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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7월이다. 더워 죽는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고, 이번 여름에는 어딘가로 꼭 놀러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마음이 무뎌졌는지, '누구와'를 크게 고려치 않는다. 고려하다 못 가느니, 혼자라도 가자! 혼자가 점점 체질이 되어가는가 보다. 심각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올 여름 무더위 또한 혼자 보내야 할 터이니, 준비를 해야지!

 

7월의 관심 꾸러미를 챙겨보자. 6월 출간 책들을 살펴보니, 날이 더워 그런지 새로 나오는 책들도 좀 줄어든 듯 하다.

 

인문>에세이

우에노 지즈코, <독신의 오후>

 

이제 나도 그 오후를 준비해야할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한낮이라고 믿는다. 독신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까? 괜찮을 수도 있고, 안 괜찮을 수도 있다. 결국엔 돈이 중요하게 작용할지 모른다. 이 책은 어차저차 독신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남성들이 찌질하지 않게 살려면 어케해야 하는지를 조언하는 책인가보다. 미리미리 읽어 두어야 할까?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여자라는 점이다. 독신 남성의 체험담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일 줄 알았는데, 감히 여자라니? 생각해보면, 여성의 조언이 더욱 절실한 때가 독신의 오후쯤이 아닐까 싶다. 정말! 미리미리 준비해야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확확 들기도 한다.

 

 

과학>생명과학

서민 외, <기생>

 

우리시대 기생충의 대가! 서민 교수. 이분 덕이 이제 이 더럽기만한 기생충의 공론의 장에 당당히 나서 우리를 향해 외치고 있다! 이 기생충만도 못한 인간들아! 독신남이란 정말이지 기생충 취급을 받기 일수였는데, 기생충의 참모습처럼 멋진 독신남이 되어야지! 서민 교수는 그간 기생충과 관련한 책들을 많이 쏟아냈는데, 이 책에도 참여한 듯 싶다. 이래저래 알게된 분이라 티비에서 볼 수록 정감이 가고, 기생충에 관심도 늘고, 워낙에 평소 이 사회에 기생하는 편이라, 제대로 기생하기 위해 이 책을 읽을 필요도 있겠다.

 

 

 

역사>문화사

데이비드 골드블라트, <축구의 세계사>

 

월드컵이 한창이다. 1무 2패의 치욕적인 성적 탓에 엿사탕 세계를 받은 우리 국가대표팀이 안쓰럽다. 스페인도 이탈리아도 포르투갈도 잉글랜드도 떨어진 마당이 우리가 떨어진게 그닥 이상할 게 없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이 이상한 거? 근데, 역시나 우리팀은 실력이 모자랐다. 그래도 요새 수준 높은 16강전을 보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독신이라 가능한거? 불가능할 건 없지만 독신이 아니라면 그리 자유롭게 보고싶은 축구경기를 본다는 건 어려울 것이다. 독신을 위한 스포츠! 축구! 그래서 축구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알고본다면 더욱 재밌지 않겠나? 축구의 역사를 파헤쳐봄이 어떠한가? 근데! 가격이 ㅎㄷㄷ하다.

 

과학>과학사

에드워드 J. 라슨, <신들을 위한 여름>

 

