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덕분에 <경향신문>을 구독하게 되면서 책을 읽게 되는 시간은 이래저래 줄게 되었다. 매일같이 신문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짜증나면서도 재밌는 일이다. 나는 토요일자 신문을 유달리 기다리는데, 토요일에는 따끈따끈한 신간 소식들이 잔뜩(?) 실려오기 때문이다. 신문 덕분에 책은 덜 읽게 되면서도, 쟁여 논 책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가니, 혀를 찰 노릇이지만, <경향신문> 하나로는 부족해서 토요일이면 꾸준히 <한겨레>를 편의점에서 사서 책 소식을 유의깊게 살펴본다. 어제 <한겨레> '책과세상'에 시집 출간 소식이 있어, 리뷰기사를 옮겨 온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책 소개를 보고는 보관함에만 담아 두고 말았는데, 이제는 좀 더 유의미하게 챙겨두고 볼 작정이다.(2009년은 좀 한가로워져서, 쟁여둔 책들을 꺼내 읽을 작정이기도 하다.) 알라딘의 몇몇 분들께서 인문사회나 문학분야 신간 소식들을 스크랩해서 알려주시지만, 시집은 좀 소홀하지 않나 싶다. 물론, 시집 출간 소식들을 신문에서도 뜸하게 다루고 있는 것도 나로서는 좀 불만이다. 일단 나를 위해서, 그리고 시집에 관심 갖고 계시는 다른 분들을 위해서, 시집 소식만이라도 꼼꼼히 챙기는 2009년이 되도록 하고 싶다. 춥고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시집은 효과적인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방송작가 20년 접고 ‘시로 마음을 방송하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 2008년 12월 27일 토요일, 13면.  

말이란 소통의 도구인 동시에 오해와 갈등의 진앙지이기도 하다.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 주기도 하고 살천스럽게 끊어 놓기도 한다. 말은 야누스의 얼굴을 지녔다. 그것은 물론 말을 부리는 인간의 본성이 야누스적이기 때문이다.

김경미(49)씨의 새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는 말과 인간의 그런 야누스적 속성을 탐사한다.

“비천과 험담 그치지 않는 입을 만났다/ 찻집 화장실에 가서 입을 몇 번이고 헹궜다/ 다 헹구고 거울 속 입안을 들여다보니 혀가 두 개였다”(<무언가를 듣는 밤> 첫연)

“단체버스, 늘 맨 뒷자리에 혼자 떨어져 앉는다/ 내 귀가 어색하고 허랑한 내 말을 좋아하지 않아/ 내 입과 좀 떨어져 앉으려는 것이다”(<조금씩 이상한 일들 3> 부분) 

비천하고 허랑한 말을 내뱉는 혀에는 남과 내가 따로 있지 않다. 하나의 입 안에 두 개의 혀가 있는 바에야,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이 불가능한 노릇은 아니다. 자신을 배신하고 남을 기망하는 혀 놀림 앞에 시인의 섬약한 자아는 무시로 상처 입는다.

“저녁밥 빛깔로 입속에 앉힌 묵언/ 그 재속(在俗)의 하안거 며칠/ 지나/ 고양이 걸음에 연꽃 떠받치듯 나선 외출//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가슴에 대못이 박혀 돌아왔다”(<상심> 전문)

“몇 날이고 수도승처럼 눈만 감다가 모처럼 나섰다/(…)// 다정한 모임 속 네가 갑자기 내 머리에 못을 박았다”(<그날의 배경> 부분)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집에 틀어박혔던 시인은 모처럼 용기를 내 바깥 걸음을 한다. 그러나 결국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그것도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두 번씩이나 동일하게. 은둔과 상처가 일종의 패턴처럼 반복되는 형국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세상과 사람들이 유독 그에게 적대적인 걸까?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이란 국내에 번역되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집 제목이지만, 시집 <고통을 달래는 순서>의 화자야말로 바로 그런 마음의 소유자로 보인다.

“안심할 때만 골라서 뒷머리에 돌을 맞거나/ 시작하려 하자마자 떠나거나/ 애절하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거나/ 한밤중에 깨어 일어나 찬밥을 먹거나/ 한낮의 버스에서 쇼핑백 터지듯 울음이 터지거나,”(<눈물의 횟수> 부분)

이렇게 어긋날 수도 있는 것이다. 재수가 없다거나 불운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무언가가 여기에는 있다. 아홉 번을 울어야 할 때 달랑 한 번만 울고 마는 고장난 뻐꾸기시계처럼 시인과 세상은 서로 리듬이 맞질 않는다. 그 어긋남이 그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연희>에 따르면 그의 이런 기질은 선천적인 것이다. <글씨의 시절―방송국에서>는 그가 지난해까지 20년 넘게 해 온 방송작가 일(=‘지렁이 환전’)이 그런 기질을 더욱 악화시켰음을 알게 한다. 그렇지만 이 두 시는 그의 선천적이며 후천적인 인간혐오증과 염세주의가 개선될 가능성 또한 내포하고 있다.

