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한국인 - 중독과 거리두기 사이에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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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에나 논쟁은 있었더랬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한복음 1:1) 말이 있는 곳에 논쟁이 있다. 곧 인간의 논쟁은 '태초'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논쟁이 없는 사회는 더이상 사회가 아닐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나, 왜곡된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논쟁은 있었더랬다. 다만 숨죽인 논쟁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역사는 어느 정도 큰 틀에서의 논쟁의 역사이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논쟁의 추이를 따라가보는 것은 사뭇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 시대 논쟁의 주역을 꼽자면, 이 사람 강준만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폭넓은 문제적 사안들에 강준만은 빠지지 않고 참견한다. 넉살이 좋은 것인지 이곳저곳 껴들지 않는 데가 없다. 그들 이런 참견을 두고 혹자들은 강준만의 오입질에 눈쌀을 찌푸린다. 때론 지나치달 정도로 안 껴드는 곳이 없는가 하면, 또 한편으론 강준만이 오죽 답답했으면 시시콜콜 그렇게 참견질을 하겠는가 하는 어느 정도의 수긍도 간다. 이런 강준만이 있기에 잠잘 뻔 했던 우리 사회 곳곳의 문제들이 들추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긍정적 의미부여를 해 볼 만도 한 일이다.

사실 내가 강준만이란 인물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간의 내 관심사에 강준만은 그 주변부에서도 머무르지 못 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강준만의 '오입질'이 내 관심사 주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한국 문단의 신진 문인들과 더불어 '문학권력'을 비판이 일기 시작할 무렵, 강준만은 빠지지 않고 『문학권력』으로 내 관심사의 경계를 침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강준만 따라 읽기는 시작되었다. 그의 글들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다루는 것들이 다분히 '논쟁적'이어서, 싸움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의 논쟁을 따라가면서부터 나의 관심사의 외연이 점차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고백한다.

얼마전 강준만의 『인간사색』이란 책을 읽다 말았다. 강준만식의 글쓰기를 한마디로 평하자면 '짜깁기'라고 하면 어떨까? 거기에 몇 마디 수식을 붙여주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를테면 '절묘한' 혹은 '창조적' 짜깁기라고. 그는 그간 내게 '짜깁기'에도 수준이 있고 품격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논지와 주제에 알맞은 다양한 텍스트들을 절묘하게 인용하는 능력은 강준만이 가장 뛰어나지 않을까? 그런데 그간의 읽기에서는 이런 것이 나름 흥미와 관심을 끌 수 있었던데 반해, 『인간사색』에서의 그의 짜깁기는 그런 절묘함과 창조성을 거의 갖지 못해, 읽기에 지루함과 괴로움만을 더해 주었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강준만식 짜깁기 수준의 고저를 『문학권력』과 『인간사색』을 비교해보면 그 극과 극을 맛볼 수 있을 듯 싶다.

『인간사색』을 읽다가 치워버리면서 어느 정도 강준만에 대한 허망함을 느꼈다고 해야겠다. 그런 중에 이 책『고독한 한국인』이 나온 것인데, 다소간 이 책을 선택하는데 망설임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나 논쟁적 강준만에 대한 중독을 끊을 수는 없었지 않나 싶다. 그렇게 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고, 그간의 강준만식 짜깁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그의 글쓰기를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은 그가 <한겨레21>과 월간 <인물과사상> 등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의 시론, 칼럼적 성격의 이 글들은 강준만식 글쓰기의 진수라고 하면 어떨까? 참견하기 좋아하고, 문제들을 들추기 좋아하고, 여기저기서 논쟁을 불씨는 당기기 좋아하는, 문제적 · 논쟁적 인간 강준만의 본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한국인'이란 타이틀 아래 묶인 30편의 글들이 이런 맛들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지속적으로 두드려 온 대통령 노무현과 유시민, 그리고 정치권에서부터 보수세력의 든든한 지원군 이문열을 큰 테마에서 다루고 있고, '대중의 고독'이란 테마 아래에서 우리 사회는 다양한 '고독성'을 강준만의 필치로 담아내고 있다. 아울러 지방 소외의 문제들을 적시하며 강준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그간 강준만이 자주 다루어 왔던 것들이지만, 1장의 '대중의 고독' 편에 모인 글들은 강준만이 얼마나 다양한 주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나 대중가요의 '사랑타령'을 풀어낸 글에서는 세월따라 흘러간 대중가요를 흥얼대는 '노래하는 강준만'을 상상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무엇보다 이 책에서의 재미는 치고 받고, 되치는 강준만의 열띤 논쟁의 추이를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유별한 강준만의 사랑 혹은 애증을 이 책에서 확인하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강준만은 왜 이리 논쟁적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강준만은 그래서 다분히 문제적이다. 아니 문제적이기 때문에 논쟁적 인간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했듯이 한국인은 고독하기 때문일까? 강준만도 한국인의 한 사람이기에 그 또한 고독하다. 고독한 인간 강준만에게 논쟁은 그의 고독해결의 유일한 통로일 수도 있지 싶다. 무엇이 먼저고 나중인지 알 수 없지만, 논쟁의 한 가운데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강준만은 어느 곳엔들 몸둘 데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고독할 밖에. 고독에 치여 숨죽이고 있자니 강준만은 참을 수 없어 사회 곳곳의 문제들에 불을 붙이는 이 시대 고독한 논쟁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책 날개에서 강준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매일 글을 쓴다. 끊임없는 글쓰기를 통해 학문간의 경계, 전문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학문 신비주의에 갇혀 있는 지식을 대중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또한 그가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지 싶다. 하여간 고독한 인간 강준만의 논쟁은 우리를 흥미롭게 한다. 그러나 흥미를 넘어 강준만의 지적에 대한 일말의 깊은 사려를 우리가 보여주어야 그의 논쟁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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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
윤지관 외 엮음 / 당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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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영어에 웃고, 영어에 우는 나라, 아니 영어에 목졸리어 켁켁거리는 나라, 그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아이들 동요에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하지만, 어쩌면 이젠 "우리나라 영어나라"로 고쳐 불러야 할 판이다. 학원들이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많은 나라가 없다고들 하는데, 그 많은 작고 큰 학원들마다, 어느 동네 구석에 처박힌 보습학원에서까지도 파란눈의 원어민 영어선생이 존재하는 나라 또한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영어가 대세다. 영어를 해야 장차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 없다는 소릴까? 그렇다면 장차 나는 굶어 죽고야 말 것이다.

