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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조종법 - 정직한 사람들을 위한
로베르 뱅상 , 장 레옹 보부아 지음, 임희근 옮김 / 궁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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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조종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떡주무르듯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것은 언듯 들어서는 인간윤리에 어긋나는 악행일 따름이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에서 기계를 작동시키듯, 파일럿이 비행기를 조종하듯 인간을 제멋대로 조종하는 일은 찾아보기 극히 어렵다. 티비에서 보이는 체면술사가 그러해 보이지만 알고보면 이것도 거의 짜고치는 고스톱 아니던가?

자 여기에 조금은 의아스럽고, 어쩜 그런 책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할 책이 나왔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이들은 무슨 일로 그런지는 잘 이해가지 않지만 자신들을 '사회심리학자'로 부르면서 애써 '심리사회학자'와 구분한다. '사회심리학'과 '심리사회학'은 차이는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지 않을까? 곳곳에 보이는 이런 학자연하는 사람들의 노름이 간혹 이 책을 따분하게 만들고, 쓸데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인 로베르 뱅상 줄과 장 레옹 보부아의 책 『인간 조종법』이 바로 그것이다. 과연! 이 책이 비행기나 헬리콥터 조정법처럼 인간을 조정하게끔 해 주는 그런 방법들을 담고 있을까? 짐작하시듯이, 천부당 만부당, 당연지사로 '아니다'다.

   
  보통 하는 말로는, 남에게 영향을 끼치는 행동(누군가로 하여금 그 사람이 자진해서라면 하지 않을 어떤 행동을 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가리켜 '조종'이라 할 수 있다. 조종자가 자기중심적인 사람일 경우, 그는 자기가 명분을 성취하기 위해 끌어들이려는 사람과 자기 자신 사이에 이익 공동체가 성립된다고 실제로 확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문제 삼는 것은 그런 조종이 아니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조종은 설득하는 행동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행동 기술'에 의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는 고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만약 조종자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를 명료하게 의식하고 있는 경우라면, 조종당하는 사람은 자기를 목표로 삼은 이 조종 작업을 여간해서 따돌리기 어렵다.(67쪽)  
   

말하자면 이 조종은 사람이 사람을 '꼬시는' 여러 행위(언행)들이다. 이를테면, 가게 점원이 손님에게 물건을 사게 한다거나, 어떤 자선단체에 기부하게 한다거나, 보험에 들게 한다거나, 공중전화를 사용할 동전을 얻는다거나, 과자 사먹을 천원을 타낸다거나 할 때, 그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이 조종이라면 우리는 끊임없이 조종하고 조종당하며 살고 있었고, 살고 있으며, 살아 갈 것이다. 하다못해 시장통에서 흥정을 하는 것도, 이 책의 저자들에 의하면 조종의 기법 중 어느 한 가지에 해당하기도 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무슨 특화된 듯한 무슨무슨 조종법들은 사실 너무나도 흔한, 우리가 의식, 무의식적으로 자주 써왔던 것들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에 따라 그 정도 및 효과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요즘은 '낚시'가 대세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 "문전박대 자초하기" 등으로 번역을 그럭저럭 잘 해놓았지만, 이름만 붙였을 뿐, 저자들이 새로이 창안하여 만든 그야말로 인간을 제멋대로 조종하는 특허낸 기술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것을 소홀히 볼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에 있다고들 하잖은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해온 방법이지만, 우리가 자주 쓰고 아는 그런 방법들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그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적절하게 현 생활 속에서 유용하게 사용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럴때에 우리의 생활은 좀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그건 몰라도 우리의 작은 수고를 좀 덜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 제목인 "인간 조종법"을 수식하는 부제격의 "정직한 사람들을 위한"이라는 말은 참 쓸데없는 것이지만, 홍보용 문구인 "프랑스인들이 꼽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지침서"라는 말은 이 책이 조종이 아닌 '커뮤니케이션', 나아가 인간관계에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 홍보용 이상의 도움을 우리에게 준다. 이를테면, "딱지 붙이기의 기능" 같은 것일텐데, 이것은 "추상적, 심리적, 도덕적 특성을 지닌 예비 행위에 방금 참여한 사람에게 어떤 타이틀을 붙여서 높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칭찬하기일 수 있겠다. 많이들 써왔듯이 이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보다 긍정적이게 만들어 주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가지 더 들어보자. 우리는 스킨쉽이 우리에게 어느 정도 감정과 정서에 좋은 영향을 주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여기서는 이것을 일컬어 '접촉 기법'이라고 명명했다. 지나가는 손님에게 슬쩍 손을 가져다가 접촉하면서 친근함을 표현하면, 상품 판매율이 괄목할 정도로 늘어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서 검증되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그러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 혹은 안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실행하고 실행당했던 것들을 잘 정리해서 묶어 놓고 있다. 실험을 통해서 검증까지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유효적절한 도움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방법을 넘어,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준다는 데에 있다. 억압이 되었건, 설득이 되었건, 권위에 위해서건, 꼬임에 의해서건,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꼭 시켜야 하겠거든, 그러니까 그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해준다고 할 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 무엇이 범죄행위에 버금가는 어떤 것이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그것을 여러 조종기법을 심도있게 추적하고 분석해온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앞의 여러 장에서 낚시, 문간에 발 들여놓기, 덫 기법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는 자유롭다는 느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유롭다는 느낌은 특정 행위를 손쉽게 얻어내도록 해주는 보조장치(낚시나 덫 기법에서의 첫 결정,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에서 예비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을 그 행위 속에 참여시키려 할 때 꼭 있어야 할 열쇠였다. 그러므로 자유롭다는 느낌은 분명, 조종자에게 도움이 되었다. 말하자면, 부담이 적은 첫 행위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중에 좀더 부담이 큰 다른 행위도 실행할 수 있도록 미리 포석을 깔아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이 자유롭다는 느낌 자체가 조종의 우아한 기술 중 하나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른바 '마음대로 하십시오' 기법이 그것이다.(211~2쪽)  
   