“열한살 너의 봄 때문에 사람들이랑 잘 못 놀아준 봄들을/ 돌려세우는 저녁이란다”(<연희> 부분)

“바로, 그 지렁이 환전이, 밥솥의 김 같은 것이어서/ 그토록 오래도록 저녁 해거름이면 밥 먹어라,/ 나라는 동네 어귀에 대고 어머니처럼 불렀구나”(<글씨의 시절> 부분)

시인의 도저한 비관주의가 자기반성을 거쳐 포용과 화해로 나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 시는 시집 전체를 관류하는 커다란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인용된 두 시에서도 그러하지만 시집의 압도적인 시간대는 저녁이다. 그 저녁은 “세상에 정 주고 저물녘, 마음 허물어지지 않은 날/ 하루도 없으니”(<해질녘>)에서 보듯 상처를 확인하는 무렵이자, “저녁이라는 이름 하나면 이곳에 속했던 추억 충분히 벅차다고”(<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말하게 되는 충일과 행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방송작가로서 보낸 20여 년 동안 그에게 저녁이란 밥벌이용 글쓰기가 끝나고 시인으로 돌아오는 무렵이었다. 두 개의 자아가 엇갈리면서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저녁의 복합적인 심상은 그 시절 저녁을 맞이하던 그의 착잡한 심사를 비추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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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통스런 사람에게 병 주고 약 주고(한겨레21 제744호)
    from 非인간적 길을 향해서 2009-01-17 12:24 
    <한겨레21>(744호)에 실린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시 읽어주는 남자' 코너를 옮긴다. 얼마 전 <한겨레>에 실렸던 김경미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의 출간 소식을 이미 전한 바 있다. '시 읽어주는 남자'에서는 이 책에 대한 좀 더 진한 리뷰인 셈이다.  고통스런 사람에게 병 주고 약 주고 [2009.01.16 제744호] [시 읽어주는 남자] 원망과 자책이 서로 갉아먹어 없어지기를 기다려야지, 김경미의 <고통
 
 
코코죠 2008-12-29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리뷰 선발대회에서 일등 먹으면 멜기님한테 이 시집 사달라고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면 전 김칫국 완샷인거죠!!!)
 

현재 시간 2008년 12월 29일 01시.
4분이 응모하셔서 총 8편의 리뷰가 추천되었습니다. 

2008 알라딘 최고 리뷰 선발대회 응모현황(12.29/01시현재) 

바람돌이, 「내 돈 4만원 돌려줘!!!」
조선인, 「개뼉다구 같은 소리 하네」 
파란여우, 「하찮은 삶은 없다」
 
글샘, 「사다리를 걷어찬 나쁜 사마리아인들... 에게 장하준이 던지는 메시지」 
마노아, 「절대적으로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앤!」 
오즈마, 「여러분 나는 지금 울고 있어요」  
순오기, 「삶이 신산할수록 명랑해야한다」 
Jade, 「이 책을 읽고 나면 말하리라. 도스토예프스키에 홀렸다고..」

[각 리뷰의 제목을 클릭하시면 해당 리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쉬엄쉬엄 둘러보셔서 마음 속에 평점을 매겨주세요.ㅎㅎ] 

더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참가 기한은 12월 30일까지입니다. 

참가방법은 본인 리뷰 1편 + 타인 리뷰 1편 = 총 2편입니다.
(단, 본인 리뷰 없이 타인 리뷰만 추천 불가. 타인 리뷰 추천 없이 본인 리뷰 2편은 추천 가능.) 

2008 알라딘 최고 리뷰 선발대회 자세히 보기 

지금부터 참가 신청은 이 페이퍼를 통해 받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 추천 대상 리뷰는 2008년 1월 1일 ~ 12월 30일 중 작성된 것에 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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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2-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쓴게 별루 없는데 골라봐야지.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군요! ^^

멜기세덱 2008-12-27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허리업~ 헉! 허리가 어디였지? 우앗 퍽~~
어여 서두르시게나~~~ ㅋㅋㅋ

chika 2008-12-2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또 금새 까먹어부렀다. 제가 참여안하는게 아니라 까먹어서 못하고 있는거예요. ㅋ
=3=3=3=3

순오기 2008-12-28 0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앤'리뷰를 추천하려고 했는데 본인이 선택했군요.
그렇담 다른 분 서재에서 골라야 할 듯...^^

순오기 2008-12-2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분 리뷰==> http://blog.aladdin.co.kr/trackback/704730134/2446082
순오기 리뷰==> http://blog.aladdin.co.kr/trackback/714960143/1894580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코코죠 2008-12-29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 수가 저도 추천작이 되었잖아요! 이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기쁨과 맞먹는군요 부르르르- 그런데 저도 참여해도 되나요? 사실 저는 참여방법을 몇번이나 읽었음에도 룰을 다 이해 못한 것 같아요;;; 점수 매길 줄 몰;;; 그래도 참여하고 싶.................

