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phonse Mucha (1860-1939)

체코 화가, 장식화가. 모라비아 출생.  프라하의 미술학교 입시에 실패한 뒤 빈으로 나가 무대미술 공방(工房)에서 일하였고, 그 뒤 뮌헨에서 수업하다가 1888년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쥘리앵에서 공부하였다. 1894년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린 것이 크게 히트하여 명성을 떨쳤다. 사라와 계약한 6년 동안에 그린 포스터, 꽃과 여자의 화려한 무하 양식은 아르누보의 대명사가 되었다. 1904년 이후 몇 차례 미국으로 가서 그림도 그리고 교편도 잡았다. 1910년에는 조국으로 되돌아가, 18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면서 그린 대작 <슬라브서사시>를 완성하였다. 국장(國章)·우표·지폐도 디자인하였다.  --야후 백과사전--

사라 베르나르 공연 포스터. 무하는 Gismonda 석판화로 처음 유명해졌다.
나는 MEDEE 가 마음에 든다.

         

Gismonda, 1894, Poster (74.2 x 216 cm)      Medee, 1898, Lithograph (76 x 206 cm)


Dance, 1898, Decorative panel (38 x 60 cm)


Princess Hyacint, 1911

Moet & Chandon Cremant Imperial, 1899, Poster (23 x 60.8 cm)

무하 미술관 말고도 프라하의 여기저기에서 무하의 석판화를 전시하고 있다.
직접 본건 아니지만, <네개의 별> 연작 (1902) 이 좋다.
[저녁별, 달, 아침별, 북극별]

       

         

무하의 그림이 더 보고 싶다면 아래 사이트 추천!
http://www.artrenewal.org/asp/database/art.asp?aid=598&page=6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 한 면도 무하의 작품이다.


프라하 성> 성 비투스 대성당



프라하 성> 황금소로.  저기 파란집은 옛날엔 카프카의 작업실.

길쭘한 바츨라프 광장

구시가 광장의 얀후스 동상

구시가 광장과 만나는 지점의 첼레트나 거리. 광장 맞은편으로 보이는 건 구시청사 건물.

구시청사 종탑에서 내려다 봄

틴 성모 교회

멀리 언덕 위엔 프라하 성

까렐 다리의 해저물녁.
양 옆으로 성인들의 동상이 줄줄이 있는 다리. 프라하의 상징.

낮에도 저녁에도 복작복작하던데.... 이른 아침엔 이런 풍경을 볼 수도 있겠구나...  프라하 환상.


www.pragia.cz/en/tours.html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의 클래시컬 돈죠반니를 보고 싶었는데,
살짝 꼬여서 프라하 오페라 마리오네트 극장의 코믹하게 만든 돈죠반니를 보게 되었다. 어... 이게 아닌데....

프라하에서 데려온 친구. 요즘 열심히 춤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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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11-3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 연습 끝나면 공연 한 번 하나? ㅎㅎ

merced 2006-11-3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죠, 뭐. 신나는 노래 불러줘요. 그 노래에 맞춰~

좋은사람 2006-12-0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하,였구나. 뮈샤라고 읽고 있었는데.
공연을 강력히 원함~!
 

목요일 오후 4시.  빈의 명물 자허토르테를 맛보러 자허 카페에 가다.  



웨이터  can I take your order?
merced  a Cappuccino and 자허 토르테, please.
웨이터  (못알아듣고 고개를 갸우뚱 한다)
merced  (책에 한글로 그렇게 써져 있단 말이다!) I mean, your famous chocolate cake.
웨이터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Ah, Sacher Torte, sure.
merced  (Sacher Torte 발음은 [자허 토르테]와 하나도 안 비슷하다. 좌절 좌절...)



살구쨈이 들어가 달콤하고, 3주간 상하지 않는 초콜렛 케익.
달지 않은 휘핑 크림과 함께 먹는데, 진짜 맛있다.

