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아버지의 편지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조선 중후기 학문과 예술에서 저마다 일가를 이루었던 옛 선인들의 글을 묶은 책이다. 이황, 유성룡, 안정복,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등등. 면면을 보면 뭔가 대단한 글들을 모았겠거니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이들도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자식들에게 주는 편지를 모았는데, 누군가의 연애편지를 훔쳐보는 짜릿함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흥미롭다. 쟁쟁한 학자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훈계와 애교까지. 이 책은 우리에게 그 높은 이름들의 속내를 드러내보여준다. 기쁜 일이다.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이 책은 정민 선생이 제자와 함께 엮은 책이다. 정민 선생의 이런 작업이 꾸준히 있어 왔다. 옛 선인들의 글들 중 눈대목이 될 만한 부분을 풀어 엮은 책이 제법된다. 이 책도 그런 유다. 그런 점에서 다음 책들과 함께 읽기를 권한다.

『미쳐야 미친다』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조선시대 독특한 인물들의 내면 세계를 파헤친다. 박지원, 박제가도 포함된다. 이들이 어떻게 해서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고 깊이를 쌓았는지를 그들의 남은 글과 사료들에서 찾아 밝혀내고 있다. 간단명료하게 말하면 "不狂不及"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결코 미칠 수 없다는 것. 이 책을 읽고 미친다면 보람이 되겠다.

『다산어록청상』
 위의 책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편지글은 없다. 어쩌면 정민 선생의 이 책에서 볼 만큼 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체제로 정약용 선생의 짧은 글들을 풀어엮고, 정민 선생의 감상을 달았다.

 

기타 여러 편의 정민 선생 저서들을 읽으면 좋겠다.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옵션)

  동일한 분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했던 『미쳐야 미친다』를 강력히 추천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아들들의 공부에 지대한 관심과 자상히 공부 방법을 일러지는 아버지의 자애로움이 담겨 있는데, 옛 선인들의 공부법을 짧막짧막 엮어 풀어놓은 책이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을 듯 싶다.

『선인들의 공부법』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이 땅의 아버지들과, 아들들에게 권한다. 아니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이 책을 읽고 저마다 한 번씩 가까운 이들에게 편지를 건내보는 것은 어떨까?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몹시 기다리던 차에 일을 맡긴 하인이 왔다. 편지 보고서 새아기가 무사히 해산한 것을 알았다. 또 사내아이를 낳았다니 기쁘고 다행스럽다. 나는 이미 늙었는데 네 형들이 잇달아 요절하는 화를 당하고 보니, 자손이 고단한 것을 늘 상심하고 아파했었다. 이제 이 아이를 얻었으니 만금을 얻은 것만 같구나. 새로 낳은 아이 이름은 '다손(多孫)'이라 하는 것이 좋겠다. 8월 21일."
-<만금을 얻은 것만 같구나-태한에게 부친 편지> 전문, p.157.

이 외에도 챙겨둘 구절들이 무수히 많다.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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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리면

 

사랑을 말하기에 난 아직
어린 줄만 알았다

사랑을 말하기에 난 이제
너무 늦은 것일까

눈이 내려 쌓이면
누군가의 발자국 따라
조심스레 걸어봐야겠다

그 길 끝에서
말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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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11-22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내리면...

다 같이 만나서 눈사람 만듭시다~"

라는 건줄 알고 내심 기대하고, 스르륵 도망가는 외계인 ㅡ.,ㅡ ㅋㅋ

마늘빵 2008-11-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엇... 다들 심상치 않으신데요.

웽스북스 2008-11-23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내리면...
호빵 사먹어야죠 ㅎㅎㅎ

푸하 2008-11-2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내리면 마냥 마음이 설레던데요.ㅎ~

2008-11-27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향신문 오늘자(2008년 10월 27일 월요일) 신문을 보다가 20면 하단 광고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단국대 『漢韓大辭典』전 16권이 완간됐다는 소식이었다. 