코코죠 2008-12-29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장 아끼는 저의 리뷰는 이것이에요. http://blog.aladdin.co.kr/jhfree01/1453073 왜냐하면 이 리뷰에는 <내가 서른 넷이 됐을 때 그의 죽음보다 가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겁이 난다...> 라는 문장이 있고, 저는 그 문장을 읽을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기 때문이에요.

http://blog.aladdin.co.kr/kimji/1831114
추천하는 리뷰는 여기에요. 김지님 리뷰인데요. 이렇게 공들여 쓴 리뷰를 읽으면 가슴이 저릿저릿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 리뷰에는 제 페이퍼가 링크되어 있기 때문에 엣헴



그나저나 이거, 정말 멋진 이벤트에요, 멜기님!
멜기님 멋쟁이!
(저 절대 점수 잘 달라고 꼬리 살랑살랑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말하면 이 거짓말 진짜일까요)






멜기세덱 2008-12-29 10:52   좋아요 0 | URL
오즈마 님의 리뷰 「그리움이 힘이 된다」는 2007년 7월 28일 02:38 에 작성된 것으로 본 2008 알라딘 최고리뷰 선발대회 심사 대상 리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규정상 대상 리뷰는 2008년 1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 작성된 리뷰로 제한되어 있으니, 다른 리뷰를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코죠 2008-12-30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뭔가 실수를 저지를 거라 예상은 했어요. 그럼 이거요. 이것도 꽤나 주옥같은 리뷰라능...(응?) http://blog.aladdin.co.kr/jhfree01/1825786

비로그인 2008-12-3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이런거 하기 굉장히 쑥스럽네요. 글을 잘쓰는 편도 아니고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많으시니까... 그래도 슬쩍 한번 참여해봅니다.
http://blog.aladdin.co.kr/ikki/2260444

비로그인 2008-12-30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din.co.kr/ikki/2474413

두개를 추천해야 하는 것 같아서 하나 더 올립니다.
알라딘 서재 이웃도 없고해서 다른 분의 좋은 리뷰를 읽고도 따로 챙겨두지 않아서
어쩔수없이 민망하지만 제 리뷰를 두개 추천해야하는군요 ㅡㅡ;;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은 차에 정리해 둔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챙겨두고 읽어 볼 생각이다. 

그간 생각하고 챙겨 둔 이들은 많았다. 가라타니 고진, 들뢰즈,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슬라보예 지젝 등등등, 에겅, 언제 다 읽냐? 

이런 걸 누군가의 화법으로 말하면, 준비주의자? 생각만주의자? 혹은 작심삼일주의자 쯤 되려나 모르겠다. 

바르트의 몇몇 책과 해설서 등을 있는대로 챙겨둔다. 혹여, 바르트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책들 아시면, 알려주시면 고맙겠다.


24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기호의 제국
롤랑 바르트 지음, 김주환.한은경 옮김, 정화열 해설 / 산책자 / 2008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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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글쓰기의 영도
롤랑 바르트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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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방
롤랑 바르트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6년 9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08년 12월 26일에 저장

문제적 텍스트 롤랑/바르트
그레이엄 앨런 지음, 송은영 옮김 / 앨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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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26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 이름만 들었지 읽은 책도 아는 바도 없어서 제가 조언할 일이 없군요.ㅜㅜ
오늘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린이예요.^^

웽스북스 2008-12-2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사람들과 올 1월에 카메라 루시다 읽기로 했어요.
밝은방으로 새로 나오긴 했지만, 절판된 열화당 본이 훨씬 번역 등등의 여러면에서 훌륭하다고 하기에 가지고 있는 친구가 제본해서 주기로 했지요. ㅎㅎ 매우 기대하고 있다는 ^_^

(웬디댓글 count1 ㅋㅋㅋㅋㅋㅋ)
 
사랑의 단상 동문선 현대신서 178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동문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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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figure), 그것은 작업중에 있는 연인이다.

각 문형마다 그 깊숙이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구조 안에서만 용도를 갖는 하나의 문장, 대개는 미지의(혹은 무의식적인?) 문장이 잠들고 있다.

문형은 사랑하는 동안 내내 주체의 머릿속에 순서 없이 떠오르는 그런 것이다.

사랑 이야기(또는 '모험')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공물(貢物)이다.-14~21쪽

그 사람의 부재를 말하는 남자에게는 모두 여성적인 것이 있음을 표명하는 결과가 된다. 기다리고 있고, 또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남자는 놀랍게도 여성화되어 있다. 성도착자여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여성적인 것이다.

그리스어에는 욕망에 대한 두 단어가 있다. 부재하는 이에 대한 욕망에는 '포토스(Pothos)'가, 현존하는 이에 대한 욕망에는 보다 격렬한 '히메로스'가.

부재는 지속되고, 나는 그것을 견디어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부재를 조작하려 한다.-31~4쪽

어떤 괴상한 논리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 인지한다(가을날의 파리마냥). 동시에 이 전체는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여분의 것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 사람의 전부가 미학적인 영상을 산출한다. 그는 그 사람이 완벽하다는 사실에 찬미하며, 또 그렇게 완벽한 사람을 선택한 자신을 찬미한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욕망에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과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그리고 어쩌면 얼마나 많은 탐색이) 필요했던가!-39~41쪽

이미지의 변질은 내가 그 사람을 부끄럽게 생각할 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지는 부패한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갑자기 목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더 이상 나의 그 사람이 아닌), 한 낯선 사람(미치광이?)이기 때문이다.