자허토르테는 1832년 프란츠 자허가 고안한 것. 만드는 방법은 비밀리에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허의 아들과 데멜의 딸이 결혼했기 때문에 비법이 데멜에게 전해져 데멜에서도 자허토르테를 만들게 되었다. 화가 난 자허는 오리지널의 상표권을 얻기 위해 제소했다. 오랜 법정 투쟁 끝에 오리지널 상표권은 자허가 획득했지만, 각각 독자적으로 자허토르테는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원래의 자허토르테에는 원형의 초콜릿 봉인이, 데멜에서 만드는 자허토르테에는 삼각형의 봉인이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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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하우스

모차르트가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을 당시 살았던 낡은 집을 기념관으로 쓰고 있다. 악보, 초상화, 스케치, 편지 등을 전시하고 있고 홀로그램으로 당시 거리의 모습, 오페라 공연, 모차사람이 살았을 적의 집안의 모습(추측)을 구성하였다.  오디오 가이드로 전시물과 관련된 곡들의 제작 배경을, 모차르트와 주변인물들이 한 말들을 인용하여 재미있게 설명한다. 

그러니까, 레퀴엠 악보를 보면서 1분정도 곡을 듣고 "1791년 모차르트가 많이 아팠는데, 돈은 없었고, 잿빛 복장의 미지의 사나이를 통해 익명의 귀족의 죽은 아내를 위한 레퀴엠 작곡을 의뢰받아서, 작곡하다가 더 아파졌고 결국 레퀴엠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눈물이 쏟아지는 이 장엄한 레퀴엠은 어쩌면 모차르트가 스스로의 죽음을 예견하면서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 (는 귀여운 평까지)" 는 설명을 듣는다.

모차르트가 도박을 좋아했고, 그래서 맨날 빚에 쪼들렸고, 친구한테 돈빌려달라고 쓴 편지를 읊어주는데, 푸하하, 사실 볼거리는 별로 없지만 나름 재미있는 기념관이다.


미술사박물관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사이에 두고 미술사박물관에서 바라본 자연사 박물관.

 

미술사박물관 입구

소장하고 있는 작품만으로도 유럽 3대 미술관의 하나. 목요일은 밤9시까지 개관한다.
브뤼겔의 작품이 아주 많다. 만세!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Tower of Babel, 1563, Wood, H 114 cm, W 155 cm



Pieter Bruegel the Elder, Peasant Dance, 1568/69, Wood, H 114 cm, W 164 cm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Return of the Herd, 1565, Wood, H 117 cm, W 159 cm



Caravaggio,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06/07, Wood, H 90.5 cm, W 116 cm



Rembrandt, Large Self-portrait, 1652, Canvas, H 112 cm, W 61.5 cm



Johannes Vermeer van Delft, The Artist's Studio, c. 1665/66, Canvas, H 120 cm, W 100 cm



Raphael, Madonna in the Meadow, 1505 or 1506, Wood, H 113 cm, W 88.5 cm

미술관 자체도 매우 화려하다.


http://www.travelblog.org/Europe/Austria/Vienna/blog-68092.html 


http://www.tripadvisor.com/ShowUserReviewImages-g190454-d231985-r5330062-K_K_Hotel_Maria_Theresia-Vienna.html

화려한 아치 사이로,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이렇게 갑자기 클림트를 보게도 된다.
이집트를 소재로 한, 한면이 더 있는데 사진은 못찍었고 웹에서는 안 찾아진다.  

빈은 어딜가나 저택과 궁전이다. 살짝 질리고 부담스럽다.

 

금요일 오전,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빈 시내 한 가운데 있는   슈테판대성당



모자이크 지붕이 빈의 상징. 8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빈의 얼굴. 12세기 중엽 로마네스크 양식의 작은 교회가 건설된 것이 시초이며, 14세기에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4세에 의해 고딕 양식의 대교회로 개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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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에 들르게 되는 분께 꼭 권하고 싶은 것은 지하 카타콤베 투어. 반드시 정해진 시간에 성당 가이드와 함께 들어가야 하는데, 기다리면서 궁시렁거린 것이 민망하게도, 안에서 길을 잃으면 괴롭겠다.

