에 천조각을 걸거나 정화수 떠놓고 산신령께 비는 기복신앙와 다를 게 뭐냐.   어딜 가나, 어느 신을 섬기건 사람살이에서 이루고 싶은 꿈과 얻고 싶은 것,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무사를 비는 마음은 다르지 않은가보다.  그러니 나도, 촛불 한 개 켜고, "건강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게 해주세요" 잠시 기도.  이 할머니는 촛불 네 개를 켰다.  모르지, 나만 욕심 많고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 들러 마음 가다듬는 뜻으로만 초를 드는지도...



산마르코 성당 옆의 두깔레 궁전. 좌절이다. 여기도 4시면 문을 닫는다. 건물 내부 장식과 그림, 옛날의 회의실... 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맘 상했다.



중루에서 내려다 본 두깔레 궁전. 산마르코 성당과 이웃하고 있다.

두깔레 궁전 뒤쪽 감옥 탄식의 다리 근처에 이르니 여행서에서 못 봤는데, 틴토레토 특별전을 하고 있다고 써붙인 Museo Diocesano 가 눈에 띄었다.  들어가서 물어보니 베네치아 주교성의 사적인 소장품들을 번갈아 전시한다고. 이곳만이 아니라 이탈리에서는 그림들이 넘쳐나서인지 그저 웹사이트들이 부실해서인지, 웬만해서는 뮤지엄 웹사이트에서 소장품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마음에 들었던 그림들 사진찍지는 못하고, 돌아와서 찾아볼까 했더니 낭패다.  

틴토레토, <산타 카탈리나의 생애> 연작 일부.

작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최후의 만찬>을 보았는데, 이런이런, 최후의 만찬이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길쭉한 테이블에 죽 늘어선 그림만 알아서인지, 평범한 직사각형 식탁에 둥글게 모인 최후의 만찬을 보니 한 데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그림에서도 요한인지 막달라마리아인지는 여자 같던 걸.



곳곳에 있는 화려한 가면 상점.

나에게 베네치아의 인상은 초록색과 금색이다. 성당과 그림 액자, 가면의 금장 화려한 반짝임.
초록색 물빛 거리 베네치아, 오래 눈에 선하다. 못 본 곳도 많고 (무라노 섬의 유리공장도 못 보았고, 저녁 시간이 된다면 실내악이나 오페라 공연도 보고 싶다)  베네치아...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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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4-10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언제 이탈리아에 갔다 온거야? 으흑. 좋았겠군. 사진 멋지다.
그래, 베네치아를 기념할만한 선물은 사 왔나? ㅋㅋ

로드무비 2006-04-1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물 위의 집.^^

merced 2006-04-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좋았어요. 선물은 없고 ^^;; 볼로냐와 밀라노 여행기가 이어집니다.

로드무비님, 그렇지요? 어찌보면 다른 동네에서는 홍수났을 때 풍경같은데, 물이 더 차오르건 말건 잘 살고 있다니까요. 광장에 물이 차는데 배타고 커피마시러 간다는 생각을 할 수나 있겠냔 말이에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언제 침하될지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하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인생을 즐기자 라는 태도가 나오는 거 아닐까 싶어요. 옛날부터 유럽 다른 곳에서 베네치아로 놀러온 사람들이 바람도 잘 나고 쾌락과 관능, 잘먹고 잘놀고, 물과 친한 머큐리 정신~!

사마천 2006-04-1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군요. 추천드립니다.

kidkidman 2006-04-1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잘보고 갑니다요~~
난 뭐했지... 내 전공이 뭐야??ㅋㅋ...
재밌게 놀다 왔짜나여~~ 내말이 맞았네요^^;;
물위의 집 부식과정에 대해 한번 심히 고려를 해야 할듯...
우리도 저런거 만들어야 될텐데..^^;;
나머지 이야기도 (기대 * 100만)
언제나 웃는 하루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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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했는데 얼마나 써먹을지...^^;;;ㅋㅋ

비자림 2006-04-1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인사 드려요. 베네치아.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사진으로 잘 구경했어요.
언젠간 한 번 나들이 갈 수 있겠지요. 정말 멋있네요. 퍼 갑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미국, 호주 등의 길거리에
Julian Beever라는 사람이 이런 그림들을 그리고 다닌다 한다.




