저자들이 재차 강조하듯이 "개인은 그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만 효과적으로 조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롭다는 느낌을 주는 것, 다시 말하면, 자발적 행위가 될 수 있도록 그러한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보다 자유자재의 조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자발성이 지극히 요구되는 분야는 아무래도 교육(학교교육이나 가정교육 등)일 것이다. 저자들이 예시한 다음 내용을 살펴보자.

   
 

1. "얘야, 나는 네가 뛰어내리면 좋겠다. 물론 하느냐 안 하느냐는 네 문제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2. "얘야, 네가 뛰어내리면 나는 기쁠 거야. 내 말 잘 알아들었니? 만약 안 뛰어내리면, 넌 일요일날 친구들하고 영화 보러 못 갈 줄 알아라."

3. "얘야, 나는 네가 뛰어내리면 좋겠다. 뛰어내리면 딸기 아이스크림 사 주마."

4. "얘야, 나는 네가 뛰어내리면 좋겠다. 뛰어내리면 자전거를 사 주지."

 
   

저자들이 제시한 4가지의 경우는 모두 아버지가 아들의 담력 혹은 용기를 키워주기 위한 이유가 담겨 있는 조건문들이다. 위의 모든 조건에서 아이가 뛰어내렸다고 가정했을 때(번역상에 문제였을까? 아버지가 아이를 강물에 뛰어내리라고 자꾸 권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우리의 통념과 윤리에 부적합하잖은가? 프랑스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말이다. 무언가 상황이 다를 것 같은데, 번역상에서 좀 신경을 써줘야지 싶다. 이 책에서는 비슷한 예로 정원에서 물에 뛰어내리기 놀이같은 것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도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아무튼 번역자 혹은 편집자의 설명이 덧붙여져야지 싶다.) 아이의 자발성이 도드라지는 것은 1번과 3번이다. 2번은 협박에 가깝고, 4법은 아이를 물신만능에 빠지게 하기 십상이다. 오늘날 우리 부모들이 하는 작태가 거반 2번가 4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입안이 씁쓸해진다.

교육에 있어서 자발성, 혹은 자기 주도적 학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을 유도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교사 혹은 학부모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유용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냈다고 느낄때에 나타나는 그 교육적 효과는 아이를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라게 해 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의 아쉬운 점도 이 부분이다. 좀 더 그런 활용법이 강조되었으면 좋았을 법하지만, 아무래도 이들이 사회심리학자다보니 그러한 요청의 응답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겠다. 다만, 이 책이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이에게 좋은 영감과 영향을 주기 바랄 뿐이다.