중세에는 평민들의 시체를 차곡차곡 쌓고 화장을 했단다. 시체 태우는 냄새가 워낙 지독해서 성당에 향을 피우게 되었다 한다. 그게 성당에 꽤 돈벌이가 되니까 지하 화장소를 2층으로 만들었단다. 그랬더니 냄새가 너무 심해서 미사를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카타콤베는 폐쇄되었지만, 합스부르크 왕가의 장례는 계속하였고, 지금도 큰신부님의 유골은 여기에 모신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장례 방식 :

공식적인 의식이 끝나면 심장은 아우구스티너 교회, 심장 이회의 내장은 슈테판 대성당, 유골은 카푸치너 교회의 지하 납골당에 안치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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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카타콤베에 들어가면  우선 아담한 채플을 지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관과 내장이 보관된 방을 들러, 미로같은 화장터와 해골을 보게 된다. 으스스하고 냄새도 역하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관
www.csua.berkeley.edu/~kahogan/Vienna/index.html

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을 화장한 흔적. 눈앞에서 이렇게 사람 뼈가 쌓인 건 처음이다. 무서버라.
http://www.jimtardio.com/austria-vienna-catacombs-big.html



슈테판 성당 남탑에서 바라본 빈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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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11-21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아악! 나한테 넘길 미술관 도록은 없는 것이냐? -_-

merced 2006-11-2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록 한권밖에 안 사왔지롱~ 직접 가요. 클림트도 보고 싶다며, 친척도 있다면서요 (그러니까 돈이 없다는 핑게는 안통하고) 언니 맘만 먹으면 되죠.
 

수요일 오후 2시 남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가까운 호텔을 잡을 생각이었는데, 역에 내리자마자 "한국분이시죠?"로 시작해서 호객하는 한인민박에 묵기로 한다.
(친구가 알려준 유럽여행의 팁: 성수기가 아니라면 호텔 예약 안하고 대충 발에 채이는 가까운 호텔에 들어가도 된다. 미리 예약하는 것보다 가격이 더 비싸지도 않고, 주소들고 어딘지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 드는 도시라면 하루 더 있어도 되고 일정이 유연해진다.)  
역시 그 민박은 불편했지만 어쨌거나 숙박비 예산을 120 유로는 아낀 셈이니, 대신 미술관 기프트샵에서 질러댔다.

트램을 타고 빈 시내 한바퀴 돌고 (30분) 란트만 카페에서 아펠스트루델 (바삭거리지 않는 사과파이) 을 먹고, 바람불고 흐린 늦오후다, 옷을 여미고 길거리를 배회하다.



암호프 주변의 길거리



보그너가세 9번지 엥겔약국. 빈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유겐트슈틸(청년양식) 프레스코화로 약국 정면을 장식했다.



가장 번화한 케른트너 거리, 길거리 악사



스테판 광장 북쪽의 뒷골목 조넨펠스가세 (아름다운 등불의 길)
저 집의 저 램프가 이 길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c) moxie design studios

저녁을 먹고 시립공원에 가서 빈의 상징인 요한 스트라우스상을 눈도장을 찍고,



Kursalon 에서 모차르트와 스트라우스의 여러 곡을 연주하는 실내악을 듣다.
경쾌한 왈츠와 <매직 플루트> 오페라 듀엣과 아리아 레퍼토리는 기분을 밝게 한다.
올해 빈에서는 모차르트 250주년을 기념하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모차르트 연주회와 행사를 열고 있다.




 

쇤부른 궁전 



쇤부른궁전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기념비 중 하나로, 원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황제 프란츠 요셉(1840~1916 통치)이 1830년 이 궁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마지막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1918년에는 신 공화국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궁전과 정원은 빈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궁전 내부에는 모두 1,441개의 방이 있으며, 그 중 약 3%인 45개의 방만이 공개되고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화려한 아파트와 그녀의 방, 침실, 그리고 6세의 어린 모짜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위해 파아노를 연주했던 거울의 방, 프란츠 요셉의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침실 등이 유명하다.
http://kr.ks.yahoo.com/service/ques_reply/ques_view.html?dnum=IAF&qnum=4047005 에서 발췌함.
(사진)
http://www.travelblog.org/Europe/Austria/Vienna/blog-68092.html