 

"단국대 漢韓大辭典


대한민국 한자 문화의 신기원을 엽니다"

"2천년 한자문화를 갖고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단국대가 결심했습니다.
찬란한 민족문화에 걸맞는,
정확한 뜻과 풍부한 쓰임새를 갖춘
한국 대표 한자사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1978년 첫 발을 내딛고
310억 원의 예산과 연인원 20만여 명의 전문가를 투입해
마침내 <漢韓大辭典(전 16권)>을 완간했습니다.
중국, 일본의 사전에 의지하던 전통문화 연구의 약점을
해소할 '한자어 우리말 큰 사전'을
우리 겨레 앞에 올립니다.

"대한민국을 위"한다거나 "찬란한 민족문화"라거나 "겨레 앞에 올"린다는 게 다소 거슬리지만, 대단한 업적임에는 틀림없다. 이 사업이 30년간 끊이지 않고 완간되기까지의 많은 이들의 노고를 높이사야 할 것이다. 얼마전 10여 권이 먼저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이렇게나 빨리 발간이 될 줄은 몰랐더랬다. 총 2만 1천 5백 80면에 5만 5천 자, 25만 단어를 수록한 "세계 최대규모 한자사전"을 우리 손으로 펴냈다. 이런 건 "세계 최대"를 뽐내도 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국대에서 펴낸 이 대단한 업적을 우선 축하하며, 발간 소식을 전하는 기사와  조정진의 칼럼을 옮겨 오려다가 링크만 시켜둔다.

권당 10만원에 달하는 이 사전을 내가 구비하기까지는 먼 훗날, 혹은 기약할 수 없는 날이겠지만, 우리나라 학교 도서관들은 한질씩 구비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155만원씩은 투자해도 될만한 업적이다. 총 31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신문에 큰 광고까지 내고 있다. 그렇다고 개인 판매가 늘 것 같지는 않다. 여러 도서관 등 단체에서 많이 구입을 해야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이 책 자체로 310억원의 가치가 있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익은 아니더라도 손해 만은 보전해 줘야 하지 싶다. 그래야 더 큰 성과나 업적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에 버금가는, 아니 이를 뛰어넘는 우리말 사전도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이것보다 먼저 나왔어야 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축하할 일이면서도 이래저래 씁쓸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걱정도 되는 "기쁜 소식"임에 틀림없다.

세계최대 '漢韓대사전' 30년 집념이 이뤘다
단국대硏, 제작비 310억·연인원 20만명 투입 '5만5000자·45만 단어' 16권 완간
<한국일보 2008년 10월 25일>

[조정진의 冊갈피] 세계 최대 규모 ‘한한대사전’ 완간에 부쳐
<세계일보 2008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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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8-10-2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보기 드물게 위대한 작업입니다. 가슴이 뿌듯해지는 소식이네요. 이게 바로 학문이고 학문의 진보지요..

bookJourney 2008-10-28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에 못지 않은 우리말사전도 나오기를 기대하며... 도서관에 구입신청해야겠네요. =3=3
 

최고의 '쌈닭' 두루미히에 이끌려 보게 된 <베토벤 바이러스>에 난 푹 빠져버렸다. "첫 눈에 반한다"는 걸 난 믿지도 않고, 경험하지도 못했지만, 이 경우에는 좀 다르다고 해야 하겠다. 적어도 드라마에선 예외가 생겨 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베토벤 바이러스> 전도사가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 이 드라마를 선전하고 다녔다. 반응은 제각각이다. 그런 드라마가 있느냐에서부터 일본 드라마의 아류일 뿐이라고 냉담한 반응에까지. 여하튼 이 드라마가 무지하게 재미있다. 적어도 내게는.

아무튼 내 선전공세에 넘어가서 이 드라마를 보고 나처럼 푹 빠진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베토벤 바이러스> 제작자 측에서는 최근에 쟁쟁한 경쟁 드라마를 꺾고 시청률 1위에 오르게 된 공로를 내게도 얼마간 돌려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드라마를 본 친구와 후배 부부의 반응이다. 강마에를 보면서 날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인데, 이게 칭찬인지 아닌지 구분할 것 없이, 나는 최고의 연기자 김명민을 떠올리며 부라보를 외쳤더랬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그 이류를 달았을 때는 좀 찝찝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그들이 내게 강마에를 닮았다고 한 이유는, 외모가 아니라(난 외모도 닮았다고 주장한다) 강마에 특유의 독설과 말버릇이 나를 떠올리게 한다는 거다. 곰곰 생각해보면 일리있는 말이다. 알만한 사람은 알거다.

