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짧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책을 읽어오면서 간간히 드는 의문은, 도대체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하는 것이다. 소용이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를 테면, 공허한 시간을 때운다거나 지적 허영심을 채운다거나 혹은 폼을 잡는다거나, 이런 잡다한 소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런 소용들에 의해 책을 읽고도 남는 의문은 "남는 게 없다"는 아이러니다. 책을 읽어도 남는 게 없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읽었지만 읽지 않은 것, 결국 비독서에 포함될 터이다. 자랑같지만 나도 지금까지 적지 않은 책을 읽어 왔는데, 솔직히 남는 게 얼마 없다.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읽어왔지만, 결국 공허한 것은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런 의문은 때때로 책 읽기를 멈추게 하고, 한번씩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무소용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만 같아서, 다시 이렇게 물어본다. 그럼 '어떻게' 읽어야 그나마 남는 무엇을 건져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책을 읽을까는 고민하면서 그 어떻게를 알려주는 '책'을 찾아다니는 역설적 행동을 해보기도 했다.

이른 바 '메타 독서'에 관한 책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내가 찾아 본 많은 것들 중에 그나마 도움을 받았던 것이 박민영의 『책 읽는 책』이었다. 이 책은 거의 고전과도 같은 『독서의 기술』이란 책의 내용을 보다 현대적이면서 실용적이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재적용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민영의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책 읽기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거기서 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멀티 독서'란 개념이다.(그 책을 찾기도 귀찮고 해서 감만으로 '멀티 독서'라고 했는데, 정확한 용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박민영이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니까 한 권의 책을 읽고서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그 책의 주제나 내용, 소재, 작가에 연관지어 같은 주제나 소재를 다룬 책이나,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섭렵하는 방법이 바로 멀티 독서다. 그러면서 그 주제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고, 독서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독서의 기술』에서 말하는 방법과 그다지 다르지는 않은데, 박민영의 책에서는 보다 실전적으로 쉽게 그에 대한 방법을 안내해 주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드는 회의는 그러한 방법도 (사실 그런 독서 자체가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하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을 연이어 읽더라도, 그 주제에 대한 내 지식을 강화시키고 넓혀주는 것은 그 다양한 많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로부터 직접적으로 연유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왜 그런가를 고민해 봤는데, 답은 간단했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 어느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책을 좀더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죽 해오던 차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이 책 『책을 읽는 방법』을 읽게 됐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책을 읽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첨언하면, 아마도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어떻게? 히라노 게이치로의 대답은 비교적 간단했다. 천천히. '슬로 리딩'하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많은 책을 읽으려면 허영심을 버리고, 한 권이라도 뼈 속까지 쪽쪽 빨아 먹듯이 읽으라는 것이다. 이 생각의 연유 또한 간단하다. 세상에 쏟아지는 책들은 무수히 많고, 평생을 책에 빠져 살더라도, 그 많은 책들의 단 1%도 읽어내기 힘들다. 그렇다면, 단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책 한 권 속에는 글쓴이가 읽은 수십 수백 수천 권 분량의 책이 압축되어 담겨있기 때문에, 그 한 권을 제대로 읽으면 수십 수백 수천 권의 책을 읽은 것과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돼 보이는 상상을 주장하고 있다.

내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주장을 허황돼 보인다고 말 한 데에는, 그가 주장하는 방법이 이미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독서의 이상적 방법을 우리는 초중고 국어 시간이나 독서 시간에 이미 다 잘 배운 바 있다. 요점정리 잘 돼서 국어 문제집에도 다 나와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른 바 '독서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하는 것도 전혀 특이한 것은 없고 우리가 다들 배웠던 독서의 방법이었다. 말하자면 히라노 게이치로는 니들이 배웠던 '독서의 정석'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학에도 정석이 있다. 사실 정석(定石)은 바둑에서 유래한 말인데, 어떤 형태나 상황에서 흑백 간의 정해진 운석, 그리니까 일정한 수순에 따란 착수 방법을 말한다. 원리나 방법을 일컬을 때 흔히 정석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내가 고등학교 때 정석이라는 수학책을 풀어본 적이 있었는데, 결국은 수학을 포기하게 됐다. 이유인 즉, 이 정석이란 놈을 풀면서는 시간도 많이 들고, 비효율적인 것 같고, 지루하고 답답하고, 미련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원리, 원칙이라는 것이 얼핏보면 미련해 보이는 법. 독서의 정석을 말하는 이 책 『책을 읽는 방법』도 미련해 보이긴 마찬가진데, 히라노 게이치로는 당당하게 미련해지라고 말하는 듯 하다. 슬로우 슬로우, 느리게 느리게, 급하게 읽어 무엇하리. 저자 히라노 게이치로도 한때, 자신의 그런 느린 독서가 못내 걱정이었던 것 같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아 가며 물어봤더니, 다른 사람들도 사실은 자신과 다르지 않게 이런 느린 독서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렇게 당당히 말한다.

