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오후 2시 남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가까운 호텔을 잡을 생각이었는데, 역에 내리자마자 "한국분이시죠?"로 시작해서 호객하는 한인민박에 묵기로 한다.
(친구가 알려준 유럽여행의 팁: 성수기가 아니라면 호텔 예약 안하고 대충 발에 채이는 가까운 호텔에 들어가도 된다. 미리 예약하는 것보다 가격이 더 비싸지도 않고, 주소들고 어딘지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 드는 도시라면 하루 더 있어도 되고 일정이 유연해진다.)  
역시 그 민박은 불편했지만 어쨌거나 숙박비 예산을 120 유로는 아낀 셈이니, 대신 미술관 기프트샵에서 질러댔다.

트램을 타고 빈 시내 한바퀴 돌고 (30분) 란트만 카페에서 아펠스트루델 (바삭거리지 않는 사과파이) 을 먹고, 바람불고 흐린 늦오후다, 옷을 여미고 길거리를 배회하다.



암호프 주변의 길거리



보그너가세 9번지 엥겔약국. 빈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유겐트슈틸(청년양식) 프레스코화로 약국 정면을 장식했다.



가장 번화한 케른트너 거리, 길거리 악사



스테판 광장 북쪽의 뒷골목 조넨펠스가세 (아름다운 등불의 길)
저 집의 저 램프가 이 길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


(c) moxie design studios

저녁을 먹고 시립공원에 가서 빈의 상징인 요한 스트라우스상을 눈도장을 찍고,



Kursalon 에서 모차르트와 스트라우스의 여러 곡을 연주하는 실내악을 듣다.
경쾌한 왈츠와 <매직 플루트> 오페라 듀엣과 아리아 레퍼토리는 기분을 밝게 한다.
올해 빈에서는 모차르트 250주년을 기념하고 있어서 여기저기서 모차르트 연주회와 행사를 열고 있다.




 

쇤부른 궁전 



쇤부른궁전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적 기념비 중 하나로, 원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별궁으로 사용되었다.
황제 프란츠 요셉(1840~1916 통치)이 1830년 이 궁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마지막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1918년에는 신 공화국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궁전과 정원은 빈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궁전 내부에는 모두 1,441개의 방이 있으며, 그 중 약 3%인 45개의 방만이 공개되고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화려한 아파트와 그녀의 방, 침실, 그리고 6세의 어린 모짜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위해 파아노를 연주했던 거울의 방, 프란츠 요셉의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침실 등이 유명하다.
http://kr.ks.yahoo.com/service/ques_reply/ques_view.html?dnum=IAF&qnum=4047005 에서 발췌함.
(사진)
http://www.travelblog.org/Europe/Austria/Vienna/blog-68092.html

목요일 아침, 쇤부른 궁전을 관람하다.
집무실, 서재, 차마시는 방, 아침식사 방, 파우더룸, 축하의 방, 사냥의 방 등등 40개의 방을 보았다.  
음, 정말 화려하군, 집무실은 의외로 작군, 왕도 일이 많고 바빴군, 집안에서 옮겨다니기도 참 멀군, 이 방은 예쁜군 등등의 생각이 들었지만 별 감흥은 없다.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 바로크 건축의 거장 힐데브란트가 지음. 루이 14세의 미움을 받아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여 군인이 되었고 예술을 사랑한 오이겐공의 여름 별궁(하궁 1716년에 지어짐) 연회장 상궁 (1723년) 이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오이겐 공 사망후 합스부르크가에서 매입하여 미술 수집품을 보관하는 데 썼다.  
현재 하궁은 중세-바로크 미술관, 상궁은 19-20세기 미술관이다.

근처 식당에서 사슴고기 슈니쩰을 먹고 (사슴고기가 제철이므로... 슈니쩰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상궁 관람.


The Kiss, 1907-08, Oil, silver- and gold-leaf on canvas, 180 x 180 cm

사실은 지금까지 달력과 도판에서 본 클림트의 그림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생각했었는데, 아아, 숨이 턱 막힌다. 오래오래 그 앞에 서있었다. 모네와 고호랑 동류다, 도판과 실물의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고호 그림의 떡칠처럼 [키스]의 채색은 입체적이다. 동그란 금빛 물감 무늬는 부조처럼 돋아있다. 금박의 남자 옷도, 황토색 바탕에서도 금박도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붉고 푸른 원색의 무늬의 여자옷도 마찬가지다. 동글동글 높고 낮은 입체감은 꽃밭에 서 있는 것 같다. 아와는 반대로 핏줄이 드러날 듯 하얀 피부는 지극히 평면적이고 화려한 옷과 대조를 이루며 지독하게 창백하다. 숨막이게 아름다운, 에로틱한 그림.  

클림트에 반하고 미술관의 마법에 걸려서 나오는 길에 이것저것 사버렸다. 

