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망국적 쇠고기 협상으로 발발한 촛불은 꽤 오래도 탔다. 촛불은 심지를 태우고 초를 녹이면서 탄다. 심지는 다 타고, 초는 죄다 녹아내리고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애타는 마음은 꺼질 기미가 안 보인다. 이 마음 어디다가 달래나 주라고 하소연할 곳도 보이질 않는다. 종로, 아니 시청 갔더니 닭장차에 막히고 명박산성에 막혀서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다. 이들이 든 촛불은 점점 스러져가지만, 지친 시민들은 저마다 집으로 가지만, 그래서 모인 이들이 몇 천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이제는 촛불은 꺼도 돼"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참 의문이다.

최근 한나라당은 여론이 반전되고 있다는 자체 조사 및 몇몇 신뢰받지 못할 언론의 보도 등을 인용해 촛불을 좀들 끄시라고 협잡을 부리고 있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도 수그러들었던 불법시위 근절, 단호하고 강력하게 대응, 등등의 단어들을 씨부리고 있다. 얼마 전부터 뉴라이트 단체 등 (수구)보수 단체들이 거짓 시위 그만두라, 불법 선동, 빨갱이 타령하면서 으르렁 대더니, 이에 힘입은 우리 이명박 정부 똘마니들이 촛불 이제 끄시라고 한다. 그럼, 이쯤하면 되었으니 하고 우리 촛불을 꺼봄은 어떨까?

"이제는 촛불은 꺼도 된다"며 정부를 믿으라고 하는 소리를 믿건 말건, 지치기도 했으니, 촛불을 한 번 꺼보면 어떨까? 이 끝없이 타는, 지치고 지친 가운데서도 여전히 타오르는 촛불은 끄면, 과연 그렇게 촛불 끄라고 요구하는 이 정부 인사들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내가 볼 때, 우리는 이 촛불은 꺼도 좋을 것이다. 미심쩍은 미국산 쇠고기를 그냥 주는 대로 받아 먹기는 찜찜하지만, 의료비가 좀 비싸지는 것이 찝찝하지만, 좋지도 않은 수돗물값이 올라 물 좀 들 먹고 사는 것이 갑갑하지만, 매일처럼 들려오는 땡박뉴스는 티비를 꺼버리면 될 것이지만, 자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도 촛불은 끈다면, 나는 우리가 이 촛불은 이제 꺼도 좋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촛불은 지금, 당장 끈다면, 그걸 이 정부, 이 여당이, 저 발발대는 뉴라이트들이, 가스통 들이대며 알아듣지 못할 소리, 괴성을 짖는 것들의 소리 그대로 받아들여 이 촛불은 끈다면, 난 단호히 말하건데, 그들은 더 무서운 불을 볼 것이다.

나는 "이제 우리 촛불을 한 번 꺼보입시다"고 말하고, 이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이 촛불은 껐다가, 장작을 모으고, 작대기를 모으고, 헝겁을 휘감고, 기름을 부어서 거대하고 커다란 횃불을 만들어, 우리 언제고 이 자리에 다시 모일 날 있을 것이라고. 그 날이 오면, 이를 잡고 쥐를 잡자고 초가산간이 아니라, 저 푸른 지붕 달린 집을 태울 것이라고. 그래서 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이제 횃불은 들 때가 온 것이다."

얼마 전 어떤 글에서 박노자 선생은 이명박이 하야할 때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도 이전부터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야가 편할 것이라고.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은 탄핵대상이기 이전에, 하야의 주체일 것이라고. 그게 본인한테 득될 것이라고. 하야하면 감옥은 안 보낸다고.

앞으로 이명박 정권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것을 할 수는 있으되, 모래위에 쌓은 토성, 그야말로 하루만에 철거될 명박토성일 따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가 할 많은 이들이, 이렇게 스리살짝 꺼진 촛불을 횃불이 되서 살려낼 것임을 경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촛불이 수그러드는 것같으니, 기어이 좌파선동이니, 빨갱이니, 반국가단체의 조작이니, 국가정체를 뒤흔든다느니, 한미동맹에 위협이라느니, 기타등등, 별 같지도 않은 말들은 또다시 붙여댄다. 든든한 우군 할아버지 병사들을 얻어 기세가 등등해진 것인지, 21세기 국민과의 전쟁에서 가스불 들이대면 이길 것이라고 확신하는지, 다시금 그 생각 모자란 잔머리를 굴려대기 시작하니 참 가소롭다. 자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그 잔머리가 원하시는 대로, 난 이 촛불을 꺼 주어도 좋겠다 싶다. 머지 않아 횃불을 들고 달려나올 그날이 보고싶다.