98년 복거일로 촉발된 영어공용어화 논쟁이 아니었을지라도 그간의 경향은 영어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어 왔다. 특히나 2000년 이후 거의 대부분의 대학에서 졸업인증이란 제도하에 영어를 못하면 졸업을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유학온 외국인들이 흔히 우리나라처럼 대학 졸업이 쉬운 나라가 없다고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겐 그 말이 그렇게 사실만은 아니다. 왜냐? 영어가 많은 학생들의 졸업에 제동을 걸기때문이다. 대학 나올려면 제 전공은 둘째치고 영어라도 좀 해야 된다는 얘긴데, 대학 졸업장이 목숨같던 이 나라는 이제 영어에 제 목숨이 달린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아니 돼버렸다.

대학가의 아침은 여전히 활달해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사람들이 있다. 아침 수업에 바쁜 걸음을 총총히 옮기는 학생들에게 재빨리 전단지를 건내어 주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 전단지의 열의 아홉은 토익, 토플 강좌 안내지다. 대학들은 현수막과 대자보와 포스터들로 넘쳐난다. 그것들 다섯 건너 하나씩도 바로 이것들이다. 우리나라 모든 대학생들의 제1전공은 어쩌면 영어라고 해야 맞는 말인 것 아닌지 모를 정도다. 우리나라 대학이 이 정도니, 대학만 바라보는 중고생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니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어린아이들까지도 영어학원은 필수코스가 되어버렸다. 결국 "우리나라 영어나라"라는 등식은 항등식이다.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이니, 단일어를 사용하느니 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지만, 역설적이게도 영어에 대해서는 우리의 단일어인 '한국어'보다 그 위상이 높다. 이게 무슨 민족적 각성의 문제니, 개탄할 노릇이니 할 계제는 아니지만, 영어만 유달리 고취되는 이 현상에는 무언가 비합리적 요소가 내재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왜 우리나라는 이토록 영어에 열광, 아니 광분하는 것일까? 그 궁금증들을 조금 풀어볼 수 있는 것이 이 책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다.

이 책은 영어와 영어교육 및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대한 그 간의 여러 영어전문가들의 논고들을 모은 책이다. 그 논고들은 멀게는 90년대에 발표된 것들로부터, 가깝게는 200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발표된 것들이지만, 최근의 '영어' 문제, 즉 영어교육의 부실과 영어공용어화 주장의 부각들에 대한 비판의 논지를 중심으로 모인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영어교육의 역사를 가늠해보면서, 현재의 이런 영어 현상이 이르기까지의 근원을 탐색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어느 노영문학자의 영어교육에 대한 비판적 경험적 성찰도 담겨져 있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한 것인가』란 책으로 유명한 더글라스 루미스의 '영어회화'에 대한 비판적 논고도 있고, 1997년 『국어라는 사상』으로 일본의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한 이연숙의 "일본의 영어공용어화론"의 전개를 논한 글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어학자, 영문학자들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논고들은 다양한 제재들을 다루고 있지만, 전체가 하나의 문제, 곧 우리 안에 내재된 신식민주의적, 혹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적 '영어'의 문제를 중심적으로 비판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달리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영어의 '원어민'으로서 일본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치기도 한 더글라스 루미스의 '영어회화'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었는데, 여기서 그는 미국인의 입장에서 우리들이 그렇게 영어회화에 열광하는 현상에 대한 의문을 갖고, 그것들이 하나의 '이데올로기'임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끼리의 '영어' 문제를 진정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것은 보다 설득력 있는 영어 담론으로 가는 길일 수도 있겠다.