     

    


Poppy Field, 1907, Oil on canvas, 110 x 110 cm


Fritza Riedler, 1906, Oil on canvas, 152 x 134 cm

유디트, 아담과 이브, 물뱀도 보고싶었는데, 어딜 갔을까.


Franz Eybl, 책읽는 소녀, 1850, 53 X 41 cm


Johann Baptist Reiter, 책읽는 소년, 1861, 60 X 48 cm

 

Egon Schiele, The Family, 1918, Oil on canvas, 152.5 x 162.5 cm

Egon Schiele, Death and the Maiden, 1915/16, Oil on canvas, 150 x 180 cm

    Richard Gerstl, Laughing Self-Portrait,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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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11-1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클림트.. 부럽다. 흑흑.
 

엘베강(江) 연안의 마이센과 피르나의 중간, 베를린 남쪽 약 189km 지점에 위치하여, 엘베강에 의해서 좌안(左岸)의 구시가(舊市街)와 우안의 신시가로 나뉘며, 7개의 교량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1711∼1722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궁전을 비롯하여 왕성(王城)·드레스덴미술관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고, 드레스덴 교향악단·국민극장 등이 있어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

문화유산이 많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인데, 군사시설이 하나도 없었는데, 2차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다더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충격받고 안타까워 했단다, 그걸 얼추 다 복원했다더라 -- 얼마나 아름다운 곳일까 궁금했다.  



엘베강의 유람선. 강 건너에서 본 <브륄의 테라스> 전경. 18세기에는 브륄 백작의 사유 정원지였고 지금은 미술관과 구의사당이 있고, 드레스덴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엘베강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산책로이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들. 정면, 왼쪽, 오른쪽.  <유럽의 발코니>라는 별명이 당연하지 싶다. 





드레스덴의 곳곳에는 1945년 포화의 흔적이 역력하다. 부서지지 않고 남은 부분들은 까맣게 재가 내려앉아있가 하면 복원한 부분들은, 세월의 때가 전혀 묻지 않아 눈부시게 하얗다. 
18세기에 사암으로 지어진 이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완전히 무너졌는데, 왼쪽 입구의 검은 벽돌 기둥이 그나마 남은 부분이다. 그리고 그 잔해에서 건져 쓸 수 있는 모든 조각을 그러모아 재건축에 사용했다. 

  



Frauenkirche 교회 내부
칠이 밝고 천장의 돔과 모든 창문으로 햇빛이 한가득 들어 참 밝고 환한 교회이다. 오르간 연주를 들으러 예배에 참석했다.   



Zwinger 궁전. 바로크 양식의 궁전 건물을 벽으로 두르고 조성한 가운데 정원이 독특하다.



15세기 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Royal Palace. 동화책이나, 유럽 다른 곳에서 보았던 "성"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모습이다. 안내서에서 "왕궁"이라고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누군가의 저택이라 생각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색슨 왕가의 보물 저장실 Green Vault 는 시간별로 예약해서 입장해야 하고, 그래서 그 소장품 일부만 따로 공개한 특별전시를 보았는데 금, 은, 산호, 다이아몬드를 세공한 화려한 집기들에 대해 "미쳤군"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그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제대로 감상한 것 같지 않다.  

 

Theaterplatz 에서 본 Hofkirche 성당.
로만 양식이란다 (뭐가 어떻게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이 성당이 참 좋다. 유럽에서 유명하다는 성당들이라 하면 대체로 안팎으로 뾰족쬬족하고 어두침침한 고딕 양식들만 보았는데, 이 성당의 바깥은 적당이 화려하되 질리도록 겹겹이 장식하지 않았고, 보는 각도마다 느낌이 다르고 변화가 많은가 하면 단아하고 차분한 인상이다. 갸름함과 안정된 무게감이 참 조화를 잘 이루었구나 생각한다. 





성당내부는 비교적 장식이 적은 조용한 흰 벽이다. 
성당에서 화려하고 육중한 성화 대신 이렇게 소박하고 현실적으로 그린 예수 그림을 본적이 있었던가....
무엇보다 현대미술로 제단을 삼은 작은 채플들이 인상적이다.



1973년에 만들어진 피에타.  드레스덴의 조각가 Friedrich Press 작품.
Hofkirche 성당 뒤쪽 이 피에타가 놓인 채플은 후세에 전쟁을 경고하고 전쟁의 모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메모리얼이다. 