옛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느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나는 어린 나이에 성가대 지휘를 맡은 적이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 재능이 특출났다고 생각된다. 누가? 내가. 예전에도 나는 지휘에 일가견이 있었더랬다. 초등학교 6학년 쯤으로 기억되는데, 음악시간에 학교선생님이 클래식을 틀어주더니, 모두 눈을 감고 음악에 맞춰 지휘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음악에 심취해서 손을 휘저었다. 결국, 제일 잘 한 사람에게 주는 포도스티커 10알은 내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때 나의 이 음악적(지휘적) 재능을 알아보고 키웠으면 지금쯤 카이얀 저리가라는 명 지휘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한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때에도 지휘를 참 잘해서,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시골의 작은 교회의 성가대에게 조건은 늘 좋지 않다) 1500여 명이 모이는 그쪽 지역 대형 집회에서 찬조 공연을 한 적도 있었더랬다. 자랑이냐고? 맞다 자랑이다.

그런데, 강마에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는 이 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그시절을 떠올리면 대단히 미안한 기억들이 많은데, 그 미안함은 당시 내 지휘를 잘 따라줬던 성가대 대원들이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어른들도 있었고, 한 두살 아래의 후배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간 당당한 게 아니었다. 강마에처럼 실력이 떨어지거나, 음정과 박자를 못 맞추면 여지없이 독설을 퍼부었다. 내 독설의 단골 손님은 피아노 반주자였는데, 그 아이에게 특히 미안한 마음이다. 성가대 지휘자 하면 좀 부드럽고 나긋나긋하며 자애로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던 이들에게 퍼부어댔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퍼부어댔던 아픈 기억이 있다.

또다른 기억이 떠오른다. 대학시절, 1년에 한번씩 학과에서 학술제라는 걸 하는데, 그때 몇몇이 모여서 작은 콘서트같은 걸 연다. 뭐, 왕년에 깔짝되기만 한 어중이 떠중이 모아 하는 공연이니 별볼일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걸 대학 3년동안 연속으로 참가했다. 고등학교 시절 기타를 깔짝 된 적이 있어서였다. 두해째 참가하던 때에, 후배 한 놈에게 기타를 가르쳐야만 했던 적이 있다. 그 후배 놈은 그때 이후를 나를 보면 이를 부득부득 간다. 이쯤하면 다들 상상하시겠지만, 난 그 아이에게 기타를 가르치면서, 강마에가 불광동 돈텔파파를 다루듯이 했다. 그리고 강마에가 정희연 씨에게 퍼부은 독설들만큼 심한 말들을 했을지도 모른다.

자꾸 기억들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들이 참 많았다. 나는 나름 짜증을 잘 내는 축이 든다. 아무튼 이런 증거들을 떠올리면 나는 영락없는 강마에다. 누가 감히 아니라고 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여러모로 강마에 같은 면들을 다들 지니고 있지는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나쁜 마음으로 그러지는 않았을지 모르나, 누군든 한번쯤의 독설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니까 모두들 자기 안에 '강마에'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 두 명의 강건우가 등장한다. 하나는 늙고 독하고 나쁜 건우 강마에고, 젊고 부드럽고 착한 건우 강마에 제자다. 왜 이 둘은 이름이 강건우로 설정되었을까? 내가 작가의 의도를 알지는 못하지만, 이 것은 일종의 자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누구나 강마에와 착한건우의 모습을 자기 내면에 이중적으로 담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마에와 착한건우는 여러모로 상반된 캐릭터다. 노력형과 천재형, 독함과 부드러움 등등, 여러 면에서 정반대다. 그런데, 그 둘은 점점 하나가 되어간다. 음악과 지휘라는 어떤 목표로 향하면서 이 둘은 점점 합치된다. 그러면서 서로를 닮아가고, 조금씩 융합되면서 그 둘은 하나의 강건우로 통합하는 것이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나의 강건우가 되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안의 이중성들을 잘 조화시켜 변화하라는 것. 그러나 각각의 장점은 최대한 살려내라는 것. 강마에가 독설로 무장된, 안하무인의 인간이지만, 어떤 하나의 가치에 있어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는 강한 집념과 노력, 착한건우의 착하고 부드럽고 다른 사람들을 조화시키는 탁월함, 이런 장점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서루를 배우고 닮아가며 변화되어가는, 그런 것들이 우리들 내면에서도 일어나야하지 않을까?