교육과 관련해서 저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주의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조종의 기법들이 자유로운 느낌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창조적인 행위들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단순한 재생산을 수월하게 만들어 줄 뿐이라는 사실이다. 기성세대들의 인식, 윤리, 문화 들을 아이들이 자유로운 느낌으로 재생산할 뿐인 것이라는 얘기다. 참고하고 숙고해야할 지적이다. 그런 점을 보완하면서 보다 효과적인 교육방법, 교육심리학 등이 연구되고 그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족으로, 번역자 혹은 편집자의 다소 무성의함을 언급하고 끝내자. 각종 조종 기법들을(원서에서 아마도 쉬운 말로 풀어서 명명했을테지만) 쉬운 우리말로 풀어낸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학술 및 전문용어들이 무지막지하게 돌출하고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석이라고는 저자의 것뿐이어서, 편집자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좀 의심스럽다. 아무래도 편집자가 주를 대어야 할 곳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번역상에 다소간의 오류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289쪽의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실제로 그 가게 점원에게 다른 생각이 없었다면 왜 굳이 다른 옷과 한 벌을 이루는 바지를 따로 할인 판매했겠는가? 그것도 상의와 바지를 따로 팔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부분의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멋진 바지를 내걸고 대폭 할인판매하고 있다고 유혹하여 그 바지를 사러 들어온 손님에게 그와 더욱 멋드러지게 어울릴 할인 안 되는 상의를 권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상업전략이라는 얘기 중에 위 인용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앞뒤가 안 맞잖은가? 첫 문장에서는 다른 생각(손님을 유인할 생각)이 있어서 "다른 옷과 한 벌을 이루는 바지를 따로 할인 판매했"다는 얘기다. 이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같은 얘기 아닌 다른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문맥상 "~에도 불구하고"에 적절히 호응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런데 다시 앞 문장과 같은 의미가 반복된다. "상의와 바지를 따로 팔 수 있었"다는 얘기는 바로 앞 문장에 나오는 말 아닌가? 여기서는 문맥상 "그것도 상의와 바지를 같이 팔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가 되어야 자연스럽잖은가? 원서를 대조하지는 못했지만, 원서의 오류이던가, 번역상의 오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무튼, 이런 옥의 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러면에서 나름의 장점들이 많다. 이어지는 후속작업, 연구, 그리고 각계의 활용방법들의 성과들이 많이많이 나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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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조종법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인간 조종법"이란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내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혹은 아는 것 같지 않지만 자주 써 왔던 우리들의 인간 관계 및 생활에서의 행동 양태를 설명하고 있는 책에 가깝다. 이 책을 통해 "내 맘대로 사람 부려먹기, 꼬시기" 등을 노리는 것이라면 단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단, 우리 생활에 있어, 보다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유효적절한 방법들 중에 하나 혹은 여럿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란 장점이다.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맥락을 같이" 한다면, 사회 생활, 인간 관계, 행동 양식에 대한 어떤 지침들을 담고 있는 책들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대충 꼽아봐도 넘쳐난다. 알아서들 골라 보시라.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옵션)

옵션이라니까, 추천하지 않겠다. 이 분야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사실 이런 분야의 책들을 굳이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다. 그렇더라도, 필요하다면, 그때그때, 시의적절하게 스스로 찾아 읽으면 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귀가 얇다고 소문난 사람들이 읽으면 썩 좋을 듯 싶다. 난, 사무실에 수시로 방문에 이러저러 신용카드를 만들라고 오는 참 많은 영업원들을 청을 아주 단도직입적으로다가 거절을 무척이나 잘 한다.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말고, 그런 유혹(카드, 보험, 방문판매원,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종교인들)을 쉽게 물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爲學之要 莫先於窮理 窮理之要 必在於讀書"

(배우고 익히는 데 궁리(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모름지기 독서에 있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던가? 썩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자주 들었던 말이다. 참 좋은 말 아닌가? 이 책의 뒷쪽 책 날개에 나온다. 이 구절에서 출판사 이름을 따왔다. '궁리' 출판사.