중앙제단 왼쪽의 작은 목조 제단 채플.
설명이 독어로만 되어 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2차 대전 폭격의 직접적인 사상자인 20대 청년 일곱 명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이 심하게 흔들려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절규하고 무너지고 있는 상처입은 사람들을 표현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제단을 보고 있자면 연합군의 폭격이 무고한 드레스덴 시민들에게 참 몹쓸 상처를 남겼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는 것이다. 물론, 군사시설 하나 없고 보존해야 할 문화유적이 이렇게 많은 곳을 침공한 미군도 참 못됐지만, 이 일로 이렇게 슬픈 독일 사람들은 그들이 죽이고 고문한 더 많은 무고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어떤 상처를 입었을지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늦은 오후, 아우구스투스 다리 건너편에서 보는 Hofkirche 성당은 느낌이 또 다르다. 



국립오페라 극장 Semper 오페라 하우스. 
1838~41년에 지어졌고 화재로 1871~78년에 이탈리안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19세기의 가장 아름다운 건물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1945년에 완전히 무너진 걸 1985년에 복원했다.
(제발... 누구 이 건축 양식들의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





2만5천개 도자기 타일. <왕자들의 행진>



아침 골목길



이런 표지판을 여럿 보았다. 어쩌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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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ed 2006-11-0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반갑습니다.^^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은 길이길이 욕먹을 일이지만, 당시 독일의 광기에서 드레스덴 시민들도 자유롭지 않았을 테고 그들 역시 격리되고 죽어나가는 유태인들에게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드레스덴에서 징발되었거나 지원해간 군인들 역시 누군가를 처참하게 죽이는 데 일조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독일군이 저지른 게 있는데 그정도 당한 거 가지고 뭘... 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는 건 아시겠지요. 예술의 힘은 강합니다. 그 조각을 보면서 드레스덴이 입은 상처의 아픔과 폭격에 대한 분노가 확 꽂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반딧불의 묘>를 본 후의 답답함이랄까요, 죄없는 민간인들이었지만 그들의 친척과 이웃이 행한 일도 많은 이들에게 같은 또는 더 큰 상처를 입혔음을 생각해보았기를, 자신들만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merced 2006-11-03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네...? 제 말의 어디가 ["죄는 다 죄지." 라는 50보, 100보식의 근본주의적 잣대]인가요? 유태인 학살을 방조했다고 해서 드레스덴이 폭격을 맞아도 된다는 논리, 아닌데요...
드레스덴 폭격은 끔찍한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태인 학살도 끔찍한 일이고, 바람구두님의 말대로 "둘다 저항할 힘이 없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쪽만 피해자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지요.
911로 상처입은 사람들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을 보고 뉴욕의 민간인들이 너무 안되서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타당하다고 생각한 미국인이 없기를 바라고,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을 비난하고 그로 인해 다친 일본인 민간인들을 안스러워 하되 일본인들의 상처만 부각된다면 저는 불편합니다.
 

기원전 6세기부터 에트루리아의 양치기와 농민들이 살던 역사 깊은 도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어 11세기부터 학문적 예술적으로 번성한 도시, 북이탈리아의 유서깊은 상업의 중심지, 유럽 최초로 농노제를 폐지하였고 12-13세기 강력한 코뮌이었던 도시  -- 그래서 크고 화려할 줄 알았더니 뜻밖에 소박하고 아담하고 정겹다. 



















중세, 고딕,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고루 있다지만 꾸밈없는 중세풍이 지배적이다. 투박한 갈색 벽돌로 지은 성과 성당, 빨강 주황 황토색 건물들, 어디에나 있는 포르티코... 까맣게 때가 앉은 기둥들, 비바람에 빛바랜  벽돌들이 오랜 세월을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차도 다니고 21세의 사람들이 살고 있긴 한데,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아주 옛날의 유럽에 와 있는 것 같다.



포르티코 : 기둥으로 된 회랑. 중세에 들어 다른 도시에서는 포르티코가 점점 사라졌는데, 볼로냐에서는 반대로 사유지의 일부를 포르티코로 개조하여 마을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한낮에 지나가다가도 앉아서 쉬거나 수다떨고 테이블을 놓으면 차도 마시고 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한다) 



도시 중심가의 커다란 광장들 외에도 작은 길들 사이사이 공간이 트이며 작은 광장들이 있다. 산토 스테파노 교회 앞.



포테스타 궁전의 마조레 광장에 면한 포르티코.



포르티코 아래 카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광장을 바라봄. 
베네치아 페이퍼에서도 멋지다고 말한 적 있는 할아버지 가르송.



14세기 말부터 아직도 공사가 끝나지 않은 산 페트로니오 성당.  미완성이지만 야코포의 걸작 조각상들이 있는 내부가 웅대하고 아름답다는데, 지금 하고 있는 공사는 입구쪽을 막고 있어서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



마조레 광장 왼쪽의 시청 건물 코무날레 궁전.



코무날레 궁전 안쪽



2층의 시청사무실로 가는 입구. 한층 더 올라가면 시립미술관이다. 