하여간에 영어가 이처럼 문제적 언어가 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닐테지만, 우리나라만큼이나 '극성'인 나라 또한 없을 것도 같다. 전체 논지들이 영어가 가지는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성격과 아울러, 그것이 강조되는 경제적 논리로 인한 공용어화 발상의 문제점들, 나아가 영어회화만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점들을 설득력 있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영어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해답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기실 나는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지만, 현재 영어가 내 앞길에 지장을 줄 가능성은 앞으로도 극히 적어 보인다. 우리나라 수십 수만의 대학생들이 졸업을 해서 영어를 밥줄로해서 살아갈까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리 많은 이들이 영어때문에 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너무 성급한 예단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영어에 대한 이 대단한 열성들은 너무 많이 지나친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우리는 영어를 배우긴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더글라스 루미스의 마지막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말을 옮기며 자판의 두들김을 마치고자 한다.

"영어공부 자체가 추종적 태도에서 자유의 도구로 변화될 때, 일본인들이 느끼는 그 모든 영어에 대한 '특별한 어려움들'이 정말이지 마치 안개가 걷히듯 사라지게 될 것이다. 백인선생들만을 고용하는 외국어학원들에 대해서는 보이콧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영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은 서로들 앞장서서 동남아시아 사람들과 스터디그룹을 조직하여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와 정치 그리고 아시아적 표현을 반영하는 새로운 아시아판 영어를 창출해야 한다. 그리하여 만약 아시아를 방문하는 미국인들이 이 새로운 아시아판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듣겠다고 투덜거리게 된다면 그때는 외국어학원에 나가야 할 사람이 바로 그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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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0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저번주엔가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영어 콤플렉스에 대해 다루었던데요. 그것과 과련해서 읽으면 좋겠네요. 방송에서도 우리나라 80% 이상은 영어를 그렇게 능통할 정도로 필요치 않는다고 하던데, 유치원 때부터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고 하는 행동이 안타까워 보이더라고요.

멜기세덱 2007-07-01 22:48   좋아요 0 | URL
전 국민이 영어 능통하면 뭐 손해볼 일이야 있겠는니까마는 능통을 강요당하는 사회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아고, 딴 건 둘째치고, 저는 우리나라 '엄마'들이 아이들을 좀 고만 괴롭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답니다.
 
이것은 시가 아니다 세계사 시인선 139
이승훈 지음 / 세계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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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시(詩)’라는 것의 시작에서부터 함께 따라다녔다. 지금까지도 그 물음은 풀리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그 물음에 정답을 내어놓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까? 어쩌면 그것은 애초부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보 같은 질문이랄까! “시의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지 않던가? 정의하려면 할수록 그것은 ‘오류’만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인류는 시를 태생시킨 이후 끊임없이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물고 늘어졌다.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말이다.

  모든 문학의 통칭(統稱)이 시였을 때부터 그 의미가 현저히 축소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는 변화했고 시의 정의도 늘상 바뀌어왔다. 어쩌면 시를 쓰는 저마다에게 시의 정의는 각각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적 정의에 입각해 시를 쓴다. 확고한 시의 정의가 없이 쓸 뿐이라고 반문하는 시인 나부랭이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그런 시인은 정말 ‘나부랭이’일 것이다. 저마다 가슴 속에 ‘이런 것이 시다.’라는 생각들을 품고 있을 것이고, 그것은 그 나름의 시론(詩論)으로서 그의 시를 탄생시키는데 암묵적이나마 작용할 터이다. 시의 정의, 곧 시론이라는 것은 시에 대한 철학이다. 철학은 사유, 곧 생각인 바, 시론 없이 시를 쓴다는 것은 곧 ‘생각’ 없는 시를 쓴다는 것과 동의어다. 그럴 때 그것은 시가 아닐지 모른다.

  이렇게 시와 시론은 다른듯하면서 같고, 같은듯하면서 또 다르다. “시론과 시쓰기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라는 불이(不二) 사상과 만나고 그런 점에서 시쓰기에 대한 사유는 시에 대한 사유이고 거꾸로 시에 대한 사유는 시쓰기에 대한 사유”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으니 그가 곧 이승훈이다. 이승훈의 이번 시집 『이것은 시가 아니다』에서는 그의 시에 대한, 시쓰기에 대한, 시론에 대한 사유를 만날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시란 무엇이고, 그에게 시쓰기는 무엇인지에 관한 그의 시론을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세상에 내어놓고 있는 것이다.