아무튼 '책속에서' 한 구절을 꼽으라면 난 이 구절이 젤 맘에 든다. 그렇다고 이 책에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이 없다는 건 아니다. 굳이 꼽자면 이 정도면 될까 싶다.

"개인은 그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상황에서만 효과적으로 조종될 수 있다"(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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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닿지 않는 곳

 

내 손이 미치는 범위안에서
아무리
헤쳐보아도, 뒤져보아도
모두다 쓰레기 뿐이야

등잔밑이 어둡다고?
젠장!
난 등잔따윈 켜놓은 적이 없단 말이야

내 손이 닿지 않는곳
닿을 수 없는 곳
닿으면 안 되는 곳
그런 곳에 있을까?

가질 수 없는 것
그것을 갖고자 하는 것은
욕망일까?
혹은 죽음일까?

젠장!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죽느니,
내 손이 닿지 않는 곳
그곳에 닿을 때까지
손을 뻗고나 죽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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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8-12-0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손이 닿지 않는 곳엔 죄다 좋은 것들만 있지(!?)

순오기 2008-12-09 00:40   좋아요 0 | URL
^^
손이 닿지 않기에 죄다 좋아 보이는 것은 아닐까요?

멜기세덱 2008-12-10 01:36   좋아요 0 | URL
좋은 것과 좋아 보이는 것이 많은 다른 걸까요? 어쩜, 우리가 '보는 것', 우리에게 '보이는 것' 그 자체가 진실이지 싶습니다.

바람돌이 2008-12-09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의 처세관과는 많이 다르군요. 손이 닿지 않는것 그냥 포기하지요. ^^;;

멜기세덱 2008-12-10 01:38   좋아요 0 | URL
처세관이랄 것은 없는데요, 저는^^;; 유토피아로 날아가고 싶거든요.ㅎㅎ

웽스북스 2008-12-10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에 닿는 것의 소중한 면들을 볼 때, 손에 닿지 않는 것들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어요. (웬디의 개똥철학 ㅎㅎ)

멜기세덱 2008-12-10 01:38   좋아요 0 | URL
왠지, 마스터베이션 같아서, 찝찝해요....ㅠㅠ;;
 
[호모 에로스] 서평을 올려주세요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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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평생을 연애 한 번, 찐한 사랑놀음 한 번 못 해 본 나같은 사람에게, 연애가 이러쿵 저러쿵, 사랑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한낱 사치일 뿐이다. 아니 어쩌면, 그나마의 위로 혹은 위안 삼는 자위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을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를 구성지게 뽑아 제낄지언정, 그 씨앗을 어디에 심어야 할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랑이 뭐길래?"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그것에, 언제부턴가, 스스로로부터, 때론 타의에 의해서 집착하고 집착하게 된다. "여자 친구 없냐?" "장가가려면 얼런 여자를 사귀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에서부터, 괜히 쓸쓸해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나기까지, 세상은 수시로 나를 괴롭힌다. 드러워서라도 내 한 평생 사랑 한 번 해보고 말리라! 젠장.

사랑이야기들, 연애담들, 사랑학개론들, 사랑은 이렇게 담론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쩌면 사랑을 팔기 위해 안달인 세상같다. 연애 고수들은 모든 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몸발이 좋은 사람들, 얼굴이 꽃미남에 동안인 인사들, 게도 안되면 말발이라도 자지러지는 인간들, 그들은 줄곧 연애전문가로 통한다. 연애와 사랑이 시시절절 끊이지 않는다. 다만 대상이 수시로 바뀔 뿐이다. 하여간 잘도 한다. 삼십 평생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내 경험을 걔들은 무시로 해치우고 만다. 대단하다. 대단한 고수들.