미술관 간다고 잘못 시청사무실쪽으로 들어가서 우연히 보게 된 옛날의 의회실의 천장.
1677년에 만든 만큼 화려하다.  빨간 테피스트리를 걸고 붉은 색조로 장식했다고 Red Hall 이라 부른다.



코무날레 궁전의 왼쪽. 저 작은 입구로 들어가면...



옛날 천장과 기둥을 그대로 두고 바닥은 투명 플라스틱 -- 현대적으로 꾸민 서점,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핸드폰 가게 등이 있다.



더 안쪽은 도서관. 도서관의 반대쪽 입구는 바로 시청 사무실과 미술관 쪽으로 나 있다. 

옛날 건물들을 그대로 살려 사무실로, 관공서로, 상점으로 쓰고 있는데, 내부의 커다란 기둥과 두꺼운 벽들을 그대로 둔 채로 (오늘날과 건축 방식라 없애면 무너질 것이다) 필요한 공간을 새롭게 분할하고, 둥글고 큰 천장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현대적인 인테리어를 더하고, 전기와 상하수도 배관, 통풍 장치들을 들이는 것 자체가 대단한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조레 광장 입구. 광장 곳곳에는 항상 (저녁에도)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철푸덕 앉아 있다.
왼쪽은 볼로냐의 상징, 시민들이 "거인"이라고 부르는 넵튠 대분수.  바다에 면하지 않은 볼로냐와 바다의 신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지 모르겠다.



넵튠상 아래 분수의 사면으로 반인반어 정령의 청동상이 있다.  그런데 물고기 꼬리 하반신이 인어처럼 하나로 된 게 아니라 사람 다리처럼 두 개이고 다른 물고기를 타고 있다.  우하하하! 이렇게 광장에 떡하니 저런 야한 자세로...

볼로냐 시내 외곽의 산루카 성당에 갔다.  마조레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쯤 가서 내리면, 언덕 위의 성당에 이르는 2km 회랑을 걷게 된다.





마을 아래쪽과 언덕위의 성당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긴 한데, 주중에는 하도 드문드문 다녀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주중 오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산책, 조깅 코스인 것도 같다. 가끔씩 뒤돌아보면 볼로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며 점점 저~아래 있다. 그렇게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올라가는 것도 좋았다.  



회랑을 1/3쯤 올라가서 돌아다보다.



계속 올라간다. 헥헥.





2/3쯤 올라와서 내려다봄. 여기서부터 이탈리아 북쪽 국경에 이르까지 펼쳐진 롬바르디아 평원. 그래서 시야는 산자락 하나 없이 평평한 대지를 지나 멀리 눈덮인 알프스 산맥에까지 닿는다.



회랑길은 중간중간 휘어지고 그 구간마다 각도록 달리하는데,  두어 곳 많이 숨이차고 힘들다 싶을 때가 있다.  마지막 급경사 계단를 올라와 길이 확 꺾이면 다 왔다.  산루카 성당 내부는 작지만 흰색조로 화려하고 돔 천장을 통해 빛이 들어 환하다.

볼로냐 시립고고학미술관

   



중정이 아름답고, 에트투리아, 그리스, 로마, 고대이집트의 유품이 있다.  에트루리아 유품 전시실은, 그 양이 하도 많아서, 뮤지엄이라기보다는 창고 같다.  물론 웹사이트에 있을 줄 알았던 사진은 없다.  (앞으로는 유럽 여행 가거든 플래시를 안 터뜨리는 한 뮤지엄 안에서도 사진을 찍어야겠다)

   에트루리아 시대 도기, 대체로 이런데...

   이건 좀 특이하다.

   에트루리아 시대 B.C 350 의 묘비

   로마 시대의 향유병.  역시 특이해서...

   

금색, 황토색, 까만색은 자주 봤어도 이런 날파랑은 처음 본다.



마지막으로, 골목의 야채가게.

한국에서 파스타 식당에 가면 리조또나 라자냐가 느끼해서 거의 안먹었는데,  이탈리아에 가서 먹으니 다 맛있다.  미식가의 고장이라 하는 볼로냐의 음식은 고기와 치즈가 담뿍 들었다.  기름지지만 느끼하지는 않다. (쓰고보니 난처하군...) 그러고보니 파스타의 미트소스를 볼로네제라 하는데, 그게 "볼로냐식"이 아닐까 추측한다. 