남자는 결혼을 위해 진화해 왔는지 모른다. 사회적 진화가 성립한다면 일단 사회적으로는 완벽히 진화했다. 그러나 난 아직 진화가 안 되었는지 모르겠다. 독신의 오후로 들어가기 전에 완벽한 독신남으로 진화할 수는 없을까? 이 책은 그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책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법정 논쟁을 소설처럼 들려주고 있다. 오늘날에는 진화론이 자명하게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여전히 똘아이들은 있는 법이다. 어찌하였든, 난 진화를 믿는다. 그래서 오늘부터 독신남으로 진화해볼까나? 흠흠! 일단 더위 안타는 인간동물로 먼저 진화좀 해보자...아구 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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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 사우루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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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티븐 제이 굴드 Stephen Jay Gould. 왠지 이 이름은 고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의 직업과 딱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진화생물학 관련 책들을 얼핏얼핏보면서 이 이름을 들어서일 수도 있고, 고생물학자들은 아무래도 어느 굴들을 찾아다녀야 할 것만 같아서 일수도 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그의 책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그 제목만큼이나 거대한 저작이다. 무려 800쪽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이다.(이쯤되면 양장이 어울릴 것 같다는 편견을 난 가지고 있다.) 내용도 나로서는 참 거대하게 느껴진다. 어느 작은 생물에서부터 공룡, 저 멀리 우주에까지 이른다.(고백하건대, 나는 이책을 다 읽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시간도 없긴 했지만 그리 열심히 읽지도 않았다. 중반 이후부터는 선별적으로 읽긴 했지만, 그래도 3/4은 읽은 듯 하다. 점 하나까지 다 읽어야 리뷰를 쓸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니, 이러한 사실에 그다지 불편해 하시지들은 않길...) 그러나 굴드는 이 책을 대중적이라고 역설한다.(내가 분명 대중 가운데 하나라면 이 책은 그다지 대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굴드의 대중에는 아마도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 영광스러운 지적 전통인 알기 쉬운 과학을 되살리는 작업에 매진할 것을 맹세해야 한다. 그 규칙은 간단하다. 절대 개념적 풍부함을 손상기키지 않을 것. 모호하거나 모르는 부분을 건너뛰지 않을 것. 물론 전문용어를 쓰지 않되, 그렇다고 필요한 개념을 생략하지 않을 것(개념적 복잡성이 일상 언어로 전달될 수 있도록). 현재 미국에서 이런 양식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일차적인 임무는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고 누가 아닌지 식별해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프란체스코와 갈릴레이의 인문학적 전통을 꿋꿋이 주장해나가야 하며, 핵심 요약이나 연출 사진과 같은 작금의 설득 이데올로기에, 즉 미국의 또 하나의 낡은 전통(반지성주의의 어두운 면, 파시즘의 전조가 될 수 있는 사려 없는 감성주의에 대한 호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12~!#쪽)

 

이렇게 과학을 대상으로한 대중적 글쓰기를 천명한 저자는 책을 읽고야 알게 되었지만, 십수년간을 그것을 실천하고 실행해 왔다.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그는 세계적인 명사의 반열에 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스스로 제시한 규칙을 이 책이 준수하고 있다고 판단할 능력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이 일차적으로는 미국의 대중을 대상으로한 대중적 글이라고 보여지는데, 미국의 대중에 해당하지 않는 나에게는 그의 규칙들이 어떻게 적용되고 준수되었는지를 가늠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로 그 규칙들이 어긋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와 비슷한 분야에 관해 읽은, 나에게 있어 가장 대중적인 책은 전중환이 쓴 <오래된 연장통>이란 책이라고 생각한다.(절대 굴드보다 전중환이 위대하다는 얘기가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란다.) 좀더 확장하면 굴드의 책보다 전중환의 책이 우리나라 대중들에게는 더욱 대중적일 터이다. 나에게 굴드의 책(한국어 본역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이 대중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고 해서 굴드를 탓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오히려 이 책을 번역하고 출간한, 번역자와 출판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어 원서를 읽을 능력도 시간도 없는 나이지만, 이 책이 정확한 번역일 수는 있어도 한국어로써의 잘된 번역은 아닐 듯 싶다.(내 생각일 뿐이다.)

 

무작위로 이 책의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다시 말해서, 키위의 알은 결코 비정상적으로 커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몸집이 줄어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주장은 전혀 같지 않다. 오래된 농담과 달리, 우리는 뚱뚱한 사람이 몸무게 때문에 키가 작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듯이 말이다.(162쪽)

 

여기서 '오래된 농담'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오래된 농담을 공유하지 못했기에 이 대목에서 조금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과학적 지식의 부족함도 원인이겠지만, 굴드의 대중적 글쓰기가 나에게는 공유하지 못한 문화적 한계 때문에 전혀 대중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간극을 번역자 또는 편집자가 채워넣어야 하지 않았을까? 번역에 있어서 대부분 직역한 부분이 많은 것 같고, 비문에 해당되는 문장들도 있는 듯 해서 가독성이 많이 떨어졌다. 첫 에세이부터 읽어가면서 나는 굴드의 비유와 예들을 거의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나에게는 이 책이 담고있는 진화생물학적, 고생물학적 지식의 설명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큰 책임은 나에게 있겠지만, 그렇다는 얘기다.