이명박은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불법시위를 엄단하시겠단다. 그 불법시위가 꼭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니까 저 할아버지의 가스통 각목들고 나온 시위가 꼭 그 불법시위인 것만도 아니겠지만, 여하간 촛불시위가 주 타겟인 것은 분명해 보이는 상황에서, 정말 이 촛불시위가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그런데, 이명박이 말하는 국가정체성은 무엇일까? 아니 그 국가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나라당에? 뉴라이트에? 청와대에? 고엽제피해자분들께? HID 단체에? 아니면 미국에?

잘 들으시길 바란다. 우리나라 국가정체성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노래하며 부르짖는 저 촛불에 있단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신중히 하라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그놈의 정체성이 있음이다. 그 정체성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미국에 갖다받치는 저 푸르디 푸른 집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엄단해야할 것이다. 엄단은 촛불처럼 미지근한, 그리고 아름다운 불로는 좀 싱겁다. 그래서 촛불은 꺼도 좋음이 있다. 그들에게 이제 횃불을 던질 차례가 곧 올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나의 충언을 듣지 않으시겠지만, 그래도 난 대통령께서 두 번째 하야하는 대통령이 되셔야 한다고 전하고 싶다. 그게 아름답지 않겠는가? 아니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모양새는 좀 낫다. 신뢰를 잃은 정부, 이 정권은 더 이상 갈 데를 내 알지 못한다. 그땐, 온 국민들이 횃불을 들 때에는, 당신들이 저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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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 미련한 인간이 그렇게 할 리가 없지요~~~ ㅠㅠ

마늘빵 2008-06-2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멜기님 화났다. 명박이 너 큰일났다 이제.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읽는김에 프레이리 저작들을 모아본다. 의외로 조금이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 1921년 브라질 레시페에서 출생한 프레이리는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인간해방으로 보고 이를 실천한 20세기의 대표적 교육사상가이다. 저개발국인 브라질에서 성장하면서 일찍이 굶주림과 투쟁하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하고 문맹퇴치 교육에 힘썼다. 1950년대에는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면서 독자적인 교육방법을 개발했고, 1963년에는 브라질 국립 문맹퇴치 프로그램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1964년 군사쿠데타 때 체제 전복 혐의로 투옥되었고, 석방된 뒤 국외로 추방되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문맹퇴치 프로그램의 입안을 돕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1979년부터 상파울로 시 교육비서관을 지내다가 몇 해 뒤 사임하고 교육분야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20여 편의 책을 썼다. (알라딘 저자 소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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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6-24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멜기님은 뭐든! ^^

2008-06-25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니야 2008-06-28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공상 이런책을 읽어야할텐데 도무지 재밌어보이는책은없네요................. 뭐가 읽을만한가요 일단 ㅠ.ㅠ ?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고전예술의 세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진중권이 뭐하는 사람인지는 대충 들어 알고 있다. 뭐, 미학자라던가? 모 대학에서 미학관련 강의를 하는 교수(겸임교수)시다. 그런데 아마도 요새 많은 사람들, 촛불시위에서 마이크 들고 뛰어다니는 그를 보고 환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그냥 진 교수 정도로만 알지 않을까? 그가 대학에서 뭘 가르치고 전공이 뭔지를 아는 사람들은 그 중에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미학이 뭔지, 그의 전공 영역을 내가 건드리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난 미학의 미자도 모른다. 따라서 단순히 그를 진(중권) 교수님으로만 아는 사람들을 탓하려는 것도 아니다. 진중권 교수가 이번에 새로 '야심차게' 내어놓은 책 『서양미술사Ⅰ』을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사람이 참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뭘하는 사람이지를 집요하게 따져봐야겠다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 교수님으로 아는 한편에는, 디워 덕에 또 많은 사람들이 진중권을 영화평론가쯤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뭐,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해대며, 디워에 목숨건 네티즌들을 얼빠지게 만들어버렸던 그 악명높은 이름이 진중권이었으니 말이다. 그 전에는 황우석 덕분에 매장되기도 했던, 독설가로도 진중권은 널리 알려졌더랬다. 그 전에는 저 수구꼴통 파시스트들에 필마단기로 돌진했던 무모하기까지한 돈키호테이기도 했더랬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대스타 반열에 등극하셨다. 미친소를 타고 촛불 밝힌 곳에 마이크를 들고 설치고 다닌다. 많은 이들이 환호하고 난리도 아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진중권 교수는 예전의 모든 단점(장점?)들을 여실히 발휘한다. 따자고짜 마이크를 적이고 나발이고 들이밀고 인터뷰를 하는 거침없음, 그러다가 전경에게 몇 대 얻어맞기까지 하면서, 왜때려요 쏭을 탄생시키셨다.