  시를 쓰는 저마다에게 시론이 있을진대,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사유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보편적인 시에 대한 관점에서 그리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여기 이승훈의 시론은 이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내가 시를 쓰는 것은 언어가 있기 때문이고 시는 죽음을 표상하는 언어를 매개로 이 죽음과 싸우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는 이 언어, 현실, 상징계를 극복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언어와의 싸움이 아니라 언어를 버리는 시가 요구되고 이런 시는 언어도 환상이라는 인식을 동반한다.”고 말하는 시인에게는 시의 매개인 언어에 대한 극심한 부정이 보인다. 즉 언어로부터의 해방을 그는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로부터 탈출할 때, 곧 언어를 매개로 하여 성립할 수밖에 없는 시는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나는 현대시가 끝났다는 입장이고 내 시의 종말(end)이 내 시의 목적(end)이고 내 시의 목적이 내 시의 종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는 곧 시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왜 언어를 부정하고 시의 종말을 향해 가는가? 그것은 언어 자체의 어떤 모순에 대한 시인의 사유에 근거하는데, 이를테면 언어가 가지는 그 자체의 기호성, 상징성, 추상성에 의해 현실과, 사물과 본질을 극히 추상화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언어로 탄생되는 시에는 곧 그 추상화와 상징화에 의해 본질과 진리가 왜곡된다. 그러니 곧 그 시는 가짜가 되어버린다. 본질적 현실과는 다른 시, 시와 삶, 시와 현실이 ‘경계’지어지고 분리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시와 삶, 시와 현실의 경계를 해체하는 데 있고 이런 해체를 통해 근대 부르주아 예술이 강조한 이른바 미적 자율성을 파괴하고 일상과 예술의 단절을 극복함에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나아가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에 충실하게 살면서 시는 순수한 초월의 세계를 노래”하는 그들의 현실과 그들의 시가 철저히 경계 지어진 지금의 시인들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관심은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리얼리즘과는 아무 관계가 없”단다. 그가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언어로부터 탈출하는 것으로써 실현된다. 언어 자체가 현실과 시를 분리시키는 것을 극복하고 현실이 곧 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의 ‘불이 사상’과 일맥으로 놓아도 될까? 나는 잘 그의 시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도대체 어떻게 언어로부터 해방되고 시를 쓸 수가 있을까? 정말 시의 종말을 고하기 위해 그는 시를 쓰는 것일까? 하여간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쩌면 허망하기까지 하고, 어떤 ‘정신병적’ 중얼거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는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미친 소리가 구원”이기 때문일까? 그의 궁극적 지향은 언어로부터의 해방이면서, 언어적 자폐(自閉)가 아닐까?

  그는 이런 그의 시론을 이 시집에 담으면서 독자에 대한 ‘우롱’을 감행한다. 시집의 표제와 동명의 시를 한 시지에 실었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제자의 편지 내용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이 글은 시가 아니라 표절이고 그러나 내 이름을 밝히고 제목을 붙였기 때문에 이 글은 표절이 아니고 표절이 아닌 것도 아니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뒤샹은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작가 이름을 무트(Mutt)라고 적고 나는 제자 편지의 일부에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제목을 붙이고 내 이름을 적고 시지에선 이 글을 그대로 수록한다.

  따라서 이 글은 시로 대접받은 셈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자. 이 글은 시가 아니다. 제자의 편지, 그것도 정신병에 시달리는 제자의 횡성수설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솔직하게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도 이상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이런 행위에 대해 아무도 이의가 없다는 점이고 이런 상황은 우리 시의 후진성, 소박성, 무지, 지적 태만과 통한다.”

 

  시인은 본인 스스로 ‘시아 아닌 것’을 시지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시로 대접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당대의 시인들, 비평가들, 독자들에 대한 우롱일 수 있겠다. 너희들에게는 도대체 시론이 있는 것이냐? 생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것이냐? 시가 무엇인지 알고는 있느냐? 하는 경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무런 응대가 없더란다. 행여 그가 미리 밝히고 있듯이 그것은 ‘시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도 응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냥 ‘미친 소리’로 치부해 버리고 만 것은 아닐까? 그의 이러한 시론이 오늘날의 현실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

  시인은 이런 우롱은 이 시집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시집을 읽으면서 많이 허탈하고 한 정신병 환자의 중얼거림을 듣는 것 싶기도 했다. 많은 시인들이 언어의 극복을 염원하면서 시적 진실을 언어적 제약 없이 환히 드러내려고 노력해왔지만, 이 시인처럼 언어의 극도의 부정, 나아가 시의 종말을 고한 이는 없었다. 한편으론 충격이면서 한편으론 무시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시인 이승훈의 이러한 시론에 일말의 동의를 구할 수 없을 것 같다. 현실과 시, 삶과 시는 분명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시인이 지향하는 언어적 해방의 자리에 여전히 시가 존재한다면 모를까, 그의 시의 종말 선고 또한 언어로서 감행되고 있음에서 볼 때 그는 이런 사유는 언어적 자폐의 지향처럼 보일 따름이다. 그래서 이 시집이 아무런 풍파를 일으키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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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 우리말이 살아온 모습을 찾아서
시정곤 외 지음 / 고즈윈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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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이나 사자성어, 격언 같은 관용어구들의 그것들이 속한 사회에서 일종의 지침 혹은 교훈으로서 기능한다. 선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농축된 후인들에게 내리는 뼈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간혹 우리의 언설에 이런 관용어구를 곁들이면 제법 그 표현효과가 확연히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런 관용어구들 중에 어느 사회에서거나 빠지는 않는 것은 '말'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조사해 본 바는 없지만 모든 사회에서 가장 많은 속담이 이 '말'과 관련있다. 우리만 하더라도 일일이 꼽자면 꽤 긴 시간을 요할 터이다. 그런 관용어구가 전달하는 중심내용은 주로 '말 조심' 혹은 '말의 중요성' 등이다. 하나만 떠올리면 "말 한 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라는 속담이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다. '세 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는 언설도 흔하다. 이게 모두가 선인들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깨달은 지혜다. 그들에게 '말'은 그만큼 중요했다는 걸 의미하는데, 이는 오늘에도 전혀 변함이 없다.