우린 사실, 적어도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빨리 읽고 얼른 다른 책을 또 읽어야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지 하는 분주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건 되지도 않는 꿈이고 허상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남들도 다르지 않으니 걱정 말고 느리게 느리게, 그러면서 최대한 '제대로' 책을 읽으라고 내 어깨를 다독여 주고 있다.

이 책 『책을 읽는 방법』을 91쪽까지(제1부 '양에서 질의 독서로―슬로 리딩 기초편', 제2부 '매력적인 '오독'의 권장'―슬로 리딩 테크닉편) 읽으면서 내내 이건 나도 아는데, 너무 뻔한 방법 아니야, 그걸 누가 모르나, 하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별것 아닌 게 별것이었다. 정석이란 건 아주 간단했다. 천천히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고, 글에 쓰인 중심 단어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해가 안되면 되돌아가 다시 읽고, 문장의 의미를 깊이 사색하고, 저자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대답을 찾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사전도 찾고, 내 경험에 비추어 이해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이걸 누가 모르냐? 누가 몰라서 못하냐? 그런데 알면서도 못하지, 언제 그걸 그렇게 읽고 있어? 이게 정석이 어려운 이유다.

제3부 '동서고금의 텍스트를 읽다―슬로 리딩 실전편'을 읽으면서는 생각이 차츰 달라졌다. 그 뻔하게 잘 알았다고 생각했던 방법은 그저 머릿속에 관념으로만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그 구체적 방법들의 적용을 몸소 보여주면서는 아 이 방법들을 이렇게 활용해야 하는구나, 이렇게 읽으면 더욱 재밌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실천편에서 보여주는 테크닉의 활용 방법들이 비록 부분적인 것이지만, 이러한 방법들을 내 스스로에게 적용해서 또다른 나만의 독서 방법을 숙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란 생각도 든다. 여전히 조급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너무나 '답답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수학을 참 잘했던 친구 녀석이 있었는데, 그 놈은 1년 내내 얄팍한 수학 문제집 한 권만 들고 다녔다. 1년 동안 그것만 푸는 듯 했다. 어떤 날은 한 문제를 가지고 하루 종일 고민하는 모습을 봤다. 이런 미련한 놈, 그런데 수학 점수는 언제나 만점이다. 이 '분주한' 세상에서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답답'하고 미련한 짓이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더 답답해 져도 손해될 것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조금 답답해져야겠다. 히라노 게이치로처럼.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은 뻔한 독서의 정석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책을 읽는 방법』에서 히라노 게이치로가 말한다. 동시에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 참 어려운 노릇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옛날 수학 잘하던 친구 놈처럼, 히라노 게이치로처럼, 책 한 권을 잡고, 한달이고 두달이고 물고 늘어져보자, 슬로우 슬로우, 슬로 리딩해 보자. 무턱대고 해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다면서, 자연스레, 슬로우 슬로우 다음에 나올 '퀵퀵'이 따라오지 않을까? 우선은 슬로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왼쪽이 조국 교수, 오른쪽이 김상하 변호사

“밝고 명랑한 진보정당 만들겠다”
[대담 연재②] 진보신당 비례대표 김상하 변호사 vs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

진보신당 비례대표 김상하 변호사와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의 대담은 주로 ‘어떤 당이어야 하는가?’로 모아졌다. 준비된 주제는 ‘법률’에 관계된 것이었지만, 80년대 학생운동의 '동문'이자, 삶의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로 산 '동지'였던 두 사람은 당 운동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대담을 일관했다.

김상하 후보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국가보안법 ‘올인’을 “균형 감각을 잃은 몰입”이라 비판했고, 조국 교수는 “남쪽의 진보 사상이 김일성주의일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단언했다.

두 사람은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진보신당의 창당 배경을 다수결로 모든 것을 독점하는 조직형식주의에서 찾고, “단일한 사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리고, 소수에 대한 배려를 통해 반대 경우의 가능성도 살려나가야 정권을 창출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런 취지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젊은 세대의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데로 나갔고, 김 후보는 “밝고 명랑한 문화를 가진 당을 만들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김 후보는 “적어도 일본 수준인 2:1까지는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며 추후 정치제도 개혁에 노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래는 지난 28일 오후 5시부터 7시 사이에 서울대 법대 교수연구실에서 이루어진 김상하, 조국 대담의 발언록이다. 