목요일 아침, 쇤부른 궁전을 관람하다.
집무실, 서재, 차마시는 방, 아침식사 방, 파우더룸, 축하의 방, 사냥의 방 등등 40개의 방을 보았다.  
음, 정말 화려하군, 집무실은 의외로 작군, 왕도 일이 많고 바빴군, 집안에서 옮겨다니기도 참 멀군, 이 방은 예쁜군 등등의 생각이 들었지만 별 감흥은 없다.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지음. 루이 14세의 미움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여 군인이 되었고 예술을 사랑한 오이겐공의 여름 별궁(하궁 1716년에 지어짐) 연회장 상궁 (1723년) 이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오이겐 공 사망후 합스부르크가에서 매입하여 미술 수집품을 보관하는 데 썼다.  
현재 하궁은 중세-바로크 미술관, 상궁은 19-20세기 미술관이다.

근처 식당에서 사슴고기 슈니쩰을 먹고 (사슴고기가 제철이므로... 슈니쩰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상궁 관람.


The Kiss, 1907-08, Oil, silver- and gold-leaf on canvas, 180 x 180 cm

사실은 지금까지 달력과 도판에서 본 클림트의 그림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생각했었는데, 아아, 숨이 턱 막힌다. 오래오래 그 앞에 서있었다. 모네와 고호랑 동류다, 도판과 실물의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고호 그림의 떡칠처럼 [키스]의 채색은 입체적이다. 동그란 금빛 물감 무늬는 부조처럼 돋아있다. 금박의 남자 옷도, 황토색 바탕에서도 금박도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붉고 푸른 원색의 무늬의 여자옷도 마찬가지다. 동글동글 높고 낮은 입체감은 꽃밭에 서 있는 것 같다. 아와는 반대로 핏줄이 드러날 듯 하얀 피부는 지극히 평면적이고 화려한 옷과 대조를 이루며 지독하게 창백하다. 숨막이게 아름다운, 에로틱한 그림.  

클림트에 반하고 미술관의 마법에 걸려서 나오는 길에 이것저것 사버렸다. 

     

    


Poppy Field, 1907, Oil on canvas, 110 x 110 cm


Fritza Riedler, 1906, Oil on canvas, 152 x 134 cm

유디트, 아담과 이브, 물뱀도 보고싶었는데, 어딜 갔을까.


Franz Eybl, 책읽는 소녀, 1850, 53 X 41 cm


Johann Baptist Reiter, 책읽는 소년, 1861, 60 X 48 cm

 

Egon Schiele, The Family, 1918, Oil on canvas, 152.5 x 162.5 cm

Egon Schiele, Death and the Maiden, 1915/16, Oil on canvas, 150 x 180 cm

    Richard Gerstl, Laughing Self-Portrait,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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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11-1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클림트.. 부럽다. 흑흑.
 

엘베강(江) 연안의 마이센과 피르나의 중간,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위치하여, 엘베강에 의해서 좌안(左岸)의 구시가(舊市街)와 우안의 신시가로 나뉘며, 7개의 교량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1711∼1722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궁전을 비롯하여 왕성(王城)·드레스덴미술관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고, 드레스덴 교향악단·국민극장 등이 있어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

문화유산이 많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인데, 군사시설이 하나도 없었는데, 2차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다더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받고 안타까워 했단다, 그걸 얼추 다 복원했다더라 --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궁금했다.  



엘베강의 유람선. 강 건너에서 본 <브륄의 테라스> 전경. 18세기에는 브륄 백작의 사유 정원지였고 지금은 미술관과 구의사당이 있고, 드레스덴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엘베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책로이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들. 정면, 왼쪽, 오른쪽.  <유럽의 발코니>라는 별명이 당연하지 싶다. 





드레스덴의 곳곳에는 1945년 포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부서지지 않고 남은 부분들은 까맣게 재가 내려앉아있가 하면 복원한 부분들은, 세월의 때가 전혀 묻지 않아 눈부시게 하얗다. 
18세기에 사암으로 지어진 이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완전히 무너졌는데, 왼쪽 입구의 검은 벽돌 기둥이 그나마 남은 부분이다. 그리고 그 잔해에서 건져 쓸 수 있는 모든 조각을 그러모아 재건축에 사용했다. 