'언어적 인간(Home loquens)'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언어로부터 시작되었고, 인간이 끝나는 말은 언어가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동물 혹은 기타 생물들과 다른 점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인간의 사고의 운용도구라고도 할 만한데, 인간은 언어적으로 사고한다고 하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 머리 속의 생각이라는 것도 생각이라는 어떤 것으로 존재한다기 보다는 언어적으로 구성되어 존재한다고 판단된다. 이런 의미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이전에 인간은 언어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이 '언어'가 구성되고 형성되는 그 요소들이다. 언어가 다만 음성기호의 체계로서만이 아니라, 그 안에는 수만가지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을 품고 있다. 사고와 사유의 기본틀도 언어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이 '언어'에 내재된 다양한 요소들, 그리고 그 언어가 구성되는 다양한 요소들의 양상들을 알지 않고는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사유하는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어떤 문화속에서 존재하는지 그 근원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학은 철학이다. 또다른 의미에서 언어학은 실용성을 포함한다. 우리가 언어의 본질을 이해할 때 다양한 문화와 그것이 존재하는 다원성을 존중하면서 기타 문화의 언어들을 습득하는데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언어 속에는 다양한 문화를 내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言語)라는 중복적 표현(言과 語가 모두 '말'이라는 의미를 대표로 가지지만, 엄밀히 따지자만 言은 음성언어를 語는 문자언어를 통칭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언어는 음성과 문자를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그것이 '말'이라는 큰 의미를 중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을 달리하여 '문화어'(여기서의 문화어는 북한의 '문화어'와는 구별된다. 여기서는 문화와 언어를 동격으로 혹은 언어가 문화를 내재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언어도 하나의 문화임으로 '문화어'도 중첩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라고 불리어도 좋을 것이다. 

현행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상에서 언어교육은 '국어'와 '영어'로 대별된다.(기타 외국어도 고등학교과정에서 선택적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영향은 극히 적다.) 여기서 '영어'를 실용영어 중심으로 영어회화말하기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어 본질적 언어교육으로서는 기능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국어'에서 언어교육이 이뤄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또한 부실하기 짝이 없다. 중학교과정에서 '언어의 사회성'이니 '자의성', '역사성' 등이 살짝 언급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언어의 본질을 가르칠 수는 없다. '언어'에 대해 보다 심도있게 다룰 수 있는 시간은 고등학교 선택과목의 '문법' 시간이다. 그러나 이 과목은 선택과목에다가 문법에 대한 기피현상이 심해 많은 학교에서 선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그러니 현행 학교교육에서는 이 언어교육이, 특히 언어의 본질적 측면이 거의 가르쳐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이 책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는 그런 학교교육에서 하지 못하는, 특히 국어나 영어 시간에 해야할 것을 하지 않고 있는, 언어의 본질적 모습을 꽤 훌륭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사실 문법책에서 다루는 언어의 본질적 측면은 거반 수박겉핥기 식이지만, 이 책에서는 쉽고 재밌게, 그러면서도 심도 있게 언어를 다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문법책(국정교과서)와 함께 문법 과목의 교재로 채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제목이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지만, 이 책은 언어 전반의 본질적 특성들을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언어의 기원, 언어와 문화의 관계, 언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들, 언어와 금기 등을 다루고 있다. 이런 언어의 본질적 측면을 다루는 여타 언어학 개론서에서의 원론적 설명들은 이 책에서 찾아볼 수 없다. 첫장의 시작은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 「넬(Nell)」(1995)"을 끌어들이면서 언어와 문화의 관계를 조목조목 풀어나간다. 읽는 이로 하여금 흥미가 유발될 수 밖에 없게한다.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영화, 기타 영상, 최근의 연예인이름, 다양한 광고와 이미지들을 가져와 설명한다. 이런 것들은 보다 친근하게 언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왜 효과적이냐 하면, 언어의 본질이라는 것은 바로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구체적 언어 현상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구체적 언어 현상을 통해 언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당연한 논리가 되는 것이다.