                                                             * * *


조국(이하 ‘조’) - 김상하 후보와 나는 법대 1년 선후배 사이로 Fides(신뢰라는 라틴어, 서울대 법대 학회지. 편집자 주)라는 써클에서 같이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김 후보는 학생운동의 맹장이었고, ‘왕뚝심’으로 불렸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근래 들어 하는 일이 달라진 이후에도 서로 마음의 교류는 있었다고 본다. 이번에 후보로 나섰다니 또 다시 놀랍다.

김상하(이하 ‘김’) - 당대표들이 비례대표를 예비내각 성격으로 구성하려 했기 때문에 20~30명의 변호사 당원 중 한 명은 나와야 했다. 여러분이 고사하시는 바람에 결국 저한테까지 ‘폭탄’이 돌아왔다. 법조계 지지 세력을 모으는 데 일조하고자 마지막 번호로 달라 그랬다. 어중간한 번호보다는 꼴찌가 더 눈에 띌 것 같기도 하고(웃음).

- 진보신당에 있는 변호사들을 대표하는 바도 있겠지만, 자신의 정치활동을 총괄하는 의미도 있지 않나?

- 그렇다. 2006년 지방선거 때 인천에서 출마했던 것의 연장일 수도 있고, 분당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새로운 진보, 올바른 진보의 대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사양하는 것보다 직접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법조계 조직화 위해, 새 진보 세우기 위해 출마

- 나 스스로 국가보안법 폐지론자지만, 민노당의 ‘국가보안법 올인론’이나 ‘2중대론’처럼 국가보안법 철폐가 진보운동의 최상의 슬로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민노당이 그것에 매몰되었을 때 그보다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그 활동 자체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나 자신 국가보안법으로 두 차례나 수형 생활을 한 피해자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지켜지고 비정규직 문제 등이 제기된 상황이라면 어느 한 쪽에 몰입하기보다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하는데, 당시에는 너무 몰입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정권 초기가 아니라 중기였기 때문에 더 이상 몰아붙이지 못해 성과를 내지 못한 한계도 있었다.

냉전과 독재의 유물인 국가보안법은 청산해야 하지만, 그런 과제의 크기와 중요도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 옛날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민주노동당은 PD가 만들고 전국연합이 들어오면서 민노당 내부 세력 구도가 바뀌었다. 그리고 친주사적, 민족주의적 진보정당과 대중적 기반은 취약하지만 반주사적인 진보신당으로 갈라졌다.

주사파에 대한 진보신당의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남쪽의 진보 사상이 김일성주의일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또, 진보정당이란 것과 진보적 노동운동이 구별되지 않았던 것 아닌가? 민주노총과는 당연히 결합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결합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정치적 외피에 불과했던 것 아닌가? 노동조합운동과는 별개 논리, 별개 문법의 진보정당을 결집시키고 조직화하는 데 실패한 것 아닌가?

옛 민주노동당이 정당정치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가 생각해본다. 전민항쟁이나 연합전선론 같은 잔재가 많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단병호 의원은 민노당을 탈당하면서도 진보신당에는 합류치 않았다. 진보신당이 단 의원의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나? 대중적 기반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단병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나?

- 상당히 어렵다. 민주노동당이 창당되면서 진보정당운동의 기반이 잡혔는데, 자주파는 조금 뒤늦게 필요성을 느끼고 참여했다. 그분들이 들어오면서 당세가 확장되고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당비대납이라거나 위장전입 같이 부르주아 정치인과 차이 없는 조직전술을 구사하면서 다수파가 됐다. 40%의 소수 의견을 배려하거나 합리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배제했다. 당을 형식화한 것이다.

정치사상적으로도 옛 NLPDR론이 현재의 남한에 현실 적합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게 정치노선이 빈약하다 보니 통일운동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당대회에 참석해, 일심회 제명에 반대하는 것을 보고 법률가로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다.

- 저도 당대회를 봤는데, 자주파 분들은 국가보안법 피해자이면 노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옳지 않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이라는 것과 당규를 위반했다는 것을 혼동하지 않았나 싶다.

- 당규를 위반하면서 당간부 뒷조사하고 보고했다는 것은 당을 오도한 것이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탈당했어야 했다. 스스로도 안 하고, 최고위원들도 조치 취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공안세력 아니냐는 반박을 가했다. 결국 분당까지 치닫게 한 연합파가 초가삼간 다 태운 꼴이다. 정확하게는 분당을 강제한 것이다.

- 일심회를 옹호하는 분들의 멘탈리티, 그러나 공개하지 않는 생각은 북의 공작원이면 통일 사업하는 것 아니냐는 것은 아닌지? 확실히 다른 사회구성체인 두 나라를 자신의 의지로 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지?