도대체 이 사람 뭐하는 사람이야? 그럴 것 같아서일까? 이번에 그가 펴낸 이 책은 그가 마련한 자신의 정체성 홍보차원은 아닐까? 이 책을 지금 읽으면서, 각양각색 활약하고 다니는 진중권의 모습을 보면서, 각종 토론에서 시원스레 쏟아내는 그의 말발을 들으면서, 나는 참 오하고도 묘한 생각에 잠긴다. 아 이사람 참 알수 없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아 쑤시고 다니는 데가 없는 이 사람, 알고 보니 이 책 저 책 참 많이도 냈다. 책 날에게 대표작들은 아마도 그의 전공관련서들만 올려놓은 것 같다. 이 밖에도 수십권의 책이 있을텐데. 아무튼 내가 읽은 이 책은, 내가 읽은 진중권의 책이 많지도 않지만, 그가 펴낸 그의 전공관련 책들로서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진중권이 미학자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전혀 미학하고는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생각해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진중권에게는 이런 모습이 본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 이상한 생각에 잠겼다가도, 아프리카에서 그의 활약을 보면서는 아니 이런 사람이 어떻게 이런 책을, 하는 오묘한 생각에 다시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예술하는 사람, 미술하는 사람, 아니 예술이니 미술이니 안다는 사람치고, 그처럼 그렇게 날카롭고 집요하고 빈틈없고, 하여간 참 냉철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게 진중권에게 있어서는 명실상부 편견이구나 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자 이제 책 이야기를 간단히 하자. 진중권이 들려주는 미술이야기는,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밌다. 미술에는 관심없는 나이지만, 그래서 미술은 아는게 없고 볼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빠르게 독파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진중권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었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를 중권이형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나는 내가 싫어하는, 아니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 만큼 맘 좋은 사람은 아니다. 여기에 진중권이 풀어주는 이 미술이야기에 나름의 장점이 있을 것이란 확신, 그 증거는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다는 것 뿐이다.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이 책을 '서양미술사'를 파악해보자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고 읽었다. 다만, 그림보는 재미라고나 할까? 혼자봐서는 전혀 모르겠는데, 중권이 형이 설명해 주는 그림 이야기는 나름 흥미로움을 준다. 그리고 그림책은 여간 빨리 읽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곳곳에 독설가 답지 않은 명문들을 보여주는데, 이런 문장 어떤가?

   
  어떤 의미에서 '실재(reality)'란 합의된 세계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유일한 실재지만, 중세에 그것은 유일한 실재도, 중요한 실재도 아니었다. 중세에 '합의된' 진정한 실재는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세계였기에, 가시적 세계를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이는 현대 예술이 처한 상황을 닮았다. 카메라의 등장 이후 현대 예술에서도 재현은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미술사가 아순토는 여기서 중세 예술과 현대 예술 사이의 평행선을 본다.(81쪽)  
   

뭔 말인지 대충 감은 온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유일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것일지 모른다. 아무튼 이후 설명하는 중세 예술과 현대 예술의 어떤 공통점들이 나오는데, 알듯 말듯하다. 아무리봐도 중권이형이 보는 걸 나는 못보고 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 될 것만 같다. 중권이 형이니까.

"러시아어 문장을 이탈리아 문법으로 읽을 수 없듯이, 역원근법으로 그려진 그림을 선원근법의 문법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그림을 읽을 때는 그것을 그릴 때 사용했던 그 코드로 읽어야 한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시사한다. 뭐 그림만이 그러할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세상모든 만사가 이렇게 그림과도 통하는 것을 깨닫는 것은 내나름의 문법으로 족하다. 역원근법이니 선원근법이니 하는 것은 좀체 이해가 가지 않아도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뭐든지 뭘 알고나 보인다는 것이다. 누가 그랬듯이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여기 이 책에서도 통한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서구의 예술 역시 예로부터 미리 존재하는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이었다. 헤브라이즘은 서구에 성서라는 토대를 제공해주었고, 헬레니즘은 신화와 고대 저술가들의 문헌으로 서구 문명을 다채롭게 해주었다. 서구에서 제작된 대부분의 이미지는 이 문헌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그 제재들을 해독하는 데는 서구의 문화적 코드에 대한 이해가, 서구 문명을 만들어온 문헌들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169쪽)  
   