신기한 것은, 밥을 참 오래들 먹는다.  거래처의 저녁식사에 갔는데, 8시부터 시작해서 빵과 에피타이저, 샐러드, 수프, 프리모(첫째 음식으로 주로 파스타류), 세콘도(고기나 생선같은 좀 더 무거운 요리), 디저트 (케익, 과일, 술이 들어간 커피가 차례차례) 12시까지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이게 대단한 만찬이 아니라 보통보다 조금만 더 과하게 차린 상이고, 뭘 먹어도 두세시간은 먹는다 한다.  7시 전에는 문을 안열거나 열어도 8시부터나 본요리 주문을 받는 식당들도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낙천적이고 먹고 요리하는 걸 즐긴다더니, 저녁 시간은 몽땅 먹는 데 쓰나보다, 먹는 게 정말 즐가운가보다... 햇빛도 좋더만, 그래서 인생이 즐가운가보다...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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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마지막주 목요일 오후 밀라노에 도착했다.
이틀  전부터 사진기가 고장나버렸기 때문에 여기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모은 거다.
밀라노는 역에서부터 두오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갤러리까지, 어쩌면 그렇게 높고 큰지, 예전에는 거인들이 살았나 싶다.





밀라노 중앙역



밀라노의 중심 두오모 광장과 고딕 양식의 절정이라는 두오모. 
나는 이 성당이 싫다.  들어가자 마자 그 천장의 높이에 질렸고, 옥상에 올라가서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돌을 깎아 만든 수백개의 뾰족뾰족한 탑과 조상들이 끔찍하다.  그 큰 건물의 구석구석 빈틈없이 화려하여 질식할 것 같다.  500년동안 이걸 만들었다니 더더욱 미친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묻고 싶다. "하나님, 이 곳이 편하십니까."
... 그래도 스테인드 글래스는 아름답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당 위에 올라가서 보면...

성당 측면.  안쪽에서 보면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





식당, 쇼핑할 곳이 많은 유리천장의 아케이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
보이는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맥도널드. 그래도 때로는 반가운... 눈치 안보고 써도 되는 화장실. 



두오모쪽에서 들어와 갤러리를 나와서 마주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제자들.
건너편으로는 라 스칼라 극장이 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 가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볼까 했는데, 예약을 해야 한다 해서 전화해보았더니, 앞으로 한달이 지나도록 꽉 차 있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빈치에서 태어나 (그러니까 이름이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이다) 피렌체에서 공부하고, 밀라노의 영주 루도비코 일 모로의 후원으로 17년동안 밀라노에서 살았다. (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점령으로 일모로가 몰락할 때까지) 이 기간동안 다빈치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며 그동안 축적된 재능을 발휘하였다.
여기와서 들은 이야기 : 사실 일모로는 피렌체의 메디치家처럼 덕망있고 세련된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을 높이고 싶어했고, 그래서 다빈치를 "초빙"했다는...

Museo Poldi-Pezzoli
폴디페촐리家에서 대대로 수집한 15~19세기의 회화, 시계, 보석, 태피스트리를 폴디페촐리가 저택을 개조하여 전시하고 있다.  옛날 사람이 살던 집과 가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정보에 태어나고 죽은 연대 외에도 태어난 도시, 죽은 도시를 함께 쓰는 것이 흥미롭다.  여럿 보다보니, 지역마다 성향이 다름을 조금은 알겠다.  베니치아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죽었다 하면 이 작가의 색감과 구도, 취향이 왜 이렇게 형성되는지  대략 알 듯도 하다.    

    Lorenzo Bartolini (Prato 1777 - Florence 1850), Trust in God

  Sandro Botticelli (Florence 1445 - 1510), The Dead Christ Mourned

 
Piero del Pollaiolo (Florence 1443 - Rome 1496), Portrait of a Woman


Francesco Hayez (Venice 1791 - Milan 1882), Self-Portrait in a group of Friends

Pinacoteca di Brera



이튿날 2시 반 비행기를 앞두고 아침 일찍 브레라 회화관에 갔다.
건물 앞과 중정에서 가방메고 수다떨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 많아서 미술관에 사람이 많으려나 했더니
오래된 커다란 건물에 1층은 도서관이고 2층으로 올라가면 Pinacoteca di Brera이다. 


Giovanni Bellini, 피에타, c1465

성모가 예수의 주검을 무릎위에 두지 않은, 독특한 포즈의 피에타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는 가느다란 금테 후광을 두르기는 했지만 핏기 없는 푸릇한 시체이다 (예수의 시신을 주검으로 그린 피에타를 전엔 못보았다).  고단하게 그러나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얼굴.  더 이상 피흐르지 않지만 아직도 붉은 못자국이 선명한 아들의 시신을 옆에서 안은 어머니의 얼굴은 젊고 아름다운 성녀가 아니다.  밤새 가슴이 타들어갔을, 아직도 미어질, 자식의 처절한 죽음을 지켜본 성모는 눈자위가 까맣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잡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툭 쓰러질 주검을, 마찬가지로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어머니가 안스럽게 끌어안고 있다.  처절하고 가슴 아픈 피에타, 눈물이 난다.   