 

굴드의 논법은 미국인들에게 꽤나 대중적이었을 듯 싶다. 흥미로운 것은 골드가 이야기를 시작해나가는 방법들이다. 잡다한 이야기,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소재들을 가져와 이런저런,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어 가며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내가 공유하지 못하는 '대중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골드는 꽤나 출중한 작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N. S. 셰일러와 윌리엄 제임스에 대한 21번 에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21번 에세이를 읽어야 햇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는 이 에세이가 도입부분 만큼은 아주 탁월하다고 느꼈다. 아이들 문화에서 오는 어휘의 변천을 탐구하면서 자신의 지난날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그로부터 한참을 흘러 본연의 주제로 들어가는 굴드식 어법이 흥미있었다. 거기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많은 부분 중에서도 <7부 지적 전기 - 생물학자>에 실린 21~23번 에세이와 <8부 진화와 창조>에 담긴 에세이들, 그리고 <9부 숫자와 확률>에서 야구와 연관된 엣세이를 나름 재미 있게 읽었다. 창조과학과 진화론의 논쟁은 승리자가 뻔한 싸움임에도 논쟁의 과정은 재미있고 흥미롭다. 그 오래된 역사를 전해주는 굴드의 이야기에 빠져 단숨에 읽어나갔다.(위에서 언급했던 불편함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책에서 굴드는 일관되게 필연이 아니라 우연을 강조하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종교와 과학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자신들의 역할만을 다 하면 된다는 점, 진화론이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런 점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의의가 있어서 나쁘지는 않았다. 결국, 내 능력의 부족함일터이다. 브론토사우루스를 응원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와 더불어 브론토사우루스가 제 이름을 수성 혹은 되찾기를 바란다. 내가 이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 첵임만은 아니니, 힘내자 메르키세데크스!!(내 아이디 멜기세덱을 펼쳐읽으면 비슷해질 듯 해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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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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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만한 사람치고, 아니 배웠다는 사람치고 다산 정약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다. 단군, 이성계, 세종대왕, 이순신 등등의 급은 아닐지 몰라도 그 아래 등급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위인 중의 한 분이 터이다. 정약용에 대한 서적들만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이 잔뜩 있다. 나는 정민 선생이 쓴 <다산성생 지식경영법>이란 책과 박석무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등을 보유하고 있고, <목민심서>란 책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렇게 유명하신 분의 '평전'이 아직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다산은 학문 분야가 넓고 광범위했을 뿐만 아니라 해박하고 정밀하며 전문성이 높고 치밀하여 그에 대해 정확하게 정리하고 분석하여 평가를 내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인 것도 사실이다. 다산 서세 178년이 지났고, <여유당전서>가 간행된 지 76년이 되었는데, 본격적인 다산의 평전이 출간되지 못했음은 역시 이 나라 학계가 지적받을 사안의 하나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어느 누구도 선뜻 착수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14쪽)

그렇다. 정약용과 같은 뛰어난 인물을 감히 누가 평가하겠는가? 단군 평전을 못봤고, 이성계나 이순신, 세종대왕 평전이 견문이 적은 탓으로 보질 못했다. 단군은 자료가 부족할 탓을 테고, 다른 분들은 너무 뛰어나서 평가의 칼을 들이대기 겁이 나서일지도 모를 일이다. 어설프게 들이댔다가는 본전도 못찾고 욕만 잔뜻 먹기 딱 좋다. 대단한 각오와 용기만 필요한 게 아니고, 적확하게 평가할 능력 또한 갖추어야 하기에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평전을 쓰기 어려웠을 터이다. 그렇다해도 평전이 하나 없는건 그분들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고, 우리 무지대중들에 대한 애민정신의 부족일 수도 있는 일이라, 우리 학계는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일을 박석무가 맡았다.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평전을 쓰려면 잘 써야 했다.

 

다산 정약용의 평전 쓰기, 쉬운 작업이 아닌, 지난한 일이다. '평전'의 사전적 의미는 '평론을 곁들인 전기'이다. 어떤 인물의 인생과 학문에 대한 일대기인 전기에 가치 판단인 '평론'을 곁들이는 일은 누구의 경우에도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다산 정약용은 뛰어난 인물이고 탁월한 학자인 데다 삶 또한 파란만장하고 드라마틱하여 그 일생을 정리해 내고 평가를 내리는 일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어서 '지난'한 일이라고 했다.(13쪽)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평전을 쓰면서 평가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저자의 서문을 읽으면서 과연 정약용에 대한 어떤 평가를 내리려 하기에 이렇게 거듭 엄살을 부리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일단의 저자의 전략이 성공한 것이리라-생각했다.