내가 강마에를 닮은 것 같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를 뒤돌아보면서 나의 이중성은 잘 조화되지 못하고, 그래서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었을 것을 생각하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처럼, 착한건우와 강마에가 하나된 강건우로 태어나는 것처럼, 내 안의 강마에와 착한건우를 합체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독설을 퍼부어야 할 때는 강마에처럼, 세상의 착하고 여리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착한건우처럼.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지 않았는가? 특히나 이 사회는 내면의 이중성을 외면의 이중성으로 표출하라고 강요하고 있잖은가? 권력자와 지배자와 부자들에게는 강마에처럼 가차없는 독설을 퍼부어대고, 가난한 민중들의 아픈 가슴은 착한건우처럼 달래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나된 강건우들이 이땅에 넘쳐날 때 우리 사회도 베토벤필(<베토벤 바이러스> 출연진들이 오케스트라를 꾸려 공연한다던데?)이 넘쳐나 아름답게 연주될 수 있을 것이다.

아 내 안에 강마에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난 외모에서도 김명민을 약간 아주 약간 닮았다고 조용히 주장해본다. 생각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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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0-20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딱 두번인가 중간에 조금 봤어요~~~ 드라마는 그 시간에 TV에 묶여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잘 안 봐요. 멜기님은 정말 드라마매니아예요.ㅎㅎㅎ
내 안에 강마에 있어 행복한 님, 강건우의 자연스런 합체를 기대할게요~~~^^

조선인 2008-10-2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ㅎㅎ 독설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터라.
(주말에 재방하는 걸 언뜻 본 적이 있긴 하지만 독설이 시작될 거 같으면 채널전환. ㅋㅋ)
 

10月 중순이라 하기엔 다소간 미안한 날의 밤이다. 시간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그 '마지막 밤'을 향해 맹렬히 질주중이다. 어떻게 질주하든, 그것은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것만 같다.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어중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선한 날의 가을을 난 소망한다. 가을 남자라 외롭고 고단해도, 선선하게 외롭고, 선선하게 고단하고 싶은, 그래서 이 외로운 가을을 만끽하고 싶은 남자가 바로 나다. "그게 바로 나야!"

서재의 명명을 고민했다. 이건 이내 내가 가을이 된 걸 모르는 모양으로, 여전히 봄타령이다. 시의적절치 못하면, 요즘에는 비루해지기 십상이다. 정지되고 연착된 서재는 곧 나이기도 할 터이다. 시간은 종잡을 수 없이 맹렬히 질주하건만, 나는 이 사이버 공간에서 여전히 봄에 멈춰 서 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아무 계절도 없던 것처럼, 그저 한 동안 멍해 있었다. '아차!' 한 것은, 그래서 고민한 것은 이 때문이다.

내가 10년을 채우고도 여전히 적을 두고 있는 곳은 학교였고, 지금은 비정규 직장이다. 올해만 하고는 제깍 그만둘 예정이다. 어느 학교에나 밝고 넓은 문이 아닌 곳으로 통하는 이들은 있게 마련인가 보다. 으리으리 널찍한 정문은 차들을 위한 문이다. 원래 태생이 그러했다. 사람들은 죄다들 후문으로 다닌다. 그러나 정문으로 다녀야할 인간들도 있는 법이다.

이 학교가 작으면 작은 것이요, 크면 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제법 그 쪽에서는 넓은 축이 든다. 그 동네에서는 말이다. 이 학교를 끼고 몇몇 노선이 흘러 다닌다. 그런데, 그 몇몇 노선을 타고 다니는 이들 중에는 밝고 당당하게 다니기 위해서 정문으로 출입하여야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에둘러 먼길을 돌아야만 하는 딱한 사정이 있었다. 그리하여, 월담을 해야 했으니, 이 학교에도 문이 아닌 통로가 생긴 셈이다.