바로 위에 그림, 옆에 쪼그려 앉은 작가의 양쪽 발은 같은 높이의 바닥에 나란히 놓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이는 건 바로 그 각도에서만이다.
다른 쪽에서 보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이런 그림.


의도한 각도에서 보는 사람은 길을 걷다 깜짝,
게다가 병위로, 물위로, 사람 위로 아무렇지 않게 붕~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더 놀랄테고, 그러다 푸하하, 유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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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2-2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보니까 우리나라 어느 대학의 만화 동아리 애들도 이런 그림을 그리고 다니던데.
 

All the leaves are brown and the sky is gray
I've been for a walk on a winter's day
I'd be safe and warm if I was in LA
California dreaming on such a winters day  
(The Mamas & The Papas, California Dreaming )

답답한 일이 있거나 팍팍한 하루 끝엔
(회사에서 가기에 가장 가까운) 베니스비치에 가서 해지는 것을 바라보곤 했었는데...
파도가 잔잔한 날엔 물도 밟다가,
파도소리 들으며 앉았다가 누웠다가, 그러면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베니스비치의 낮, 특히 주말엔 사람들로 몹시 붐빈다.
해수욕을 하기에도 좋고, 자전거나 롤러블레이드를 타기에도 좋고,
관광객용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많고, 문신과 피어싱 가게도 몰려 있고,
귀고리나 목걸이 같은 크래프트를 직접 만들어 파는 작은 좌판들로 볼 거리도 많다.  










언제나 토요일이면 (일요일인가? 가물가물한테, 하여튼) 이렇게 베니스비치에 모인 사람들이 있다.
무엇을 하는 것인가 하면, 둥그렇게 모여서 죽어라 북치고 장구치고 춤을 춘다.  



그냥 그렇게들 알고 있어서, 참여하고 싶으면 그냥 타악기를 들고 나오면 된다.
대충 가운데 전체를 리드하는 사람이 있긴 한데, 메인 박자에 맞추어
내가 들고 나온 악기로 멋대로 변주를 하면 하면 된다.
오후 4시쯤 시작해서 해가 넘어갈 때면 절정에 이르고, 해가 지면 뚝, 악기 싸들고 집에 간다.
마음에 드는 커뮤니티다.

남부 캘리포니아 해변의 풍경들은 비슷비슷하다.
걷기, 달리기, 자전거타기, 공던지기, 모래장난을 하거나 그냥 디비져 있는 사람들,
얕은 물가에서는 애들과 개들이 놀고 좀 깊은 물에는 서핑보드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
(까만 수트를 입고 고만고만 몰려 있어서 "물개"라고 부른다)
해변 한가운데로는 피어가 있고, 피어 위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 
피어 끝에는 클램차우더나 피쉬앤칩스를 파는 식당이 하나쯤 있고...

늦게 일어나 청소며 빨래를 대충하고 어느 해변이건 골라서
모래밭이나 피어를 한번 왔다 갔다, 해변 입구에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그럼 대강 일요일 오후는 평온하고 따사롭게 저문다.


seal beach pier, 피어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들은 대체로 이렇다



말리부 해안. 
산타모니카에서부터 샌프란시스코 좀 아래까지 1번 고속도로는 줄곧 태평양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가슴 트이고 시원한, 햇살 그득한,
그게 그거인거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바다, 해안 풍경.

베니스비치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타다보면 어리버리 산타모니카비치에 이르게 된다.
산타모니카에는 피어 위로 놀이공원이 있어서 좀 북적거린다.

3rd Street 에서 산타모니카 피어/비치로 가는 길



피어 입구. 피어 왼쪽은 놀이공원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오레곤주와 워싱턴주에 이르기까지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의
여러 지역에서 늘 퍼포먼스 아트나 설치 예술 프로젝트, 연례 커뮤니티 축제 같은 것들이
벌어지곤 한다.  (이렇다 할 것 없던 유레카 타운은 아티스트 촌으로 자리를 잡았고,
여러 곳에서 지역의 특징을 살린 특이한 이벤트를 열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지역 주민들이 널리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가 활성화되고 있다.
베니스 비치에도 눈여겨 보면 여기저기 자투리 벽면에서 벽화와 그래피티를 발견할 수 있다.)