  



Frauenkirche 교회 내부
칠이 밝고 천장의 돔과 모든 창문으로 햇빛이 한가득 들어 참 밝고 환한 교회이다. 오르간 연주를 들으러 예배에 참석했다.   



Zwinger 궁전. 바로크 양식의 궁전 건물을 벽으로 두르고 조성한 가운데 정원이 독특하다.



15세기 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Royal Palace. 동화책이나, 유럽 다른 곳에서 보았던 "성"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모습이다. 안내서에서 "왕궁"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저택이라 생각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색슨 왕가의 보물 저장실 Green Vault 는 시간별로 예약해서 입장해야 하고, 그래서 그 소장품 일부만 따로 공개한 특별전시를 보았는데 금, 은, 산호, 다이아몬드를 세공한 화려한 집기들에 대해 "미쳤군"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제대로 감상한 것 같지 않다.  

 

Theaterplatz 에서 본 Hofkirche 성당.
로만 양식이란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이 성당이 참 좋다. 유럽에서 유명하다는 성당들이라 하면 대체로 안팎으로 뾰족쬬족하고 어두침침한 고딕 양식들만 보았는데, 이 성당의 바깥은 적당이 화려하되 질리도록 겹겹이 장식하지 않았고, 보는 각도마다 느낌이 다르고 변화가 많은가 하면 단아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갸름함과 안정된 무게감이 참 조화를 잘 이루었구나 생각한다. 





성당내부는 비교적 장식이 적은 조용한 흰 벽이다. 
성당에서 화려하고 육중한 성화 대신 이렇게 소박하고 현실적으로 그린 예수 그림을 본적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현대미술로 제단을 삼은 작은 채플들이 인상적이다.



1973년에 만들어진 피에타.  드레스덴의 조각가 Friedrich Press 작품.
Hofkirche 성당 뒤쪽 이 피에타가 놓인 채플은 후세에 전쟁을 경고하고 전쟁의 모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메모리얼이다. 



중앙제단 왼쪽의 작은 목조 제단 채플.
설명이 독어로만 되어 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2차 대전 폭격의 직접적인 사상자인 20대 청년 일곱 명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이 심하게 흔들려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절규하고 무너지고 있는 상처입은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제단을 보고 있자면 연합군의 폭격이 무고한 드레스덴 시민들에게 참 몹쓸 상처를 남겼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는 것이다. 물론, 군사시설 하나 없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적이 이렇게 많은 곳을 침공한 미군도 참 못됐지만, 이 일로 이렇게 슬픈 독일 사람들은 그들이 죽이고 고문한 더 많은 무고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어떤 상처를 입었을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늦은 오후, 아우구스투스 다리 건너편에서 보는 Hofkirche 성당은 느낌이 또 다르다. 



국립오페라 극장 Semper 오페라 하우스. 
1838~41년에 지어졌고 화재로 1871~78년에 이탈리안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9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1945년에 완전히 무너진 걸 1985년에 복원했다.
(제발... 누구 이 건축 양식들의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2만5천개 도자기 타일. <왕자들의 행진>