우리 언어가 형성됨에 있어 고대의 토템적 성격은 빼놓을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는데는 일본의 만화영화 「원령공주」가 도입된다. '고맙습니다'가 곰과 관련된 토템에서 왔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언어가 가지는 주술성은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에 의해 설명된다. 무슨 소리냐고?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타임머신을 타고 저 멀리 삼국시대로 간다면 그들과 우리가 말이 통할까? 이런 의문은 "김유신과 계백은 말이 통했을까?" 등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과 우리의 지명이나 명칭들이 어떻게 달라지게 되었는지 언어 변화의 양상, 곧 언어의 역사성 혹은 자의성에 대해 배워볼 수도 있겠다. 또한 외래어의 유입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그것이 어떤 양상을 띄는지를 일본의 한류 신드롬을 일으킨 「겨울연가」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3장에서부터는 이 책이 왜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였을까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옛날 선조들은 우리말을 어떻게 공부했을까를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추적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언문이라고 치부되던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말이 소외되고 천시된 이들에 의해 유지보전 전승 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과도 같은 외국어 열풍도 우리의 역사속에 이미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또한 흥미롭다. 몇 백년 전의 부부의 사랑편지도 읽어볼 수 있다. 4장에서는 언어 속에 문화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양상을 살피고 있는데, 언어와 사고의 관계의 본질적 측면과, 연예인 김C를 등장시켜 우리의 이름짖기에 반영된 사회상을 살피고 있다. 이 책이 또한 가치있는 것은 5장에서 다루는 언어의 권력과 이데올로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반드시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 책은 저자들 연구모임의 세 번째 결과물이다. 『우리말의 수수께끼』가 그 첫째인데, 거기서도 재미나게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두 번째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인데, 한국어의 소멸이라는 가상의 현실을 설정하고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흥미롭게 구성해내고 있다. 두 번째 결과물은 조금 시의성이 있었고 그들 연구모임을 주된 항로는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말의 수수께끼』에 적자동생은 이 책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라고 본다. 어쨌건 정주리, 박영준, 시정곤, 최경봉 이 네 명의 젊은 국어학자들의 이런 작업들이 앞으로도 의미있는 결과물들을 내어주기를, 그리고 그들의 이런 작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특히 학생들에게 읽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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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백석 - 문학동네 글과 길 2
김자야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42년. 시인 백석은 혼자였다.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 전에는 측량보조원, 측량서기를 비롯해서 소작인 생활을 하기도 했단다. 일본의 뛰어난 시인 노리다께 가스오는 시인 백석에게 매료되어 있었던가 보다. 그를 찾아 만주의 안동까지 가서 만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 후 그를 추억하며 쓴 시가 「파[葱]」라는 시다.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

  벌써 스무 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벗, 백석이여, 살아 계신가요.

  살아 계십시오.

  백이라는 성과 석이라는 이름의 조선의 시인.

  ―  노리다께 가스오, 「파[葱]」,『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와사회, 1997.


  만주에를 찾아가서 만난 백석은 부엌에서 파를 들고 있었던가보다. “有朋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라 했으니, 술 한 잔 기울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시인은 손수 부엌에서 술안주를 준비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순수한 모습을 지우지 못하고 20년이 지난 후에 시인 백석을 그리워하는, 국경을 넘어선 두 시인의 우정은 기릴 만하다. 이렇게 친구가 다녀간 후 1943년에 그에게 준 시 한편이 있다.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나 취했노라 ― 노리다께 가스오에게」


  멀리 있는 친구에게 준 시에서 백석은 쓸쓸하니 푸념을 늘어놓는다. 백석의 시 중에서는 이 시를 제외하고는 이런 유(類)의 시를 볼 수가 없다. 절친한 친구였기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한다. 취할 수밖에 없는 백석. 그는 무엇 때문에 취했던 것일까? 술에 취하고 슬픔에 취하고, 그 인생 허무함에 취하고, 우리의 시인 백석은 그렇게 취해갔다.

 

  백석은 1935년 시「정주성」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36년에는 시집『사슴』을 200부 한정 발간하면서 당시 문단에 충격을 준다. 뛰어난 언어감각, 향토성 짙은 방언으로 시 속에 신화적, 동화적 세계를 펼쳐 놓으면서도, “주책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김기림,「『사슴』을 안고」, 『조선일보』, 1936.1.29; 『내 사랑 백석』에서 재인용)다. 그 『사슴』시편들도 걸작이지만, 오늘날 백석의 절창으로는 북관에서의 시편들이나, 이후 「흰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과 같은 “떠돎 과정에서 생산된 이른바 북방 시편들”(고종석, 『모국어의 속살』, 마음산책, 2006.)이 꼽힌다. 『사슴』과 그 이후의 북방 시편들과는 어떤 시적 변화가 있음을 감지해 낼 수 있다. 왜 백석은 떠돌며 그런 “외롭고 높고 쓸쓸한”(「흰 바람벽이 있어」) 시편들을 써내게 되었을까? 우리로서는 뛰어난 시편들을 가질 수 있었던 더없이 행복한 것일지 모르지만, 백석 시인 자신에게는 아픈 추억이 있었다. 그 키워드를 이 책 『내 사랑 백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야(子夜) 여사. 1936년 스물다섯의 백석은 다니던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여고보의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그는 일찍이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었다. 이때의 백석의 제자들은 그를 멋쟁이 서울 신사로 기억한다. 선생 백석은 선생으로서도 학생을 위하는 좋은 선생이었던가 보다. 무엇보다 함흥에서의 생활은 백석에게 있어 지울 수 없는 순간이다. 그것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자야 여사를 그곳, 함흥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자야 여사는 백석이 붙여 준 아호다. 스승 금하선생으로부터 받은 예명은 김진향으로 1916년 서울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어릴 적 부친을 여의고 홀어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란다. 우여곡절 끝에 조선 권번에 들어가 기생이 된다. 이후 그녀는 “한국 정악계의 대부였던 금하 하규일 선생의 지도를 받아 여창 가곡, 궁중무 등 가무의 명인으로 성장”한다. 자야 여사의 일생도 그리 수월치 못한 운명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운명은 필연이었을지 모른다. 그녀의 예술적 혼은 기생이 됨으로써 꽃 피우게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기생이 되어 백석과 만나게 됨으로써 백석의 시적 세계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으니, 그의 기생됨은 불운한 가족사의 곡절이었으나, 우리에겐 또 다른 행운을 준 일대 사건은 아닐까?