   









산타모니카 피어 바로 옆 해변에, 마지막으로 본 것이 2004년 11월이었는데,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민간단체에서 만든 이 메모리얼은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사망자들을 기리는 것이다.  매주 업데이트되어 십자가 수가 는다.





(1) 그냥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건지,
(2) 이들 군인들 덕분에 그대가 해변에서 놀 수 있는 겁니다를 말하는 건지, 
(3) 이렇게 죽는 이가 많으니 그만 철수하라고 말하고 싶은 건지, 
(4) 죽은 이라크인들까지 합치면 해변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거라는 것도 생각해보라는 건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십자가만 세워놓고 마니, 참 여러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여러 생각들을 끌어낼 듯도 하다.
(1) 이 표면에 놓이니 이 메모리얼은 아무도 비난할 수 없고,
이것을 기표로 해서 전혀 다른 정치적 입장인 2, 3, 4가 결합될 수 있다니, 묘하고 무섭다.



손으로 써진 것은 같은 말, 스패니쉬.

그러나 단어나 색깔의 선택을 보아하니 1, 2, 3 수준인 듯하고,
나머지 해변에 크고 작고 부러지고 뒤틀린 녹색, 까만색 십자가들을
발에 채이도록 뿌려놓아서 (줄맞춰 세워놓지 않고) 4를 말하고 싶다고, 나는 생각만 한다.   



캘리포니아 인상.
나에게 캘리포니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팜트리, 해지는 바닷가 풍경이다.

치인 하루 퇴근길에, 복작복작 지하철에 오를 때면, 베니스비치 해저물녁이 간절하다.  
노래 가사처럼, 캘리포니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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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17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방에서 님을 뵈었어요.
바닷가 사진들이 너무 좋은데 좀 퍼갈게요.^^

urblue 2006-02-17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좀 크게 올려놓지. 배경화면으로 써도 좋겠구만.
로드무비님, 반가버요~ ^^

로드무비 2006-02-17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분이 친한가 봐요?
블루님, 나도 반가버!^^

merced 2006-02-1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안녕하세요, 간간이 님의 리뷰와 페이퍼를 잘 읽고도 한번도 인사는 안 남겼네요 -.- 서재요, urblue 님이 꼬셔서 하는 거에요. 괜찮은 사진은 저도 다 여기저기서 퍼와서 자르고 붙인 거랍니다. (카피라이트는 고사하고 크레딧도 안함)

꼬신님, 해상도 높고 큰 걸로 따로 보내드리죠. 어느 걸 원해? 내 사진? ㅋㅋ.

urblue 2006-02-17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사진 질이 다 틀리군. 처음 바다 사진들 중에 마지막 거, 그게 맘에 든다. 니 사진은, ... 말 안 해도 알지?

montreal florist 2009-09-16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너무나도 시원하고 멋있는 바닷가 풍경이군여.
 

1892-1976년에 J. Paul Getty 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석유사업으로 돈을 번 부자였고, 그 역시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일찍이 사업에 수완을 보였다. 그러다 불쑥 25살에 "난 로스엔젤레스의 날날이가 될 테야" 하며 회사 경영을 그만두었고, 결국 다시 가업에 복귀하기는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죽으면서 "이 놈은 내가 일으킨 사업을 다 말아먹을 놈"이라고 욕했다.
수많은 투자와 투기를 통해 Getty Oil Company는 세계 8대 석유 기업이 되었고 (폴 게티 사후 이 회사는 Texaco에 인수되었다) 1957년 포춘지에 의하면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였다. 그러나 그는 손님이나 일꾼들이 장거리전화, 국제전화를 쓰면서 전화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집에 공중전화를 설치했다. 
폴 게티는 5번 결혼했으며 한번도 부모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고, 자식들의 결혼식에도 한 번도 못갔다. 그는 "자식들이 반항해서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며 유서를 21번 고쳤다.
게티는 예술품과 골동품 수집을 좋아해서 게티 뮤지엄을 짓고 30억 달러를 들여 세계 곳곳의 역사적 유물과 예술품을 사들였다.  그가 평생 수집한 예술품 값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소장품 (가격을 매긴다면) 가치의 25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진품 여부가 불확실한 작품에 엄청난 값을 지불하기도 했고, 게티 개인의 골동품 취향이 우선이었던 고로 컬렉션은 형편없는 것들도 많고, 그래서 게티 뮤지엄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J. Paul Getty Trust Fund는 미술 창작, 예술의 학문적 연구를 지원하며 좋은 데 쓰이고 있다.
폴 게티는 평생 자기 속옷은 스스로 빨아 입었다.