망가뜨림에 대한 공포는 잃어버림에 대한 고뇌보다 더 강렬하다.-48~52쪽

독창적인 관계일 때에는 상투적인 것은 모두 흔들리며, 초월되고, 철수한다.-62~3쪽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기다리게 하는 것, 그것은 모든 권력의 변함없는 특권이요, "인류의 오래된 소일거리이다."-68쪽

언어의 힘, 나는 내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특히 말하지 않는 것조차도. 내 언어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나, 내 몸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내가 내 언어로 감추는 것을 몸은 말해 버린다. 메시지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그럴 수 없다. 내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든간에, 그 사람은 내 목소리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거짓말쟁이이지(역언법에 의해), 배우는 아니다. 내 몸은 고집 센 아이이며, 내 언어는 예의바른 어른이다.-74쪽

절망의 두 체제: 부드러운 절망, 능동적인 개념("나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랑해야만 하듯이 절망 속에서 당신을 사랑한다")과 격렬한 절망-79쪽

'가우디움'은 "현재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거나 장차 소유할 것이 확실시될 때 영혼이 느끼는 즐거움이다. 우리는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어, 그리하여 우리 세력하에 있어 우리가 원할 때면 언제나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이에 반해 '래티시아'는 보다 경쾌한 즐거움, 즉 "우리 마음속에 즐거움이 지배적인 상태"(때로 모순되는 여러 다른 감각들 중에서)를 가리킨다.-82~3쪽

최고선을 믿는 것은 최고악을 믿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89쪽

조금 떨어져 있자.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하자. 타자의 죽음 뒤에 홀로 살아남는 그 순간부터 모든 주체의 입에서 나오는 저 억압된 말, 살자(Vivons!)라는 말을 떠오르게 하자.-91쪽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고, 나를 이해시키고 싶고, 알리고 싶고, 포옹받게 하고 싶고, 누군가가 와서 나를 데려가기를 바란다."-95쪽

언어는 살갗이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 마치 손가락 대신에 말이란 걸 갖고 있다는 듯이, 또는 내 말 끝에 손가락이 달려 있기라도 하듯이. 내 언어는 욕망으로 전율한다. 이 동요는 이중의 접촉에 기인한다. 한편으로는 모든 담론 행위가 "나는 너를 욕망한다"란 유일한 시니피에를 은밀히 간접적으로 가리키면서 그것을 풀어주고, 양분을 주고, 가지를 치며 폭발하게 하는 것이라면(언어는 스스로 만지는 것을 즐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그 사람을 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이 만짐을 얘기하며, 우리 관계에 대한 논평을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110쪽

"우리가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는지 좀 알기나 하니" 혹은 "우린 너에게 생명을 주었는데"(-"하지만 그 생명으로 도대체 제가 어쩌란 말입니까!" 등등). 선물을 말하는 것은 곧 선물을 침묵 속의 소비와는 대립되는, 교환 경제(희생의, 경매의)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115~6쪽

나는 '고통'이란 말이 그 어떤 고통도 표현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 말을 사용한다고 해도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짜증나게 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우스꽝스럽다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지 않으며,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이 결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게 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그 어떤 것도 보상하거나 승화하지 않으며, 글쓰기는 당신이 없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146~8쪽

나는 찾으며, 시작하며, 시도하며, 더 멀리 나아가며, 달려간다. 그러나 내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불사조가 다시 태어난다고 말하지 죽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그렇다면 나 또한 죽지 않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충족되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자살하지도 않는 내게 있어 사랑의 방황은 숙명적이다. 베르테르 자신도 '저 가엾은 레오노레'에게서 로테로 옮아가며 그 사실을 체험했었다. 비록 그 움직임은 중단되었지만, 베르테르가 살아남았더라면, 그는 똑같은 편지를 다른 여인에게 다시 썼을 것이다.-150~1쪽

나는 모성적인 것과 생식기적인 것을 원하는, 동시에 두 명의 주체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린 에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발기된 아이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154쪽

세상은 이렇게 내가 더불어 그 사람을 공유해야만 하는 염치없는 이웃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이란 '공유의 구속'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세속적인 것)은 내 적수이다. 나는 끊임없이 이런 불쾌한 것들로 방해받는다. 어쩌다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 억지로 우리 식탁에 와 앉거나, 또는 그 사람이 옆에 앉은 사람들의 저속한 대화에 정신이 팔려 내가 말하는지 어떤지도 알지 못할 때, 또는 하나의 물건, 이를테면 한 권의 책조차도 모두 불쾌한 것이다. 쌍수적인 관계를 순식간에 말소하고, 공범 관계를 변질시키며, 소속을 해체하는 것은 전부 그러하다. 세상은 "당신은 나에게도 또한 속해 있다"라고 말한다.-160~1쪽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닮아야 한다. 나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어떤 본질과 일치가 있다고 가정한다(바로 이 점이 나를 기쁘게 한다). 이미지·모방: 나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다 그 사람처럼 하려 한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 똑같은 살갗의 자루에 갇혀 있다는 듯이, 나는 그 사람이며 그 사람은 나이기를 열망한다.-186쪽

반전(retournment): "아무리 해도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은 "당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라는 뜻이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해독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 역시 당신을 해독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랑의 행위를 통해 내가 체득하게 되는 지혜는, 그 사람은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의 불투명함은 어떤 비밀의 장막이 아닌 외관과 실체의 유희가 파기되는 명백함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미지의 누군가를,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 있을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신비주의자적인 움직임: 나는 알 수 없는 것의 앎에 도달한다.-196~7쪽

모든 연적은 처음에는 스승·안내자·흥행사·중개자였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면, 결코 사랑하지 않았을 사람도 많다."