 

서문격인 '들어가면서'로 책을 시작하는데 서문에 정약용의 일생과 저술 등을 일목요연 잘 정리하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면서는 정약용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보다 드라마틱하게 전달하고자 순행적 구성이 아닌 역순행적 구성, 그러니까 시간적 재구성을 통해 약간의 시간적 변화를 주어 정약용의 젊은 시기 암행어사로서의 활약상을 먼저 보여주고 있다. 흥미있는 구성 전략이라고 보여진다.

 

그렇게 흥미롭게 읽어가면서, 정약용에 대해 우리가 잘 알고 있던 부분을 재확인하기도 하고, 잘 몰랐던 세세한 일화들에 재미를 느껴가고 있는 터에, 불현듯 정약용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언제 나올까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평가에 주목하면서 이 평전을 읽어가는데, 요약하자면, 아니 요약할 필요도 없이, 책 표지에 있는 그대로 뿐이었다.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이 외의 어떤 평가를 찾아 볼 수 있었는지 다른 분들께 물어보고 싶다.

 

논문을 쓰는데 있어서 먼저 선행연구를 정리하는 것이 기본인데, 저자도 서문에서 선인들의 정약용에 대한 평가를 찾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칭찬의 평가만 많아 비판한 내용을 많이 찾지 못하는 아쉬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라도 비판점을 찾아 제시했어야 했다. 더구나 저자는 자신만의 긍정적 평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선인들의 정약용에 대한 평가만 재삼재사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위대한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 존재하지만, 다산 이전이나 이후의 오랜 시가 동안 고을의 수령인 목민관은 고을의 주인이고 권력자로 여겨져 수령의 다른 호칭으로 '성주'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니, 그런 아이러니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지, 민주주의 발달사에서 한 번쯤 되짚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다산 또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논리로 실제 행정을 폈으면서도, 역사의 발전 주체를 국민이 아닌 국왕에게 두고 국왕이 선정을 펼쳐야 역사가 발전한다는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점에서 다산도 인간적 한계를 보였으며 시대적 제약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이 불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234쪽)

 

저자가 제시한 정약용의 한계, 과연 타당한가? 저자의 지적은 타당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당대를 평가한 것이고, 그 시대 모두에게 적용될 한계일 터이다. 정약용을 이 시대 민주주의의 선각자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인데, 민주주의의 잣대를 정약용에게 적용해서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한다면 이처럼 불합리한 평가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정약용의 민본은 현대의 민주와 그 성격이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다산에 대한 아쉬움과 애석함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고산은 몇백 년 전에 이미 순수한 우리 한글로 그처럼 아름답고 뛰어난 시조를 남겨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여실히 증명했는데 고산의 6대 외손이던 다산은 훨씬 뒤의 인물임에도 한글을 사용한 문학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는 까닭이다. 송강 정철이나 고산 윤선도보다 훨씬 뒤의 후손으로 그들이 이룩한 문학적 업적도 계승하지 않은 점은 유교주의자의 한계로서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 다산의 한문시들이 내용 면에서야 송강이나 고산에 뒤지지 않은 점이 많지만, 표현의 수단으로 한자만을 사용한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시대로 보면 훨씬 진보적이어야 하건만, 후진적인 점은 어떤 이유인지 알 길이 없다. 문학가와 사상가의 차이로도 볼 수 있겠으나, 여기에서 다산의 한계는 숨길 수가 없다.(436쪽)

 

이게 말이 되는가? 다산이 한글 작품을 짓지 않은 것이 후진적이라니? 고산의 자손이니 한문이 아닌 한글 작품을 남겨야 한다는 건 무슨 논리인지, 고산이나 송강의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려면 강호자연을 노래하거나 임금님 찬양을 노래하는 가사나 시조를 정약용이 지었어야 했다는 말인가? 한자만 쓴 걸 이해하지 못했다면 더 연구했어야 했고, 한글을 써야 문학가고 한문을 쓰면 사상가라고 규정할 바에야 아에 규정을 말았어야 했다.