참 고마운 말이다. 애초에 이 책을 읽고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한번 알아보자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아예 나는 포기하고, 그림이나 구경하자는 생각으로만 읽었다. 그런데, 중권이형의 친절한 설명덕분에, 그냥 볼때는 '아하'하는 탄식이 간혹 섞이기도 하니 기쁜 일이다.

여하튼 진중권을 전혀 모르고 읽었다가는 이 책을 아마도 다 읽지 못하고 놓아야했을지도 모른다. 참 보이는 것과는 다름을 느낀다. 그림을, 미술을, 예술을, 미학하는 눈은 우리가 보는 진중권의 눈은 아닐 것이다. 게기에는 뭔가 따듯한 감수성이 농후하지 않을까? 간혹 우리가 익히 잘아는 진중권의 독설들이 생각나는 서술도 있긴 하지만, 이 책에는 본디 진중권의 모습이 녹아들어있기도 하다. 짤막짤막한 그림과 함께 읽는 그림이야기들도 나름 흥미롭고, 좀 의외다 싶은 수학이야기, 별별 이야기들도 몇몇 있기도 하다. 아무튼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있으신 분은 일독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아 이제 미술에 관심을 가져보자'하는 결심으로까지는 나아가지 않았지만, 이거 하나는 얻어가 보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현대가 아닌가? 어디가서 아는체라도 해야지 않은가? "현대 예술의 과제는 가시적인 것의 재현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의 가시화'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이 또한 이미 수백 년 전에 엘 그레코가 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어디 전시회라도 가면 요렇게 멋지게 한 마디 내뱉어도 좋겠다. 이게 1권이니까, 몇 권이 더 나올 것이다. 장담은 못하지만, 두번째 권쯤은 다시 따라읽어보고 싶음이 살랑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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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17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의 리뷰~ 여전히 장문에 어렵지만 충실히 읽었어요.
음~ 아직도, 앞으로도 계속 멜기님 팬 맞아요~ 맘 변한거 없어요.^^

최상철 2009-10-2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만큼이 없어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리뷰 읽고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디케의 눈] 서평단 알림
디케의 눈
금태섭 지음 / 궁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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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의 여신 디케(Dike)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법의 여신 디케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쥐고 있으며,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저울은 형평성을, 칼은 엄격하고 날카로움을 가리키며, 천으로 눈을 가린 까닭은 공평 무사하게 판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금태섭, 『디케의 눈』책날개에서)  
   

금태섭의 법이야기를 '재밌게' 읽었다. '법이야기가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법은 때때로 어렵고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세상살이가 그렇듯이 각양각색의 천태만상을 담고 있다. 그에 얽힌 이러저러 법이야기들은 간간이 우리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런 법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또 하나 추가된 셈이다.

사실 우리가 제삼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법이야기를 흥미롭고, 어쩌면 쉽게 읽고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고 실제에서 법은 언제가 괴팍하고 딱딱하며 권위적이고 독선적이기까지하다. 그래서 골치아프고 어렵다. 이것은 법의 언어적 서술의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기보다, 그것의 실제 생활에의 적용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말한다. 물론 법을 어떻게 풀어서 전달할 것인가 하는 언어의 문제도 분명 그 어려움의 원인일테지만,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어떤 상황에서 어떠한 법이 적용될 수 있는가의 문제, 그러한 법의 적용의 절차와 과정상의 복잡다단함의 문제일 것이다.

