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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키드의 추억
신윤동욱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말에서 스포츠(sports)는 외래어에 속할 것이다. 그것이 외국어가 아니라 외래어가 된 데에는 그만큼 우리 생활(혹은 언어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어로서의 'sports'를 우리말로 번역해보자면, 얼핏 '운동'이나 '체육' 정도가 될 텐데, 우리는 굳이 'sports'를 스포츠라 애써 말한다. 왜일까? 거기에는 스포츠와 운동과 체육이 가지는 그 어감과 어의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무언가가 있다. 근대 이후에 'sports'가 전해지면서 형성된 스포츠는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왔고, 또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는 각기 대중들의 일상적 차원에서 그것은 '운동'이나 '체육'과는 다른 담화상황에서 사용되어 왔다.
흔히 우리는 "운동하러 간다"고 하지 "스포츠 하러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일반인들에게 실행되어 지지 않는 '스포츠'의 특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니까 스포츠는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와 대비되는 아마추어 스포츠가 가지는 좁은 의미의 아마추어리즘이 아닌 보다 넓은 의미의 아마추어리즘 말이다. 달리 말하면 일반인들의 '스포츠 활동'을 우리는 '스포츠'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지성이 맨유 팀에서 첼시와 축구를 하면 스포츠지만, 우리 옆집 아저씨가 조기 축구팀에서 축구를 하면 다만 운동이지 스포츠가 되지 못한다. 재밌는 것은 박지성이 우리 옆집 아저씨와 함께 조기 축구팀에가서 축구를 해도 스포츠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포츠는 보다 프로페셔널(professional)한, 직업적 전문적 영역의 운동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스포츠와 체육 사이의 관계는 또다른 측면에서 대별된다. 체육이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여지는데, 그 차이는 '체육 뉴스'가 아니라 '스포츠 뉴스'라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운동'되어지는 대부분의 것이 체육이라면, '운동'되어지는 것들 중에 '보여지는' 측면이 강한 것이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체육 뉴스'가 아닌 '스포츠 뉴스'라는 조어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두 가지에서 얻을 수 있는 스포츠의 영역은 보다 전문적이고 직업적이며, 대중에게 보여지는 영역의 운동 혹은 체육의 일부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말에서의 스포츠는 말이다.
그래서 이 스포츠는 근대 이후의 산물이면서 국가주의의 유효적절한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근대 이전에서도 체육이 이런 기능을 담당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근대 이후에 그것이 체육이나 운동으로부터 더욱 분화되면서 '스포츠'로서의 보다 강력한 영역을 구축했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근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스포츠는 비판받아 왔다. 3S 정책으로서 대중을 선동하고 현혹하는데 이용된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대에서 스포츠의 영역은 더욱 굳건해지고 그 영향력을 지대하게 확장해왔다. 이것은 스포츠가 3S 정책의 하나로서만이 아닌 그 어떤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이지 않을까? 여기 그 또 다른 무엇을 증거하는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신윤동욱이다.
신윤동욱이란 이름을 몇 번은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름을 어떻게 해서 듣게 되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디워' 논란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데, 그것도 확실치는 않다. 하여튼 신윤동욱은 『한겨레21』 문화부 기자로 그간 스포츠 부분을 담당해왔다. 그는 오래전부터 스포츠와의 인연을 뒤늦게 되돌아보며 스포츠 칼럼을 풀어나갔고 드디어 그것을 모아 이 책 『스포츠 키드의 추억』을 내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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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에 갇힌 스포츠, 그것은 『한겨레21』에 연재했던 「스포츠 일러스트」의 주요한 주제였다. 거꾸로 비추니 부끄럽기도 하다. 스포츠를 이렇게 애국주의 프리즘으로 보았던 것은, 뒤집어 보면 내가 스포츠를 즐기는 방식이 애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하여튼, 한국에서 그래도 정치적으로 올바르려고 하는 사람에게, 스포츠 보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가벼운 커밍아웃이다. 이제는 스포츠를 인민의 아편으로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여전히 '스포츠를 좋아해?'란 질문에 의아해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6~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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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사실의 고백은 아직 '커밍아웃'해야 할 것의 성질이다. 여전히 스포츠에 대한 어떤 경박함의 인식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적어도 이 사회의 지식인입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야기들 속에는 다분히 좌파스러운 부분이 많이 담겨있다.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좌파적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스포츠를 좋아한다는 고백은 여전히 '커밍아웃'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르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스포츠 보기에 중독된 인생, 태극마크에 대한 집착은 되도록 버리고 스포츠를 보면서 인생도 느끼고 세상도 생각하자는 뜻"(7~8쪽)에서 이 책을 엮었다고 말이다.