 

  백석과 자야 여사의 첫 만남은 참 흥미롭다. 자야 여사는 주위의 도움으로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게 되는데, 귀국 후 스승이 투옥되어 있는 함흥엘 찾아가게 된다. 함흥에 있게 되면서 그곳의 권번에 들어가 생활하고 있을 때에, 백석은 근무하던 영생고보의 어느 송별회 자리에 참석했다가 자야 여사를 만나게 된다. 자야 여사가 추억하는 첫 만남의 장면은 이렇다.


  “당신은 첫 대면인 나에게 대뜸 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였다. 그리곤 당신이 마신 술잔을 꼭 나에게만 건네는 것이었다. 속으로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런 내색을 전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행동거지에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말없이 연거푸 기울이는 술잔에 용기를 얻은 당신은 더덤썩 나의 손목을 잡았다. 꽉 잡힌 내 손목에는 이미 불꽃 튀는 사랑의 메시지가 뜨거운 전류처럼 화끈거리며 전달이 되었다.

  ―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영원한 마누라야. 죽기 전엔 우리 사이에 이별은 없어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당신의 말이 나의 귀를 놀라게 하고, 또 의심케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식은 거의 가물가물해지면서 바닥 모를 늪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가는 듯했다. 술기운이 더해감에 따라 당신은 나의 손을 다시 움켜쥐었다.

  ― 마누라! 마누라!

  진작부터 자주 불러와서 익숙해진 듯한 말투로 당신은 무슨 애원이라도 하듯 자꾸만 보챘다.”


  정말이지 닭살 돋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이에 두고 하는 말일테다. 그런데 그 당시 이렇게 첫 만남에서부터 덥석 “오늘부터 내 마누라야”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야 서슴없이 좋다 싫다 하지만, 그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다. 어쩌면 70년 전의 백석은 오늘날 신세대만큼이나 신세대적 연애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백석이 멋있어 보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진으로 전하는 그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더라도 꾸밈없고 순수해 보이며, 곱고 흰 피부가 오늘날의 꽃미남에 비견될 정도다. 이런 백석에게 자야가 그날부터 ‘마누라’가 된 건 어쩔 수 없었던 것이었으리라.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 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 없이)


  우리에게 이 시는 잘 알려져 있는 백석의 시 중 하나다. 백석과 자야 여사의 사랑은 오늘날에도 이루기 쉬운 사랑은 아닐 것이다. 당시로서는 촉망받는 엘리트 백석과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기생과의 사랑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회가 그들의 사랑을 축복할 리는 없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랑은 많은 상처와 아픔을 남기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석은 자야와의 사랑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집안의 강제로 3번이나 혼인을 하기도 한 백석은 매번 첫날밤 신부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다음날로 자야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그런 그였기에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은 아닐까?

 

  세상의 편견과 인습은 제도는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다. 그러니 이 세상을 버리고 둘 만이 오붓이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공간으로 떠나고자 한다. 여기서 ‘나타샤’는 분명 자야 여사를 염두에 둔 것을 터이다. 그래서일까? 깊은 산골 눈은 하얗게 내리고, 흰 당나귀가 ‘응앙응앙’ 우는 장면의 어떤 환상처럼 여겨진다. 환상은 현실과는 양립할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이 시 속에서 나타샤와의 사랑이 아름답게, 그리고 간절하게 그려질수록, 현실에서의 자야 여사와의 사랑은 힘겨워 지기만 한다.

 

  자야 여사는 몇 번의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이별’을 말하기에 백석은 너무나 순전한 사랑을 소유한 시인이었다. 세상의 강제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랑을 지속하고자 했던 시인 백석은 자야 여사와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자야 여사도 백석을 사랑하지만은 자신을 택하기에는 백석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염려했을 것이다. 그래서 백석 몰래 짐을 싸 도망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백석은 자야를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몇 번의 이별은 ‘연습’이었던 것일까? 결국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헤어짐을 길을 가게 된다.