51%로 모든 것을 다 먹는 표결 만능주의로는 정당이 깨질 수밖에 없다. 51%를 가진 다수파가 소수파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는 진보신당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 브라질노동자당을 보면 다양한 사상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낳더라. 우선 단일한 사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려야 한다. 진리가 51%로 확보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소수에 대한 배려를 통해 반대 경우의 가능성도 살려나가는 것에서만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 아니겠냐. 진보신당에서는 정파들이 상호 배려하고 양보해야 한다.

진리는 51%가 아니다

- 민노당 쪽에서는 ‘진보적 인텔리 정당’이라는 비판을 하던데, 어떻게 극복할 생각인가?

- 진보신당은 인텔리 정당이 아니다. 장애인이 공동대표를 한다든지 하는 예도 있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대학을 졸업했다 할지라도 20여 년을 노동자로 활동해왔고. 금속노조, 공공노조, 사무금융노조에서는 광범위한 지지세를 얻고 있고, 울산 인천 등의 주요 공단 지역에서도 큰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 민노당 모두를 주사파라 딱지 붙이기는 곤란하다. 주사파는 아니면서도 헌신적인 분들이 많이 있는데, 진보신당은 왜 그분들 마음을 얻지 못했느냐?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

- 맞다. 소박한 마음으로 통일과 노동해방을 바라는 평당원들이 많다. 이분들도 진보신당을 관심있게 지켜보며 잘 되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어떻게 되는가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이런 분들과는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 김 후보가 달고 있는 진보신당의 뱃지 색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민노당이 포괄하지 못한 진보세력이 많이 있다. 예전에 민노당 간부가 “동성애는 자본주의의 퇴폐적 산물”이라 말했던데, 진보신당은 성소수자, 생태 같은 세력의 포괄에 대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 예전에 기본계급만 강조하고 그 외 사회적 약자들을 소홀히 한 것을 인정한다. 진보정당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계급 이외의 각계각층 약자를 보듬는 운동이고, 그들에게 당활동 참여의 계기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열린정당으로 활동하겠다.

당에 참여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걸맞는 역할을 배치하지 못했다. 이런 점도 고쳐나가야 한다. 당이 사회여론을 주도할 수 있게 지식인들을 포괄해야 한다.

단병호 의원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노동에 대의원을 할당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수많은 노동분회가 있었지만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고 실제로는 대상화, 소외됐었다. 본격적인 창당은 총선 후에 현장노동자들과 함께 노력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쿨’하고 현대적인 문화 가져야

- 진보란 계급적 가치를 국민적 가치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008년 한국 현대사회에 맞는 문화를 가져야 한다. 일제시대의 민족해방문화처럼 지금에 맞는 문화. 학번 따지고 서열 따지는 전근대적 운동권 문화로는 안 된다. 요즘 말로 ‘쿨’해야 한다.

- 운동가의 엄숙주의를 가지고는 사람들과 결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보정당다운 청년정신과 패기가 있어야 한다. 원리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듯도 하다.

지금 진보정당은 40대의 지지는 받지만, 젊은 층 지지는 못 받는다. 이 세대에게 진솔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한다. 진보신당 창당대회 때 보니 락 공연도 하고 나름 노력하더라. 문화적 계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 학교에서 19세~23세 사람들만 만나는데, 그들은 생각이 다르다. 학생이 아니라 노동자이더라도 젊은 세대 노동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자와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두 진보정당은 여기에 접근 못하고 있다. 두 당에는 ‘빨간 머리띠 시위’ 그런 모습만 있다.

김 후보, 춤도 배워 보시라. 노래방에서 어떤 노래 부르나? 옛날 노래만 부르지 않나. 우리들도 나훈아, 남진 노래 부르는 윗세대를 ‘꼰대’라 놀리지 않았던가. 개인주의로만 비추어지는 젊은 세대들은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다. 예전에는 대학생이 엘리트였지만, 지금은 대학 나와봐야 취직도 안 된다.

- 독일에 여행갔을 때, 락페스티벌을 하는 것을 보니 축제 중에 모여 토론도 하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소주 먹는 것밖에 없지 않나. 독일처럼 지역에서 다양한 만남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밝고 명랑한 문화를 가진 당을 만들겠다.

- 노래든 꽃꽂이든 지역에서 소모임과 생활정치를 퍼뜨려야 한다. 진보정당은 중앙정치에는 강한데, 생활정치에는 약하다. 비주얼에 강한 젊은 세대들은 딱 보면 안다. “쟤는 재미 없어”, 그런다. 386 정당이 돼서는 안 된다. 만약 국회에 입성한다면 어떤 분야에 힘쓰려 하는가?