Caravaggio, Supper at Emmaus, 1606

부활한 그리스도. 엠마오로 가는길에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처음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가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예수님인줄 알았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 바보들...)  아래 램브란트의 같은 제목의 그림을 보면, 그게 성스러운 순간임을 알겠다. 
그런데 이 까라밧지오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엠마오네 집에서의 저녁식사인가?" 라고 생각했고, 식탁위의 저 부실한 음식과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물들을 보라, 엠마오네는 되게 못사는구나, 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사내, 후광도 없는데 예수님인 줄은 그나마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퀭한 얼굴에 목에도 주름이 선명한 노파, 1606년의 그림이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인물을 그리고 삶의 고단함을 드러내는가. 예수의 인상도, 그림 전체의 색감과 비현실적인 명암도 마음에 든다.


Rembrandt, Supper at Emmaus, 1648, 파리 루브르 뮤지엄.


Francesco Hayez, The Kiss, 1859

장면, 순간, 색감 -- 보는이를 확 사로잡는 그림.  저기 위에 친구들을 배경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한 작가의 작품이다.  Hayez는 바로 여기 브레라 미술학교에서 가르치고 교장도 지냈으며, 이탈리아에서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을 대표하는 작가라 한다.


Giovanni Luteri, St. Sebastian, 1490-91

이 그림을 보고 한참을 키득거렸다. 이건 뭐냐... 섹시 세바스띠아노?
중세로부터 세바스찬 성자의 순교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무수하지만 (중세의 종교화를 가만 들여다보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인물의 표정이 웃긴 것도 많다.  기둥에 묶여 돌과 화살을 맞으며 순교하는 성 세바스찬이 :(  이런 단순한 입모양만 그리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잔혹하게도 얼굴에 꽂힌 화살과 상처를 정밀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포즈는 처음 본다. 거의 패러디 수준이다.

아무거나 하나 비교해 보자 :


Hans Holbein, Martyrdom of St Sebastian (1524). Pinakothek, Munich, Germany.

브레라 미술관에도 전체적으로 성서, 성자를 소재로 한 (특히 베네치아에서 여럿 본 산 마르코의 이야기, 유해 이전과 관련된) 커~~다란 그림들이 많다. 15~18세기의 롬바르디아파와 베네치아파 작품들이라 한다.


Marco d'Oggiono (1475-c1530), The Archangels Triumphing Over Lucifer

      Giovanni Bellini, Predica di San Marco in Alessandria d'Egitto


Andrea Mantegna (1431-1506), Cristo Morto
원근법과 시선이 독특하다.


Raffaello, 성모마리아의 결혼


스포르체스코 성 Castello Sforzesco

밀라노 시내의 웬만한 건물들도 베네치아나 볼로냐보다 높고 화려하다.  보고 있는 건물들 중에는 전후에 지어진 것들도 많다 한다.  어쨌거나, 화려한 장식에 살짝 질린 나는 이 상대적으로 투박하지만 견고하고 군더더기없고 짜임새와 균형감이 돋보이는 벽돌로 지은 성이 반갑다. (물론 스케일 면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유치원생들부터 고등학생까지 무리지어, 뮤지엄 견학을 온 듯, 성의 4면마다 있는 입구로 종알종알 들어온다.  사진은 성 안쪽. 1466년에 완성되었고 회화, 악기, 고고학유물 등을 전시하는 여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오래된 건물들, 역사적 유물을 의미있게 잘 살려 쓰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이젠 정말로 공항 갈 시간이 되어 버려 이 성에 있는 전시를 하나도 못보고 온 것은 마음 상한다.

스포르체스코 성을 나서면 탁 트이고 한가로운 셈피오네 공원이 있다. 멀리 보이는 건 평화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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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는 120개 자잘한 섬들이 177개 운하와 400개의 다리로 연결된 도시이다.  5세기에 서고트족, 훈족, 롬바르디아족의 침입을 피해 이탈리아 북쪽 여러 도시의 주민들이 이주해 와 앞서 살고 있던 토착 어민과 함께 아드리아 해 점토층에 수백만개의 떡갈나무 말뚝을 박아 기층을 만들고 인공의 섬을 만들었다.

수면아래 숲을 이루고, 그 위에 도시를 만든다는 기상천외의 발상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베네치아가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처럼 오만한 제왕들의 권력 의지가 아닌, 몇천 유배된 사람들이 생사를 걸고 비상상한 상상력으로 일군 대역사(大役事)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외롭다.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 권삼윤 | 푸른숲 | 94쪽


이탈리아에 간다 하니,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제일 가고 싶었다. 사실 상상이 잘 안 되었다. 정말로 도시 대부분의 길이 물이고 배를 타고 다닌다고?  뱃길 옆으로 기단과 아래쪽은 물에 잠긴 건물들에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산다고? ... 정말이더라.





대운하를 오가는 수상버스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거리



대운하에 면한 식당



Vaporetto 라 불리는 수상버스와 버스 정류장.  안내양 또는 안내군이 있어서 정차 (정박)할 때마다 폴에 밧줄을 걸고, "무슨 역입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문을 열어 사람들을 내보내고 들인다.