"사랑이 시작되기 전 아름다움은 그 표지로서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게 될 사람을 칭찬하게 함으로써 그 사랑을 좌우하게 된다."-199쪽

합리적인 감정: 모든 것은 잘 되어 나가지만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의 감정: 잘 되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것은 지속된다.

지금의 나로서는 자기 희생을 하나의 고결하고도 연극적인 형태로만 파악하고 있으며, 이것은 여전히 희생을 상상계의 영역 안에 붙잡아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205쪽

질투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네 번 괴로워하는 셈이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한다. 나는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213쪽

아무리 그 대답이 긍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저도 그래요') 그 사람이 하나의 단순한 시니피에로만 대답한다면 그건 충분치 않다. 그는 내가 그에게 보낸 "난 널 사랑해"란 말을 다시 발화해야 하며, 그래서 공식화해야 한다. 펠레아스가 "사랑하오"라고 말하자, "저도 역시 사랑해요"라고 멜리장드는 대답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면에서, 어떤 새어나감도 없이, 완전하게, 문자 그대로, 사랑의 말의 원형을, 그 공식적인 표현을 받고자 함이다.-222~3쪽

물건 OBJETS. 사랑의 대상이 만졌던 물건이면 모두 그 몸의 일부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이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것.-251쪽

어쩌면 '울음'은 너무 투박한 것이 아닐까? 어쩌면 모든 종류의 눈물을 동일한 의미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여러 명의 주체가 있어,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우는 게 아닐까? '눈에 눈물이 나 있는' 이 '나'는 과연 누구일까? 혹은 어떤 날 '거의 눈물까지 날 뻔했던' 또 다른 나는 누구일까? '내 몸의 모든 눈물을 쏟으며 우는' 나, 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홍수 같은 눈물을' 퍼붓는 나는 누구일까? 이토록 다양한 울음의 방식을 가진 까닭은 아마도 내가 울 때면 언제나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며, 또 그 수신자는 항상 동일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눈물을 가지고 주변에 행사하려는 공갈협박의 유형에 따라 내 울음의 방식을 조정하는 것이다.-262~쪽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누군가를 감동시키려 하고, 또 압력을 가하고자 한다.

내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나는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표현이 아닌 기호이다. 나는 내 눈물로 하나의 이야기를 하며, 고통의 신화를 만든다. 그렇게 하여 나는 고통에 적응할 수 있으며, 또 그 고통과 더불어 살아나갈 수 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가장 '진실한' 메시지, 혀의 메시지가 아닌 몸의 메시지를 거두어 주는 한 과장된 대화 상대자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말, 그것은 무엇인가? 한 방울의 눈물도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하리라."-~263쪽

내게서 그 사람은 결코 지시물이 될 수 없다. 당신은 결코 당신일 뿐이며, 나는 타인이 당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267쪽

'주체'란 우리에게(기독교가 생긴 이래) 괴로워하는 자를 의미하며, 그러므로 상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주체가 존대한다는.

처음 우리는 하나의 정경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첫눈에 반하기 위해서는(운명과도 같은 그 무엇에 휩싸여 넋을 잃는, 그리하여 내 책임이 아닌) 갑작스러움의 기호 작체가 필요하며, 또 이런 모든 대상의 배열 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정경이기 때문이다.

나를 매혹하고 황홀케 하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 있는 육체의 이미지이다.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작업하는 모습이 나를 흥분케 한다.

내가 매혹되었던 그 처음의 장면은 단지 나중에 재구성된 것일 뿐이다. 현재 시제로 체험하지만 과거 시제로 변형시키는 충격적인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이렇듯 항상 단순 과거로 표현된다.-272~9쪽

사랑의 행로는 세 단계(또 삼막)를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 첫번째 단계는 즉각적인 사로잡힘의 단계이다(나는 이미지에 매혹된다). 이어서 일련의 만남이 그 뒤를 따른다(데이트·전화·편지·짧은 여행 등).

다음 단계란 고통·상처·고뇌·비탄·원한·절망·당혹·함정의 긴 행로로서, 그것의 희생물인 나는 끊임없이 그 사람, 나 자신, 그리고 우리 서로를 발견하게 해준 그 경이로운 만남마저도 실추하게 될지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 속에 산다.-282~3쪽

사랑의 근심은 육체적인 노동만큼이나 육체를 혹사시키고 소모한다. "나는 너무도 괴로워했다. 하루 종일 사랑하는 이의 이미지와 싸웠더니 밤에는 잠이 잘 왔다"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베르테르 또한 자살하기 바로 직전 침대에 드러누워 오랫동안 잠을 잤다.-290쪽

결국 내가 매달려 있는 질문은, 그리하여 내가 그 사람의 얼굴에서 끈질기게 그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난 당신에게 어떤 가치가 있죠?라는 질문이 아닐까?-305쪽