비례의석, 일본 수준은 돼야

- 지금 조망하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는 고용불안이라 본다. 대학교 졸업해도 정규직 들어가기 어려운 상황을 고치기 위해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것에 최우선하려 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를 더 구체화해야 하고. 최근 이야기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와 등록금 문제에도 열심히 움직이겠다.

특히 정치제도 자체에 신경 쓰고 싶다. 국회의원이 지역의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일하도록 하고, 국회에 다양한 계층의 이해를 반영하려면 비례의석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독일처럼 1:1이 바람직하지만, 적어도 일본 수준인 2:1까지는 비례의석을 늘려야 한다.

- 2007년에 보건의료노조는 임금인상분의 1/3을 비정규직에게 돌렸다. 비정규직보다는 강자인 정규직 노조들이 법 이전에라도 이런 모범을 따라야 한다. 진보신당에서도 이런 사례를 권해야 한다.

- 비슷한 사회연대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단위 기업 안에서 비정규직을 우선하거나, 사회적 기금을 만들거나 해야 한다. 진보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안에서 더 풍요로운 사람이 덜 풍요로운 사람을 도와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 <끝>

진보신당 홈페이지 http://www.newjinbo.or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갔다가, 진보신당(http://www.newjinbo.org/) 비례대표 후보를 나선 김상봉 교수의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기사가 있어 옮겨 온다. 이쯤되면, 이번 총선에서 아 某 군은 진보신당을 찍어야 할 것 같다. '앗 이런 기사가 있었어요?'하면서 가장 관심을 표할 사람 말이다.

'현실참여' 철학자, 총선에 나서다
[인터뷰] '학벌 없는 사회' 김상봉 운영위원

학벌없는 사회 운영위원이자 전남대 철학과에 재직 중인 김상봉 교수 ⓒ 공숙영

"지금까지 철학은 세계를 해석해 오기만 했다.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낯설지 않은 문장이다. 읽고서 주먹을 불끈 쥔 청년들이 많았다. 저 문장을 쓴 철학자는 쓰면서 주먹을 불끈 쥐었겠지만. 지난 23일 내가 만난 이 사람 역시 저 문장을 읽고서 주먹을 불끈 쥔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오늘날 이 땅에서 철학자는 과연 무엇으로 사는가, 이 사람을 만나면서 새삼 다시 묻는다. 김상봉, 3년 전부터 광주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이 사람. 
 
- 전남대에서 교편을 잡으신지 이제 3년째시죠?

"네,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독일에서 칸트 철학을 연구하고 돌아온 김상봉은 1999년 해직교수가 된 후 약 6년 동안 '광야'에서 지내다가 2005년 7월 전남대 철학과에 교수 전원일치 결정으로 특채되었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아마도 한국 대학사회 '초유의 일'이자, 사람이 개를 문 것과 비슷한 '대사건'"이라며 "전남대 철학과 교수님들이 보여준 애틋한 마음이 진심으로 고맙다"는 뜻을 밝혔다.

전남대 철학과는 2007년 봄, 교수부터 학생까지 합심해 전남대가 정몽준 의원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려는 계획을 철회하게 만들기도 했다. 

- 광주에서 청소년철학교실을 운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곳인지 알려 주십시오.

"2006년부터 시작했어요. 중학생반과 고등학생반이 있습니다. 철학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문학적 교육을 시도하고 있는데, 저는 도우미고요. 철학과 제자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최근에 여러 학자 분들과 함께 광주 5·18항쟁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연구한 책을 내셨는데요. (김상봉은 이 책에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었고, 이 제목은 책의 부제가 되었다.) 그 전부터 광주항쟁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해 오셨고요. 5·18의 독보성은 공동체의 완성을 통해 개인이 완전해진다는 데 있고, 인류가 지향할 것은 개인적 완성이 아니라 공동체적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공동체적 완성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때 공동체란 '만남'을 의미합니다. 만남이 없으면 주체성도 없습니다. 일회적 만남이 아니라 규정된 형식과 외연을 얻을 때 만남은 비로소 공동체가 됩니다. 공동체적 완성이란 만남의 온전함을 뜻해요. 만남의 네트워크를 지향하는 거지요. 사물화된 관념으로서의 공동체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광주 항쟁에서 그런 공동체의 이상적 전범을 보았습니다."

김상봉은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라는 철학자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이 모임은 작년 가을 삼성 특검법 도입 촉구 성명을 발표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이라크 파병 반대, 국가보안법 폐지, 송두율 교수 사건 등 주요한 시국 현안이 터질 때마다 계속 목소리를 내어 왔다. 철학자들이 연대하여 앙가주망 즉 사회참여를 하는 것이 놀라울 건 없지만 우리 풍토에서 신선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전국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PEN)'의 삼성 특검법 도입 촉구 성명 발표 직후 이뤄진 언론 인터뷰에서 김상봉은 강한 어조로 삼성을 비판한 바 있다. 