 

  집안의 강제에 의해 세 번 씩이나 결혼을 하게 된 백석은 그때마다 자야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야 여사 또한 백석의 혼인이 마냥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백석은 더는 견딜 수 없어, 만주의 신경으로 갈 작정을 하고 자야 여사에게 같이 갈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자야 여사는 그런 백석을 따라 나설 수 없었다. 왜일까?


  “당신이 만주로 혼자 떠나시려는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은 순전히 뛰어넘을 수 없는 복잡한 가정사와 봉건적인 관습 때문이었다. 당신은 그것들로부터 아주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은 부모님의 강권으로 억지 장가를 몇 번씩이나 들고, 또 그 때문에 집을 뛰쳐나와서 정신적 번민도 무수히 겪었다. 게다가 그 동안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자야마저 한 달 동안이나 온다간다는 말이 없이 어디론가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어버린 것에 당신은 몹시 큰 충격을 받았던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훌쩍 떠나버리자는 백석을 따라나서기에는 백석이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다. 부모를 거역할 수 없어 몇 번이나 혼인을 치렀던 백석은 효자였다. 그러나 부모를 버리고 떠나버린다는 것은 백석을 불효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유학까지 다녀와 엘리트로서 사회적으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뛰어난 문인으로서도 유명한 그를 따라나서는 것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백석을 떼어 놓는 것을 의미했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자야 여사를 백석을 사랑하기에 백석에게 그것을 빼앗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함께 떠나지 않는다고 하면 백석이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 남아서 끝끝내 백석의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자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백석은 묵묵히 떠나고 만다.

 

  백석이 떠나고 자야 여사는 수없이 후회하고 눈물을 흘리지만, 이런 백석의 떠낢이 우리에게 백석의 명편들을 남기게 해 주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 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은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느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꾸 들려오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백석이 자야를 떠났지만, 백석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자야 여사와의 추억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백석은 그런 추억을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고 외로운 심사는 다양한 시편들에서 그 시들을 절창이 되게 한다. 어쩌면 이런 백석의 가슴 아픈 이별이 백석이라는 천재 시인이 꽃피기 위한 통과의례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백석의 시편들을 읽을 때에 자야 여사를 떠올리는 것은 그의 시를 더욱 가슴깊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열쇠가 되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자야 여사의 백석에 대해 추억하며 눈물로 써내려간 이 책 『내 사랑 백석』은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조각달이 서울을 희미히 비추고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섧게 울립니다.


  가을바람인들 어찌 무심히 듣겠어요?

  다 그리움을 돕는 것뿐입니다.


  어느 날에나 오랑캐 무찌르고

  임은 옥관에서 돌아올지요.

  ― 이백, 「子夜吳歌 三」(이원섭 역해, 「자야오가 3―다듬이질」, 『이백시선』, 현암사, 2006.)


  서점에 들렀다가 『자야오가』라는 당시선집을 샀는데, 그걸 본 백석이 대뜸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주어 그때부터 자야 여사로 불리게 된 것인데, 위의 시는 이백의 시 「자야오가」연작 중에 그 세 번째 수다. 오(吳)나라의 여인들을 전쟁으로 인해 남편을 멀리 전쟁터로 보내고 남편이 무사 귀환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리워하고 있다. 옷을 지어 남편이 있는 전쟁터로 보내겠다는 아내의 마음은 백석을 떠나보내고 못내 그리워하는 자야 여사의 심정과도 통하는 점이 있다. 백석이 붙여 준 이름 ‘자야’는 어쩌면 그들의 사랑의 결말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시참(詩讖)이라는 말이 새삼 되새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3년간의 자야 여사와의 사랑은 시인 백석의 자상함과 순수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당시 무성영화일 듯한 <클레오파트라>를 보러 가지는 자야 여사의 친구의 말에 자야 여사를 보며 “클레오파트라, 여기 있지 않소?” 했다는 백석은 정말이지 끔찍이도 자야 여사를 사랑했던가 보다. 그런가 하면 시인답게 시집을 펼쳐 맑은 목소리로 읽어 주던 장면을 자야 여사는 추억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런 사랑은 참으로 낭만적이며 열정적이었다. 그런 낭만과 열정은 새삼 부러움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 책 『내 사랑 백석』을 읽으면서 백석과 자야 여사와의 순전한 사랑에 깊이 감동하는 한편으로, 이 이야기가 참으로 낭만적 드라마와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시인 백석의 생애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지만(재북(在北) 시인이란 탓에 그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방 이후 백석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극히 적다.) 이런 소중한 자료를 토대로 그의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 한 편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상의 삶과 소설이 영화화 된 것이 있지만, 백석의 이런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고 훌륭한 영화가 되기에 충분하리라고 본다. 이런 작업들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소중한 시인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귀한 역할을 담당해 줄 누군가가 나타나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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