법은 역사이래 끊임없이 어려웠다. 근대 이전의 법은, 어쩌면 근대 이후 현재의 법도 그러할지 모르겠으나, 어려울 필요성이 있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역사 이래 법은 지배계층에 충실하게 복무해왔다. 이런 점에서 법의 기원은 모세가 받았다는 십계명의 이야기가 상징하듯이 '위로부터 주어진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배자의 지배와 통치의 수월성을 높이기 위하여 이 법은 언제나 통치수단, 지배수단으로만 기능해 온 것이다. 그러하기에 법은 민중 일반이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적용하기 어려워야만 했던 것은 아닐까?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논란에서도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일화가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법은 고도로 발달하고 세분화되고 명분화되었다. 보다 복잡해진 것이다.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겠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법을 지배했던 지배계층은 법에 종속되었던 민중들과 일정부분 타협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결과 법은 조금씩 지배계층만의 소유물로만 남아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법을 민중이 완전히 소유하기에는 여전히 법은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은 크게 법의 체계상의 복잡함과 적용상의 모호함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양한 법률과 법 체계 속에서 그 관계는 그물망처럼 얽혀있다. 그 그물 속에서 법에 종사하지 않는(못하는) 대다수의 민중들로서는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다양한 법(규정, 규칙, 명령, 법령, 민법, 형법, 헌법, 기타등등)의 적용에서 기인한다. 그 다양한 법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무엇을 규제하고 무엇을 규제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그것이다. 금태섭가 『디케의 눈』의 많은 부분(「커피를 쏟고 24억 원을 번 할머니」,「가정의례에 관한 법률과 보신탕」,「원숭이 재판」등)에서도 지적하듯이, 현재의 명문화된 것을 어디에, 어떻게, 어디까지 적용하고 판단할 것인지 하는, 법의 모호함, 법의 테두리의 애매함이 오늘날 법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최근 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에 대항하여 연일 온 시민들이 쏟아져나와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성토하고 있는 촛불시위와 관련한 불법시위 논란도 이런 법적 체계와 법 적용의 복잡함과 애매모호함때문에 기인하는 것이다. 현행 집시법은 최상위법인 헌법과 상호 모순을 이룬다. 집회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이 이렇게 어렵고, 법의 해석과 판단이 이렇듯 모호하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거리가 되지 않느냐고, 금태섭은 궁시렁대고 있는듯하기도 하다. 그래서 금태섭은 법의 여신 디케를 다시 불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왜 눈을 가리고 있는가? 금태섭은 이렇게 말한다.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진실을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때로는 틀릴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법은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위험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어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으로도 취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해 디케는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고, 금태섭의 말처럼 진실을 찾기 위한 최선을 노력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법의 담당자들은 항상 두 눈을 가리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법은 어렵고, 진실을 언제나 멀리 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눈으로 그 법을 보고, 적용하는가가 아닐까? 지금까지의 법이 지배계층을 위해 존속했다면, 이제는 민중을 위해 존속해야한다. 법의 주체가 민중이 되어야한다는 말이다. 국민배심제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렇게 되면 법이 쉬워진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도 말하겠다. 그렇게 되면 진실은 보다 가까워질 것이다.

금태섭은 디케가 왜 눈을 가리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나도 궁금하다. 그리고 금태섭은 "두건 뒤에 숨어 있는 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를 이렇게 궁리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사명감에 불타는 날카롭고 광채를 띤 눈일까. 각자에게 정당한 몫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저울 눈금을 주시하는 냉정하고 빈틈없는 혹은 약자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연민이 가득한 눈일까. 그보다는 오히려 찾기 어려운 진실 앞에서 끝없이 같은 질문을 되묻고 다시 생각해보는 고뇌에 찬 눈이 아닐까.  
   

나는 디케의 눈은 "날카롭고 광채를 띤 눈"도 "냉정하고 빈틈없는" 눈도, "눈물을 흘리"고 "연민이 가득한 눈"도 아닐 것이라고, 아니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금태섭이 말하는 진실을 찾는 "고뇌에 찬 눈"도 아니어야 한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법의 여신이 가져야 할 눈은, 바로 민중의 눈이어야 한다. 민중의 눈으로, 민중이 주체가 되서, 법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21세기의 법은 민중의,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법이어야 한다. 이 민중의 눈은 아마도 금태섭이 말한 그 다양한 눈들의 총체적 합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 警告 : 本 書評은 알라딘 書評團에 當籤되어 出版社로부터 無償으로 圖書을 提供받아 作成된 것으로 本 書評의 內容을 全的으로 信賴하여 本 圖書의 購買 與否를 決定하는 것은 讀書生活에 深刻한 懷疑를 誘發할 수 있사오니, 이 點 留意하여 주실 것을 當付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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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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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병역거부자 30인의 평화를 위한 선택
전쟁없는세상.한홍구.박노자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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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 좋은데, 책 제본상태는 별로 실하지 못하다. 철수와영희는 책을 좀 튼실히 만들라.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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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문학의 현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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