"삼성 족벌체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삼성이 망하겠습니까. 백번 양보해 삼성이 망한다고 해서 국가경제가 무너지겠습니까. 평소엔 세계 12위 경제대국을 자랑하다가도 매번 비리 척결 얘기만 나오면 유아기로 퇴행해버립니다. 언제까지 삼성의 협박에 끌려 다닐 건가요. 인간을 억압하고 노예화시키는 것은 국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도 할 수 있고 기업도 자본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이번 총선에서도 진보신당 비례대표 출마로써 '앙가주망'을 하고 계신데요.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수락한 거 아닙니다. 홍세화 선생께서 권유하시기에 정 제가 필요하다면 말석의 한 자리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학벌 없는 사회'의 공동대표 직을 맡아 달라고 청을 드렸을 때 홍 선생께서 흔쾌히 맡아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랬는데 제가 홍 선생의 권유를 마다할 순 없었지요. 홍 선생께는 늘 인간적인 존경심이 있습니다. 홍 선생이 전선을 열어가는 척탄병이 되고 싶다고 언젠가 쓰신 걸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고요." 

저서 <학벌사회>를 통해 한국 사회의 학벌구조를 질타한 김상봉은 학벌구조 타파를 위한 모임 '학벌 없는 사회'를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지난 19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진보신당 비례대표 간담회에서 김상봉은 학벌차별 타파를 위해서 총선 후보들이 약력을 소개할 때 학력은 소개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신당 비례후보인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정책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열린 '진보신당 비례후보 추천자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 진보신당 비례대표 간담회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을 인용해서 문둥이가 아이를 낳는 것처럼 어려운 여건에서 진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출마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상인들은 문둥이가 뭐 하러 아이를 낳느냐고 하겠죠. 문둥이도 사람이니까 사람으로서 사랑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고 함석헌 선생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힘든 여건에 처한 진보 세력을 문둥이에 비유해 봤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가만 있을 거냐, 그럴 수는 없다는 겁니다. 다른 분들도 많이 나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정권 출범 후 배달호 열사 분신 사건이 있었던 즈음(고 배달호 열사는 2003년 1월 9일 새벽 6시 30분 창원 소재 두산중공업 노동자광장에서 분신했다) 민주노동당에 가입했고 지금은 진보신당에 몸담게 되었는데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분당에 대해 제 의견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의 대립이 적대적 당파적 대립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피차간의 소통부재와 대안부재로 인해 빚어진 불가피한 객관적 결과라고 보입니다. 절대자본주의에 저항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아직 없습니다. 이 사회는 여전히 아래에서 통일을 과제로 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저는 종북주의자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왜 그런 흐름이 생기는지 현상만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종북주의적 흐름이 생길 수밖에 없는 객관적 필연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은 궁극적으로 지양되어야 할 잠정적 분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새로운 비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피차간에 겸손이 필요하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식의 일방적 자기주장보다는 과연 우리가 이 시대의 어떤 비전, 어떤 자기확신을 가질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상상할 때입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이명박 정권 출범 후 크게 두 가지입장이 있는 걸로 보입니다. 하나는 '비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당선되긴 했지만 그래 봤자 30% 정권에 불과하다는 '자위'입니다.(지난 대선 시 투표율은 62%, 득표율은 48.7%로서 환산해 보면 총 유권자 중 30% 가 이명박을  지지한 셈이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길게 보면 30년 주기로 민중항쟁의 곡선을 그립니다. 1894년 동학, 3·1운동, 해방정국, 5·18광주민중항쟁, 거의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지금은 새로운 항쟁의 시작을 위한 새로운 극복대상이 정립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국가체제와 억압기구가 정립되고 있는 겁니다. 

이명박을 보십시오. 현대건설 사장이었고 또 교회 장로입니다. 자본과 교회의 합일, 즉 신격화된 자본입니다. 자본의 마지막 단계가 이명박이라는 개인으로 생생히 구현되고 있습니다. 신격화된 자본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5·18체제의 말기인 것입니다. 유신말기와 비슷한 때입니다." 

지난해 10월 7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문학평론가 이명원과의 인터뷰에서 김상봉은 이미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금의 절대자본주의는 이것대로 새롭게 등장한 항쟁의 대상이다. 우리의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가로막는 새로운 지배자들이고, 새로운 항쟁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그런데 학자나 지식인들조차 아직도 민주화 또는 87년 체제의 망상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내가 전쟁상태 운운하면 '지금도 그 얘기하는 것이 너무 쌩뚱 맞은 얘기 아닌가. 아니면 너무 과격한 얘기 아닌가.' 이런 식으로 다들 섬뜩해하고 놀란다. 