"스포츠를 보면서 인생도 느끼고 세상도 생각하자"는 좋은 뜻에서 대부분 스포츠를 보지만, 그 스포츠를 봄으로서 느끼는 인생이나 세상은 다분히 경쟁적이고 약육강식적인 단면들이 대부분이어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스포츠를 전하는 주체, 곧 이 사회의 지배계극이 스포츠에 담아내고자 하는 부분들만을 전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스포츠중계에, 스포츠뉴스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 얘기"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스포츠를 봄으로써 스포츠에 담긴 진정한 인생의 의미나 세상의 이면들을 엿보자는 것일테다. 하여튼 어느 시인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고 했지만 신윤동욱을 키운 것은 팔할, 아니 그 이상이 스포츠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만 같다.
스포츠는 그를 어떻게 키웠을까? 그의 인생에 있어서 스포츠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스스로를 '스포츠 키드'라고 말하는 그의 스포츠의 추억을 무엇일까? 우리가 이 책을 따라 읽으면서 공감할 부분이 무척이나 많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그와 함께 '스포츠 키드'이기 때문이다. "나는 농구대잔치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내 인생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 시절이다. 내 인생에 그토록 순수한 몰입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15쪽)라고 말하는 신윤동욱처럼은 아니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한때의 시절에 어느 하나의 스포츠가 있는 것은 대다수일 것이다.
이 책은 다만 스포츠에 얽힌 추억을 주구장창 나열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 스포츠에 담긴 다양한 이면들 속에서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간혹 이런 서술을 보자. '나는 무조건 오래 뛰는 선수가 좋다. 오래 뛰는 언니들은 더 좋다. 즐기지 않으면 오래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맨날 맞고 한다면 오래 못한다. 언니들의 긴 선수 생명은 스포츠의 민주화를 상징한다."(24쪽) 우리나라 핸드볼팀의 언니, 혹은 아줌마 선수들을 보고 한 얘기다. 우리 사회의 스포츠에 담긴 어두운 이면들이 무척이나 많음을 우리는 이 책에서도 제법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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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격 좋고, 얼굴 좋고, 스타일 좋은 청소년 대표팀이 좋다. '본 투 비'로다가, 애국심과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는 그들의 태도는 더 좋다. 조국에 대한 비장미가 없으니까 상대에 대한 비정함도 없다. 내가 나카타에 매료됐던 바로 그 이유로, 청소년 대표팀에 매혹 됐다. 나는 근성 없는 한국 축구가 좋다.