택시



베니스의 환상 곤돌라.  곤돌라를 타기 가장 좋은 때는 해저물녁 "곤돌라 세레나테" 칸초네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이른 오전 곤돌라 사공이 곤돌라를 청소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며 어슬렁거리는 곤돌라 운전사들.  흰바탕에 까만색 가로줄무늬가 유니폼인 듯.  곤돌라 사공은 "노래 실력"을 포함한 특별한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혼자 벌쭘해서 안 탔는데, 바포레토로로는 대운하만 따라 갈 수 있지만 <탄식의 다리>를 포함해 곤돌라를 타고 천천히 작은 물길을 다니며 골목 풍경을 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골목길 풍경.  작은 배 한 척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들도 있는데,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널어 두기도 한다.



대운하가 끝날 무렵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찍음.  운하의 폭이 확 넓어졌다. 운하가 끝나면서는 확 트이며 아드리아해를 만난다. 저 돔은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어딜 가도 느끼는 거지만 광장의 주인은 비둘기이다.  산마르코 광장 곳곳에는 1유로에 비둘기 먹이를 파는 노상들이 있고, 이렇게 사람이 친한 척 하면 어깨에도 내려앉곤 한다.  난 닭둘기가 싫어...  여기는 운하가 끝난 바포레토 정류장부터 산마르코 광장에 이르는 길에 있는, 두깔레 궁전 앞 산마르코 소광장.



산마르코 광장, 종루.

아침에 호텔에서 창문으로 모피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더러 있길래, "뭐, 3월 말에 저렇게 추울까" 했는데, 덴장, 대운하를 지나는 동안 얼어죽는 줄 알았다. 역시 바닷바람은 춥다.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뭐든 따뜻한 곳에서 뜨거운 마실 것으로 몸을 녹여야 했다.



여기는 카페 플로리안. 1720년에 만들어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루소, 괴테, 스탕달, 바이런, 쇼펜하우어, 바이런, 모네, 하이네, 릴케, 토마스 만....  많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단골로 드나든 카페란다.  겨울이면 홍수로 광장과 성당이 물에 잠기는데, 배를 타고 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어느 카페에서건 서빙을 하는 가르송들이 인상적이다.  플로리안에서 내가 찍은 사진은 젊은 가르송인데, 할아버지 가르송들도 많고 그분들이 참 멋있다. 손님들도 많고 쉼없이 차를 나르면서도 광장 앞쪽에서 모여 수다를 떤다. 그러면서 어느 테이블에서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으면 놓지지 않고 다가간다. 빠뜨리거나 늦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서두르지 않는, 카페 안팎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처럼, 바람처럼, 유려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의 얼굴에 평생 지은 미소가 배어있다.  젊은 가르송들이 아무리 친철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유려한 경륜이 존경스럽다.   



오후에 광장에 다시 오니 카페 플로리안의 야외에서는 공연이 한창이다.



종루에서 내려다본 산 마르코 광장.



광장에 면한 산 마르코 성당. 9세기 이집트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가져와 안치하기 위해 세웠다. 화재로 다시 세우고 여러번 복원 공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어쩔 것인가.  뮤지엄 다 돌아보고 오후 4시에 왔더니 여행서에 5시까지라고 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4시면 문을 닫는다고.  그래서 내부는 못보고 이렇게 광장 쪽에서 바깥을 본 게 다다.







성당 위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 말.  13세기 베네치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왔고 B.C. 4-2 대의 작품으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한때는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갔다가 되돌려 받았다.  약탈의 역사만 반복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산마르코 성당의 쿠폴라



리알토 다리. 원래는 목조였는데 16세기에 석조로 바뀌었다.  인근에 식당도 많고 쇼핑할 것도 많다. 옛날부터 베네치아 상거래의 중심지. 추워서 목도리라도 하나 사야지 하고 지상의 유리공예상점, 옷가게가 구비구비 늘어선 골목 골목을 따라 걸었다.

점심을 먹고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갔다.  조르조네, 조반니 벨리니,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네치아 화풍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르네상스 이후 16-18세기의 베네치아 화풍은 구도보다는 풍부한 색채와 명암의 아름다움, 감각적 관능미를 추구했다는데, 비교가 될 만한 그림들을 찬찬이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미술관의 고색창연함과 전시된 그림들의 내 키의 2-6배를 넘는 길이와 폭의 스케일에 비해 감동의 폭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듯 하다.  하지만 도시를 돌아다녀본 소감만으로도, 이곳에 살면 색채에 대한 감성과 관능미를 다른 곳보다 앞서 자연스럽게 체득했으리라는 데는 동감.  

티치아노의 미완성작 <피에타>.  그런데 어디가 미완성이라는 거지?