이제는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 다소 기만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6월 항쟁의 성과로서 우리가 누렸던 경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그 자유로운 삶이라고 하는 것이 이대로는 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자본의 노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는 그 자본에 충실한 노예가 되도록 우리를 끊임없이 세뇌하는 학벌체제 속에서 경제적으로나 또는 정신적으로나 철저히 노예화 되어버렸다 라고 하는 걸 깨닫는 게 먼저다."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수락한 거 아닙니다. 홍세화 선생께서 권유하시기에 정 제가 필요하다면 말석의 한 자리 맡겠다고 나섰습니다." ⓒ 공숙영

- 국회의원 되고 싶은 마음으로 나온 거 아니라고 하셨지만 만약에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시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웃음)

"현실화되기 전에 가정법으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만약 당선되면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상의해서 결정해야죠. 그들을 가르치는 책임이 저에게 있으니만큼 일차적으로 학생들과 상의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어른들을 보면 왜 자기들은 희생하지 않고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는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제 제가 기성세대가 되었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된 마당에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학자가 되고 싶은 한편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 하려고 합니다. 철학은 약한 자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나서야 할 때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최소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년학생시민노동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이 시대의 주인이다, 나 같은 사람은 디딤돌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대들이 살아 나가야 할 세상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당신들의 역사를 만들기 바란다. 이렇게 말입니다."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분명한 어조와 논리로써 대화에 임하는 그의 진지하고 엄숙한 얼굴을 보며, 그의 어머니가 그의 얼굴을 보고 "쥐어짠 빨래, 다리지 않은 빨래"같다고 했다고 그가 어느 대담에서 말한 것이 기억났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비로소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린 다음 엷은 미소를 머금고 사진찍기에 임해 주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질문할 게 있는데요. 철학자 김상봉 교수님 인터뷰할 거라고 했더니 며칠 전에 제가 인터뷰한 배우 김부선씨가 대마초 비범죄화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꼭 좀 질문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대마초 비범죄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 정도는 교양입니다. 자유니 자율성이니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를 갖고서 국가가 자본의 폭력은 방임하면서 왜 개인의 취미생활에 개입하고 간섭하여 개인을 억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가 진정 개입하여야 할 곳은 자본의 폭력이 발생하는 곳입니다."

김부선이 들으면 분명 기뻐할 대답을 남기고 그는 바쁘게 거리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학자는 '우는 사람'이라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씨알들을 위해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고 학자"라고, 김상봉은 자신이 그토록 존경하는 함석헌의 언어를 소개한 바 있다. 우는 사람으로 척탄병으로, 세계를 해석함과 동시에 변혁하기 위해, 여전히 주먹을 불끈 쥐고서 그는 자신이 가야 할 '철학의 길'을 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공숙영 기자는 인터뷰전문웹진 퍼슨웹(www.personweb.com)의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 대학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8-04-0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이에요? :)
 

지식ⓔ 1권에 소개된 참고 도서 목록


3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미국민중사 1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24,800원 → 22,320원(10%할인) / 마일리지 1,240원(5% 적립)
2008년 03월 31일에 저장
품절
001 Crazy horse
있는 책.
미국민중사 2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24,800원 → 22,320원(10%할인) / 마일리지 1,24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4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08년 03월 31일에 저장

001 Crazy horse
있는 책.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08년 03월 31일에 저장
구판절판
001 Crazy horse
커피의 역사- 개정판
하인리히 E. 야콥 지음, 박은영 옮김 / 우물이있는집 / 2005년 5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8년 03월 31일에 저장
절판

002 커피 한 잔의 이야기


3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Jade 2008-03-3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식e는 아직 안읽었는데 이 목록중에는 탐나는 것들이 몇 개 있네요.
 