아침 골목길



이런 표지판을 여럿 보았다. 어쩌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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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d 2006-11-0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반갑습니다.^^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은 길이길이 욕먹을 일이지만, 당시 독일의 광기에서 드레스덴 시민들도 자유롭지 않았을 테고 그들 역시 격리되고 죽어나가는 유태인들에게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드레스덴에서 징발되었거나 지원해간 군인들 역시 누군가를 처참하게 죽이는 데 일조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독일군이 저지른 게 있는데 그정도 당한 거 가지고 뭘... 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는 건 아시겠지요. 예술의 힘은 강합니다. 그 조각을 보면서 드레스덴이 입은 상처의 아픔과 폭격에 대한 분노가 확 꽂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반딧불의 묘>를 본 후의 답답함이랄까요, 죄없는 민간인들이었지만 그들의 친척과 이웃이 행한 일도 많은 이들에게 같은 또는 더 큰 상처를 입혔음을 생각해보았기를, 자신들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merced 2006-11-0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네...? 제 말의 어디가 ["죄는 다 죄지." 라는 50보, 100보식의 근본주의적 잣대]인가요? 유태인 학살을 방조했다고 해서 드레스덴이 폭격을 맞아도 된다는 논리, 아닌데요...
드레스덴 폭격은 끔찍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태인 학살도 끔찍한 일이고, 바람구두님의 말대로 "둘다 저항할 힘이 없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쪽만 피해자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911로 상처입은 사람들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보고 뉴욕의 민간인들이 너무 안되서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타당하다고 생각한 미국인이 없기를 바라고,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비난하고 그로 인해 다친 일본인 민간인들을 안스러워 하되 일본인들의 상처만 부각된다면 저는 불편합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에트루리아의 양치기와 농민들이 살던 역사 깊은 도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어 11세기부터 학문적 예술적으로 번성한 도시, 북이탈리아의 유서깊은 상업의 중심지, 유럽 최초로 농노제를 폐지하였고 12-13세기 강력한 코뮌이었던 도시  -- 그래서 크고 화려할 줄 알았더니 뜻밖에 소박하고 아담하고 정겹다. 



















중세, 고딕,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고루 있다지만 꾸밈없는 중세풍이 지배적이다. 투박한 갈색 벽돌로 지은 성과 성당, 빨강 주황 황토색 건물들, 어디에나 있는 포르티코... 까맣게 때가 앉은 기둥들, 비바람에 빛바랜  벽돌들이 오랜 세월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차도 다니고 21세의 사람들이 살고 있긴 한데,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아주 옛날의 유럽에 와 있는 것 같다.



포르티코 : 기둥으로 된 회랑. 중세에 들어 다른 도시에서는 포르티코가 점점 사라졌는데, 볼로냐에서는 반대로 사유지의 일부를 포르티코로 개조하여 마을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한낮에 지나가다가도 앉아서 쉬거나 수다떨고 테이블을 놓으면 차도 마시고 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한다) 



도시 중심가의 커다란 광장들 외에도 작은 길들 사이사이 공간이 트이며 작은 광장들이 있다. 산토 스테파노 교회 앞.



포테스타 궁전의 마조레 광장에 면한 포르티코.



포르티코 아래 카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광장을 바라봄. 
베네치아 페이퍼에서도 멋지다고 말한 적 있는 할아버지 가르송.



14세기 말부터 아직도 공사가 끝나지 않은 산 페트로니오 성당.  미완성이지만 야코포의 걸작 조각상들이 있는 내부가 웅대하고 아름답다는데, 지금 하고 있는 공사는 입구쪽을 막고 있어서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



마조레 광장 왼쪽의 시청 건물 코무날레 궁전.



코무날레 궁전 안쪽



2층의 시청사무실로 가는 입구. 한층 더 올라가면 시립미술관이다. 



미술관 간다고 잘못 시청사무실쪽으로 들어가서 우연히 보게 된 옛날의 의회실의 천장.
1677년에 만든 만큼 화려하다.  빨간 테피스트리를 걸고 붉은 색조로 장식했다고 Red Hall 이라 부른다.



코무날레 궁전의 왼쪽. 저 작은 입구로 들어가면...



옛날 천장과 기둥을 그대로 두고 바닥은 투명 플라스틱 -- 현대적으로 꾸민 서점,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핸드폰 가게 등이 있다.



더 안쪽은 도서관. 도서관의 반대쪽 입구는 바로 시청 사무실과 미술관 쪽으로 나 있다. 

옛날 건물들을 그대로 살려 사무실로, 관공서로, 상점으로 쓰고 있는데, 내부의 커다란 기둥과 두꺼운 벽들을 그대로 둔 채로 (오늘날과 건축 방식라 없애면 무너질 것이다) 필요한 공간을 새롭게 분할하고, 둥글고 큰 천장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더하고, 전기와 상하수도 배관, 통풍 장치들을 들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조레 광장 입구. 광장 곳곳에는 항상 (저녁에도)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철푸덕 앉아 있다.
왼쪽은 볼로냐의 상징, 시민들이 "거인"이라고 부르는 넵튠 대분수.  바다에 면하지 않은 볼로냐와 바다의 신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지 모르겠다.