 

다산의 한글을 쓰건 한문을 쓰건 그건 다산의 자유이면서, 도산이나 송강이 한글을 쓴 건 노래로 읊기에 유리하면서 정서를 표현하는 데에는 한글이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에도 사상이 담긴 말은 죄다 한자인걸 모르나? 정약용은 백성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려내는 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그런 사회 비판을 통해 백성들의 참상을 위정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핍진하게 시로 그려낸 것이다. 그것을 자세히 그리고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한글보다도 당시에는 한자를 사용하는 것이 더 유리해던 것이 아닐까? 한자를 사용하면서도 당시의 귀한 우리말 표현을 최대한 살려낸 점을 칭찬할 일이지, 한글을 쓰지 않았다고 후진적이고 한다면, 이런 어불성설이 또한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법을 전공한 학자이고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국회의원을 지냈고, 국회다산사상연구회를 조직, 간사로 활동했으며, 여러 대학에서 석좌, 석좌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는 프로필에 나와있지 않아 모르겠지만, 문학을 전공하지는 않은 게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문학적 평가에는 매우 부족한 능력을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한글, 한자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약용의 작품을 인용하면서 붙인 해설과 평가는 그저 일반적 수준에 불과하고, '그냥 좋다'식의 평가 뿐이다.

 

다산의 나이 50세이던 1811년에는 평안도 정주 지방에서 지역 차별 철폐 등을 내걸고 홍경래가 민중들을 동원하여 봉기하였다. 다산은 귀양지에서 이런 소식을 듣고서 민란이라고 규정하고 그들을 토벌해야 한다고 전라도민에게 고하는 <창의통문>을 작성했다. 왕조 정권 아래의 백성 입장이던 다산은 그 일에 대해 대처하지 않았어도 크게 탓할 일이 아니었는데, 왕조 정권을 지지하는 입장임을 나타내려는 뜻에서 그런 글을 지었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민중 사관으로 보면 다산 개인의 한계이자 시대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는 좋은 집안의 출신인 기득권자였고 상당한 지위의 관료를 지냈다는 점 때문에 그러한 한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480쪽)

 

다산이 <창의통문>을 지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왜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저자의 해설을 보면, 다산이 백성 입장이었다는 건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의문이다. 또한 당시의 다산이 기득권자의 위치에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러한 다산의 행위를 설명하고 평가하려면 다산의 저술을 분석하고 다산이 <창의통문>의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혀내야 했다. 민중 사관으로 보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저자 말대로라면 홍경래의 난을 보고도 다산은 입다물고 가만히 있었어야 했는가? 정약용도 양반이고 관리출신이니까 그랬을 거야? 정권에 잘 보여서 유배나 빨리 풀자고? 아니면 잠깐 정신이 나가서?

 

나는 박석무의 이 책이 정약용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유일한 책이다. 그런데도 정약용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알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좀더 정약용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 뿐이다. 평전이라고 해서 인물을 반드시 비판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다 심도있는 탐구, 사상에서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탐구와 그에 대한 저자의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있어야 제대로된 평전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거기에 이르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추신

1. 정약용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천주교와의 관련성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긴 한데, 정약용이 천주교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 그리하여 천주교에서 벗어난 것은 저자의 판단에 동의하지만, 한번이면 족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여러곳에서 천주교 얘기를 하면서 천주교의 오류를 지적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좀 과한 느낌.

2. 평전에서 평가의 내용을 주로 선행 연구들을 정리하여 채우고 있는데, 그렇다면 적어도 책 말미에 참고문헌으로 정리는 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3. 정약용이 강진의 다산에서 유배생활을 했는데, 언제부터 다산이라는 호(?)를 사용했는지, 왜 그런 것인지가 궁금했는데, 책에는 별반 내용이 없어 아쉬웠음.

4. 그외 아쉬움 점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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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6-16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깨갱이어요 덕분에 저도 정약용 공부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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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부터 무쟈게 덥더니, 어느덧 유월인데, 더위 걱정이 가장 크다.

한창 여름이 되면 기온이 50도나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이란 말이다.

몸이 더우면 마음도 더워지는 법, 짜증이 늘어나고 불쾌지수가 높아만 진다.

몸도 덥고, 마음도 더운데, 세상까지 더우면, 할 말 없음이다.

몸, 마음, 세상 무엇 하나라도 시원하게 하자.