한동안은 이 통로는 그저 담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여교수(라고 알려진)가 이곳을 범하다가 그만 다리를 삐끗하고야 말았다. 그러고는 얼마 후, 이곳에 담사이로 간이 문이 달렸다. 그 여교수의 희생에 감사를 표해야 할 사람은 나 말고도 제법 많을 것이다.

아무튼 이 새로이 생긴 문을 통과하고도 문제는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길을 건너기 위해서 등등으로 대로로 나가기 위해서는, 한 가운데 조성된 둥글넙적한 화단을 에둘러 돌아야 한다는 사실. 그 애처로운 사실은 담 한 켠을 헐어내고 비록 초라하게나마 문을 낸 이들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 둘, 시나브로, 영웅적으로 그 화단을 가로질렀다. 처음에는 조심조심이었을 것이다. 행여나 꽃을 밟을까? 키작은 나무들(?)로 장식된 울타리에 조심스레 벌리고서는, 그러했을 것이다. 조심스레 발길을 옮겼을 것이다. 그 조심으로는 꽃 한 송이송이 모두를 다 보호하지는 못하였다. 바닥에 깔렸던 잔디들은 어느새 그 뿌리마저 사리지고 없다. 이제는 어엿한 길이 되었다. 단단하게 굳은 흙길이 생겼으니, 모두들 그 길로 다닌다. 울타리는 뻥뚤리고 이도 어엿한 문처럼 되었다. 아 경이로운 인간들의 힘.

두 말이 필요없이 『페다고지』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교육사상가 파울로 프레이리와 미국의 교육활동가 마일스 호튼의 대담을 엮은 『We Make the Road by Walking』이란 책이 있다. 제목이 참 그럴싸하지 않은가? 아침이슬에서 나온 한국어판도 이 영문 제목을 번역한 그대로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로 나와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불현듯 무서운 생각에 잠긴다. 정말이지 "우리가 걸어"갔더니 '길이'되었잖은가? 놀아운가? 난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을 잡고 더 들어가보았더니,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이 우리가 걸어가서 길이 된 것들은 너무나 많지 않은가? 하는 회의를 품게 되었다. 태고적에는 허허벌판이었을 지도 몰랐다. 숲으로 우거져있었을지도 몰랐다. 이상야릇한 동물과 식물들로 가득한. 어느냥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생각되었을지 모를 우리 인간들이 걸어가더니, 하나씩 길이되고, 그 길이 넓어지고, 다니기 좋게 포장되고, 철도가 깔리고, 건물도 서고, 빼곡하게 채워졌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신념으로 뭉친 사람들이 차고도 넘친다.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에 내가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난 무서워진다. 인간이 이 지구를 온통 이 자랑스런 길들로 도배를 하고야 말 것이다. 인간들이 걸어온 길은 창조의 길이었으되, 파괴를 동반한 길이었다. 인간적인 길도 제법 그러하지 않았을까? 인간이 살기위해 동물을 죽이고 쫓은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저 아메리카에서도 동물들은 죽어나갔다. 콜럼버스에게는 그 죽어나간 것들은 단지 동물이었을게다. 여전히 이 사회는 80%의 동물들이 죽어나간다. 인간적인 길. 점점더 혐오스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명명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非인간적인 길은 아름답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이제부터는 그 생각의 지평을 넓혀보자. 생각을 넓히고 사고를 충만하게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걷는 길에서는 우리는 인간이 아닌 비인간을 생각하고, 내가 사는 이 사회에서도 인간이 아닌 비인간의 길을 생각하고 추구해볼까? 망상에 그쳐야만 할 욕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비인간적"이라는 수식을 자못 욕으로 사용한다. '인간적'이 긍정되는 세상, 바로 인간세상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좀 바뀌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언뜻 잘못된 것이 아닐 것 같다. 여하간 '비인간적' 이길, 그렇게 살아보길 작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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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10-18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컴백하신건가요? ^^

멜기세덱 2008-10-18 21:43   좋아요 0 | URL
전 떠난 적이 없사와요...ㅎㅎ

순오기 2008-10-20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처녀는 어디로 가고 가을 남자 혼자 외로운지요?
비인간적으로 살아보길 작정한다니~~~~ 여튼 응원을 해볼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