우리는 그들을 연애박사, 연애대장 쯤으로 부른다. 누가 박사학위를 준 것은 아니지만, 나름 그들도 사랑 혹은 연애에 자신을 전문가쯤으로 여기는 듯 하다. 솔직히 인정한다. 그들이 많은 여자를 사귀는 데에도 나름의 노하우와 전략이 있을 것이다. 그게 능력이든, 돈이든, 얼굴이든, 말발이든 간에, 그것도 개뿔 없는 나와 비교해서는 대단한 장점들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수식, 혹은 명명들을 거둬들여야 할까 보다. 이 시대에 연애 고수들에게 "니들이 사랑을 알아?" "공부 좀 더 하셔"하고 온갖 자신감 충천하여 건방지게 떠들고 나온 이가 있으니, 그가 다름 아닌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이다. 중년의 나이에 참 용감도 하셔라. 그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사랑의 '사'자로 모를 위인처럼 보일 뿐인데, 자칭 사랑의 달인 납시오 하며, 사랑에 대한 썰을 마구마구 풀어댄다. 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이 중년의 아줌마(고 선생께 죄송스럽지만, 양해 바란다)가 뭘 안다고, 사랑의 달인 타령일까? 쪼끔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이 책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를 읽을 자격이 충분히 되는 셈이다. 우선, 읽기 전에 아줌마라고 얕보고 들어가진 말길 충고한다.

고미숙 선생이 보기에 요즘 세대, 정확히는 근대 이후의 세대, 더 정확히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이 점령한 80년대 이후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제대로 된 사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사랑은 이런 것이야, 이쯤 해야 사랑한다고, 연애한다고 말할 수 있지, 하고 조언한다. 고미숙 선생이 지적하는 요즘 세대의 사랑의 문제는 대략 이런 것들이다. 첫째, 사랑과 연애의 고수들이 판을 치는 '연애공화국'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안에 진정한 사랑을 하는 이들은 없다는 것. 둘째, 순정 아니면 냉소, 선수 아니면 스토커, 사랑과 섹스, 차고 차이고 등으로 대별되는 사랑 공식의 그 무식한 이분법. 셋째, 사랑에 대한 말도 안되는 상상과 이미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과 유리된 사랑. 이런 것들이 오늘날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이라고 지적한다. 대단히 동의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사랑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 곧 사랑에 대한 '오만과 편견'은 다만 개인적 인식의 잘못 만이 아니란 사실, 그 사실을 고미숙 선생은 이어서 분석한다. 이 사회는 총체적 구조 속에서 사랑에 대한 헛된 망상을 조장하고 왜곡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 사회, 학교, 가족, 문화 등등등. 이 모든 것들이 자본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 속에서 사랑을 왜곡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 일례가 되는 것이 사랑은 곧 소비가 되는 현실이다. 모든 사랑의 진행과정은 그야말로 소비의 진행이다. 첫만남은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고, 영화를 보는 것은 이제 공식이 되어 버렸다. 무슨무슨 데이는 특별한 사랑을 창조하는 것 같지만, 기실은 조장된 소비문화일 뿐이다. 이 데이데이에 맞춰서 사랑이 진행될 뿐이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거듭 당부하거니와, 절대 상품을 주고받는 식으로 사랑을 확인하지 마시라. 물론 선물은 중요하다. 하지만, 진짜 소중한 선물에는 '삶의 서사'가 묻어 있어야 한다. 즉, 나의 일상의 리듬과 무관한 선물이란 그야말로 쇼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쇼"가 되는 순간, 아무리 정성을 다한다 한들 결국 화폐로 환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같이 상품과 예술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에는 정성과 화폐가 분리되기 어렵다. 갖은 정성을 다한 선물일수록 가격에 비례한다. 따라서, 그 노선을 취하는 순간, 이미 그 사랑은 화폐권력의 장에 포획되어 버린다. 그 다음부터는 일상의 모든 흐름에 상품의 혼이 따라붙게 된다. 처음엔 얼떨결에 따라했던 작업들이 나중엔 자신의 본성인 양 전도되어 버리는 것이다.(197~8쪽)

 
   

그렇게 우리의 사랑에 대한 인식은 전도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뻔한 사랑, 밋밋한 사랑일 뿐이고, 점점더 자극적이 되고, 이벤트가 가장 소중한 사랑이 되어 버리고, 본말은 전도되고, 나와 네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네가 세상의 물질과 소비를 사랑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일찍이 혜은이는 말했다. "만나서 차마시는 그런 사랑 아니야, 전화로 얘기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 웃으며 안녕하는 그런 사랑 아니야"라고. 밋밋한 사랑 공식들, 연애 과정들 속에서 사랑은 점점 그 힘을 잃어갈 뿐이다. 그러니 더 자극적인 요소들을 찾아간다.