게티 센터 전경


정원 쪽에서 바라보면...

게티 센터 전시관 끝 (입구에서 가장 먼) 에서 보는 로스엔젤레스

로스엔젤레스와 멀리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게티 센터는 건축이 참 아름답다. 소장품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처음 한 번뿐이고 (그리고 실망했다) 그 이후엔 그냥 바람 쐬러, 차 마시러 자주 갔었다. 

        

     

입장료는 무료이고, 주차비는 $5, 여러 언어로 소장품과 건축에 대한 다양한 안내서가 준비되어 있고 설명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다. 오디오 가이드, 어린이를 위한 이벤트도 다양하다.  특이한 것은 "당신이 바쁘다면… 1시간 만에 게티 둘러보기" 라는 안내서인데, 상설 전시실의 소장품이 양에 비해 일일이 들여다보기에는 그저 그러므로, 이 안내서를 따라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모든 방문객은 언덕 아래에서 트램을 타고 올라간다.  졸졸졸...
그것은 산길을 조금 걸어 절에 이르는 기분과 비슷하다.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다른 공간으로 들어서기.


     

트램에서 내려 계단을 조금 오르면 곧바로 안내데스크와 만나는 로비로 들어서게 된다.
(화장실, 유모차 대여소, 뮤지업 샵 등은 여기서 좌우로)
안내데스크를 지나 바로 문을 나서면 이렇게 트인 공간이 있고, 전시실은 각각 직육면체 또는
원통형의 독립적인 건물들로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다. (물론 전시실끼리는 어떻게든 밖으로
나오지 않아도 되는 동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커피샵과 카페테리아가 따로 있지만, 여기서도 많이들 커피를 마신다.
아치형의 분수도 있고, 시냇물 비슷한 것도...

바람 쐬고 차마시고 친구와 수다 떨러 간다지만, 자주 바뀌는 기획전시는 볼 만한 것들이 많다.
보통 전시실 1개 정도를 쓰므로, 한시간 미만으로 둘러 보게 된다.
미리 이걸 봐야지 하고 오지 않았어도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오른쪽 계단을 내려가면 또 다른 공간이 열린다  -- 정원.
빙글빙글 돌아가며 다양한 식물들을 찬찬히 보게 되는 정원이 있고,
그냥 앉아서 놀거나 누워서 책읽어도 좋은 약간 경사진 풀밭도 있다.






직선과 원의 조합으로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며 흰 돌로 마감하여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부드럽게 반사시키는 게티 센터의 건축은 우아하고 장엄하면서 편안하다. 
건물 안에서도 전시 공간이 아닌 (통로라든지) 곳은 천창이거나 뚫려있거나 늘 바깥풍경과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같은 건물도 어느 쪽에서 들어가느냐에 따라 층이 조금씩 어긋나게
설계되어 있어 (반층~1개층) 미로 같기도 하고, 끊임없이 다양하다.
전시실 사이를 지나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LA의 전경이 다른 각도로 내려다 보이거나
열린 공간의 작은 휴식처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공해가 많다는 것이 1차적인 이유이지만, 지형이 어쩌구 저쩌구, LA는 스모그가 낄 수 밖에 없다고도 한다.
비갠 오후, 또는 비온 다음날이라면 꼭 게티 센터에 가 볼 것을 권한다. 
깨끗한 LA의 전혀 다른 풍경을 보게 될 테니...  

게티 뮤지엄은 처음에는 말리부에 있었다.  지금의 게티센터는 1997년 12월에 게티 뮤지엄은 Richard Meier
라는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현재의 산타모니카 언덕으로 이사했다. 원래의 말리부 게티 빌라는
(로만스타일 건축) 그리스, 로마 예술품 전시 위주의 분관으로 2006년 1월에 재개장한다. 
(원래는 2001년에 개장할 예정이었으나 동네가 시끄러워지고 차가 밀리는 것을 싫어한 말리부 주민들의
소송으로 공사가 중단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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