자연 현상을 우리가 어찌 막겠나? 마음이라도 시원하게 하자면,

시원한 세상을 만들자면, '독서'가 좋은 방법이지 싶다.

자! 무더위에 대비하는 우리의 독서 목록을 뽑아보자.

 

과학>기초과학/교양과학/정신과학

<우리는 왜 짜증나는가> - 존 C. 로빈슨

여름. 습도는 높고, 날씨는 덥고, 땀은 흘러내리고, 불쾌지수 팍팍, 짜증 이빠이~~~.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나는데, 이 짜증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면, 무더위를 이겨내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짜증이 일어나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단다. '짜증나지 않게' 어려운 말 쓰지 않고 일상적 사례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원인을 알면 해결책도 생기는 법. 출판사 제공 책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짜증, 피할 수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라!" 역시 이 책을 읽어도 피할 길을 없는건가? 미심쩍은 소개임에 분명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도 계속 짜증이 난다며 환불을 요구할 때를 대비한 전략이 아닐까 싶다. 아무렴 어떤가? 속아나보자!

 

 

 사회과학>정책/행정/조직

<무상교통> - 김상철

날도 더운데, 대중교통 이용하자면 더 짜증이 난다. 대중교통 피하고 택시타자니, 돈이 걱정이고. 이를 어쩌면 좋겠는가? 우리나라 대중교통 정책은 겨울에도 짜증나게 만드니, 연중무휴 짜증제조기임에 분명하다. 이를 타개하는 방법이 이 책에 있나 모르겠다.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이 '무상교통'이라는 듯 한데, 읽어 보고 좋은 방법이다 싶으면, 적극 지지하자. 버스를 꽁짜로 타? 꽁짜가 아니다. 이미 내가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인데, 무슨 공짜인가? 더 깊은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들어보자!

 

 

 

 

 

사회과학>인권

<우리는 군대를 거부한다> - 전쟁없는세상

여름에 가장 고생하는 이들 중 하나가, 군인이다. 어휴 진짜 100% 개고생이다. 군대에 갔다고 사람으로서 나는 군대를 안 가도 좋지 싶다. 가고 싶은 사람만 가게 하는 방법을 잘 연구해 보면, 찾아보면 나오지 싶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을 위한, 아니 그런데 관심없고 잘 모르는 우리들을 위한 책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책인데, 전부터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정의와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의 대략적인 흐름을 소개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나는 양심적인 거부 뿐만 아니라, 그냥 가기 싫은 사람들의 거부도 존중되어야지 싶다. 사회적 논의가 점차 넓어져야 할 부분이다.

 

 

 

 

예술/대중문화>건축

<못된 건축> - 이경훈

도시에 살다보면, 가뜩이나 무더운 여름, 더욱 짜증나게 하는것이, 무식하고 무참하고 흉물스런 건축구조물들이이다. 빼곡히 쌓인 쓰레기더미처럼 그런 건물들을 볼때면 짜증만 난다. 그런 무식한 건축물이 도시를 더욱더 뜨겁게 만드는게 아닐까? 저자는 아마도 그런 건축을 못된 건축이라 명명하는듯 하다. 이 도시를 시원하게 뜯어고치는 길을 이경훈이라는 저자가 제시하고 있지 싶다. 그 시작을 인천부터 해주면 좋지 않을까? 더불어 무한 열기를 내뿜는 도시는 아스팔트도 어찌 했으면 좋겠는데, 아스팔트를 대체할 수 있는 그 무엇은 없을까? 그런 얘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해서, 문득 궁금해졌다.

 

 

예술/대중문화>대중문화론

<탐정사전> - 장경헌, 김봉석, 윤영천

마지막 무더위 대비책으로는 탐정이다. 흥미진진한 탐정소설로 무더위를 떨쳐내자는 그런 식상한 대책이 아니다. 이 책은 영화, 드라마, 추리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는 탐정의 목록을 뽑아 정리한 사전이다. 실존의 여부는 잘 모르겠으되, 나는 가끔 탐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탐정이 없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기도 했고,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나라에 널린 흥신소분들이 이런 탐정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현재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제일 주인공 유병언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멋지고 명석한 탐정이 있어, 잠적한 유병언이를 찾아내서 5억을 타갔다는 소식을 들으면 한결 짜증이 덜해지지 않을까? 이놈의 유병언이를 얼른 잡아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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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06-19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증과 무상교통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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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시골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도시에 오게 되었다. 시골서는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는 몰랐지만, 그 집의 식구가 몇이며 대소사는 무엇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반경 몇 키로 내의 이웃들을 거의 다 알고 지냈다. 도시에 와서부터는, 그리고 현재 내가 사는 집 앞뒤좌우 옆집의 이웃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이웃이 없고 마을 친구가 없다. 삭막한 도시.