이제 그럴 때도 됐다.(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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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포츠에서의 애국주의와 국가주의는 참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어쩌다 일본에 지기라도 하면 치욕이니 어쩌니, 반면에 이기면 '도쿄 대첩'이니 하면서 얼토당토 않게 국가와 민족을 갖다 붙인다. 이 지지리 못난 궁상에서 이제는 벗어나 "애국심과 적당히 거리두기를 하는" 스포츠를 나 또한 보고싶다. "아버지 같은 명감독에 잘 따르는 여자 선수들이라는 '가부장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유사 가부장에 유사 부녀 관계다. 한국 산업화의 눈물겨운 발전 모델과 유사하다."(58쪽)는 지적도 우리 스포츠가 여전히 품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런 우리 스포츠의 어두운 면들을 이 책은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이 단순한 스포츠 타령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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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생클리 리버풀 전 감독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어떤 사람들은 축구를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태도에 실망을 감출 수 없다. 축구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축구를 생사의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팬들에 의해, 축구 선수들의 생사가 위협당하고 있다. 축구의 역사는 '광기의 역사'이기도 하다.(78~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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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축구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 스포츠에 생사 이상을 걸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누구하나 스포츠에 어느 정도 걸지 않은 사람은 드문 것도 사실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4강에 진출하는 날, 나는 군생활을 걸기도 했다. 무슨 말이고 하니, 당시 스페인과의 경기 중 나는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위병소 옆에 마련된 면회실의 텔레비전을 몰래 틀어놓고 중계를 관전하느라 여넘이 없었다. 그때는 누가 오건 말건 축구가 중요했었더랬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는 흔하지 않는 귀중한 것들을 스포츠를 위해 간혹 희생하고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은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에 담긴, 위에서 언급한 어두운 이면들과 함께 왜 이렇게 많은 것들을 스포츠에 걸고 살아가는가 하는 그 이유들을 엿보기도 하고, 정말이지 인생의 축소판같은 스포츠의 장면 곳곳에서 어쩔 수 없는 감동과 추억을 애틋하게 되돌아보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윤동욱에게는 농구가 무엇보다도 깊은 추억의 스포츠였듯이, 우리들 모두에게는 어떤 애틋한 스포츠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고, 스포츠 스타에 대한 열광과 감동 하나씩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서 저자와 함께 '스포츠 키드'였음을 자인하지 않을까 한다.
길게 쓸 리뷰가 아님에도 쓸데없이 길어졌다. 이 밖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벌어진 스포츠 장면들을 이 책은 담아내고 있다. 이전의 기억들도 되새겨볼 수 있고, 우리가 몰랐던 스포츠의 이면들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보는 재미가 농후하다. 저자의 필치도 재치가 넘친다. 간혹 저자의 성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드는 '오빠'니 '언니'니 하는 언설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불악무도한 전장군의 무식한 전술에 전도된 듯한 혐오감이 없지않지만, 대한민국에 한번쯤 '스포츠 키드' 아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우리모두는 '스포츠 키드' 아닐까? 이 사실에 자못 분개만 할 것은 아닐 것같다. 적어도 이 책을 읽고나서는 말이다. 이 책은 떳떳하게 나도 '스포츠 키드'였음을 커밍하웃하게 해 주는 충분한 응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앞서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를 나름 짚어보았지만, 여전히 스포츠는 3S 정책으로서의 일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포츠 없이는 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스포츠를 즐기되 "일주일에 3번 이상, 하루 30분 운동"(269쪽)도 함께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지 싶다. 그러니까 '스포츠=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포츠는 스포츠대로 운동은 운동대로 어느하나 치우치지 않는 생활건강이 필수적이지 않을까? 한가지 더 붙이자면, 저자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지만, 스포츠를 보는 맹목적 시선을 거두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런 스포츠를 보는 보다 비판적 시선을 배울 수도 있다. 저자 신윤동욱에게서 말이다. 재밌게 읽히면서도 뼈가 있는 그런 책이라고 한다면 너무 극찬이겠지만, 약간 물렁뼈는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물렁뼈 하나쯤은 가지고들 계시라.
트집 : 이책은 편집에 약간 문제가 있다. 33쪽에 "1985년 훌리건의 난동으로 39명이 숨진 헤이젤 참사(32쪽 사진)"라고 했는데, 32쪽에는 아무런 사진도 없다. 그 사진은 뒷장 34쪽 상단부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있다. 131쪽 "34살 동갑내기 오모트(124쪽 사진)"를 보려면 124쪽으로 가면 안 된다. 거기엔 워메인지, 에토오인지 아님 드로그바인지 모를 축구선수 사진이 있을 뿐이다. 가려면 132쪽으로 가야할듯 싶다. 거기에는 노장 스키선수로 보이는 사진이 있다. 이런 실수는 좀 이해하기 어렵지 싶다.