사실 혜은이는 열망했다.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 거는 사랑"의 열정을 원했던 것이다. 살자고 사랑하고, 사랑하자고 사는 것인데, 죽을 이유는 하등 없어 보인다. 좀더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사랑이다. 고미숙 선생의 말대로라면, 좀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면, 일찍 시들기 마련이다. 그런 사랑, 정말 아니다.

내가 사랑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병통은 사랑과 섹스의 문제다. 사랑과 섹스는 하나도 아니고, 그렇다고 둘 도 아니다. 사랑 없는 섹스는 잘못일까? 섹스 없는 사랑은 숭고할까? 섹스는 섹스 자체로도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게 일단 내 지론이라고만 밝혀두자. 이런 사랑과 섹스에 대한 이분법적 인식의 틀도 결국은 근대 이후의 자본논리와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만들어낸 괴상한 것일 뿐이라고 고미숙 선생은 말한다.

자 이쯤해서 고미숙 선생의 사랑학개론의 결론을 말해보자. 고미숙 선생은 프롤로그에서 우리에게 이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사랑의 주체와 대상은 곧 나라는 것이다. 자꾸들 사랑에서 나를 거세시켜 버리는 것, 이거 안 된다. 다음으로 실연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다. 또 다른 시작을 향해 힘차게 나갈 수 있는 행복한 기회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에로스는 쿵푸다.

에로스는 쿵푸다. 사랑하려면 공부하라. 이것이 결론이다. 사랑이라는 헛된 망상을 위해 정신줄 생명줄 놓는 인간들이 참 많다. 진정한 사랑은 창조적이고, 삶을 한결 충만하게 하며, 나아가 나와 너를 자유롭게 해 주는 그런 것이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인문학적, 정신적, 지성적 공부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알아야 사랑하지. 현대 사회가 벌여놓은 그 사랑의 공식들을 철저히 거부하고 그로부터 탈출하여 보다 창조적 사랑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공부가 필수다. 책도 많이 읽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난 책은 좀 읽는데, 왜 이러지?)

나아가 사랑은 혁명이다.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고 빌헬름 라이히가 말했다고 고미숙은 인용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왜 사회를 전면적으로 전복하기를 꿈꾸면서 사랑과 성적 관계에 있어서는 새로운 실험을 기획하지 않는 것일까? 사랑이야말로 혁명의 뇌관임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왜?(83쪽)

 
   

그렇다. 사랑은 창조적이어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혁명은 세상을 전복하고자 한다. 사랑이 없다면, 무슨 수로 혁명이 가능할까? 세상의 그 구조적 오류들을 사랑으로 극복하고 전복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창조적 발상들을 위치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해야하고, 공부해서 사랑하고, 사랑해서 혁명하자는 것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우리시대 모든 연인들이 연애와 쇼핑 사이의 이 은밀한 공모관계만 해체해도 신자유주의 체제는 휘청거릴 것이다, 라는. 세상에, 이렇게 간단하고 기막힌 혁명전략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청춘들이여, 아니 사랑에 빠진 모든 이들이여, 세상이 바뀌기를 정말 원하는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가장 먼저, 쇼! 하지 마라! 쇼! 그럼 어떻게 사랑을 표현하는가? 그래서 창의성이 필요하다. 나의 사랑이 지닌바 특이성이 유감없이 발휘될 수 있는 사랑법을 창안하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고유한 사랑법을.(198쪽)

 
   

오호! 이런! 이쯤되면 혁명을 꿈꾸는 내가 안달해마지 않을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자 이제부터 혁명하자! 아니 사랑하자! 그럼 공부하자! 그런데 의문! 나 남들보다 책 많이 읽고, 인문학적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모양이람. 사랑하고 혁명하는데 아무 문제 없는데, 왜 이러냐 이 말이다. 어이쿠! 고미숙 선생 친절히 말씀하신다. "정말 사랑의 열정을 맛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일상의 배치를 바꾸는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고. 그럼 그렇지! 젠장!