조르조네 <폭풍> c 1505



Gentile Bellini, The Recovery of the Relic of the True Cross at the Bridge of S. Lorenzo. 1496-1500
이렇게 옛날의 베네치아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500년이 지나도 똑같이 생긴 도시...   



아름다운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팔각형의 성당 벽면을 따라 걸린 그림마다 작은 성소이다. 바닥의 문양도 아름답다.



성당에 갈 때마다 그런 것 같다.  벽화나 다른 조각상들보다 이 촛불 앞의 예수나 마리아는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때로는 조악하기조차 하다.  촛불 한 개값은 80센트~1유로.  서낭당에 천조각을 걸거나 정화수 떠놓고 산신령께 비는 기복신앙와 다를 게 뭐냐.   어딜 가나, 어느 신을 섬기건 사람살이에서 이루고 싶은 꿈과 얻고 싶은 것,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무사를 비는 마음은 다르지 않은가보다.  그러니 나도, 촛불 한 개 켜고, "건강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게 해주세요" 잠시 기도.  이 할머니는 촛불 네 개를 켰다.  모르지, 나만 욕심 많고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 들러 마음 가다듬는 뜻으로만 초를 드는지도...



산마르코 성당 옆의 두깔레 궁전. 좌절이다. 여기도 4시면 문을 닫는다. 건물 내부 장식과 그림, 옛날의 회의실... 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맘 상했다.



중루에서 내려다 본 두깔레 궁전. 산마르코 성당과 이웃하고 있다.

두깔레 궁전 뒤쪽 감옥 탄식의 다리 근처에 이르니 여행서에서 못 봤는데, 틴토레토 특별전을 하고 있다고 써붙인 Museo Diocesano 가 눈에 띄었다.  들어가서 물어보니 베네치아 주교성의 사적인 소장품들을 번갈아 전시한다고. 이곳만이 아니라 이탈리에서는 그림들이 넘쳐나서인지 그저 웹사이트들이 부실해서인지, 웬만해서는 뮤지엄 웹사이트에서 소장품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마음에 들었던 그림들 사진찍지는 못하고, 돌아와서 찾아볼까 했더니 낭패다.  

틴토레토, <산타 카탈리나의 생애> 연작 일부.

작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최후의 만찬>을 보았는데, 이런이런, 최후의 만찬이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길쭉한 테이블에 죽 늘어선 그림만 알아서인지, 평범한 직사각형 식탁에 둥글게 모인 최후의 만찬을 보니 한 데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그림에서도 요한인지 막달라마리아인지는 여자 같던 걸.



곳곳에 있는 화려한 가면 상점.

나에게 베네치아의 인상은 초록색과 금색이다. 성당과 그림 액자, 가면의 금장 화려한 반짝임.
초록색 물빛 거리 베네치아, 오래 눈에 선하다. 못 본 곳도 많고 (무라노 섬의 유리공장도 못 보았고, 저녁 시간이 된다면 실내악이나 오페라 공연도 보고 싶다)  베네치아...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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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04-10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닛~ 언제 이탈리아에 갔다 온거야? 으흑. 좋았겠군. 사진 멋지다.
그래, 베네치아를 기념할만한 선물은 사 왔나? ㅋㅋ

로드무비 2006-04-1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물 위의 집.^^

merced 2006-04-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좋았어요. 선물은 없고 ^^;; 볼로냐와 밀라노 여행기가 이어집니다.

로드무비님, 그렇지요? 어찌보면 다른 동네에서는 홍수났을 때 풍경같은데, 물이 더 차오르건 말건 잘 살고 있다니까요. 광장에 물이 차는데 배타고 커피마시러 간다는 생각을 할 수나 있겠냔 말이에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언제 침하될지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하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 인생을 즐기자 라는 태도가 나오는 거 아닐까 싶어요. 옛날부터 유럽 다른 곳에서 베네치아로 놀러온 사람들이 바람도 잘 나고 쾌락과 관능, 잘먹고 잘놀고, 물과 친한 머큐리 정신~!

사마천 2006-04-10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군요. 추천드립니다.

kidkidman 2006-04-12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잘보고 갑니다요~~
난 뭐했지... 내 전공이 뭐야??ㅋㅋ...
재밌게 놀다 왔짜나여~~ 내말이 맞았네요^^;;
물위의 집 부식과정에 대해 한번 심히 고려를 해야 할듯...
우리도 저런거 만들어야 될텐데..^^;;
나머지 이야기도 (기대 * 100만)
언제나 웃는 하루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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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했는데 얼마나 써먹을지...^^;;;ㅋㅋ

비자림 2006-04-1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인사 드려요. 베네치아.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 사진으로 잘 구경했어요.
언젠간 한 번 나들이 갈 수 있겠지요. 정말 멋있네요. 퍼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