반과거는 매혹의 시제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움직이지 않는다. 불완전한 현존, 볼완전한 죽음. 망각도 부활도 아닌, 기억의 기진맥진한 미끼. 그 기원에서부터 하나의 역할을 하기를 열망하는 장면은 추억 속에 자리한다.-309쪽

그대로 TEL.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를 정의해야만 하는 그 끊임없는 요청 앞에 자신이 내리는 정의의 불확실성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모든 형용사가 배제된,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꿈꾼다.-314쪽

성적인 쾌락은 환유적인 것이 아니다. 일단 얻고 나면 끝이 나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닫힌 축제, 잠시 열린다 해도 금지에 의해 통제를 받는 그런 축제이다. 반대로 다정함은 무한한, 충족될 줄 모르는 환유이다. 다정한 몸짓이나 에피소드(어느 날 저녁의 그 감미로운 조화)가 중단될 때 내 마음은 찢어지는 듯하다.-319~20쪽

완전한 결합일나 "유일하고도 단순한 즐거움이요" "흠도 불순물도 없는 기쁨이자 꿈의 완벽함이며, 모든 희망의 종착역이요" "신과 같은 찬연함이다." 그것은 분리되지 않는 휴식이자, 또는 소유권의 충족이다. 우리는 서로를 절대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 즐길 수 있기를 꿈꾼다. 그것은 결실(fruitif)의 결합이자 사랑의 향유(fruition)이다

"예전의 완전한 것을 그리워하고 욕망하는 마음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릅니다."

미치광이 같은 커플에서 부부의 외설스러움이 생긴다(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위해 평생 음식을 만든다.)-321쪽

사랑은 눈을 멀게 한다라는 속담은 거짓말이다. 사랑은 오히려 눈을 크게 뜨게 하며, 명석하게 만든다. "나는 당신에 대해, 당신에 관해 절대적인 앎을 갖고 있다."

그는 에메트(Emeth), 즉 진실이라 불렸으나 사람들이 한 글자를 지워 버리자 메트(Meth), 즉 '그는 죽었다(il est mort)가 된다.-3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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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2-2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반딧불이 2008-12-25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도 여전히 가슴을 치는군요. 메리크리스마스요~

Alicia 2008-12-25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에 읽는 사랑의 단상. 좋아요. :)

Arch 2008-12-26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멜기님!
사랑의 단상을 다 읽은거랍니까? 오호! 전 맨날 들고 다녀도 거북이 걸음만큼도 못나갔는데.(거북이 미안) 같은 책인데도 나와 밑줄이 다르시네요. 우리 성실한 멜기님. 메리 크리스마스셨죠?
 

영화 <쌍화점>에서 '쌍화점'은 뭐지? 

  최근 유하 감독의 신작 <쌍화점>이 개봉을 앞두고 주목을 받고 있다. '남녀상열지사'라 하여 "당시의 퇴폐적이고 문란한 성윤리를 노골적으로 그린 노래"로 알려진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그 제목과 모티브를 따온 영화 <쌍화점>은 조인성, 주진모 등의 호화 캐스팅과 더불어 수위 높은 베드신과 동성애를 다루고 있어 많은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던 '고려시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가요 <쌍화점>과는 그 내용이 전혀 다르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금기시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하겠다. 영화 <쌍화점>으로 인해 역시나 제목 말고는 잘 알려지지 않던 고려가요 <쌍화점>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쌍화점'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질문들이 많다. <쌍화점>은 내용상 당대의 음란하고 저속한 성을 다루고 있어, 중고등학교의 <국어>나 <문학> 교과서에도 그 원문은 실리고 있지 않다. 대부분 <쌍화점>이란 고려가요가 있었고, '퇴폐적'이며 '문란한 성' 등을 다루고 있을 뿐이라고 배우는 정도다. 

그래서인지 학계에서도 <쌍화점>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몇몇 고전 문학 전공자나 어학 전공자들의 초기 연구 외에는 별다른 최근 연구가 없는 편이다. 이러한 초기 '저명한' 학자들의 학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쌍화점>에 대한 질문 중 "'쌍화점'이 무슨 뜻이냐"에 대해 대다수가 '만두 가게'로 답하고, '아! 그렇구나!'하고 끝나버린다. 정말 '쌍화점'이 '만두 가게'일까? 

고려가요 <쌍화점> 읽어 보셨어요?

먼저, 고려가요 <쌍화점> 전문을 읽어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에 그 전문과 현대어 해석을 올려본다. 천천히 감상 한 번 해보자. 

   
  쌍화점(雙花店)에 쌍화(雙花) 사라 가고신댄  
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사미 이 점(店) 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대가티 거츠니 업다. 

삼장사(三藏寺)에 블 혀라 가고신댄
그 뎔 사주(寺主)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사미 이 뎔 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 상좌(上座)ㅣ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대가티 거츠니 업다. 

드레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댄
우믓 용(龍)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사미 이 우믈 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드레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대가티 거츠니 업다. 