흥미로운 부분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냐는 대목이다. 사랑도 혁명도 혼자서는 못하는 법! 아니 그럼 공부는 혼자서해야 하잖은가? 기분 좋게도 공부는 여럿이서 하면 더 좋은 것이다. 세미나, 이것이 고미숙 선생이 제시하는 사랑을 공부하는 방법이고 전략이다. 일상의 배치를 바꾸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일상의 배치를 바꾸고, 함께 공부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이들은 찾아 나서고, 대화하고 토론하며, 공부하면서 눈이 번쩍 띄이는 사랑의 짝을 스스로 주체적으로 만들고 찾으라는 것이다. 흠흠! 쉬운일이 아닐 터이다. 내일부터라도 찾아나서야겠다.

알라딘에 많은 분들 들으시면 좋겠다. 우리 사랑하십시다. 아니 혁명하십시다. 아니 공부하십시다. 아니 '세.미.나' 하십시다. 자 난 내일 혁명하러 갈 참이다. 세미나 하러 갈 계획이다. 그렇다고 이상하게 보지는 마시라. 그냥 전부터 하던 것이었으니까, 일상의 배치가 바뀐 것은 아니다. 암튼 이제 알았으니, 다르게 보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 아! 혁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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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12-05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멜기님. 리뷰 곳곳에 정말 멜마에스러운 모습이 엿보여요. 아무래도 '그' 세미나엔 충성스러운 혁명가인 여성분이 좀 포진해야할 듯 싶어요. 일상의 배치를 바꾸는 것까지는 좋은데 딱 거기까지인 것만 같아서 말이죠. 아, 제가 너무 멜기님의 성정체성을 확정시켰나요? 이 밤. 뭐 그정도는 봐주실거라고 생각해요. 혹 똥덩어리 막 이렇게 퍼부으시는거 아니죠? 그럼 안 들리는척 해야겠다.^^

순오기 2008-12-06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라보~ 멜기님의 리뷰는 바로 이 맛이야!
밑밑한 사랑이야, 밋밋한 사랑이야? 어떤게 맞나요~ ^^

순오기 2008-12-07 11:50   좋아요 0 | URL
연음법칙에 따르면 밑밑한 사랑이 맞는거 같은데~ 정말 모르겠어요.

멜기세덱 2008-12-07 13:17   좋아요 0 | URL
밋밋한이 맞아요...ㅎㅎ^^

2008-12-09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술 2008-12-07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야 원 나같이 귀찮고 애쓰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머리아파서 사랑도 못 하겠네요.
 
[호모 에로스] 서평을 올려주세요

 호모 에로스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글쎄, 뭐랄까? 이 책은 일종의 사랑으로부터의 자유,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것 같다. 현대인들의 사랑이란 한마디로 부자유, 구속이다. 사랑의 타자화라고 할까? 사랑, 연애를 위해 집착하고 끊임없이 헤매는 인간들아, 그건 사랑도, 연애도 아니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얼까? 이 책을 읽어도 아직 공허하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공부하란다. 세상사람들이 공부를 안하기는 참 안하나보다. 사랑까지 끌어다가 공부를 하라고 하니, 애석하다. 공부에 취미없는 사람들이 읽으면 땡길 것 같다.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호모 쿵푸스』와 『호모 에로스』한 핏줄을 넘어, 저자 말대로라면 일란성 쌍둥이인 셈이다. 또한 저자는 사랑에 통달하기 위해선 "언어의 달인"이 되라고 한다. 그래서 『호모 로퀜스』는 이란성 쌍둥이다. 저자가 자주 응용한 『사랑의 기술』도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아울러 『사랑의 역사』란 책이 최근에 자주 눈에 띄길래, 함께 올려놓는다. 알아서들 보시길.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옵션)

이 책이 동일한 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섹스없는 사랑은 참 공허하다. 부분 담론이긴 하겠지만, 필수일테다. 이 공부는 사랑의 필수과목일 터이다.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공부 안하고 연예인 찾아다니는 고등학생? 그런 애들 잡으러 다니는 학생부장 선생님? 그 학생부장 선생님 애들 잡아오라고 시키는 교장 선생님? 주구장창 입사시험만 준비하는 대학생, 그런 대학생 보고 욕하는 나 같은 사람? 사랑 밖엔 난 몰라식 인간들? 그리고 너?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83쪽)

"진짜 소중한 선물에는 '삶의 서사'가 묻어 있어야 한다."(197쪽)

"정말 사랑의 열정을 맛보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일상의 배치를 바꾸는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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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 다른 십대의 탄생]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4-05 17:40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