 

  이 도시는 왜 삭막할까? 시골은 일과 생활이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생활을 한다. 반면 도시는 일하는 곳과 생활하는 곳이 다른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 생활의 공간은 대부분이 잠만 자는 공간인 경우다. 또한 이사도 자주하게 되면서, 여기가 '우리 마을, 우리 동네'란 인식은 약해진 듯 하다. 언젠가는 떠나갈, 잠시 지나는 공간일 뿐이다. 오래 머물 수 없는 공간.

 

  이런 공간에서 십 여 년이 넘게 생활한 나는 이제 어엿한 시티즌이다. 도시 사람. 시민이다. 이런 나에게 하비는 '반란'을 권한다. 데이비드 하비를 처음 경험한 건 <신자유주의>란 책에서다. 어느 책 모임에서 신자유주의를 주제로 토론하게 되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무슨 경제학자나 정치학자, 사회학자가 아닌 어울리지 않는 지리학자가 쓴 책이라는 걸 알고는 신뢰성을 의심하며 읽은 책으로 기억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리학이라는 것이 꽤나 넓은 범위를 다루는 학문이란 사실을 느낀 바가 크다. 그런 그가 이제는 반란을 말한다. 도시에서의 반란. 어쩌면 이 주제는 그가 전에 탐구했던, 그 실체를 까발렸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업이지 싶다.

 

  왜 반란을 하라는 거지? 이 도시를 왜 뒤집어엎어야 하는 거지? 이 책을 읽다가 잡혀가는 건 아닐까?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염려가 있지는 않은가? 위험한 책. 이런 두려움을 읽는 내내 느꼈다. 이 책은 마지막 장은 그 위험성이 가장 커보였다. '윌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그의 선언적 명령은 나를 두렵게 했다.(잡혀갈까봐.)

 

  하비에 의하면 도시는 공유재다. 이 도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이 도시에서 사는 모든 사람이 이루어낸 결과? 성과? 유산? 뭐 그런거다. 그런데, 이 도시를 소수의 사람들이 사유화하고 있다. 본래의 주인을 내쫓고 있다. 약탈이 일어나고 있고, 착취와 사기와 거짓으로 모든 걸 빼앗아 가고 있다.

 

  "1980~90년대 서울에서도 건설회사와 토지개발업자가 험상궂은 용역깡패를 동원해 달동네 주택을 대형 해머로 때려 부수고 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50년대부터 가난한 사람이 거주하던 고지대 토지가 1990년대에 이르러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현재 고지대는 온통 고층건물로 뒤덮여 있어 과거 야만적인 재개발 과정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p.51)

(우리나라 사례가 제시된 유일한(?) 경우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자본의 통제가 워낙 철두철미해서인지, 하비의 연구가 미진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모범적 반란의 사례로는 우리나라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빼앗긴 것을 되찾아야 한다고 하비는 말하고 있다. 그 빼앗긴 것. 그것은 이 도시를 누릴 권리, '도시권'이다. 그래서 하비는 서문에서부터 제1장에까지 '도시권'을 말한다. 이 도시권을 그들이 약탈해 갔고, 그것은 원래 우리의 것이고, 그것을 이제부터 찾아와야 한다고 말이다. 제2장에서부터 제4장까지는 그것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증명하면서 우리가 왜 도시권을 찾아와야 하는지를 쪼금은 어렵게(나한테는 어려웠다.) 이야기한다. 그리고 제5장에서는 어떻게 도시권을 찾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내가 주목한 부분, 그리고 열심히 읽은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반란의 방법론.