술팔지븨 수를 사라 가고신댄
그 짓아비 내 소모글 주여이다
이 말사미 이 집 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싀구바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예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잔 대가티 거츠니 업다.              - 출전, <악장가사>  

 

[현대어 번역]  

만두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
회회 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삼장사에 불을 켜러 갔더니만
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
우물 용이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
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었어요
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박아지야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
 
   

내용을 대충봐도 교과서에 넣기에는 좀 그런 점이 있다. 대부분의 현대어 번역에서 '쌍화점'을 '만두 가게'로 번역하고 있다. 일단 그 해석을 인정하고 보면, 1연에서 만두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 그 주인(회회아비)이 손목을 덮석 잡아 끌고 음밀한 데러 갔다는 내용이다. 그 일이 소문이 나서 저마다 '만두가게'에 몰려 갔다나? 2연에서는 '만두 가게'가 '삼장사'란 절로, 3연에서는 '우물'가로, 4연에서는 '술 파는 집'으로 장소가 바뀐다. 특이하게 3연에서는 '회회아비' 대신 '용'이 등장하지만 전체 내용은 각 연이 모두 동일하다. 

'쌍화점'은 정말 '만두 가게'일까? 

이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해석에 문제가 되는 것은 1연이다. 1연에서 '쌍화점'('쌍화')과 '회회아비'가 그것인데, 대개 '쌍화'를 '雙花(쌍화), 霜花(상화)'로 보아 상화, 곧 만두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우리가 호(胡)떡으로 알고 있는 것의 일종으로 당시 '상화병(霜花餠)', 곧 '만두떡'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쌍화점'을 '만두 가게'로 해석하고 '회회아비'를 '만두 가게' 주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삿기 광대' 곧 '새끼 광대'의 등장이 의문이다. 최철은 이 점을 주목하여 '회회 아비'를 '큰 광대, 어른 광대' 쯤으로 보고 '쌍화'를 광대들이 파는 물건, '쌍화점'을 광대들이 물건을 파는 가게로 해석하고 있다. 최철의 해석은 다소 자의적이고 막연하여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전히 '만두 가게'로 해석하였다. 

문제는 '쌍화'를 '만두'로, '쌍화점'을 '만두 가게'로 해석했을 때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옛 문헌에 대한 해석은 당시의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전반적으로 참조해야 하는 동시에, 글 전체의 맥락이나 논리 상과도 맞아야 할 것이다. 글 맥락으로 보아 '화자'는 불가피하게 몸을 주(파)는(성관계를 맺게 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2연에서는 '절 지주', 3연에서는 '용', 4연에서는 '술집 주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성관계를 맺게 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해볼 때, 고려시대 절은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녔다. 고려시대 뿐만 아니라, 소설 『사하촌』에서도 보이듯이, 한 지역의 절과 그 절의 주지는 무시하기 힘든 부와 권력의 소유자였다. 이 점에서 화자가 절 지주에게 몸을 팔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할 만 하다. 이것이 소문이 나서 저마다 절에 들락날락 했다고 하는 것은 몸을 팔게된 대가가 어느 정도 이상이 있었음을 추측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3연에서는 특이하게도 '용'이 등장한다. 이것은 다분히 허구적이지만 글 전체의 맥락상 화자가 몸을 허락하게 된 것이 권력관계 부와 지배의 관계, 물리적 힘의 관계에서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해석에 큰 무리가 없다. 4연도 마찬가지다. '술집' 주인에게 이 화자는 무언가 빚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남편에 의한 것이든, 부모에 의한 것이든, 이런 정도의 추측의 가능하다) 

그런데, '만두'를 사기 위해 몸을 팔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시의 궁핍상 등을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만두' 때문에, 일반적인 여인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몸을 팔러 몰려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 '만두 가게'의 주인이 '회회아비'라는 사실도 다소 자연스럽지가 못하다. 

'회회아비'는 이전에 '몽고인'이나 색목인(色目人) 또는 서역인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회회교(回回敎)가 이슬람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때, 이 '회회아비'는 이슬람인, 아라비아 상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아라비아 상인이 멀리 고려까지 와서, '만두'를 팔았을까? 다소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만두' 때문에 몸을 팔았다, 아라비아 상인이 고려에서 '만두'를 팔았다, 이해하기 힘든 해석이다. 이 점에서 그간의 '쌍화, 쌍화점'에 대한 해석을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쌍화점'은 '유리, 보석 가게'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는 박덕유 교수는 이 점을 천착하여 엄밀한 문헌 연구와 사료를 통해 '쌍화'가 '만두'가 아님을 증명한다.(박덕유, 「『쌍화점』의 운율 및 통사구조 연구」,『어문연구』(통권 110호 2001년 제29권 2호) 박덕유 교수는 중한사전(1989)에서 '霜花[솽화, shuanghua]'에 대해 "① 성에, ② 서리 모양의 細工(세공)"으로 풀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고려가요 <쌍화점>에서의 '쌍화'는 만두가 아니라 '세공품'이고, 따라서 '쌍화점'은 '세공품 가게'임을 밝혀냈다. 자연스럽게 아라비아인인 '회회아비'는 세공품 가게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쌍화'를 세공품으로, '쌍화점'을 세공품 가게로, '회회아비'를 세공품을 파는 아라비아인으로 해석해 보면, 보다 고려가요 <쌍화점>에 대해 해석이 자연스러워 진다. 박덕유 교수는 "회회인들이 광대를 두고 만두를 팔았다기 보다는 당시 부녀자들을 상대로 악세서리의 일종인 물건을 팔았다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쌍화'가 세공품이란 증거는 다양하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시대에 회회인과 교역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고, 이때의 교역 상품은 로마형 유리기구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고분에서도 "서역계 상인들에 의해 전래"된 각종 유리기구들이 출토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사치품 중의 하나로 여자들의 빗장식으로 사용"되는 등 다양하게 세공품들이 이용되었음을 여러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태종실록』에는 "회회인이 수정으로 다는 구슬을 만들어 드리니 왕이 기뻐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 당시 "무슬림들은 이러한 뛰어난 보석 세공 기술을 바탕으로 왕과 왕실에 가공된 각종 보석을 진상하고 상당한 수준의 사회, 경제적 입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광대를 두고 서역인들의 세공품을 판매한 '쌍화점'은 분명 고려 여인들의 관심이 많았음에 틀림" 없을 것이다. 