넵튠상 아래 분수의 사면으로 반인반어 정령의 청동상이 있다.  그런데 물고기 꼬리 하반신이 인어처럼 하나로 된 게 아니라 사람 다리처럼 두 개이고 다른 물고기를 타고 있다.  우하하하! 이렇게 광장에 떡하니 저런 야한 자세로...

볼로냐 시내 외곽의 산루카 성당에 갔다.  마조레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서 내리면, 언덕 위의 성당에 이르는 2km 회랑을 걷게 된다.





마을 아래쪽과 언덕위의 성당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긴 한데, 주중에는 하도 드문드문 다녀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주중 오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산책, 조깅 코스인 것도 같다. 가끔씩 뒤돌아보면 볼로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점점 저~아래 있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올라가는 것도 좋았다.  



회랑을 1/3쯤 올라가서 돌아다보다.



계속 올라간다. 헥헥.





2/3쯤 올라와서 내려다봄. 여기서부터 이탈리아 북쪽 국경에 이르까지 펼쳐진 롬바르디아 평원. 그래서 시야는 산자락 하나 없이 평평한 대지를 지나 멀리 눈덮인 알프스 산맥에까지 닿는다.



회랑길은 중간중간 휘어지고 그 구간마다 각도록 달리하는데,  두어 곳 많이 숨이차고 힘들다 싶을 때가 있다.  마지막 급경사 계단를 올라와 길이 확 꺾이면 다 왔다.  산루카 성당 내부는 작지만 흰색조로 화려하고 돔 천장을 통해 빛이 들어 환하다.

볼로냐 시립고고학미술관

   



중정이 아름답고, 에트투리아, 그리스, 로마, 고대이집트의 유품이 있다.  에트루리아 유품 전시실은, 그 양이 하도 많아서, 뮤지엄이라기보다는 창고 같다.  물론 웹사이트에 있을 줄 알았던 사진은 없다.  (앞으로는 유럽 여행 가거든 플래시를 안 터뜨리는 한 뮤지엄 안에서도 사진을 찍어야겠다)

   에트루리아 시대 도기, 대체로 이런데...

   이건 좀 특이하다.

   에트루리아 시대 B.C 350 의 묘비

   로마 시대의 향유병.  역시 특이해서...

   

금색, 황토색, 까만색은 자주 봤어도 이런 날파랑은 처음 본다.



마지막으로, 골목의 야채가게.

한국에서 파스타 식당에 가면 리조또나 라자냐가 느끼해서 거의 안먹었는데,  이탈리아에 가서 먹으니 다 맛있다.  미식가의 고장이라 하는 볼로냐의 음식은 고기와 치즈가 담뿍 들었다.  기름지지만 느끼하지는 않다. (쓰고보니 난처하군...) 그러고보니 파스타의 미트소스를 볼로네제라 하는데, 그게 "볼로냐식"이 아닐까 추측한다. 

신기한 것은, 밥을 참 오래들 먹는다.  거래처의 저녁식사에 갔는데, 8시부터 시작해서 빵과 에피타이저, 샐러드, 수프, 프리모(첫째 음식으로 주로 파스타류), 세콘도(고기나 생선같은 좀 더 무거운 요리), 디저트 (케익, 과일, 술이 들어간 커피가 차례차례) 12시까지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이게 대단한 만찬이 아니라 보통보다 조금만 더 과하게 차린 상이고, 뭘 먹어도 두세시간은 먹는다 한다.  7시 전에는 문을 안열거나 열어도 8시부터나 본요리 주문을 받는 식당들도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낙천적이고 먹고 요리하는 걸 즐긴다더니, 저녁 시간은 몽땅 먹는 데 쓰나보다, 먹는 게 정말 즐가운가보다... 햇빛도 좋더만, 그래서 인생이 즐가운가보다...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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