 

  "좌파는 세계시장에서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그 대안도 만들어내야 한다. 또 협동적 노동자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민주적이고 집단적으로 결정하고 운영하는 능력도 길러야 한다."(p.218)

 

  그러면서 하비는 '새로운 도시혁명'의 방법을 제시한다. "파업에서 공장 점거에 이르는 노동자 중심 투쟁은 주변 민중세력이 지역사회와 공동체 차원에서 대규모로 결집해 강력하고 활기차게 지원할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노동자와 지역 주민 사이의 끈끈한 연대"를 구축하라고 말한다. 더불어 "연대를 구축하고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식적 노력이 꼭 필요하다." 또한 노동 개념의 변경도 필요하다. "점점 도시화하는 일상생활의 생산과 재생산에 꼭 필요한 노동이라는 넓은 의미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란의 구체적 방법은 무엇일까? 하비는 솔직하게도 "그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무책임해 보이지만, 그 방법을 우리모두가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는 게 아닐까 싶다. 고기가 아니라 낚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고기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혁명적 상황에 놓인 도시의 정치적 실천 사례를 검토"하는 작업에서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하비는 말한다.

 

  하비는 제7장(마지막장)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월스트리트당이 복수의 여신과 만낟다'에서 월스트리트의 탐욕과 부정, 약탈과 착취, 거짓과 범죄를 가열차게 고발한다. 하지만 이에 맞서 지금 현재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비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면서 반란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월스트리트당의 전성기는 끝났다. 처참한 몰락만이 남았다. 우리는 폐허 위에서 대안을 구축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이는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의무, 피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의무이다."

 

도시권을 되찾자, 도시에서의 반란은 신자유주의와 자본에 맞서 싸우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민중의 연대, 협력, 공동체 등등. 어쩌면 이 하비의 선동은 그간의 노동운동의 당위를 주장하는 다른 이야기들과 크게 다를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같은 이야기들의 반복. 그러나, 나는 마지막 선언에 담긴 하비의 말에서 자신감을 보았다. 막연한가? 그 막연함이 우리를 반란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막연하고 답답하고 먹먹하고 비참하고 처참하며 말이 안 되는 현실이기때문에 우리가 '반란'하는 것이겠지. 반란의 역사는 다 그런 식이었다.

 

사족: 이 책의 번역이 많이 아쉽다. 사소한 부분들에서의 실수가 많이 보인다. "이를테면 페미니스트는 교외와 교외형 생활양식 때문에 매우 불만스럽다고 선언했다."(p.36)에서 처럼 잘못된 조사가 사용되었거나, 문장의 호응이 맞지 않는 등의 실수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p.35 "그 방법 무엇인가는" 은->이

p.59 "통상적 범위를 넘어는" 넘어는->넘어서는

p.105 "부동산 소유자 개입되었다." 소유자->소유자가

p.114 "19세기 후반부터 도시 개발은 항상 투기적 성격을 띠었지만, 중국 경제 발전에서 엿보이는 투기의 규모는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에서 나타났던 그 어떤 투기의 규모와도 차원을 달리 한다. 그럼에도 글로벌 경제에서 흡수되어야 하는 과잉 유동성도 전례 없는 규모인데다 나날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의미상 '그럼에도'는 '게다가' 정도가 아닐까?

p.134 "온갖 용도의 공간 갖춘" 의->을

p.150 "이 문제는 오스트롬의 주장은 물론 급진 좌파가 공유재 문제를 두고 내놓는 다양한 제안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 주술 호응이 맞지 않는다.

p.175 "그러고는 두 가지 요인 덕분에" 요인이-> 요인

p.230의 각주 번호는 2가 아니라 25다.

p.235 "창출을 추진하면서 옹호한 구상과 비슷한다." 비슷한다->비슷하다

p.241 "완강한 엘리트(특히 산타크루주 시에 몰려든 무리)는" -> 둘 중 하나는 빼야한다.

p.251 '라르' ->지금까지 계속 '라자르'라고 했다.

p.272 "모든 제도정치 짓눌려" 제도정치->제도정치에

 

내가 찾은 건만 무려 13개다. 더 찾아보면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더욱 아쉬운 것은 번역가가 번역을 덜 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한국말로 번역할 때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서인지는 몰라도 '프리캐리아트'라든지, '리버테리어니즘', '뉴어버니즘', '레버리지', '인프라스트럭처', '인클로저할 수 없을 때', '거버넌스하는 데', '코포라티즘' 같은 단어들은 번역을 해 주든지, 번역을 안 할 거면 영어라도 병기를 해주든지 해야 했다. i'm happy를 나 해피해라고 번역하는 듯해서 언해피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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