학계, 새로운 연구 결과에 대한 수정 반영 필요 

박덕유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명확한 근거와 당대의 역사, 문화, 사회, 경제적 배경과도 어울리며, 글 자체의 맥락과 논리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 주장이 2001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학계에서는 기존의 <쌍화점> 해석에 대해 수정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 학계의 이런 게으르고 나태한 점은 명확히 비판받아야 할 점이고, 모처럼 일반 대중의 관심이 모여졌을 때 그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확실한 설명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학계의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여러 점들을 고려할 때, '쌍화'는 '만두'가 아니고, '쌍화점'은 '만두 가게'가 아니며, '회회아비'는 '만두 가게' 주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회회아비'는 아라비아인이 분명하며, 이들은 각종 유리, 보석 등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상인으로 고려에 들어와 '쌍화', 곧 세공품을 파는 세공품 가게를 열었던 것이다. 따라서 '쌍화점'은 세공품 가게, 혹은 '유리, 보석 가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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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12-24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집이 아니었구료;; ㅎㅎ

멜기세덱 2008-12-24 01:28   좋아요 0 | URL
음...타로점인가, 별자리 점을 봤었을까요? ㅎㅎ

마늘빵 2008-12-24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중국요리집인줄 알았는데 ( '')

멜기세덱 2008-12-24 01:28   좋아요 0 | URL
이 싸람들이 이거.....ㅋㅋㅋ

hnine 2008-12-2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만두가게'라고 배운 기억이 나는데요.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선생님이 그렇다니 그런가보다 했죠 뭐.

멜기세덱 2008-12-24 01:31   좋아요 0 | URL
요즘도 그렇게 배우고 있을거에요 아마,,,
고전문학계가 참 고루해서, 학계어른이 정한 정답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또 <쌍화점>을 문학의 영역이라고만 보고 다른 이들(어학)의 얘기는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필요한 것은 받아들이고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죠.

이매지 2008-12-24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공시간에도 만두가게로 배운 거 같네요 ㅎㅎ
이거 뭐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
문학의 해석이라는 게 정말 100프로 확실한 게 아닌데도,
한 번 정해진 건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멜기님 말씀처럼 필요한 건 받아들이는 유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순오기 2008-12-24 0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교수님은 아라비아인과 만두가게가 안 어울리니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보석가게로 추정하는 말씀은 안 하셨지요~~
박덕유 교수님 말씀이 공감되는데요.^^

조선인 2008-12-24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비아 상인의 유리세공점이라니, 터번 두른 만두가게 주인보다 훨씬 그럴싸해요. 수긍이 가네요.

Alicia 2008-12-2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라워요- 저도 국어시간에 만두가게로 배웠어요. 만두도 만두지만 갑자기 그때의 국어 선생님의 음흉한 눈빛이랄까 웃음이 떠올라서 몸이 배배꼬이는것도 같공.. -_-;;
유하감독이 어떻게 영활 만들었을지 궁금하네요.^^

마노아 2008-12-2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렇게 읽으니 이해가 잘 가요. 멜기님 고맙습니다!

무스탕 2008-12-24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면서 만두가 나오는지 유리세공품이 나오는지 잘 지켜봐야 겠어요 ^^

(전 이 페이퍼를 만두님이 쓰신건줄알고 왔지 뭐에요.. -_-;;)

Forgettable. 2008-12-2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공시간에 얼핏 배웠던 게 이제 생각나는 것 같은데, 문학계의 보수성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군요 :) 전 광대랑 세공품가게 얘기들을 다 들었거든요- 왠지 광대에 더 꽂혀서 관심있게 듣긴 했었는데 ㅎㅎ 이 페이퍼를 보니 다시 수업을 듣는 느낌이라 참 좋네요ㅋㅋㅋ(반갑습니다~ㅋㅋ)

아영엄마 2008-12-2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에 대해 배운지 오래되서 어렴풋한데 이처럼 새로운 해석도 있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뷰리풀말미잘 2008-12-2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08-12-2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회아비는 중국 신쟝성에서 온 위구르 족일 거라는 해석도 있었어요.그 곳 사람들도 동양인처럼 생기진 않았죠.게다가 이슬람교도이기도 하구요.

마늘빵 2008-12-2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기사(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29817.html)로 나갔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