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지식, 지식 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건 도무지, 괜찮을 수가 없다. 무슨 지식이 이래? 이런 지식은 영 심기가 불편해지고, 눈물이 나고, 부끄러워져서, 이녹이가 쓰던 썬글라스가 필요해 진다.(이녹은 홍길동이 준 썬글라스를 부끄러울 때나, 눈물이 날 때면 쓴다. 너무 단순해서 자기 눈에 보이지만 안으면 아무도 자기를 못 보는 줄 안다. 그래서 맘대로 부끄러워도 되고, 맘놓고 울어도 된다.) 그러나 이 지식을 알고 나면, 도무지 이 썬글라스로도 달랠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이라고 했다. 가슴으로 '감동'하면서 읽는 '智識'이라고 했다. '지혜로운[智] 앎[識]'이라고? 도대체가 이게 어떻게 '지혜로운 앎'이 될 수 있지? 어떻게 이걸 가슴으로 읽을 수 있지? 어떻게 감동할 수 있지? 운디드니에 묻힌 성난 말의 죽음이 어떻게 지혜로운 앎이 될 수 있지? 커피 한 잔에 담기 저 불합리한 이윤 착취를 어떻게 가슴으로 읽을 수 있지? 햄버거 때문에 파괴되는, 죽어가는 환경과 자연을 읽고 어떻게 감동할 수 있지? 이 모든 불편한 진실로부터 어떻게 우리를 지혜롭게 하겠다는 거지? 도통 난 동의할 수가 없는 '智識'들이다.

이런 걸 지식이라고 가슴으로 읽고 감동하기엔 너무나 불편한 진실들이다.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하고도 굶주리는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피부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받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539시간 동안 일하고 받는 임금이 고작 70만 600원인 이들이 있는 것은 또 어찌하고? 오늘도 어디선가는 외톨이로, 왕따로 어느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아이들이 있지는 않을까? 몇 개의 번호로만 남아 기억되는 5.18의 영령들을 무엇으로 위로하겠는가? 이런 것들은 담고 있는데, 어떻게 이게 한가하게 감동이나 하고 앉아있을 지식이겠는가?

제발, 이것을 더 이상 지식이라고 말하지 말자.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분노하고, 폭발하는 행동이 되자.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질질 짜면서 감동받고, 극장을 나와 좋았다면 그만이던 그런 싸구려 감동이 되서는 안되는 진실들, 이녹이의 썬글라스로도 감출 수 없는 이 거대한 불합리의 역사들, 여전히 착취당하고 억압받고, 굶주리고, 죽어가고, 고통받고, 미약한 힘으로 투쟁하는 그들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이상에는, 그들의 그 현실로부터 한가한 감동이나, 지혜로움을 얻는다는 것은 못할 짓이다. 감동할 시간도, 눈물 짤 시간도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주춤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어떻게? 이게 문제다. 이렇게 떠드는 나 조차도. 어쩌겠는가? 이런 불편한 진실들에 감동은 고사하고 애써 외면하고 모른체 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은 걸. 또한 어쩌겠는가? 너무나 불편해서 왜곡하고 포장하고, 숨겨버리는 인간들이 있는 걸. 그들이 가려놓은 세상에서 그저 나 편한 것에 만족하고, 나 배부른 것에 만족하고, 나 대접받는 것에 고마워하며 사는 사람들이 우린 걸. 그러는 동안에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불편한 진실의 원인자들이 되는 걸. 나 조차도.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울음을 참느라 애썼고, 감동하지 않으려고 용썼으나, 울지 않을 수 없었고, 마구마구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밖에는 내가 뭘 어찌 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읽고 마구마구 울고 있는 것 밖에는, 혼자는 그냥 화만 내고 말 수 밖에 없는, 그저 그럴 수 밖에 없는 내가 아닌가? 우리는 아닌가? 아 도무지 괜찮지가 않다. 괜찮지가 않잖아!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왜 이걸 智識이라고 했을까? 왜 가슴으로 읽으라고 했을까? 감동을 느끼라고 했을까? 그래, 가슴으로 읽고 감동했으니 된 걸까? 그런 난 지혜로운 앎은 얻은 걸까? 그럼, 知識이 아니고 智識인 이유는 뭐지? 智에는 知가 갖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세상을 밝혀주는 태양[日]이다. 이 불편한 진실로부터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知가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따뜻한 햇빛으로서의 智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그래서, 더, 괜찮지가 않다. 괜찮지가 않잖아!

이 리뷰를 너무나 하여 같이 아름다운 분께 바칩니다.ㅎㅎ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03-30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아는것으로 끝낸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데... 어떤 행동, 어떤 실천을 해야 할지... 그저 부끄러울 뿐이군요.ㅠㅠ 그래도 이 책 읽고 하루 석 잔 마시던 커피를 끊었어요.

멜기세덱 2008-03-30 23:19   좋아요 0 | URL
아!! 커피를 끊어야 되는데......
순오기님 감사해요....ㅎㅎㅎ

bookJourney 2008-04-09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하여 옥 같으신 분께 ~ 멋지십니다! 리뷰를 쓰신 분도, 그 리뷰를 받으실 분도 ~ ^^

'知識'은 사실이나 정보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고, '智識'은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군요.
이번 주 내내 구호로만 외치고 있는 '禁 커피', 차마 끊지는 못하겠고 하루 한 잔으로 줄여라도 보아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